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7.금요기도회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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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성기도 마무리 반드시 헌금기도
구역연합예배x
(헌금)
본문읽기 : 오늘의 말씀은 출애굽기 8장1절에서 15절 말씀입니다. 구약92페이지입니다. 교독하시겠습니다.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바로에게 가서 그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
2 네가 만일 보내기를 거절하면 내가 개구리로 너의 온 땅을 치리라
8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3 개구리가 나일 강에서 무수히 생기고 올라와서 네 궁과 네 침실과 네 침상 위와 네 신하의 집과 네 백성과 네 화덕과 네 떡 반죽 그릇에 들어갈 것이며
4 개구리가 너와 네 백성과 네 모든 신하에게 기어오르리라 하셨다 하라
9 바로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이적을 보이라 하거든 너는 아론에게 말하기를 너의 지팡이를 들어서 바로 앞에 던지라 하라 그것이 뱀이 되리라
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아론에게 명령하기를 네 지팡이를 잡고 네 팔을 강들과 운하들과 못 위에 펴서 개구리들이 애굽 땅에 올라오게 하라 할지니라
6 아론이 애굽 물들 위에 그의 손을 내밀매 개구리가 올라와서 애굽 땅에 덮이니
7 요술사들도 자기 요술대로 그와 같이 행하여 개구리가 애굽 땅에 올라오게 하였더라
10 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 가서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행하여 아론이 바로와 그의 신하 앞에 지팡이를 던지니 뱀이 된지라
8 ◎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불러 이르되 여호와께 구하여 나와 내 백성에게서 개구리를 떠나게 하라 내가 이 백성을 보내리니 그들이 여호와께 제사를 드릴 것이니라
9 모세가 바로에게 이르되 내가 왕과 왕의 신하와 왕의 백성을 위하여 이 개구리를 왕과 왕궁에서 끊어 나일 강에만 있도록 언제 간구하는 것이 좋을는지 내게 분부하소서
11 바로도 현인들과 마술사들을 부르매 그 애굽 요술사들도 그들의 요술로 그와 같이 행하되
10 그가 이르되 내일이니라 모세가 이르되 왕의 말씀대로 하여 왕에게 우리 하나님 여호와와 같은 이가 없는 줄을 알게 하리니
11 개구리가 왕과 왕궁과 왕의 신하와 왕의 백성을 떠나서 나일 강에만 있으리이다 하고
12 각 사람이 지팡이를 던지매 뱀이 되었으나 아론의 지팡이가 그들의 지팡이를 삼키니라
12 모세와 아론이 바로를 떠나 나가서 바로에게 내리신 개구리에 대하여 모세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13 여호와께서 모세의 말대로 하시니 개구리가 집과 마당과 밭에서부터 나와서 죽은지라
14 사람들이 모아 무더기로 쌓으니 땅에서 악취가 나더라
13 그러나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여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더라
15 그러나 바로가 숨을 쉴 수 있게 됨을 보았을 때에 그의 마음을 완강하게 하여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더라
The Holy Bible: New Korean Revised Version. (n.d.). (electronic ed., ). South Korea.
특송 : 2교구 특송있겠습니다.
설교
본문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지난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힘주시며, 바로앞에서 할 말을 명령하셨다면, 이제는 바로앞에서 할 행동들을 명령합니다.
서론
하나님께서는 9절을 통해 바로가 모세와 아론에게 증거를 요구할 것임을 말씀하십니다. 여호와라는 신이 그저 이름만 있는 신이 아닌, 정말 살아계신 하나님임을 보이라는 명령, 이적을 보이라는 명령을 할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나일강뿐 아니라 애굽의 모든 물을 피로 바꾸어버린 역사를 보여주신 하나님께서는 그래도 완악한 바로를 향해 두 번째 역사이자 재앙을 보여주십니다. 오늘은 하나님께서 하신 두 번째 재앙, 개구리의 재앙을 살펴보며, 그 속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살펴보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증거로서 하나님께서는 처음에 모세를 부르실 때, 보이셨던 기적을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에 나온대로 지팡이가 뱀으로 변하는 기적을 보여주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본문을 살피며, 하나님의 역사를 알고 기대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길 소망합니다.
본론
본론
첫째, 하나님께서는 순종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를 시작하십니다.
가장 먼저 우리가 살펴봐야 할 점은, 왜 하필 개구리냐는 점일 것입니다. 요한계시록도 그렇지만, 보통 이런 식의 심판에서의 공통점은 처음에는 강도가 덜하다가 뒤로 갈수록 그 형벌의 정도가 강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 계시록은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으로 그 재앙의 범위와 형벌이 강해집니다. 그런데, 애굽에 나타난 재앙은 그렇지 않습니다. 재앙의 정도로 따지면 가장 강한 재앙은 첫 번째 재앙인 피재앙과 마지막 재앙인 장자의 죽음일 것입니다. 피재앙은 아예 먹을수 있는 물 자체가 사라짐으로 직접적으로 생명을 위협했고, 장자의 죽음은 정말로 죽음이 찾아왔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모세와 아론은 10절에서 나오듯이 하나님의 명령을 그대로 행합니다. 그리고 이 것이 하나님의 역사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나님 자신의 역사를 시작하십니까.
그에 비해 개구리떼가 올라온 것은 별거 아닌 것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바입니다.
지난 시간 7장 6절에서
이 개구리 재앙의 첫 번째 뜻은 하나님의 백성을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모세와 아론은 행했다. 여호와께서 명령하신대로 그대로 행했다’
표현을 기억하십니까? 이와 똑같은 표현이 다시한번 10절 상반절에 등장합니다. 지난 번에는 바로 앞에 가서 하나님의 명령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한 것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과 개구리가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얼핏보면 이것은 아무런 공통점이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이 개구리는 몇가지 부분에서 이스라엘을 연상시킵니다.
모세와 아론의 순종속에서 드디어 하나님께서 움직이시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먼저, 개구리가 무수히 생긴다는 표현입니다. 3절에 나오는 무수히 생긴다는 표현은 :7에서 이스라엘이 생육하고 번성했다와 똑같은 단어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생육했던 것처럼, 개구리가 생육하게 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과 개구리를 비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온전한 순종,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는 온전한 행함이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움직이시기 시작하십니다.
두 번째는, 3절에 개구리가 처음 생육하는 장소입니다. 그 장소는 나일강입니다. 이것이 왜 이스라엘과 관련이 있냐면, 이스라엘이 살고 있는 고센땅이 바로 나일강의 삼각주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이스라엘 자손들이 나일강의 삼각주에서 번성한 것처럼, 개구리는 나일강에서 번성합니다. 나일강을 가득 채운 것으로 모자라 애굽땅 모든 곳에 없는 곳이 없게 됩니다.
:71은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마지막 세 번째는 이스라엘과 개구리의 공통점입니다. 개구리가 그렇게 번성하고 사람들을 귀찮게 하지만, 그들이 실제적으로 위협이 됩니까? 물론 피재앙의 여파가 남아있는 애굽의 입장에서 이것은 너무나 힘든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실제적으로 피해를 당한다고 하기는 힘듭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그렇게 번성한 것이 애굽에게 실제적으로 어떤 위협이 되었습니까? 애굽이 이스라엘을 핍박하고 노예로 부리기 시작한 것도, 갓 태어난 아기를 나일로 던지게 하는 끔찍한 짓을 하게 한 것도 그저 자신들의 생각 때문입니다. 이 당시 애굽을 다스리던 파라오들은 예전부터 애굽을 통치하던 자들이 아닙니다. 그전에 요셉때는 힉소스왕조라고 애굽의 북동쪽에서 온 셈족계통의 사람들이 애굽의 바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힉소스왕조는 같은 셈족인 이스라엘에 대해 관대한 정책을 펼쳤습니다. 하지만 이 힉소스왕조를 몰아내고 다시 왕권을 차지한 애굽인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이 피와 칼로서 애굽의 왕권을 잡았기 때문에, 전혀 그럴 생각이 없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핍박하고 있는 것입니다.
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 그대로, 모세와 아론은 그 큰 고난을 통과하면서 주의 말씀이 어떤 것인지, 주님의 말씀대로 따른다는 것, 순종이 어느정도여야 하는 것인지를 배우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크든 작든 많은 부딛힘을 만나게 됩니다. 그 부딛힘에 우리는 어떻게 반응하고 있습니까. 우리의 반응이 모세와 아론의 반응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순종이 온전하여 져서 하나님의 움직이심, 그 큰 역사를 바라볼 수있기를 소망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정말로 그런 정치적인 생각이 있었다면, 힉소스왕조의 편에 붙어서 함께 움직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것도 없이 평화롭게 살았던 이스라엘을 애굽은 그저 같은 셈족이며, 자신과 다른 이방인이라는 명목하여 학대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마치 사람이 개구리에게 돌을 던져도 아무런 반항도 못하는 것처럼 저항은커녕 그저 당하고만 있습니다. 할 수 있는 것은 호소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둘째, 우리가 세워지는 것은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개구리재앙을 통해, 너희가 그렇게 깔보고 쉽게 취급했던 개구리가 너희 애굽을 얼마나 성가시고 힘들게 하고 스트레스받게 할 것인지 보여주는 것입니다.
순종을 통해 역사하심을 시작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오늘 본문 속에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분명하게 드러내어 보이십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개구리가 없는 곳이 없습니다. 바로의 침대에도 개구리가 있습니다. 심지어 밥그릇에도 개구리가 들어가 있고, 밥을 짓는 솥에도 개구리가 들어가 있습니다. 자고 있거나 움직이고 있으면 개구리가 자연스럽게 달라붙어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생활이 제대로 될 것같습니까? 특히 개구리는 몸에 점액이 있습니다. 개구리가 붙었으면 그 밥그릇은 다시 씻어야 합니다. 씻을 물을 구하러 나가면 하천이고 시내고 강이고 개구리가 가득차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애굽을 향해 경고하시는 것입니다. 너희가 계속 이스라엘을 보내지 않는다면, 아예 이스라엘로 애굽을 완전히 채워버리시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애굽인은 생활자체가 되지 않고 애굽땅에 사는 것자체, 자신의 집에 있는 것자체가 스트레스가 되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가장 먼저 모세의 말을 듣고 아론의 움직임을 통해서 드러내십니다. 바로앞임에도 불구하고 아론이 모세의 대언자가 되어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한 나라의 지도자 2명이 있으면, 그 둘은 직접 대화를 합니다. 중간에 있는 통역은 말그대로 통역일뿐입니다. 하지만 모세는 바로와 직접 대화를 하지 않습니다. 아론을 통해 대화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왜 중요하냐면, 바로는 모세와 직접 대화할 자격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론은 단순한 통역이 아닙니다. 단순한 통역이었다면, 기적인 모세가 행했어야 합니다. 하지만, 기적을 행하는 주체는 누구입니까. 아론입니다. 아론이 지팡이를 취하고 아론이 던집니다. 출4에서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실 때, 모세가 지팡이를 취하고, 모세가 직접 던지게 한 것과 똑같은 양상입니다.
오늘 본문, 그렇게 모든 곳에 개구리가 있으면 그 땅이나 집의 실질적인 주인은 누구입니까? 개구리입니다. 고려때까지 우리나라땅이었던 대마도가 결국 일본의 해적질, 그 난장판에 밀려 떠난 후, 일본땅이 된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애굽에서 애굽인을 쫓아내어버리겠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내보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이를 통해, 모세는 바로에게 너는 나와 대화할 자격이 되지 않으니, 나의 대언자와 먼저 이야기하라라고 말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바로는 이에 대해 아무 말도 하고있지 않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론이 보여준 기적 때문에 아무말도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애굽은 왜 이스라엘을 핍박하고 있습니까. 처음에는 이스라엘에게서 힘을 뺏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반항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지금 이스라엘은 애굽의 풍요, 사치를 위해 동원되고 있습니다. 벽돌을 굽고 궁전을 만드는 일을 하기 위해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첫 번째 재앙, 피재앙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나일강이 악취가 나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바랬던 풍요는커녕, 생명조차 위험함을 보여준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재앙의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14절에 보면 그 결과 땅에서 악취가 나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 재앙으로 물이 썩었다면, 두 번째 재앙으로 땅이 썩은 것입니다. 물과 땅이 번갈아가며 썩었습니다. 그 상황에서 애굽이 찾는 풍요, 나일강의 신 하피이든, 개구리머리를 가진 헤케트이든 무슨 힘을 발휘할 수 있겠습니까.
모세는 애굽의 왕자로 있다가 쫓겨났습니다. 만약, 모세가 계승자로서 확고히 자리를 지켰다면, 지금 바로의 왕좌에는 모세가 앉아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했을 때, 모세는 바로에게 신적인 존재가 되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이 그 땅에서 사는 이유 그 자체를 없애버린 것입니다. 나일강이 주는 물과, 비옥한 땅 자체를 없애버리신 것입니다. 그를 통해 여호와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애굽에 똑똑히 보여주신 것입니다. 애굽이 믿고 있던 살아있는 신 바로는 아무것도 못합니다. 생명의 젖줄인 나일강은 썩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땅이 썩었습니다. 가는 곳마다 온통 시체썩는 냄새밖에 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치시니, 이 땅에 풍요는커녕, 죽음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이 애굽땅을 정복하셨음을 나타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바로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지팡이가 뱀이 되는 사건입니다.
이 사건 자체를 다루기 전에 뱀이란 단어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단어는 출4에 보여줬던 뱀과는 다른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보통 바다에 사는 괴물을 가리킬 때 쓰는 단어입니다. 그래서 용, 악어등으로 번역되는 단어입니다. 14번중에 9번이 그렇게 쓰이며, 나머지 5번중에 3번이 이 본문에서 뱀으로 쓰인 경우입니다. 오늘본문만 제외하면, 거의 용이나 악어등 바다괴물로 번역되었다는 뜻입니다. 이것을 보면, 어떤 종류인지는 몰라도 호렙산에서 지팡이가 변했던 뱀과는 다른 종류의 뱀인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이 단어를 ‘악어’라고 번역하기도 합니다.
이 모든 것은 효과적이었는지 드디어 바로의 태도가 조금은 바뀌게 됩니다. 첫째 재앙, 그 극심한 재앙에도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던 바로가 먼저 모세를 불러서 여호와께 간구해달라라고 요청을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바로는 왜 지금 당장 간구하라가 아니라 내일하라고 할까요? 바로라고 개구리에서 예외였습니까? 8절에 바로는 ‘나와 내 백성’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9절이나 11절이나 처음에 왕, 바로를 먼저 언급합니다. 피재앙과는 달리 바로역시 개구리와 함께 먹고 자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바로 입장에서 식사하고 있는데 개구리가 뛰어나와 밥상을 엎어버리는 꼴에서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지 않겠습니까. 자고 있는데 이마에 개구리가 찰싹 달라붙는 상황을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왜 바로는 내일하라고 할까요?
이 악어는 나일강에서 삽니다. 애굽사람에게 매우 친숙하지만, 그만큼 두려운 존재였을 것입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악어를 제어하거나 사냥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였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바로의 믿음의 근간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지팡이를 뱀으로 바꾼 것과 물을 피로 바꾼 것, 개구리가 올라오게 한 것, 거기에 공통적으로 나오는 자들이 있습니다. 애굽의 요술사들입니다. 그들이 그들의 비술로 행했습니다. 그리고 아마 그런 비술을 행하는 과정에서 성경에 나오지 않지만 여러 가지 의식들이 행해졌을 것입니다. 마치 엘리야와 바알의 선지자들의 대결과 같이 말입니다.
더욱이 이 악어는 잠시동안 있는 것이 아니라, 애굽의 요술사들이 불려오고 그들또한 지팡이를 악어로 변화시킬 동안 계속해서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애굽 요술사들의 지팡이가 다 악어로 변하자, 그 모든 것을 한입에 삼켜버릴 때까지 계속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는 아마 모세 역시 이 개구리재앙을 해결하기 위해 요술사들이 했던 것과 같은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여태까지 자신이 보고 경험한 것이 그런 것이었으니까요. 그러니 바로는 하룻밤동안 철야를 하든지 뭔가 의식을 해서 모든 준비를 마치고 시행하라는 뜻으로 내일하라고 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모든 것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아론을 세워주시고 있습니다. 분명 바로의 마음은 여전히 강퍅해져 있지만, 이제는 지난번처럼 모세와 아론을 막대하지는 못합니다. 5장에서 바로는 모세와 아론을 쫓아내며 네 일이 많아질테니 니 일이나 제대로 해봐라라고 내쫓았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바로가 모세와 아론에게 어떻게 반응했다는 나오지 않습니다. 이것은 감히 모세와 아론에게 함부러 대하지 못했다는 것을 뜻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어떻게 애굽의 요술사들이 이런 기적을 행할수 있었는지 의아해합니다. 하지만 이 본문에서 중요한 것은 애굽의 요술사들이 지팡이를 뱀으로 만들었다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을 정복하셨고, 그 정복한 영광을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한 모세와 아론에게 주셨다는 것입니다.
말그대로 하나님을 자기식으로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세우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통해 하나님의 이름만이 드러났습니까. 다윗이 하나님을 높일 때, 하나님만 높임을 받습니까. 하나님을 높이려 했던 다윗역시 함께 영광을 받았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이름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 살았던 사도 바울의 삶을 통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만이, 그 이름만이 영광을 받았습니까. 오히려 우리는 사도 바울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며, 더욱 사도 바울에 대해 잘 알고 존경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이 재앙을 물러가고, 땅에서 썩는 냄새도 사라졌을 때, 바로는 다시 굳은 마음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개구리재앙을 통해 알려주려 했던 것을 하나도 알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낮추시고 겸손한 자를 높이십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다른 말로 내 생각을 낮추고, 내가 얻고 싶은 영광, 내가 가지고 싶은 것보다 하나님을 높일 때, 하나님께서는 더욱 우리를 높이신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결론
하나님께서는 결코 혼자 움직이시지 않으십니다. 우리를 통해 움직이십니다. 완전하지는 않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는 자를 통해 움직이십니다. 그리고 그 역사를 통해 하나님 혼자만 영광을 받으시지 않으십니다. 순종했던 자, 하나님을 따랐던 자,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한 모든 자를 높이 드십니다. 그러니 우리가 우리손으로 쟁취할 것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을 때, 하나님께서 영광받으실 것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곳에 모였습니다. 교회에서나 가정에서나 사회에서나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달고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우리가 우리스스로를 세우기 위해 몰두하고, 우리의 권위와 편의를 위해 살아간다면, 하나님의 이름은 그만큼 낮아질 수 밖에 없습니다.
이 모든 사실을 우리에게 한 가지 교훈을 줍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기적으로 우리에게 역사하신다 할지라도, 우리가 준비되어 있지 않다면, 우리는 그 기적을 오용하거나 내식으로 해석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바로의 마음이 그렇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부분입니다. 애굽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것, 정확히 애굽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영광과 권능을 보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모세의 모습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따르지 않고 타협했을 때, 그는 바로에게 수치를 당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고 말씀대로 행했을 때, 바로는 결코 그를 모욕할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바로의 모습은 이스라엘에게 경종이 되지 못했습니다. 바로가 그렇게 당하고, 애굽인이 그렇게 당하는 것을 보며, 원수가 몰락함을 기뻐하는 것만이 정말로 그 때, 이스라엘백성들이 해야할 것이었을까요. 물론 사람인지라 소위 말해 고소하다, 속이 시원하다는 느낌은 들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정말로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나역시 바로처럼 굳은 마음은 없는가. 나역시 저 애굽인들처럼 내 식으로 하나님을 따르지는 않을까라고 생각해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지혜가 없었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도 광야생활을 견디지 못한 것입니다. 애굽인들은 장자만 죽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자녀만 남기고 자신들이 죽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하나님의 역사를 기다리며 인내할 수 있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있었음에도, 바로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 인정받는 것과는 별개로 이스라엘의 고난은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결코 서두르지 않으십니다. 모든 것을 하나씩 하나씩 이루어나가십니다. 천지만물이 6일이라는 시간동안 차곡차곡 조성되었듯이, 하나님께서는 하나하나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나가시고 계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앞에 선한 지혜를 가지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향한 분별력을 가지기 원합니다. 모든 상황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아는 자가 되길 원합니다. 누구를 보고 비방하거나, 모르는 척하거나 속이 시원하다하거나 그런 것이 아니라 오직 자신을 돌아봄으로,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더욱 정확히 분별할 수 있는 거룩한 지혜가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길 소망합니다.
그러나 인내하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분명히 하나님의 세워주심의 역사가 우리에게 임할 것입니다. 그 소망의 때까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겸비하며 나아갈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마무리기도
기도제목(간단하게)
말씀을 기억하며
새롭게 오실 담임목사님을 위해
김진리 박종휘 선교사님의 가정과 사역을 위해서 주여 일창하신후 기도하겠습니다.
환우들을 위해
마지막으로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주여 일창하신후 기도하겠습니다.
마무리기도
주기도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 나이다.
- 아멘 -
광고
마지막으로 개인제목을 가지고 주여삼창후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