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3.20 더리버처치 새벽예배 (삿9:50-55) '죽음으로 나를 구원하신 예수님'
본문
서론
ㅇ 본문과 관련있는 예화 혹은 성경이야기
본론
ㅇ 주제와 관련 있는 문제제기 (원인과 결과)
바알브릿(Baal-Berith) 히브리어 읽기로는 ‘바알 베리트’(בַּעַל בְּרִית)인데, ‘계약의 주’, ‘언약의 바알’이란 뜻이다. 사사 기드온 사후 세겜 사람들이 숭배한 풍요의 신이었다(삿 8:33; 9:4). ‘엘 브릿’으로도 불린다(삿 9:46). 신명(神名)으로 볼 때, 세겜은 가나안 정복 전쟁 때 무력이 아닌 계약에 의해 이스라엘에 편입된 도시로 보인다. 이 이름은 선민 이스라엘이 가나안 주민의 가증스런 주신(主神) 바알과 언약을 맺고 음탕하고 부패한 일을 일삼았음을 보여준다(삿 8:33). 세겜에서는 바알브릿 신전으로 추정되는 유적이 발견되었는데, 너비 32m, 길이 27m, 두께 5.4m의 튼튼한 벽에 정면을 제외한 3면이 방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또 안뜰에는 돌기둥이 서 있었다. 세겜 사람들은 아비멜렉의 군사를 피해 세겜 성에서 세겜 망대로, 다시 요새와도 같이 튼튼한 바알브릿 신전으로 피했으나 화공(火功)으로 몰살당했다(삿 9:46–49). 마지막까지 우상을 의지하며 우상 신전을 피난처로 삼은 세겜 사람들의 허망한 최후를 엿볼 수 있다. 【☛ ‘엘브릿’을 보라】
〈16–17〉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심으로써 이러한 가르침을 강화하신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주인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나니. 이 격언에 사용된 ‘주인’과 ‘종’이라는 용어들은 설명할 필요가 없지만, ‘보냄을 받은 자’(아포스톨로스, apostolos)와 ‘보낸 자’에 대한 언급들은 추가적으로 설명할 것을 요구한다. ‘아포스톨로스’는 히브리어 단어 ‘샬리아흐’(šālîah [사절])의 헬라어 번역이다. 랍비 교훈에 따르면 “어떤 사람에 의해 보냄을 받은 자(šālîah)는 보낸자와 동일하다”(Mishnah, Berakot 5:5). 이것은 보냄을 받은 자가 처리한 일이 그를 보낸 자가 행한 것으로 간주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보냄을 받은 자들(아포스톨로이[셀루힘], apostoloi[šělûhîm])도 상당한 품위를 지니고 있지만 그들을 보낸 자들 위에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16–17〉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심으로써 이러한 가르침을 강화하신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주인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나니. 이 격언에 사용된 ‘주인’과 ‘종’이라는 용어들은 설명할 필요가 없지만, ‘보냄을 받은 자’(아포스톨로스, apostolos)와 ‘보낸 자’에 대한 언급들은 추가적으로 설명할 것을 요구한다. ‘아포스톨로스’는 히브리어 단어 ‘샬리아흐’(šālîah [사절])의 헬라어 번역이다. 랍비 교훈에 따르면 “어떤 사람에 의해 보냄을 받은 자(šālîah)는 보낸자와 동일하다”(Mishnah, Berakot 5:5). 이것은 보냄을 받은 자가 처리한 일이 그를 보낸 자가 행한 것으로 간주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보냄을 받은 자들(아포스톨로이[셀루힘], apostoloi[šělûhîm])도 상당한 품위를 지니고 있지만 그들을 보낸 자들 위에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들이 직면할 반대를 경고하시면서 이와 유사한 격언을 사용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은즉 너희도 박해할 것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것이다”(15:20; 참조, 마 10:24–25). 예수님은 또한 제자들에게 비록 그들이 제자로서 그들의 선생보다 높지 못하나 그들의 교육이 완성되었을 때 그들의 선생과 같을 것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을 확신시키기 위해 이 격언을 사용하신다(눅 6:40). 그러나 이 문맥에 나오는 격언은 제자들이 예수님의 본을 따르는 것을 주저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강화한다. 자신의 종들과 보냄을 받은 자들인 제자들이 자신보다 더 크지 않은 것과 같이, 예수님이 제자들을 위해 하신 것처럼 제자들이 서로 비천한 일을 행하지 않으려고 생각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