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29. [수요예배] 뒤집힌 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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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9:24–28 NKRV
24 여호와께서 하늘 곧 여호와께로부터 유황과 불을 소돔과 고모라에 비같이 내리사 25 그 성들과 온 들과 성에 거주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 난 것을 다 엎어 멸하셨더라 26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으므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 27 아브라함이 그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여호와 앞에 서 있던 곳에 이르러 28 소돔과 고모라와 그 온 지역을 향하여 눈을 들어 연기가 옹기 가마의 연기같이 치솟음을 보았더라

거꾸로 된 복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때문에 전세계가 근심이 가득하다.
이 변형된 바이러스는 박쥐로 부터 기인했는데,
중국 사람들이 박쥐를 먹는 풍습 때문에 전파가 되었다고 알려졌다.
중국사람들은 왜 박쥐를 먹었을까?
우리에게는 혐오스럽기 그지없는 그 박쥐는 왜 식품이 되었을까?
중국 발음으로
복이 오다가 푸다오 인데,
박쥐가 거꾸로 뒤집히다도 발음이 동일하게 푸다오 이다.
그래서 새해가 되면 박쥐 모양의 장신구를 선물하기도 하고
거꾸로 매달린 박쥐 문양을 심심치 않게 발견하기도 한다.
그들은 정말 단순하게-
자신들이 복을 받기 위해서 박쥐를 문양을 삼고 심지어 먹었다!
그러나 그들의 행동의 결과는
전세계를 두려워하게 할만큼 두려운 바이러스를 퍼뜨리고 있다.

여호와의 동산

:10을 보면
**
창세기 13:10 NKRV
10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10**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소돔과 고모라는 에덴과 같이 아름다운 곳이었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을 자기의 욕구와 욕망에 충족하게 사용하는 것으로 탈바꿈 시켰다.
오로지 자신의 욕구를 만족시키는 것이 아름다운 것이었다.
어떤 것이든 상관없었다.
그들의 육체는 쾌락에 맡겼고, 정의와 공정은 없었다.
타인에 대해서 배려는 없었고 오로지 자신의 만족이 최우선이었다.
소돔과 고모라 속에서 롯을 구하기 위해 온 천사들을 향해서도
이방인인 그들을 향해 자신들의 적의와 욕망을 한껏 드러냈다.
이사야 3:9 NKRV
9 그들의 안색이 불리하게 증거하며 그들의 죄를 말해 주고 숨기지 못함이 소돔과 같으니 그들의 영혼에 화가 있을진저 그들이 재앙을 자취하였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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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그들의 안색이 불리하게 증거하며 그들의 죄를 말해 주고 숨기지 못함이 소돔과 같으니 그들의 영혼에 화가 있을진저 그들이 재앙을 자취하였도다
에덴이 아름다운 곳임과 동시에 에덴에서 벌어진 일이 소돔을 말해준다.
그것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먹은 것이다.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선과 악의 판단을 하나님이 아닌 ‘내가’ 하겠다고 하는 의지였다.
소돔과 고모라의 의지는 ‘내가 하고 싶고, 내가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하는 것이었다.
애굽 땅은 어떤가?
처음 창세기를 읽는 사람들이 광야 생활을 하고 있는, 혹은 마치고 있는
정말 멀리 내다보아 예수님 오시기 전의 사람들이라고 생각할 때
애굽은 늘 풍요로운 물과 먹을 것과 대지가 있는 곳이었다.
인류 문명의 꽃이 가장 이른 시기에 피어올랐던 곳이었고
기술의 최첨단이 있었던 곳이다.
그러나 그곳은 늘 ‘억압하는 곳’이었다.
제국의 황제의 통제 아래서 끊임없이 생산해야 하는 곳이다.
제국의 심장인 황제를 빛나게 하는 것이
신민들의 할 일이었다.
소돔과 고모라, 그리고 애굽은
그들 스스로를 빛나게 만드는 곳, 자유가 만끽 되는 곳-
그러나 폭력과 억압과 오로지 자유로운 의지만 있는 곳이었다.

이 시대의 동산

이 시대의 동산
지금 이 시대의 요구는 그야말로 ‘자유’다.
내가 원하는 대로 삶을 살아 내는 것이 가장 가치있는 인생이라고 말한다.
욜로, you only live once 너의 한번 사는 인생 니가 원하는대로 살아!
2020 트렌드 코리아에서 말하는 소비 트렌드 중의 하나로
초개인화 기술이라는 것이 있다.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패턴으로 미리 파악해 선제적으로 상품을 제시하는 기술인데,
내가 관심이 있어서 본 신발 상품이 있으면 내가 신발 매장에 가서 신발을 사려고 할 때
관심 있는 상품의 세일 쿠폰이 자동으로 날아오는 방식이다.
이 기술을 가능하도록 하는 것은 사람을 0.1명까지 세분화하는 것이다.
멀티 페르소나 라는 것도 있다.
페르소나는 연극에서 쓰던 가면인데,
직장에서는 직장의 가면, 집에서는 집의 가면, 가상 현실 속에서는 가상 현실의 가면을 쓰고 사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다양하고 다차원적인 ‘내 마음대로’가 가장 이상적인 시대이다.
미국에서는 이제 ‘남성’ ‘여성’ 구분이 아니라,
젠더 유니콘이라는 걸 만들어서
5가지 종목에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얼마나 지향성을 가지는지 표현하도록 가르친다.
그래서 이 표대로만 하면 243개의 성 중의 하나를 선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제 ‘성'은 무한대에 가까운 다양성을 지니게 되었다!
지금처럼 풍요로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있었을까?
종교적인 것만 빼고 보면 이만큼 기술이 발전한 시대에
곧 자신들이 ‘신’이 될 것 같은 시대를 사는데,
무엇이 부족하겠는가?
이 시대의 동산에서 선악의 판단은 절대적 기준이 아니라
사회와 문화와 이 시대의 흐름에 있다.
이 시대의 동산은 소돔과 고모라 같다.

뒤집어진 복

뒤집어진 복
결국 소돔과 고모라는 불과 유황으로 심판을 받았다.
지금도 소돔과 고모라 지역은 죽은 바다 ‘사해’ 근방으로
유황냄새가 진동을한다.
롯의 아내는 뒤돌아보지 말라는 경고를 듣지 않았다.
이 본문 안에서는 롯의 아내가 왜 뒤돌아봤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힌트는 예수님의 말씀에서 찾을 수 있다.
누가복음 17장에 보면
누가복음 17:31–32 NKRV
31 그 날에 만일 사람이 지붕 위에 있고 그의 세간이 그 집 안에 있으면 그것을 가지러 내려가지 말 것이요 밭에 있는 자도 그와 같이 뒤로 돌이키지 말 것이니라 32 롯의 처를 기억하라
예수님은 롯의 처를 기억하라고 하시면서
마지막 날에 사람이 지붕 위에 있고 그 세간이 그 집 안에 있으면 그것을 가지러 내려가지 말고 밭에 있는 자도 그 같이 뒤로 돌이키지 말라고
경고하신다.
그러니까 롯의 아내는 호기심에 뒤돌아봤다거나
무섭고 두려운 마음에 돌아본 것이 아니라
자신을 아름답게 만들었던, 자신의 쾌락을 충족시켜주던
예전의 방식이 여전히 그립고 거기에 남겨진 것들을 그리워하며
돌아서서 소금기둥이 되었다.
이것은 마치 복을 뒤집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나님은 롯의 가족을 구하길 원하셨다.
그래서 피할 길을 주셨다.
그런데 그의 아내는 뒤를 돌아본다.
얼마나 한심하고 무지해보이는가?
그러나 곧바로 우리의 삶에 대입해보면-
우리가 얼마나 우리의 생업과 삶을 향하여서
예수 그리스도와 정반대의 방향으로 뒤돌아 볼 때가 많은가?
주님 뜻 대로 살기로 했네
뒤돌아 서지 않겠네
이세상 사람 날몰라 줘도
뒤돌아 서지 않겠네
세상 등지고 십자가 보네
뒤돌아 서지 않겠네
어떠한 시련이 와도 수많은 유혹속에도
신실하신 주님 약속만 붙들리라-
이게 그렇게 힘들다.
왜 우리는 이렇게 우리에게 주신 복을 뒤집어 버리는 것일까?
왜 우리는 이렇게 우리에게 주신 복을 뒤집어 버리는 것일까?

쩌들어 버린 의인

롯은 천사들이 산으로 도망하라는 명령을 거부하고
소알 성으로 가겠다고 했다.
그러나 롯의 요구는 본인 선택에 따라 변경되었다.
소알로 들어가기를 두려워하고 굴에 머물렀다.
그 안에서 롯의 두 딸은 사라진 사람들과 소금기둥이 된 자신의 어머니에게 교훈을 얻어야 했다.
그들의 욕구와 욕망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식이 무엇인지 구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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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9:31 NKRV
31 큰 딸이 작은 딸에게 이르되 우리 아버지는 늙으셨고 온 세상의 도리를 따라 우리의 배필 될 사람이 이 땅에는 없으니
**31** 큰 딸이 작은 딸에게 이르되 우리 아버지는 늙으셨고 온 세상의 도리를 따라 우리의 배필 될 사람이 이 땅에는 없으니
세상의 도리를 따라 배필 될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세상의 도리를 따라 배필 될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세상의 도리에 의하면 여인이 결혼하기 위해 지참금을 내야 하는데,
소돔에 모든 재물들이 사라져버렸기 때문에
(어쩌면 어머니가 그래서 뒤 돌아보았을 것이다)
결혼할 가능성이 사라졌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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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9:32 NKRV
32 우리가 우리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동침하여 우리 아버지로 말미암아 후손을 이어가자 하고
**32** 우리가 우리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동침하여 우리 아버지로 말미암아 후손을 이어가자 하고
두 딸은 철저히 소돔과 고모라의 방식을 따라 행동했다.
두 딸은 철저히 소돔과 고모라의 방식을 따라 행동했다.
어떤 질서와 책임과 의무는 중요시되지 않는다.
오로지 소돔과 고모라의 방식만 남았다.
베드로후서 2장 8절은 롯을 향하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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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후서 2:8 NKRV
8 (이는 이 의인이 그들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이 상함이라)
**8** (이는 이 의인이 그들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이 상함이라)
롯은 완전히 멘탈이 나가버렸다.
딸들이 자신의 잠자리로 들어오는지도 몰랐다.
그리고 무슨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관심이 없어보인다.
그의 심령이 완전히 상해버린 상태의 롯과
지금 우리의 상태가 비슷하지 않은가?
완전히 멘탈이 나가버려 삶이 어떻게 지나가고 있는지도 모르고
어떤게 그리스도인의 삶인지 성찰하지도 못한채 지나가고 있지는 않은가?
이 세상의 방식이 우리로 하여금 끊임없이 유혹하고
심령을 상하게 만들고 불법한 행실이 우리의 방법이 되는
시험 속에서 살게 된다.
그러나 기억할 것은
하나님은 무법한 자들의 음란한 행실로 고통당하는 것을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건지실 계획을 하셨으며, 그것을 실행하셨고, 지금도 우리에게 베풀고 계시다는 것이다.
우리는 시대에 찌들어버린 나머지 원래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잃어버렸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의 직접 임재를 통해 확인하게 될 것이다.

옹기 가마의 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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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9:27–28 NKRV
27 아브라함이 그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여호와 앞에 서 있던 곳에 이르러 28 소돔과 고모라와 그 온 지역을 향하여 눈을 들어 연기가 옹기 가마의 연기같이 치솟음을 보았더라
**27** 아브라함이 그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여호와 앞에 서 있던 곳에 이르러
**28** 소돔과 고모라와 그 온 지역을 향하여 눈을 들어 연기가 옹기 가마의 연기같이 치솟음을 보았더라
아브라함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 여호와 앞에 서 있던 곳에 다시 섰다.
아브라함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 여호와 앞에 서 있던 곳에 다시 섰다.
밤새 쏟아져내린 불과 유황으로 도시는 재가 되었고
그 온 지역을 향하여 보니
‘연기가 옹기 가마의 연기같이 치솟았다.’고 설명한다.
심판의 불은 연기로 그 참상이 보이지 않았지만
충분히 그 두려움과 규모를 짐작할 수 있었을 것이다.
소돔과 고모라는 사라졌다.
하나님의 동산 같았고, 애굽과 같은 곳이었다.
애굽과 같은 곳이었다는 말을 주목해서 보라.
하나님의 동산에서는 불 칼로 입구를 막으셨다.
애굽은 어떻게 하셨는지 기억나는가?
10가지 재앙중에 불 재앙은 없었다.
.18은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이렇게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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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19:18 NKRV
18 시내 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 그 연기가 옹기 가마 연기 같이 떠오르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며
**18** 시내 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 그 연기가 옹기 가마 연기 같이 떠오르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며
소돔과 고모라에 하나님이 임재하셨을 때 그들의 죄와 형벌은 영원히 타버림 이었다.
소돔과 고모라에 하나님이 임재하셨을 때 그들의 죄와 형벌은 영원히 타버림 이었다.
시내산에서 하나님께서 임재하셨을 때 그들은 두려웠다.
소돔과 고모라에 임했던 심판이 눈 앞에 등장했다.
그러나 그들에게 하나님은 ‘율법’과 구원을 소개하셨다.
뒤집어진 복을 다시 원래 상태로 돌이키길 원하셨다.
하나님의 임재는 심판이다. 동시에 구원으로 돌이키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간절함이다.
그렇게 뒤집어진 복을 원래 상태로 돌이키길 원하시는 하나님의 간절함이다.

찌들어버린 의인에서 돌이킨 의인으로(시험에 들게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시험에 들게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이 극명한 대비, 심판이자 구원임이
십자가에서 분명하게 보였다.
인류의 대표인 예수님은 처절한 심판을 받았다.
또한 그 십자가를 통해서 구원의 길이 열렸다.
십자가는 뒤집힘이다.
세상은 원래의 것을 자꾸 뒤집으려고 한다.
뒤집어진 복- 박쥐를 먹으려는 듯이
우리는 계속 탈이 나고 문제가 생기고 두려워한다.
하나님은 뒤집힌 그것을 다시 원래대로 뒤집으실 것이다.
그것이 때로 두려워보이고 힘겨워보일지라도
정말 뒤집어 졌을 때 우리는 살 수 있다.
나니아 연대기 새벽 출정호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유스터스라는 비열한 소년이 있다.
그는 마법에 힘에 이끌려 새벽 출정호를 타고 위대한 모험을 시작한다.
그는 섬을 배회하다가 동굴을 발견하는데 그 안에 다이아몬드, 루비, 황금이 가득했다.
이제 나는 부자야! 를 위치면서 자신을 조롱하고 푸대접한 사람들에게
복수하리라고 마음 먹는다. 그리고 그 보물 더미 위에서 신나는 꿈을 꾸며 잠이 든다.
그런데, 그곳은 용의 창고 였고 그 꿈으로 인해 유스터스는 용이 되어 버렸다.
평생 혐오스럽고 추악한 모습으로 아주 홀로 남게 된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위대한 사자 아슬란이 나타나
유스터스를 깨끗한 연못으로 데려간다.
그리고는 옷을 벗고 연못으로 뛰어들라고 말한다.
용의 가죽을 벗기기 위해 자기의 이빨과 발톱으로 비늘을 뜯어내지만
아프기만 하고 곧 그곳에서 새로운 비늘이 생겨난다.
사자가 이야기 한다.
‘내가 나서서 더 깊이 들어가야해’
유스터스는 두려웠다. 아슬란의 발톱이 무서웠다.
하지만 되돌아 가고자 하는 열망이 더 컸다.
그래서 그의 발톱에 자신을 맡겼다.
처음 찢을 때는 너무 깊이 찢어 심장이 찢어지는 줄 알았다.
가죽을 뜯어내자 난생 처음 느끼는 고통이 밀려왔다.
풀 위에는 두껍고 시꺼멓고 울퉁불퉁한 가죽이 놓여졌다.
아슬란은 유스터스를 붙잡고 물속으로 던졌다.
꽤 오래 쓰라리더니 유스터스는 원래대로 돌아왔다.
우리는 스스로 구원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ㅎ나다.
스스로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자유로워질 자유에 속박당하고 말았다.
우리는 완전히 찌들어 버렸다.
그러나 우리 주님이 우리의 두꺼운 가죽, 시대의 사고를 찢으시고
보혈로 담그실 때 - 우리는 원래대로 뒤집어질 수 있다.
그러므로 롯의 아내처럼 세상의 쾌락과 방식과 방법에
우리를 내던지지 않도록,
시험에 들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할 뿐만 아니라,
소돔과 고모라 같은 악에서 구하시는 하나님의 손이 드러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주님의 기도와 오늘 본문을 기억하며
함께 기도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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