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8.수요예배설교
Notes
Transcript
예배순서
심호흡하고 천천히 말하며 진행하자
종
ㅇ다함께 묵상기도드림으로 삼일예배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ㅇ찬송가 315장 다함께 찬양드리겠습니다.
ㅇ이금보 권사님 기도드리겠습니다.
ㅇ오늘의 말씀은 출애굽기 7장 14절에서25절 말씀입니다. 구약 91페이지입니다. 교독하겠습니다.
1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바로의 마음이 완강하여 백성 보내기를 거절하는도다
23 내가 바로에게 들어가서 주의 이름으로 말한 후로부터 그가 이 백성을 더 학대하며 주께서도 주의 백성을 구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15 아침에 너는 바로에게로 가라 보라 그가 물 있는 곳으로 나오리니 너는 나일 강 가에 서서 그를 맞으며 그 뱀 되었던 지팡이를 손에 잡고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제 내가 바로에게 하는 일을 네가 보리라 강한 손으로 말미암아 바로가 그들을 보내리라 강한 손으로 말미암아 바로가 그들을 그의 땅에서 쫓아내리라
16 그에게 이르기를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왕에게 보내어 이르시되 내 백성을 보내라 그러면 그들이 광야에서 나를 섬길 것이니라 하였으나 이제까지 네가 듣지 아니하도다
2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이니라
17 여호와가 이같이 이르노니 네가 이로 말미암아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볼지어다 내가 내 손의 지팡이로 나일 강을 치면 그것이 피로 변하고
3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전능의 하나님으로 나타났으나 나의 이름을 여호와로는 그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였고
18 나일 강의 고기가 죽고 그 물에서는 악취가 나리니 애굽 사람들이 그 강 물 마시기를 싫어하리라 하라
4 가나안 땅 곧 그들이 거류하는 땅을 그들에게 주기로 그들과 언약하였더니
19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아론에게 명령하기를 네 지팡이를 잡고 네 팔을 애굽의 물들과 강들과 운하와 못과 모든 호수 위에 내밀라 하라 그것들이 피가 되리니 애굽 온 땅과 나무 그릇과 돌 그릇 안에 모두 피가 있으리라
5 이제 애굽 사람이 종으로 삼은 이스라엘 자손의 신음 소리를 내가 듣고 나의 언약을 기억하노라
20 ◎모세와 아론이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행하여 바로와 그의 신하의 목전에서 지팡이를 들어 나일 강을 치니 그 물이 다 피로 변하고
6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기를 나는 여호와라 내가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내며 그들의 노역에서 너희를 건지며 편 팔과 여러 큰 심판들로써 너희를 속량하여
21 나일 강의 고기가 죽고 그 물에서는 악취가 나니 애굽 사람들이 나일 강 물을 마시지 못하며 애굽 온 땅에는 피가 있으나
7 너희를 내 백성으로 삼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니 나는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낸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지라
22 애굽 요술사들도 자기들의 요술로 그와 같이 행하므로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여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더라
8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으로 너희를 인도하고 그 땅을 너희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라 하셨다 하라
23 바로가 돌이켜 궁으로 들어가고 그 일에 관심을 가지지도 아니하였고
9 모세가 이와 같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하나 그들이 마음의 상함과 가혹한 노역으로 말미암아 모세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더라
24 애굽 사람들은 나일 강 물을 마실 수 없으므로 나일 강 가를 두루 파서 마실 물을 구하였더라
10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5 여호와께서 나일 강을 치신 후 이레가 지나니라
11 들어가서 애굽 왕 바로에게 말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내보내게 하라
12 ◎ 모세가 여호와 앞에 아뢰어 이르되 이스라엘 자손도 내 말을 듣지 아니하였거든 바로가 어찌 들으리이까 나는 입이 둔한 자니이다
13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사 그들로 이스라엘 자손과 애굽 왕 바로에게 명령을 전하고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시니라
The Holy Bible: New Korean Revised Version. (n.d.). (electronic ed., ). South Korea.
ㅇ미리암찬양대 찬양드리겠습니다.
설교
서론
서론
지난 시간 살펴보았듯이, 바로의 계책으로 인해 이스라엘은 철저하게 분열되었습니다. 나서야 할 자들은 침묵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모세와 아론은 민족의 원수취급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급기야 기록원들은 이제 막 알게된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으로 모세와 아론을 저주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이름을 망령되이 일컸는 것이었습니다. 이 상황속에서 모세는 하나님께 나아와 기도했고,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을 살펴보며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속에서 머무를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본문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모세와 끝까지 완강한 바로를 대비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순종하는 자, 불순종하는 자를 가리지 않고 쓰십니다. 그러나 그들의 쓰임과 결말은 완전히 다릅니다. 오늘, 첫째 재앙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고 생각하고 실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본론
본론
이 상황속에서 모세는 하나님께 나아왔습니다. 그러나 모세의 기도는 믿음의 기도같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22절과 23절을 통해 한탄하고 있습니다. 22절에 두 번 나오는 어찌하여 라는 단어는 ‘왜’라는 뜻입니다. 왜라고 번역하면 너무 강하기 때문에 말을 순화시킨 것입니다.
본문 14절은 바로의 마음이 완강하여 라고 하시면서 시작을 합니다. 여기서 완강하다는 말은 앞서 나온 강퍅하다라는 말과 다른 표현으로 쓰였습니다. 강퍅하다라는 말이 단단하게 하다, 강하게 하다라는 뜻이라면, 완강하다라는 말은 무겁다라는 뜻입니다. 마치 몸이 너무 무거워서 잘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처럼 바로의 마음이 변했다는 뜻입니다. 이 무거운 이라는 단어는 성경에서 41번 쓰입니다. 그중 마음, 고집과 관련해서는 이때밖에 쓰이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서 굳이 잘 쓰지 않는 고집과 관련된 단어로 이렇게 쓴 이유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생각할 수 있습니다.
22절과 23절을 요약하면 이렇게 됩니다. “하나님, 하나님의 이름을 말했는데 왜! 상황은 악화되기만 하고 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면서 구원하지 않으십니까!” 라는 원망과 항의가 그대로 묻어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나중에 18절에 나올 것입니다.
이런 모세의 기도에 하나님께서는 즉각적으로 응답하십니다.
이렇게 마음을 무겁게 하고 있는 바로에게 하나님께서는 다시한번 모세와 아론을 보내십니다. 그리고 아침에, 바로가 나일강에 갈 때 그에게 가라라고 15절에서 명령을 하십니다. 그리고 갈 때, 꼭 뱀이 되었던 그 지팡이를 가지고 갈 것을 명령하십니다.
1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하시겠다라고 선언하시며 시작하십니다. 그리고 2절에서 8절을 통해 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지, 그리고 그 구원은 어떤 식으로 진행될 것인지, 그리하여 구원의 결과로 이스라엘이 어떻게 될 것인지 차근차근 설명해주십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다시 앞에 했던 이야기와 같은 이야기를 할 것을 명령하십니다. 그러나 마지막에 바로를 향해 말씀하십니다. ‘이제까지 네가 듣지 아니하도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정확히 말하면 불순종하는 바로를 꼬집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하신 처음이자 마지막 선언이 무엇일까요. 그것이 오늘 설교의 제목인 ‘나는 여호와라’입니다.
2절에서 ‘나는 여호와라’로 시작하며, 8절에서 ‘나는 여호와라’로 끝나게 됩니다. 하나님의 모든 언약과 약속의 성취들이 바로 하나님께서 여호와이심안에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16절에 다시 한번 히브리사람의 하나님 여호와라고 자신을 표현하시면서 하나님께서는 바로 너가 핍박하고 억지로 너를 섬기게 하는 자들의 보호자이며 섬김을 받을 존재임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섬겨야 할 대상은 바로가 아닌 하나님임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로는 자신의 뜻대로 이스라엘을 자신의 노예로 삼고 있습니다.
그리고 3절과 4절을 통해 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지, 그리고 왜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의 이름이 선포되었음에도 고통을 당하고 있는지가 나옵니다.
그리고 바로의 불법적인 점유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이제 행동으로 나서실 것이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 점거를 부수고 애굽을 정복할 것을 이르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시작이 애굽의 생명이라 할 수 있는 나일강이 피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3절에 나온 ‘전능의 하나님’이라는 이름입니다.
이것은 모세와 아론의 손으로 된 것이 아니라, 그 지팡이로 인해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17절에 하나님께서는 내가 내 손의 지팡이로 라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치시겠다는 뜻입니다. 애굽과 이스라엘이 아닌, 애굽의 살아있는 신인 바로와 진정한 하나님사이에 전쟁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은 몰랐습니다. 아니 알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다른 모든 신, 우상들의 이름이 어떻든지 그 모든 것위에 계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충분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 ‘여호와’를 그들에게 알리지 않으셨습니다.
왜 이런 전쟁이 벌어지고 있습니까. 17절 초반에 나오듯이 바로가 하나님께서 여호와이심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애굽의 여러신들이 있고 바로 자신은 신의 아들이지만, 그 모든 것은 가짜이며, 진정한 신은 오직 한분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밖에 없음을 알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그 믿음을 기쁘게 여겨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언약을 세웠습니다. 이것이 가나안땅, 그들이 지금은 나그네로, 이방인으로 살며 핍박당하는 그 땅을 그들에게 주겠다는 언약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바로가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이라고 하지 않으니, 알게 해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 언약은 그들이 믿음의 삶을 잘 살아서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 증거는 4절에 나오는 언약하였고라는 단어에서 나옵니다.
또한 이어서 피로 변한 나일강은 생명이 살수 없는 강으로 변할 것임을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당연히 물고기는 죽을 것이며 나일강물이 냄새가 심하게 나서 도저히 마실수 있는 물이 되지 못할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원래 히브리어에서 언약을 맺다, 언약을 세우다라는 말은 우리말로 직역하면 언약을 자르다라고 됩니다. 이것은 그들의 풍습에서 비롯된 말입니다. 당시 고대 중동에서는 언약, 계약을 맺을 때, 짐승을 갖다놓고 그 짐승을 반으로 자릅니다. 그리고 반으로 잘라진 짐승 사이를 언약을 맺은 당사자가 나란히 걸어갑니다. 이것은 내가 이 언약을 지키지 않으면 이 짐승처럼 반으로 잘려 죽겠다라는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히브리어로 언약을 맺다는 언약을 자르다, 언약을 쪼개다라는 말로 쓰입니다.
그 결과 18절 후반절은 애굽 사람들이 물을 마시는 일 자체가 피곤하고 힘든 일이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18절 후반절에 나온 싫어하리라라는 말의 원 뜻은 피곤해지다 힘들어하다 헤메다, 고난등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24절에서 바로 성취가 됩니다. 애굽인들은 먹을 물을 구하기 위해서 강을 따라 주변을 계속 파헤치며 식수를 구하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4절에 언약했다라고 하실 때는 이 ‘자르다’라는 말을 쓰지 않으십니다. 언약을 일으키다, 언약을 세웠다라고 하십니다.
이런 경우는 구약 전체에 13번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그리고 언약을 자르다라는 표현과는 달리 하나님께서 사람과 하신 언약에만 쓰입니다.
결국 애굽 전체를 관통하고 흐르는 나일강을 따라서 애굽인들이 모두 흩어져서 먹을 물을 찾기 위해서 땅을 파게 된다는 뜻입니다.
즉, 이것은 책임이 하나님께만 있음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크신 인애로 언약을 세워주셨고, 그 언약을 아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비록 완전하지는 않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믿음과 그 믿음의 삶을 하나님께 드렸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전에 이스라엘은 무엇을 위해서 애굽으로 흩어졌습니까. 벽돌에 쓸 지푸라기를 구하기 위해서 흩어졌습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자손들은 이 언약을 기억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이 사랑의 언약을 믿고 있습니까.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그들은 잊었습니다. 조상들과는 달리 그들은 이름도 없는 신,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모세부터 시작해 하나님의 이름을 요구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이 말씀을 통해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네가 내 백성에게 지푸라기를 구하게 했느냐? 나는 그렇다면 생명의 필수인 물을 구하게 하겠다.’ 지푸라기와 물 둘중 무엇이 무겁습니까. 지푸라기를 줍는 것과 땅을 파는 것, 둘중에 뭐가 더 힘듭니까.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도 잊어버린 언약을 기억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언약대로 너희 이스라엘 자손에게 임하셔서, 언약을 실행하여, 하나님의 큰 구원을 보게 할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14절에서 바로의 마음을 빗대어 무겁다라는 표현을 쓴 이유입니다. 바로의 마음이 무거운 만큼, 네 백성 애굽인을 더욱 무겁게 하고 힘들게 하겠다라는 뜻입니다.
그것이 6절과 7절 상반절의 내용입니다. 조상들조차 알지 못했던 그 이름, 하나님의 거룩한 성호를 두고 다시한번 언약하시는 것입니다. 너희 이스라엘 자손들을 애굽에서 빼내고, 건지고, 속량하시겠다고 언약하십니다.
이어서 19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아론에게 이야기하여 애굽의 저수지, 하천, 작은 샘과 개울까지도 지팡이를 뻗으라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모든 물들, 심지어 나무그릇이나 돌로 만든 통에 담겨있는 물까지도 모두 피로 변할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속량, 값을 지불하고 구원한다는 그 의미 그대로, 이스라엘 자손들은 노예생활을 하며 받지 못했던 정당한 값을 받을 것이고, 애굽은 이스라엘을 학대했던 정당한 값, 큰 심판을 받을 것임을 말씀하십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애굽의 생명을 치시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한번에 모든 물을 피로 바꾸지 않고 나일부터 시작해서 점차 바꾸시고 있으실까요? 물론 이것은 나일, 애굽에서 풍요의 신이라 불리는 아피스를 치시기 위함이다라고 많은 학자들이 말을 하고 동의합니다. 말그대로 애굽을 정복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말씀을 묵상하며 한가지 이유를 더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구원의 결과, 언약이 실행되어 이스라엘 자손들은 가나안 땅, 조상들에게 약속했던 그 땅이 너희의 기업, 다른 말로 너희의 소유물이 될 것이라고 선언하십니다.
출애굽기 1장에 무슨 사건이 일어납니까. 갓난 아기들이 물에 빠져 죽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나일강물에, 애굽전체를 흐르는 나일강물에 이스라엘의 갓난 남자아기들이 빠져죽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또한 그 이전에 하나님께서 하시는 이 큰 일들을 보며, 우리 하나님 여호와가 어떤 분인지 너희가 알 것이라고 선언하십니다.
430년간 애굽에서 살며 잃어버렸던 하나님, 그저 피상적으로 입으로 입으로 마치 전래동화처럼 전해지던 하나님이 아니라 지금 내게 찾아오셨고, 그 큰 손으로 구원하시는 전능의 하나님이심을 너희는 알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왜, 나일강부터 피로 만듭니까. 하나님께서는 분명 그들의 피, 그 갓난 아이의 피를 잊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아이 낳은지 며칠 되지 않은 그 아이가 물에 빠져 죽어가는 것을 보며 피눈물 흘리던 부모들의 마음을 결코 잊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것의 시작은 하나님의 크신 인애, 사랑으로 인해서였습니다. 그 사랑으로 인해 아담과 하와를 죽이지 않으셨고, 노아를 살리셨고, 이제 조상들을 통해 하신 언약들을 기억하시고 자격없는 이스라엘을 살리겠다고 선포하십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바로는 하나님의 말씀에 당연히 불순종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자들을 핍박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것을 감찰하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갚지 못했던 원수, 마음에 맺혔던 한을 풀어주신 것입니다.
정작 이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이스라엘은 그게 사랑인지도 느끼고 있지 못하는데 말입니다. 왜냐면 9절에 보다시피 그들은 모세의 말을 듣지 않는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듣지 않는 것은 단순히 모세의 말입니까. 살아계신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 하지만 그들을 사랑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핍박받는 것이 있습니까. 말씀을 따르며, 그리스도인으로 살기에 손해보고 욕먹고 불이익을 당하는 일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것을 다 보고 계십니다. 그리고 분명, 갚아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9절에서 이스라엘 자손의 영혼이 짧아졌다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보통 노하기를 더디한다라는 말을 쓸 때, 히브리어는 코가 길다라는 표현을 씁니다. 화가나면 콧김을 씩씩거리는 그림으로 표현하듯이 이스라엘 사람들은 화를 낸다라는 말을 코가 짧다로 표현하고 화를 잘 내지 않는다. 노하기를 더디한다라는 표현을 코가 길다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9절에서 영혼이 짧아졌다라는 표현은 단순히 화를 잘내게 변한 것이 아니라 가혹한 노동 이전에 이스라엘 자손의 영혼 자체가 애굽의 우상숭배와 노예생활속에서 변질되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분명 세상은 매우 강한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애굽의 요술사들은 하나님의 기적을 모방하여 그들도 물을 피로 만드는 기적을 보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자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능력이 사라진 것입니다.
그러나 잘 살펴보십시오. 그 요술사들이 정말로 능력이 있었다면, 물을 피로 만들어야 합니까? 아니면, 피가 된 나일강을 원래대로 되돌려야 합니까? 그들은 모세와 아론,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할 수 있는 있었지만, 결코 하나님의 뜻과 능력으로 이루어진 일을 뒤엎을 수는 없었다는 것입니다. 결국 세상조차 철저히 하나님의 뜻아래에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상황은 똑같이 나빠졌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불순종하고 있는 바로를 통해 오히려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을 모든 애굽인들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상황이 나빠졌을 때, 하나님께로 나아와 기도했습니다.
반대로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 나빠진 상황속에서, 자신에게 찾아와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조차 거부하였습니다.
또한 이런 일이 벌어졌는데도 바로는 23절에서 보듯이 무감각하게 자신의 궁전으로 돌아갑니다.
그렇게 변질되어버린 이스라엘 자손들은 결국 모세조차도 무너지게 만듭니다. 민족이 변질되어 있는데, 언제까지 한 사람이 그들을 이끌어갈수 있겠습니까. 성도라는 의미가 변질되었는데, 언제까지 앞에 선 자들이 올바르게 나아갈 수 있겠습니까.
농사뿐 아니라 당장 자신을 섬기는 애굽인들이 마실 물이 없는데 말입니다.
결국 모세는 12절에 말합니다.
백성들은 바로, 애굽의 왕이라고 자신에게 세금을 바치며, 공경하며, 신의 아들로서 살아있는 신인데, 그 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내 일아니라는 식으로 무관심하게 있습니다. 그리고 이 일로 인해 애굽인들은 엄청난 고통을 받습니다. 보통 사람이 물을 마시지 않고 버틸수 있는 날은 3일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25절에 보면 일주일동안 모든 물이 피로 변했습니다. 물론 말씀드렸듯이 모든 물이 한번에 피로 변하지는 않았습니다. 그 이후 하나님께서 19절에서 명령하신 대로 아론이 하천과 저수지, 냇가에 가서 똑같은 행동을 했을 것입니다. 그 시간동안, 길면 하루이틀 정도는 애굽에 마실만한 물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나는 할례받지 못한 입술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애굽백성은 엄청난 고통을 겪었다는 것입니다. 네덜란드 라이덴 박물관에 전시된 이푸워라는 애굽인이 쓴 파피루스에 당시의 일로 보이는 기록이 적혀져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12절에 입이 둔한 자라는 말은 이전에
:10에서 나온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하다와는 전혀 다른 말입니다. 그때는, 혀가 무겁다라는 말을 썻습니다. 말을 잘 못한다는 뜻밖에 없었습니다.
“재앙은 온 땅을 휩쓸고 지나갔다. 피는 모든 곳에 있다..... 강은 피로 변했다. 한 사람이 그 것을 마시려고 했다. 그러나 마실 수 없었다. 그는 목이 타들어 갔다”
그러나 이제는 할례받지 못했다라고 말을 합니다.
그리고 후반부에 또한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나는 애초부터 자격이 없는 자입니다. 라고 좌절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왕궁에 있는 사람은 지금도 인정하려하지 않는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을 향해
(
)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애굽의 살아있는 신, 바로는 무감각하고 무능력함을 보인 것입니다. 바로 불순종하는 자, 불순종하는 세상, 공동체를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는지 보이시는 것입니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동시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행하는 모세를 통해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을 보이십니다.
바로 이스라엘 백성은 바리새인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순종하는 사람이 가진 권세와 부를 부러워합니다. 그러면서 세상이 주는 사상과 불순종의 논리에 감화됩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저 모방에 불과합니다. 애굽의 요술사들이 정말로 능력이 있었다면, 물을 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피가된 나일강을 원래대로, 물로 되돌려야 합니다. 이 회복의 능력은 누구에게 있습니까. 바로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마치 그들이 물을 피로 만들고 지팡이로 뱀을 만들었다고 말을 하며 우리를 속이며 그들과 같은 논리, 같은 행동을 하자고 우리에게 속삭이고 있습니다. 잠언 1장 10-19절은 이와같이 우리를 권면합니다.
애굽이란 세상속에서 짧아진 그들의 영혼, 변질된 그들의 마음은 결국 자신들만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만나기 원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살기를 원하는 자들까지도 무너뜨린 것입니다.
10 ◎내 아들아 악한 자가 너를 꾈지라도 따르지 말라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상황속에서 다시 한번 움직이십니다.
11 그들이 네게 말하기를 우리와 함께 가자 우리가 가만히 엎드렸다가 사람의 피를 흘리자 죄 없는 자를 까닭 없이 숨어 기다리다가
이제 강권적으로 움직이십니다.
12 스올 같이 그들을 산 채로 삼키며 무덤에 내려가는 자들 같이 통으로 삼키자
13절은 뭐라 되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직접 움직이심이 나타나 있습니다. 이제 움직일 힘을 잃어버린 모세와 아론을 다시한번 움직이게 하시고, 애굽 왕 바로에게 명령하시고, 이스라엘 자손들을 애굽땅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십니다.
13 우리가 온갖 보화를 얻으며 빼앗은 것으로 우리 집을 채우리니
적용
우리는 세상속에서 여러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그리고 슬픈 사실은 세상과 교회가 구분되어 있는 것이 아니란 것입니다. 세상에서 이 모습, 교회에서는 저 모습으로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정말로 거짓말을 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이 말은 우리가 평소에 생활하던 모습 그대로 교회에 와서 예배드린다는 뜻입니다. 예배는 우리의 삶이라는 말은 바로 이뜻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목욕을 하고 정갈한 옷을 입고 예배의 자리에 앉아있어도 우리에게는 평소에 생활속에서 쌓인 마음의 때를 씻어낼 방법이 없습니다.
14 너는 우리와 함께 제비를 뽑고 우리가 함께 전대 하나만 두자 할지라도
그리고 그렇게 쌓인 마음의 때는 종래에는 마음 자체를 변질시켜 버릴 것입니다. 마치 이스라엘 자손들이 애굽에서 사는 동안 그들의 영혼이 짧아진 것처럼 말입니다.
15 내 아들아 그들과 함께 길에 다니지 말라 네 발을 금하여 그 길을 밟지 말라
그렇게 변질되어 버린 우리의 마음들의 결과는 무엇일까요. 함께 지옥으로 가는 것입니다. 올바른 길, 천국의 길을 제시하는 자도 무너뜨리는 결과를 낳을 것입니다.
16 대저 그 발은 악으로 달려가며 피를 흘리는 데 빠름이니라
이 굴레에서 벗어날 유일한 길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처음에 모세가 그렇게 하나님의 부르심을 거부했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어렵고 힘든 자리도 마다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서 어떤 분인지 알았기 때문입니다.
17 새가 보는 데서 그물을 치면 헛일이겠거늘
우리는 하나님을 많이 압니까. 세상을 많이 알고 있습니까. 살면 살수록 우리는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많이 아는 것같습니다. 세상의 재리와 이치에는 탁월에도 하나님의 뜻에는 둔하고 느린 것이 우리입니다.
18 그들이 가만히 엎드림은 자기의 피를 흘릴 뿐이요 숨어 기다림은 자기의 생명을 해할 뿐이니
그러니 우리가 하나님을 더욱 알기를 소망합니다. 모세는 원망을 해도 하나님께 와서 원망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자리로 나아오기를 소망합니다.
19 이익을 탐하는 모든 자의 길은 다 이러하여 자기의 생명을 잃게 하느니라
더 이상 세상에서, 사회에서 회사에서 이렇다 저렇다가 아니라 함께 말씀을 묵상하며,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구할 수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렇다면 누구를 따라야 합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기를 바랍니다. 모세처럼 순종하기를 바랍니다. 비록 애굽의 술사들이 지팡이로 뱀을 만들고 물을 피로 만들면서 우리를 미혹하겠지만, 그 모든 것은 진정한 해결책이 되지 못함을 다시한번 기억합시다. 그래서 말씀의 빛 안에서 진정한 세상의 빛이 되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결국 모든 해결책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러니 말씀을 묵상하며 기도속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우리가 되길 원합니다. 모세와 같이 하나님을 앎으로 회복되는 우리가 되길 원합니다. 그래서 함께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언약을 사랑으로 세우셨듯이 서로를 사랑으로 세울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길 소망합니다.
ㅇ교회소식은 주보를 참고하시기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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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2일 : 교육부서, 면려기관, 찬양대, 찬양위원회
12월 29일 : 재정부, 선교부, 건축부, 장학위원회, 재직회, 유치원 및 기타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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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이번주 목요전도는 4여전도회입니다.
ㅇ이번주 금요기도회는 연합구역예배로 드리며 특송은 1교구입니다.
찬송가 292장 다같이 찬양드리겠습니다.
주기도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 나이다.
- 아멘 -
ㅇ다함께 자리에서 일어나셔서 손잡으시고 좋으신 하나님 찬양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