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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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산 제물

로마서 12:1 NKRV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레위기 1:1 NKRV
여호와께서 회막에서 모세를 부르시고 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본문의 말씀은 사도 바울이 로마의 그리스도인에게 예수가 누구인지를 1장-11장까지. 아주 긴 장을 마무리하면서 12장 ‘그러므로'라고 시작을 합니다. 저는 이 본문의 모든 내용을 살펴 보려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에 보면 몇 키워드와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본문의 말씀은 사도 바울이 로마의 그리스도인에게 예수가 누구인지를 1장-11장까지. 아주 긴 장을 마무리하면서 12장 ‘그러므로'라고 시작을 합니다. 저는 이 본문의 모든 내용을 살펴 보려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에 보면 몇 키워드와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예전 영화에서 보니 백제군과 신라군이 싸우려 대치하고 있는 ‘황산벌' 전투라는 영화인데 백제군이 사용하는 말에 자주 나오는 말이 ‘거시기' 입니다. 그래서 무슨 말 끝마다 ‘거시기 해 불자'라는 사투리였습니다. 신라군의 스파이는 이 말을 듣고 돌아가 그 의미를 찾고자 여러 가지 해석을 하는 장면을 재미있게 그린 장면이 나옵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고장 ‘성주'하면 뭐가 유명한가요? 참외입니다. 그럼 이번 설 명절에 친구가 가평에 갔다고 하길래 제가 ‘그것좀 사와'라고 말하면 어떻게 알아 들을까요? 그렇습니다. 가평은 ‘잣’이 유명하니 잣을 사오라는 이야기가 되겠죠. 가나안 땅하면 하나님의 축복, 약속, 젖과 꿀이 흐른다. 이런 의미가 함께 떠오르죠.
이렇듯 지명이 포함하고 있는 의미도 있지만 말에도 의미가 포함된 표현이 많습니다. 오늘 본문이 그런 말들이 많은 본문 중 하나입니다.
성경도 그런 말들이 있습니다. 자주 나오는 단어, 그리고 표현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여기 말씀에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거룩한 산 제물' ‘영적 예배' 같은 말들입니다. 물론 우리가 보는 말이니 의미가 그렇게 ‘거시기'처럼 전혀 모르는 단어가 아니니 짐작으로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짐작으로 알기 때문에 짐작으로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 말씀에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거룩한 산 제물' ‘영적 예배' 같은 말들입니다. 물론 우리가 보는 말이니 의미가 그렇게 ‘거시기'처럼 전혀 모르는 단어가 아니니 짐작으로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짐작으로 알기 때문에 짐작으로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아이들만 두고 집을 나서면서 위험한 행동은 하지 말라고 했다면 평소 부모님이 어떤 행동이 위험한 행동인지를 자주 말한 것을 떠올리는 것이죠. 그런데 아이가 칼이나 가스불 등을 사용하면서 그런 말은 안했으니 해도 된다라고 주장하면 맞는 말일까요. 틀린 말일까요?
먼저 성경 말씀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생활에서야 실수로 웃고 넘어갈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렇지 않습니다.
-유대교는 지금도 토라(모세오경)를 가르칠 때 레위기를 먼저 가르칩니다. - (3분)
레위기 10:1 NKRV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각기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께서 명령하시지 아니하신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하였더니
레위기 10:2 NKRV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키매 그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은지라
사무엘하 6:6 NKRV
그들이 나곤의 타작 마당에 이르러서는 소들이 뛰므로 웃사가 손을 들어 하나님의 궤를 붙들었더니
사무엘하 6:7 NKRV
여호와 하나님이 웃사가 잘못함으로 말미암아 진노하사 그를 그 곳에서 치시니 그가 거기 하나님의 궤 곁에서 죽으니라
새벽시간 여러분께 공포심을 넣거나 두렵게 하려고 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아이가 불 장난을 하려고 할 때 그것을 바라보는 부모가 어디있습니까? 칼을 쓰려고 하는데 그것을 두고보는 부모가 어디 있습니까? 따끔하게 혼을 내서 그 결과로 나타나는 돌이킬 수 없는 사고를 방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이 입장에서는 당장 혼나고 칼이나 불 앞에서면 겁이나기 마련입니다. 그렇다고 아이가 커 가면서도 계속해서 불과 칼을 사용하는 방법을 가리키지 않는 부모 역시 없을 것입니다.
먼저 읽은 말씀은 지나갔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말씀이 순간 머리에 남습니까?
생각나는 말씀을 둔 채로 다음 말씀을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출애굽기 19:12 NKRV
너는 백성을 위하여 주위에 경계를 정하고 이르기를 너희는 삼가 산에 오르거나 그 경계를 침범하지 말지니 산을 침범하는 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할 것이라
경계를 세워, 19:24 ‘경계를 넘어’ 계속해서 그 위험성을 알려 주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시내산에서 멈춰선 이스라엘 백성을 두고 하나님께서는 시내산에 강림하셨습니다. 그리고 모세를 불러 올리시면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 말씀에는 ‘너는 백성을 위하여'라고 하십니다. 백성을 위해서 경계를 세워 두신 것입니다.
먼저 읽었드렸던, 나답과 아비후, 그리고 웃사의 죽음 사건은 우리를 두렵게 합니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웃사가 잘못함으로'라고, 나답과 아비후에게는 명령하시지 않은 다른 불이라고 했습니다.
웃사의 사건에도 ‘웃사가 잘못함으로'라고 했습니다.
물론 저와 여러분은 잘못을 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미는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너무 과하다, 실수할수도 있지 그렇다고 죽이셔야 하는가 하는 반문일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에서도 어떻게 시작합니까. 모든 사실을 살펴본 바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이 이유입니다. 구약의 표현으로 ‘너희를 위하여'입니다. 하나님께서 금하신 이유가 ‘너희를 위한' 다는 사실입니다. 여전히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시는데 바울은 그것이 ‘하나님은 자비하시다'는 것입니다. 그분이 보여주신 그리스도가 자비하신 결과라는 사실입니다.
먼저 살펴야 할 것은 그것입니다. 특별히 새벽기도에 오시는 성도 여러분께서 다른 분들에 비해 기도의 열심, 교회에 대한 열심이 분명 더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또한 간절함도 있습니다. 그럴수록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 을 살펴야 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여러분들이 기도의 응답을 받고, 하나님을 만나는 기쁨을 먼저 누리신다면 그 기쁨은 온 성도에게 영향을 미치고 함께 누리도록 초청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3년 동안 우리에게 많은 사람을 붙여주신 열매를 보고 계시는 것입니다. 좋은 프로그램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명령하시지 않은 다른 불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 나아가야 합니다. 여전히 칼과 불만 보면 무서워 할 것이 아니라, 칼로 파를 썰고, 불로 라면을 끓여서 함께 먹는 일로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저와 여러분의 기도도 자라나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10:15 NKRV
우리는 남의 수고를 가지고 분수 이상의 자랑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 믿음이 자랄수록 우리의 규범을 따라 너희 가운데서 더욱 풍성하여지기를 바라노라
에베소서 4:15 NKRV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2020년 새해를 출발한지 한 달을 결산합니다. 그래서 지난 시간에 성도들이 한 자리에 모여 토론도 했습니다. 2월 한달동안 ‘교회의 멤버'가 무엇인지를 목사님을 통해 배우게 될 것입니다. 그에 앞서 저와 여러분이 먼저 시작해야 합니다.
본문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거룩한 산 제물'이라고 했습니다. 개혁 한글에서는 ‘거룩한 산 제사'라고 표현 했습니다. 따라서 저와 여러분 모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하고 싶은 마음은 다 있습니다. 특히 구약의 레위기는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하는 ‘거룩한 산 제물'인지를 아주 자세하게 그 형식과 의미 그리고 성도의 삶까지 구체적으로 알려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레위기만 시작하면 성경 읽기를 포기합니다. 아는 것이 없으니 보이는 것도 없고, 고민할 것도 없다고 합니다. ‘정말 이러시면 안됩니다.’ 다양하고 쉬운 책들도 많이 있습니다. 안그러면 우리가 알고 있는 방식대로 이해합니다. 그런 사실을 앞서 살피기 전에 우리를 혼동스럽게 하는 것이 있는데 바로 신약에서 예수님 때문입니다.
신약에서는 이렇습니다. 2주전 우리는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셨던 눅15장의 비유에 숨겨진 코드는 ‘잔치'였습니다. 그리고 그 비유를 말씀하시는 장소도 세리와의 식사 때 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잃어버린 죄인 하나를 구원하시는 일이시고 그 기쁨을 누리고 계시는 장면입니다. 어떤 때는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짐으로 나았던 여인에게도 예수님은 ‘너의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하셨습니다. 세리장 삭개오에게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셨습니다. 뭇 사람들의 말처럼 죄인의 집이었고 삭개오는 소유의 절반은 가난한 자들에게 그리고 속여 빼앗은 일에는 네 갑절이나 갚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하셧습니다.
반면 신약에서는 이렇습니다. 2주전 우리는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셨던 눅15장의 비유에 숨겨진 코드는 ‘잔치'였습니다. 그리고 그 비유를 말씀하시는 장소도 세리와의 식사 때 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잃어버린 죄인 하나를 구원하시는 일이시고 그 기쁨을 누리고 계시는 장면입니다. 어떤 때는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짐으로 나았던 여인에게도 예수님은 ‘너의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하셨습니다. 세리장 삭개오에게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셨습니다. 뭇 사람들의 말처럼 죄인의 집이었고 삭개오는 소유의 절반은 가난한 자들에게 그리고 속여 빼앗은 일에는 네 갑절이나 갚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하셧습니다.
그렇다면 왜 구약은 하나 하나를 지켜야 했고 반면, 예수님께서는 마치 모든 것을 허용하듯 하셨을까요?
마태복음 5:17 NKRV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이렇게 말씀하신 예수님을 당시 사람들은 오늘 우리처럼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마치 율법을 파괴하는 파괴자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완전'하게 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이유가 왜 이 새벽에 우리에게 중요할까요? 이런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요. 그 이유를 모르는 것은 우리이지 결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는 사실을 믿습니까. 여전히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고 계십니다. 그 증거가 예수님이십니다. 그 증거가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마태복음 5:18 NKRV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2020년 맥체인 성경 읽기를 하면서 그 말씀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말씀을 올바로 깨닫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올바로 아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17 NKRV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분이 완전하게 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은 여전히 변함 없는 것이며 오히려 이것이 완전해지셨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 자신이 산 제물로 바쳐지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먼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이 무엇인지를 살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먼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이 무엇인지를 살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내용이 자세히 나온 곳이 바로 레위기 입니다.
= 여기에서 유대인 토라(모세오경) - 레위기를 먼저 가르침.
성도 여러분이 곧 읽게 될 출애굽기 19장부터 시작해서 레위기 그리고 민수기 10장까지는 한 책처럼 읽어 내려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12분 -
여기부터 나중에
본문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드리라'고 할 때 어떻게 드린다는 것일까요? 이말씀을 듣는 사람들은 앞선 말씀의 내용을 통해 그리고 그들에게 있어 드린다는 표현을 잘 알고 있지만 오랜 시간이 지난 오늘 우리는 그 의미를 다 알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것이 영적 예배라는 것입니다.
1절에는 산 제물로 드리라는 말과 너희가 드릴 이라는 말은 같은 단어로 보여도 헬라어에서는 그 의미가 다르게 사용되는 것도 눈여겨 볼 만한 것입니다.
특히 본문에는 나타나지 않는 ‘드리라'는 의미에는 ‘제사'라는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새벽 시간 여러분께 이 모든 것을 말씀드리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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