바로에게 호소하여

출애굽기 강해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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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וַיָּבֹ֗אוּ שֹֽׁטְרֵי֙ בְּנֵ֣י יִשְׂרָאֵ֔ל וַיִּצְעֲק֥וּ אֶל־פַּרְעֹ֖ה לֵאמֹ֑ר לָ֧מָּה תַעֲשֶׂ֦ה כֹ֖ה לַעֲבָדֶֽיךָ׃

16 תֶּ֗בֶן אֵ֤ין נִתָּן֙ לַעֲבָדֶ֔יךָ וּלְבֵנִ֛ים אֹמְרִ֥ים לָ֖נוּ עֲשׂ֑וּ וְהִנֵּ֧ה עֲבָדֶ֛יךָ מֻכִּ֖ים וְחָטָ֥את עַמֶּֽךָ׃

17 וַיֹּ֛אמֶר נִרְפִּ֥ים אַתֶּ֖ם נִרְפִּ֑ים עַל־כֵּן֙ אַתֶּ֣ם אֹֽמְרִ֔ים נֵלְכָ֖ה נִזְבְּחָ֥ה לַֽיהוָֽה׃

18 וְעַתָּה֙ לְכ֣וּ עִבְד֔וּ וְתֶ֖בֶן לֹא־יִנָּתֵ֣ן לָכֶ֑ם וְתֹ֥כֶן לְבֵנִ֖ים תִּתֵּֽנּוּ׃

19 וַיִּרְא֞וּ שֹֽׁטְרֵ֧י בְנֵֽי־יִשְׂרָאֵ֛ל אֹתָ֖ם בְּרָ֣ע לֵאמֹ֑ר לֹא־תִגְרְע֥וּ מִלִּבְנֵיכֶ֖ם דְּבַר־י֥וֹם בְּיוֹמֹֽו׃

20 וַֽיִּפְגְּעוּ֙ אֶת־מֹשֶׁ֣ה וְאֶֽת־אַהֲרֹ֔ן נִצָּבִ֖ים לִקְרָאתָ֑ם בְּצֵאתָ֖ם מֵאֵ֥ת פַּרְעֹֽה׃

21 וַיֹּאמְר֣וּ אֲלֵהֶ֔ם יֵ֧רֶא יְהוָ֛ה עֲלֵיכֶ֖ם וְיִשְׁפֹּ֑ט אֲשֶׁ֧ר הִבְאַשְׁתֶּ֣ם אֶת־רֵיחֵ֗נוּ בְּעֵינֵ֤י פַרְעֹה֙ וּבְעֵינֵ֣י עֲבָדָ֔יו לָֽתֶת־חֶ֥רֶב בְּיָדָ֖ם לְהָרְגֵֽנוּ׃

15 וַיָּבֹ֗אוּ שֹֽׁטְרֵי֙ בְּנֵ֣י יִשְׂרָאֵ֔ל
וַיִּצְעֲק֥וּ אֶל־פַּרְעֹ֖ה
לֵאמֹ֑ר
לָ֧מָּה תַעֲשֶׂ֦ה כֹ֖ה
לַעֲבָדֶֽיךָ׃
이스라엘 자손의 감독들이 왔다(칼 바익톨)1/4
그리고 바로에게 외쳤다(칼 바익톨)1/8
말하기를(칼 부정사)1/2
왜 이렇게 행하십니까(칼 미완)1/4
당신의 종들에게1/2
: 이스라엘 자손의 감독들이 와서 바로에게 외쳤다. 말하기를 “왜 당신의 종들에게 이렇게 행하십니까?”
당신의 종, 노예.
외쳐, 울며,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 쓰는 말.
이들은 바로의 신하들에게 세움받은 자들이다.
그래서 이들은 하나님의 종이기 보다, 바로의 종이다.
종과 노예는 같은 단어다.
16 תֶּ֗בֶן אֵ֤ין נִתָּן֙ לַעֲבָדֶ֔יךָ
וּלְבֵנִ֛ים אֹמְרִ֥ים לָ֖נוּ
עֲשׂ֑וּ
וְהִנֵּ֧ה עֲבָדֶ֛יךָ מֻכִּ֖ים
וְחָטָ֥את עַמֶּֽךָ׃
짚을 당신의 종들에게 주지 않는다(니팔 분사)1/4
그리고 우리에게 벽돌을 말하고 있다(칼 분사)1/8
만들라고(칼 명령)1/2
보소서 당신의 종들이 맞고 있다(호팔 명령)1/4
그러나 잘못은 당신의 백성들에게1/2
: 짚을 당신의 종들에게 주지 않고 우리에게 벽돌을 만들라고 말합니다. 보소서 당신의 종들이 맞고 있지만 잘못은 당신의 백성에게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감독관, 이스라엘은 종, 애굽은 왕의 백성.
우리가 잘못한게 아니다. 제발 살려달라.
17 וַיֹּ֛אמֶר נִרְפִּ֥ים אַתֶּ֖ם
נִרְפִּ֑ים
עַל־כֵּן֙ אַתֶּ֣ם אֹֽמְרִ֔ים
נֵלְכָ֖ה
נִזְבְּחָ֥ה לַֽיהוָֽה׃
그가 말했다. “너희는 게으르다.1/4
게으르다.”1/2
그러니 너희가 말한다(칼 분사)1/4
가게하소서(칼 미완)1/8
여호와께 제사드리게 하소서(칼 미완)1/2
: 그가 말했다. “너희가 게을러빠졌으니 말하기를 가서 여호와께 제사드리게 하소서”한다.
게으르다는 할일이 없어 나태해져있다라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기본뜻은 풀리다. 놓아주다. 축 늘어지다라는 뜻이다.
이것은 힘이 없어 약해지다라는 뜻도 있다.
그래서 바로는 할일을 더주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마치 호의를 베푼것처럼 말한다.
너희가 할일이 없이 축 늘어져 있으니 내가 할일을 더 줄게! 빠릿빠릿하게 움직여! 라는 느낌이다.
거기에 모세의 말을 근거로 든다.
18 וְעַתָּה֙ לְכ֣וּ עִבְד֔וּ
וְתֶ֖בֶן
לֹא־יִנָּתֵ֣ן לָכֶ֑ם
וְתֹ֥כֶן לְבֵנִ֖ים
תִּתֵּֽנּוּ׃
그러니 이제 가서(칼 명령) 일하라(칼 명령)1/4
그리고 짚은1/8
너희에게 주지 않을 것이다(니팔 미완)1/2
그러나 벽돌의 양은1/4
줄 것이다(칼 미완)1/2
: 그러니 이제 가서 일이나 해라. 그리고 짚은 너희에게 주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벽돌양은 채워야 할 것이다.
가서 제사를 드리다.
가서 일하다(에베드)
바로의 말 : 너희는 내 종이니 내뜻대로 가서 내 일이나 해라 제사같은 쓸데없는 생각하지 마라.
벽돌의 양 - 모세를 처리해라.
19 וַיִּרְא֞וּ שֹֽׁטְרֵ֧י בְנֵֽי־יִשְׂרָאֵ֛ל אֹתָ֖ם
בְּרָ֣ע לֵאמֹ֑ר
לֹא־תִגְרְע֥וּ מִלִּבְנֵיכֶ֖ם
דְּבַר־י֥וֹם בְּיוֹמֹֽו׃
이스라엘 자손의 현장감독들은 알았다(칼 바익톨) 그들이1/4
곤경속에 들음으로(칼 부정사)1/2
그들의 벽돌을 줄이지 않을 것이라는(칼 미완)1/4
그날그날의 말을1/2
: 이스라엘 자손의 현장감독들은 그들이 곤경속에 빠졌음을 매일 그들의 벽돌을 줄이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들음으로 알았다.
이들이 결국 확인한 것은 자신들이 곤경에 빠졌다는 사실뿐이다.
말하나 하지 않으나 똑같은 결과다.
오히려 바로의 계략에 빠져서 하나님의 사람, 모세와 아론을 향한 분노만을 불태우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사람인지라 그럴수밖에 없었지만, 이들의 태도는 모세도 하나님도 아닌 오직 바로에게만 겸손한 태도였다.
20 וַֽיִּפְגְּעוּ֙ אֶת־מֹשֶׁ֣ה וְאֶֽת־אַהֲרֹ֔ן
נִצָּבִ֖ים
לִקְרָאתָ֑ם
בְּצֵאתָ֖ם
מֵאֵ֥ת פַּרְעֹֽה׃
그리고 그들은 모세와 아론을 만났다(칼 바익톨)1/4
대기하고 있는(니팔 분사)1/8
그들을 만나기 위해(칼 부정사)1/2
나올 때(칼 부정사)1/4
바로에게서1/2
: 그리고 그들은 그들이 바로에게서 나올 때 그들을 만나기위해 기다리고 있던 모세와 아론을 만났다.
모세와 아론의 만나기 위해서는 순수한 만남이다.
즉 모세와 아론은 이들이 바로에게 가는 것을 걱정했다는 뜻이다.
이스라엘의 심정을 공감하고 마치 시험치러 들어가는 자녀를 걱정하듯이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음을 말한다.
그러나 그들이 만났다. 봤다는 다른 뜻으로 적에게 덤벼들다라는 뜻이 있다.
그들은 모세와 아론을 보자마자 공격했다는 뜻이다.
21 וַיֹּאמְר֣וּ אֲלֵהֶ֔ם
יֵ֧רֶא יְהוָ֛ה עֲלֵיכֶ֖ם
וְיִשְׁפֹּ֑ט
אֲשֶׁ֧ר הִבְאַשְׁתֶּ֣ם אֶת־רֵיחֵ֗נוּ בְּעֵינֵ֤י פַרְעֹה֙ וּבְעֵינֵ֣י עֲבָדָ֔יו
לָֽתֶת־חֶ֥רֶב בְּיָדָ֖ם
לְהָרְגֵֽנוּ׃
그들이 그들에게 말했다(칼 바익톨)1/4
여호와께서 너희를 보시기를(아시기를)(칼 미완)1/8
그리고 심판하시기를(칼 미완)1/2
너희가 바로의 눈과 그의 종들의 눈에 우리의 냄새가 역겹게 했다(히필 완)1/4
손에 칼을 주어(칼 부정사)1/8
우리를 죽이도록(칼 부정사)1/2
: 그들이 그들에게 말했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보시고(아시고) 심판하시기를! 왜냐면 너희가 바로의 눈과 그의 종들의 눈에 우리의 냄새가 역겹게 만들었고 그들의 손에 칼을 주어 우리를 죽이게 했기 때문이다.”
대체 누구를 원망하고 있는가!
대체 누가 누구를 심판해야 하는가!
완전히 선후가 잘못되어 있다.
이들은 그저 자신들보다 힘없어 보이는 모세와 아론에게 모든 것을 뒤집어씌우고 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찾으시고 그들의 고난을 살피셨다(보셨다)라는 말을 믿고 경배한 것이 누구인가!
하나님께 원망은 못하겠고!
바로에게는 더더욱 안되겠고!(그들은 바로의 종이니까)
그러니 당장 눈에 보이는 말씀 전하는 자, 이제 자신보다 힘없는 자를 핍박하고 있다.
보자마자 공격했다.
그들의 고난을 함께 아파하고 공감하고, 바로에게 함께 가지는 못하지만, 밖에서 노심초사하며 기다렸던, 자신의 형제를, 가족을 비난하고 공격하고 있다.
대체 심판받아야할 자가 누구인가.
애초에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아닌 왜 기록원, 애굽사람에게 세움받은 이들이 들어가야 했나
자신의 도를 넘어섰고, 세상에서 뭔가 받았기에 그 권위를 챙기다가 이제 넘어진 것아닌가?
아마 이들은 모세와 아론이 오기 전에는 잘 살았을 것이다.
마치 일제시대 일제앞잡이들처럼 훨씬 편하게 살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와서 자신들이 힘드니, 하나님의 사람을 공격하고 있다.
우리는 어떻게 하고 있는가.
설교
서론
오늘 본문은 바로의 보복으로 인해 고통받은 이스라엘이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적고 있습니다. 이들의 모습을 보며, 혼란스러울 때, 고난과 환난이 다가왔을 때 우리의 모습은 어떠했는지 살펴보며 하나님께 나아갈 수있기를 소망합니다.
본론
앞선 10절에서 14절은 바로의 명령대로 그대로 이행하고 있는 감독들과 기록원들의 모습이 나오고 있습니다. 여기서 기록원이란 쉽게 말해 현장감독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우리가 일제 강점기 때, 일본에 의해 고용받고 여러 권력을 누리던 일본 앞잡이가 있었듯이, 그 당시 이스라엘에도 애굽에 의해 세움을 받은 자들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14절에 보다시피 이들은 바로에 의해 세움을 받은 자는 아니고, 바로의 종, 신하들이 자신의 업무의 편의를 위해서 자기 임의대로 세운 자들로 보입니다.
그리고 10절에 보다시피 이들은 애굽인 감독들과 한편이 되어서 함께 백성들을 몰아세우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바로의 명령은 무리한 명령이었고, 그 결과 이스라엘 자손은 물론 그들을 몰아세우던 이스라엘 자손의 기록원들도 애굽인 감독들에 의해서 고난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니 이제 이때까지 애굽인의 편에 서있던 기록원들이 바로에게 가서 호소하기 시작합니다.
잘 생각해보면 이것은 매우 아이러니한 상황입니다. 이 기록원들이 백성의 대표입니까. 백성의 대표는 장로들입니다. 우리가 지난 번에 보았듯이 :29에는 장로의 대표성을 강조하기 위해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장로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면, 이스라엘 장로라는 표현은 성경에서 46번 쓰이지만, 이스라엘 자손의 장로라는 표현은 단 3번밖에 쓰이지 않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이스라엘의 장로들만 모세와 아론의 말,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따른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따른 것을 뜻합니다.
그런데, 이 기록원들은 아무런 권한이 없습니다. 이들이 무슨 권리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대표해서 바로에게 나아갈 수있습니까. 이들이 가진 것이라고는, 바로에 의해서 임명받은 것도 아니고, 바로의 종, 신하들의 편의에 의해 임명받은 것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이들이 바로에게 가서 말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아이러니한 것은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어떻게 했다고 성경에는 전혀 나와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분명 4:29에서 본바와 같이 이들은 이스라엘의 대표인데도, 그 역할은 전혀 하고 있지 못합니다. 이전에 바로가 갓난 남자아기를 물에 던지라고 할 때도 아무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이들이 나온 것이라곤, 자신들보다 약할 수 있는 모세와 아론이 왔을 때, 백성들을 모은 것뿐입니다. 이스라엘이 정말로 필요할 때 이들,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장로들은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애굽의 앞잡이 역할을 했던 기록원들이 나서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록원, 애굽인의 하인에 불과했던 이들은 하나님의 뜻을 얼마나 알고 하나님에 대해 얼마나 깊이 알수 있겠습니까. 기록원들이 실족할 것은 불을 보듯이 뻔한 상황이었습니다.
이들은 먼저 자신들을 당신의 종들, 바로의 종이라고 자칭입니다. 그리고 16절에 보다시피 이스라엘과 자신들은 종, 노예이며, 애굽인들은 바로의 백성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하는 호소에는 하나님에 대한 것이 전혀 없습니다.
모세와 아론,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자들조차도 바로앞에서 당당하지 못했는데, 어떻게 기록원들, 애굽인의 부하역할을 하던 자들이 당당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모습은 지극히 당연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니 바로역시도 종에게 말하듯이 함부러 말하고 있습니다.
17절에 너희가 게으르다 게으르다는 직역을 한 것인데, 이 말을 의역, 뉘앙스를 살려서 해석을 하면 이렇게 됩니다.
“너희가 게을러터졌으니, 가서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자라고 말하지.”
여기서 게으르다라는 말의 원래 뜻은 놓다, 풀리다, 축 늘어지다입니다. 바로의 뉘앙스는 너희가 할 일이 없어서 축 늘어져 있으니 별 생각이 다 드는 모양인데, 내가 긴장하도록 만들어주겠다입니다.
이와같이 바로는 이스라엘 기록원들뿐아니라, 이스라엘과 하나님까지 무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8절에 ‘이제 가서 일해라’ 라고 말을 합니다. 바로는 모세와 아론이 가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겠다라는 말을 한 이후에, 의도적으로 ‘가라’라는 말을 자신의 명령에 계속 붙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해라라는 말은 종, 노예와 같은 말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을 위해 종이 일하듯이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를 통해 바로는 ‘너희는 내 종이니 내 뜻대로 가서 내 일이나 해라’ 라고 명령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자손의 기록원들은 그제서야 이것이 자신들의 역량을 떠난 일이란 것을 깨닫습니다. 자신들이 어떤 수를 써도 바꿀 수 없는 고난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후 20절은 기록원들이 길에 서있는 모세와 아론을 만났다라고 적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기록원들이 길을 가다가 우연히 모세와 아론을 만났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20절에 나온 서있다라는 단어는 대기하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모세와 아론이 바로를 만나기 위해 간 기록원들을 기다렸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모세와 아론이 이 모든 상황을 알고 마치 시험을 치르러 가는 자식을 기다리는 부모와 같은 마음으로 노심초사하며 기다리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기록원들의 반응은 모세와 아론을 향한 원망과 울분밖에 없습니다. 20절에 보다라고 번역된 단어는 만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외, 공격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기록원들은 모세와 아론을 보자마자 울분에 차서 공격하기 시작했다는 뜻입니다.
21절에 여호와께서 너희를 살피시고 판단하시기를 원하노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어에는 이 말이 시작하자마자 나옵니다. 그리고 여기서 판단하다라는 말은 심판하다라는 말과 똑같은 단어입니다. 즉, 이들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도 모르고 모세와 아론을 향해 하나님께서 너희를 심판할거야라고 저주를 퍼붇고 있는 것입니다.
기록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듣고 부름을 받은 모세와 아론도 아닙니다. 모세와 아론의 말을 직접 듣고 백성들을 불러모았던 이스라엘 자손의 장로들도 아닙니다. 오히려 애굽과 타협하여 애굽의 앞잡이 노릇을 하던 자들이었습니다. 기록원들이 이렇게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결과입니다.
결국 바로에게 찾아가는 것은 이스라엘이 더욱 분열되고,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했을까요. 기록원들이 찾아가서는 안되었습니다. 만약 이스라엘의 장로들에게 바로앞에 찾아갈 권리가 주어지지 않았다면, 바로가 아니라 모세와 아론에게 가야 했습니다. 물론 애굽의 앞잡이노릇에 익숙해진 기록원들이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갈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있었습니다. 물론 애굽에서의 실권은 없지만 원로로서 존경받는 자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자신의 역할을 다하여, 이 기록원들을 설득했다면 어땠을까요. 그랬다면, 기록원들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모세와 아론에게 하신 하나님의 말씀, 바로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을 것과 하나님께서 바로를 치실 것이라는 말씀을 함께 나눌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분명 고통스럽기 그지 없는 시간을 보내야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되었다면, 최소한 이스라엘이 분열되지 않고 한 마음이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함께 모여 이 일을 위해 간절히 기도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고난을 살피신 하나님, 이제 우리를 위해 사자를 보내신 하나님을 믿으며 다시한번 바로가 아닌 하나님께 외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분명 현실은 변하지 않았겠지만, 이 사건은 바로에게 이리저리 휘둘리는 사건이 아니라, 바로의 종, 애굽의 종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백성으로 설 수 있는 계기가 되는 사건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보았다시피 단 한명의 이스라엘인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기록원들이 바로를 만나러 갈 때, 그들을 기다린 자는 오직 모세와 아론밖에 없었습니다. 기록원들이 모세와 아론을 그렇게 맹렬히 비난할 때, 그것이 잘못된 것임을 알려줄 이스라엘의 장로들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이스라엘 백성은 6장 9절에서 모세와 아론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함에도 듣지 않게 되었습니다. 6장 9절에는 뭐라고 되어 있습니까. ‘마음의 상함과 가혹한 노역으로 말미암아’ 라고 되어 있습니다. 만약 기존에 애굽에 머무르던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아니면 다른 어떤 자중 단 한사람이라도 기록원들의 마음을 다독이고, 이스라엘을 다시 모았다면 어땠을까요.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 바로의 마음을 걍퍅하게 하신다는 말씀을 나누었다면 어땠을까요. 최소한 마음의 상함은 없었을 것입니다.
결국 6장 12절에 보다시피 모세의 마음도 무너져서 다시 ‘입이 둔한 자’라는 표현을 내뱉고 있습니다.
적용
살다보면 고난을 당할 때도 있고, 혼란에 빠질 때도 있습니다. 개인적인 고난과 혼란일 수도 있고, 공동체 모두의 일일수도 있습니다. 그때, 우리가 해야할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의 역할을 다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주신 역할을 다하는 것입니다. 원망과 분노의 목소리를 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한 목소리로 외쳐 기도하는 것입니다. 서로의 마음을 다독이며, 각자 자신이 가진 생각과 기준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하고 높으신 뜻이 무엇인지 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 땅에서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자세이며, 정체성입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어떤 자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우리는 모두 교회에서 말씀을 듣고 하나님안에서 교제를 나누는 시간보다는 세상에 매여 있는 시간이 많습니다.
당연히 시험에 드는 자도 나오며, 여러 가지 말을 하는 사람도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자에게 직분과 자리를 맡기셨습니다. 그리고 기도하며 다독이며 헌신하게 하셨습니다. 바로 그리스도 예수의 몸된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니 우리에게 고난이 닥칠 때, 혼란이 생길 때, 우리의 역할 우리의 정체성, 하나님의 자녀됨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렇지 못하다면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나오는 기록원들처럼, 하나님의 이름으로 모세와 아론을 욕하는 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기억하며, 욥과 같이 시험 속에서 정금같이 단련되어 하나님앞에 큰 자가 되는 우리 모두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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