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2.19.수요예배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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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순서
심호흡하고 천천히 말하며 진행하자
ㅇ다함께 묵상기도드림으로 삼일예배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ㅇ찬송가 303장 다함께 찬양드리겠습니다.
ㅇ김금자 권사님 기도드리겠습니다.
ㅇ오늘의 말씀은 출애굽기 9장 1절에서 7절 말씀입니다. 구약 94페이지입니다. 교독하겠습니다.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바로에게 들어가서 그에게 이르라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
17 그들이 그대로 행할새 아론이 지팡이를 잡고 손을 들어 땅의 티끌을 치매 애굽 온 땅의 티끌이 다 이가 되어 사람과 가축에게 오르니
2 네가 만일 보내기를 거절하고 억지로 잡아두면
3 여호와의 손이 들에 있는 네 가축 곧 말과 나귀와 낙타와 소와 양에게 더하리니 심한 돌림병이 있을 것이며
18 요술사들도 자기 요술로 그같이 행하여 이를 생기게 하려 하였으나 못 하였고 이가 사람과 가축에게 생긴지라
4 여호와가 이스라엘의 가축과 애굽의 가축을 구별하리니 이스라엘 자손에게 속한 것은 하나도 죽지 아니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고
5 여호와께서 기한을 정하여 이르시되 여호와가 내일 이 땅에서 이 일을 행하리라 하시더니
19 요술사가 바로에게 말하되 이는 하나님의 권능이니이다 하였으나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게 되어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더라
6 이튿날에 여호와께서 이 일을 행하시니 애굽의 모든 가축은 죽었으나 이스라엘 자손의 가축은 하나도 죽지 아니한지라
7 바로가 사람을 보내어 본즉 이스라엘의 가축은 하나도 죽지 아니하였더라 그러나 바로의 마음이 완강하여 백성을 보내지 아니하니라
The Holy Bible: New Korean Revised Version. (n.d.). (electronic ed., ). South Korea.
ㅇ미리암찬양대 찬양드리겠습니다.
설교
서론
서론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애굽에 내리신 다섯째 재앙입니다. 오늘도 함께 이 다섯째 재앙을 살펴보며,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오늘 본문은 셋째 재앙인 이 재앙입니다. 오늘 본문을 살펴보며 하나님의 뜻을 살펴보기를 바랍니다.
본론
본론
하나님께서는 이전 재앙 3재앙을 제외한 재앙들과 같은 방식으로 모세를 불러서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이제 그 말씀에는 차이가 생깁니다.
오늘 본문인 이 재앙은 다른 재앙과 다른 점이 2가지가 있습니다.
다섯째 재앙에서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말씀하실 때, 가장 큰 특징은 하나님께서 스스로를 ‘내가’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가’라고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둘째 재앙과 넷째 재앙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분명 ‘내가’라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다섯째 재앙은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까지의 패턴대로라면 3절의 ‘여호와의 손’도 ‘내 손’이라고 했을 것이고, 4절과 5절도 ‘여호와’대신 ‘나’라고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 4절과 5절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그 결과 현재 말씀하시는 하나님과 4절과 5절에서 행하시는 하나님이 다른 분인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이런 방식으로 바로에게 말하고 있을까요.
첫 번째 다른 점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경고가 없다는 점입니다. 지금까지 나온 재앙이나 이후의 재앙을 보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재앙을 내리시기 전에, 항상 모세를 불러 바로에게 선포를 한 후에 재앙을 내리십니다. 이 재앙이 그냥 일어나는 자연재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애굽에 내리는 심판임을 분명히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을 보면 이 장면이 나오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런 말없이 모세를 불러 아론을 통해 이 재앙을 일으키십니다.
그 이유는 두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로는 이 재앙, 셋째 재앙이 하나님의 역사임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이를 알 수 있는 대목이 18절과 19절입니다. 요술사가 나와서 하나님의 역사를 흉내내려 했다는 것은 바로가 셋째 재앙이 그냥 자연재해가 아니란 것을 분명히 인식했다는 것을 뜻합니다.
첫째, 바로와 애굽에게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확실하게 알게 하려 하시는 것입니다.
두 번째 다른 점은 재앙의 끝이 기록되어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다른 재앙들은 시작과 끝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셋째 재앙은 시작은 있는데, 끝이 없습니다. 다른 재앙같으면 바로가 부르던지 아니면 첫째 재앙처럼 바로의 반응이 나오고 며칠이 지났다든지 그 재앙이 어떻게 끝났는지 알 수 있는 말이 있는데 셋째 재앙은 어떻게 끝났는지가 적혀있지 않습니다.
사실 3번째 재앙에서는 하나님께서 재앙을 불러 일으키시지만,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구별한다거나, 이런 재앙을 행하신 분, 그 신의 이름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말씀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모세가 선포하기는 하지만, ‘여호와’라는 하나님의 성호는 강조되는지는 않습니다.
이것은 아직도 셋째 재앙이 진행되고 있는 와중에 넷째 재앙 파리 재앙이 일어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어떤 학자들은 셋째 재앙과 넷째 재앙을 하나로 묶기도 합니다. 그러면 10재앙이 아니라 9재앙이 되는데, 이것이 그 당시 애굽이 말했던 9개의 활도 같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넷째재앙부터는 달라집니다. 넷째 재앙에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거룩한 성호를 분명히 바로에게 각인시키십니다. 이제 다섯째 재앙에서는 여호와, 이스라엘을 사랑하시고, 제사를 받기 원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애굽의 신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9개의 활이란 것은 당시 애굽에서 자신들의 대적, 적대국을 묶어서 부르는 명칭이었습니다. 만약 3재앙과 4재앙을 묶게 되면 딱 9재앙이 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애굽의 대적이 되셨다는 의미가 됩니다.
그러기 위한 가장 첫 번째 단계로, 하나님의 성호, 그 거룩한 이름으로 움직이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셋째 재앙을 분명히 선포하셨기 때문에 셋째 재앙과 넷째 재앙을 하나로 묶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10가지 재앙을 통해 하나님께서 애굽의 대적이 되신 것을 넘어, 애굽을 완전히 정복하셨다라는 것이 더욱 올바른 해석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와 이어지는 것으로 다섯째 재앙이 가축들을 죽이는 재앙으로 되게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다른 재앙과는 달리 셋째 재앙은 이런 차이점을 두고 진행하셨을까요.
왜냐면 그 당시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 우상들은 모두 가축의 모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몇 개를 살펴보면, 아피스는 수소의 형상을 하고 있습니다. 이시스는 암소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아몬은 양의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외 앞서 있었던 개구리역시 신의 모습중 하나입니다.
가장 큰 이유는 바로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생각됩니다. 둘째 재앙 끝에 바로는 어떻게 약속합니까. 이스라엘을 보내주기로 약속을 합니다. 하지만 바로는 그 약속을 지키지 않습니다.
또한 이것은 앞서 8:26에서 모세가 그렇게 말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기억을 더듬기 위해 다시 말씀드리면, 바로가 애굽안에서 제사를 하라고 하니 모세가 안된다고 하며, 그렇게 하면 애굽인들이 끔찍하리만큼 싫어해서 돌을 들어서 이스라엘을 칠거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셋째 재앙을 통해 바로에게 하나님께서 어떤 분인지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사람과의 약속, 국가간의 약속을 어기면 어떻게 됩니까. 많은 문제가 야기되고, 그에 따라 엄청난 손해를 보게 됩니다. 하물며,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는 바로에게 하나님께서 어떻게 나오실지를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제사는 기본적으로 무엇을 드리는 것입니까. 양이나 소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를 대신해 양이나 소의 피로 보석금을 내는 것이 제사의 기본입니다. 그런데, 앞서 살펴본바와 같이 양이나 소는 애굽에서 신의 모습입니다. 신의 모습을 가진 동물을 죽이고 각을 떠서 그 피와 살로 제사를 드린다는 것은 애굽인들에게 무슨 의미일까요. 자신들의 신을 죽이고 그 피와 살로 다른 신을 섬긴다는 뜻입니다. 절대 안될 노릇입니다.
물론 바로는 그 약속을 약속이라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에게 내려주는 은혜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왜냐면 바로는 애굽의 통치자이자, 살아있는 신이지만, 이스라엘은 노예민족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잘 쳐줘서 노예민족의 신, 애굽의 입장에서 듣도 보도 못한 하급신과 이야기한 것뿐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보다시피 애굽의 요술사들도 하나님의 기적을 따라했습니다. 우리 입장에서야 따라했다라고 넘어갔지만, 요술사란 말은 그냥 마술사가 아니라 그 당시 종교의 제사장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요술사가 하나님의 기적을 따라했다는 것은 이 기적은 애굽의 우상들도 충분히 할 수 있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걸 우리의 피부와 와닿게 설명하자면 이런 것입니다. 열대 우림에 들어가면 지금도 식인을 하는 부족이 있습니다. 그들은 정말로 식인을 하는 자도 있지만, 다른 의미, 적들을 정복했다거나, 조상을 섬기는 의미로 하는 식인을 하는 부족도 있습니다. 소위 조상의 살을 먹음으로서 그 권위와 능력을 이어받는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바로의 입장에서 꿇릴 것이 없습니다. 신들의 위상이 비슷하다면, 남은 것은 사람의 위치인데, 애굽의 왕과 이스라엘 백성은 비교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가 그 부족에 가서 살게 되었다고 합시다. 그리고 그 부족에서 우리가 엄청난 존경을 받는 원로, 추장과 같은 위치가 되었다고 합시다. 그렇게 살고 있었는데 가족이 왔습니다. 온 마을이 기쁨으로 맞이했습니다. 그런데, 오는 길에 사고가 있어서 우리의 가족이 그만 죽어버렸습니다. 이제 장례를 지내야죠. 그런데 그 부족에서 우리를 너무 존경해서 우리의 가족의 시신을 다같이 구워서 먹겠다고 합니다. 어떻게 반응하겠습니까. 순순히 그래라고 하겠습니까. 당연히 목숨을 다해 반대할 것입니다. 애굽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보는 눈이 이랬다는 것입니다. 애굽에서는 결코 일어나서는 안될 일입니다.
이 때문에 2번의 재앙에도 불구하고 바로는 그 마음이 더욱 강퍅해졌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한 약속을 무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실제 역사속에서 페르시아의 캄비세스왕이 애굽과 전투를 벌인 적이 있습니다. 그때, 페르시아의 왕은 양과 소같은 애굽에서 신성하게 여기는 동물들을 앞세웠습니다. 애굽 군대는 감히 그 가축들을 향해 칼과 창을 휘두르지 못했고, 그 결과 애굽군은 패배하여 도망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셋째 재앙을 아무런 경고없이 내리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셋째재앙부터는 애굽의 요술사들이 따라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요술사들이 못했다는 것은 애굽신들이, 그 우상들이 아무런 능력이 없다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 셋째 재앙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바로에게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확실하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가 있었기 때문에, 애굽땅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지내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보이신 수단, ‘이’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자신을 확실히 보이시려면 더욱 좋은 수단이 있었습니다. 대표적으로 벼락입니다. 우리나라나 이스라엘이나 벼락은 하늘의 심판, 여호와의 불로 불려 졌습니다. 어느 문화권이든 하늘에서 떨어지는 번개는 신의 심판과 능력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아니면 나중에 일곱 번째 재앙에 나오듯이 하늘에서 우박을 내리게 하든지 그 이전 여섯 번째 재앙처럼 악성종기, 즉 질병으로 치셔도 됩니다. 질병이나 날씨도 마찬가지로 인간이 어쩔 수 없는 신의 영역으로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런 애굽사회의 모습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가축을 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애굽인들이 그렇게 소중히 여기는 동물들이 떼죽음을 당하는 모습을 보게 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 자신들이 섬겼던 신들이 아무것도 아니며, 그 모든 우상들과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애굽과 바로에게 알게하기 위해서, 각인시키시기 위해서 다섯째 재앙을 실행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를 택하셨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이, 벼룩, 모기, 흡혈파리등 사람의 피를 빨아먹는 벌레 종류를 말합니다. 이중에 어떤 것인지는 학자들도 모릅니다. 그래서 전통적으로 번역을 ‘이’라고 하지만, 모기라고 보는게 좋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애굽인들에게 심판을 경고하기 위해서입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이 귀찮고 짜증나는 벌레들로 하나님의 능력을 보이셨을까요.
오늘 본문에서 여호와라고 하는 중요한 이유가 심판입니다. 지금까지는 하나님께서 나와 너, 1:1의 관계로서 바로에게 다가갔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쉽게 말해 공식적인 계약서와 같습니다. 계약서에는 그 사람에 대해 객관적으로 기술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바로와 애굽에게 은혜를 베풀지 않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접근하겠다는 하나님의 의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피재앙을 제외하고 애굽인들의 목숨이 직접적으로 위협을 받았던 적이 있습니까? 심지어 피재앙조차 정말로 애굽인들이 죽기 전에 끝났습니다. 하지만 가축의 재앙이후 나타나는 재앙들은 애굽인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재앙들이 나타납니다. 악성종기가 애굽인들의 피부에서 돋아나고, 하늘에서 불타는 우박이 떨어져서 논밭의 작물뿐만 아니라, 밖에 나가있는 가축과 사람도 죽입니다. 메뚜기가 와서 조금 남아있던 먹거리들을 다 없애버립니다. 이와같이 이제 애굽인들의 삶의 질이 악화되고, 환경이 나빠지는 정도가 아니라, 생명을 위협하는 재앙들이 이어집니다. 이것은 이제 하나님의 기다리심, 사랑의 인내가 끝나고 심판이 있을 것이라는 선언입니다. 그 때문인지 5절과 6절에서 가축의 죽음을 ‘이 일’이라고 표현하는데 여기서 나타난 단어가 사건이나 일과 관련해서 쓰인 경우, 그 사건은 ‘심판’과 관련해서 쓰입니다. 창12장에서 아브람이 사래를 누이라고 바로를 속인 사건에서도 ‘이 일’로 큰 재앙을 내렸다고 합니다. 그 외에도 약 200번 정도 이 단어는 심판과 관련해서 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애굽을 향한 관용과 인내를 끝내고 심판을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본문 16절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본문 16절에는 하나님께서 땅의 티끌을 치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티끌이라는 말은 먼지, 흙으로 번역되는 단어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선하신 분이심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것은 땅에서 나온 것입니다. 16절에 치는 것도 공기중에 떠다니는 먼지가 아니라 마른 흙에서 나온 먼지, 티끌을 뜻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어디에 하나님의 선하심이 나타나고 있습니까. 이스라엘의 가축을 구별하여 죽이지 않은 것이 하나님의 선하심입니까. 오히려 그것은 공의의 심판이라고 봐야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첫째로, 티끌이 이가 되어 사람을 공격한다는 것은 땅이 이제 애굽을 공격한다는 뜻입니다.
그것은 바로 가축의 죽음 자체에 있습니다. 왜 지금 애굽인의 가축들이 떼몰살을 당하고 있습니까. 애굽인의 죄 때문입니다. 바로가 마음을 강퍅하게 하고 있고, 여전히 이스라엘을 학대하고 있는 애굽인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죄 때문에, 그들의 가축이 죽고 있습니다. 왜 이게 하나님의 선하심입니까. 조금만 달리 생각해보겠습니다. 제사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무엇입니까. 누군가의 희생, 그것이 양이든지 소이든지 비둘기든지 그들의 생명으로 다른 자의 죄를 속한다는 부분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이 가축들은 누구의 죄 때문에 희생되고 있습니까. 애굽인 자신들의 죄 때문에 자신들의 소와 양이 말과 나귀가 낙타가 희생되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께서는 애굽인 그들이 그렇게 혐오하고 있는 제사를 억지로 받아내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면 애굽인들을 모두다 죽이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그들의 죄악을 끊고 돌이킬 기회를 주기 위해서입니다.
그 이전에 2가지 재앙, 물이 피가 되는 것과 개구리재앙은 한마디로 물이 애굽을 적대하며 공격한다는 뜻이었습니다.
동시에 이스라엘에게 알려주기 위해서입니다. 자신들의 주인 애굽인들이 그렇게 하나님께 드리는 피의 제사를 혐오했는데, 그 결과 제물이 되어야 하는 가축들이 제사와는 비교할 수 없는 고통과, 끔찍한 모습으로 죽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물이 애굽을 공격한 결과 개구리재앙의 마지막에 보았듯이 땅이 썩어버렸습니다. 바로는 땅이 썩은 것이 좀 나아지자 약속을 뒤집어 엎어버렸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제 땅이 애굽을 공격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때,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들이 10가지 재앙을 내리시는 하나님을 환영하고 기대하고 있었을까요. 이스라엘중에서도 분명히 애굽인들과 결탁해서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들은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더라도, 소위 착한 애굽인을 만나 배려받으며 그럭저럭 사는 이스라엘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당연히 그런 자들은 모세와 아론의 행보,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역사에 불만이 있었을 것입니다.
마치 아담이 죄를 지은 후, 땅이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린 아담이 땅에게 저주를 받은 것처럼, 하나님과의 약속을 저버린 바로와 애굽은 땅으로부터 공격을 당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다섯째 재앙을 통해 이야기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정말로 권세와 능력을 가지고 이 모든 것을 심판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알려주십니다.
그리고 둘째로, 이 티끌은 개구리처럼 이스라엘을 상징합니다.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를 받아주시고 살길을 열어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게 하십니다.
롯이 떠난 후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는 :16절은 이렇게 약속하십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애굽의 모든 가축이 죽었다라고 말씀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모든 가축이 죽었습니까. 아닙니다. 그렇다면, 일곱 번째 우박재앙에서 들에 나가 있다가 죽은 가축은 어디서 나온 것입니까. 또, 나중에 이스라엘이 출애굽할 때, 이스라엘을 쫓아온 애굽군대가 타고 있던 말들은 어디서 나왔겠습니까. 학자들은 이스라엘이 살고 있는 고센땅은 이 재앙에서 빼놨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가축과 함께 있던 애굽인의 가축들은 죽지 않았을 것이다 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16 내가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그렇다면, 왜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는 모든 가축이 죽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시고, 그대로 된 것처럼 이야기하시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하지 않으실까요.
그리고 :14에서 야곱에게 이렇게 약속하십니다.
아담과 하와를 생각하십시오. 그들이 죄를 짓고 그 자리에서 곧장 죽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그 자리에서 즉시 죽을 것이라는 뉘앙스였는데, 죽었습니까. 잘 살면서 자자손손 번성하지 않았습니까.
14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나님께서는 심판을 좋아하시지 않습니다. 분명 심판하지만, 그 속에 결코 은혜를 잊지 않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애굽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이스라엘에게 은혜를 베풀고, 이스라엘에게 선대하는 애굽인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것입니다.
이 두가지 말씀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땅의 티끌과 같이 많아진다는 것을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약속을 따라서 애굽에서 이스라엘은 땅의 티끌과 같이 많아졌습니다.
정말 이스라엘을 멸시하고 깔보는 애굽인이었다면, 종의 가축과 주인의 가축을 섞어서 기르게 하지는 않았을 테니까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즉, 이 티끌은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이렇게 신실하게 성취되었는데, 그 성취를 못마땅히 여기고 공격하는 애굽을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땅의 티끌을 들어 쓰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선하신 분이십니다. 우리에게 선하신 분이시며, 이 죄악된 세상에 선하신 분이십니다. 어떤 때, 우리는 악인이 망하지 않는 모습을 봅니다. 저사람이 믿는자가 맞나 싶을 정도의 모습도 보게 됩니다. 우리는 울분에 차고 답답해할 때도 있지만, 그때도 하나님께서는 선하신 분이십니다.
지금 애굽은 이스라엘을 착취하고 그들의 피와 땀으로 잘먹고 잘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땀의 티끌로 피를 빠는 벌레를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그 벌레, 이나 모기로 애굽을 공격하는 것입니다.
그를 사랑하시고 살길을 열어주십니다. 우리가 바로 그 사랑, 말로 다할 수 없는 십자가의 사랑으로 구원을 받은 자들입니다. 즉,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의 증인들입니다.
당장은 너희가 하나님의 백성을 공격하며 착취하며, 못살게 굴어서 잘먹고 잘사는 것같지만, 너희가 내 백성의 피를 빤만큼 나역시 너희의 피를 빨아내어 버리시겠다라고 말씀하시며,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선하심을 잊지 않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알며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어나가십니다. 또한 정말로 완벽하게 애굽에게 그대로 돌려주고 있습니다. 우리를 보호하시고 지키시는 하나님께서는 이토록 공의로우신 분이십니다.
동시에 결국 끝까지 하나님을 무시했던 자들이 우박재앙때 자신의 가축과 종들을 죽게 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결국은 장자의 죽음으로 10재앙이 끝났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사랑으로 우리를 지키시며, 공의로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거부한 세상을 공의로 심판하시며, 우리를 끝까지 하나님의 품안에서 지켜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래 참으시지만, 영원히 참으시지는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는 잊어버려도 결코 잊지 않으시고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우리가 설혹 하나님의 약속을 잊어버리고, 또한 믿음없는 모습으로 살아도 하나님께서는 잊지 않으시며, 그 모든 것을 말씀대로 갚아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았다면, 그 선하심을 항상 앙망하며, 우리역시 하나님의 선하심을 따라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상황을 보며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자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상황을 살피는 자입니다. 이 순서가 뒤바뀌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언제나 하나님의 선하심을 알고 삶으로 그 선하심을 나타낼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바로는 이런 하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그의 마음은 강퍅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을 강퍅하게 한 방법은 간단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임을 알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어떻습니까.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의 공의 앞에서 부드럽습니까. 완악합니까. 우리가 모든 것을 살피시고 또한 잊지 않고 하나하나 갚아나가시는 하나님을 다시한번 생각하기 바랍니다. 우리는 잊어도 하나님께서는 잊지 않으십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안에 있다면, 기쁨이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공의에서 벗어나 있다면 슬픔이 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이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우리 삶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으로 바꾸어갈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ㅇ교회소식은 주보를 참고하시기바랍니다.
ㅇ2020년 제 1차 학습, 입교, 유아세례, 세례교육을 실시합니다. 구역예배보고서 하단을 참고하시어 사무실로 접수해주시기 바랍니다.
ㅇ이번주 금요기도회는 연합구역예배로 드리며 특송은 6교구입니다.
ㅇ 김중식 목사님 원로추대예배가 있습니다. 일시는 2월 22일 이번주 토요일 오후 2시이며, 장소는 우리교회입니다.
찬송가 540장 다같이 찬양드리겠습니다.
주기도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 나이다.
- 아멘 -
ㅇ다함께 자리에서 일어나셔서 좋으신 하나님 찬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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