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하나님 나라의 가족 (막3:20-35)

Sermon  •  Submitted
0 ratings
· 291 views
Notes
Transcript

서론

20 집에 들어가시니 무리가 다시 모이므로 식사할 겨를도 없는지라 21 예수의 친족들이 듣고 그를 붙들러 나오니 이는 그가 미쳤다 함일러라 22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서기관들은 그가 바알세불이 지폈다 하며 또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니 23 예수께서 그들을 불러다가 비유로 말씀하시되 사탄이 어찌 사탄을 쫓아낼 수 있느냐 24 또 만일 나라가 스스로 분쟁하면 그 나라가 설 수 없고 25 만일 집이 스스로 분쟁하면 그 집이 설 수 없고 26 만일 사탄이 자기를 거슬러 일어나 분쟁하면 설 수 없고 망하느니라 27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는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세간을 강탈하지 못하리니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강탈하리라 2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모든 모독하는 일은 사하심을 얻되 29 누구든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사하심을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가 되느니라 하시니 30 이는 그들이 말하기를 더러운 귀신이 들렸다 함이러라 31 그 때에 예수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와서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를 부르니 32 무리가 예수를 둘러 앉았다가 여짜오되 보소서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찾나이다 33 대답하시되 누가 내 어머니이며 동생들이냐 하시고 34 둘러 앉은 자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을 보라 35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서론

최근에 새가족 청년이 왔을 때 처음 교회에 와서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교회는 어떤 곳입니까?” 성도님들은 누가 이런 질문을 하면 무엇이라고 답변하시겠습니까? 저는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새롭게 가족이 된 공동체라고 답변해 주었습니다. 그 청년의 질문속에 소속하고 싶은 공동체에 대한 갈망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마침 그 때가 말씀축제 기간이어서 박대영 목사님을 차량 운행하며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가 박대영 목사님도 질문하셨습니다. “목사님은 교회가 어떤 곳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박대영 목사님도 최근에 만나는 사람들마다 이런 질문을 하시며 교회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신다고 하셨습니다. 생각해보니 저도 이론적으론 교회가 어떤 곳인지에 대해서 배웠지만 그런 교회의 본질을 곧잘 잊어버릴 때가 많습니다.
갈수록 개인화된 시대가 되면서 사람들이 공동체성에 대한 갈망이 있습니다. 공동체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뜨겁습니다. 팬클럽, 취미동호회, 동창회, 어디라도 소속될 곳을 찾습니다. 교회만큼 공동체를 강조하는 곳도 없을 것입니다. 교회야말로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는 가족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셀모임을 하는 이유도 교회의 본질을 온전히 경험하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교회를 다님에도 교회가 세상 동호회만큼의 소속감도 주지 못하고 모임의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심지어 교회 안에서도 끼리끼리 문화에 상처받고 힘들어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 교회가 세상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는 가족 공동체가 될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자신의 제자들을 중심으로 한 이 새로운 공동체가 자신의 진정한 가족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본문의 배경이 20절 말씀에 나옵니다.
() “집에 들어가시니 무리가 다시 모이므로 식사할 겨를도 없는지라”
예수님께서 산위에서 12제자들을 임명하신 후 다시 갈릴리로 돌아오셔서 2차 갈릴리 사역을 시작하십니다. 여기 이 집은 1:29과 2:1에서 언급된 갈릴리 지역 전도의 전초 기지 역할을 했던 베드로의 집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많은 무리로 인해 식사할 겨를도 없을 만큼 제자들과 함께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는 사역에 열중하는 모습이십니다.
피곤할만큼 과도한 사역의 연속입니다. 그럴때 예수님의 대적자들로 인한 이상한 소문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미친자이다’, ‘귀신 들린 자이다.’ 제자들에게는 처음 부름받았을 때의 감격 이후에 다시 한번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에 대한 환기가 필요했습니다. 우리에게도 주님을 위해 충성스럽게 섬기다가도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교회에 존재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과 이에 대한 믿음의 고백이 필요합니다.
본문은 마가자 자주 사용하는 샌드위치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샌드위치 구조는 하나의 이야기를 하는 중간에 다른 이야기를 삽입함으로 강조하는 것입니다. 본문에는 예수님이 미쳤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온 친속들의 이야기 가운데 예수님이 귀신들렸다고 주장하는 서기관들의 이야기가 삽입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대적자들처럼 예수님의 가족들도 예수님의 사역을 방해하고 있음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진리를 깨달아야 마땅하지만 못 깨닫는 사람들을 보여줍니다. 가장 율법을 많이 연구했던 자들도, 가장 예수님과 가까이 있었던 친족들도 진정으로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이들을 향한 안타까움으로 하나님 나라의 진정한 가족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초대하는 말씀입니다.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의 진정한 가족은 어떤 자들인지를 같이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 성령으로 거듭나야 합니다(29)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예수님을 구원자로 보지 못합니다. 영적인 눈이 없으면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볼 수 없습니다.
() “예수의 친족들이 듣고 그를 붙들러 나오니 이는 그가 미쳤다 함일러라”
함일러라: '그들이 말했다', 똑같은 동일한 동사를 21, 22, 30절에서 반복해서 사용되었습니다.
사람들의 말에 영향을 받은 예수님의 가족들의 모습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의 친족들이 들은 말: “미쳤다, 귀신들렸다.”
바리새인과 서기관은 예수님을 인정하기 싫어서 계속 모함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이라 또는 귀신 들렸다()”, “사생아다()”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다()”
예수님의 사역은 능력있는 사역이었고 영혼을 향한 열정적인 사랑의 사역이었지만 사람들의 말을 들으니 예수님이 그렇게 보이게 되었습니다. 영적인 분별력이 없는 자들은 사람들의 말에 휩쓸리기 마련입니다. 교회가 힘들어지는 많은 이유는 ‘말’의 문제 때문입니다. 영적 분별력이 있는 사람은 함부러 말하지도 않고 함부로 잘못된 말에 귀를 기울여 흔들리지도 않습니다. 교회 안에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이 있으면 문제가 일어납니다. 영적 분별력이 없어 예수님이 하시는 일의 의미와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고 오히려 예수님의 사역을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붙들러: 다른 사람의 손을 붙잡을 때, 체포할 때 사용되는 단어 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걱정하는 마음으로 찾아왔지만 잘못되었습니다. 오히려 에수님의 사역을 멈추게 하려는, 예수님을 체포하려는 마음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개인적 관심은 있었지만 예수님이 오신 목적을 헤아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성령으로만 분별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는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는 그 무엇보다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는데 모든 초점과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 “8 이 지혜는 이 세대의 통치자들이 한 사람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9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10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11 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12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13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거듭남에 대한 이해가 없었던 니고데모에게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합시다.
() “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4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사람의 모든 죄는 사하심을 받지만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사함받지 못한다고 말씀합니다.
() “2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모든 모독하는 일은 사하심을 얻되 29 누구든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사하심을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가 되느니라 하시니”
거듭나게 하는 성령의 역사를 거절하고 방해하면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성령을 대적하는 그들의 현재 태도가 영구적으로 굳어 버리지 않도록 경고하셔서 돌이키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가 진정한 회심을 통해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들의 공동체가 된다면 우리는 인간적이고 세상의 가치를 뛰어넘는 하나님 나라의 가족 공동체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2. 예수님의 통치를 받아야 합니다(27)

예수님의 대적자들은 예수님의 권위를 인정하기 싫기 때문에 예수님을 ‘귀신의 왕’을 힘입었다고 모함합니다. 예수님께 누명을 씌워 예수님의 권위를 제거하려고 한 것입니다.
()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서기관들은 그가 바알세불이 지폈다 하며 또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니”
“예루살렘에서 내려온”이 강조되었습니다. 다른 복음서보다 더욱 마가복음에서는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사람들을 예수님의 대적자로 강조합니다. 예루살렘이 하나님이 임재하는 성전의 기능을 상실하고 종교를 기반으로 한 권력이 지배한 곳이 되었음을 알려주기기 위해서입니다. 앞으로 예수님의 사역도 종교 권력으로 찾아온 예루사렘 사람들의 반대를 맞게 될 것이며 결국 예루살렘이 최종 투쟁지가 될 것임을 암시합니다.
예루살렘의 서기관들은 그들의 종교적 문제로 예수님과 갈등했고 논쟁을 일으켰습니다.
- 안식일(2:23-3:6), 죄를 사하는 권세(2:1-12), 죄인과의 식탁 교제(2:13-17), 금식(2:18-22) 등
종교: 안전한 느낌/ 변화를 반대/ 자신의 위치, 자존심, 중요성을 강조
그러나 예수님의 가르침은 종교적이지 않습니다. 가치관의 변화를 일으키고 삶의 변화를 일으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복음서는 이러한 갈등 속에 중립을 지키는 것이 불가능함을 말씀합니다. 예수님을 보고 그분의 말을 듣는 사람은 선택해야만 합니다. 자신이 통치자의 위치에 있을 것인지 예수님의 통치를 받아들일 것인지.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사탄이 스스로 분쟁하면 망한다(23-26)고 말하며 자신은 사탄의 권세를 무너뜨리러 온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는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세간을 강탈하지 못하리니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강탈하리라”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가족이든지 사탄에 속한 자이든지 둘 중의 하나입니다. 우리는 치열한 영적전쟁터 한 가운데 있습니다. 예수님만이 사탄의 권세를 정복할 수 있는 강한자입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 있다면 우리도 사탄의 권세를 이길 수 있습니다.
()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교회의 문제는 예수님의 통치 앞에 무릎을 꿇지 못하는 자들을 통해 일어납니다. 교회는 예수님께 충성을 고백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인간의 욕망을 극복하면서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하나님 나라의 가족 공동체가 될 수 있습니다.

3. 하나님의 뜻대로 행해야 합니다(35)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육신의 가족들이 찾아왔다는 말을 듣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가 자신의 가족이라고 말씀하십니다.
()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이 말씀은 육신의 가족에 대한 책임을 무시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성경은 일관되게 가족을 돌보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도 ‘고르반’이라 말하며 가족에 대한 의무를 다하지 않는 자들을 책망하시고 경고하셨습니다.
오늘 예수님의 말씀은 육신의 가족도 중요하지만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하나님 나라의 가족임을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이 땅의 육신의 가정은 임시적이지만 하나님 나라의 가족은 영원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족간의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아무리 가족의 사랑이라 하더라도 한계가 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혈연관계가 오히려 세상을 더 부패하도록 만들고 하나님의 공의를 무효하게 만드는 불법을 행하는 공동체가 될 수도 있습니다. 혈연관계 조차 상처받고 찍겨진 가정이 너무나 많습니다.
교회 안에도 관계가 중요하지만 관계는 늘 한계가 있습니다. 인간적인 정이 오히려 예수님의 사역을 방해할 수도 있습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조차 예수님의 사역을 이해하지 못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교회 공동체는 하나님의 뜻을 위해 모이는 공동체가 되어야 건강합니다. 셀 모임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는 교제가 있어야지 친밀함만을 추구한다면 그것은 하나님 나라의 건강한 공동체가 될 수 없습니다.
() “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교회는 무엇보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QT와 같이 말씀을 깨닫고 적용하고 나누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개인적으로 하나님과 교제하며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자가 될 때 우리는 삶에서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삶의 예배가 회복될 것입니다. 삶의 예배가 회복될 때 공동체 예배도 종교의식, 종교행사가 아닌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예배가 될 것입니다. 우리 교회도, 우리 셀 모임도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행함으로 진정한 하나님 나라의 가족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결론

장년 성도님들과 대화하다보면 자녀문제보다 더 큰 관심 주제가 없습니다. 다른 무엇보다 신앙적인 부분이 부모님들의 마음처럼 따라오지 않을 때 정말 속상해 하십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자녀를 이길 수 없다는 마음으로 더 이상 권면하지 못하시기도 합니다. 물론 가족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신앙적인 영향력을 흘려 보내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니고 지혜롭게 해야할 필요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육신의 가족이 서로 안녕하고 잘 지내는 것에서 멈추고 하나님 나라의 가족이 되지 못하고 있는데도 가만히 있어서는 안됩니다. 육신의 가정은 그 시기가 끝날 때가 있습니다. 더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가족으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가족 구성원으로 서로 세워줄 수 있도록 우리에게 육신의 가족을 허락하셨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쩌면 육신의 가정이 해줄 수 있는 것들이 무너져 가고 있는 우리 시대에 진정한 가족 공동체를 경험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 교회입니다. 우리 교회가 하나님 나라의 가족 공동체가 될 수 있다면 우리는 예수님처럼,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사람을 살리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공동체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교회가 하나님 나라의 가족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는 성령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예수님의 통치를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해야 합니다. 교회가 하나님 나라의 가족 공동체가 된다면 인간적인 가치들(정, 경제적 이득, 윤리적 행동, 종교적 체험등과 같은 것들)을 뛰어넘을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도, 우리의 셀도 이런 건강한 하나님 나라의 가족 공동체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하며 함께 기도하고 동역하는 저와 여러분이 됩시다.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