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1:21-24 새벽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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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을 지키는 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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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1:21–24a NKSV
남편 엘가나가 자기의 온 가족을 데리고 주님께 매년제사와 서원제사를 드리러 올라갈 때가 되었을 때에, 한나는 함께 올라가지 않고, 자기 남편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아이가 젖을 뗄 때까지 기다렸다가, 젖을 뗀 다음에, 아이를 주님의 집으로 데리고 올라가서, 주님을 뵙게 하고, 아이가 평생 그 곳에 머물러 있게 하려고 합니다. 나는 그 아이를 평생 나실 사람으로 바치겠습니다.” 남편 엘가나가 그에게 대답하였다. “당신 생각에 그것이 좋으면, 그렇게 하시오. 그 아이가 젖을 뗄 때까지 집에 있으시오. 주님께서 당신의 말대로 이루어 주시기를 바라오.” 그래서 그의 아내는 아들이 젖을 뗄 때까지 집에 머무르면서 아이를 길렀다. 마침내 아이가 젖을 떼니, 한나는 아이를 데리고, 삼 년 된 수소 한 마리를 끌고, 밀가루 한 에바와 포도주가 든 가죽부대 하나를 가지고, 실로로 올라갔다. 한나는 어린 사무엘을 데리고 실로에 있는 주님의 집으로 갔다.
지난시간에 우리는 한나가 엘리 제사장과 대화하는 장면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대처하며, 기도할 때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살펴 보았습니다. 오늘 본문은 일년이 지난 어느날, 엘가나가 다시 실로로 매년제와 서원제를 드리러 올라갈때가 되었을 때 한나와 대화한 내용과 한나가 젖을 뗀 사무엘을 데리고 여호와의 전에 간 일을 말씀합니다. 말씀을 살펴보면서 함께 세가지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첫 번째로 엘가나는 또 다시 제사를 지내러 실로로 올라갑니다.
오늘 본문 21절은 “그 사람 엘가나와 그의 온 집이 매년제와 서원제를 드리러 올라갈 때에”라고 말씀합니다.
1년 전 제사에서 한나는 서원기도를 드렸고, 이튿날 라마의 집으로 돌아온 직후 임신하여 9개월만에 사무엘이 태어났다고 가정한다면 오늘 본문 21절에 언급된 매년제는 사무엘이 태어난지 석달이 채 되지 않았을 때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무엘이 너무 어리고 한나도 아이를 낳고 키우느라 힘든 상황인데도 엘가나는 제사를 지내기 위해 실로로 올라가려고 준비하려고 합니다.
엘가나가 과연 이런 형편을 몰랐을까요? 실로로 가기 위해서는 이틀 길을 꼬박 걸어가야 하는데, 모든 가족을 거느리고 가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그는 분명히 알았을 것입니다. 따라서 올 한해는 쉬고 내년에 다 같이 가자라고 결정하는 편이 더 현명하게 느껴졌을만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가나는 제사들 드리러 올라가기로 결정합니다. 그렇다면 엘가나가 왜 이런 결정을 했을까요? 그것은 그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셨기 때문입니다. 그에게 있어서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는 무엇보다도 중요하고 누구보다도 중요했기에 그는 매년 그러했듯이 올해도 일 년 후에 다시 여호와 하나님의 전으로 제사하러 가고자 했던 것입니다.
이 당시 남자들의 대부분은 율법에 명시된 3대 절기도 제대로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제사 잘 지낸다고 누가 칭찬하거나 안 지킨다고 욕이나 멸시를 당하는 일도 없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남의 눈치 볼 일도 없었다는 것이죠. 하지만 엘가나는 실로로 가는 것을 주저하지 않습니다. 이제 몸을 푼지 얼마 안되는 산모와 핏덩이 아이가 있다는 핑계도 그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을 막지 못합니다. 그만큼 그는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를 기다리고 소중하게 생각했다는 것을 잘 보여줍니다.
한나는 아이가 어려서 이번에는 못가고 젖 뗀 후에 올가가겠다고 말했다. -한나는 자기가 하나님께 드린 서원기도를 기억해했다. 일년이 지났다는 것은 아이가 태어나고 3개월도 채 안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아직 엄마의 품을 떠나기에는 너무 어렸다. 게다가 그를 제대로 돌아보아 주기도 불가능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자들에게 하나님을 만나는 것만큼 중요한 일과 자리가 어디 있을까요? 그 시간은 어떤 핑계도 어떤 변명도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것보다 과연 어떤 일이 더 소중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엘가나는 바로 이런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존경을 가지고 예배의 자리로 나아갔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 우리 신앙생활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할 수만 있다면 핑계거리를 찾아 예배에 결석하거나, 집중하지 못합니까? 아니면 모든 핑계거리와 변명과 상황을 잠시 보류해 놓고 예배에 나와 예배 드리기에 전념하고 계십니까?
우리의 삶의 중심은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가 가장 중요한 자리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어떻게 예배자의 삶을 살 수 있습니까? 하나님 아버지를 찾고 그분을 만나기에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을 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렇게 될 때 오늘 하루도 우리는 삶으로 주님을 경험하는 시간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더불어 일상가운데 드리는 예배자의 삶을 통해 주일날 더욱 큰 기쁨과 은혜를 경험하는 시간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두 번째로 한나는 서원을 잠시 보류합니다.
22절은 “오직 한나는 올라가지 아니하고 그의 남편에게 이르되 아이를 젖 떼거든 내가 그를 데리고 가서 여호와 앞에 뵈게 하고 거기 영원히 있게 하리이다 하니”라고 말씀합니다.
엘가나가 가족을 이끌고 실로로 올라갈 때가 되었을 때, 한나는 이번 제사에는 동참하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바로 1년 전에 한나는 아들을 낳으면 여호와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서약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은 한나의 서약을 들으시고 그녀에게 사무엘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한나의 반응은 의외입니다. 즉각적으로 순종할 것 같은 한나가 자신의 서약을 보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태어난지 세 달도 안된 아이와 헤어져 자기 품에서 더이상 키울 수 없다는 것은 어머니로써는 참으로 큰 슬픔입니다. 이해가 되는 측면이 큽니다. 사람과 개를 비교하는게 좀 무리인 것 같지만, 저희 처가에 예전에 굉장히 예민하고 날카로운 진돗개가 한 마리 있었습니다. 너무 예민해서 말랐고, 너무 잘 짖고, 겁도 많았습니다. 들어보니 태어 난지 얼마안되서 엄마 젖도 제대로 못먹고 처갓집으로 입양을 온 것이었습니다. 동물도 이럴진대, 엄마의 사랑이 더 필요한 사람은 말해서 더 무엇하겠습니까? 그런데 생각해 볼 것은 젖을 뗀다고 해서 아이에 대한 엄마의 사랑이 줄어듭니까? 아이에 대한 엄마의 필요가 줄어듭니까? 아니지 않습니까? 나이가 먹어도 자녀는 부모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 도움과 관심은 나이가 적고 많음에 달려 있지 않다는 것이지요.
엘가나는 한나에게 그렇게 하도록 허락했다- 한나의 마음을 헤아린 엘가나는 한나에게 이번에는 제사에 참석하지 않아도 된다고 허락했다.
그렇다면 한나는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요?
그것은 한나가 사무엘에게 신앙교육을 시키기 위해서였습니다. 한나는 자신이 평생 사무엘을 돌보겠다는 서약을 파기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자신이 사무엘을 돌보는 시기가 잠깐이라고 말합니다. 22절에서 한나는 사무엘이 젖을 뗀 후에 영원히 여호와 하나님과 함께 할 것이라는 말하면서 자신과의 시간이 그리 길지 않을 것을 보여줍니다. 그녀는 생각하는 기간은 단지 젖을 뗄 동안만이었습니다.
사실 어린 시절 신앙교육 만큼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모세가 바로의 왕궁에서 자랐지만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잃어버리지 않았던 것은 친어머니 요게벳의 젖을 먹고 자랐기 때문입니다. 바로 요게벳의 양육이 이후 모세의 삶의 토대가 된 것처럼 한나도 자신의 신앙교육을 통해 사무엘이 하나님 안에서 든든한 삶을 살아가기를 기대했던 것입니다.
만일 엘리와 그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하나님 보시기에 바른 삶을 살았더라면 과연 한나가 이렇게 서원을 보류했을까요? 이 제사장 부자가 적어도 사람들 보기에 바른 모습이었다면 한나가 사무엘을 실로에 보내는 것을 이렇듯 잠시 중단했을까요? 이 시대의 분위기가 너무도 악했고, 제사장들도 믿을 수 없었기 때문에, 한나는 부득불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기가 기도중에 서원하고 낳은 아들이 아기때부터 믿음의 토대를 잘 쌓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한나는 부득불 서원을 보류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한나의 마음을 남편 엘가나도 이해했는지, 그는 아내의 제안에 흔쾌히 동의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앙의 교육은 참 중요합니다. 특별히 어릴때부터 어머니나 할머니의 교육이 참으로 중요하다는 것이죠. 디모데는 외조모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의 신앙교육 때문에 바르게 자랄 수 있었습니다. 어거스틴은 어머니 모니카의 끊임없는 기도로 우상 숭배와 망나니의 삶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이 외에도 어머니나 할머니로 인해 믿음의 자녀가 된 사람들은 너무나 많습니다. 오늘 하루도 우리는 우리 자녀들, 손주들의 믿음을 위해서 가르치고 기도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우리의 자녀들도, 우리의 손주들도 믿음안에 잘 자라가며 하나님의 자녀로써 크게 쓰임받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한나는 약속을 지켰습니다.
사무엘이 젖을 떼자 그를 실로로 데리고 갔다.
24절은 한나가 사무엘이 젖을 떼자, 아이를 데리고 실로에 있는 여호와의 전으로 갔다고 말씀합니다. 어쩔 수 없이 서원을 잠시 보류했지만, 한나는 결국 사무엘을 여호와의 전에 바쳤던 것입니다.
사무엘이 젖을 떼자 한나는 약속대로 사무엘을 하나님의 전으로 데리고 갑니다. 중요한 것은 한나가 서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무엘을 바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젖을 떼는 시기를 누가 정합니까? 엄마가 정합니다. 따라서 아이가 젖을 떼는 시기를 결정한 것은 한나 자신입니다. 오늘 본문 23절과 24절의 히브리어 원문을 보면 주어가 한나입니다. 주어가 한나라는 사실은 젖을 떼는 일을 한나가 주도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보류한 시간도 길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24절은 아이가 어렸다고 말씀합니다. 한나는 아이를 바칠 시기를 질질 끌며 여호와께 드린 서원의 실행에 소극적이었던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그 실행에 힘썼습니다. 그녀는 비록 시대적 분위기와 제사장들의 형편 때문에 아이를 바치는 것을 젖을 뗄 때까지 보류시켰을 뿐, 서약을 지키는 데는 추호도 망설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서원은 하나님 이것 해 주시면 내가 이렇게 하겠습니다!로 이루어집니다. 조건을 걸고 헌신을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우리도 이렇게 기도할때가 참으로 많습니다. 비록 서원이라고 말하지 않지만, 이것은 엄연한 하나님과의 약속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과의 약속을 가볍게 여기십니까? 아니면 무겁게 여기십니까? 성경은 지키지 못할 서원이나 함부로 서원하는 것을 단호하게 반대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께 서약하고 서원한 것들을 지켜야 합니다. 나의 상황이나 형편을 보고 보류하거나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지켜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과의 약속은 사람과의 약속과는 다릅니다. 그분이 약속에 신실한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께 드린 약속에 신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억해야 합니다. 서약은 함부로 해서는 안 되지만, 만약 서약했다면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것을 말이죠.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합니다. 자녀들의 신앙 교육에 힘써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도 서약한 것을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이렇게 살아갈 때 더욱 복된 삶이 될 줄로 믿습니다.
엘가나는 다시 서원제를 드리러 실로로 올라갔다. 그러나 한나는 아이가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았으므로 젖을 뗀 후에 올라가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엘가나는 한나에게 그렇게 하도록 허락했고, 사무엘이 젖을 떼자 그를 데리고 실로로 올라갔다.
제사를 지낸지 일년째 되는 날 어김없이 엘가나는 가족을 데리고 실로로 올라가려고 했다. 이 상황에서 한나도 당연히 따라가야 했다. 한나는 이미 하나님께 서원한 일이 있었다. 실로로 올라간다는 것은 아이를 이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나 사무엘은 그러기에는 너무 어렸다. 게다가 성전에서 사무엘을 제대로 돌보는 것이 가능이나 했을까? 결국 엘가나는 한나의 뜻대로 하도록 허락한다. 그녀의 마음을 잘 이해한 듯 보인다. 그리고 젖을 뗄 떼가 되자 한나는 사무엘을 데리고 실로에 간다. 한나는 하나님과의 서원을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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