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05 [공동체 예배] 옥합을 깨뜨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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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3 예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려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4 어떤 사람들이 화를 내어 서로 말하되 어찌하여 이 향유를 허비하는가
5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며 그 여자를 책망하는지라
6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만 두라 너희가 어찌하여 그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7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니 아무 때라도 원하는 대로 도울 수 있거니와 나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8 그는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례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9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황무지
황무지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마을 - 베다니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마을 - 베다니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동쪽으로 3km 떨어진 지점에 있는 마을 - 문둥병자 수용소가 있던 곳이다. 그리고 이 식사자리의 호스트는 문둥병자 시몬이다. 요한복음에서는 이 이야기에서 호스트를 예수님께서 다시 살리신 나사로라고 말한다.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동쪽으로 3km 떨어진 지점에 있는 마을 - 문둥병자 수용소가 있던 곳이다. 그리고 이 식사자리의 호스트는 문둥병자 시몬이다. 요한복음에서는 이 이야기에서 호스트를 예수님께서 다시 살리신 나사로라고 말한다.
죽은 땅에서 라일락 꽃을 피우며,
추억과 욕망을 섞으며,
식사 예절로 치자면 이 여인의 행동도 문제가 있다. 오늘의 주인공, 무명으로 등장하는 여인은 식사자리에서 해서는 안되는 행동을 했다. 먹을 것을 가지고 오는 거 말고는 여자는 식사때 그 어떤 행동도 해서는 안된다. 요한복음에보면 향유를 가져다가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발을 닦았다. 중동지방의 히잡은 여인이 머리를 드러내는 것은 매우 불경하다고 하기 때문에 쓰는 것이다. 유대전통에도 이혼증서를 써주지 않고도 이혼이 가능한 것 중의 하나가 머리털을 드러내놓고 다니는 것이었다.
봄비로 생기 없는 뿌리를 깨운다.
식사 예절로 치자면 이 여인의 행동도 문제가 있다. 오늘의 주인공, 무명으로 등장하는 여인은 식사자리에서 해서는 안되는 행동을 했다. 먹을 것을 가지고 오는 거 말고는 여자는 식사때 그 어떤 행동도 해서는 안된다. 요한복음에보면 향유를 가져다가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발을 닦았다. 중동지방의 히잡은 여인이 머리를 드러내는 것은 매우 불경하다고 하기 때문에 쓰는 것이다. 유대전통에도 이혼증서를 써주지 않고도 이혼이 가능한 것 중의 하나가 머리털을 드러내놓고 다니는 것이었다.
병을 깨뜨리고 어쩌면 향유의 냄새가 음식의 맛을 반감시켰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사용되는 향유 자체가 얼마나 비싼 것이었는지 300데나리온 이상의 가치를 지녔다고 말하는데, 이정도면 이 향유의 가치는1년 연봉이다. 1일 품삯이 1 데나리온이기 때문이다. 지금으로 치면 8-10만원, 약 3000만원 짜리 향수인 것이다.
20세기 최고의 시로 알려진 T.S.엘리엇의 황무지 첫 구절처럼, 4월은 참 잔인한 달이다. 엘리엇이 이 시를 지을 때 1차 세계대전 이후의 유럽의 황폐한 모습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다고 한다. 그리고 4월에 자신이 사랑한 친구가 전사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이라고 첫 행을 시작했다.
병을 깨뜨리고 어쩌면 향유의 냄새가 음식의 맛을 반감시켰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사용되는 향유 자체가 얼마나 비싼 것이었는지 300데나리온 이상의 가치를 지녔다고 말하는데, 이정도면 이 향유의 가치는1년 연봉이다. 1일 품삯이 1 데나리온이기 때문이다. 지금으로 치면 8-10만원, 약 3000만원 짜리 향수인 것이다.
이 병도 보통이 아닌데, 알라바스터라고 일종의 대리석으로 만든 병인데 병 자체도 비싸고 귀한 거라 향유 옥합이라고 부르는 이것 자체가 가보 수준이었다고 한다. 오늘 본문에서 이 병을 깨뜨렸다는 것은 이 병 자체를 깨뜨린것이 아닌게, 돌 자체를 던져서 깨뜨리려면 엄청난 힘을 써야 한다. 대신 이 병을 쓰는 방법이 잘 봉인된 뚜껑을 깨는 것인데, 이걸 깨뜨리는 것 자체가 다시는 사용하지 못할 수준으로 완전히 소비하는 것이라서 사람들에게 엄청난 충격이었을 것이다.
우리 나라도 4월의 잔인함이 마치 클리셰처럼 반복된다. 제주 4.3 사건이 있었고, 4.19 혁명이 있었고, 4.16일 세월호 사건이 있었다. 근대에 4월은 생명이 벅차오름과 동시에 절망과 죽음의 시간을 동시에 지나가야 하는 참 잔인한 달이다.
이 병도 보통이 아닌데, 알라바스터라고 일종의 대리석으로 만든 병인데 병 자체도 비싸고 귀한 거라 향유 옥합이라고 부르는 이것 자체가 가보 수준이었다고 한다. 오늘 본문에서 이 병을 깨뜨렸다는 것은 이 병 자체를 깨뜨린것이 아닌게, 돌 자체를 던져서 깨뜨리려면 엄청난 힘을 써야 한다. 대신 이 병을 쓰는 방법이 잘 봉인된 뚜껑을 깨는 것인데, 이걸 깨뜨리는 것 자체가 다시는 사용하지 못할 수준으로 완전히 소비하는 것이라서 사람들에게 엄청난 충격이었을 것이다.
오늘은 종려주일이다. 고난주간이 시작되었다. 평소라면 벚꽃은 만개하고 설레는 사랑 노래들이 거리마다 흘러퍼질텐데, 4월은 참 잔인한 달이기에 전 세계가 죽음과 공포로 억눌려있어 예수님의 죽음을 묵상하는 것이 더욱 고통스러운 일이 되었다.
식사 예절을 지나서 냄새가 진동하는 향유가 부어지고 대리석 조각이 산산조각나서 굴러다니는 현장을 상상해보면 이 여인의 행동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가 있는지 깨닫게 된다.
식사 예절을 지나서 냄새가 진동하는 향유가 부어지고 대리석 조각이 산산조각나서 굴러다니는 현장을 상상해보면 이 여인의 행동이 얼마나
장면을 살짝 돌려보면 이 여인의 옥합을 깨뜨리는 장면은 유월절을 준비하는 기간에 벌어졌다. 대제사장들조차 몸을 사리던 시간이다. 이 유월절이라는 것이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을 위한 베품과 나눔의 시간을 가지는 전통이 있었는데, 이 기간 동안에 이 엄청나게 비싼 고가의 가보가 깨뜨려지니 어떤 사람들의 공분이 대단한 것은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죽은 땅에서 라일락 꽃이 피고, 생기 없는 뿌리가 봄비로 깨어나듯이, 죽음 이후에 부활이 있고, 생명으로 역전될 것을 알고 믿기에 오늘 본문 속에서 역전 시키시는 하나님을 묵상하고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장면을 살짝 돌려보면 이 여인의 옥합을 깨뜨리는 장면은 유월절을 준비하는 기간에 벌어졌다. 대제사장들조차 몸을 사리던 시간이다. 이 유월절이라는 것이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을 위한 베품과 나눔의 시간을 가지는 전통이 있었는데, 이 기간 동안에 이 엄청나게 비싼 고가의 가보가 깨뜨려지니 어떤 사람들의 공분이 대단한 것은 당연해 보인다.
5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며 그 여자를 책망하는지라
어떤 사람들의 비난은 그냥 한 번 지나가듯이 한게 아니라, 계속해서 지속적으로 예수님이 그 비난을 멈추도록 하시기 전까지 계속되었다.
본문의 이야기
본문의 이야기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마을 - 베다니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동쪽으로 3km 떨어진 지점에 있는 마을 - 문둥병자 수용소가 있던 곳이다. 그리고 이 식사자리의 호스트는 문둥병자 시몬이다. 요한복음에서는 이 이야기에서 호스트를 예수님께서 다시 살리신 나사로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마가가 의도한 분명한 구분선을 발견하게 되는데, 외부자 - 내부자의 대립구도이다. 유대인들과 제자들, 가난한 사람들을 도우려고 하는 마음과 유월절 종교적 헌신을 이루려고 하는 노력들은 내부자들의 모습이다. ‘어떤 사람들’로 나오는 이들은 다른 본문에서는 제자들이라고 나온다. 이들은 종교적으로, 사회적으로, 예수님께도 ‘내부자들’이다.
내부자와 외부자
식사 예절로 치자면 이 여인의 행동도 문제가 있다. 오늘의 주인공, 무명으로 등장하는 여인은 식사자리에서 해서는 안되는 행동을 했다. 먹을 것을 가지고 오는 거 말고는 여자는 식사때 그 어떤 행동도 해서는 안된다. 요한복음에보면 향유를 가져다가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발을 닦았다. 중동지방의 히잡은 여인이 머리를 드러내는 것은 매우 불경하다고 하기 때문에 쓰는 것이다. 유대전통에도 이혼증서를 써주지 않고도 이혼이 가능한 것 중의 하나가 머리털을 드러내놓고 다니는 것이었다.
여기에서 우리는 마가가 의도한 분명한 구분선을 발견하게 되는데, 외부자 - 내부자의 대립구도이다. 유대인들과 제자들, 가난한 사람들을 도우려고 하는 마음과 유월절 종교적 헌신을 이루려고 하는 노력들은 내부자들의 모습이다. ‘어떤 사람들’로 나오는 이들은 다른 본문에서는 제자들이라고 나온다. 이들은 종교적으로, 사회적으로, 예수님께도 ‘내부자들’이다.
반면에 오늘 등장하는 베다니라고 하는 동내나, 문둥병을 앓았던, 심지어 죽었었던 시몬 나사로나, 식사 규례를 범하고 소란을 일으키는 한 여인이나, 완전히 쏟아져버린 향유나,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침묵조차도 ‘외부자’, ‘아웃사이더’의 모습이다.
병을 깨뜨리고 어쩌면 향유의 냄새가 음식의 맛을 반감시켰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사용되는 향유 자체가 얼마나 비싼 것이었는지 300데나리온 이상의 가치를 지녔다고 말하는데, 이정도면 이 향유의 가치는1년 연봉이다. 1일 품삯이 1 데나리온이기 때문이다. 지금으로 치면 8-10만원, 약 3000만원 짜리 향수인 것이다.
반면에 오늘 등장하는 베다니라고 하는 동내나, 문둥병을 앓았던, 심지어 죽었었던 시몬 나사로나, 식사 규례를 범하고 소란을 일으키는 한 여인이나, 완전히 쏟아져버린 향유나,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침묵조차도 ‘외부자’, ‘아웃사이더’의 모습이다.
사회적 굴레들과 구분선이 여인과 예수님, 제자들과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다. 절대 무너지지 않을 가장 가치 있는 것들이 견고하게 세워져 있는 곳에 가장 가치 있는 것이 산산조각 나고 조각이 나뒹 굴고 코를 찌르는 향기로
사회적 굴레들과 구분선이 여인과 예수님, 제자들과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다. 절대 무너지지 않을 가장 가치 있는 것들이 견고하게 세워져 있는 곳에 가장 가치 있는 것이 산산조각 나고 조각이 나뒹 굴고 코를 찌르는 향기로 그 공간을 가득채울 때, 견고했던 구분선이 무너져 내린다.
이 병도 보통이 아닌데, 알라바스터라고 일종의 대리석으로 만든 병인데 병 자체도 비싸고 귀한 거라 향유 옥합이라고 부르는 이것 자체가 가보 수준이었다고 한다. 오늘 본문에서 이 병을 깨뜨렸다는 것은 이 병 자체를 깨뜨린것이 아닌게, 돌 자체를 던져서 깨뜨리려면 엄청난 힘을 써야 한다. 대신 이 병을 쓰는 방법은 잘 봉인된 뚜껑을 깨는 것인데, 이걸 깨뜨리는 것 자체가 다시는 사용하지 못할 수준으로 완전히 소비하는 것이라서 사람들에게 엄청난 충격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내부자와 아웃사이더의 역전이 오늘 예수님의 선언
예수님은 이렇게 선언하신다.
식사 예절을 지나서 냄새가 진동하는 향유가 부어지고 대리석 조각이 산산조각나서 굴러다니는 현장을 상상해보면 이 여인의 행동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가 있는지 깨닫게 된다.
6절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다’
장면을 살짝 돌려보면 이 여인의 옥합을 깨뜨리는 장면은 유월절을 준비하는 기간에 벌어졌다. 대제사장들조차 몸을 사리던 시간이다. 이 유월절이라는 것이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을 위한 베품과 나눔의 시간을 가지는 전통이 있었는데, 이 기간 동안에 이 엄청나게 비싼 고가의 가보가 깨뜨려지니 어떤 사람들의 공분이 대단한 것은 당연해 보인다.
그리고 이 좋은 일이 - 복음과 연결됨
,
5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며 그 여자를 책망하는지라
9절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
그녀는 예수님께 좋은 일을 행하고자 했다. 엄청난 용기와 자신의 있는 힘을 다하여 예수님께 좋은 것을 드리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여기에서 우리는 한 가지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의 비난은 그냥 한 번 지나가듯이 한게 아니라, 계속해서 지속적으로 예수님이 그 비난을 멈추도록 하시기 전까지 계속되었다.
어떤 사람들의 비난은 그냥 한 번 지나가듯이 한게 아니라, 계속해서 지속적으로 예수님이 그 비난을 멈추도록 하시기 전까지 계속되었다.
예수님께서 마가복음 1장 14절에서 복음을 전파하셨다
하는 말씀이 후에 마지막 복음이라는 단어가 사용된 곳.
힘을 다하여 라고 되어 있는 부분은 원어로 하면 ‘가진 것을 가지고’ 라고 되어있는데, 이것이 가지고 있는 것중의 얼마 안되는 것으로 라는 의미는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자신이 가진 최대의 것을 가지고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이야기는 12장에 등장하는 가난한 과부의 헌금 이야기와 닮아있다.
이 좋은 일의 정체 - 복음과 연결되는 그 무엇이 무엇인가?
내부자와 외부자
내부자와 외부자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연결되는 좋은 일.
두 렙돈 과부의 이야기
여기에서 우리는 마가가 의도한 분명한 구분선을 발견하게 되는데, 외부자 - 내부자의 대립구도이다. 유대인들과 제자들, 가난한 사람들을 도우려고 하는 마음과 유월절 종교적 헌신을 이루려고 하는 노력들은 내부자들의 모습이다. ‘어떤 사람들’로 나오는 이들은 다른 본문에서는 제자들이라고 나온다. 이들은 종교적으로, 사회적으로, 예수님께도 ‘내부자들’이다.
과부 이야기를 한 번 살펴보자.
정리하면, 유월절, 유일한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죽으셔야 하는 명절,
반면에 오늘 등장하는 베다니라고 하는 동내나, 문둥병을 앓았던, 심지어 죽었었던 시몬 나사로나, 식사 규례를 범하고 소란을 일으키는 한 여인이나, 완전히 쏟아져버린 향유나,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침묵조차도 ‘외부자’, ‘아웃사이더’의 모습이다.
가난한자, 갇힌자, 슬픔과 아픔으로 가득한 자들,
예수님은 무리가 헌금함에 어떻게 돈 넣는 가를 보시기 위해 헌금함을 앞에 두고 앉으신다. 여러 부자는 많이 넣는데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 한 고드란트를 넣는다. 예수님은 이 가난한 과부가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다고 하시면서 그 과부는 가난한 중에서 자기의 모든 소유, 생활비 전부를 넣었다고 말씀하신다.
그들이 회복되고 소명되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고, 그 죽음의 시간을 준비하는
이 본문을 자신의 있는 것을 드리는 헌신과 연결시킬 수 있겠지만, 이 본문이 여기에 있는 이유가 한가지 있다. 12장 1-37절까지는 성전과 회당에서 가장 핵심적인 인물들이었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사실상 얼마나 무지하고 참된 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리고 38-40절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고 이야기하신다. 그리고 가난한 과부의 헌금 이야기가 이어지고 13장은 성전이 무너져 내릴 것에 대한 예언과 경고가 이어진다.
가장 중요한 의식중의 하나인 장례의 준비가
사회적 굴레들과 구분선이 여인과 예수님, 제자들과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다. 절대 무너지지 않을 가장 가치 있는 것들이 견고하게 세워져 있는 곳에 가장 가치 있는 것이 산산조각 나고 조각이 나뒹 굴고 코를 찌르는 향기로 그 공간을 가득채울 때, 견고했던 구분선이 무너져 내린다.
이 아웃사이더인 여인을 통해서 일어난 것.
사실상 과부의 이야기는 단적으로 성전의 견고한 사회적 굴레들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향한 예수님의 통렬한 비판이었다. 그녀가 두 렙돈, 한 고드란트를 넣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당시에 헌금함에는 나팔이 달려 있어서 헌금함에 들어가는 동전 소리로 얼마나 넣었는지를 대략 알 수 잇었다고 한다. 그런데 너무나 작은, 가장 작은 것을 넣은 동전은 헌금함에서 어떤 소리가 났을까? 그 작은 파열음을 예수님은 들으신 것이다.
예수님은 이렇게 선언하신다.
그와 동시에 내부자였던 이들이 철저한 아웃사이더로 쫒겨나는 장면.
6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만 두라 너희가 어찌하여 그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이 과부는 하나님께 자신의 전심과 전력을 다하여 사랑과 헌신을 보였지만, 그것을 함께 듣고 관리하는 서기관들은 그녀를 돌아보지 않았다. 신경쓰지도 않았다. 오히려 가난한 과부의 전재산을 삼켜버리는 비열하고 비정한 자들이다. 그들이 운영하는 곳이 성전이라 할지라도 예수님은 무너져 내려버릴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십자가의 죽으심의 복음은
,
8 그는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례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아웃사이더 같고, 철저히 외부인 같은 우리를 하나님 나라의 인사이더로 부르시는 부르심
이 이야기를 생각하고 오늘 본문을 보자.
그녀는 예수님께 좋은 일을 행하고자 했다. 엄청난 용기와 자신의 있는 힘을 다하여 예수님께 좋은 것을 드리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여기에서 우리는 한 가지 힌트를 얻을 수 있다.
하나님 나라의 역전은 우리를 외부자적인 정체성을 바꿔서
핵심적인 내부자가 되게 하시는 것.
무너지는 성전
힘을 다하여 라고 되어 있는 부분은 원어로 하면 ‘가진 것을 가지고’ 라고 되어있는데, 이것이 가지고 있는 것중의 얼마 안되는 것으로 라는 의미는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자신이 가진 최대의 것을 가지고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이야기는 12장에 등장하는 가난한 과부의 헌금 이야기와 닮아있다.
우리의 삶이 인생이 사역이 우리의 모든 순간이 이런 뒤집힘을 경험할 수 있기를.
여기에서 유월절과 무교절에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죽일 방도를 생각하고 있다. 성경은 예수님이 참된 성전의 모형이라고 가르친다. 성전을 그들 스스로 무너뜨리려고 한다. ‘어떤 사람들’의 행동은 어떠한가? 그들은 지금 성전이 무너지든 말든 상관없는듯이 행동한다. 그 ‘돈’으로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 시킬 수 있는 외식이 절실하게 필요했던 것처럼 말한다.
두 렙돈 과부의 이야기
두 렙돈 과부의 이야기
과부 이야기를 한 번 살펴보자.
그러나 장면은 참된 성전이신 예수님이 죽으시는 장면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제자들과 사람들은 자신들이 보고 있는 성전이 무너져 내릴 것을 훗날에 보겠지만, 지금 진짜 성전은 무너지기 일보직전이다. 그들은 보았지만, 보지 못했고, 들었지만, 듣지 못했다. 진짜 듣고 보았던 사람들은 가난한 과부, 자신의 모든 것을 깨뜨린 무명의 한 여인, 소외되고 핍박받는 외부자들이었다. 그들은 있는 힘껏 사랑했고, 자신의 것을 깨뜨렸고, 모든 것을 던졌고, 집중했다.
예수님은 무리가 헌금함에 어떻게 돈 넣는 가를 보시기 위해 헌금함을 앞에 두고 앉으신다. 여러 부자는 많이 넣는데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 한 고드란트를 넣는다. 예수님은 이 가난한 과부가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다고 하시면서 그 과부는 가난한 중에서 자기의 모든 소유, 생활비 전부를 넣었다고 말씀하신다.
여인은 오로지 자신의 가진 거의 모든 것을 깨뜨리고 모두다 부어서 예수님께 사랑과 헌신을 표현한다. 그녀는 계속해서 자신을 괴롭히며 큰 소리를 지르며 호통치는 제자들의 소리침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자신의 일을 행한다. 그녀의 거의 모든 것이 깨뜨려졌고, ‘허비’되었고, 사라져 가지만, 그녀의 마음은 예수님께 흠뻑 적셔졌고 흡수되었으며 깨진 그녀의 마음이 통전적으로 회복되기 시작한다.
이 본문을 자신의 있는 것을 드리는 헌신과 연결시킬 수 있겠지만, 이 본문이 여기에 있는 이유가 한가지 있다. 12장 1-37절까지는 성전과 회당에서 가장 핵심적인 인물들이었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사실상 얼마나 무지하고 참된 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리고 38-40절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고 이야기하신다. 그리고 가난한 과부의 헌금 이야기가 이어지고 13장은 성전이 무너져 내릴 것에 대한 예언과 경고가 이어진다.
소리치고 윽박지르는 자들은 아직 여전히 견고해보이는 성전과 더불어 망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묵묵히 예수님께 자신의 부끄러움에도 불구하고, 얼굴이 화끈거리게 달아오르는 모욕에도 불구하고 기름을 붓고 닦으며 머리를 풀어내리는 무명의 여인과 두 렙돈의 과부와 아이들과 눈 먼 사람은 예수님께 가까워지며 다시 살아날 소망을 갖는다. 그녀의 깨진 돌 병은 무너질 성전보다 훨씬 가치있게 부서져 내렸다.
사실상 과부의 이야기는 단적으로 성전의 견고한 사회적 굴레들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향한 예수님의 통렬한 비판이었다. 그녀가 두 렙돈, 한 고드란트를 넣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당시에 헌금함에는 나팔이 달려 있어서 헌금함에 들어가는 동전 소리로 얼마나 넣었는지를 대략 알 수 잇었다고 한다. 그런데 너무나 작은, 가장 작은 것을 넣은 동전은 헌금함에서 어떤 소리가 났을까? 그 작은 파열음을 예수님은 들으신 것이다.
이 과부는 하나님께 자신의 전심과 전력을 다하여 사랑과 헌신을 보였지만, 그것을 함께 듣고 관리하는 서기관들은 그녀를 돌아보지 않았다. 신경쓰지도 않았다. 오히려 가난한 과부의 전재산을 삼켜버리는 비열하고 비정한 자들이다. 그들이 운영하는 곳이 성전이라 할지라도 예수님은 무너져 내려버릴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생각하고 오늘 본문을 보자.
무너지는 성전
무너지는 성전
1 이틀이 지나면 유월절과 무교절이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흉계로 잡아 죽일 방도를 구하며
2 이르되 민란이 날까 하노니 명절에는 하지 말자 하더라
여기에서 유월절과 무교절에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죽일 방도를 생각하고 있다. 성경은 예수님이 참된 성전의 모형이라고 가르친다. 성전을 그들 스스로 무너뜨리려고 한다. ‘어떤 사람들’의 행동은 어떠한가? 그들은 지금 성전이 무너지든 말든 상관없는듯이 행동한다. 그 ‘돈’으로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 시킬 수 있는 외식이 절실하게 필요했던 것처럼 말한다.
그러나 장면은 참된 성전이신 예수님이 죽으시는 장면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제자들과 사람들은 자신들이 보고 있는 성전이 무너져 내릴 것을 훗날에 보겠지만, 지금 진짜 성전은 무너지기 일보직전이다. 그들은 보았지만, 보지 못했고, 들었지만, 듣지 못했다. 진짜 듣고 보았던 사람들은 가난한 과부, 자신의 모든 것을 깨뜨린 무명의 한 여인, 소외되고 핍박받는 외부자들이었다. 그들은 있는 힘껏 사랑했고, 자신의 것을 깨뜨렸고, 모든 것을 던졌고, 집중했다.
여인은 오로지 자신의 가진 거의 모든 것을 깨뜨리고 모두다 부어서 예수님께 사랑과 헌신을 표현한다. 그녀는 계속해서 자신을 괴롭히며 큰 소리를 지르며 호통치는 제자들의 소리침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자신의 일을 행한다. 그녀의 거의 모든 것이 깨뜨려졌고, ‘허비’되었고, 사라져 가지만, 그녀의 마음은 예수님께 흠뻑 적셔졌고 흡수되었으며 깨진 그녀의 마음이 통전적으로 회복되기 시작한다.
소리치고 윽박지르는 자들은 아직 여전히 견고해보이는 성전과 더불어 망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묵묵히 예수님께 자신의 부끄러움에도 불구하고, 얼굴이 화끈거리게 달아오르는 모욕에도 불구하고 기름을 붓고 닦으며 머리를 풀어내리는 무명의 여인과 두 렙돈의 과부와 아이들과 눈 먼 사람은 예수님께 가까워지며 다시 살아날 소망을 갖는다. 그녀의 깨진 돌 병은 무너질 성전보다 훨씬 가치있게 부서져 내렸고, 지금도 다시 세워지지 못한 성전과 비교되게, 지금도 여전히 그녀의 깨진 돌 병 이야기는 우리에게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움직이는 교회
움직이는 교회
고난주간이 되면 금식하며 절제하는 운동들이 생겨난다. 뭔가를 하지 않고 끊으면서 예수님께 집중하라는 것이다. 예수님의 고난에 조금이나마 동참하자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것을 누려왔던 것을 잠시 멈추자고 말한다.
이런 금욕적 행동이 어떤 것을 멈추는 방식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우리는 지금 사회적 거리두기로 너무 많은 것들을 못하고 있다. 못하게 되는 것에 대한 불편과 어려움은 너무나 잘 생각하고 있다. 오히려 이런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았으면 좋겠다. 하나님을 더 깊이 생각하고 만날 수 있는 방법, 이웃을 더 깊이 사랑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실천해봤으면 좋겠다.
갓피아를 통해서 마가복음 온라인 필사를 진행하고 있다. 중고등 학생들을 포함해서 주일학교까지 함께 참여했으면 좋겠다. 한 장이라도 써봤으면 좋겠다. 하루 한 시간 정도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마가복음에 있는 이야기들이 읽혀지고 들려졌으면 좋겠다. 읽으면서 써보라. 아주 작은 실천이라도 일주일 동안 도전해보길 바란다.
마스크 만들기가 끝났다. 약 100장 정도가 모였다. 앞에 스티커에 예수님이 죽음에서 부활하신 것처럼 우리나라도 이 상황을 이겨낼 것을 믿는다고 적었다. 이렇게 이번 부활절은 계란 대신에 마스크를 전달할 것이다. 우리의 사랑과 헌신은 이런 방식으로 흘러가야 된다고 믿는다.
하나님에대한 사랑과 이웃을 향한 사랑의 균형이 잡혀가야 우리는 ‘교회’중심의 신앙을 탈피할 수 있다. 요즘들어 더욱 교회를 향하여 하나님의 메시지가 분명하고 강렬하다는 생각을 많이 갖게 된다. 우리가 혹시 교회에 ‘다니는 것’으로 신앙생활에 만족함을 누렸다면, 무너져내리는 성전을 예고하신 예수님의 이야기에 주목해야 한다.
예수님은 그 성전 중심으로 살아가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 심지어는 제자들까지도 진짜 하나님 나라의 핵심이 될 수 없음을 천명하신다. 오히려 세상에서 핍박당하고 무시당하고 배척당하고 깨져버린 존재들 같은 이들이 전심을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섬기고 자신을 던져 십자가의 길을 같이 가기로 헌신할 때, 그들이 진짜 하나님 나라의 핵심이라고 말씀하신다.
교회 중심의 신앙에서 행동하는 신앙으로 옮겨가길 소망한다. 멈추는 신앙에서 움직이는 신앙이 되길 바란다. 값싼 은혜는 소유하는데서 그친다. 그러나 진짜 가치를 회복하는 은혜는 가진것을 깨뜨려 흘러보내는 것에서 시작된다. 우리 믿음이 진짜 가치 있는 것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길은 오로지 삶으로 ‘증명’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기억하자.
반지의 우화
반지의 우화
고트홀트 에프라임 레싱이라는 계몽주의 작가가 지은 현자 나탄이라는 작품이 있다. 그 작품 속에 ‘반지 우화’라는 것이 나온다.
옛날 한 나라에 남자가 살았는데,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받은 값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귀중한 반지가 있었다. 이 반지는 신통력이 있어서 반지를 끼는 사람은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게됐다. 그 남자도 이 반지를 통해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존재가 되었다. 이 귀중한 보물을 자신의 가장 사랑하는 아들에게 그리고 그 손자에게 이어지도록 했다. 그렇게 그 반지가 아들에서 아들로 이어져 내려오다가 아들 셋을 둔 아버지에게 넘어왔다. 그런데 이 아들들이 하나같이 아버지의 마음에 들었다. 셋 다 반지를 이어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자 아버지는 반지 세공에게로 가서 똑같은 반지 두개를 더 만들어 달라고 했다. 그리고 누가 진짜 반지를 가졌는지 모르게 세 아들에게 진짜 반지가 바로 이 반지라고 이야기해주며 반지를 받았다. 아버지가 죽고 나자 세 아들들이 모두 똑같이 생긴 반지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자 진짜 반지의 주인이 누구인지 가려달라고 재판장에게 갔다.
하지만 똑같이 생긴 반지의 진위를 밝힐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재판장은 세 아들에게, 그 반지가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반지라면, 자연스럽게 진짜 반지의 주인이 나타나게 될 것이고, 모든 상속이 그에게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자신들이 하나님의 선택받은 자들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과부와 소외된자들에게 탐욕을 부리며 가산을 집어삼키는 서기관과 바리새인, 그리고 예수님께 그런 자리를 요구하는 제자들.
자신이 아무것도 하나님께 드릴 것이 없을 뿐더러, 나의 모든 것을 다 드려서라도 하나님의 아들을 섬기고 사랑하려고 비난과 멸시와 조롱도 마다하지 않고 옥합을 깨뜨리는 여인.
행동과 삶에서 이미 진짜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가 누구인지 보인다.
옥합을 깨뜨려
옥합을 깨뜨려
이것은 우리에게 위대한 역전을 알려준다. 내부자였던 이들은 바깥 어두운 곳으로, 외부자였던 이들은 하나님 나라의 영광스러운 중심으로 들어온다. 움직이는 교회로,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 나라를 세우기 위하여 몸부림으로 살아내는 이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드디어 그들의 소유가 된다.
깨져야 살 수 있고, 바깥으로 나가야 안으로 들어올 수 있으며, 죽어야 살 수 있다는 신비로움이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보여지고 있다. 우리가 그 무명의 여인처럼 옥합을 깨뜨릴 차례이다.
우리의 두려움이 주는 굳어버린 ‘옥합’ 깨뜨리자.
우리의 딱딱한 습관적 신앙이라는 ‘옥합’ 깨뜨리자.
선입견과 편견과 오만과 아집으로 굳어진 ‘옥합’을 깨뜨리자.
그리고 그 속에 우리 안에 있는 좋은 것들을
하나님을 향하여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을 향하여
흘려보낼 방법들을 찾고 움직이자.
우리는 깨지겠으나, 그 헌신과 사랑이 예수님께 부어질 때,
우리 주님의 부활과 더불어 죽음을 이기는 참된 메시아를 만나게되는
성령의 기름부음으로 하나님 나라 안으로 편입되는 놀라운 은혜와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