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제자로의 부르심 (막3:7-19)

마가복음 강해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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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7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바다로 물러가시니 갈릴리에서 큰 무리가 따르며
8 유대와 예루살렘과 이두매와 요단 강 건너편과 또 두로와 시돈 근처에서 많은 무리가 그가 하신 큰 일을 듣고 나아오는지라
9 예수께서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 작은 배를 대기하도록 제자들에게 명하셨으니
10 이는 많은 사람을 고치셨으므로 병으로 고생하는 자들이 예수를 만지고자 하여 몰려왔음이더라
11 더러운 귀신들도 어느 때든지 예수를 보면 그 앞에 엎드려 부르짖어 이르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하니
12 예수께서 자기를 나타내지 말라고 많이 경고하시니라
13 또 산에 오르사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14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15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
16 이 열둘을 세우셨으니 시몬에게는 베드로란 이름을 더하셨고
17 또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이니 이 둘에게는 보아너게 곧 우레의 아들이란 이름을 더하셨으며
18 또 안드레와 빌립과 바돌로매와 마태와 도마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및 다대오와 가나나인 시몬이며
19 또 가룟 유다니 이는 예수를 판 자더라

서론

저도 요즘은 나이가 드는 것이 싫은지 자꾸 나이를 계산하지 않게 됩니다. 제 삶을 한번 되돌아보며 계산해보니 저도 교회를 다닌지 벌써 25년이 되었고,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지 20년이 되었고, 사역을 한지 11년이 되었습니다. 어렸을 때 상상해본 멋진 어른, 성숙한 인격, 깊이있는 사역자의 모습이 저에게서 보이지 않아 부끄럽습니다. 오히려 저도 몰랐던 고집, 미숙한 감정, 아직도 베여있는 욕심과 게으름의 모습이 더 보이는거 같습니다. 나이라도 어렸더라면 겸손한 마음으로 더 배우려 하고, 성장하고 싶은 갈망이 타오를텐데 이제는 성숙을 위해선 부단한 결단과 몸부림이 필요해졌습니다. 우리의 성숙의 목표는 끝이 없습니다. 집사님이 되었다고, 목사님이 되었다고 안주해서는 안됩니다.
() “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14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교회 사역을 하며 늘 따라다니는 고민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좋아하는 사람은 많은데 왜 이렇게 예수님을 닮은 사람은 찾기가 어려울까? 내가 양육하는 영혼들은 성숙해져 가고 있는 걸까? 예수님을 좋아하는데서 멈추어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고민들이 다시 복음서의 예수님을 찾아보게 하였습니다. 마가복음 설교를 시작한 것도 딱 작년 이 맘때쯤 3월 18일에 시작했습니다. 그 때도 예닮삶 특별새벽기도를 앞두고 이런 고민 들을 하며 마가복음서를 설교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믿는 것을 무엇이라고 하시는지, 어떻게 우리 삶과 신앙의 모범을 보이시는지 더 추적하며 그 은혜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교회 안에 정말로 예수님을 닮는 것을 목표로 하는 제자들이 많아지기를 소망하였습니다.
몇일전에 한 목사님과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가 그 목사님이 이런 질문을 하였습니다. “지금 목사님을 전적으로 믿고 같이 동역하는 제자가 몇 명이 있습니까?” 3년의 시간동안 제자훈련도 하고 리더훈련도 하였지만 쉽게 말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물론 그 사이에 리더들이 계속 바뀌어야 하는 사정들도 있었지만 한 사람을 제자로 세우고 리더로 세우는게 정말 쉽지 않는 거 같습니다. 청년들을 보면 너무 바쁘고, 참 고민도 많고 안쓰러울때가 많습니다. 그들이 힘을 얻도록 돕고 격려하고 믿음을 지켜 나갈 수 있게 하는 것도 중요한 사역입니다. 그런데 이제 더 수준을 높여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견뎌내는 삶이 아니라 예수님처럼 변혁을 일으키는 삶으로 도전해야 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고난을 견디기 위해 사시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명을 위해 고난을 무릎쓰고 믿음의 선택을 하셨습니다. 진정한 예수님의 제자로써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이렇게 살아간 예수님의 길을 따라 가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공격하고, 심지어 죽이려 했던 무리들이 있던 회당을 떠나 갈릴리로 이동하십니다. 예수님은 박식한 종교가 있는 회당을 떠나서 그 분을 기쁘게 영접하는 곳으로 가셨습니다.
()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바다로 물러가시니 갈릴리에서 큰 무리가 따르며”
그곳은 사회적 약자들이 많은 곳입니다. 많은 병자와 귀신들린 자들이 예수님께 몰려왔습니다. 예수님이 치유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예수님을 갈망하는 자를 마다하지 않으십니다. 여기 이 갈리리는 예수님을 찾기만 하면 예수님을 경험할 수 있는 누구에게나 열린 자리입니다. 여기에 예수님을 찾아온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대해 거의 알지 못했습니다. 단순히 너무 고통스러운 현실의 문제에서 답을 얻고 싶어 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들 모두 만나주시고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예수님을 경험하게 함으로 예수님을 다른 존재로 인식하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귀신들이 함부로 자신의 존재에 대해 말하도록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 “10 이는 많은 사람을 고치셨으므로 병으로 고생하는 자들이 예수를 만지고자 하여 몰려왔음이더라 11 더러운 귀신들도 어느 때든지 예수를 보면 그 앞에 엎드려 부르짖어 이르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하니 12 예수께서 자기를 나타내지 말라고 많이 경고하시니라”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 맞지만 어설프고 왜곡되게 아는 것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그저 병을 치료해주고 말씀을 은혜롭게 전파하는 하나님의 아들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오신 분, 세상 죄를 담당할 하나님의 아들임을 알려야 합니다. 그것을 알려주기 위해서는 예수님과 더 가까이에 초청하십니다. 그분의 삶과 말과 사역을 통해 진정한 구원자로 예수님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무리들 속에서 12제자들을 따로 부르셨습니다. 12제자는 직접 바로 옆에서 예수님을 지켜본 자들입니다. 가롯 유다를 제외하고는 모두 초대교회 지도자가 되어 예수님의 사역을 계승한 특별한 사람들이기에 12사도라고 합니다. 우리는 그들처럼 사도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사도’라는 뜻이 예수님께서 자신을 대신하여 보낸 사람을 뜻하기에 우리 시대의 모든 그리스인도 “사도성”을 가진 제가자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12제자를 부르심을 통해 제자로의 부르심은 무엇인지를 같이 나누고자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로의 부르심은 우리에게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 성도님들도 예수님께 문제를 들고 나아가는 무리에서만 멈추지 말고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제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이 부르심을 마음에 담고 예수님을 닮아가고자 하는 거룩한 소원이 평생토록 이어지기를 소망합니다.

1. 예수님이 원하셔서 부르셨습니다(13)

() “또 산에 오르사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예수님은 산에 오르셔서 부르셨습니다. 주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기 위해선 세상에 속한 곳에서 올라가야 했습니다. 당시에 산은 세속권력의 한계를 느낀 사람들이 회복 운동을 일으키기 위해 비밀히 모였던 장소였습니다. 예수님 역시 세상의 방식과 다른 하나님 나라의 방식으로 세상을 변화시킬 사람들을 따로 부르신 것입니다. 우리가 지난달 묵상했던 마태복음의 “산상수훈”의 가르침이야말로 세상과 그 수준이 다른 하나님 나라의 방식을 삶의 목표로하는 진정한 예수님의 제자도라 할 수 있습니다.
14절에 열둘을 “세우다셨다”라는 단어는 “창조하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역사를 위해 예수님이 새로운 공동체를 창조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로 구성된 교회야말로 세상과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진정한 역사의 실체입니다.
그런데 이 놀라운 새로운 공동체의 지도자가 될 그들의 면면이 세상에서 내세울만한 특별함이 있지는 않았습니다. 그들의 유일한 조건은 예수님이 원하셨다는 것입니다. 직업적으로, 학벌적으로, 가문적으로 어떤 조건도 제자의 자격으로 필요한 것이 없습니다. 원하신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기만 하면 됩니다. 특별히 마가복음에 나오는 제자는 베드로를 비롯해 모두 실수투성이입니다. 가장 수제자였던 베드로조차 예수님의 의도를 알지 못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며 십자가에 달시시기 전 결정적일 때도 주님을 부인했던 실수를 했던 자입니다. 이런 연약한 자라 할지라도 주님이 원하시고 부르셨습니다. 예수님과 함께하며 점점 배우고 자라난 자입니다. 그리고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성령님의 함께하심을 통해 주님을 닮은 사명자이자 영적지도자로서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부족한 모습 때문에 좌절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런 나를 주님이 원하셨습니다. 그 부르심에 응답하기만 하면 됩니다. 제가 정말 좋아하는 성경말씀이 있습니다.
()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우릴 부르신 하나님은 후회하지 않으십니다. 자신이 있습니다. 성령의 기름부음을 주심으로 놀랍게 사명을 감당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이것을 믿을 때 우리도 제자의 삶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나를 부르신 주님이 나를 사용하실 것을 믿고 도전하시기 바랍니다. 복음서는 12사도의 실수도 생생하게 기록하며 우리와 똑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임을 알려줍니다. 우리를 원하신 주님의 부르심에 우리도 12제자들처럼 “나아갑시다”

2. 함께있게 하기 위해 부르셨습니다(14a)

()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제자를 부르신 첫 번째 목적은 함께 있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무엇보다도 주님과의 교제가 우선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예수님과 함께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 “4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제자는 예수님과 완전히 붙어있을 정도로 연합된 자들입니다. 예수님과의 결합이 끊어진 자는 더 이상 제자가 아니고 교회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의 궁극적인 비전도 하나님이 온전히 함께하는 것입니다.
()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주님과 함께한다는 것은 말씀과 기도로 주님과 교제하며 동행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제자는 어떤 상황과 환경에서도 주님과 교제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아무리 큰 문제가 나를 누르고 있어도, 아무리 감정이 통제가 안되어도 주님과 교제하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느냐가 진정한 제자임을 아는 척도입니다. 마가복음 8장에서 예수님은 사람들이 자신을 누구라 하는지 질문하고 제자들을 향해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더 질문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과 함께했던 제자들은 자신을 다르게 고백하기를 기대하셨습니다.
제자들의 성숙함의 차이는 바로 예수님과의 친밀함의 차이입니다. 고통 때문에 찾아온 무리들보다 예수님을 따라다녔던 무리들이 더 친밀했습니다. 예수님을 따라다녔던 많은 무리보다 12제자가 예수님과 더 깊은 친밀함을 누렸습니다. 예수님은 중요한 때에(야이로의 딸을 살릴 때, 변화산에서 영광을 보여주실 때,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세 명의 제자(베드로, 야고보, 요한)를 따로 데리고 함께 있으셨습니다. 예수님과 함께해야 하는 이유는 예수님과의 교제를 통해 예수님의 삶과 인격을 닮아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과의 교제할수록 우리는 예수님을 닮아가는 성숙한 제자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는 부르심에서 또 한 가지 유의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12제자라는 공동체로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공동체 속에서 자신을 드러내셨습니다. 공동체 속에서 서로의 연약함을 발견하지만 서로 보완하며, 서로 동역하여 성숙해지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과 단 둘이만 함께하며 집중할 수 있는 은밀한 시간도 필요하지만, 그것을 핑계로 공동체를 등한시해서는 안됩니다. 공동체의 부딛힘 속에 함께하시는 예수님을 만나야 우리는 더욱 예수님을 닮아가는 성숙한 제자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3. 보내시기 위해 부르셨습니다(14b-15)

() “14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15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
제자는 예수님과 함께 있으며 교제하는 것이 첫번째 우선 순위이지만 거기서 멈추어서는 안됩니다. 주님과 교제하는 자는 주님이 보내실 사명의 자리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인격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사역도 닮아가야 합니다.
마가복음의 예수님은 즉각성과 긴급성을 가지며 늘 사역을 위해 움직이시는 예수님입니다. 마가복음은 특히 제자들도 이렇게 사명의 자리에 나아가야 하는 자임을 강조합니다. 은 모든 민족을 제자삼으라는 사명과 함께 세상 끝날까지 제자들과 함께 있겠다는 약속으로 끝납니다. -20은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사명이 주어지고 제자들이 사명을 감당하고 있는 모습으로 끝납니다.
제자는 예수님께 받은 사명을 계속해서 수행하고 있어야 하는 자임을 강조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전도와 치유를 위해 제자들을 보내셨습니다. 영혼을 살리는 일을 위해 보내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세상은 영적으로 죽어 있습니다. 영혼을 살리는 일은 오직 주님과 함께했던 자들, 그래서 영혼이 살아난 자들만이 할 수 있습니다.
전도는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들이게 하여 살리는 것입니다. 가정, 직장, 꿈, 모든 관계 속에 하나님이 통치하셔야만 진정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귀신을 내쫓는 권능을 주신 것은 죄로 깨어진 인간들이 치유받아야 할 존재임을 알려줍니다. 귀신들린 것은 악령이 든 자를 축사하는 것도 있지만, 존재가치를 잃어버려 인간답게 살지 못하는 사람들을 치유해 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인간성을 상실한 자들을 예수님처럼 치료해 주어야 합니다. 우리 주위에도 무엇엔가 빠져 중독된 영적 열병환자들, 세속에 더렵혀진 영적 문등병자, 듣지 못하는 영적 귀머거리, 보지 못하는 영적 소경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께서 원래 창조한 모습대로 회복되어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우리의 능력이 아닌 예수님의 능력으로 가능합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위임해 주신 권능으로 이런 사역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매주 인사하는 것처럼 구원의통로, 축복의 통로, 행복의 통로로 살아가야 합니다. 성도님들도 우리를 보내신 삶의 자리에서 영혼을 살리는 제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결론

우리 인생에 주님은 찾아 오셔서 구원자가 되어 주셨습니다. 우리 삶의 고민과 문제들은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길이 되었고, 우리는 예수님을 만난 감격의 고백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를 더 이끌고 싶은 곳이 있습니다. 제자의 삶을 위해 높은 곳으로 우리를 부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원하셔서 부르셨습니다. 함께 있게 하기 위해 부르셨습니다. 보내시기 위해 부르셨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부르신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요. 우리 같은 연약한 사람을 주님은 원하셔서 부르셨습니다. 우리 함께 그 부름에 응답해 주님께 나아갑시다. 우리 주님을 더 가까이 볼 수 있는 곳, 우리 주님께서 직접 가르쳐 주시는 산으로 올라갑시다. 주님께 나아가서 주님과 함께하는 교제를 누립시다. 세상은 알수도 없는 진정한 평안과 기쁨과 생명의 가치를 발견하며 영적인 풍성함을 누립시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공동체 속에 함께하시는 예수님을 발견하며 주님을 닮아가는 성숙함을 배웁시다. 그래서 주님이 우리를 보내신 삶의 자리에 나아가서 우리에게 있는 주님의 생명을 나누어 줍시다. 영혼을 살리는 사명을 감당합시다.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며, 훈력하교를 시작하며, 예닮삶 기도회를 시작하며 우리가 더 예수님을 닮아가기를 갈망함이 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더 성장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내 문제 해결을 위해서, 예수님이 좋아서 교회 나오는 수준을 뛰어넘어 주님의 길을 따라가는 제자가 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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