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상 1:24-28 새벽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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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한나가 사무엘을 데리고 실로로 가서 그를 여호와 하나님의 전에 바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사무엘이 젖을 떼자마자 한나는 지체하지 않고 그를 데리고 이틀 길을 걸어서 실로로 갔고요, 거기서 소를 잡아 제사를 지내고 엘리 제사장에게 아이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난 후 한나는 하나님께 경배를 드렸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세 가지 점을 살펴 보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번째로 한나는 하나님께 서약한 것을 지킵니다.
한나는 사무엘이 태어나기 약 1년 전 아들이 태어나면 하나님께 바치겠다는 서원을 했습니다. 그 서원을 따라 사무엘이 젖을 떼자 한나는 지체하지 않고 사무엘을 데리고 실로로 갑니다. 그러나 그냥 가지 않습니다. 제사를 드리기 위해 소와 포도주와 밀가루를 가지고 갑니다.
오늘 본문은 구체적으로 수소 세 마리와 20-30리터 정도의 밀가루, 그리고 포도주 한 가죽 부대를 가지고 성전으로 갔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수소 세 마리는 세 살 된 수소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고 성경학자들은 말합니다. 왜냐하면 고대 히브리어 원문이나 성경의 초기 사본들이 세 살 된 수소로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이해하는 또 다른 이유는 역사적 배경 때문입니다. 이 당시 소는 한 마을에 한 마리 정도만 있을 만큼 귀한 것이었습니다. 당시 주변 국가들의 문서를 보면, 마을 사람들이 한 마리의 소로 돌아가면서 농사를 지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더구나 25절에 따르면 서원제를 위해 도살한 소는 한 마리 뿐입니다. 그렇다면 소의 나이가 세 살이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세 살 된 수소는 사람으로 치면 막 성인이 된, 소로 치면 가장 비싼 가격에 팔 수 있는 나이였습니다. 다시 말해 금값인 소였다는 것이지요. 이들이 세 살된 수소를 드렸다는 것은 가장 가치있는 소를 여호와 하나님께 드렸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게다가 이들은 밀가루와 포도주도 가지고 갔습니다. 왜냐하면 민수기 15장은 수소를 서원제로 드릴때는 포도주와 밀가루를 함께 드리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가지고 간 포도주와 밀가루의 양이 서원제때 써야 할 양보다 더 많습니다. 아마도 그것은 또 다른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이 가져간 밀가루는 하나님께 향기로운 냄새를 올려드리는 소제에 쓰이는 제물이기도 했습니다. 포도주는 어떻습니까? 시편 104편 15절은 포도주가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한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엘가나와 한나가 서원을 이행하기 위해서 실로로 간 일은 아이를 떠나보내야 하는 슬픔의 자리가 아니라 아이를 하나님께 바치므로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킨다는 기쁨과 잔치의 자리였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솔직히 인간적으로 생각해 보면 한나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긴 불임의 끝에 낳은 아들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 과연 쉬웠을까요? 더 이상 자기 손으로 이 아이의 젖을 먹일 수 없고, 재롱을 볼 수 없는 마음이 분명히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일을 통해서 우리는 한나의 믿음을 보게 됩니다. 비록 내가 아들을 내 품에서 떠나 보내지만, 이제 하나님께서 더 잘 키워 주실거라는 믿음이 있기에 한나는 아들을 기쁜 마음으로 보내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약속을 잘 지키지 않는 사람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우리는 약속을 가벼이 하거나 어기는 사람을 좋은 사람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신의 없는 사람이라고, 믿지 못할 사람이라고 이야기를 하죠. 그런지 몰라도 많은 사람들이 웬만하면 약속을 하면 지키려고 합니다. 사람끼리 약속인데도 말이죠. 그렇다면 하나님과의 약속은 어떻습니까? 그냥 가벼이 취급할 수 있는 약속입니까? 아니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약속하신 대로 자기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주셨습니다. 자신의 가장 사랑하는 아들인데도 말이죠. 그것도 이 땅에 보내서 십자가에 달려 죽도록 하셨습니다. 우리와의 약속 때문에 말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하나님과의 약속을 어떻게 여겨야 할까요?
미국에서 유명한 호텔 체인 중에 하나인 홀리데이 인(Holiday inn)이 라는 회사가 있습니다. 이 회사의 전 회장이었던 클라이머라는 분은 수백 개의 호텔을 운영하면서 호텔 내에 한 번도 카지노를 두지 않았던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회사의 간부들은 사세 확장을 위해 뉴저지주의 호텔에 카지노를 설치하자고 제안했는데, 으레 그랬듯이 클라이머 회장은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하지만 회사의 중역들은 포기하지 않고 도박장 설치를 건의하자, 결국 클라이머 회장은 이 문제를 놓고 가족들과 상의한 후 회장직을 그만두었습니다.
은퇴식 때 그는 직원들을 향해 다음과 같이 연설했습니다. “제가 운영하는 호텔에 카지노를 두지 않기로 하나님과 약속을 했습니다. 사람들과의 약속도 중요한데 하나님과의 약속은 얼마나 소중한 것입니까? 그래서 제가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는 길은 회장직에서 물러나는 것뿐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직원들은 끝까지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킨 한 진실한 그리스도인을 향해 뜨거운 박수를 보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약속을 사람의 약속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야 합니다. 비록 그 일이 당장은 나에게 손해가 되는 것처럼 보이고 느껴질지라도 지켜야 합니다. 믿음으로 그 일을 행해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우리도 한나처럼 하나님 앞에서 더욱 복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두 번째로 한나는 사무엘이 기도응답으로 낳은 아들이라고 간증합니다..
오늘 본문 26절에서 한나는 엘리에게 자신을 기억하냐고 묻고 있습니다. 그리고 함께 있을 때 드린 기도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셨다고 간증합니다. 아마도 오늘 본문에 엘리의 대답이 없는 것으로 보아서, 그는 한나를 기억하지 못한 것처럼 보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기억을 못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이 당시 아무리 타락한 시대라고 해도 엄연하게 영적인 지도자로 인정받는 엘리가 이름도 모르는 여인인 한나를 기억하는 것이 더 이상합니다. 하지만 한나에게 엘리는 매우 중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한 축복을 기도 응답으로 받아들였을 때, 한나의 인생이 변하고 아이도 가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요, 잘 생각해보면 엘리의 축복은 우연한 것이었습니다. 엘리가 기도하는 한나를 보고 술 좀 작작 마시라고 꾸짖었을 때, 한나가 자신은 술을 마시지 않았다고 이야기하자, 머쓱해져서 그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두루뭉술하게 축복했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엘리의 진심이 담겨있지도 않았고 기억하지도 못하는 축복의 말이 한나에게는 기도의 응답이 되어 그녀의 인생을 바꾸어버렸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보여줍니까? 우리는 어떤 순간에도 축복의 말을 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복을 빌어 주는 말이 다른 사람에게는 진짜 축복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건넨 덕담 한마디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는 어떤 말이 입술에 있습니까? 축복의 말입니까? 아니면 저주의 말입니까? 뜻없이 하는 축복도 이렇게 효력이 있다면 오늘 우리는 어떤 말을 하고 살아야 합니까? 엘머 타운즈라는 유명한 그리스도인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축복하는 사람이 축복을 받는다.”
오늘 이 땅을 살아가면서 여러분 입술에 축복의 말이 가득하기를 소망해 봅니다. 좋아하고 신뢰하는 사람만이 아니라 나를 곤란하게 하고 힘들게 하는 사람에게도 저주가 아닌 축복을 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의 축복의 말이 상대방을 행복하게 만들고 그 행복이 돌고 돌아 우리에게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이런 복된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소망합니다.
마지막으로 아이를 바치고 한나는 여호와 하나님께 경배하였습니다.
28절은 “그러므로 나도 그를 여호와께 드리되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리나이다 하고 그가 거기서 여호와께 경배하니라”고 말씀합니다. 아이를 바친 후 하나님께 경배하는 모습을 통해서 우리는 한나가 매우 적극적인 믿음의 소유자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비록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을 하나님께 바치지만, 이 아이가 하나님 안에서 잘 자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그녀는 예배할 수 있었습니다. 어떤 상황에도 하나님이 지켜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더욱 기쁘고 간절하게 하나님께 경배할 수 있었습니다.
한나는 알고 있었습니다. 아이를 주신이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말이죠. 사무엘은 한나의 원통함과 고통을 단번에 해소해 주는 하나님의 선물이었습니다. 그러나 한나에게 중요한 것은 그 선물을 주신 하나님에 대한 깨달음이었습니다. 바로 자기의 원통함을 들으시는 하나님! 자기의 고통에 공감하시는 하나님! 그리고 기도할 때 들으시는 하나님을 깨달았기 때문에 한나는 기쁨으로 그녀에게 어쩌면 가장 소중한 사무엘을 하나님께 바치고 경배할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요술 램프의 요정처럼 생각할 때가 참으로 많습니다. 도깨비방망이처럼 여기기도 하죠. 그런데요,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는 인격적인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곁에서 우리의 원통함을 들으시고, 우리의 고통에 아파하시고, 눈물로 기도할 때 귀 기울여 들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한나의 깨달음은 바로 이런 것이었습니다. 내가 사무엘을 바치면 나와 함께 계신 하나님은 또 다른 자녀를 낳게 해 주실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지라도 하나님은 나의 기도를 듣고 위로하시기에 만족하겠다는 그 믿음 말이죠. 이것이 바로 믿음이고 신뢰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도 우리와 함께 계신 그 주님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의 형편을 기억하시고 이해하시고 공감하시는 그 하나님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의 기도를 들으시는 분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믿음으로 결단하고 나아가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그렇게 될 때 우리 인생은 더욱 주님과 교제하며 어떠한 상황에도 예배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으로 변화되게 될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약속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지켜야 합니다. 입술에서 축복의 말이 넘쳐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와 함께 계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오늘 하루도 더욱 복된 삶이 될 줄로 믿습니다. 기도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