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3.27 더리버처치 새벽예배 (삼상6:19-20) '원래대로 돌려놓으시는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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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사무엘상 6:19–20 NKRV
19 벧세메스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를 들여다 본 까닭에 그들을 치사 (오만) 칠십 명을 죽이신지라 여호와께서 백성을 쳐서 크게 살륙하셨으므로 백성이 슬피 울었더라 20 벧세메스 사람들이 이르되 이 거룩하신 하나님 여호와 앞에 누가 능히 서리요 그를 우리에게서 누구에게로 올라가시게 할까 하고

서론

ㅇ 본문과 관련있는 예화 혹은 성경이야기

ㅁ 시대 배경
이 시대는 역사적으로 매우 암울한 시기였습니다. 시대 말기에 이스라엘에 제대로 된 영적인 지도자가 없었습니다. (사사란 이스라엘에 왕정시대가 시작되기 전에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지도자입니다.) 사사이자 제사장이었던 엘리가 있었습니다만 그의 영적인 지도력은 땅에 떨어져 있었고 그 아들들이 아버지를 대신해서 다스리고 있었지만 그들의 방탕함은 온 이스라엘에 알려져 있었습니다.
기도의 선지자 사무엘이 소년 선지자로서 막 이스라엘에 알려지기 시작했지만, 아직 그다지 영향력은 약해서 역사의 전면에 부상되어 있지는 않았습니다.

본론

ㅇ 주제와 관련 있는 문제제기 (원인과 결과)

ㅁ 자기를 위한 분별
이 때 블레셋과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첫날 전투에서 이스라엘이 패했습니다. 무려 4000명이나 전사했습니다. 양쪽이 몇 명의 군사를 이끌고 나왔는지 모르지만 하여간 4000명이나 전사했습니다. 이 일을 두고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 대책 회의를 열고 패인(敗因) 분석에 들어갔습니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지도자들답게 이런 결론을 내렸습니다.
“어찌하여 여호와께서 우리로 블레셋 사람들에게 패하게 하셨는고?”
패인을 제대로 분석해 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전투에서 이스라엘이 패하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패인은 잘 파악하는 듯 했으나, 대책은 제대로 내놓지를 못했습니다. 그 대책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이 전쟁터에 가져 오자는 것이었습니다.
언약궤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주셨던 십계명 돌판이 담긴 상자입니다. 이 상자의 덮개는 금으로 되어 있고 그 끝에 천사가 날개를 펴서 호위하고 있는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임재를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이 하나님의 언약궤를 전쟁에 가지고 나오겠다는 생각은 하나님을 이 전쟁에 불러들이겠다는 발상입니다. 좀 외람된 표현입니다만, 하나님을 팔을 비틀어서 억지로 모셔다 놓자는 말입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체면 때문에라도 전쟁을 이기게 해 주실 거라고 믿었습니다.
ㅁ 반복되는 실패
이 시대 이전에 이 언약궤가 이스라엘의 원수를 물리친 일이 있었습니다. 여호수아의 인도 하에 요단강을 건널 때, 그리고 여리고 성을 무너뜨릴 때에 이 언약궤가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그 장벽들을 제거했습니다.
여호수아 3:7–14 NKRV
7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부터 시작하여 너를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크게 하여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는 것을 그들이 알게 하리라 8 너는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요단 물 가에 이르거든 요단에 들어서라 하라 9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이리 와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하고 10 또 말하되 살아 계신 하나님이 너희 가운데에 계시사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과 히위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여부스 족속을 너희 앞에서 반드시 쫓아내실 줄을 이것으로서 너희가 알리라 11 보라 온 땅의 주의 언약궤가 너희 앞에서 요단을 건너가나니 12 이제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각 지파에 한 사람씩 열두 명을 택하라 13 온 땅의 주 여호와의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바닥이 요단 물을 밟고 멈추면 요단 물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끊어지고 한 곳에 쌓여 서리라 14 백성이 요단을 건너려고 자기들의 장막을 떠날 때에 제사장들은 언약궤를 메고 백성 앞에서 나아가니라
그러나 이 두 번의 경우는 하나님의 명령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각기의 믿음으로 그 명령을 따랐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이들이 자기들의 판단대로 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믿음이 아니라 미신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앞세우겠다고 하지만, 실상은 미신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내건 ‘미신’도 있음을 잘 보여주는 예입니다. 지금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패한 것은 언약궤가 없어서가 아닙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은 지금 언약궤를 전쟁터에 갖다 놓으면, 하나님께서 제대로 함께 하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무튼 이들이 결국 언약궤를 성막에서 꺼내서 전쟁터에 갖다 놓았습니다. 이때, 엘리 제사장의 악한 두 아들도 함께 왔습니다. 이 언약궤가 이스라엘 진중에 도착하자 난리가 났습니다.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니 이제 우리는 이길 것이다.” 땅이 진동할 정도로 소리 질렀습니다.
이 소리를 듣고 뭔 일인지 알아본 블레셋 사람들은 더 난리였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이제 죽었다”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들은 이 여호와께서 애굽을 어떻게 이기셨는지 잘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여호와께서 자기들과 싸우시면 자기들은 이길 길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서는 이왕 죽을 거 사나이답게 열심히 싸우다 죽자는 결의를 합니다.
이제 이틀째 전투가 시작되었습니다.
이스라엘도, 블레셋도 똑같은 결과를 예상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승리할 것이라고. 하지만 결과는 예상과는 정반대였습니다. 이스라엘의 대패였습니다. 첫날에는 4000명이 전사했는데, 둘째 날에는 3만 명이나 죽었습니다. 그 당시는 날카로운 철제 무기도 제대로 없던, 이른바 청동기 시절임을 감안한다면, 이건 굉장한 숫자입니다. 별로 날카롭지 않은 창칼에 찔려서 이렇게 많은 사람이 하루 전투에서 죽는다는 건 당시로서는 정말 엄청난 패배였습니다. 양쪽이 다 이스라엘의 대승을 예상했습니다. 사기도 이스라엘이 훨씬 높았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박살이 나고 말았습니다.
단순히 군사가 많이 죽었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제사장 엘리의 두 아들이 전사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의 언약궤를 뺏기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은 이제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을 만큼 다 잃었습니다.

ㅇ 해결방법

ㅁ 위하여 하라
이사야 43:7 NKRV
7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요한복음 6:57 NKRV
57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
- 하나님을 위하여 분별하라
- 복음으로 돌아가라

ㅇ 나타난 결과

결론

ㅇ 핵심내용 정리

ㅇ 결단할 내용

이 시대는 역사적으로 매우 암울한 시기였습니다. 시대 말기에 이스라엘에 제대로 된 영적인 지도자가 없었습니다. (사사란 이스라엘에 왕정시대가 시작되기 전에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지도자입니다.) 사사이자 제사장이었던 엘리가 있었습니다만 그의 영적인 지도력은 땅에 떨어져 있었고 그 아들들이 아버지를 대신해서 다스리고 있었지만 그들의 방탕함은 온 이스라엘에 알려져 있었습니다.
기도의 선지자 사무엘이 소년 선지자로서 막 이스라엘에 알려지기 시작했지만, 아직 그다지 영향력은 약해서 역사의 전면에 부상되어 있지는 않았습니다.
2. 블레셋과의 전쟁 (사무엘상 4장)
“어찌하여 여호와께서 우리로 블레셋 사람들에게 패하게 하셨는고?”
패인을 제대로 분석해 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전투에서 이스라엘이 패하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패인은 잘 파악하는 듯 했으나, 대책은 제대로 내놓지를 못했습니다. 그 대책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이 전쟁터에 가져 오자는 것이었습니다.
언약궤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주셨던 십계명 돌판이 담긴 상자입니다. 이 상자의 덮개는 금으로 되어 있고 그 끝에 천사가 날개를 펴서 호위하고 있는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임재를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이 하나님의 언약궤를 전쟁에 가지고 나오겠다는 생각은 하나님을 이 전쟁에 불러들이겠다는 발상입니다. 좀 외람된 표현입니다만, 하나님을 팔을 비틀어서 억지로 모셔다 놓자는 말입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체면 때문에라도 전쟁을 이기게 해 주실 거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이들이 자기들의 판단대로 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믿음이 아니라 미신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앞세우겠다고 하지만, 실상은 미신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내건 ‘미신’도 있음을 잘 보여주는 예입니다. 지금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패한 것은 언약궤가 없어서가 아닙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은 지금 언약궤를 전쟁터에 갖다 놓으면, 하나님께서 제대로 함께 하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무튼 이들이 결국 언약궤를 성막에서 꺼내서 전쟁터에 갖다 놓았습니다. 이때, 엘리 제사장의 악한 두 아들도 함께 왔습니다. 이 언약궤가 이스라엘 진중에 도착하자 난리가 났습니다.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니 이제 우리는 이길 것이다.” 땅이 진동할 정도로 소리 질렀습니다.
이 소리를 듣고 뭔 일인지 알아본 블레셋 사람들은 더 난리였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이제 죽었다”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들은 이 여호와께서 애굽을 어떻게 이기셨는지 잘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여호와께서 자기들과 싸우시면 자기들은 이길 길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서는 이왕 죽을 거 사나이답게 열심히 싸우다 죽자는 결의를 합니다.
이제 이틀째 전투가 시작되었습니다.
이스라엘도, 블레셋도 똑같은 결과를 예상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승리할 것이라고. 하지만 결과는 예상과는 정반대였습니다. 이스라엘의 대패였습니다. 첫날에는 4000명이 전사했는데, 둘째 날에는 3만 명이나 죽었습니다. 그 당시는 날카로운 철제 무기도 제대로 없던, 이른바 청동기 시절임을 감안한다면, 이건 굉장한 숫자입니다. 별로 날카롭지 않은 창칼에 찔려서 이렇게 많은 사람이 하루 전투에서 죽는다는 건 당시로서는 정말 엄청난 패배였습니다. 양쪽이 다 이스라엘의 대승을 예상했습니다. 사기도 이스라엘이 훨씬 높았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박살이 나고 말았습니다.
단순히 군사가 많이 죽었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제사장 엘리의 두 아들이 전사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의 언약궤를 뺏기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은 이제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을 만큼 다 잃었습니다.
이운연. (2014). 성전, 사랑과 그 설렘 (초판, pp. 67–70). 전남 여수시 덕충동1744-1: 그라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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