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19 [수요예배] 다시 벧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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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야곱이 라반의 아들들이 하는 말을 들은즉 야곱이 우리 아버지의 소유를 다 빼앗고 우리 아버지의 소유로 말미암아 이 모든 재물을 모았다 하는지라
2 야곱이 라반의 안색을 본즉 자기에게 대하여 전과 같지 아니하더라
3 여호와께서 야곱에게 이르시되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하신지라
4 야곱이 사람을 보내어 라헬과 레아를 자기 양 떼가 있는 들로 불러다가
5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그대들의 아버지의 안색을 본즉 내게 대하여 전과 같지 아니하도다 그러할지라도 내 아버지의 하나님은 나와 함께 계셨느니라
6 그대들도 알거니와 내가 힘을 다하여 그대들의 아버지를 섬겼거늘
7 그대들의 아버지가 나를 속여 품삯을 열 번이나 변경하였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그를 막으사 나를 해치지 못하게 하셨으며
8 그가 이르기를 점 있는 것이 네 삯이 되리라 하면 온 양 떼가 낳은 것이 점 있는 것이요 또 얼룩무늬 있는 것이 네 삯이 되리라 하면 온 양 떼가 낳은 것이 얼룩무늬 있는 것이니
9 하나님이 이같이 그대들의 아버지의 가축을 빼앗아 내게 주셨느니라
10 그 양 떼가 새끼 밸 때에 내가 꿈에 눈을 들어 보니 양 떼를 탄 숫양은 다 얼룩무늬 있는 것과 점 있는 것과 아롱진 것이었더라
11 꿈에 하나님의 사자가 내게 말씀하시기를 야곱아 하기로 내가 대답하기를 여기 있나이다 하매
12 이르시되 네 눈을 들어 보라 양 떼를 탄 숫양은 다 얼룩무늬 있는 것, 점 있는 것과 아롱진 것이니라 라반이 네게 행한 모든 것을 내가 보았노라
13 나는 벧엘의 하나님이라 네가 거기서 기둥에 기름을 붓고 거기서 내게 서원하였으니 지금 일어나 이 곳을 떠나서 네 출생지로 돌아가라 하셨느니라
14 라헬과 레아가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우리 아버지 집에서 무슨 분깃이나 유산이 있으리요
15 아버지가 우리를 팔고 우리의 돈을 다 먹어버렸으니 아버지가 우리를 외국인처럼 여기는 것이 아닌가
16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에게서 취하여 가신 재물은 우리와 우리 자식의 것이니 이제 하나님이 당신에게 이르신 일을 다 준행하라
창 31.
프루스트 현상
프루스트 현상
프루스트 현상은 향기에 의해 의도치 않게 ㅗ가거의 기억이 회상되느 ㄴ현상을 일컫는다.
그리고 이렇게 프루스트 현상을 통해 불러내진 기억은 비자발적 기억이다.
향기를 맡는 순간 그 향기와 관련된 기억들이 저절로, 비자발적으로 재생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향기, 냄새를 통해 소환되는 기억들은
‘자서전적인 기억’이어서, 그 냄새와 관련된 일화, 사건들이 떠오르게 된다.
그래서 경험한 사건들의 구체적 시간과 장소, 내용들이 떠오르게 된다.
나무 타는 냄새로 시골의 풍경이 머릿속에서 펼쳐지고,
정말 맛있게 먹었던 칼국수를 먹을 때면 그때의 상황이 떠오르는 것 같은 것이다.
여러분의 프루스트 현상을 일으키는 향기, 냄새는 어떤 것이 있는가?
그것으로 어떤 과거를 만나고 싶은가?
야곱의 기억
야곱의 기억
야곱은 오늘 본문에서 라반과 사촌들이 자신을 얼마나 속이고 있으며 눈빛이 달라져 자신을 또 다시 속이려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예전에는 자신이 속이는 자였는데, 속이는 자를 속이는 라반을 만나
20년을 고생중이다.
그러는 와중에 하나님으로부터 음성을 듣는다.
(NKRV)
3 여호와께서 야곱에게 이르시되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하신지라
3여호와께서 야곱에게 이르시되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하신지라
야곱의 기억에 조상의 땅, 야곱의 족속은
속이는 자로 살았던 과거다.
그리고 야곱의 족속은 결국 자신의 형제 ‘에서’가 시퍼렇게 살아있는 곳이다.
그러나 야곱은 이 땅을 ‘벧엘’, 하나님의 집으로 기억했다.
13 나는 벧엘의 하나님이라 네가 거기서 기둥에 기름을 붓고 거기서 내게 서원하였으니 지금 일어나 이 곳을 떠나서 네 출생지로 돌아가라 하셨느니라
(NKRV)
13나는 벧엘의 하나님이라 네가 거기서 기둥에 기름을 붓고 거기서 내게 서원하였으니 지금 일어나 이 곳을 떠나서 네 출생지로 돌아가라 하셨느니라
서원은 이랬다.
(NKRV)
20야곱이 서원하여 이르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20 야곱이 서원하여 이르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21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22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21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22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야곱이 구한 것은 지키심, 먹을 떡과 입을 옷-
굉장히 하찮고 기본적인 것들이다.
그런데, 지금 야곱은 엄청난 은혜와 풍성한 것들을 누리는 거부가 되었다.
하나님이 그만큼 엄청난 것들로 부어주셨다.
그런데, 야곱을 볼 때 하나님은 만족하지 않으셨다.
야곱이 있어야 할 자리는 그 곳이 아니었다.
야곱의 주인이 라반이 되길 원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야곱의 하나님’이 되길 원하셨다!
그렇기 위해서 하나님은 다시 야곱을 벧엘로 부르고 계신다.
야곱의 벧엘은 어디인가?
야곱의 벧엘은 어디인가?
야곱은 형에게 쫓겨나서 삼촌 집 라반으로 도망친다.
도망갈 때 퍽이나 대로로 갔을까?
쫓기는 신세에 활 잘쏘는 형이 죽이려 들면
어디서 어떻게 죽일지 모르는 신세인데?
얼마나 비참한가.
사주경계 하면서 어디서 쫓아올지도 모르는 형에 대비하기는 커녕
얼마나 힘들고 피곤하면
잠이 들어버렸다.
근데 꿈에 사닥다리가 땅위에 서 있는 것을 본다.
사닥다리는 사다리가 아니라 계단이 있는 층계다.
왜냐하면, 이 사닥다리를 쌓으려고 했던 사람들이 창세기 11장에 등장하기 때문이다.
11장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바벨탑을 쌓는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은 자기 이름을 내걸고 흩어지기를 면하자고 말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하늘 높이까지 탑을 쌓으려고 하자
하나님께서 그들의 공사를 멈추게 하시고 탑을 무너뜨리셨다.
그런데 오늘 그 탑이 야곱의 꿈에 등장한다.
보잘 것 없고, 부족한 사람 야곱에게 말이다.
그 모습이 꼭대기가 하늘에 닿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위에서 오르락 내리락 한다.
그리고 할아버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에게 했던 약속을 다시 들려주신다.
여기에 주목해야할 표현이 있다.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다.
닿았다는 단어는 ‘치다’라는 단어와 바꾸어 쓸 수 있는 단어다.
바꾸어 말하면, 하늘에 닿았다는 말은 하늘이 맞아서, 찢어져서, 하나님의 천사들을 보게 되었다는 말이다.
환상적인 사건이다.
야곱을 위해서 하늘이 찢어지다니.
보잘것 없고 왕따같고 가치없는 인간 처럼 보이는 야곱을 위해서 ‘하늘이 찢어졌다’
벧엘인가 바벨인가
벧엘인가 바벨인가
우리가 벧엘로 돌아가야 하는 이유가 여기있다.
우리 신앙의 초심, 원점으로 돌아가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재확인해야 한다.
우리가 아무리 발버둥치고 내 힘과 노력대로 해보려고 애써도,
하나님의 손가락 하나 까딱 하시는 것만 못하다.
그런데, 그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자기 자신을 찢으셨다.
자기가 사랑하시는 백성들이 세상 속에서 찢어지는 것을 보고 싶지 않으셔서
다시 내가 널 위해 하늘도 찢을 수 있어를 보여주시기 위해
벧엘로, 하나님의 집으로 부르시고 계시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 자리를 회피한다.
끊임없이 우리가 그 사다리를 만드려고 한다.
나의 피나는 노력과 삶의 흔적들이 하늘로 올라가는 사다리로 작동하리라고 믿는다.
심지어는 우리의 열정과 신앙의 깊이마저도
우리의 힘과 노력으로 되는 것마냥,
시간을 들여서 기도하는 것, 성경을 읽는 것, 예배 드리는 것-
이것이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비결이라도 되는 것처럼 생각할 때가 종종있다.
그러나 명심하라.
그것이 실재로 도움이 될 수 있을지언정,
‘본질’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제 아무리 탑을 놉게 쌓으려고 별의 별 노력을 다해도,
결국 무너지는 것을 세우기 마련이다.
우리가 서야 할 곳은 바벨이 아니라, 벧엘이다.
우리의 벧엘은 어디인가?
우리의 벧엘은 어디인가?
하나님의 사자들이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예수님께서는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예수님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 (NKRV)**
**51** 또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예수님 위에 하나님의 사자들이 등장한 것이 언제인가?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실 때다!
예수님께서 죽으실 때
성전 휘장이 찢어졌다.
성전 휘장이 찢어지면 보이는 것이 ‘천사’, ‘그룹’이다.
히브리 사람들은 지성소를 하늘처럼 여겼다.
예수님께서 찢어지실 때
하늘이 찢어지고, 천사들을 보게 되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실 때
천사들이 예수님의 시체 있는 곳으로
내려왔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때
천사들과 함께 올라가셨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천사들과 함께 권능으로 내려오실 것이다.
우리는 십자가 앞에서 온전히 하늘의 찢어짐과
천사들의 오르락 내리락 함과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자기를 찢으신, 하늘을 찢으신-
그래서 자기 아들을 아낌없이 찢으신 사랑을 보게 된다.
이 모든 일이
우리를 위해서 하신 일이다.
하나님은 야곱의 환상 중에 자신의 하늘을 찢으실 계획을 가지셨고,
자신을 드러내시기 원하셨다.
그리고 자기 아들을 찢으심으로
성소의 휘장을 찢으시고
하늘을 찢으시고
죽음을 찢어버리셨다.
그래서 우리의 벧엘은 영원히 ‘십자가 앞’이다.
야곱이 원점이 벧엘로 돌아가야 했던 것처럼
우리의 원점은 십자가다.
하나님을 아는 최고의 지식도 십자가다.
하늘의 왕이 십자가에서 찢겨지심으로 자기를 보여주셨고,
그곳을 자신의 집으로 삼으셨고,
그곳에 우리를 부르고 계신다.
세상에서 배신당하고 아프고 찢겨지는 우리를
안타깝게 보시고 안절부절하시며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던지셔서 사랑한 그 사랑이
십자가 위에서 드러났다.
우리의 벧엘, 십자가로 돌아가기 위해-
우리의 벧엘, 십자가로 돌아가기 위해-
십자가 앞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1. 우리의 주인되는 것들을 포기하는 것이다.
1. 우리의 주인되는 것들을 포기하는 것이다.
야곱은 라반이 주인이었다.
그리고 그가 ‘주었다’고 말하는 양떼와 염소떼가 주인이었다.
그가 라반을 떠난다고 할 때, 그리고 자신을 죽이려는 에서가 시퍼렇게 살아있는 땅으로 돌아갈 때,
자신이 주인삼았던 모든 것들을 포기해야 할 수도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지금의 주인 되었던 것들이 참 주인일 것인가,
나를 안전하게 돌아오게 하시는 하나님이 참 주인일 것인가.
그러나 우리의 주인되는 것들은 때로 아주 사소하다.
스마트폰이 우리의 주인될 수 있다.
우리의 명성이 우리의 주인이 될 수 있다.
돈이 우리의 주인이 될 수 있다.
어떤 결정을 하는데 있어서 매우 단순해지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 주님이라면 어떻게 선택하시고 행동하셨을까?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어떻게 선택하시고 행동하셨는가?
나는 그 행동을 다시 주님께로 돌려드릴 수 있을 것인가?
2. 주변과 환경을 정리하는 것이다.
2. 주변과 환경을 정리하는 것이다.
야곱이 사촌들과 삼촌 라반의 달라진 시선을 느꼈을 때
하나님은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주셨다.
하나님은 상황과 환경에서 떠나 맥락이 없이 일하실 수도 있지만,
야곱처럼 달라진 환경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게 하실 때가 많다.
우리가 십자가 앞으로 돌아가야 할 때,
우리의 환경과 상황 속에서 달라지는 것들을 발견할 때
그 때가 우리에게 ‘기회’일 때가 많다.
야곱은 환경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자신의 아내들을 불러 함께 갈 수 있도록 상황을 설명한다.
십자가 앞으로 돌아가는 것도
우리 혼자만이 아니라, 가족과 교우들과 ‘함께’여야 힘이 있다.
나 혼자는 한계가 있다. 함께일 때, 동기부여도, 지속성도 오래간다.
3. 벧엘로 돌아가는 것은 전적이 순종에서 다시 시작된다.
3. 벧엘로 돌아가는 것은 전적이 순종에서 다시 시작된다.
라헬과 레아가 말하는 것처럼,
하나님이 이르신 일을 다 준행할 때 벧엘로 돌아갈 준비가 된다.
전적인 순종이다.
순종이 바로 ‘프루스트 이펙트’를 시작하게 만드는 핵심 요소다.
말씀과 기도에 전념했을 때, 정말 봉사와 헌신이 즐겁고 행복했을 때,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가 넘쳐났을 때를 생각해보면,
하나님 앞에 전적인 의존과 순종이 있을 때였다.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NKRV)
34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34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예수님의 찢겨진 십자가 앞에 서려면,
예수님의 찢겨진 십자가 앞에 서려면,
자기 십자가를 지는 순종이 필요하다.
인생의 무거운 십자가를 한껏 치켜 올려 들었을 때-
우리는 찢겨진 하늘 - 십자가- 우리의 벧엘로 돌아갈 수 있다.
마라탕
마라탕
20살 때 중국을 여행한 적이 있다.
그때 돈 한 푼 없이 큰 대형 교회에 빌붙어서
정말 거지처럼 배낭하나 둘러매고-
20일 동안 옷 한 벌 입고 더럽게 다닌 적이 있다.
노숙은 기본이었고-
열차 의자 밑이 침대였다.
그때- 정말 순수하게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몸부림 쳤었다.
이동할 때도, 도시를 위해서 기도할 때도, 사람들을 만날 때도
영혼들을 향한 간절한 마음들이 가득했었다.
안되는 영어를 동원하면서 전도해보려고 애썼었다.
정말 미련하고 바보같이 순종했다.
그때 목사님을 만났었고- 제일 뜨거울 때 교사로 부르셨었고-
그래서 아마 목사님 인상에 남았었을 것이다.
중국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컵라면 하나가 있었다.
입 전체가 완전 마비 되는 것 같은 엄청나게 매운 라면이었다.
맛을 랜덤으로 골라야 했기 때문에 무슨 라면인지도 모르고
고른 라면이었는데- 너무너무 맵고 너무너무 맛있었다!
한국에 돌아와서 이게 무슨 맛인지 전혀 알 수가 없으니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티비에서 꼬꼬밥이라는 걸 소개하면서 마라 소스를 소개하는데,
마라탕을 그 유행한다고 하던 때도 먹어본 적이 없었는데,
너무 먹고 싶어져서- 마라탕 맛집을 찾아서 가 먹어보았다.
솔직히- 배가 불러서 잘 못느끼긴 했지만..
‘마라’가 무슨 맛인지는 알았다.
그 컵라면 맛.
중국에서 무슨 맛인지도 모르는데 먹었던 그 컵라면-
맛과 함께 그때의 열정의 기억들이 새록새록 생각나기 시작했다.
그때 찍었던 사진도 생각이 났다.
영어가 짧아서 정말 전도 다 한것 같고 영접기도만 하면 될 것 같은데 싶은 사람.
한 영혼에 대한 간절했던 기억.
15년 전 기억이 또렷해졌다. 프루스트 이펙트처럼.
순수하게 하나님과 영혼에 반응했던 그때, 그 기억처럼
우리 교회 공동체가 함께 우리의 벧엘- 십자가로 돌아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
내가 주인 삼은 것 내려놓고,
우리를 유혹하는 환경들도 정리하고-
전적인 하나님 앞에서의 순종으로-
십자가로 돌아가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자기를 찢으신 주님의 사랑에
엎드리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