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새
눅15장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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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2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려 이르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오늘부터 저는 누가복음 15장을 설교하려 합니다.
15장을 시작하면서 상황을 보여주는 말씀이 나옵니다.
어떤 모습인가요.
그에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는 장면입니다.
먼저 이들은 말씀을 찾는 자들입니다.
왜일까요? 예수님은 이들의 필요를 공급했습니다. 앞선 장에서 예수님께서는 아픈 자들을 고치셨습니다. 먹이셨습니다. 그들은 자연스럽게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는 것입니다.
‘듣다’는 의미는 성경에 아주 많이 사용되는 단어이면서 하나님의 요구도 ‘들으라’는 것으로 말합니다.
듣는다는것은 듣기 위해 무언가를 해야합니다. 찾아가거나 잘 로를 때는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누군가 옆에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 내 귀에 들리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듣기 위해 가까이 한다는 것입니다. (에이미 동사) 존재한다. 함깨 있다.
‘말씀이라는 것을 듣는 행동이 이미 여기에 있다.’ 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렵게 이야기 했지만 너무나 당연한 행동 아닙니까? 이런 행동이 올바른 행동이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행동이 왜 중요할까요?
성도여러분 새벽에 말씀을 듣고 기도하고자 오셨습니다. 맞습니다. 사모하고 말씀을 듣고 오늘 하루도 주님과 함께 시작하고자하는 것입니다.
2. 옳은 행동은 그렇지 않는 이들로 하여금 드러내게 합니다.
어느 회사에 몇몇의 사람들이 하청 업체로 부터 고맙다고 일상적으로 몇 푼의 돈을 받았다고 생각해면,
여기에 그리스도인인 한 사람이 새롭게 와서 저는 그런 돈을 받지 않겠습니다. 라고 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다른 예를 들어보면,
오늘 숙제 검사를 하는 날입니다. 모두가 숙제를 해왔는데 혼자 하지 않았다면 분명 부끄러운 일입니다. 그런데 반대로 생각해 볼까? 모두 안해오고 한 사람만 숙제를 해왔습니다. 그래서 숙제를 내는 행동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안 해온 사람들의 마음에 ‘너만 안내면 돼는데’ 하지 않습니까?
오늘 숙제 검사를 하는 날입니다. 그런데 모두 안해오고 한 사람만 숙제를 해왔습니다. 그래서 숙제를 내면 당연한 행동입니다. 그런데 안 해온 사람들의 마음에 ‘너만 안내면 돼는데’ 하지 않습니까?
성경에도 모르드개를 향한 하만이 그랬습니다.(보충?) 다니엘도 그랬습니다. 대표적으로 요셉이 부인의 유혹을 뿌리 칠 때도 그렇습니다.
성경에도 모르드개를 향한 하만이 그랬습니다.(보충?)
다니엘도 그랬습니다.
그렇다면 반대의 경우는 어떨까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비록 우리의 행동이 보기에는 그렇다 보일지라도 실제로는 그런 영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14장1절에 “안식일에 예수께서 한 바리새인 지도자의 집에 떡 잡수시러 들어가시니 그들이 엿보고(면밀한 관찰) 있더라’ ()
여기 1절에 모든 세리, 죄인 이라는 이름이 아니라 특정 집단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여기 1절에 모든 세리, 죄인 이라는 이름이 아니라 특정 집단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세리는 누구인가? 당시는 로마의 압제하에 살았습니다. 로마는 세금을 걷기 위해 자국민 사람을 세워서 세금을 받게 했습니다. 이들에게 수입은 별도로 없었기에 세금보다 더 받아서 살았고 본문처럼 손님을 불러서 잔치를 베풀수 있거나 유명한 세리장 삭개오와 같은 위치에 까지 오를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로마의 앞잡이, 이교도와 왕래함으로 율법상 부정한 자로 규정된 자. 반역자 변절자입니다. 비록 그들이 나름 굶지 않고 살았다곤 하지만 선민 공동체에서 배제되고 종교적 지위를 잃었습니다.
대표적으로 제사를 드릴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일반인들과의 식사 모임도 참여할 수 없습니다.()
이들에게 별도의 이름 ‘이 땅의 백성'이라고 불렸습니다. 자신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불렸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백성이 이 땅의 백성에게 돈을 준다든지. 법정에서 증인을 세운다든지. 자녀를 가르치게 한다든지, 구제 자금을 건네주어서도 안되는 ‘강력한 금지'에 해당됩니다.
“하나님을 분노하게 만드는 이 땅의 백성이 멸망하는 것은 하나님의 기쁨'이라는 내용도 있는데 오늘 우리가 사는 곳에서도 이런 비슷한 이야기들이 주변에 있지요?
이들이 바로 ‘세리와 죄인들'입니다. 특히 로마를 위한 기생충이라 불리면서 부당한 세금을 거두니 ‘혐오의 대상 그 자체'였습니다.
성경에도 보면 ‘토색하는 자, 불의한 자, 간음하는 자, 세리, 행상인, 동물 가족으로 옷을이나 물건을 만드는 자'들입니다.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이렇게 기도하는 이유가 설명되지요.
).
).
오늘 새벽에
저와 여러분들은 면밀히 관찰했던 그래서 자신들에게 기회가 왔을 때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온 자' 이거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리(원망하여)는 자 일 것입니다.
내일은 이들이 왜 ‘원망했는가?’를
수요일에는 이어서 나오는 비유에 대해서 살펴볼 것입니다.
우리가 올바르다 하는 것은 어떤 기준에서 그런 것입니다. 그 기준을 떠나서는 올바르다 그르다 할 근거가 없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자신의 전통을 근거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세리와 죄인들은 예수님을 근거로 삼았습니다. 비록 이 땅에서는 세리와 서기관들이 이기는 것 같을 지라도 성경은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