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19 [공동체 예배] 마른 뼈들에 생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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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호와께서 권능으로 내게 임재하시고 그의 영으로 나를 데리고 가서 골짜기 가운데 두셨는데 거기 뼈가 가득하더라
2 나를 그 뼈 사방으로 지나가게 하시기로 본즉 그 골짜기 지면에 뼈가 심히 많고 아주 말랐더라
3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 하시기로 내가 대답하되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
4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모든 뼈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5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6 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넣으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또 내가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리라 하셨다 하라
7 이에 내가 명령을 따라 대언하니 대언할 때에 소리가 나고 움직이며 이 뼈, 저 뼈가 들어 맞아 뼈들이 서로 연결되더라
8 내가 또 보니 그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그 위에 가죽이 덮이나 그 속에 생기는 없더라
9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 생기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죽음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아나게 하라 하셨다 하라
10 이에 내가 그 명령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나서 일어나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
11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은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 그들이 이르기를 우리의 뼈들이 말랐고 우리의 소망이 없어졌으니 우리는 다 멸절되었다 하느니라
12 그러므로 너는 대언하여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에서 나오게 하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게 하리라
13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에서 나오게 한즉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14 내가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가 살아나게 하고 내가 또 너희를 너희 고국 땅에 두리니 나 여호와가 이 일을 말하고 이룬 줄을 너희가 알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993년 10월 10일 주일 새벽.
동생의 친구가 육지에 나가게 되었다면서 신난 목소리로 사택 문을 두드렸다.
오늘 예배를 나올 수 없을 것 같다고, 죄송하다고.
작은 마을이기 때문에 친구가 소중했고,
매일마다 같이 노는 사이들이었으니 얼마나 가까웠을까.
그날 아침 10시 10분, 예배를 드리기 바로 직전에
마을이 난리가 났다.
아침에 출발한 여객선이 바다에 침몰했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이지만, 그 당시느낌이 생생하다.
온 마을과 섬 전체가 초상집이 된 분위기를.
어른들은 절대 방파제에 나가지 말라고 했다.
혹시나 떠오를지 모를 시신과,
이미 수습된 사체들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어서 불어 터져있는 모습을
보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날 그 아이도. 퉁퉁 불어 있는 채로 바다에서 건져 올려왔다.
겨우 6살.
2014년 4월 16일.
한참 소방 훈련이 진행되고 있던 때에
밖에 나간다고 신이 났다.
한참 훈련을 점검하는 일을 도와드리고
아저씨와 함께 점심을 먹는데
소방대원 아저씨들이 티비만 보고 있었다.
배가 뒤집어졌다고.
그런데 다 구조 되었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럼 그렇지. 지금 20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그런 많은 사람들이 죽을리가 없지.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다시 그런 슬픔을 마주하지 않아도 되는구나.
그날. 섬 하나가 절규와 절망으로 시간을 보냈던 어린날의 기억이
한국 사회 전체로 퍼져나가는 것을 가슴 저미게 보았다.
음모론같은 것 믿지 않는다.
이건 그냥 실무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일을 해야 할 사람들이 무능했던 거다.
그 무능을 들춰내고 싶지 않고 부끄러워 덮으려고만 했기에
사회에 대한 분노와 절망과 슬픔과 울분이
그 배, 세월호와 함께 가라앉은 것만 같다.
2014년은 봄에 아이들과 한국 사회가 바다에 빠져들었고,
겨울에 아버지의 죽음으로 신앙의 침체기를 맞았다.
여러모로 죽음과 부활을 깊이 생각하고 묵상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가장 큰 질문이 하나님은 정말 사랑이신가? 정의로우신가? 실수가 없으신가? 였다.
참 많이 원망 스러웠고, 신앙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질문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면, 왜 아버지를 죽게 만드셨냐고,
수백의 아이들이 바다에 빠져들어가고 배 안에서 기도하고 도움을 구할 때
하나님은 대체 어디 계셨냐고,
6살 짜리 아이가 몸이 퉁퉁 불어 형체도 없이 떠올랐을 때-
하나님은 뭘 하고 계셨느냐고.
에스겔과 우리의 동질감
에스겔과 우리의 동질감
오늘 본문의 주인공인 에스겔은 나라가 망했다.
고향은 철저히 이방 나라에 의해서 유린당했고,
성전은 파괴되었다. 희망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도 꽤나 고위직의 자녀였기에 바벨론 포로로 끌려온 에스겔이었지만,
그가 기록한 에스겔의 내용을 보면
정신병자같다는 느낌이 들정도로 심각해보인다.
결국, 에스겔과 우리가 질문하는 질문은 동일했다.
하나님은 대체 어디서 무엇을 하십니까?
여기 이곳 다 망하고 쓰러진 나라에서 끌려온 이방 땅에서-
하나님은 무슨 일을 하실 수 있습니까?
당신은 정의로우십니까? 공의로우십니까?
에스겔에게 이스라엘은 이제 더 이상 희망이 없었다.
최후의 최후까지 남아 있었을 소망이 꺼진,
아무런 기대도 가질 수 없는 상황에
이스라엘이 붙잡아야 할 것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우리는 지금의 상황들 속에서
경제가 무너지기 일보직전이고, 사회의 갈등은 더욱 심화되고
이전의 세상은 더 이상 올 수 없다는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
무엇을 붙잡으며 살아가야 하는 걸까?
에덴을 말씀하심
에덴을 말씀하심
오늘 본문을 보기 앞서
바로 직전의 36장을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성전을 떠나셨고, 열방들이 심판을 받을 것인데,
이 모든 심판이 끝날때가 오면,
새 영을 주고, 새 마음을 주셔서
29 내가 너희를 모든 더러운 데에서 구원하고 곡식이 풍성하게 하여 기근이 너희에게 닥치지 아니하게 할 것이며
에서는
곡식이 풍성하게 하고, 기근이 닥치지 않으며
35 사람이 이르기를 이 땅이 황폐하더니 이제는 에덴 동산 같이 되었고 황량하고 적막하고 무너진 성읍들에 성벽과 주민이 있다 하리니
황폐했던 땅이 ‘에덴 동산’ 같이 되었다-
고 말하게 될 날이 오리라고 말한다.
뭔가 풍성하고 회복된 기대감 넘치는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현실은 마른 뼈의 삼중상태
현실은 마른 뼈의 삼중상태
그런데 37장 1절을 보면-
‘뼈’가 가득한 곳이다.
이게 무슨 일인가.
하나님의 말씀은 희망과 구원과 영광과 기쁨과 즐거움을 이야기하는데,
현실은 뼈로 가득찬 공동묘지, 아니 그것보다 더 심각한
죽음과 처형의 골짜기다.
2절에 보면 뼈들의 상태는 아주 말라있다.
더 이상 회복될 수 없는 수준까지 말라있는 것이다.
11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 뼈들이 누구인지 말씀해주시는데,
11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은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 그들이 이르기를 우리의 뼈들이 말랐고 우리의 소망이 없어졌으니 우리는 다 멸절되었다 하느니라
뼈들은 ‘이스라엘 온 족속’이다.
그리고 이스라엘 온 족속, 뼈들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의 뼈들이 말랐고
우리의 소망이 없어졌으니
우리는 다 멸절되었다.
이 삼중적인 자기 인식과 자기 표현이 얼마나 와닿는가.
1. 뼈들이 말랐다.
1. 뼈들이 말랐다.
22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
뼈가 마르는 것은 심령의 근심 때문이다.
아무리 떨치려고 해도 딱 달라붙어서 우리를 괴롭히는 그 근심의 이유들.
그것들이 우리의 뼈를 마르게 만든다.
이렇게 뼈가 마르는 경험을 다 한 번씩은 해보지 않는가?
밤새 잠이 오질 않아서, 생각이 떠나질 않아서
누워도 잠이 오질 않고, 심장이 두근거리고
머리가 복잡한데 일은 점점 꼬이는 것 같고-
마리앙투아네트 증후군이라는 것이 있다.
프랑스 혁명 때 마리 앙투아네트가 처형당하기 전에
그녀의 머리가 완전히 백발로 변한 것을 보고 지어진 이름이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상황을 생각해보면, 다음 날 처형 당하는 사형수 신세였고
배우자인 루이 16세는 처형 당했다.
시민들의 조롱과 비난이 쏟아졌고, 수치심이 극도에 달했다.
엄청난 스트레스가 그녀를 붙잡았을 것이다.
실제로 과학자들은 머리가 하얘지는 것이 스트레스와 관련 있을 거라고 이야기한다.
혹시 요즘에 머리가 하얗게 변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뼈가 마르고 계시군요.. 라고 말해주자.
2. 소망이 없다.
2. 소망이 없다.
근심이 있더라도, 희망이 있으면 이길 수가 있다.
그런데 근심하는데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플로렌스 채드윅이라는 수영 선수가 있었다.
1952년 7월 4일 미국독립기념일에
캘리포니아 해안에서 35km를 헤엄쳐 카타리나 섬에서 본토까지 건너는 도전을 했다.
16시간 정도를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고 쉬지 않고 수영해야하는
극악한 난이도의 어려운 코스였다.
상어 떼로부터 보호해주는 배를 제외하면
혼자서 싸움을 포기하지 않고 해야만 했다.
그날은 물이 몹시 차가웠고,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있었다.
그녀가 15시간 정도 수영했을 때 도저히 이 도전을 계속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물에서 나가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배에 타고 있던 어머니는 조금만 견디면 된다고 격려했지만,
소용 없었다. 안개로 인해서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
물은 차갑고 더 이상 이 도전을 계속할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탈진한 그녀는 수영을 중단하고 물에서 나왔다.
그리고 플로렌스가 배에 오르자 800m 정도 배가 움직였을 때
육지에 다다랐다.
플로렌스는 다음 날 기자회견에서 펑펑 울면서 이렇게 기자 회견을 가졌다.
눈에 보이는 것은 자욱한 안개뿐이었어요.
만일 캘리포니아 해변이 보였더라면 충분히 완주 할 수 있었을 겁니다.
안개가 제 승리를 앗아갔어요.
소망이 없다는 것은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어디쯤 와 있는지, 결승선이 있는지 없는지 조차 알 수 없는 상태라는 것이다.
지금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는데, 내가 30분을 더 가면 목적지에 도달할지, 1시간을 더 가야 하는지,
하루를, 한 달을 일년을 더 기다려야하는지 도저히 보이지 않을 때
우리는 소망없는 자로 낙심한다.
3. 끊어졌다.
3. 끊어졌다.
뼈가 마르고 소망이 없는 존재로 전락한 이스라엘의 마지막 자기 상태 고백은
멸절되었다는 것이다.
멸절은 ‘끊어졌다’ 라는 뜻인데, 완전한 고립이다.
공동체로부터 끊어지고, 생명으로 부터 끊어지고, 하나님께로 부터 끊어지는 상태다.
전혀 이어지는 느낌이 들지 않는 상태다.
어디 하나 디딜곳이 없다.
내 마음을 상태를 상황을 들어주고 이해해주고 소망을 주고 근심을 그치게 해줄만한
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 완전한 고립감은 ‘멸절’로 표현된다.
마르고 소망없고 끊어진 뼈들이 가득하다.
기대감이 없다.
생기-새로운 창조-부활
생기-새로운 창조-부활
그런데, 하나님이 에스겔에게 이 뼈들을 향하여서
‘영’이 들어가도록 명령 하라고 에스겔에게 명령하신다.
이 장면은 매우 극적으로 창세기 2장 7절을 소환한다.
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이미 형태는 갖추어졌다.
그러나 아직 완전한 사람이 아니다. ‘생기’가 들어가야 한다.
뼈에 근육도 생기고 살이 오르고 가죽도 덮힌다.
그러나 아직 ‘생기’가 없을 때, 그들은 완전한 사람이 아니다.
하나님이 이 뼈들을 살리시는 것은
생기를 불어 넣으심으로 ‘새롭게 창조’하신다는 약속이다.
새롭게 창조한다는 것은 무엇을 이야기하는가?
‘부활’을 경험하게 하시겠다는 것이다.
12-13절을 읽어보자.
12 그러므로 너는 대언하여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에서 나오게 하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게 하리라
13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에서 나오게 한즉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지난 주 말씀을 기억해보자.
그녀들은 시간에 쫓겼고, 부활의 증인이 될 자격이 없었고,
돌 문을 굴릴 능력이 없었다.
무덤을 향해 가면서
그들에게는 밤을 지새우는 뼈가 마르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녀들에게 소망이 보이지 않았다. 이미 예수님의 생명은 끊어졌다.
그리고 자신들 조차도 반역자로 몰려 죽은 예수와 가까이 했다는 것만으로도
죽음의 위협과 공포와 두려움이 둘러쌌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돌을 누가 굴려줄까 생각하면서도 무덤을 향해 갈 때
‘하나님께서 그 돌을 굴려주신다’
이것을 오늘 본문은 더 정확하고 분명하게 그려주신다.
내가 너희 무덤을 열것이다.
너희로 거기에서 나오게 할 것이다.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거기에서 나오게 할 것이다.
두 번이나 반복하신다.
무덤을 열고 거기에서 나오게 하실 때
‘내 영’ 을 속에 두고 살아나게 하실 것이다.
우리가 무덤을 향해 달려가는 여인들처럼,
오늘 본문의 완전히 마른 뼈처럼 소망 없이 멸절된 존재일 지라도,
하나님의 영이 우리 속에 들어오시는 순간
우리의 무덤이 깨질 줄 믿는다.
예수님의 빈 무덤을 만드신 분이
우리의 문제의 무덤을 ‘비게’ 만드실 것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영’ 이 임하시는 성령의 임재를 기다리고 기대하는 것이다.
그 생명의 영이 임하실 때,
우리의 슬픔과 절망이, 두려움과 아픔이,
답답하게 갇힌것만 같은 내 인생의 미래와
죽음의 향기로 가득찬것만 같은 우리의 무덤이
‘빈 무덤’으로, 생명의 군대로 나아가게 될 줄 믿는다.
여전히 우리 사회는 아프다.
싸매주실 하나님의 영을 간절히 찾고 구할수밖에 없다.
경제적으로 무너져가는 상황을 어떻게 버텨내야 할지,
점점 극단화 되어가는 정치적 색깔들을 어떻게 극복할지,
세대간의, 남녀간의, 남북간의 -
지금처럼 갈갈히 찢겨진 사회속에서
너무나도 아픈 개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너무나 아프고 아프다.
그러나 아직 우리에게 소망이 있는 것은,
그 생명의 영이 우리에게 약속되었기 때문이고,
부활이 우리에게 주어졌기 때문이다.
세월호 안에 기도하던 아이들이 있었다.
마지막 순간에도 모여서 기도하던 아이들의 모습이
TV 화면으로 흘러나올 때 가슴이 무너졌다.
하나님은 어디계시느냐고, 부모님들의 절규와 절망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리라고
당연하게도, 감히 공감할 수 있겠노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부모님들이 교회로 나와서 믿음을 갖기 시작했다.
이렇게 헤어진게 믿기지 않고 절망적인데,
우리 아이가 믿는 그 예수님을 믿으면
부활해서 다시 만난다고 하는데,
나도 부활해서 만나야 할 것 아니냐고.
진짜 부활은 소망이며, 다시 사는 생명이다.
우리의 삶을 끝까지 살아낼 수 잇는 용기이며,
절망 가운데서도 소명을 붙들 수 있는 이유다.
우리 주님이 그것을 위해서 먼저 부활하셨으며
우리를 그 부활로 초대하신다.
우리 주님은 우리의 무덤 같은 삶을 빈 무덤으로 만들길 원하신다.
여기에서 멈추길 원하지 않으신다.
성령을 받으며 누리며 무덤에서 나와 여호와 하나님께 돌아키길 원하신다.
진짜 부활을 경험하며 살길 소망한다.
성령님이 우리에게 임하시길 소망한다.
채드윅은 안개로 인해 실패한 이후 두 달 뒤에 동일한 코스에 재 도전한다.
여전히 짙은 안개가 깔렸고 물속은 차가웠지만, 눈 앞의 안ㄱ를 보지 않고 수영하기 시작했다.
체온이 떨어지고 체력이 한계에 이를 때마다 캘리포니아 해안을 그리며 힘차게 물살을 갈랐다.
그리고 마침내 누구도 하지 못했던 도전을 성공했다.
그녀는 이렇게 인터뷰 했다.
이번에는 내가 목표지점을 마음속으로 보고 있었기 때문에
끝까지 헤엄칠 수 있었습니다.
우리 인생의 안개는 가실 줄 모르고 우리를 뼈가 마르게, 소망이 사라지게, 멸절되게
만들 수 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냐고 질문하고 있다면,
그정도로 절망스럽게 아프고 찢기고 힘들다면,
우리의 부활을 끝까지 붙잡을 수 있기를 소망한다.
우리에게 ‘부활’ 이 있기에,
그것이 우리의 최종 목적지이며 도착지라는 것을 알기에,
그리고 우리에게 새로운 힘을 계속해서 공급하실
하나님의 영이 우리를 빈 무덤으로 만드실 것을 알기에, 믿기에,
끝까지 달려가게 될 수 있을 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