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3.금요기도회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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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순서
통성기도 마무리 반드시 헌금기도
구역연합예배x
(헌금)
본문읽기 : 오늘의 말씀은 출애굽기 7장8절에서 13절 말씀입니다. 구약91페이지입니다. 교독하시겠습니다.
14 ◎그들의 조상을 따라 집의 어른은 이러하니라 이스라엘의 장자 르우벤의 아들은 하녹과 발루와 헤스론과 갈미니 이들은 르우벤의 족장이요
8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15 시므온의 아들들은 여무엘과 야민과 오핫과 야긴과 소할과 가나안 여인의 아들 사울이니 이들은 시므온의 가족이요
16 레위의 아들들의 이름은 그들의 족보대로 이러하니 게르손과 고핫과 므라리요 레위의 나이는 백삼십칠 세였으며
9 바로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이적을 보이라 하거든 너는 아론에게 말하기를 너의 지팡이를 들어서 바로 앞에 던지라 하라 그것이 뱀이 되리라
17 게르손의 아들들은 그들의 가족대로 립니와 시므이요
10 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 가서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행하여 아론이 바로와 그의 신하 앞에 지팡이를 던지니 뱀이 된지라
18 고핫의 아들들은 아므람과 이스할과 헤브론과 웃시엘이요 고핫의 나이는 백삼십삼 세였으며
19 므라리의 아들들은 마흘리와 무시니 이들은 그들의 족보대로 레위의 족장이요
11 바로도 현인들과 마술사들을 부르매 그 애굽 요술사들도 그들의 요술로 그와 같이 행하되
20 아므람은 그들의 아버지의 누이 요게벳을 아내로 맞이하였고 그는 아론과 모세를 낳았으며 아므람의 나이는 백삼십칠 세였으며
21 이스할의 아들들은 고라와 네벡과 시그리요
12 각 사람이 지팡이를 던지매 뱀이 되었으나 아론의 지팡이가 그들의 지팡이를 삼키니라
22 웃시엘의 아들들은 미사엘과 엘사반과 시드리요
13 그러나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여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더라
23 아론은 암미나답의 딸 나손의 누이 엘리세바를 아내로 맞이하였고 그는 나답과 아비후와 엘르아살과 이다말을 낳았으며
24 고라의 아들들은 앗실과 엘가나와 아비아삽이니 이들은 고라 사람의 족장이요
25 아론의 아들 엘르아살은 부디엘의 딸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였고 그는 비느하스를 낳았으니 이들은 레위 사람의 조상을 따라 가족의 어른들이라
26 이스라엘 자손을 그들의 군대대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라 하신 여호와의 명령을 받은 자는 이 아론과 모세요
27 애굽 왕 바로에게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내보내라 말한 사람도 이 모세와 아론이었더라
The Holy Bible: New Korean Revised Version. (n.d.). (electronic ed., ). South Korea.
특송 : 남녀회장단 특송있겠습니다.
설교
서론
본문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지난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힘주시며, 바로앞에서 할 말을 명령하셨다면, 이제는 바로앞에서 할 행동들을 명령합니다.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의 족보입니다. 그중에서 특히 모세와 아론에게 이어지는 계보를 서술하고 있습니다. 어째서 성경은 이 상황을 해결하기전에 이렇게 뜬금없이 계보를 서술하고 있을까요. 그러나 오늘 계보는 단순히 뜬금없이 나온 것이 아닙니다. 왜냐면 계보이후 28절부터 7장 7절까지의 말씀은 앞서 5장 22절부터 6장 13절의 말씀을 다른 말로 다시 말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7장 7절까지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시며 한 말씀을 다시한번 요약한 것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9절을 통해 바로가 모세와 아론에게 증거를 요구할 것임을 말씀하십니다. 여호와라는 신이 그저 이름만 있는 신이 아닌, 정말 살아계신 하나님임을 보이라는 명령, 이적을 보이라는 명령을 할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 말은 같은 의미의 말을 반복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런 경우 히브리어에서 중요한 부분은 반복하는 말 중간에 끼인 부분입니다. 오늘의 본문, 모세와 아론의 계보는 이렇게 딱 중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증거로서 하나님께서는 처음에 모세를 부르실 때, 보이셨던 기적을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에 나온대로 지팡이가 뱀으로 변하는 기적을 보여주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본문을 살피며, 하나님의 역사를 알고 기대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길 소망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계보를 보여줌으로써, 고난과 분열, 갈등속에 빠진 이스라엘에게, 그리고 세상을 살며 어떤 방식으로든, 어느 곳에서든 이런 갈등과 분열을 직면해야 하는 우리에게 말씀하고 싶으신 것입니다. 함께 오늘의 말씀속에 있는 하나님의 뜻을 알기 원합니다.
본론
본론
첫째, 하나님께서는 순종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를 시작하십니다.
본문의 계보는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종살이하고 있는 약 430년간의 족보를 담고 있습니다. 이것을 알 수 있는 것은 중간중간에 나오는 인물들의 나이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모세와 아론은 10절에서 나오듯이 하나님의 명령을 그대로 행합니다. 그리고 이 것이 하나님의 역사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나님 자신의 역사를 시작하십니까.
본문 16절에서 애굽 첫세대인 레위의 나이가 137세라고 나옵니다. 그리고 18절에 애굽의 둘째 세대인 고핫의 나이가 133세라고 나옵니다. 마지막으로 20절에 3세대인 아므람의 나이가 137세라고 나옵니다. 즉, 이 3명은 각세대를 대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세명의 나이를 합치면 403년이 됩니다. 태어나서 자식을 볼때까지는 적어도 20년의 기간이 필요할터이니 모세의 나이80세까지 더하면 423년이 됩니다. 딱 애굽에서 살았던 기간이죠. 그러니 이 계보는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살동안 태어난 인물들에 대한 기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난 시간 7장 6절에서
또한 알아야 할 것은 이 인물들은 레위지파의 지도자, 즉 족장격이라 할 수 있는 자들의 이름만을 기록한 족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처음 시작하는 14절의 마지막에 나오는 족장이라는 단어와 25절 끝네 나오는 어른이란 단어에서 알 수 있습니다. 둘다 히브리어로는 같은 단어로, 머리, 첫째, 지도자를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다 알수 없겠지만, 오늘 본문에 나온 이름들을 살펴보면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모세와 아론은 행했다. 여호와께서 명령하신대로 그대로 행했다’
그렇다면, 왜 14절과 15절에서 르우벤과 시므온의 계보를 적고 있을까요. 그 이유는 이 계보의 진정성을 증명하기 위해서입니다. 단순히 레위의 계보가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 계보이며, 그중에서 특별히 레위의 계보만 적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표현을 기억하십니까? 이와 똑같은 표현이 다시한번 10절 상반절에 등장합니다. 지난 번에는 바로 앞에 가서 하나님의 명령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한 것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첫째로 오늘의 계보는 그렇게 암울한 시대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지키셨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모세와 아론의 순종속에서 드디어 하나님께서 움직이시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구약에 나오는 계보는 우리나라의 족보와는 다릅니다. 우리나라의 족보는 그 가문의 혈통, 내가 누구의 후손이다를 증명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구약의 계보는 그 혈통보다 중요한 것을 말합니다. 바로 하나님의 은혜가 계속해서 타고 흘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온전한 순종,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는 온전한 행함이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움직이시기 시작하십니다.
애굽으로 들어왔고 처음 들어왔을 때와 상황이 많이 변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동일하게 역사하심을 계보를 통해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분명 애굽에 있을 동안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정복자, 통치자의 입장에서 식민지나 정복한 민족을 가장 관리하기 편한 방법은 무엇입니까. 지도자를 바꾸는 것입니다.
그래서 앗수르나 바벨론은 극단적인 이주정책을 실행했습니다. 단순히 왕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이나 다른 곳에서 잘 살고 있는 사람들을 바꾸는 것입니다. 왜냐면 당시 잘살고 있는 사람들은 중산층이 아니라 권력층이나 권력층과 연관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즉, 그들이 가진 특권을 몰수하고 알고 있는 것처럼 부랑자나 자기 땅이 없는 사람들에게 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없는 자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정복한 땅을 좀더 쉽게 다스릴 수 있습니다.
:71은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은 그럴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애굽의 입장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자기 사람을 심어야 했습니다. 거기에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요. 자신들이 뽑은 사람을 그 지파의 지도자, 족장으로 삼는 것입니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그 방법이 성공한다면, 애굽은 자신들이 원하는대로 이스라엘을 좌지우지 할 수 있게 됩니다. 이 방법은 현대의 국가들도 많이 쓰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특별히 미국이 중동에 친미정권을 세우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 그대로, 모세와 아론은 그 큰 고난을 통과하면서 주의 말씀이 어떤 것인지, 주님의 말씀대로 따른다는 것, 순종이 어느정도여야 하는 것인지를 배우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크든 작든 많은 부딛힘을 만나게 됩니다. 그 부딛힘에 우리는 어떻게 반응하고 있습니까. 우리의 반응이 모세와 아론의 반응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순종이 온전하여 져서 하나님의 움직이심, 그 큰 역사를 바라볼 수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레위의 직계들이 계속해서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었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둘째, 우리가 세워지는 것은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때입니다.
레위의 대를 둘째 아들인 고핫이 잇습니다. 이것은 게르손의 나이가 아닌, 고핫의 나이가 기록되어 있음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고핫의 후손들은 융성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대표성은 모세와 아론의 아버지인 아므람에게 이어집니다. 모세가 돌아왔을 때, 이스라엘의 모든 장로들이 모일 수있었던 이유가 그의 아버지 아므람이 레위지파의 어른, 족장으로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아론 역시 아버지 아므람의 직위를 이어받아 레위지파의 중대한 자리를 맡고 있었을 것입니다.
순종을 통해 역사하심을 시작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오늘 본문 속에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분명하게 드러내어 보이십니다.
분명 애굽의 온갖 방해들이 있었겠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지키시고 보호하셨습니다. 이 계보는 하나님의 성실과 인자, 지키심이 영원함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입니다.
가장 먼저 모세의 말을 듣고 아론의 움직임을 통해서 드러내십니다. 바로앞임에도 불구하고 아론이 모세의 대언자가 되어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이 계보는 암울한 상황 속에서 타협하고 타락한 이스라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한 나라의 지도자 2명이 있으면, 그 둘은 직접 대화를 합니다. 중간에 있는 통역은 말그대로 통역일뿐입니다. 하지만 모세는 바로와 직접 대화를 하지 않습니다. 아론을 통해 대화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왜 중요하냐면, 바로는 모세와 직접 대화할 자격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론은 단순한 통역이 아닙니다. 단순한 통역이었다면, 기적인 모세가 행했어야 합니다. 하지만, 기적을 행하는 주체는 누구입니까. 아론입니다. 아론이 지팡이를 취하고 아론이 던집니다. 출4에서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실 때, 모세가 지팡이를 취하고, 모세가 직접 던지게 한 것과 똑같은 양상입니다.
계보의 어떤 부분이 이스라엘의 타락을 보여주고 있을까요. 이름입니다. 계보에 적힌 이름은 이스라엘이 어떻게 변해갔는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이름은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잘 모르지만, 이 계보에는 이질적인 이름들이 섞여있습니다.
이를 통해, 모세는 바로에게 너는 나와 대화할 자격이 되지 않으니, 나의 대언자와 먼저 이야기하라라고 말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바로는 이에 대해 아무 말도 하고있지 않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론이 보여준 기적 때문에 아무말도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므라리와 부디엘이라는 이름입니다. 이 두이름은 이스라엘, 히브리식 이름이 아닙니다. 애굽식 이름입니다. 이게 무슨 큰 문제가 될까요. 다시한번 말씀드리지만, 이 계보는 단순한 계보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지도자의 계보입니다. 쉽게 말해 레위라는 지파의 왕의 족보라는 뜻입니다.
모세는 애굽의 왕자로 있다가 쫓겨났습니다. 만약, 모세가 계승자로서 확고히 자리를 지켰다면, 지금 바로의 왕좌에는 모세가 앉아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했을 때, 모세는 바로에게 신적인 존재가 되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그런데, 그 족장의 이름중에 애굽식 이름이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나라의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 미국식이름이나 일본식이름을 쓰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마 난리가 날 것입니까. 계보에 애굽식 이름이 적혀있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다른 이름이 없었다는 뜻입니다. 바벨론으로 잡혀간 다니엘의 세친구는 바벨론식 이름으로 유명하지만 분명 히브리 이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므라리와 부디엘은 계보에 애굽식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히브리식 이름이 아닌 애굽식 이름만 있었다는 것은 반증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바로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지팡이가 뱀이 되는 사건입니다.
지도자가 애굽식 이름을 가졌다는 것은 그들이 애굽에게 얼마만큼 무릎을 굽혔는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지도자가 이런데, 백성들은 어느정도이겠습니까. 그러니 자연스럽게 그들은 애굽의 우상을 받아들이고 애굽의 풍습에 따라 살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이 사건 자체를 다루기 전에 뱀이란 단어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단어는 출4에 보여줬던 뱀과는 다른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보통 바다에 사는 괴물을 가리킬 때 쓰는 단어입니다. 그래서 용, 악어등으로 번역되는 단어입니다. 14번중에 9번이 그렇게 쓰이며, 나머지 5번중에 3번이 이 본문에서 뱀으로 쓰인 경우입니다. 오늘본문만 제외하면, 거의 용이나 악어등 바다괴물로 번역되었다는 뜻입니다. 이것을 보면, 어떤 종류인지는 몰라도 호렙산에서 지팡이가 변했던 뱀과는 다른 종류의 뱀인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이 단어를 ‘악어’라고 번역하기도 합니다.
또한 모세의 아버지 아므람은 누구와 결혼을 합니까. 아버지의 누이 요게벳과 결혼을 합니다. 쉽게 말해 고모와 결혼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중에
:12에서는 고모와 이모와의 혼인을 금지합니다. 물론 아브람을 부르실 때, 사래와의 결혼에 대해 아무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야곱역시 자신의 친척인 리브가와 결혼하게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가나안이라는 땅에서 구별됨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아므람은 아버지의 누이인 요게벳과 결혼했을까요.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추측해보자면, 이 족보는 지도자의 족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레위의 직계라는 혈통이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혈통을 보존하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요. 근친혼입니다. 사촌이나 형제간에 결혼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혈통의 정통성을 강하게 주장할 수 있습니다. 실제 중세 유럽의 합스부르크왕가는 전 유럽의 왕가와 혼인관계를 맺고, 그 관계에서 나온 자들, 자신의 친척과 결혼하는 방법으로 왕가로서의 정통성을 계속해서 유지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합스부르크왕가가 결혼으로 유럽을 정복했다라고까지 평가합니다.
이 악어는 나일강에서 삽니다. 애굽사람에게 매우 친숙하지만, 그만큼 두려운 존재였을 것입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악어를 제어하거나 사냥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였기 때문입니다.
만약 아므람과 요게벳의 결합이 이런 이유였다면, 그들은 악한 방식으로 세상권력을 추구한 것이 됩니다. 애굽식 이름과 이런 결합은 하나님께서 분명 기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세상과 타협했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이 악어는 잠시동안 있는 것이 아니라, 애굽의 요술사들이 불려오고 그들또한 지팡이를 악어로 변화시킬 동안 계속해서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애굽 요술사들의 지팡이가 다 악어로 변하자, 그 모든 것을 한입에 삼켜버릴 때까지 계속 있었던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계보는 가장 죄악된 곳에 가장 큰 은혜를 부어주시는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모습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아론을 세워주시고 있습니다. 분명 바로의 마음은 여전히 강퍅해져 있지만, 이제는 지난번처럼 모세와 아론을 막대하지는 못합니다. 5장에서 바로는 모세와 아론을 쫓아내며 네 일이 많아질테니 니 일이나 제대로 해봐라라고 내쫓았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바로가 모세와 아론에게 어떻게 반응했다는 나오지 않습니다. 이것은 감히 모세와 아론에게 함부러 대하지 못했다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가 생각해야할 것은 모세가 누구에서 태어났냐는 것입니다. 바로 아므람과 요게벳의 결합으로 태어났습니다. 이후 계보를 이어나가는 대제사장의 혈통 아론역시 그들의 결합에서 나왔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어떻게 애굽의 요술사들이 이런 기적을 행할수 있었는지 의아해합니다. 하지만 이 본문에서 중요한 것은 애굽의 요술사들이 지팡이를 뱀으로 만들었다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을 정복하셨고, 그 정복한 영광을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한 모세와 아론에게 주셨다는 것입니다.
분명 문제가 있고, 죄악이 있음에도 하나님께서는 그곳에 가장 큰 은혜를 부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에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 계보에는 이방여인도 있고 창기도 있습니다. 즉, 혈통과 세상의 기준으로 보기에 그 계보는 문제가 많은 계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것을 덮으시는 은혜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그들을 통해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세우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통해 하나님의 이름만이 드러났습니까. 다윗이 하나님을 높일 때, 하나님만 높임을 받습니까. 하나님을 높이려 했던 다윗역시 함께 영광을 받았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이름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 살았던 사도 바울의 삶을 통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만이, 그 이름만이 영광을 받았습니까. 오히려 우리는 사도 바울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며, 더욱 사도 바울에 대해 잘 알고 존경하고 있지 않습니까.
결론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낮추시고 겸손한 자를 높이십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다른 말로 내 생각을 낮추고, 내가 얻고 싶은 영광, 내가 가지고 싶은 것보다 하나님을 높일 때, 하나님께서는 더욱 우리를 높이신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의 계보는 암울한 시대속에서 이스라엘을 지키신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지키심에도 타협하고 타락해간 이스라엘의 모습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타락의 한 가운데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나타낼 자를 보내신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혼자 움직이시지 않으십니다. 우리를 통해 움직이십니다. 완전하지는 않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는 자를 통해 움직이십니다. 그리고 그 역사를 통해 하나님 혼자만 영광을 받으시지 않으십니다. 순종했던 자, 하나님을 따랐던 자,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한 모든 자를 높이 드십니다. 그러니 우리가 우리손으로 쟁취할 것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을 때, 하나님께서 영광받으실 것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곳에 모였습니다. 교회에서나 가정에서나 사회에서나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달고 살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을 통해 이 계보는 이스라엘에게 소망이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영혼은 이미 짧아졌습니다. 변질되어 하나님의 말씀도 듣지 않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타협하고 죄악된 이스라엘에게 모세를 예비하신 하나님께서는 변하지 않고 그들을 지키시고 은혜를 베푸실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우리가 우리스스로를 세우기 위해 몰두하고, 우리의 권위와 편의를 위해 살아간다면, 하나님의 이름은 그만큼 낮아질 수 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변하지 않는 하나님이 있기에, 하나님의 말씀역시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본문속의 이스라엘은 그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고 있지만, 결국 그들도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고, 하나님께 영광돌릴 것이라는, 변하지 않는 소망을 말하고 있습니다.
모세의 모습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따르지 않고 타협했을 때, 그는 바로에게 수치를 당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고 말씀대로 행했을 때, 바로는 결코 그를 모욕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의 소망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무엇을 바라보며 달려가고 있습니까. 분명 하나님은 보이지 않습니다. 멀티미디어시대, 화려한 영상과 음악, 볼거리가 가득한 시대속에 하나님의 말씀은 가까이 가기 어렵고, 읽기도 힘들고, 살기는 더욱 힘든 것처럼 보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하나님의 역사를 기다리며 인내할 수 있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있었음에도, 바로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 인정받는 것과는 별개로 이스라엘의 고난은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결코 서두르지 않으십니다. 모든 것을 하나씩 하나씩 이루어나가십니다. 천지만물이 6일이라는 시간동안 차곡차곡 조성되었듯이, 하나님께서는 하나하나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나가시고 계십니다.
그러나 우리의 소망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이스라엘을 430년간 지키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생애를 동일하게 지키실 것입니다. 우리의 후손들을 동일하게 가나안땅, 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인내하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분명히 하나님의 세워주심의 역사가 우리에게 임할 것입니다. 그 소망의 때까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겸비하며 나아갈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하나님을 소망하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처럼 광야에서 스러져버리는 세대가 되지 않기를 원합니다. 그를 위해 하나님의 말씀, 그 약속을 굳게 잡기 바랍니다. 언제나 우리를 위해 묵묵히 일하시는 하나님을 소망합시다. 그럴 때, 분명 우리의 삶과 자녀들의 삶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마무리기도
기도제목(간단하게)
말씀을 기억하며
새롭게 오실 담임목사님을 위해
김진리 박종휘 선교사님의 가정과 사역을 위해서 주여 일창하신후 기도하겠습니다.
환우들을 위해
마지막으로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주여 일창하신후 기도하겠습니다.
마무리기도
주기도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 나이다.
- 아멘 -
광고
마지막으로 개인제목을 가지고 주여삼창후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