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20.금요기도회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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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성기도 마무리 반드시 헌금기도
구역연합예배x
(헌금)
본문읽기 : 오늘의 말씀은 출애굽기 6장14절에서27절 말씀입니다. 구약90페이지입니다. 교독하시겠습니다.
14 ◎그들의 조상을 따라 집의 어른은 이러하니라 이스라엘의 장자 르우벤의 아들은 하녹과 발루와 헤스론과 갈미니 이들은 르우벤의 족장이요
15 시므온의 아들들은 여무엘과 야민과 오핫과 야긴과 소할과 가나안 여인의 아들 사울이니 이들은 시므온의 가족이요
16 레위의 아들들의 이름은 그들의 족보대로 이러하니 게르손과 고핫과 므라리요 레위의 나이는 백삼십칠 세였으며
28 모세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분부하여 보내신 모든 말씀과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령하신 모든 이적을 아론에게 알리니라
17 게르손의 아들들은 그들의 가족대로 립니와 시므이요
18 고핫의 아들들은 아므람과 이스할과 헤브론과 웃시엘이요 고핫의 나이는 백삼십삼 세였으며
19 므라리의 아들들은 마흘리와 무시니 이들은 그들의 족보대로 레위의 족장이요
20 아므람은 그들의 아버지의 누이 요게벳을 아내로 맞이하였고 그는 아론과 모세를 낳았으며 아므람의 나이는 백삼십칠 세였으며
29 모세와 아론이 가서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장로를 모으고
21 이스할의 아들들은 고라와 네벡과 시그리요
22 웃시엘의 아들들은 미사엘과 엘사반과 시드리요
23 아론은 암미나답의 딸 나손의 누이 엘리세바를 아내로 맞이하였고 그는 나답과 아비후와 엘르아살과 이다말을 낳았으며
30 아론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신 모든 말씀을 전하고 그 백성 앞에서 이적을 행하니
24 고라의 아들들은 앗실과 엘가나와 아비아삽이니 이들은 고라 사람의 족장이요
25 아론의 아들 엘르아살은 부디엘의 딸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였고 그는 비느하스를 낳았으니 이들은 레위 사람의 조상을 따라 가족의 어른들이라
26 이스라엘 자손을 그들의 군대대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라 하신 여호와의 명령을 받은 자는 이 아론과 모세요
27 애굽 왕 바로에게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내보내라 말한 사람도 이 모세와 아론이었더라
31 백성이 믿으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찾으시고 그들의 고난을 살피셨다 함을 듣고 머리 숙여 경배하였더라
The Holy Bible: New Korean Revised Version. (n.d.). (electronic ed., ). South Korea.
특송 : 청년 1부 2부 특송있겠습니다.
설교
서론
서론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 길을 나선 모세는 결코 가볍지 않은 발걸음으로 나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난시간에 보았듯이, 그의 마음이 아직까지 완전히 하나님을 향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모세의 마음속에는 아직도 애굽으로 가는 것에 대한 근심과 걱정도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미 모든 것을 예비하셨습니다. 오늘은 하나님의 예비하심을 함께 살펴보는 시간 되길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의 족보입니다. 그중에서 특히 모세와 아론에게 이어지는 계보를 서술하고 있습니다. 어째서 성경은 이 상황을 해결하기전에 이렇게 뜬금없이 계보를 서술하고 있을까요. 그러나 오늘 계보는 단순히 뜬금없이 나온 것이 아닙니다. 왜냐면 계보이후 28절부터 7장 7절까지의 말씀은 앞서 5장 22절부터 6장 13절의 말씀을 다른 말로 다시 말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7장 7절까지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시며 한 말씀을 다시한번 요약한 것이기도 합니다.
본론
이 말은 같은 의미의 말을 반복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런 경우 히브리어에서 중요한 부분은 반복하는 말 중간에 끼인 부분입니다. 오늘의 본문, 모세와 아론의 계보는 이렇게 딱 중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27절은 하나님께서 아론을 부르시며 시작됩니다. 그런데 이 부르심은 모세의 경우와는 많이 다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애굽으로 가라, 바로를 만나라라고 분명한 목표와 목적지를 정해주십니다. 그러나 아론에게는 그렇게 하지 않으십니다. 어디로 가라는 말씀이 없습니다. 그저 광야로 가라는 말씀밖에 하지 않습니다. 광야로 가서 모세를 만나라는 말씀만 하십니다. 물론 하나님의 산, 호렙산에서 모세를 만나기는 하지만, 아론은 호렙산이라는 목적지를 듣지 못합니다. 그저 광야로 나가라는 말씀만 듣습니다.
40년전에 헤어진 동생을 만나러 가는 것입니다. 어디인지 확실한 목적지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이 명령은 다른 말로 하면 광야로 가서 모세를 찾아라는 말씀입니다. 광야는 쉽게 말해 사막과 같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런 끔찍한 광야에서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을 찾으러 가야합니다. 그것도 40년 전에 헤어진 동생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약속이라도 받았는데, 아론은 그런 것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계보를 보여줌으로써, 고난과 분열, 갈등속에 빠진 이스라엘에게, 그리고 세상을 살며 어떤 방식으로든, 어느 곳에서든 이런 갈등과 분열을 직면해야 하는 우리에게 말씀하고 싶으신 것입니다. 함께 오늘의 말씀속에 있는 하나님의 뜻을 알기 원합니다.
:12에서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며, 이미 아론이 모세 자신을 만나기 위해 오고있다라고 하신 것을 보면, 아론이 꽤 오랜 기간을 광야에서 헤메고 다녔다는 것 또한 알 수 있습니다. 모세가 호렙산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다시 돌아와 이드로를 만나고, 여정을 준비하고 다시 호렙산으로 돌아올 때까지 광야에 있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정확한 시일은 알수 없지만 모든 시일을 합치면 최소한 며칠에서 몇주까지 광야에서 있었다고 추정해볼 수 있습니다.
본론
평생 애굽에서 산 노인이 광야에서 그렇게 오랜 기간동안 지낸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것도 언제 자신의 동생인 모세를 만날 수 있다는 기약도 없습니다.
본문의 계보는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종살이하고 있는 약 430년간의 족보를 담고 있습니다. 이것을 알 수 있는 것은 중간중간에 나오는 인물들의 나이 때문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아론의 순종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고, 며칠, 몇주가 걸렸든지 광야에서 헤메었든지 하나님의 산에 와서 모세를 만났다고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가 겪었던 고난과, 애굽에서 나오기 위해 했던 수고역시 기록하지 않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애굽인의 종이었습니다. 종이 주인에게 자신의 볼일이 있어서 다른 곳에 갔다오겠다고 하면 쉽게 허락해줄 주인이 어디있겠습니까.
본문 16절에서 애굽 첫세대인 레위의 나이가 137세라고 나옵니다. 그리고 18절에 애굽의 둘째 세대인 고핫의 나이가 133세라고 나옵니다. 마지막으로 20절에 3세대인 아므람의 나이가 137세라고 나옵니다. 즉, 이 3명은 각세대를 대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세명의 나이를 합치면 403년이 됩니다. 태어나서 자식을 볼때까지는 적어도 20년의 기간이 필요할터이니 모세의 나이80세까지 더하면 423년이 됩니다. 딱 애굽에서 살았던 기간이죠. 그러니 이 계보는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살동안 태어난 인물들에 대한 기록이라 할 수 있습니다.
27절에 하나님의 부르심은 이런 엄청난 난관들이 기다리고 있는 부르심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론이 어떻게 했다라는 말씀은 적혀있지 않습니다. 그저 그가 갔다, 하나님의 산에서 모세를 만났다, 모세에게 입맞추었다 라고 적혀있습니다. 정말 아무말도 없이 묵묵히 하나님의 말씀을 따른 것입니다.
또한 알아야 할 것은 이 인물들은 레위지파의 지도자, 즉 족장격이라 할 수 있는 자들의 이름만을 기록한 족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처음 시작하는 14절의 마지막에 나오는 족장이라는 단어와 25절 끝네 나오는 어른이란 단어에서 알 수 있습니다. 둘다 히브리어로는 같은 단어로, 머리, 첫째, 지도자를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다 알수 없겠지만, 오늘 본문에 나온 이름들을 살펴보면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런 모습은 29절에서 31절까지 나오는 장로들과 백성들의 모습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14절과 15절에서 르우벤과 시므온의 계보를 적고 있을까요. 그 이유는 이 계보의 진정성을 증명하기 위해서입니다. 단순히 레위의 계보가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 계보이며, 그중에서 특별히 레위의 계보만 적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29절은 모세와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의 장로들을 모았다고 합니다. 여기서 특별한 표현이 있는데, 이스라엘 자손의 장로들이라는 표현입니다. 왜냐면 성경에서 이스라엘 장로라는 표현은 46번이 나오는데 비해, 이스라엘 자손의 장로라는 표현은 단 3번밖에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29절을 제외하고는 모두 에스겔8장에서 쓰였습니다. 에스겔 8장은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장로 70명이 한명도 빠짐없이 우상숭배하는 장면을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보여주시는 장면입니다. 즉, 이스라엘 자손의 장로라는 표현은 그저 장로들의 생각만으로 모인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의 입장을 대변하는 자로서 모여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첫째로 오늘의 계보는 그렇게 암울한 시대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지키셨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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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30절에 분명 모인 것은 이스라엘의 장로들인데,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라고 나오는 것입니다.
구약에 나오는 계보는 우리나라의 족보와는 다릅니다. 우리나라의 족보는 그 가문의 혈통, 내가 누구의 후손이다를 증명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구약의 계보는 그 혈통보다 중요한 것을 말합니다. 바로 하나님의 은혜가 계속해서 타고 흘렀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또한 놀라운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애굽으로 들어왔고 처음 들어왔을 때와 상황이 많이 변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동일하게 역사하심을 계보를 통해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분명 애굽에 있을 동안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정복자, 통치자의 입장에서 식민지나 정복한 민족을 가장 관리하기 편한 방법은 무엇입니까. 지도자를 바꾸는 것입니다.
지금 이스라엘은 어떤 상태입니까. 애굽의 노예로 있습니다. 노예들이 이렇게 대규모로 모인다고 하면 지배계층이 허락을 하겠습니까. 당연히 있을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만약 모인다해도 매우 까다로운 절차와 엄중한 감시속에서 모일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앗수르나 바벨론은 극단적인 이주정책을 실행했습니다. 단순히 왕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이나 다른 곳에서 잘 살고 있는 사람들을 바꾸는 것입니다. 왜냐면 당시 잘살고 있는 사람들은 중산층이 아니라 권력층이나 권력층과 연관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즉, 그들이 가진 특권을 몰수하고 알고 있는 것처럼 부랑자나 자기 땅이 없는 사람들에게 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없는 자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정복한 땅을 좀더 쉽게 다스릴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30절에 백성이 모인 자리에 애굽의 병사들과 감독들이 나와있었다는 뜻이 됩니다. 그런데, 자칫 반역과도 같은 말, 하나님께서 찾으시고 들으셨다는 말씀을 듣는다면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굽은 아무런 제지를 가하지 않습니다.
물론 이 때,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모이지 못했을 것입니다. 모일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대부분의 백성들은 40년전에 도망갔던 모세란 자가 찾아와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찾으시고 그들의 고난을 살피셨다라는 말만 들었을 것입니다.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은 그럴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애굽의 입장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자기 사람을 심어야 했습니다. 거기에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요. 자신들이 뽑은 사람을 그 지파의 지도자, 족장으로 삼는 것입니다.
쉽게 믿어지겠습니까. 특히 400년이 넘게 애굽에 있으며 그 문화에 우상에 젖어있던 이스라엘이 이름도 모르던 우리 조상의 신이 ‘여호와’이시며, 그분께서 찾으시고 고난을 살피셨다는 말을 믿고, 그 말만 의지하고 순종할 수 있겠습니까.
그 방법이 성공한다면, 애굽은 자신들이 원하는대로 이스라엘을 좌지우지 할 수 있게 됩니다. 이 방법은 현대의 국가들도 많이 쓰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특별히 미국이 중동에 친미정권을 세우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일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레위의 직계들이 계속해서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었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31절에 뭐라 하고 있습니까. 백성들이 믿었다로 시작합니다. 들었다는 그 다음에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셨다라고 하기도 전에, 그 이름만을 듣고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들이 하나님을 믿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믿는 상태에서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들었고, 그 즉시 하나님께 경배하며 예배드렸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마치 아론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의문도 말도 하지 않고 하나님의 산으로 가서 만난 것처럼 말입니다.
레위의 대를 둘째 아들인 고핫이 잇습니다. 이것은 게르손의 나이가 아닌, 고핫의 나이가 기록되어 있음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고핫의 후손들은 융성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대표성은 모세와 아론의 아버지인 아므람에게 이어집니다. 모세가 돌아왔을 때, 이스라엘의 모든 장로들이 모일 수있었던 이유가 그의 아버지 아므람이 레위지파의 어른, 족장으로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아론 역시 아버지 아므람의 직위를 이어받아 레위지파의 중대한 자리를 맡고 있었을 것입니다.
아론도 이스라엘 백성도 분명 수많은 난관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마치 없었던 것처럼, 또한 당연히 이렇게 되어야 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앞에서 하나가 되고 있습니다.
분명 애굽의 온갖 방해들이 있었겠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지키시고 보호하셨습니다. 이 계보는 하나님의 성실과 인자, 지키심이 영원함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예비하셨다는 뜻입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 그렇게 거부하고 안될거라고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미 모든 것을 준비하고 계셨다는 뜻입니다. 모세는 순종하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둘째로 이 계보는 암울한 상황 속에서 타협하고 타락한 이스라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모세만은 온전히 순종하고 있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못한 자는 모세밖에 없습니다.
계보의 어떤 부분이 이스라엘의 타락을 보여주고 있을까요. 이름입니다. 계보에 적힌 이름은 이스라엘이 어떻게 변해갔는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이름은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잘 모르지만, 이 계보에는 이질적인 이름들이 섞여있습니다.
28절에 모세는 아론에게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이적을 말합니다.
그런데, 28절에서 모세가 강조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말씀이 아니라 이적입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셨으니, 내가 기적을 행할 것이다가 강조점입니다.
그것은 므라리와 부디엘이라는 이름입니다. 이 두이름은 이스라엘, 히브리식 이름이 아닙니다. 애굽식 이름입니다. 이게 무슨 큰 문제가 될까요. 다시한번 말씀드리지만, 이 계보는 단순한 계보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지도자의 계보입니다. 쉽게 말해 레위라는 지파의 왕의 족보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모세가 아직도 하나님을 잘 모르고 있고, 하나님의 종으로서 따르고 있지 못하다는 증거입니다. 모세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의 기적을 행한다는, 자신에게 있는 능력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 족장의 이름중에 애굽식 이름이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나라의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 미국식이름이나 일본식이름을 쓰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마 난리가 날 것입니까. 계보에 애굽식 이름이 적혀있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다른 이름이 없었다는 뜻입니다. 바벨론으로 잡혀간 다니엘의 세친구는 바벨론식 이름으로 유명하지만 분명 히브리 이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므라리와 부디엘은 계보에 애굽식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히브리식 이름이 아닌 애굽식 이름만 있었다는 것은 반증합니다.
그러나 30절은 완전히 반대입니다. 30절에도 똑같이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이적이 나옵니다. 그러나 이때 강조점은 하나님의 말씀에 있습니다. 아론은 지팡이가 뱀이 되는 것이 아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찾아오셨고, 우리의 모든 고난을 보셨다는 그 말씀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해 아직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말입니다.
지도자가 애굽식 이름을 가졌다는 것은 그들이 애굽에게 얼마만큼 무릎을 굽혔는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지도자가 이런데, 백성들은 어느정도이겠습니까. 그러니 자연스럽게 그들은 애굽의 우상을 받아들이고 애굽의 풍습에 따라 살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백성들역시 이적을 보고 믿었다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이스라엘 자손을 찾으시고 그들의 고난을 살피셨다는 말씀을 믿었습니다.
말씀보다 이적이 중요한 사람은 모세밖에 없었습니다.
또한 모세의 아버지 아므람은 누구와 결혼을 합니까. 아버지의 누이 요게벳과 결혼을 합니다. 쉽게 말해 고모와 결혼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중에 :12에서는 고모와 이모와의 혼인을 금지합니다. 물론 아브람을 부르실 때, 사래와의 결혼에 대해 아무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야곱역시 자신의 친척인 리브가와 결혼하게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가나안이라는 땅에서 구별됨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이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보면 한가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누가 믿음의 사람입니까. 누가 하나님의 사람같습니까.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자신에게 주어진 능력을 강조한 모세입니까. 아니면 그 모든 고난을 묵묵히 감당하고 모세를 만나고,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에게 전하는데 집중한 아론입니까. 하나님을 계속해서 의심하고 따르지 못해서, 결국 할례까지 시행하지 않았던 모세입니까. 애굽의 삼엄한 감시와 경고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러 모였고, 그 자리에 가지도 못했지만 그저 귀에 들리는 소문만으로 하나님을 믿고 경배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입니까.
그렇다면 왜 아므람은 아버지의 누이인 요게벳과 결혼했을까요.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추측해보자면, 이 족보는 지도자의 족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레위의 직계라는 혈통이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혈통을 보존하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요. 근친혼입니다. 사촌이나 형제간에 결혼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혈통의 정통성을 강하게 주장할 수 있습니다. 실제 중세 유럽의 합스부르크왕가는 전 유럽의 왕가와 혼인관계를 맺고, 그 관계에서 나온 자들, 자신의 친척과 결혼하는 방법으로 왕가로서의 정통성을 계속해서 유지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합스부르크왕가가 결혼으로 유럽을 정복했다라고까지 평가합니다.
모든 상황은 하나님의 준비하심속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모세만 제외하고 모두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에 동참할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것이 안된 사람은 오직 모세밖에 없었습니다.
만약 아므람과 요게벳의 결합이 이런 이유였다면, 그들은 악한 방식으로 세상권력을 추구한 것이 됩니다. 애굽식 이름과 이런 결합은 하나님께서 분명 기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세상과 타협했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는 모세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 모든 자들의 마음을 돌리셨는데, 모세의 마음은 변화시키지 않으셨습니까. 모세는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의 동반자이기 때문입니다.
그저 종이 아니라 동반자가 되기 원하셨기에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끝까지 참으시고 계십니다. 주위 모든 상황들과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깨닫기를 원하셨습니다. 나는 이렇게 걱정하고 고민했는데, 하나님께서 역사하시자 거짓말같이 모든 상황이 풀림을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계보는 가장 죄악된 곳에 가장 큰 은혜를 부어주시는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모습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택하심이 무엇인지 알게 하십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택하신 우리를 위해 어떻게 준비하고 계시는지, 알게 하십니다.
우리가 생각해야할 것은 모세가 누구에서 태어났냐는 것입니다. 바로 아므람과 요게벳의 결합으로 태어났습니다. 이후 계보를 이어나가는 대제사장의 혈통 아론역시 그들의 결합에서 나왔습니다.
살다보면, 나보다 나은 사람을 만날 때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보다 훨씬 좋은 환경에서 사는 사람을 만날 때도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보혈로 거듭났다는 사실이 부끄러울 정도로 의롭고 올바르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분명 문제가 있고, 죄악이 있음에도 하나님께서는 그곳에 가장 큰 은혜를 부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에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 계보에는 이방여인도 있고 창기도 있습니다. 즉, 혈통과 세상의 기준으로 보기에 그 계보는 문제가 많은 계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것을 덮으시는 은혜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그들을 통해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모든 사람들이 아닌 우리를 택하셨습니다. 그들이 아닌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베푸십니다.
결론
아론과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의 준비됨은 분명 모세의 마음에 와닿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가 바로앞에 설 담력을 주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동일하게 역사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세상 앞에 설 담력을 주시고 있습니다.
오늘의 계보는 암울한 시대속에서 이스라엘을 지키신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지키심에도 타협하고 타락해간 이스라엘의 모습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타락의 한 가운데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나타낼 자를 보내신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를 위해 준비하시는 하나님앞에 우리 또한 준비되는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이것을 통해 이 계보는 이스라엘에게 소망이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영혼은 이미 짧아졌습니다. 변질되어 하나님의 말씀도 듣지 않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타협하고 죄악된 이스라엘에게 모세를 예비하신 하나님께서는 변하지 않고 그들을 지키시고 은혜를 베푸실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를 괴롭게 하신 날수대로와 우리가 화를 당한 연수대로 우리를 기쁘게 하소서
이렇게 변하지 않는 하나님이 있기에, 하나님의 말씀역시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본문속의 이스라엘은 그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고 있지만, 결국 그들도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고, 하나님께 영광돌릴 것이라는, 변하지 않는 소망을 말하고 있습니다.
모세의 기도
그의 미디안광야 40년
우리의 소망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무엇을 바라보며 달려가고 있습니까. 분명 하나님은 보이지 않습니다. 멀티미디어시대, 화려한 영상과 음악, 볼거리가 가득한 시대속에 하나님의 말씀은 가까이 가기 어렵고, 읽기도 힘들고, 살기는 더욱 힘든 것처럼 보입니다.
이스라엘의 인도자 40년
그러나 우리의 소망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이스라엘을 430년간 지키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생애를 동일하게 지키실 것입니다. 우리의 후손들을 동일하게 가나안땅, 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의 나이 120세 향수.
하나님을 소망하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처럼 광야에서 스러져버리는 세대가 되지 않기를 원합니다. 그를 위해 하나님의 말씀, 그 약속을 굳게 잡기 바랍니다. 언제나 우리를 위해 묵묵히 일하시는 하나님을 소망합시다. 그럴 때, 분명 우리의 삶과 자녀들의 삶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를 위해 기도할 수있는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었던 모세처럼, 세상의 빛이 되는 우리 모두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마무리기도
기도제목(간단하게)
말씀을 기억하며
담임목사님의 건강과 사역을 위해서 주여 일창하신후 기도하겠습니다.
총회를 위해
김진리 박종휘 선교사님의 가정과 사역을 위해서 주여 일창하신후 기도하겠습니다.
환우들을 위해
마지막으로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주여 일창하신후 기도하겠습니다.
마무리기도
주기도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 나이다.
- 아멘 -
광고
마지막으로 개인제목을 가지고 주여삼창후 기도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