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이 정욕의 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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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4:1-10 정욕이 싸움의 근원
신천지로 인하여 세상이 복잡합니다.
코로나19 거의 잡았다 싶었는데,
갑자기 신천지 때문에 환진자가 2000이 넘어갔습니다.
많은 의료 봉사자들과 공무원들이 코로나를 잡기 위해서 동분서주하고 고생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수고에 감사를 드리며,
우리가 그들을 위해서 기도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이번 신천지 사태를 보면서,
20년 전에 있었던 일이 생각났습니다.
제가 막 대학을 졸업했던 때인데,
어느 대학교에서 핵심적인 기독교 동아리가 짤렸습니다.
이유는 동아리 연합회가 이단이다고 하면서,
프린트물을 나눠주었는데,
신천지의 뿌리를 잘못기록했습니다.
그래서, 명예훼손으로 걸렸고,
동아리 룰에 의해서 제명당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광주에 있는 신천지는 그 대학 근처에 건물을 지어놓고 있습니다.
그리고 신천지의 포교법인 추수밭 옮기기 전략도
광주에 있는 신천지가 제일 먼저 사용했다고 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지금 신천지와 기독교의 대립은 영적 전쟁입니다.
그동안 물 밑에 있던 대립과 갈등이
수면위로 올라왔고,
치열한 대립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신천지와 대립이 그동안 종교간의 갈등이라고 보았는데,
이 번에 보니, 신천지가 정치권과 언론사에 많은 인물들을 침투해 놓았습니다.
그래서 신천지는 종교간의 대립뿐만 아니라
국가와도 대립의 구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싸움에서 더욱 어렵게 하는 것은
선거가 가까이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선거에서 이기려고 온갖 가짜 뉴스와
밀약과 모략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만 이러고 있는 것이 아니라,
미국도 대선이 있어서,
북한과의 핵협상은 내년 봄이나 되어야 가능할 것 같습니다.
미국은 지금 터키와 이란과도 갈등을 하고 있죠.
코로나로 인해서 인종과 인종의 갈등도 있습니다.
이런 갈등의 원인은 무엇일까요?
싸움의 근원은 정욕이다.
야고보 사도는 이런 갈등의 원인에는 정욕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약 4:1) 1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
여기서 야고보 사도는 정욕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정욕이라는 단어는 전쟁을 하고 싶어 하는 것, 싸움에 대한 열정, 싸움에 대한 즐거움 으로 말할수 있습니다.
싸움을 기다리고, 싸움에 대한 열정이 있고, 싸움을 즐거워 한다고 말씀합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가족간에도 잘잘한 다툼이 매일 있잖아요.
부부간에도 있고, 앞에서 열거한 대로 많은 다툼과 싸움이 있잖아요.
즉, 이런 자세가 언제나 되어 있기 때문에 다툼과 분쟁이 많은 겁니다.
그러면, 이런 싸우려는 정욕이 어떤 문제를 야기합니까?
2절에 나와 있습니다.
(야고보서 4:2 ) 2 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므로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므로 다투고 싸우는 도다.
영어로 읽어보면 더 쉽게 다가옵니다.
원하지만 얻을 수 없어서,살해한다
시기하지만 네가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싸우고 다툰다.
사람들이 원하고, 시기도 하지만 얻을 수 없고, 그래서 살해도 하고
다툼도 하고 전쟁도 일으킨다고 성경을 말씀합니다.
야고보서 1, 2절에 나오는 다툼은 요즘 용어로는 싸움이고, 싸움은 전쟁을 말합니다.
정확한 판단이죠.
왜 세계에 전쟁과 다툼이 일어납니까?
가지려고 하고 얻으려고 하지만, 다 가질수 없고, 다 얻을 수 없기 때문이죠.
다 가지려는 마음이 정욕이고, 다 얻으려는 마음이 욕망이죠.
1,2차 세계대전이 왜 일어났습니까?
왜 일본은 조선을 침략해서 식민지 삼았습니까?
왜구가 임진왜란을 일으키면서 했던 말은 명을 치기 위해서 길을 비켜달라는 말로 명분을 삼았지만, 실제로는 조선을 합병하려고 한 것이죠.
세계적인 전쟁만 그렇습니까?
우리의 잘잘한 다툼도 얻고 차지하기 위한 정욕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 많습니다.
이런 욕망이 우리의 생각과 삶을 주관하면 어떻게 될까요?
야고보 사도는 4절에서 이렇게 정리합니다.
(야고보서 4:4 ) 4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
그런 욕망을 추구하며 사는 것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이고,
그런 세상과 친구가 되려고 하는 사람은 하나님과 원수가되는 것이다.라고 말씀합니다.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한다는 말씀은 세상의 방식과 가치관을 따라 사는 것을 말합니다. 싸우는 정욕으로 살아가려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야고보 사도는 간음한 여인들아 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구약성경에서 우상숭배자들에게 했던 표현으로서 간음한 여인들은 남녀를 불문하고 우상숭배자에게 하는 표현입니다.
세상의 방식과 가치관을 따라 사는 것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인데, 이것은 “우 상 숭 배”입니다.
우상숭배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절이나 무당 집에 가서 신상 앞에서 절하는 것도 우상숭배지만,
하나님 보다 더 사랑하는 것은 모두 우상숭배입니다.
하나님의 절대적 가치보다
자기의 주관적 가치를 더 귀하게 여기는 것은 모두 우상숭배가 됩니다.
사도행전 5장에 보면,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부부가 나옵니다.
이들 부부는 땅을 가지고 있었는데, 땅을 팔아서 교회에 헌금 하기로 했습니다.
그 때 당시 교회가 구제를 많이 하고 있었기 때문에, 곡식을 사는 데, 돈이 많이 들었기 때문에 그들도 동참하려고 했습니다.
땅을 팔고 받은 돈을 다음날 교회에 가서 헌금하기로 했는데,
아나니아가 돈의 일부를 남겨 두었습니다. 그리고 아내도 알았습니다.
그 다음날 아나니아는 베드로에게 돈을 가져다 주었는데,
성령을 통하여 베드로가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바로 죽어 버렸습니다.
세시간 뒤에 아내가 왔는데, 아내도 땅을 판 값 전부를 드린 것다고 거짓말을 합니다. 그래서 그녀도 바로 죽어 버렸습니다.
아나니아를 매장하러 갔던 사람들이 돌아왔는데,
삽비라도 죽어 있어서 다시 가서 매장을 합니다.
여기서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한 거짓이 무엇입니까?
그냥 보기에는 거짓말을 했다 입니다. 맞습니다.
그들이 돈의 일부를 감추고 헌금했는데, 전부 다 드린 거다는 거짓말을 한거죠.
그들의 거짓말이 발각되지 않았다면,
그들은 땅 전부를 팔아서 하나님께 드린 사람이라는 칭찬과 영광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거짓말로 명예를 얻고, 금전적 이득을 얻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을 속인 죄를 짓고 있는 겁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이런 3가지 잘못이 그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도 우리안에서도 발견됩니다.
명예와 경제적 이득과 힘 즉 권력에 대한 욕망이 우리 안에서도 매우 그리고 자주 발견됩니다.
이런 명예와 부와 권력에 대한 욕망은 왜 그렇게 추구하는 겁니까?
바로 자기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입니다.
문제는 바로 자기 자신이 주인공이라는 데서 옵니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사는 것이 죄입니까? 라고 질문 할수 있습니다.
제가 지금 말씀드리는 것은
자기 자신 중심으로 만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문제라고 말씀 드리는 것입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하나님 중심으로 살라고 하십니다.
영어로 사용하겠습니다.
God - centered.
그런데, 우리는 자기 자신 중심 주의, I-centered로 살아가려고 합니다. 이것을 죄라고 합니다.
우리의 다툼에는 언제나 이 자기중심주의, I-centered 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삭이라는 사람이 40년을 기도하여 아이를 가졌는데 쌍둥이였습니다.
뱃속에 있을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형이 동생을 섬길 것이다.
10개월이 되어서 아이를 낳는데, 형이 나오는데, 동생이 형의 발뒤꿈치를 잡고 나왔어요.
이거는 뭔가요? 이 형제들 분위기가 이상합니다.
야곱이 형의 발꿈치를 잡고 나온다는 것은 자기가 형이 되고 싶었다는는 뜻이고, 형은 힘이 세기 때문에 그런 동생을 밀치고 나왔다. 이렇게 볼 수 있죠.
이삭은 힘이 센 에서를 사랑하고, 어머니 리브가는 집에 있는 야곱을 더 사랑했습니다.
이삭이 늙어서 눈이 어두워지자, 에서에게 사냥해서 좋은 음식좀 만들어 와라. 그러면 내가 너에게 축복해 줄께 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이삭이 했던 말을 가져와 보겠습니다.
(창세기 27:3–4 ) 3 (그런즉 네 기구 곧 화살통과 활을 가지고 들에 가서) “나를” 위하여 사냥하여 4 “내가”즐기는 별미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와서 먹게 하여 “내가” 죽기 전에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게 하라.
이 두구절에 나, 내라는 단어가 6번이나 나옵니다.
그런데, 이 말을 들은 리브가가 야곱에게 말을 전하는 구절에서도 내라는 단어가 2번이나 나옵니다.
에서인척 위한한 야곱이 음식을 가지고 갔다 주자, 다시 한번 내, 나가 연속 나옵니다.
25절에서는 3번이나 나옵니다.
그런데, 이런 표현이 이삭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야곱의 어머니 리브가도 내라는 단어를 아주 많이 사용합니다.
하나님이 분명 형이 동생을 섬길 것이다고 했으니,
그 말을 들은 아버지 이삭은 동생인 야곱에게 축복해야 하는데,
자기 맘에 듣는 에서에게 축복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는 관계 없이 자기 맘대로 하려고 합니다.
이 집안의 문제는 하나님을 섬긴다 하면서,
자기 중심, I-centered로 사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세상과 벗이 되이 되는 것,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마음
즉 우상숭배는 자기 중심주에에서 시자하고,
이런 자기 중심주의가, 온갖 싸움과 다툼과 전쟁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라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우리 안에도 있는 I-centered, 정욕과 욕심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야고보 사도는
욕심을 내고, 원해도, 받지 못하는 것은 구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다른 말로 기도하지 않기 때문에 못 받는 것이다. 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욕심 내고, 시기 하는 사람들도 상당수가 종교를 가지고 있을 것인데
구하지 않아서 못 받는다.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그런데, 3절을 보니, 이해가 갑니다.
(약 4:3 ) 3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구하기는 해도, 잘못 구하기 때문인데,
기도의 목적이 정욕으로 쓰려고 하기 때문에 응답이 되지 않습니다.
정욕으로 쓴다는 말은, 자기 중심으로,
자기 즐거움으로 쓰려는 목적으로 기도 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기도를 드려야 할까요?
네 답은 주님의 기도에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기도를 따라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힘과 부와 권력을 원하는 것은
주님의 나라가 이땅에 임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도록 하기 위해서 필요한 기도여야 합니다.
굉장히 어려운 부분이죠.
기도는 그렇게 할 수 있는데,
실천을 하려면 굉장히 어렵습니다.
누구나 자기에게 물질이 생기면, 힘이 생기면, 능력이 생기면
누구나 자기 중심으로 살아 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 주님의 기도를 묵상하면서
자신의 삶을 돌아 보는 기도가 필요합니다.
내 안에 있는 싸우는 정욕은 없는가?
세상과 벗되려고 하는 본성은 없는가?
요즘 세상과 너무 친해진 부분은 없는가?
돌아 보아야 합니다.
계속 주님의 나라를 위해서 사용해야지 하는데,
기도의 응답이 없다면,
의심하는 마음을 품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약 1:6–7 ) 6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7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말씀은 맞는데 의심하지 않고 살기가 어렵죠.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서
어떻게 결정해야 할지 몰라서 힘듭니다.
그 결정이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모르기 때문에 혼란스럽기도 하고 어렵기도 합니다.
코로나19가 신천지에 의해서 급속히 확장되는 일이 일어날때,
그리고 신천지가 교회에 침투하여 바이러스 감염을 시키려고 한다는 소문이 돌았을때,
교회가 주일예배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가지고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주일 모여서 예배를 드리지 않게 된다면,
인터넷으로 예배를 드린다면, 앞으로는 어떻게 하며
신학적 의미는 무엇인가를 가지고 고민도 하고
신학대학원 교수님들께서 총회 신학위원회에 글을 쓰기도 했습니다.
어떠한 결정을 하든지,
주의 선하신 뜻 안에서 결정을 해야 하고,
결정을 했으면, 그 뜻이 이뤄지도록 기도를 해야 합니다.
결단을 하고 나아가야 합니다.
이럴까 저럴까 하다 골든 타임을 놓치면 안됩니다.
이렇게 결정을 하였다면,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어떻게 하는 것이 잘하는 것인지 판단을 하고
설명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해야 합니다.
구하라. 기도하라는 너무 막연하지만,
가장 적합하고, 적절한 대안입니다.
여러분의 삶을 위해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이기적 자아를 위한 기도가 아니라
이타적 자아를 위한 기도를 드리시는 가운데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시고
하나님께 응답 받는 성도님들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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