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설교
Notes
Transcript
200219(수)
은혜 베풀기 1
19 시어머니가 그에게 이르되 오늘 어디서 주웠느냐 어디서 일을 하였느냐 너를 돌본 자에게 복이 있기 를 원하노라 하니 룻이 누구에게서 일했는지를 시어 머니에게 알게 하여 이르되 오늘 일하게 한 사람의 이름은 보아스니이다 하는지라
20 나오미가 자기 며느리에게 이르되 그가 여호와로부 터 복 받기를 원하노라 그가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에게 은혜 베풀기를 그치지 아니하도다 하고 나오 미가 또 그에게 이르되 그 사람은 우리와 가까우니 우리 3)기업을 무를 자 중의 하나이니라 하니라
21 모압 여인 룻이 이르되 그가 내게 또 이르기를 내 추수를 다 마치기까지 너는 내 소년들에게 가까이 있으라 하더이다 하니
22 나오미가 며느리 룻에게 이르되 내 딸아 너는 그의 소녀들과 함께 나가고 다른 밭에서 사람을 만나지 아니하는 것이 좋으니라 하는지라
23 이에 룻이 보아스의 소녀들에게 가까이 있어서 보 리 추수와 밀 추수를 마치기까지 이삭을 주우며 그 의 시어머니와 함께 거주하니라
자신이 행하여야 하는 의무 보다 더 큰 것을 다른 이들에게 베풀어 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 니다. 심지어 형제라 할지라도 손해 보는 것을 감 당하지 않으려 하는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손해 를 감당하기 좋아하지 않는 수준이면 다행입니다. 이것을 넘어서서 서로 더 많이 가지려고 싸움 하 는 것을 더 쉽게 접하는 오늘의 현실입니다.
우리나라 전래 동화 중 밤새도록 형님의 집 에, 동생의 집에 더 많은 쌀을 주기 위해 내것이 더 많아 보이니 서로에게 날라주는 모습은 오늘날 찾아보기 힘든 세상입니다. 그럼에도 간간히 들려오는 소식들 어려운 형편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모르는 사람을 돕는 사람들이 있는 것은 우리의 가슴을 따뜻하게 해주는 참으로 아름다운 일입니다.
오늘 말씀은 보아스의 행한 일을 가지고 이 야기 하는 나오미와 룻의 대화입니다. 이 대화를 통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시는 것과 그리고 오늘 이스라엘 된 저와 여러분들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겠습니다.
1 죽은자와 산자에게
은혜 베풀기를 그치지 않는자
룻은 자신에게 먹을 양식을 줍게하고 먹을 것을 주었고 그리고 탈곡을 하고난 이후 챙긴 보리가 한 에바 약 22리터에 해당하는 엄청난 양의 먹을 거리를 얻게 하였습니다. 이것은 밭에서 추수 이후에 주울 수 있는 정상적인 양이 아닙니다. 이것은 앞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상식을 넘어서는 배려이며 보아스가 룻에게 베풀어주는 은혜였습니다.
룻은 자신에게 선을 행한 보아스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였습니다. 우연히 그의 밭에 이르렀고 보 아스는 타작마당에 우연히 왔기 때문입니다. 그런 데 이것이 우연이라고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임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 에게 이런 은혜를 받은 것이 너무나 감사한 일입 니다. 이런 큰 은혜를 베푼 사람이 룻은 누구인지 이름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 이름을 시모 나오미에게 이야기 하였을 때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변하기 시작합니다.
지금 룻과 나오미는 소망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갑자기 나타난 보아스를 들은 나오미는 율법의 지식을 통해 이 소망없는 가정에 소망을 발견합니다. 룻은 보아스가 자신에게 베푼 친절 그 자체에 감사하여 시모 나오미에게 이야기 하였습니다. 그러나 나오미가 보는 것은 룻이 보는 것 보다 더 넓은 것과 깊은 것을 봅니다.
처음 그녀가 이 땅에 들어왔을때만 해도 도무지 사람들 앞에 나설수 없었고 나를 "나오미-기쁨"이 아니라 "마라-쓴물"이라 불러라 이야기 하지 않았습니까. 나오미는 하나님 앞에 돌아오는 것이 면목 없었습니다. 또한 한 없이 부끄러웠습니다. 그러함에도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바라며 하나님 앞으로 나아 왔습니다.
그런 그녀에게 하나님의 법을 그대로 지키고 행하는 사람이 들어왔습니다. 자신은 하나님의 법 을 떠나 자신의 생각을 가지고 살았지만 여전히 하나님의 법을 지키는 사람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녀는 비록 자신이 하나님의 다스림을 떠났지만 그녀의 남편과 그녀 역시 유력한 자였기에 하나님의 법을 모르는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룻은 단순히 일 하게 해주었고 선대받았다의 수준의 이해였지만 하나님의 말씀과 율법을 알고 있는 나오미의 시각은 달 랐습니다.
룻은 친절함에 감사하여 22리터의 곡식얻은 것을 기뻐하였지만, 나오미는 나그네 되고 과부된 자신들에게 선대하는 하나님의 법을 지키는 보아 스를 발견하고 하나님의 법을 기억하였습니다. 그 법은 수혼입니다. 형제의 집에 자녀가 없이 세상을 떠났을 때에 형제의 아내를 취하여 형제의 이름을 잇도록 하는 법입니다. 룻은 이것을 알 수 없었지만 나오미는 이 하나님의 법을 생각하였습니다.
2 기업무를자
(율법을 기억하고 행하는 자의 발견)
(구약 p.300) 함께 읽겠습니다.
5 형제들이 함께 사는데 그 중 하나가 죽고 아들 이 없거든 그 죽은 자의 아내는 나가서 타인에 게 시집 가지 말 것이요 그의 남편의 형제가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를 맞이하여 아내로 삼아 그의 남편의 형제 된 의무를 그에게 다 행할 것이요
6 그 여인이 낳은 첫 아들이 그 죽은 형제의 이름을 잇게 하여 그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서 끊어 지지 않게 할 것이니라
하나님의 법은 하나님의 백성의 이름이 끊기 지 않게 보존하십니다. 설사 사고를 당하였다할지 라도 형제로 하여금 그의 이름으로 후손을 남기게 하시고 그 집안을 보존하여 주십니다. 나오미가 기 억 하였던 것은 이 법이었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으니 하나님의 법을 생각하지 못하였는데 며느리 룻을 통하여 하나님의 법을 지켜 나그네 되고 과부된 자신들을 선대하는 자를 발견 하고 떠올린 하나님의 법이 바로 형제의 기업을 유지하게 하는 이 하나님의 법을 기억해 내었습니 다.
나오미가 고백하고 있는 것과 같이 하나님께 서 법을 기억해 주시고 하나님의 은혜 베풀기를 보아스를 통하여 행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보아스 의 은혜 베풀기이며 동시에 하나님께서 나오미와 룻에게 끊어진 엘리멜렉의 집의 이름을 계속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게 하십니다.
누구나 하나님의 기업을 사모하지 않고 하나 님의 법을 지키는 것은 아닙니다.
나오미의 집이 그러했습니다. 엘리멜렉의 가 정은 하나님의 기업을 포기하고 떠난 사람들이었 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선조 유다의 둘째아들은 죽 은 형 엘의 집을 세우기 싫어하여 하나님 보시기에 악함으로 죽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형제의 집을 세우라 명하셨지만 실질적 이득이 없는 것을 즐거운 마음으로 지키는 사람은 별로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오미는 우연히 이른 곳 에서 하나님의 법을 지키는 보아스를 룻이 만났고 소망이 끊어진듯 보였던 자신의 집에 하나님께서 은혜 베풀기를 그치지 아니하심을 발견하였습니다. 이것은 막연한 추측에서 나온 행위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법이 어떠한 것인지 아는 것에서 출발 합니다. 또한 비록 나오미 자신이 하나님을 떠났지만 하나님을 믿는 분명한 믿음을 가지고 움직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법을 주신 것을 의지하며 움직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 법을 이루실 것을 분명히 신뢰함으로 나오미는 이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나오미는 보아스가 은혜 베푸는 근거를 보아스의 신실함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 , 하나님의 율법에서 그 율법을 행하는 자를 남겨주신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압니다. 룻에게 이와 같이 말하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3 율법을 넘어선 선대의 전파(복음의 원리)
보아스는 연약한 이웃을 선대하라는 하나님 의 법을 넘어서는 행위를 하였습니다. 하나님 나라 의 원리가 이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법 을 지키는 자를 사용하셔서 그 나라를 세워 가십 니다. 하나님을 잘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의 소문을 듣고 하나님 앞에 나아오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선 하심과 인자하심을 마음껏 맛보게 하십니다. 모두 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고 알지 못 할 때에 도 하나님의 법을 지키고 신실하게 수호하는 그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그 나라를 일으키십니다.
사무엘이 그러하였고 다윗이 그러하였고 갈 멜산의 엘리야가 그러하였습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지 않음에도 하나님께서 참 신이심 을 믿고 그 말씀을 행하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사 용하시고 그들을 통해 일하십니다.
신약에서는 어떠합니까? 이스라엘은 여전합 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께서 나의 아들인 것을 하 늘의 음성을 통해 말씀하셨고 예수님의 삶의 열매 를 통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 모든 예언을 성 취하심으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임을 보이셨음 에도 하나님의 말씀되진 예수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십자가에 못밖아 버린 이스라엘입니다. 하나님의 법을 잘 알고 율벙에 완전한 자라 이야기 하는 서 기관들과 바리세인들은 앞장서서 참 하나님의 말씀되신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게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모습은 언제나 이러 합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을 사랑하셔서 사도들을 세우시고 그 사도들을 통 해 하나님의 교회를 든든히 세우십니다. 하나님께 서는 이스라엘 가운데 교회를 세우지 않으십니다. 교회는 그들 가운데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는 하 나님 말씀위에 약속의 말씀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 에 그리고 그 고백위에 교회를 세우십니다.
하나님의 복음 되신 예수그리스도를 거부한 그들을 향해 예수님께서는 무어라 말씀하십니까?
마태복음
23:27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 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 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 이 가득하도다
그들을 향해 율법을 가져 거룩해 보이지만 그 율법을 통해 생명되신 예수그리스도를 알지 못 하니 오히려 그 율법이 방해가 되는 무덤이라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왜 그러합니까? 말씀이 없기 때문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누구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알고 있었고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이 예수그리스도를 참 복음을 발견하지 못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말씀을 자신의 성공과 타인을 지배하는 도구로 사용하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인정하면 그들이 그동안 가지고 있던 그 모든 기득권들이 사라지는데 어찌 그들이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그들 자신의 선생됨이 아니라 그들의 구원이 달려 있음에도 그것보다 자신들이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이 더 중요하였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반면 자신에게 유익이 없어도 복음을 받은 자는 어떠한 삶을 살았습니까? 그들은 보아스와 같이 자신이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해 살지 않았습니다. 주의 교회와 복음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형제들과 나누어 사용하기를 즐겨하였고 자신의 생명보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더 귀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유대인들의 공회 앞에서의 위협에서도 어찌 내가 보고 들은바를 말 하지 않겠느냐 하며 주의 복음 전하기를 그치지 않았습니다.
스데반 집사는 모두가 자신을 죽이려 할 때 하늘을 우러러보며 예수그리스도의 보좌에 앉아 다스리시는 왕 되심을 고백하고 돌에 맞아 죽으면 서까지 그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실것을 기도하며 하나님 품으로 갑니다.
4 때가 이를 때 까지 자신의 일을 감당하는 룻
사랑하는 여러분 나오미가 바라본 하나님의 법을 지키는 보아스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를 발견합니다. 마땅히 행하여야할 것 이상으로 베 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누립니다.
나오 미가 하나님께 위로를 받아야 하는 당위성이 있습니까? 우리에게 하나님께 은혜 받아야할 당위성 이있습니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신실하심 때문에 하나님의 안위하심을 바라보며 나아온 룻과 나 오미를 안위하게 하시고 은혜 베푸는자 보아스를 만나게 하시고 그 은혜를 누리게 하시지 않습니까?
또한 하나님의 법을 모르는 룻에게 까지 이 하나님의 신실하신 약속의 말씀이 이르지 않습니 까? 이 거저 받은 은혜를 누리는 룻은 또한 그가 다음 일이 진행되기 까지 혼자 자신의 것을 비축 하고 축척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보아스에게 받 은 그 은혜를 그 시모 나오미와 나누며 그와 함께 거하지 않습니까?
교회는 나오미와 룻의 가정과 같이 너무나 연약해 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룻과 나오미의 가 정과 같이 보아스의 보살핌 없이는 살수 없습니다.
우리 교회 역시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 살아 갈수 없습니다. 우리는 연약한 공동체여서 엘리멜 렉의 가정과 같이 살아갑니다. 또 때로는 하나님의 참복 되신 말씀 예수그리스도의 은혜를 잊고 내가 나의 주인인 것과 같이 회칠한 무덤과 같이 바리세인과 서기관 과 같은 삶을 살아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나오미에게 룻을 붙여주셨든 룻에게 보아스를 붙여주셨듯 연약한 우리가운데 우리의 구원되신 예수그리스도를 교회의 주인으로 주셔서 저와 여러분을 죽음에서 건져주십니다.
건진 이후 혼자 내버려 두시지 않으시고 우 리 가운데 성령의 교통하심을 통해 성도가 성도를 사랑하게 하시고 모두가 세상을 따라 살아가는 가운데 신실한 믿는 자들을 통해서 교회를 정결하게 보존해 나가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은혜가 어디로부터 왔습니까? 우리의 은혜는 우리 아버지 하나님으로 부터 왔습니다. 우리는 우리 은혜 구원의 주되신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사망의 자녀가 아닌 생명의 자녀로 부름 받았습니다. 이 생명의 자녀로 부름받은 공동체인 우리 교회는 또한 룻과 같은 자들을 나 오미와 같은 자들을 보살핀 보아스와 같이 또한 하나님의 은혜가 흘러가도록 우리공동체 교회를 만들어 가야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이 땅 가운데 이루신 그 나라의 일꾼으로 쓰임 받는 우리 창원세광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