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약하고 흐릿한 비전 속에 주신 말씀 (막4: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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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21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사람이 등불을 가져오는 것은 말 아래에나 평상 아래에 두려 함이냐 등경 위에 두려 함이 아니냐
22 드러내려 하지 않고는 숨긴 것이 없고 나타내려 하지 않고는 감추인 것이 없느니라
23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24 또 이르시되 너희가 무엇을 듣는가 스스로 삼가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며 더 받으리니
25 있는 자는 받을 것이요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도 빼앗기리라
26 또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27 그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어떻게 그리 되는지를 알지 못하느니라
28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29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대나니 이는 추수 때가 이르렀음이라
30 또 이르시되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비교하며 또 무슨 비유로 나타낼까
31 겨자씨 한 알과 같으니 땅에 심길 때에는 땅 위의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32 심긴 후에는 자라서 모든 풀보다 커지며 큰 가지를 내나니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되느니라
33 예수께서 이러한 많은 비유로 그들이 알아 들을 수 있는 대로 말씀을 가르치시되
34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다만 혼자 계실 때에 그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해석하시더라

서론

사역을 하면서 제가 느끼는 연약함 중에 하나는 비전을 제시하여 동기화하는 부분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마음은 있는데 그것을 나누며 분면하고 선명한 그림으로 그려지게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런 부분을 위해 참 많이 기도하구 구하지만 여전히 저에게는 어렵습니다.
돌이켜 보면 지금까지 제 인생을 인도해 오신 분이 하나님임을 고백하면서도 늘 비전을 위해 기도해왔던 거 같습니다. 대학생때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고 난 뒤 그 하나님을 위해 살고 선교적인 삶으로 그 하나님을 알리고 싶은 인생을 살고 싶었습니다. 그것이 어떤 길인지 몰라 졸업할 때까지 기도하다가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받고,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일에 준비되기 위해 신대원에 진학을 했습니다. 신대원을 졸업하면서도 어떤 교회를 가서 어떤 사역을 할지를 몰라 기도했습니다. 청년에 대한 마음을 주셔서 청년사역을 할 수 있는 교회로 갔습니다. 사역을 하면서도 제 마음이 참 연약해서 조금만 잘 되는 것 같으면 교만해지고 조금만 막히는 것 같으면 낙심하면서, 건강한 교회에 대한 실제적인 그림을 가지기가 참 쉽지 않았습니다. 또 다른 시작을 기대하며 여기 부산침례교회로 왔고 참 많은 도전도 받고 서서히 건강한 교회에 대한 그림도 세워가고 있지만, 아직도 시행착오가 많은 제 모습을 발견합니다.
하나님께서 분명한 길을 빨리 알려 주셔서 딱 거기에만 집중해서 준비했으면 좋을거 같은데 왜 이렇게 많은 과정을 겪어야 했을까요? 사실은 이 모든 과정이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을 세우기 위한 과정입니다. 각 단계를 거쳐야만 제가 볼수 있는 하나님의 영역들이 있었습니다. 늘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길을 알려 달라던 저의 기도에 하나님은 “하나님의 마음”을 알려 주는데 더 많은 관심이 있으셨습니다. 사실 비전은 어떤 “일”이 아닙니다. 일을 행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비전은 “하나님의 마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자가 하고 계시는 일을 민감하게 보고 동참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아직 예수님의 사역 초창기인데 얘수님의 부르심을 듣고 감격하며 따랐던 제자들도 의문이 계속 들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메시지를 계속해서 주시는데 너무 모호하게 들리는 것입니다. 당장 눈 앞에 기적을 베풀고, 주님을 공격하는 자들을 향해 벌주시면, 훨씬 쉽게 하나님 나라를 세울 수 있을거 같았습니다. 하나님 나라라는 모호한 개념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토록 원하는 나라의 독립이 이루어지고 예수님이 강력한 리더십으로 지도자가 되어 세상을 바꾸어 나가는 것이 훨씬 더 그럴듯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꾸 대도시,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이 아니라 갈릴리 시골에서만 사역을 하십니다. 영향력있고 높은 자들보다 약하고 소외된 자들, 도와줘도 별 이득을 얻기 어려운 사람들을 찾아 다니셨습니다. 또 그런 자들을 치료해 주고도 자신의 정체를 알리지 말라고 당부하시기도 하고 사람들이 몰려 올때면 일부러 숨거나 다른 곳으로 이동하시기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모이고 자신이 능력있게 보일지라도 하나님 나라가 오해되는 것을 절대로 원치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아직 이해할 준비가 되지 않은 그들에게 섣불리 말하기 보다는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셨습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쉬지않고 하나님 나라를 비유로 알려 주셨습니다.
() “33 예수께서 이러한 많은 비유로 그들이 알아 들을 수 있는 대로 말씀을 가르치시되 34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다만 혼자 계실 때에 그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해석하시더라”
지난번에도 나누었듯이 본문의 배경이 되는 마가복음 4장에서도 예수님을 향한 잘못된 소문에(미쳤다, 귀신 들렸다) 흔들리는 제자들을 향해 예수님은 비유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약하고 흐릿한 비전 속에 힘들어하고 염려하던 제자들에게 비유를 통해 하나님 나라에 대한 말씀을 주셨습니다.
씨 뿌리는 비유를 통해 이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잘 간직하면 열매를 맺는다는 말씀을 주신 주님은 오늘 3가지의 비유(등불 비유, 자라나는 씨 비유, 겨자씨 비유)를 통해 이 하나님 나라는 미약하고 흐릿한 것 같아도 점점 더 확장되어 가고 있음을 알려 주십니다.
왜 예수님은 비유로 말씀하셨을까요?
예수님은 섣부른 판단으로 하나님 나라에 대해 오해하기 보다는 점진적인 과정을 통해 분명히 확신하기 원하셨습니다. 비유는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합니다. 비유를 통해 우리는 우리의 한계적인 생각을 뛰어넘는 기대하는 믿음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또 비유는 그것을 더 알기 원하는 자들을 구분시키고 주님께 나아오도록 초청합니다. 결국 주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 자들에게 믿음으로 점점 비전이 그려지기를 원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의 주님의 이 말씀을 통해 제자들은 약하고 흐릿한 비전 속에서도 다시 소망을 가지고 주님을 따라갈 수 있었습니다. 제자들처럼, 또 저처럼 약하고 흐릿한 비전 속에 지금 가고 있는 길이 맞는 길인지 고민하는 분들이 계시다면 이 주님의 말씀이 동일하게 소망을 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계속해서 주님을 따라갈 힘을 얻게 해 주기를 소망합니다.

1. (비밀같지만) 밝혀질 것이다(21-25).

예수님은 21-25절에서 등불의 비유를 통해 등불은 말 아래에나 평상 아래 두지 않고 등경 위에 둔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비유는 숨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밝히기 위해서 주신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특히 “둔다”라는 단어의 원어는 "온다"라는 뜻의 동사입니다. 즉 21절 말씀은 원어적으로는 “등불이 말 아래나 평상 아래에 자리를 정하기 위하여 오는가? 등경위에 놓이기 위하여 오는가?”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이 “오다”라는 단어는 주님의 능동적 사역, 하나님 나라의 역동적인 움직임이 더 생동감있게 들리게 합니다.
서론에서 말씀드렸듯 비유는 주님의 말씀에 대한 어떤 태도를 가질지 응답을 요구합니다. 등불처럼 밝혀질 하나님 나라의 비유의 말씀을 주신 주님은 그래서 무엇을 들을지 삼가라며 결단을 촉구합니다
() “24 또 이르시되 너희가 무엇을 듣는가 스스로 삼가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며 더 받으리니 25 있는 자는 받을 것이요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도 빼앗기리라”
“있는 자”는 주님의 말씀이 마음에 있는 자를 말합니다. 주님께 더 자세히들으려 그 말씀이 마음에 있는 자들이 점점 더 깊이 그 비밀의 의미들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해하지 않는다고 무시하는 무리처럼 피상적인 수준에 머문다면, 하나님이 그들 가운데서 일하고 계신다는 인식마저도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비유를 통해 들은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더 알고 싶다면 제자의 삶으로 나아와야 한다는 초청이 담겨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면 아직 약하고 흐릿하더라도 더욱 믿음으로 주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그의 제자가 되면 될수록, 주님과 친밀하면 친밀해 질수록 하나님 나라의 비밀이 열려질 것입니다.
하나님이 정말 말씀하시고 싶은 것은 나의 미래, 내가 해야할 결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마음을 나눌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친밀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자들에게 비로서 하나님의 비전이 보여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 “여호와의 친밀하심이 그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있음이여 그의 언약을 그들에게 보이시리로다”
()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
() “사람이 자기의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 모세는 진으로 돌아오나 눈의 아들 젊은 수종자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아니하니라”
내 길을 알고 싶어 주님께 나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추구하며 더 가까이 나아가는 자에게 하나님의 비밀이 밝혀지게 될 것입니다.

2. (이해되지 않아도) 자라고 있다(26-29).

예수님은 26-29절에서 자라나는 씨 비유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는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함을 알려주십니다. 하나님 나라가 열매로 나타나기 위해서는 인내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먼저는 씨를 땅에 뿌리는 시간(26)이 필요합니다. 또 자라나는 시간(27)이 필요합니다. 이것을 기다리며 점점 감지해 가는 시간이 사실은 우리가 영적으로 점점 성장해가고 있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 “그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어떻게 그리 되는지를 알지 못하느니라”
씨가 자라나는 것은 분명한데 우리는 어떻게 그리 되는지를 다 알지 못합니다. 우리는 자고 깨고 하는 지극히 작은 반복된 일상을 하는 것만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지 못하는 그 자고 깨는 사이에 하나님의 일하심이 있습니다.
()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스스로”(아우토마테, 오토매틱, 자동적으로): 인간의 어떤 행위 없이, 하나님에 의하여 이루어진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자라나는 것이야말로 비밀스러우면서도 불가항력적인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계획을 따라 지금도 일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우리가 해결할 수 없는 수 없이 많은 문제들을 스스로 껴안고 고민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비유로 알려주신 이유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감당할 수 있을만큼만 알려주시고 자라나는 만큼 더 알려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해하지 못하는 영역, 우리 힘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영역을 고민하거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 “1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하지 아니하고 내 눈이 오만하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 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2 실로 내가 내 영혼으로 고요하고 평온하게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의 어머니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영혼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3 이스라엘아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영적인 성장은 주님을 의뢰하는 마음, 전적인 신뢰에서부터 자라나게 됩니다.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 나라는 자라나고 있습니다. 우리의 영적으로 성장함에 따라 그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을 주목해서 바라보면서 말씀을 마음에 담고 계속 지켜온 사람은 알게 됩니다. 주님이 말씀을 주신 것은 어떻게 자라는지 원리를 아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열매를 맺어 추수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우리 삶에는 하나님 나라의 보이지 않는 신비로운 섭리들의 결과가 있습니다. 그 인과과정을 우리가 다 몰라도,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담고 지켜오며 인내한 사람은 그것이 분명히 하나님이 역사하신 열매임을 알아 볼 수 있습니다.
성급하게 열매를 추구하는 삶을 살 때 우리는 인위적인 가짜 열매를 만들기 위해 잘못된 사역, 잘못된 삶의 위험에 빠지게 됩니다. 29절을 보면 기다리고 인내한 자들이 결국 하나님의 때가 되면 곧바로 낫을 대고 추수하게 됩니다.
우리의 생각과 한계를 훨씬 뛰어넘는 하나님의 풍성함을 경험했던 바울이 에베소 교회 성도들을 위해 기도했던 그 기도처럼 우리도 하나님을 알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 “16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17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18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19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20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21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
우리의 작은 생각과 틀 속에 이해되게 해달라고 구하기 보다 더 넘치도록 하실 하나님의 역사를 볼 수 있도록 우리의 믿음이 자랄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이해되는 영역과 수준에서만 하나님을 받아 들이는 것이 아니라, 내 생각보다 더 크게 응답하실 하나님의 일하심을 알아볼 수 있도록, 더욱 영적으로 자라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 (작아 보여도) 크게 될 것이다(30-32).

예수님은 30-32절에 겨자씨 비유를 통해 하나님 나라는 겨자씨처럼 작아 보여도 자라면 공중의 새들이 깃들일 만큼 크게 될 것을 알려 주십니다.
갈릴리에서 하고 계신 예수님의 사역이 작아보여도 무시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하실 위대한 일의 시작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복음안에서 출발했다면 우리들이 하는 일들이 너무 작아 보여도 무시해서는 안됩니다. 그 작은 것 하나하나가 얼마나 놀라운 열매를 맺게 될 지 우리는 모르지만 하나님은 크신 계획속에서 하나씩 하나씩 움직여 가며 자라게 하시고 계십니다.
하나님 나라가 겨자씨 같다는 것은 실제로 그렇게 작다는 것이 아니라 겨자씨와 같은 극적인 변화를 가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변화', '움직임'을 통해 역동적으로 확장해 갑니다. 교회의 역사, 선교의 역사를 보면 두세명이 모여 기도하는 것, 작은 순종의 발걸음이 위대한 열매를 맺는 역사가 많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자신들을 향해 “사람을 낚는 어부가”되게 하시겠다는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했습니다. 어떻게 가능한지 알 수 없었지만, 지금 그렇게 되어 가고 있는지 잘 이해되지도 않았지만 부르신 주님을 신뢰하며 계속 가고 있습니다. 주님을 따라가는 그 길 속에서 주님을 알아가면 알아알아갈수록 자신 안에 먼저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자신 안에 하나님 나라가 임한 자가 가는 곳마다 하나님 나라가 같이 경험되게 됩니다.
() “심긴 후에는 자라서 모든 풀보다 커지며 큰 가지를 내나니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되느니라”
이처럼 하나님 나라의 복음의 씨앗은 그것이 제대로 심기기만 한다면 아무리 작아보여도 확실한 변화를 일으킬 것입니다. 느리지만 확실하게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라나서 개개인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킬 것입니다. 그래서 자란 그 나무의 그늘에 공중의 새들이 깃들이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이 기댈 수 있는 거목처럼, 영적 아비처럼 자라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 나라는 점점 영향력을 흘려 보내며 확장되어 갈 것입니다.

결론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는 자들이 비전이 약하고 흐릿하다고 느낄 때, 비유를 통해 말씀을 주셨습니다. 비유는 듣는 자들에게 은혜이기도 하고 심판이기도 합니다.
예수께서 너무 직설적으로 말씀을 하셨다면 들은 사람은 즉각 결단을 내리지 않을 수 없는 강요를 받습니다. 예수님은 아직 준비되지 않은 자들에게도 주신 말씀을 깊이 생각할 시간의 여유을 주시어 자신을 따를 수 있는 기회를 주시기에 은혜입니다. 그렇지만 비유라 할지라도 그것에 어떻게 반응할지 결단을 촉구하기에 심판이기도 합니다. 이 비유를 가볍게 여기고 무시한다면 결국 하나님 나라의 놀라운 열매를 놓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비유는 약하고 흐릿한 비전 속에서도 예수님을 따라갈 진짜 제자들을 초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길을 걸어간다면 그 마음에 심겨진 주님의 말씀은 하나님 나라의 놀라운 열매를 매게 될 것입니다. 비밀처럼 보였던 것들이 주님께 나아가 친밀해진 자들에게는 밝혀질 것입니다. 이해할 수 없더라도 순전한 마음으로 주님을 의지했던 자들은 그 말씀이 자라나서 열매맺게하는 주님의 역사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지극히 작아 보였던 것들이 주위 사람들이 찾아와 기댈만큼 크게 되는 것을 볼 것입니다.
분명하게 보이지 않더라도 나를 부르신 주님이 지금도 인도하고 계심을 믿고 낙심하지 말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내게 주신 말씀을 지금도 보이지 않고 이해도지 않아도 자라나게 하십니다. 내가 주님과 친밀해진 만큰, 내가 성숙해진 만큼 주님의 비전의 의미와 가치들을 더 크게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풍성함으로 내가 자라난다면 내 주위 사람들도 기대며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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