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광풍의 현실에 필요한 믿음 (막4:3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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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서론
35 그 날 저물 때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니
36 그들이 무리를 떠나 예수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가매 다른 배들도 함께 하더니
37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배에 부딪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38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39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40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41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였더라
서론
l 현실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사람들
l 현실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사람들
사역을 하다보면 현실의 여러가지 어려운 문제로 고민하는 많은 사람들을 만납니다.
- 직장의 인간관계와 업무 스트레스로 인한 지침
- 몸이 아픈 상황, 재정이 어려운 상황
- 셀 공동체 모임과 나눔의 어려움
특별히 청년들을 양육할 때, 성경공부를 하고 교회에서 예배를 드릴 때는 믿음이 있는 것 같다가도 학업 문제, 취업 문제, 결혼 문제가 걸리면 믿음으로 사는 것을 버거워 하는 모습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현실에서 갈등을 겪는 상황이 일어날 때가 진짜 믿음이 필요한 때입니다. ‘믿음’이라는 단어는 가르침을 듣는 자리 안전한 곳에서 필요한 단어가 아닙니다. 치열한 현실 한가운데 너 나아가 본문처럼 광풍과 같은 상황에서 더욱 필요한 단어입니다.
l 예수님의 가르침 뒤 이어진 기적 이야기
l 예수님의 가르침 뒤 이어진 기적 이야기
오늘 본문은 4장에서 예수님깨서 하나님 나라의 비유를 주신 뒤에 나온 이야기입니다.
4:2-34 네 개의 비유와 해석
4:35-5장 네 개의 기적 이야기
Ø 4:35-41 광풍을 잔잔하게 하심
Ø 5:1-20 군대 귀신 추사
Ø 5:21-43 혈루증 앓는 여인, 야이로의 딸 치유 이적
자연적 영역, 영적인 영역, 육신의 영역에서 역사하시는 예수님의 능력을 보여 줍니다.
이것은 비유의 가르침을 통해 머리로 이해되었던 하나님 나라가 실제 세상 가운데에서도 경험되는 것을 알려 줍니다.
l 저편으로 건너가자
l 저편으로 건너가자
본문은 제자들을 향한 초청으로 시작합니다.
() “그 날 저물 때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니”
저편은 마가복음 5장을 보면 알 수 있듯 이스라엘 지경을 벗어나 이방인 지역으로 가고자 하심입니다. 내가 익숙한 사역의 자리를 더 벗어나 고통의 현실이 더 가득한 이방 땅으로 가보자고 하십니다. 하나님 나라가 절실히 필요한 그 곳은 또한 우리의 믿음의 상태를 직면시키는 현실의 자리이기도 합니다.
그곳을 가기 위해 갈릴리 바다(호수)를 지나갔습니다. 유대인들에게 바다는 공포와 혼란의 상징적인 장소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가자고 초청하실 때 낯설고 두려울 수 있지만 우리도 응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비록 본문의 제자들도 광풍 앞에서 믿음이 없음이 드러났지만 이 광풍을 통과하며 한단계 더 성숙한 믿음의 자리에 갈 수 있었습니다.
l 광풍 같은 현실
l 광풍 같은 현실
주님과 함께 건너가던 배는 광풍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배에 부딪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부딛혀: 미완료 시제, 광풍으로 계속 때리던 파도
들어와: 이제', '이미'라는 뉘앙스가 한글 번역에 빠졌다.
계속 부딛히던 물이 이제 배 안에 들어와 가득하게 되었다.
병행본문 ()은 '위태한지라'는 설명을 덧 붙임
우리에게도 광풍과 같은 현실의 어려움이 있습니다. 어려운 문제들이 하나 둘씩 때릴때는 극복해보려 애쓰다가 그것들이 겹쳐 차올라 가득차버리게 되면 감당할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저 역시 내면적으로, 사역적으로, 가정적으로 어려운 문제들이 연이여 겹쳐서 찾아올 때면 어찌할 바를 모르고 힘들어했던 시간들이 있습니다. 사역자이기에 이런 시간에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지식적으로는 알면서도 해결되지 않을 것 같은 문제들을 생각하다 보면 마음을 답답해지고 엉뚱한 반응, 행동에 이르기도 합니다. ‘믿음’과는 어울리지 않는 반응입니다.
그런데 마가복음은 이런 광풍과 같은 현실에서 진짜 믿음이 필요함을 알려주며 또 이런 상황을 통해 우리에게 진짜 믿음이 자라남을 알려 줍니다. 이번 달에 QT로 묵상한 히브리서도 고난받는 수신자들을 향해 “예수님이 누구이신가”를 다시 점검하며 ‘믿음’을 강조했습니다. 마가복음의 수신자들도 박해가 시작되는 시기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예수님은 누구이신가?”를 질문하게 하며 “믿음”으로 나올 것을 도전합니다.
l 주무시는 주님
l 주무시는 주님
예수님은 바람과 파도를 잠잠하게 하신 뒤에 제자들의 믿음 없음을 나무라십니다.
()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병행본문인 태복음과 누가복음과는 달리 마가복음만 예수님의 나무라시는 장면을 기록하면서 제자들의 믿음없음을 보여주며 이 상황에서 예수님은 믿음을 기대하심을 알려 줍니다.
본문은 특별히 두 가지 믿음을 요구합니다. 하나는 예수님처럼 믿을 것, 또 다른 하나는 예수님을 믿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신뢰속에 이 광풍속에 주무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정말 놀라운 믿음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낮 동안에 사역에 온 집중을 쏟아 놓으셨기에 이 배에서는 주무셨습니다. 정말 에너지를 써야 할 곳에 집중하시고 에너지를 쓸 필요가 없는 곳에는 초연하십니다. 반면에 우리는 사명은 쉬엄쉬엄 하면서도 불필요한 것에 두려워하는 것은 얼마나 집중하는지요? 예수님은 이 광풍속에 믿음의 본을 보여 주시며 우리도 하나님의 돌보심을 온전히 신뢰할 수 있기를 원하십니다.
또 예수님은 자신이 모든 것을 주관하고 다스리시는 분임을 더욱 믿기 원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주님의 초청에 응하였고, 주님의 가르침도 받았지만 아직까지도 하나님의 아들로서 주님을 믿지 못하고 있기에 더 깊은 믿음의 자리로 인도하기 원하셨습니다.
본문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며 광풍의 현실에 필요한 믿음은 무엇인지같이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 주님의 돌보심을 믿어야 합니다().
1. 주님의 돌보심을 믿어야 합니다().
l 이 배에는 주님이 타고 있다.
그것을 믿고 따랐지만 풍랑이 일어났을 때 어부 출신인 그들은 먼저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보려 했다. 광풍이 배에까지 물을 차게하며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 되자 주님을 깨웠습니다. 우리는 우리와 함께하시는 주님의 소중함을 잘 인식하지 못합니다. 광풍의 때에 우리가 주님께 구하게 됩니다. 구하면서 주님의 응답과 돌보심이 실제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l '선생님이여'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l '선생님이여'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런데 예수님께 요청하는 제자들의 모습은 따지는 듯한 모습입니다.
()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마가는 병행본문인 마태복음8장, 누가복음8장보다 세밀하게 상황을 이야기합니다. 베드로의 제자로서 상새히 들은 설명을 실감나게 표현한 것입니다.
- 35절 그날 저물 때
- 36절 다른 배도 함께 했다
- 38절 고물에서 배고 주무셨다
이런 마가복음에서 제자들의 모습은 믿음이 없는 모습임을 강조해서 표현합니다.
‘선생님이여’: 병행본문에서 마태복음, 누가복음은 '주여'라고 불렀는데 마가복음은 ‘선생님이여’라고 부릅니다.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병행본문인 () 간구하는 모습, () 도움을 요청하는 태도로 나오는데 마가복음은 마치 ‘'이것이 당신에게는 꺼려지지 않습니까?'라고 따지는 듯한 태도입니다.
다급하고 불안한 상황이 이런 우리의 연약한 모습이 드러나게 합니다. 처음 출발부터 예수님의 주권적인 초청에 반응해서 따라는 것도 믿음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그럼에도 가다가 막히면 불평과 원망의 마음이 들어옵니다.
l 우리의 오해
l 우리의 오해
우리는 믿음의 삶에 대해 오해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가면 고난과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님이 잠잠하시면 나를 돌보지 않고 방치하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l 주님이 함께 하고 계신다.
l 주님이 함께 하고 계신다.
하나님은 이 광풍과 같은 현실에서도 우리를 돌보고 계십니다. 제자들이 광풍으로 두려워하던 배에 예수님도 함께 타고 계셨습니다. 우리가 고통받고 힘든 때에도 주님은 함께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주시기 위해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주님은 우리가 상황에 따라 안정감을 갖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를 누리는 것에서 참된 안정감을 가지기 원하십니다. 하나님으로 인해 만족하는 것, 그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그 하나님을 알 때 가장 좋은 것으로 우리를 돌보심을 알기에 우리는 광풍의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 “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광풍의 현실이 버겁게 느껴질 때 다시 질문해 봅시다. “나는 무엇으로 만족하고 안정감을 누리고 사는 존재인가?” 주님으로 만족하는 자는 광풍의 현실에서도 주님의 돌보심을 믿고 나아갈 수 있습니다. 바울의 고백처럼 우리는 내게 능력주시는 자가 있음을 알 때 어떤 형편에서도 자족할 수 있는자가 될 것입니다.
() “11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12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2. 주님의 다스림을 믿어야 합니다().
2. 주님의 다스림을 믿어야 합니다().
l 말씀으로 잠잠하게 하신 예수님
l 말씀으로 잠잠하게 하신 예수님
주님은 말씀으로 바람과 바다를 잠잠하게 하셨습니다.
()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이교도처럼 바다를 향해 희생 제사를 드리며 달래거나 겁을 주는 방법이 아니었습니다. 말씀 한마디면 충분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예수님의 권위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도 들리기를 소망합니다. 주님의 말씀이 우리를 다스리기를 소망합니다. 우리를 불안하게 하고 염려하게 하고 두렵게 만드는 모든 것들이 주님의 말씀앞에 잠잠하게 될 것입니다.
l 주님의 임재에 대한 경외
l 주님의 임재에 대한 경외
제자들은 말씀으로 바람과 바다를 잠잠하게 하신 주님의 권위에 놀라며 주님을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였더라”
40절의 무서워함(데일로이): 인간적인 두려움, '비겁한 두려움', 겁쟁이
41절의 두려움(포베오): '신적인 권능과 임재 앞에서 느끼는 놀라움
‘그가 누구이기에': 제자들은 주님의 놀라운 가르침을 받았고 기적도 경험했던 자입니다. 그럼에도 자신들에게 닥친 이 광풍의 현실앞에 주님을 새롭게 인식했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주님의 임재를 경험한 자마다 경외의 반응이 나왔습니다. 제자들은 이 예수님을 하나님과 같은 존재로 인식하며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한 것입니다. 제자들은 시편의 고백을 기억했을 것입니다.
() “8 여호와 만군의 하나님이여 주와 같이 능력 있는 이가 누구리이까 여호와여 주의 성실하심이 주를 둘렀나이다 9 주께서 바다의 파도를 다스리시며 그 파도가 일어날 때에 잔잔하게 하시나이다”
우리도 광풍의 현실이 압박할 때 그 광풍보다 더 높은 곳에서 말씀으로 다스리시는 주님을 볼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오늘도 주님의 말씀이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다스리고 우리의 현실 상황을 다스리게 되도록 기도합시다. 우리가 나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된다면 세상의 두려움은 모두 잠잠하게 되고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만 남게 될 것입니다.
결론
결론
믿음에 대해 이야기하기는 쉽지만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누구도 광풍의 현실 앞에서 당당한 믿음을 가지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어찌보면 이렇게 두려움에 떠는 제자들의 모습이야말로 참으로 인간적인 모습, 인간의 연약함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우리가 연약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믿음의 자리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인생에 광풍의 현실을 허락하시지만 방치하지는 않으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해 한 배를 타기로 한 자입니다. 작은 믿음에서 출발했지만 주님은 우리를 더욱더 믿음의 사람으로 세우실 것입니다. 우리가 너무 힘들고 두려울 때 이 배에 예수님이 타고 계시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입니까?
지금이라도 예수님을 깨워 일으키며 도와 달라고 구합시다. 완전한 믿음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투정하는 아이 같아도 괜찮습니다. 주님은 그런 우리를 아시고 일어나 응답하십니다. 광풍의 현실 속에 살아계신 주님을 경험할 때 우리는 주님의 돌보심을 온전히 신뢰하는 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주님의 돌보심을 신뢰할 때 우리도 예수님처럼 불필요한 것에 집중하여 지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라는 더 중요한 사명에 집중하는 삶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광풍의 현실이 우리를 압박하려 할 때 주님의 말씀앞에 나아갑시다. 말씀이 내 생각과 마음을 통치할 때 말씀이 내 삶을 통치하여 잠잠하게 함을 경험하게 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치열한 광풍의 현실도 예수님이 다스리는 왕이신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광풍의 현실도 하나님의 임재를 통해, 하나님의 통치가 드러나는, 하나님 나라 가운데 있음을 경험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1. 주님 앞에 나의 연약함을 아뢰며 기도합시다.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아 주시옵소서.
주님이 나와 함께하심을 깨닫고 주님께 온전히 맡기게 하시옵소서.
2. 주님 나를 계속 힘들게 공격하는 거센 파도를 말씀으로 잠잠하게 하시옵소서. 광풍보다 더 크고 강력한 하나님의 임재에 사로잡히게 하여 주시옵소서. 믿음으로 하나님의 통치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게 하여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