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322 주일 저녁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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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 주간과 부활절이 다가오고 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고난 주간이 꽤 오래전부터 시작된 것처럼 느껴진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우리나라 뿐 아니라 전 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다. 올 한해 하나님이 주신 말씀들을 선포해야할 우리의 입이 마스크로 인하여 막혀 있다. 심리적으로는 불안과 분노가 이 세상에 가득하다. 고난이다. 고난주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잊어버릴만큼 우리가 삶 속에서 함께 아파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슬퍼한다. 좌절한다. 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우리 믿는 사람들은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한다. 고난가운데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우리 안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오늘 본문 속으로 들어가기 전에 오늘 본문이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 살펴보면 본문을 통하여 하나님이 무엇을 말씀하시고자 하는지 조금 더 심도 있게 알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냥 기록된 것이 아니라 작은 것 하나에도 하나님의 영감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오늘 본문이 속해있는 마가복음 4장을 보면 앞 부분에 예수님께서 비유를 통해 가르치시는 장면이 나온다. 예수님께서 비유를 통해 가르치신 이유는 4장 12절에서 알 수 있듯이 하나님의 나라의 비밀이 모두에게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비밀은 모두가 아는 것이 아니다. 혼자 알거나, 둘이 알거나, 소수의 그룹이 아는 것이다. 모두가 아는 사실을 우리는 비밀이라 하지 않고 상식이라 한다. 우리가 밖에 나가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한다고 해서 모두가 예수님께로 돌아오지 않듯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선택된 자들에게만 허락하신 것이다. 그들이 바로 제자들과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던 자들이다. 예수님 바로 선택받은 자들이 하나님 나라로 가는 문이었고 예수님의 말씀은 비밀번호였던 것이다. 오늘 이 시간이 하나님의 비밀을 깨닫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예수님은 마가복음 4장의 비유를 통해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모두 우리가 너무 잘 아는 비유들이다. 네 가지 땅에 떨어진 씨의 비유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의 비밀이 담긴 말씀이 좋은 밭에 떨어져야 열매 맺는다는 사실을 알려주셨다. 등불 비유를 통해서 ‘얘들아, 내가 지금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아낌없이, 분명하게 알려주고 있어, 들을 사람은 들어라.’ 라고 말씀하셨다. 자라나는 씨 비유와 겨자씨 비유를 통하여서 하나님의 나라는 확장되어가며 이것은 하나님의 주권이다라는 것을 알려주셨다.
예수님은 한 두번이 아니라 마치 어린 아이에게 반복학습을 하시듯 다양한 것에 빗대어 반복적으로 사람들을 가르치셨다. 이것에서 예수님의 사랑이 느껴진다. 어린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은 여간 쉬운 것이 아니다. 인내와 노력이 필요하다. 어린 아이들은 들어도 금방 잊어버리고 만다. 또는 들은 바를 잘못 이해하기도 한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는 문이 되셨을 뿐만 아니라 비밀번호를 알려주는 탁월한 교사이셨다.
이제 말씀 속으로 들어가보자. 오늘 본문은 35절은 그 날 저물 때에라는 표현을 통해 오늘 사건이 일어난 시간대를 알려준다. 그 날은 예수님이 제자들과 따르는 무리들에게 비유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생생하게 알려주셨던 날이다. 그리고 그 날이 저물어가고 있다.
우리가 학교를 다녀오면 날이 저무는 저녁 때 일반적으로 무엇을 하는가? 복습이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시간이다. 저는 반복적으로 했던 것을 또 하는 것을 싫어한다. 그래서 거의 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 전문가들은 복습이야말로 인식된 정보를 가장 오래 저장하는 방법이라고 이야기한다. 일정 텀을 가지고 반복하면 특정 정보를 평생 소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 예수님도 복습을 중요하게 생각하신 것 같다. 정확히 말하면 예수님은 배운 것을 실습고자
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라고 말씀하신다.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갈릴리 호수는 남북의 길이가 21km, 동서의 길이가 12km인 제법 큰 호수이다. 성경에는 바다라고도 표현되어 있다. 그런데 갈릴리 바다는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해수면보다 200미터 낮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그래서 실제로 갈릴리를 가보면 움푹 파여 있어서 마치 산이 둘러싸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뿐만 아니라 북쪽 헐몬산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과 남쪽 건조한 광야지대에서서 불어오는 바람이 만나 폭풍이 자주 발생한다고 한다. 호수임에도 불구하고 2m높이의 높은 파도가 칩니다. 예수님 당시 10여명 남짓 탈 수 있었던 목선은 뒤집힐만한 파도인 것이다.
오늘 본문의 시선은 제자들의 배로 향한다. 사실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갈릴리 저편으로 건너갔던 배들은 많았다. 36절이 이를 이야기해준다. 하지만 이후 이야기에서 다른 사람들이나 다른 사람들이 타고 있던 배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오직 예수님과 제자들이 타고 있던 배와 그들의 상황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예수님의 가장 가까이에서 그분의 말씀과 사역을 보고 듣고 배운 열심있는 모범생들에게 집중한다. 이들은 학생들의 대표였다. 이들의 모습을 보면 다른 사람들의 모습은 안봐도 뻔하다. 예수님의 제자들 중 갈릴리 바다에 익숙한 어부 출신이 4명이나 있었다. 이들에게 갈릴리 바다에 이따금씩 불어오는 폭풍은 익숙한 것이었을 것이다. 예수님 당시 고기잡이 배의 크기는 약 10여명이 탈 수 있는 크지 않은 배였다. 작은 배였지만 오랜 세월 갈릴리 바다에서 고리를 잡아온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은 폭풍이 불어올 때 어떻게 노를 젓고 키를 잡아야 하는지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 본문속에 나오는 폭풍은 제자들이 평소에 만났던 폭풍과는 비교할 수 없이 거셌던 것 같다. 37절을 보니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배에 부딪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라고 오늘 사건을 묘사한다. 광풍은 미친 바람을 이야기한다. 바람이 얼마나 거셌던지 높은 파도로 인해 물이 배 안으로 들어와 가득 찼다. 배가 가라앉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제자들이 아무리 능숙한 뱃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 이 사람들이 만났던 폭풍은 경험해보지 못한 폭풍이었음에 틀림없었다. 두려웠다. 그래서 그들은 주무시고 계셨던 예수님을 깨우게 된다. 어떻게 이들이 두려워 할 수 있는가? 예수님이 함께 계시는데 말이다. 앞서 마가복음의 기록들처럼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예수님의 주옥과 같은 말씀을 들었고, 그가 행하시는 놀라운 기적과 치유의 장면들을 목격했다. 예수님은 불가능한 일이 없으신 창조주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런데 이들은 예수님이 함께 계셨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목숨을 위협하는 대 자연으로 인해 두려워했다. 38절에 제자들은 예수님을 깨운다. 그리고 예수님을 깨우다 못해 예수님께 따진다. “선생님, 우리가 죽게 되었는데 어찌 내버려 두십니까?” 그들은 죽음의 위협에 직면했다. 죽을 것 같이 두려웠다. 생명의 주관자 되시는 예수님 앞에 죽게 되었다고 따지고 있다. 제자들의 믿음은 어디로 갔는가? 안절부절 못하는 제자들의 부름에 예수님이 결국 일어나셨다. 아니 깨워지셨다. 그리고 바람을 꾸짖으시고 바다를 향해 “잠잠하라 고요하라”라고 명령하신다. 창조주의 명령에 피조물인 바람과 바다는 잠잠해졌다. 제자들과 예수님이 탄 배를 집어 삼킬듯했던 파도가 예수님의 말씀 앞에 굴복했다. 이어서 예수님은 바람을 꾸짖듯 두가지 질문을 통해 제자들을 꾸짖으신다..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제자들은 전능한 창조주의 제자들이었다. 마가복음 4장의 표현에 의하면 하늘의 비밀을 맡은 자들이었다. 학생들의 대표격인 모범생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실패했다. 그들의 체면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들의 두려움은 바다에서 예수님으로 옮겨간다. 41절에서 이렇게 증언한다.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였더라.” 원어를 살펴보면 40절에 제자들이 바람과 파도를 본 후 느꼈던 두려움과 41절에 이 바람과 파도를 잠재우신 예수님을 본 후 느꼈던 두려움을 다른 단어로 표현한다. 이것은 자연을 향한 심리적 두려움에서 예수님을 향한 경외로 나아간 것을 의미한다. 실패를 통해, 어려움과 고난을 통해 제자들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조금 더 알아가기 시작한다. 그런데 아직 멀었다. 오늘 본문의 제자들이 우리들의 모습이 아닐까 한번 생각해 본다. 오늘 풍랑 한가운데서 어려움을 만났던 제자들처럼 우리의 인생가운데 어려움은 반드시 찾아온다.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는 우리도 언젠가 예수님이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라고 말씀하실 때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말씀을 듣고 기도를 통해 하나님에 대해 알아간다. 오늘 본문의 제자들처럼, 또 바울 사도가 이야기했듯이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수 많은 사람들 가운데 선택받아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살아간다. 그런데 우리가 어느정도 성장했을 때, 우리의 목이 뻗뻗해지고, 어깨에 힘이 들어갈 때 쯤, 주님이 말씀하신다.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무엇인가? 우리의 믿음을 실습할 수 있는 장소로 이끌어가시는 것이다. 어찌보면, 테스트 같기도 하고, 어찌보면 훈련의 일부인 것 같기도 하다. 예수님은 그렇게 우리 인생의 배를 바다 한가운데로 몰고 가신다. 우리는 이를 흔히 고난이라고 부른다. 고난 또는 시험은 우리가 우리 자신이 하나님과 가깝다고 생각할 때, 은혜를 경험했다고 생각할 때, 우리의 신앙이 절정에 있다고 생각할 때 찾아온다. 예수님만 봐도 그렇다. 예수님은 세례를 통하여 하나님, 성령님과 연합하셨다. 하나님은 예수님에게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라고 말씀하신다. 우리가 고난받을 때, 연단받을 때, 반드시 기억해야 할 몇 가지가 있다.1. 고난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만을 바라보게 한다. 우리의 고난은 우리가 가장 익숙하고 우리가 의지하는 것으로부터 온다.우리의 고난은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깨닫게 하고, 우리가 의지해야할 유일한 대상이 누구인지 알게 한다. 진정 두려워해야 할 존재의 변화 (2. 고난은 믿음의 단계를 높인다.) 3. 우리의 고난은 과정이요 그 끝은 영광이다. 베드로 vs 예수님의 모습,(폭풍 한가운데로 뛰어드셨다)베드로 : 마가복음의 기록자 믿음은 유동적, 두려움은 믿음의 결핍 결론 :
비유를 통해 가르치신 이유 : 하나님의 나라의 비밀이 모두에게 허락되지 않았다. () 다만 제자들을 비롯한 예수께 나아온 자들에게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이 허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