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2.14.금요기도회설교

금요기도회설교   •  Sermon  •  Submitted
0 ratings
· 13 views
Notes
Transcript
예배순서
통성기도 마무리 반드시 헌금기도
구역연합예배ㅇ
(헌금)
본문읽기 : 오늘의 말씀은히브리서 10장 12-14절 말씀입니다. 신약363페이지입니다. 합독하시겠습니다.
12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2 네가 만일 보내기를 거절하면 내가 개구리로 너의 온 땅을 치리라
3 개구리가 나일 강에서 무수히 생기고 올라와서 네 궁과 네 침실과 네 침상 위와 네 신하의 집과 네 백성과 네 화덕과 네 떡 반죽 그릇에 들어갈 것이며
13 그 후에 자기 원수들을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4 개구리가 너와 네 백성과 네 모든 신하에게 기어오르리라 하셨다 하라
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아론에게 명령하기를 네 지팡이를 잡고 네 팔을 강들과 운하들과 못 위에 펴서 개구리들이 애굽 땅에 올라오게 하라 할지니라
6 아론이 애굽 물들 위에 그의 손을 내밀매 개구리가 올라와서 애굽 땅에 덮이니
14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7 요술사들도 자기 요술대로 그와 같이 행하여 개구리가 애굽 땅에 올라오게 하였더라
8 ◎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불러 이르되 여호와께 구하여 나와 내 백성에게서 개구리를 떠나게 하라 내가 이 백성을 보내리니 그들이 여호와께 제사를 드릴 것이니라
9 모세가 바로에게 이르되 내가 왕과 왕의 신하와 왕의 백성을 위하여 이 개구리를 왕과 왕궁에서 끊어 나일 강에만 있도록 언제 간구하는 것이 좋을는지 내게 분부하소서
10 그가 이르되 내일이니라 모세가 이르되 왕의 말씀대로 하여 왕에게 우리 하나님 여호와와 같은 이가 없는 줄을 알게 하리니
11 개구리가 왕과 왕궁과 왕의 신하와 왕의 백성을 떠나서 나일 강에만 있으리이다 하고
12 모세와 아론이 바로를 떠나 나가서 바로에게 내리신 개구리에 대하여 모세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13 여호와께서 모세의 말대로 하시니 개구리가 집과 마당과 밭에서부터 나와서 죽은지라
The Holy Bible: New Korean Revised Version. (n.d.). (electronic ed., ). South Korea.
14 사람들이 모아 무더기로 쌓으니 땅에서 악취가 나더라
15 그러나 바로가 숨을 쉴 수 있게 됨을 보았을 때에 그의 마음을 완강하게 하여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더라
특송 : 5교구 특송있겠습니다.
설교
서론
서론
오늘 본문은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이루어진 속죄에 대해 우리에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왜 구약의 제사, 그 당시 예루살렘에서 드려지던 그 엄청난 제사가 부족한지를 말하며,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 온전함을 말합니다. 본문을 살펴보며 우리에게 주어진 은혜를 다시한번 묵상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길 소원합니다.
본론
나일강뿐 아니라 애굽의 모든 물을 피로 바꾸어버린 역사를 보여주신 하나님께서는 그래도 완악한 바로를 향해 두 번째 역사이자 재앙을 보여주십니다. 오늘은 하나님께서 하신 두 번째 재앙, 개구리의 재앙을 살펴보며, 그 속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살펴보기를 바랍니다.
서론에서 말했지만, 본문의 대전제는 구약의 제사가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그 부족함은 형식이나 혈통이 아니었습니다. 알고 있는 분은 알고 있겠지만, 당시 대 제사장은 온전한 제사장이 아니었습니다. 로마와 분봉왕의 정치적 논리에 의해서 좌우되는 자리였습니다. 이스라엘을 지배하고 있는 로마의 입장에서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으며, 그들의 가치관, 삶의 방향을 제시해주는 제사장들의 존재는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는 존재들입니다. 자연스럽게 대제사장이라는 자리는 정치적으로 핵심이 되는 자리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거기에 대해서 아론의 피, 사독계열 제사장의 혈통이 끊긴 것이 대제사장이라는 자리와 예루살렘에서 드려지는 제사에 대한 가장 큰 약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본론
이처럼 예수님께서 오신 시대는 이스라엘의 모든 자들이 자신들이 드리는 제사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던 시대였습니다. 다만 아무도 그런말을 하지는 못했습니다. 왜냐면 현실적으로 끊어져버린 사독의 혈통을 다시 살린다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반대급부로 더욱 심해진 것이 로마에 대한 반발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독계열 제사장이 끊겼으므로, 대제사장이 될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사람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제사장은 필요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대제사장을 뽑았을까요. 정답은 왕이 뽑는 것이었습니다. 제사장 가문이 24개가 있는데, 그중에서 왕이 맘에 들어하는 사람을 뽑으면 그 사람이 대제사장이 되었습니다.
결국 누가봐도 자격이 없는 자도 왕과 권력의 종이 된다면 대제사장이 될 수 있었다는 뜻입니다.
가장 먼저 우리가 살펴봐야 할 점은, 왜 하필 개구리냐는 점일 것입니다. 요한계시록도 그렇지만, 보통 이런 식의 심판에서의 공통점은 처음에는 강도가 덜하다가 뒤로 갈수록 그 형벌의 정도가 강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 계시록은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으로 그 재앙의 범위와 형벌이 강해집니다. 그런데, 애굽에 나타난 재앙은 그렇지 않습니다. 재앙의 정도로 따지면 가장 강한 재앙은 첫 번째 재앙인 피재앙과 마지막 재앙인 장자의 죽음일 것입니다. 피재앙은 아예 먹을수 있는 물 자체가 사라짐으로 직접적으로 생명을 위협했고, 장자의 죽음은 정말로 죽음이 찾아왔기 때문입니다.
이런 모든 상황들은 유대가 끊임없이 반란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던 원인이었습니다. 반란을 일으키면서도, 그들 스스로도 답이 없음을 알고 있습니다. 왜냐면 그 원인인, 사독계열의 대제사장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에 비해 개구리떼가 올라온 것은 별거 아닌 것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바입니다.
그렇게 공허하고 모든 것이 무의미한 시대, 제사와 하나님에 대한 형식은 남아있지만, 본질은 사라져버린 시대에 예수님께서 이땅에 오셨습니다. 이스라엘이 그렇게 바라고 구했던 메시아, 세상의 빛이 비춰진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10장에서는 시편 40편을 노래하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한 영원한 제사, 십자가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이 개구리 재앙의 첫 번째 뜻은 하나님의 백성을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
시편 40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40 1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과 개구리가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얼핏보면 이것은 아무런 공통점이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이 개구리는 몇가지 부분에서 이스라엘을 연상시킵니다.
2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
3 새 노래 곧 우리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내 입에 두셨으니 많은 사람이 보고 두려워하여 여호와를 의지하리로다
먼저, 개구리가 무수히 생긴다는 표현입니다. 3절에 나오는 무수히 생긴다는 표현은 :7에서 이스라엘이 생육하고 번성했다와 똑같은 단어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생육했던 것처럼, 개구리가 생육하게 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과 개구리를 비교하고 있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0장에서는 시편 40편 6절에서 8절의 말씀만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3절에 개구리가 처음 생육하는 장소입니다. 그 장소는 나일강입니다. 이것이 왜 이스라엘과 관련이 있냐면, 이스라엘이 살고 있는 고센땅이 바로 나일강의 삼각주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이스라엘 자손들이 나일강의 삼각주에서 번성한 것처럼, 개구리는 나일강에서 번성합니다. 나일강을 가득 채운 것으로 모자라 애굽땅 모든 곳에 없는 곳이 없게 됩니다.
그러나 이 편지를 읽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그 편지를 낭송하는 것을 듣는 사람들은 무엇을 떠올리겠습니까. 당연히 시편 40편의 시작을 떠올릴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찬양할 때도 후렴부터 찬양한다면, 자연스럽게 첫가사를 떠올리게 되는 것과 똑같습니다. 우리에게도 시편 40편을 배경으로 만든 찬양이 있죠. ‘하나님의 음성을’
시편 40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40 1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2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
3 새 노래 곧 우리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내 입에 두셨으니 많은 사람이 보고 두려워하여 여호와를 의지하리로다
히브리서 10장 8절에서 10절은 시편 40편 6-8절을 설명합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우리에게 연상하게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이스라엘과 개구리의 공통점입니다. 개구리가 그렇게 번성하고 사람들을 귀찮게 하지만, 그들이 실제적으로 위협이 됩니까? 물론 피재앙의 여파가 남아있는 애굽의 입장에서 이것은 너무나 힘든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실제적으로 피해를 당한다고 하기는 힘듭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그렇게 번성한 것이 애굽에게 실제적으로 어떤 위협이 되었습니까? 애굽이 이스라엘을 핍박하고 노예로 부리기 시작한 것도, 갓 태어난 아기를 나일로 던지게 하는 끔찍한 짓을 하게 한 것도 그저 자신들의 생각 때문입니다. 이 당시 애굽을 다스리던 파라오들은 예전부터 애굽을 통치하던 자들이 아닙니다. 그전에 요셉때는 힉소스왕조라고 애굽의 북동쪽에서 온 셈족계통의 사람들이 애굽의 바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힉소스왕조는 같은 셈족인 이스라엘에 대해 관대한 정책을 펼쳤습니다. 하지만 이 힉소스왕조를 몰아내고 다시 왕권을 차지한 애굽인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이 피와 칼로서 애굽의 왕권을 잡았기 때문에, 전혀 그럴 생각이 없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핍박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우리의 이 부르짖음,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정말로 그런 정치적인 생각이 있었다면, 힉소스왕조의 편에 붙어서 함께 움직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것도 없이 평화롭게 살았던 이스라엘을 애굽은 그저 같은 셈족이며, 자신과 다른 이방인이라는 명목하여 학대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마치 사람이 개구리에게 돌을 던져도 아무런 반항도 못하는 것처럼 저항은커녕 그저 당하고만 있습니다. 할 수 있는 것은 호소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내가 기가막혀서 정말 빠져나갈 구멍이 없는 수렁속에 있습니다.
이 부르짖음을 기억하게 하는 것입니다. 분명 우리가 수렁속에서 살려달라고 목이 터져라 외치고 있고, 종래에는 목에서 소리가 나오지 않을 정도에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셨다. 그리하여 우리를 건져내어 다시 견고하게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개구리재앙을 통해, 너희가 그렇게 깔보고 쉽게 취급했던 개구리가 너희 애굽을 얼마나 성가시고 힘들게 하고 스트레스받게 할 것인지 보여주는 것입니다.
바로 우리를 건져내신 분, 우리의 부르짖음을 듣고,
오늘 말씀 7절처럼
오늘 본문을 보면, 개구리가 없는 곳이 없습니다. 바로의 침대에도 개구리가 있습니다. 심지어 밥그릇에도 개구리가 들어가 있고, 밥을 짓는 솥에도 개구리가 들어가 있습니다. 자고 있거나 움직이고 있으면 개구리가 자연스럽게 달라붙어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생활이 제대로 될 것같습니까? 특히 개구리는 몸에 점액이 있습니다. 개구리가 붙었으면 그 밥그릇은 다시 씻어야 합니다. 씻을 물을 구하러 나가면 하천이고 시내고 강이고 개구리가 가득차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애굽을 향해 경고하시는 것입니다. 너희가 계속 이스라엘을 보내지 않는다면, 아예 이스라엘로 애굽을 완전히 채워버리시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애굽인은 생활자체가 되지 않고 애굽땅에 사는 것자체, 자신의 집에 있는 것자체가 스트레스가 되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라고 응답하신 분이 바로 우리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우리에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그렇게 모든 곳에 개구리가 있으면 그 땅이나 집의 실질적인 주인은 누구입니까? 개구리입니다. 고려때까지 우리나라땅이었던 대마도가 결국 일본의 해적질, 그 난장판에 밀려 떠난 후, 일본땅이 된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애굽에서 애굽인을 쫓아내어버리겠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내보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건져내기 위해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그저 수렁 밖, 구덩이 밖에서 장대를 주어 우리로 잡게 했습니까.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수렁에 빠지신 것입니다. 왜냐면 아무리 수렁 밖에서 장대를 내밀어도, 우리는 이미 그 장대를 잡을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수렁밖으로 나갈수 있도록 예수님 자신의 몸으로 발판을 되어 주셨습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애굽은 왜 이스라엘을 핍박하고 있습니까. 처음에는 이스라엘에게서 힘을 뺏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반항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지금 이스라엘은 애굽의 풍요, 사치를 위해 동원되고 있습니다. 벽돌을 굽고 궁전을 만드는 일을 하기 위해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첫 번째 재앙, 피재앙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나일강이 악취가 나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바랬던 풍요는커녕, 생명조차 위험함을 보여준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재앙의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14절에 보면 그 결과 땅에서 악취가 나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 재앙으로 물이 썩었다면, 두 번째 재앙으로 땅이 썩은 것입니다. 물과 땅이 번갈아가며 썩었습니다. 그 상황에서 애굽이 찾는 풍요, 나일강의 신 하피이든, 개구리머리를 가진 헤케트이든 무슨 힘을 발휘할 수 있겠습니까.
발판이 마치 온갖 사람들의 발에 밟혀서 더럽혀지고 부서져가는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온갖 수치와 조롱을 당하셨습니다. 그 모든 것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한 과정, 우리를 대신해, 우리는 드릴 수 없는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는 과정이었습니다.
제사장들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서서 매일 똑같은 제사를 드립니다. 쉽게 말해 잡을수도 없는, 잡아봐야 이 수렁에서 벗어날 때까지 매달리고 있을 힘도 없는 장대를 계속해서 들이민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장대를 주었으니 내 임무는 다했다는 식으로 말하고 있었습니다. 결코 그 수렁, 죄악의 구렁텅이, 사망과 지옥에서 우리를 구원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이 그 땅에서 사는 이유 그 자체를 없애버린 것입니다. 나일강이 주는 물과, 비옥한 땅 자체를 없애버리신 것입니다. 그를 통해 여호와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애굽에 똑똑히 보여주신 것입니다. 애굽이 믿고 있던 살아있는 신 바로는 아무것도 못합니다. 생명의 젖줄인 나일강은 썩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땅이 썩었습니다. 가는 곳마다 온통 시체썩는 냄새밖에 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치시니, 이 땅에 풍요는커녕, 죽음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이 애굽땅을 정복하셨음을 나타내십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그 십자가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그 죄악의 수렁에서 우리를 건져내시고, 그리스도 자신의 피로 우리를 깨끗하게 씻기셨습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드리신 한 영원한 제사는 바로 이런 제사입니다. 우리가 죄악의 수렁을 올라갈 발판이 되어주신 제사입니다. 그 수렁의 온갖 오물들을 우리 대신 다 뒤집어쓰신 제사였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 제사였습니다.
이 모든 것은 효과적이었는지 드디어 바로의 태도가 조금은 바뀌게 됩니다. 첫째 재앙, 그 극심한 재앙에도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던 바로가 먼저 모세를 불러서 여호와께 간구해달라라고 요청을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바로는 왜 지금 당장 간구하라가 아니라 내일하라고 할까요? 바로라고 개구리에서 예외였습니까? 8절에 바로는 ‘나와 내 백성’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9절이나 11절이나 처음에 왕, 바로를 먼저 언급합니다. 피재앙과는 달리 바로역시 개구리와 함께 먹고 자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바로 입장에서 식사하고 있는데 개구리가 뛰어나와 밥상을 엎어버리는 꼴에서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지 않겠습니까. 자고 있는데 이마에 개구리가 찰싹 달라붙는 상황을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왜 바로는 내일하라고 할까요?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오를 수 있는 발판이 되어주신 예수님을 높이셨습니다. 반대로 그 모든 오물들을 투척하여 괴롭혔던 원수들을 예수님의 발판으로 삼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원수들이 발판이 되는 그때, 재림의 때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바로의 믿음의 근간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지팡이를 뱀으로 바꾼 것과 물을 피로 바꾼 것, 개구리가 올라오게 한 것, 거기에 공통적으로 나오는 자들이 있습니다. 애굽의 요술사들입니다. 그들이 그들의 비술로 행했습니다. 그리고 아마 그런 비술을 행하는 과정에서 성경에 나오지 않지만 여러 가지 의식들이 행해졌을 것입니다. 마치 엘리야와 바알의 선지자들의 대결과 같이 말입니다.
여기에 우리의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는 수많은 제사장들에 둘러쌓여서 살아갑니다. 이렇게 하면 된다. 저게 맞는거다. TV에서 나오는 것들로부터 시작하여 온갖 말들과 행동들, 그에 따라 나타나는 결과들까지 우리를 유혹하며 수렁속에 거하게 하고 있습니다. 어차피 수렁속에서 나가게 하지 못하는 장대에 불과하지만, 마치 구원의 수단이며, 행복의 길인 것 처럼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 당시, 믿는 자들은 믿지 않는 자들에게 조롱당했을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은게 자랑이냐. 반역했다는 뜻아니냐. 반역자가 무슨 구원자가 되겠느냐. 또한 우리도 조롱당하고 있습니다. 왜 시간들여 기도하냐. 예배하냐. 이 시국에 모여서 예배하면 불안하지도 않냐. 헌금은 왜 드리냐 돈아깝지도 않느냐.
바로는 아마 모세 역시 이 개구리재앙을 해결하기 위해 요술사들이 했던 것과 같은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여태까지 자신이 보고 경험한 것이 그런 것이었으니까요. 그러니 바로는 하룻밤동안 철야를 하든지 뭔가 의식을 해서 모든 준비를 마치고 시행하라는 뜻으로 내일하라고 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러면서 마치 더욱 좋은 삶의 길인 것처럼, 우리에게 우리의 욕망대로 살아라. 힘드냐? 그래도 살아라. 라고 위로인냥 말합니다. 때로 우리는 그런 말들, 그런 노랫가사들에 위로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진정한 위로는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 수렁에서 우리를 건지기 위해서 우리의 발판이 되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 대신 온갖 수치와 모욕, 고통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말그대로 하나님을 자기식으로 알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은 우리가 가진 풋익은 열매를 조롱하며 그거 버리고 내가 주는 걸로 살아라라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구주께서는 우리가 가진 이 풋익은 열매를 기뻐받으시며, 그 열매를 영원히 온전한 열매, 모든 사람이 탐내는 열매, 마치 아담과 하와가 본 선악과와 같이 아름다운 열매로 만들어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재앙을 물러가고, 땅에서 썩는 냄새도 사라졌을 때, 바로는 다시 굳은 마음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개구리재앙을 통해 알려주려 했던 것을 하나도 알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우리 모습 그대로, 우리가 가진 것 그대로 하나님께 드릴 수있기를 바랍니다.
결론
지금도 우리를 위해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님께서는 하늘의 성전에서 예배드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편에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40 1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이 모든 사실을 우리에게 한 가지 교훈을 줍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기적으로 우리에게 역사하신다 할지라도, 우리가 준비되어 있지 않다면, 우리는 그 기적을 오용하거나 내식으로 해석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바로의 마음이 그렇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부분입니다. 애굽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것, 정확히 애굽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영광과 권능을 보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2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
3 새 노래 곧 우리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내 입에 두셨으니 많은 사람이 보고 두려워하여 여호와를 의지하리로다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바로의 모습은 이스라엘에게 경종이 되지 못했습니다. 바로가 그렇게 당하고, 애굽인이 그렇게 당하는 것을 보며, 원수가 몰락함을 기뻐하는 것만이 정말로 그 때, 이스라엘백성들이 해야할 것이었을까요. 물론 사람인지라 소위 말해 고소하다, 속이 시원하다는 느낌은 들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정말로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나역시 바로처럼 굳은 마음은 없는가. 나역시 저 애굽인들처럼 내 식으로 하나님을 따르지는 않을까라고 생각해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지혜가 없었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도 광야생활을 견디지 못한 것입니다. 애굽인들은 장자만 죽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자녀만 남기고 자신들이 죽었습니다.
우리의 부르짖음을 들으시는 하나님, 우리를 끌어올리시는 하나님, 그를 위해 발판이 되어주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을 위해 우리가 우리의 입에 하나님을 향한 찬양이 있길 원합니다. 그분을 위한 기도, 그분의 향한 기도가 우리의 입술에 있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앞에 선한 지혜를 가지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향한 분별력을 가지기 원합니다. 모든 상황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아는 자가 되길 원합니다. 누구를 보고 비방하거나, 모르는 척하거나 속이 시원하다하거나 그런 것이 아니라 오직 자신을 돌아봄으로,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더욱 정확히 분별할 수 있는 거룩한 지혜가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길 소망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역시 다른 누군가의 발판이 되어줄 수 있는 견고한 사랑과 믿음이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마무리기도
기도제목(간단하게)
말씀을 기억하며
새롭게 오실 담임목사님을 위해
김진리 박종휘 선교사님의 가정과 사역을 위해서 주여 일창하신후 기도하겠습니다.
환우들을 위해
마지막으로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주여 일창하신후 기도하겠습니다.
마무리기도
주기도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 나이다.
- 아멘 -
광고
마지막으로 개인제목을 가지고 주여삼창후 기도하겠습니다.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