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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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원망하다.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2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려 이르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어제 모든 세리와 죄인 그리고 바리새인과 서기관을 살폈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예수님께서는 각 그룹과 식사를 하셨고 모든 세리와 죄인은 면밀하게 살펴 그들은 기회가 왔을 때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갔지만 이런 모습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마음에 원망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는 이유입니다.
이 땅에 속한 자들과 하늘에 속한 자들은 결코 같이 식사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사도행전에서 바울이 이방인과 같은 자리에서 식사를 하다가 유대인들이 오자 그 자리를 도망치듯 떠났다가 나중에 사도 바울에게 책망을 들었던 사건 아시죠.? 비록 머리로는 이방인 그리스도인과 그렇게 하면 안된다고 생각해도 몸으로 기억하는 것입니다.
영화 기생충에 보면 송강호 가족은 자신들을 바꿔 소유 부자 사회에 기생충처럼 빌 붙게 됩니다. 그런데 부자는 ‘어디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라고 하면서 가난과 하류층의 사람을 냄새로 구분하는 아주 적절한 장치를 사용했습니다. 그가 가진 특유의 냄새, 우리도 그렇지 않습니까?
너와 내가 다르다는 생각이 우리 몸에서 나타나는 반응이 바로 원망하는 모습입니다.
칼빈 “마음에 미워하는 감정을 계속 붙들고 있다면, 앙갚음할 궁리를 하거나 어떻게든 해코지할 기회를 골똘히 찾고 있다면, 더 나아가 원수처럼 여기는 상대가 보여 준 호의에 보답해서 거기에 어울리는 온갖 배려를 하려 애쓰지 않는다면, 이 기도를 드려 봐야 하나님께 우리 죄를 용서하지 말아 달라고 간청하는 꼴이 될 따름이다.”
교제라는 것 15장에 곳곳에 숨어있는 장치입니다.
그래서 ‘음식을 같이 먹는다'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초대교회가 시작할 때 그런 일이 회복되었습니다. ‘나누고, 서로 통요하는 교제 말입니다'
이는 더 강력한 하나님의 언약에서 시작합니다.
이하에 언약을 세우는 과정이 피를 통해 보여집니다.
모세가 피를 가지고 반은 여러 양품에 담고 반은 제단에 뿌립니다. 언약서를 가져다 백성에게 낭독합니다. 그리고 약속합니다.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겠습니다. 다시 모세는 그피를 백성들에 뿌립니다. 선언합니다.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고 합니다. 이것을로 끝나지 않고 11절에 ‘그들은 하나님을 뵙고 먹고 마셨더라'합니다. 이것이 강력한 교제의 근거입니다.
그러나 바리새인과 서기관은 오해했습니다. 마태는 그래서 이들이 다시는 회복되지 못한 자들로 말합니다. 본질상 악하며 구속받을 소망이 없는 자들로 말하지만 그러나 오늘 오후에 살펴보겠습니다만 그래도 누가는 이들에게 ‘기회가 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세리와 죄인과 먹고 마시는 장면은 예수님께서 가장 좋아하시는 일입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피로 언약을 세우실 때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뵙고 먹고 마셨'던 놀라운 구속의 은혜를 즐기는 장면입니다.
다시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피로 새울 새 언약을 몸소 보여주심으로 교제하며 먹고 마시는 것을 예포하는 장면임에도 그것을 보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든 마음 속에서 들끌는 원망을 숨길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곧 첫째 아들이 가졌던 그 마음입니다.
주님이 행하신 ‘그리스도께서 죄인을 영접하고 죄인과 음식을 같이 먹는 것' 이것은 구약의 전체에서 예표되어 왔던 복음이며 새 언약입니다.
16 바리새인의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죄인 및 세리들과 함께 잡수시는 것을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세리 및 죄인들과 함께 먹는가 17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
)
는 말씀에서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원망하는 자는 교제의 테이블에 앉을 수 없습니다. 식탁은 수평적 차원의 화해가 있는 곳입니다. 제가 어렸을 적만 해도 저는 할아버지와 같은 테이블에서 식사를 했고 여자들은 다른 테이블에서 먹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죄인과 함께 그 테이블에 둘러 앉아 먹고 마셨습니다.
)
마음에 적의가 있는 사람, 불화한 사람은 같은 테이블에 앉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형제와 화해를 먼저 하는 것이 ‘예배'에 합당하다고 하신 것입니다. () 특히 주님은 당신의 살과 피를 나누시는 성만찬에서 이것이 계속해서 기념될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면서 이 ㅁ성만찬이 행해지기전에 ‘자신을 살피라고 권고'하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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