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05 [수요예배] 인자함과 진실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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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의 종과 리브가는 인자함과 진실함으로 행동한다. 우리는 인자함과 진실함으로 살아가는가?

Notes
Transcript
창세기 24:48–49 NKRV
48 내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바른 길로 인도하사 나의 주인의 동생의 딸을 그의 아들을 위하여 택하게 하셨으므로 내가 머리를 숙여 그에게 경배하고 찬송하였나이다 49 이제 당신들이 인자함과 진실함으로 내 주인을 대접하려거든 내게 알게 해 주시고 그렇지 아니할지라도 내게 알게 해 주셔서 내가 우로든지 좌로든지 행하게 하소서

젖은 나무와 펄프

젖은 나무를 태워본 적 있는가?
아직 마르지 않은 나무나 젖은 나무는 연기만 많이 나지 불이 잘 붙지 않는다.
그리고 조금 불이 붙은가 싶다가도 금새 꺼져버린다.
소방서에서 경험했던 가장 큰 화재는 펄프화재였는데,
2박 3일을 꼬박 껐다.
펄프는 종이 원료다. 그래서 한 번 불이 붙으면 겉잡을 수 없이 크게 번진다.
처음에는 쓰레기가 탄 불이 바람을 따라 산에 옮겨 붙었는데,
작은 산불 불씨가 펄프를 쌓아놓았던 항구 야적장에 옮겨붙어서
운동장 넓이 3개 정도에 쌓여있던 펄프를 태워버렸다.
잘 타는 것과 잘 타지 않는것, 재료의 차이도 있겠지만,
우리의 삶의 차이도 있을 것 같다.
신년계획 어떻게 세웠는지?
다이어트, 성경읽기, 운동하기, 영어공부하기
여러가지 세워보지만, 잘 지키기가 쉽지 않다.
새해가 되면 항상 결심을 부추기면서 상품들이 등장한다.
핸드폰이 그렇게 잘 작동하는데도 다이어리가 날개돋힌듯 팔려나가고
운동을 위한 스마트 워치가 홍보되며
영어공부를 위한 수많은 책들과 인터넷 강의들이 광고를 쏟아낸다.
왜 이렇게 잘 알까? 항상 연초에 흔들리는 광고들이 이런 것들이다.
누군가는 엄청난 열정으로 계획들을 실현해내는 사람들도 있는데,
누군가는 계획은 계획일 뿐 실행하지 않는다.
우리 스스로가 잘 알지만, 우리의 계획은 항상 계획이다.
실천되서 완성되는 것들은 정말 적다.
그렇다면 이런 계획 자체가 무의미한가? 그렇지 않다.
계속 계획하고 조금이라도 실행하고 조금이라도 진보하면
우리의 삶에 분명 변화는 찾아온다.
우리의 아쉬운 점은 ‘열정’과 ‘열심’ 이다.
마음은 원이지만, 몸이 쉽지 않다. 뜨거움이 점점 사라져간다.
날씨만 추운게 아니라, 문화와 환경이 우리를 신앙의 뜨거운 열심,
삶의 뜨거운 열정을 불러 일으키기 보다 차갑게 식게 만드는 것만 같다.
우리의 영적 상태는 마른 나무인가, 아니면 펄프같은가?
불이 붙으면 금새 사그라들 그 무엇인가, 아니면
펄프처럼 약간의 불씨에도 타오를 마음의 준비가 있는가?

아브라함의 종

아브라함의 종
오늘 본문이 있는 24장은 이삭이 자기 아내 리브가를 어떻게 얻었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아브라함의 종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이삭의 아내를 찾아가는 길을 자세히 보고하고 있다.
이 장면들에서 아브라함의 종과 리브가 사이에서 하나님의 신실함이 어떻게 보이지 않게, 그러나 결과적으로 얼마나 분명하게 드러나는지 확인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신실하심 안에서 인간의 신실함이 어떤식으로 반응하게 되는지 보게 된다.
오늘은 하나님의 신실하심 보다 아브라함의 종과 리브가에게 조금더 집중하길 원한다.
아브라함의 종은 주인에게 받은 임무를 신실하게 수행한다.
창세기 24:12 NKRV
12 그가 이르되 우리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오늘 나에게 순조롭게 만나게 하사 내 주인 아브라함에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
**12** 그가 이르되 우리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오늘 나에게 순조롭게 만나게 하사 내 주인 아브라함에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
그리고 그의 기도대로 곧바로 리브가를 만나게 되었고, 곧바로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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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4:27 NKRV
27 이르되 나의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나이다 나의 주인에게 주의 사랑과 성실을 그치지 아니하셨사오며 여호와께서 길에서 나를 인도하사 내 주인의 동생 집에 이르게 하셨나이다 하니라
**27** 이르되 나의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나이다 나의 주인에게 주의 사랑과 성실을 그치지 아니하셨사오며 여호와께서 길에서 나를 인도하사 내 주인의 동생 집에 이르게 하셨나이다 하니라
리브가의 오라버니 라반의 집에 들어가서도 마찬가지였다.
라반이 아브라함의 종을 집으로 초대하고 음식을 베풀었지만,
천 키로미터가 넘는 먼 여행의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음식과 쉼을 즐기지 않고 곧바로 일의 목적을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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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4:33 NKRV
33 그 앞에 음식을 베푸니 그 사람이 이르되 내가 내 일을 진술하기 전에는 먹지 아니하겠나이다 라반이 이르되 말하소서
**33** 그 앞에 음식을 베푸니 그 사람이 이르되 내가 내 일을 진술하기 전에는 먹지 아니하겠나이다 라반이 이르되 말하소서
긴 이야기의 서술 끝에 라반에게 결단을 촉구한다.
긴 이야기의 서술 끝에 라반에게 결단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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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4:49 NKRV
49 이제 당신들이 인자함과 진실함으로 내 주인을 대접하려거든 내게 알게 해 주시고 그렇지 아니할지라도 내게 알게 해 주셔서 내가 우로든지 좌로든지 행하게 하소서
**49** 이제 당신들이 인자함과 진실함으로 내 주인을 대접하려거든 내게 알게 해 주시고 그렇지 아니할지라도 내게 알게 해 주셔서 내가 우로든지 좌로든지 행하게 하소서
이 결단의 촉구에 라반과 브두엘은 할말이 없었다. 하나님의 일하심이 너무나 분명해 보였다. 이 결혼을 허락한다는 이야기를 하자마자 아브라함의 종은 또 다시 듣자마자 땅에 엎드려 여호와께 절하고 지참금을 준다. (52-53절)
하지만 리브가의 오라버니 라반과 어머니는 절대 빨리 보내고 싶지가 않다.
창세기 24:55 NKRV
55 리브가의 오라버니와 그의 어머니가 이르되 이 아이로 하여금 며칠 또는 열흘을 우리와 함께 머물게 하라 그 후에 그가 갈 것이니라
창 2
55절 며칠, 또는 열흘을 함께 머물게 한다음에 보내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종은 단호하다.
창세기 24:56 NKRV
56 그 사람이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만류하지 마소서 여호와께서 내게 형통한 길을 주셨으니 나를 보내어 내 주인에게로 돌아가게 하소서
56절 만류하지 마소서 내게 형통한 길을 주셨으니 나를 보내어 주인에게로 돌아가게 하소서
여기에서 선택을 리브가에게로 돌린다.
리브가는 어떻게 선택할 것인가?

리브가

여기에서 리브가의 행적을 다시 살펴보자.
리브가는 우물로 내려가서 물을 그 물동이에 채워가지고 올라오고 있다.
기본적으로 물동이는 20kg정도 되는 엄청난 무게다.
그리고 우물 자체가 엄청난 깊이로 파였기 때문에 한 번 뜨는 것이 절대 쉽지 않다.
그런데 처음보는 아브라함의 종이 물을 ‘조금’ 마시게 해달라고 요청하자마자
18절 ‘급히 그 물동이를 손에 내려 마시게’ 한다.
그리고 낙타를 위해서도 물을 길어 ‘배불리’ 마시게 하겠다고 한다.
20절 ‘급히 물동이의 물을 구유에 붓고’
다시 길으려고 우물로 ‘달려가서’
모든 낙타에게 물을 준다.
그리고 머물 집이 있다고 소개하자
아브라함의 종이 ‘하나님의 사랑과 성실’을 그치지 않으심을 찬양하자
28절 소녀가 ‘달려가서’ 이 일을 어머니 집에 알린다.
오라버니와 어머니가 며칠 또는 열흘이라도 집에 있기를 청하고
오늘 본문에서 선택이 리브가에게 달려있을 때
58절에서 리브가는 단호하다. ‘가겠나이다’
창세기 24:58 NKRV
58 리브가를 불러 그에게 이르되 네가 이 사람과 함께 가려느냐 그가 대답하되 가겠나이다
라반과 어머니의 잠깐의 시간 요청에도
리브가의 단호함이 하나님의 계획을 멈출 수 없다는 듯이
더욱 강렬하게 이삭과의 만남으로 이어지고 있다.

인자와 진실함 -

오늘 두 사람의 급속한 표현들을 정리하면
오늘 읽은 본문의 두 단어로 정리할 수 있다.
‘인자와 진실함’
아브라함의 종은 그 주인 아브라함에게 인자와 진실로 반응했다.
리브가는 처음 보는 인물에게 인자와 진실함을 내비쳤다.
그들은 빨랐고, 흔들리지 않았으며, 하나님은 그 속에 일하셨다.
그러나 라반과 그의 어머니는 달랐다.
며칠, 아니면 열흘이라도 요구했다.
이것은 어쩌면 당연한 반응일지 모른다.
먼 길을 가야하고, 이 사람을 믿을 수 있는지 알 수 없다.
오로지 믿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저 아브라함의 종의 단호함과 단단함에서 느낄 수 있다는 점이고, 그것을 리브가가 느끼고 있었으며 그에 적극적으로 반응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쉽고 못내 아쉽다.
유혹이다. 며칠, 아주 잠깐이라도- 이것이 우리를 주저앉게 만드는 것들이다.
타협하게 만들고 유연하게 만든다는 명목 아래서 우리를 차갑게 식게 만드는 것들이다.
인자와 진실은 그런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신속하며 분명하고 흔들림이 없고 생동감이 넘친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붙잡아야 할 내용이다.
이것이 우리가 가져야할 불붙는 신앙의 비밀이다.
인자와 진실 - 헤세드와 에메트는 ‘하나님의 형상’ 이다.
****
출애굽기 34:6 NKRV
6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선포하시되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
**6**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선포하시되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
하나님은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으시다.
환란중에 고통과 아픔 속에서 기도하는 다윗은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하나님의 인자와 진실하신 성품을 붙잡는다.
****
**15** 그러나 주여 주는 긍휼히 여기시며 은혜를 베푸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자와 진실이 풍성하신 하나님이시오니
**16** 내게로 돌이키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주의 종에게 힘을 주시고 주의 여종의 아들을 구원하소서
하나님을 따라 사는 인생을 가르치며 잠언의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
**3** 인자와 진리가 네게서 떠나지 말게 하고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판에 새기라
왕은 하나님의 성품을 따라서 인자와 진리로 견고해질 것이라고 가르친다.
****
**28** 왕은 인자와 진리로 스스로 보호하고 그의 왕위도 인자함으로 말미암아 견고하니라

우리는 인자와 진실 속에 살아가는가?

정리해보자.
인자와 진실함으로 사는 삶은 무엇인가?

1. 신속한 행동이다.

아브라함의 종과 리브가는 머뭇거림이 없었다.
바로 반응했고 신속했다.’
우리가 인자와 진실함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이 신속함이다.
머릿속에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지만,
어느 순간부터 계산되기 시작한다.
익산은 구걸하는 사람을 볼 수 없지만,
구걸하는 사람들을 보면 늘 주머니에 있는 것을 다 털어서 주고는 했다.
이들에게 하는 일이 우리 주님에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주저함이 없었다.
그러나 그런 도움이 그들을 오히려 나쁜짓을 하게 만드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고 난 후부터는 찾아오는 사람에게도 주머니를 열지 않을 때가 생겼다.
곧바로 움직여지는 행동보다 머릿속에 잣대가 생겨서 나에게 돌아올 것을 계산하고 따지는게 너무나 당연해졌다.
소방서에서는 화재, 구조, 구급 벨이 울리면 1분 안에 차에 타고 차고지를 출발해야 한다.
이 신속함이 사람을 살리는데 매우 중요한 골든타임을 지키게 만들어준다.
우리에게 ‘신속한 반응’이 필요하다.

2. 흔들리지 않는 확신이다.

아브라함의 종과 리브가는 흔들리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약속을 따라간 아브라함처럼, 리브가도 이 확신을 가지고 움직이고 있었다.
며칠, 열흘은 여유있는 시간을 주는 것이 아니라, 확신을 흔들게 만드는 시간이었다.
아브라함의 종은 이렇게 말한다.
49절 ‘내가 우로든지 좌로든지 행하게 하소서’
이것은 일종의 강조다.
롯이 우하면 아브라함이 좌하리라고 말했던 것과 같다.
그러나 지금 하나님의 뜻이 분명히 보인다고 믿는 이 상황에
타협은 존재할 수 없다.
우로든지 좌로든지 선택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사람들이 있다.
****
**21**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 하니 백성이 말 한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는지라
머뭇머뭇하는 것은 ‘넘어가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동사를 썼는데,
넘어가지도 못하고 한발은 이쪽에 한발은 저쪽에 담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열왕기상 기자는 더욱 강렬하게 넘어가다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바알 선지자들의 예배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한다.
****
**26** 그들이 받은 송아지를 가져다가 잡고 아침부터 낮까지 바알의 이름을 불러 이르되 바알이여 우리에게 응답하소서 하나 아무 소리도 없고 아무 응답하는 자도 없으므로 그들이 그 쌓은 제단 주위에서 뛰놀더라
뛰놀더라- 머뭇머뭇 하다. 우로든지 좌로든지 행하지 못하고 확신없이 어영부영하는 상태는 인자와 진실로 행동하는 삶이 아니다. 세상의 우상에 매여있는 상황일 뿐이다.
우리는 신앙의 도약- 넘어감이 필요하다.
이 넘어감이 바로 ‘유월’이다.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유월한 것처럼, 바알에게서 유월했어야 했다.
우리는 십자가로 유월이 필요하다.
그 확신으로 살아내는 삶이 필요하다-

3. 은혜의 확장이다.

확신으로 살아내는 삶은 ‘은혜의 확장’으로 이어진다.
라반과 어머니는 그들의 확신있는 선택에 수긍했다.
그리고 리브가를 축복한다.
****
**60** 리브가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우리 누이여 너는 천만인의 어머니가 될지어다 네 씨로 그 원수의 성 문을 얻게 할지어다
먼 길을 떠나 마침내 이삭은 리브가를 만난다.
이삭의 행동을 보자.
****
**67** 이삭이 리브가를 인도하여 그의 어머니 사라의 장막으로 들이고 그를 맞이하여 아내로 삼고 사랑하였으니 이삭이 그의 어머니를 장례한 후에 위로를 얻었더라
리브가는 어머니 ‘사라의 장막’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를 장례한 이후의 위로를 리브가로부터 얻었다.
리브가가 ‘사라’의 자리, 열국의 어머니의 자리를 대신하게 된 것이다.
하나님의 신실하신 역사가 이제 아브라함과 사라에게서 이삭과 리브가로 이어진다.
인자와 진실로 행동한 그녀의 선택과 삶은
하나님의 나라의 연속과, 확장, 은혜의 풍성함으로 그들의 삶으로 더욱 드러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인자와 진실로 살아내는 한,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삶 속에 풍성하고 놀랍게 끊이지 않고 이어질 것이다.
그리고 이 일은 우리의 다음세대, 우리 믿음의 전도를 통하여 드러날 것이다.
은혜의 확장이 우리의 삶 가운데 드러나길 소망한다.

영혼의 용광로

용광로는 철광석을 녹여 쇳물이 되게 만들고 불순물을 걸러 직육면체로 만들어 각기 다른 공장들로 보내 다양한 철강 제품을 만들어 낸다.
용광로에서 최종 철강 제품이 나올 때까지 쉴 새 없이 계속 이어져가는 흐름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용광로나 제철소 전체는 모두 24시간 365일 멈추지 않고 돌아간다.
만약에 용광로에 불이 꺼지면 용광로 자체가 거대한 철 덩어리로 굳어져 버려 부수고 새로 지어야 한다. 최소 5000억에서 1조원 가까운 들어야하고 다시 만드는 데도 수개월 이상이 소요된다. 뿐만 아니라 용광로에서 제철소로 이어지는 모든 공정들이 멈춰버리고 공장들이 마비가 되어버리기 때문에 제철소 자체가 ‘죽는 것’이 된다.
가장 큰 철강회사인 포스코 역사록에는 성화봉송주자들이 차례차례 하늘의 불씨를 넘겨 받았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들은 하늘이 내린 소중한 불씨를 담아 우리나라에 첫 쇳물을 생산했기 때문에
용광로는 반드시 수호해야 할 숭고한 대상으로 받아들인다.
우리는 성령의 불을 받은 사람들이다.
회심했고, 열정이 있었고, 뜨거웠다.
그 뜨거움이 우리의 심장을 박동하게 만들었고,
열렬히 그리스도를 사랑하며 살아가리라 다짐했다.
그런데 주위의 냉기와 차가움이 우리의 뜨거움을 식게 만들지는 않는가?
혹시 우리의 뜨거워야 할 용광로 같은 성령의 불 받은 심장이
꺼져버려 철 덩어리처럼 굳어져 버리 부수고 새로 지어야만 할 정도로
망가져버리기 일보직전은 아닌가?
우리의 반응이 ‘신속한가?’ ‘흔들리지 않는가?’ ‘은혜의 확장’을 이루고 있는가?
2020년 우리 신앙의 변곡기를 맞이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딱딱한 젖은 나무가 아니라, 언제든지 타버릴 준비가 되어 있는
우리의 마음 밭이 준비되기를 소망한다.
성령의 불이 우리 영혼에 떨어질 때,
신속히, 흔들림 없이, 그 불이 우리의 삶의 곳곳을 태워
은혜의 놀라운 확장이 일어나기를 소망한다.
하나님의 인자와 진실
인자와 진실의 삶이 신속함, 흔들리지 않는 확신, 은혜의 확장이라고 나눴다.
인자와 진실이 하나님의 성품이라는 사실을 다시 기억하자.
하나님은 우리에게 ‘신속하게’ 일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단 한 번도 흔들리지 않는 확신으로 ‘너는 내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여기에 머무르지 않고 ‘은혜의 통로’들이 되어주길 원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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