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2.23 더리버 주일예배 (마28:16-20) '나, 어떻게 살 것인가? : 나는 왜 그래야 하는가'
1.부르심
1)무리에게 말씀하심
ㅁ 무리의 구성
2.사명
1)너희에게 명령하심
ㅁ 너희는 누구인가?
ㅁ 무엇을 행해야 하는가?
3.비전
1)끝 날까지 함께 하심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ㅁ 흰 옷 입은자들이 찬양한다
- 횐 옷입은 자들의 정체
ㅁ 휜 옷 입은자들을 구원한다
흰 옷 입은 자들의 삶
세상 끝에 일어날 일(24:29–31)
예수님은 “환난 후에” 즉시 천체에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29절). 여기서의 “환난 후”는 예루살렘 멸망 직후가 아니다. 그것은 예루살렘이 멸망하고 ‘오랜 세월이 흐른 후’이다. 이러한 해석은 병행본문인 누가복음 21:24에서 유대인들이 “칼날에 죽임을 당하며 모든 이방에 사로잡혀 가겠고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리라”는 말에 의해 지지를 받는다. 이 말은 마태복음 24:28과 24:29 사이에 일어난 일에 대한 설명이다. 누가복음에 나오는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라는 표현은 유대에서 이방으로 구원이 넘어간 신약 시대의 긴 기간을 가리킨다. 따라서 28절과 29절 사이에는 큰 시간적 간격이 있다. 즉, 28절까지는 주후 70년 예루살렘 멸망에 대한 언급이지만, 29절부터는 시간을 많이 뛰어 넘어 세상의 종말에 대한 언급이다.
주님이 다시 오실 때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릴 것이다. 어떤 학자들은 이것을 문자적 표현으로(literal language)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어떤 학자들은 상징적 표현으로(figurative language)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둘 다, 즉 문자적으로 이해해야 할 뿐만 아니라 또한 상징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문자적으로 볼 때, 주님의 임재와 함께 실제로 천체의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그리고 상징적으로 볼 때, 묵시문학에서 천체의 변화는 우주의 격변을 암시하는데, 우주의 격변은 예수님의 재림을 통하여 일어날 것이다.
예수님은 “그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고 말씀하신다(30절).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라는 표현은 예수님이 내려오실 때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다는 뜻이다.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라는 표현은 믿지 않는 자들이 인자의 오심으로 인하여 발생할 심판을 알고 후회한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볼 것인데, 성경은 항상 그리스도가 구름을 타고 오실 것이라고 예언한다.
예수님은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셔서 자기가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실 것이다(31절). “큰 나팔 소리”는 유대의 종말 사상을 반영하며, 메시아의 오심을 알리는 표식이다. 예수님은 천사들을 보내셔서 택하신 자들을 모으시는데, 땅 위에 살아 있는 신자들뿐만 아니라 이미 죽어서 하늘에 있는 신자들을 모두 모으신다(참고. 살전 4:14). 예수님은 이렇게 재림과 함께 자신의 백성들을 모으셔서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하신다. 다른 말로 하면, 이것은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백성들의 모집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수님은 이제 비유로 설명하신다(32절). 이스라엘에 있는 많은 나무들은 항상 푸른색을 갖고 있다. 그러나 무화과나무는 계절이 바뀜에 따라 잎이 나고 열매가 자라는 현상이 분명해진다. 따라서 무화과나무는 계절의 변화에 대한 적절한 예로 사용될 수 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면 무화과나무에는 수액이 올라와서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낸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그러한 무화과나무의 모습을 보면서 여름이 가까이 오고 있음을 알게 된다. 한편, 성경에서 무화과나무는 종종 심판의 주제와 연관된다.
33절의 “이 모든 일(all these things)”은 4–28절에 언급된 성전의 파괴를 의미하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는 표현은 29절부터 시작된 세상의 종말을 가리킨다. 즉, 성전이 파괴(심판)되는 것을 통하여 세상의 종말(심판)에 대한 교훈을 받으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앞에서 언급했다시피 성전의 파괴와 세상의 종말을 아무런 상관이 없는 별도의 사건으로 이해하기 보다는 가까운 미래에 있을 성전의 파괴가 먼 미래에 있을 세상의 종말을 전조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성전이 종말을 맞이했듯이 언젠가 세상도 종말을 맞이할 것이다.
34절의 “이 세대”는 주후 1세기에 예수님의 말씀을 듣던 사람들과 더불어 신약 시대 전 기간에 살고 있는 광범위한 사람들을 가리킨다. 제자들의 상당수가 살아 있을 때인 주후 70년에 성전이 파괴될 것이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40년 전에 미리 그것을 예언하신 것을 알고 예수님의 예언의 신빙성을 다시금 믿게 된다. 그들이 성전의 파괴를 목격한다면 또한 언젠가 세상의 종말이 이를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35절에서 예수님은 자신의 말씀의 권위를 확증하신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곧 있을 성전의 파괴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기를 바라셨다. 예수님은 그들이 엄청난 환난 앞에서 마음을 다잡고 복음을 전하며 살아가기를 원하셨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과 같이, 감람산 강화의 첫째 부분(24:1–28)은 주후 70년에 일어난 예루살렘 성전 파괴에 대한 예언이고, 둘째 부분(24:29–25:46)은 세상의 종말에 대한 예언이다. 즉, 감람산 강화에서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 파괴와 세상 종말에 관한 교훈을 구분하여 주신 것이다. 그렇지만 성전 파괴와 세상 종말을 너무 날카롭게 구분하지 말아야 한다. 가까운 미래에 있을 성전 파괴는 먼 미래에 있을 세상 종말을 전조한다. 예수님은 어려운 상황에 처한 제자들에게 흔들리지 말고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다. 그리고 이러한 예수님의 명령은 오늘날 여전히 참혹하고 어두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일깨워 준다. 우리는 주님이 다시 오시기까지 종말이 도래하지 않았음을 알고 열심히 복음을 전해야 한다. 그것이 날수가 다하기까지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뜨거워서 작은 소리로 읊조릴 때에 불이 붙으니 나의 혀로 말하기를
4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이 언제까지인지 알게 하사 내가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5 주께서 나의 날을 한 뼘 길이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은 그가 든든히 서 있는 때에도 진실로 모두가 허사뿐이니이다 (셀라)
6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 같이 다니고 헛된 일로 소란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거둘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7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8 나를 모든 죄에서 건지시며 우매한 자에게서 욕을 당하지 아니하게 하소서
9 내가 잠잠하고 입을 열지 아니함은 주께서 이를 행하신 까닭이니이다
10 주의 징벌을 나에게서 옮기소서 주의 손이 치심으로 내가 쇠망하였나이다
11 주께서 죄악을 책망하사 사람을 징계하실 때에 그 영화를 좀먹음 같이 소멸하게 하시니 참으로 인생이란 모두 헛될 뿐이니이다 (셀라)
12 여호와여 나의 기도를 들으시며 나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소서 내가 눈물 흘릴 때에 잠잠하지 마옵소서 나는 주와 함께 있는 나그네이며 나의 모든 조상들처럼 떠도나이다
13 주는 나를 용서하사 내가 떠나 없어지기 전에 나의 건강을 회복시키소서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26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27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사명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26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27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사랑
세상 끝에 일어날 일(24:29–31)
예수님은 “환난 후에” 즉시 천체에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29절). 여기서의 “환난 후”는 예루살렘 멸망 직후가 아니다. 그것은 예루살렘이 멸망하고 ‘오랜 세월이 흐른 후’이다. 이러한 해석은 병행본문인 누가복음 21:24에서 유대인들이 “칼날에 죽임을 당하며 모든 이방에 사로잡혀 가겠고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리라”는 말에 의해 지지를 받는다. 이 말은 마태복음 24:28과 24:29 사이에 일어난 일에 대한 설명이다. 누가복음에 나오는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라는 표현은 유대에서 이방으로 구원이 넘어간 신약 시대의 긴 기간을 가리킨다. 따라서 28절과 29절 사이에는 큰 시간적 간격이 있다. 즉, 28절까지는 주후 70년 예루살렘 멸망에 대한 언급이지만, 29절부터는 시간을 많이 뛰어 넘어 세상의 종말에 대한 언급이다.
주님이 다시 오실 때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릴 것이다. 어떤 학자들은 이것을 문자적 표현으로(literal language)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어떤 학자들은 상징적 표현으로(figurative language)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둘 다, 즉 문자적으로 이해해야 할 뿐만 아니라 또한 상징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문자적으로 볼 때, 주님의 임재와 함께 실제로 천체의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그리고 상징적으로 볼 때, 묵시문학에서 천체의 변화는 우주의 격변을 암시하는데, 우주의 격변은 예수님의 재림을 통하여 일어날 것이다.
예수님은 “그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고 말씀하신다(30절).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라는 표현은 예수님이 내려오실 때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다는 뜻이다.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라는 표현은 믿지 않는 자들이 인자의 오심으로 인하여 발생할 심판을 알고 후회한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볼 것인데, 성경은 항상 그리스도가 구름을 타고 오실 것이라고 예언한다.
예수님은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셔서 자기가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실 것이다(31절). “큰 나팔 소리”는 유대의 종말 사상을 반영하며, 메시아의 오심을 알리는 표식이다. 예수님은 천사들을 보내셔서 택하신 자들을 모으시는데, 땅 위에 살아 있는 신자들뿐만 아니라 이미 죽어서 하늘에 있는 신자들을 모두 모으신다(참고. 살전 4:14). 예수님은 이렇게 재림과 함께 자신의 백성들을 모으셔서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하신다. 다른 말로 하면, 이것은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백성들의 모집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수님은 이제 비유로 설명하신다(32절). 이스라엘에 있는 많은 나무들은 항상 푸른색을 갖고 있다. 그러나 무화과나무는 계절이 바뀜에 따라 잎이 나고 열매가 자라는 현상이 분명해진다. 따라서 무화과나무는 계절의 변화에 대한 적절한 예로 사용될 수 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면 무화과나무에는 수액이 올라와서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낸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그러한 무화과나무의 모습을 보면서 여름이 가까이 오고 있음을 알게 된다. 한편, 성경에서 무화과나무는 종종 심판의 주제와 연관된다.
33절의 “이 모든 일(all these things)”은 4–28절에 언급된 성전의 파괴를 의미하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는 표현은 29절부터 시작된 세상의 종말을 가리킨다. 즉, 성전이 파괴(심판)되는 것을 통하여 세상의 종말(심판)에 대한 교훈을 받으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앞에서 언급했다시피 성전의 파괴와 세상의 종말을 아무런 상관이 없는 별도의 사건으로 이해하기 보다는 가까운 미래에 있을 성전의 파괴가 먼 미래에 있을 세상의 종말을 전조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성전이 종말을 맞이했듯이 언젠가 세상도 종말을 맞이할 것이다.
34절의 “이 세대”는 주후 1세기에 예수님의 말씀을 듣던 사람들과 더불어 신약 시대 전 기간에 살고 있는 광범위한 사람들을 가리킨다. 제자들의 상당수가 살아 있을 때인 주후 70년에 성전이 파괴될 것이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40년 전에 미리 그것을 예언하신 것을 알고 예수님의 예언의 신빙성을 다시금 믿게 된다. 그들이 성전의 파괴를 목격한다면 또한 언젠가 세상의 종말이 이를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35절에서 예수님은 자신의 말씀의 권위를 확증하신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곧 있을 성전의 파괴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기를 바라셨다. 예수님은 그들이 엄청난 환난 앞에서 마음을 다잡고 복음을 전하며 살아가기를 원하셨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과 같이, 감람산 강화의 첫째 부분(24:1–28)은 주후 70년에 일어난 예루살렘 성전 파괴에 대한 예언이고, 둘째 부분(24:29–25:46)은 세상의 종말에 대한 예언이다. 즉, 감람산 강화에서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 파괴와 세상 종말에 관한 교훈을 구분하여 주신 것이다. 그렇지만 성전 파괴와 세상 종말을 너무 날카롭게 구분하지 말아야 한다. 가까운 미래에 있을 성전 파괴는 먼 미래에 있을 세상 종말을 전조한다. 예수님은 어려운 상황에 처한 제자들에게 흔들리지 말고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다. 그리고 이러한 예수님의 명령은 오늘날 여전히 참혹하고 어두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일깨워 준다. 우리는 주님이 다시 오시기까지 종말이 도래하지 않았음을 알고 열심히 복음을 전해야 한다. 그것이 날수가 다하기까지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