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사랑을 정말 믿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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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사랑을 정말 믿느냐
요한복음 11장 1-7절
2. 주님에게 가장 사랑을 받는 사람에게도 절망스런 문제가 있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든 형편을 알고 계심을 깨달아야 합니다.
당신이 당하는 고통을 예수님께서 아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기적이 나타나지 않을 때, 기도의 응답이 없을 때에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관심이 많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사로를 다시 살리실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무덤 앞에서
눈물을 흘리셨습니다(35절.
부활은 영광스럽지만
죽음을 겪는 마리아와 마르다의
마음의 고통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멀리서도 이미
나사로가 죽은 것을 아셨습니다.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멀리서도
마리아의 슬픔을 아셨습니다.
우리의 모든 고통을 아십니다.
우리는 주님이 모르신다고 생각하기에 더 괴롭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우리를 버렸다고 생각하니 더 괴롭습니다.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어느 성도가 주님과 인생길을 동행했습니다.
그런데 몇 십년 동안의 발자취를 되돌아 보았더니
주님과 자기가 동행한 둘의 발자국이
선명하게 보이더란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는 분명히 주님과 동행을 했는데
어떤 곳에 이르러서는
가끔 발자국이 하나 뿐이더란 것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때는 죽을병에 들었던 때이고
사업이 부도가 나서 빚쟁이게 쫓겨 도망다니던 때이고
정말 인생의 죽을 고비를 당했던 때였습니다.
왜 그때마다 발자국이 하나 뿐이었을까?
아 내가 어려 울 때는
예수님께서 나를 버리고 도망 가버리고 말았구나
그래서 그렇게 어렵고 힘들었구나
그래서 예수님께 항의를했습니다,
예수님 그럴 수 있습니까?
지내기 좋을 때는 주님이 동행하시고
내가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는 발자국이 한개 뿐이었습니다.
그 때 왜 그렇게 힘들었었나 생각해 보니
주님이 나를 버리고
도망 가셨기 때문인 줄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매우 섭섭하신 표정으로
야 너는 말을 반대로 하는구나?
너는 발자국이 왜 하나뿐이었는가를 정녕 모른단 말이냐?
네가 어려운 일을 당할 때
그대로 두면 네가 너무 지쳐서
너 자신 하나도 감당하지 못해 넘어지고
자포자기 하고 자살하고
필경은 감당하지 못할 것 같아서
내가 너를 등에 업고 갔었느니라.
그때 네가 나를 들들 볶고 투정을 얼마나 부렸는지
내가 몹시 힘들었지만
그래도 나는 너를 사랑하기에 4살밖이 떼쟁이를
등에 업듯 업고 갔느니라.
발자국이 한개 뿐인 것은
내가 너를 업고 걸었기 때문이다.
이 철없는 것아
그런데도 감사하고 고마워 하기는커녕
내가 너를 버리고 도망갔다고 생각한단 말이냐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 꿈만 같은 세월을 어떻게 이겼는가
그 빚쟁이들의 성화를 어떻게 견디고
지금 이렇게 편안한 축복을 누리는가를
생각해 보니
주님의 등에 업혀 살아 온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힘들 때
주님이 내 사정을 미리 아십니다.
미리 좌절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분이 우리의 형편을 아시고
함께 고통당하시며 슬퍼하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에게 가장 사랑을 받는 사람에게도
절망스런 문제가 있었다.
성경에 나오는 많은 사람들 중에 누구 못지 않게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이 있다면
마리아와 그 가족입니다.
3절과 5절이 그를 증명합니다.
이들은 주님과 사랑을 주고받는 관계였습니다.
누가복음 7:36절 이하에 보면
예수님께서 어느 바리새인 집에 초청받아 가셨을 때
그 동네의 죄인인 한 여자가
향유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적시고
자기의 머리털로 발을 씻겨 드리고
그 발에 향유를 부었습니다.
그때 바리새인이 속으로 생각하기를
이가 선지자였다면
이 더러운 창녀가 누군줄을 알았으리라고
생각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때 예수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한 사람은 오백데나리온의 빚을 탕감받았고
한 사람은 오십 데나리온의 빚을 탕감받았다면
누가 더 주인을 사랑하겠느냐고 물으셨습니다.
많이 탕감을 받은 사람이니니이다고 대답하자
네 말이 옳다
이 여자는 많은 죄를 탕감받았기에
모든 사람보다 더 나를 사랑한다고 하셨습니다.
바로 이 여자가 마리아입니다.
그는 주님의 큰 죄사함이란 은혜를 받은 사람입니다.
그는 주님으로 부터 큰 사랑도 받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 사랑에 감사하여
자신의 가장 귀한 것을 바친 사람입니다.
주님과 사랑을 주거니 받거니 한 사람입니다.
주님과 이 마리아는 정말 마음과 물질을 주고 받는
깊은 사랑의 관계입니다.
주님과 이 처럼 깊은 사랑을 나누는
마리아에게도 어려운 일이 왔습니다.
성도가 당하는 어려움이 몇가지 있습니다.
죄 때문에 회개하라고 오는 고난이 있습니다.
연단하시기 위하여 오는 고난이 있습니다.
훈련소에 가면 훈련을 받습니다.
사병 훈련과 육군 사관학생의 훈련은 기간도 다릅니다.
훈련 내용도 다릅니다.
크게 쓸 계획이 있는 사람은 큰 연단을 받습니다.
오래 쓸 인물은 오래 연단을 받습니다.
모세는 80년 연단을 받은 후
성경에서 예수님 다음으로 위대한 종이 되었습니다.
이해 할 수 없는 고난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에서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부르짖었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십자가 고난의 의미를 몰랐다기 보다는
인간에게 다가오는 고난의 의미를 다 알 수 없다는 뜻입니다.
롬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우리는 주님을 진심으로 사랑할 뿐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결국 합력하여 좋게 되도록 하십니다.
어려 운 중에 주님을 정말 사랑하면
다니엘이 사자 굴속에 던지움을 받지만
왕에게 더 인정을 받게 됩니다.
이로 인하여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공인받고
전도의 문이 열렸습니다.
사드락고 메삭과 아벳느고가
두라 평지에 신상에 절하지 않는다는 죄목으로
용광로 속에 던지움을 받았지만
머리털하나 상하지 않고
풀무불 가운데 힌옷을 입은 예수님 같은 분이 함께 뛰어 다니는 것을 보고
느붓갓네살 왕은
다시 한번 하나님을 알고 순종하는 사람이 됩니다.
그리고
신앙을 지키는 사람이 귀한 것을 알고
그들을 높여 귀하게 씁니다.
우리는 어려운 일을 당할 때 믿음을 지키는 것 뿐입니다.
내일을 몰라도 지키는 것입니다.
사자굴속에 던진다고 해도
주님을 사랑하고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풀무불 속에 던진다고 해도 주님을 사랑하고
믿음을 지키며 나갈 뿐입니다.
그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비상을 거시고 천사를 보내 역사하십니다.
1879년 어느 여름날 스테드 선교사 부부는
딸과 함께 롱 아일랜드 해변에서
해수욕을 하며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사람 살리란 비명과 함께
한 사람이 물에 빠져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남편은 소년을 살리기 위하여 물로 뛰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소년은
스테드 목사를 꼼짝못하도록 꼭 붙들어
결국은 둘 다 익사하고 말았습니다.
졸지에 목전에서 남편의 죽음을 목격한
루이사 스테드(Mrs Louisa M.R.Stead 1850-1917)사모님은
큰 충격을 받고 실신하였습니다.
깨어난 후에도 일주간 식음을 전폐하고
"하나님 이럴 수 있습니까?
사람을 살리러 들어 간
당신의 종에게
능력을 주시고
보호하셔야지 그럴 수가 있습니까?"
부르짖었습니다.
그때 주님은 응답하시기를
"순조로운 환경에서 하신 말씀을
역경을 당하여 의심하지 말라."라고 응답하셨습니다.
그 응답을 받고
이 사모님이 지은 찬송가가
"구주 예수 의지함이 심히 기쁜 일일세...
예수 예수 믿는 것은 받은 증거 많도다.
예수 예수 귀한 예수 믿음 더욱 줍소서"라는
찬송가라고 합니다.
하늘 같이 믿던 남편이 죽어 나자빠져도
하나님을 신뢰하여야 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오늘 이 본문의 마리아 가정에
예수님이 늦게 오신 것도 이유가 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지만
추상적이고 관념적입니다.
21절을 보십시오.
언니, 마르다가 말합니다.
"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21절)
32절에
마리아의 반응을 보십시오.
"마리아가 예수 계신 곳에 와서 보이고
그 발 앞에 엎드리어 가로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하더라"
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여기 계시기만 했더라면
안 죽었을 텐데 안계셨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겼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시공간에 제한을 받으시는 분으로
믿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병자 정도는 고쳐도
죽어 썩어 냄새나는 나사로는
살리지 못하는 무능한 하나님으로 믿고 있습니다.
이런 잘못된 믿음을 고쳐야 하겠기에
예수님은 나사로가 아예 죽어
썩어 냄새나실 때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리아나 나사로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불완전한 믿음을 완전하게 하시기 위하여
바로 믿도록 하시기 위하여 늦게 오신 것입니다.
기도
성령충만하여 주님을 절대적으로 믿게 하소서
교회 부흥을 위하여
사명을 감당하는 사람 되도록
중국 신학교와 세계 모든 교회와 주의 종들 위하여
가정과 자녀의 구원을 위하여
부부 행복과 신앙을 위하여
크게 선교에 동참할 물질을 주소서 사업에 복을 주소서
오늘 본문에서 나사로의 죽음을 다루지만
이 가정을 소개하면서 주인공인 나사로는 뒤로 가고
마리아를 먼저 소개합니다.
유대 사회는 남성 중심의 사회입니다.
여자는 숫자에 치지도 않습니다.
밥먹을 때도 숫자에 치지 않습니다.
그래서 5000명 먹고 12광주리 남은
기적의 사건에서도
남자만 5000명이었다고 기록하였습니다.
그런 유대 사회에서
남자이며 가장이며 오늘의 주인공인
나사로를 먼저 소개하지 않고
마리아를 먼저 소개하고 있습니다.
영적으로 마리아가 이 가정의 가장이란 뜻입니다.
사회적인 전통을 초월하여
경제력을 초월하여
주님께서 제일 먼저 손꼽아주는
영적인 호주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께는 남자냐 여자냐
세상 지위가 높으냐 낮으냐가 문제가 아니라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주인공입니다.
나사로의 가정에서도
주님을 가장 사랑한 마리아가 오늘의 주인공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정말 믿느냐
요한복음 11장 1-7절
중국 춘추전국시대에 한비자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형명사상(刑名思想)을 주장하며
덕치보다 법치를 강조하며 힘과 능력을 강조하였습니다.
20여권의 책을 썼습니다.
힘과 능력과 법을 강조한 그도
부모의 자녀 교육에 대해서는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어떤 아버지가 외동딸을 가르치기를
시집을 가거든 남몰래 저축을 해 두어라
남의 아내가 되면 돈이 필요해도
돈을 마련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 딸은 시집가서 아버지가 가르쳐 준대로
남편 몰래 돈을 모았습니다.
그런데 이 사실이 시어머니에게 들통이 나서
시집에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 딸이 친정으로 쫓겨 올때 가져온 재물은
시집갈 때의 3-4배가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이혼을 당하고 쫓겨온 딸을
잘못 가르친 것을 뉘우치지 않고
재물을 몇배나 모아 온 것을 기뻐하였습니다.
시집가는 딸에게 아버지가 부탁할 말이 많이 있습니다.
남편을 네 목숨처럼 사랑하고 해로하라던가
시부모님을 친부모 이상으로 효도하라든가
할말이 많았을 것인데
돈이 없으면 죽은 목숨이니
딴 주머니를 차서라도 돈을 모아야 한다.
고 가르친 결과 그 딸이 쫓겨났다는 것입니다.
이런 부모의 돈 사랑 교육 때문에
그 자녀들이 관리가 되면 나라가 부패하고
시집을 가면 가문이 결단난다고 했습니다.
오늘 이 시대는 양심과 사람된 도리를 가르치는 종교까지
기독교는 그만두고
색즉시공 일체무상을 가르치는 불교까지
이 딸의 아버지의 논리를 강조하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사랑입니다.
왕이 있다고 합시다.
왕에게는 백성의 웬만한 문제를 해결해 줄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왕이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나를 사랑하지 않고
나에 대하여 무관심하다면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나와 상관이 없게 되기 때문에
능력도 중요하지만 사랑이 더 중요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의 능력을 언급하지만
하나님의 능력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사랑을 강조합니다.
오늘 나사로의 가정을 통하여
이런 예수님께 대한 사랑의 갈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평소 나사로 가정을 지극히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에 올라오시면
예루살렘에서 약 3Km정도 떨어진
베다니 란 곳에 사는
이 나사로의 가정에서 주무시기도 하시고
식사도 하셨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예수님의 머리에 향유를 붓고
머리로 예수님의 발을 씻기던 마리아는
이 나사로의 여동생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이 가정의 가장인 나사로가
중병이 들어 죽어 갑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베다니에서 약 3km 떨어진 요단강 근처에 와 계셨습니다.
나사로의 누이들은 예수님께서 가까이 계시기 때문에
철석같이 예수님을 믿고
당신의 사랑하는 자가 병들었습니다.
빨리 오셔서 고쳐주십시오.
사람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죽을병이 아니라시며
지체하시다가
죽어 장사를 지낸지 삼일 후에야 오셨습니다.
이때 그 누이들은 예수님께 실망을 했습니다.
자기들은 주님을 생명보다 더 사랑하였는데
사람이 죽어 간다고 사람을 보냈는데도
오늘 우리 교회로 말한다면
상록수역 보다 약간 먼 정도의 거리에 계시면서
죽어 삼일이 지나 장례식이 다 끝난 다음에 오시다니
예수님께서 그러실 수 있는가
실망이 되고 정이 떨어 졌습니다.
이 마리아가 누굽니까?
주님을 너무나 사랑했었습니다.
당시 가난한 가정의 여자들은
시집갈 때를 대비하여 돈이 생기는 대로
옥합에 향유를 한 방울씩 사 모읍니다.
이렇게 하여 옥합에 향유가 가득 차면
노동자의 1년 품삯에 해당하는 300데나리온 정도가 됩니다.
요즘 돈으로 약 2000만원 정도 나가는 물건입니다.
마리아는 옥합을 깨뜨려
주님께 향유를 아낌없이 드렸던 여자입니다.
주님께서도 이 가정을 사랑하셨습니다.
평소에 그렇게 사랑하시던 나사로가 죽어 간다는데
죽어 장사 지내
썩어 냄새가 날 때 오시다니
세상에 이럴 수 있느냐는 말입니다.
이 마리아와 마르다 자매가
예수님께 실망하고
마음 속에 원망과 불평과 불행이 가득하게 된 것은
예수님의 능력을 의심해서가 아니라
예수님의 사랑을 의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빠 나사로가 죽은 것도 불행하지만
예수님께서 자기들의 사랑을 배신했다는 마음이
그들의 가슴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불행에 빠진 것입니다.
사자굴 속에 들어가도 사자 입을 막으시는 하나님
풀무불에 들어가도 머리털 하나 상치않게 지키시는 하나님
이런 하나님을 믿기에 앞서서
나를 끝까지 사랑하시기 때문에
불난 집에 자녀를 살려내기 위하여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드는 부모보다
더 큰 사랑으로 어떤 경우든
버리지 않으신다는 하나님의 사랑을 믿어야 합니다.
그래야 신자는 행복합니다.
내가 죽어 썩어 냄새가 날 만큼 절망적이어도
주님께서 나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지 않으시는 한
죽은 그 무덤에서도
반드시 살리실 줄로 믿기를 축원합니다.
1. 더 늑장을 부리시고 반대방향으로 가시는 예수님
6절 말씀을 보십시오.
"나사로가 병들었다 함을 들으시고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시고?
예수님은 나사로 위독을 전해 듣고 더 뜸 들이셨습니다.
7절에 보면,
"그 후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유대로 다시 가자?
하십니다.
나사로의 집은 베다니로 내려가야 하는데
예수님께서는 반대 방향인 유대로 올라가자 하십니다.
예수님의 이런 행적은
지금 집안의 대들보인 오라버니가 죽어 가는
다급한 형편에 처한 마리아와 마르다에게는
이해가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이 내게
다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십시오.
우리가 주님의 사랑을 믿지 못할 때
마음 속에 불안과 갈등과 두려움과 불행이 찾아옵니다.
요 10:29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주님 하시는 일이 이해되지 않더라도
성령충만하여 주님의 절대 사랑을 의심없이 믿기바랍니다.
어거스틴은
바울 사도 이후 최대 신학자이며 성자로 알려졌습니다.
그의 어머니 모니카가 18년간 기도하여 돌아 온 사람입니다.
기도의 자식은 절대로 망하지 않는다는
본보기가 되는 사람입니다.
하루는 바닷가를 거닐면서
어머니가 그렇게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고 전도를 하며
밤낮으로 자기를 위하여 정성들여 기도하는 것을 아는 그가
예수님을 믿어 보려고 마음을 먹을 때
기독교 복음의 이해되지 않는 것 때문에 갈등이 생겼습니다.
그는 마음으로 생각하기를
아무리 어머니가 간청해도
미신같은 비합리적인 기독교를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하며
어머니를 어리석은 집단에서 빠져나오게 할까?
골돌히 연구하며 바닷가를 거닐고 있었습니다.
한 곳에 해변에서 한 어린아이가 모래로 뚝을 막아 놓고
큼지막한 조개 껍질로 바닷물을 세고 있더란 것입니다.
300, 301, 302.... 2만 3천 21, .... 해가 지려고 하는데
아이는 돌아 갈 생각도 하지 않고 계속 세고 있더랍니다.
어린아이지만 너무 터무니가 없어서
얘야 너 뭐하니
예 이 바닷물이 이 큰 조개껍질로
몇이나 되는지 세어 보려고요
야 이놈아 너의 조개껍질이 아무리 크다한들
이 엄청난 바닷물을 그 조개 껍질로 다 센단 말이냐?
쓸데없는 짓 그만하고
해지기전에 빨리 집에 가거라.
그때 그 아이가 정색하고 말하기를
당신의 머리가 아무리 좋다고 해도
그 주먹만한 머리통으로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위대하신 하나님을
어떻게 다 헤아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당신이야 말로 이 조개로 바닷물을 세려는 나보다
더 어리석은 사람이요.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라는 격 아니요?
하더랍니다.
정신이 번쩍 나서
그렇구나, 깨닫고 주님을 믿었다고 합니다.
이해 안 되어도 하나님의 사랑을 믿기 바랍니다.
내가 사람이 죽어 나자빠져도
주님께서 뜸을 들이실 때는 이유가 있으십니다.
사람이 죽어 간다는데
베다니로 내려 오시지 않고
반대 방향 유대로 올라가셔도 이유가 있습니다.
죽어 썩어 냄새가 날 때 주님이 오셔도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요 11:40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신대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순복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될 줄로 믿습니다.
나를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님까지도 아끼지 않고
십자가에 내어 주신 하나님께서
나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한
죽어 무덤에 묻혔어도 소망이 있다는 믿음을 갖기 바랍니다.
롬 8: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마리아 처럼 나의 귀한 것을 다 쏟아 주님을 사랑하고
내 귀한 것을 다 바쳐 충성했는데도
반대 증상이 날 때에도
더 하나님의 사랑을 믿기를 바랍니다.
이런 믿음을 가지고 있을 때 하나님의 영광을 봅니다.
이때 다시 사는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썩어 냄새가 나도
무덤이 열리고 기적이 나타날 줄로 믿습니다.
3. 죽음과 부활이 무엇인가를 배워야 합니다.
11절에 보면 주께서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또 가라사대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예수님께서는 나사로의 죽음에 대해서
그가 "잠들었다"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인간의 죽음을 "잠들었다"고 하셨습니다.
다시 살아 일어날 것을 전제하신 말씀입니다.
부활을 전제하지 않는다면
죽음은 결코 잠이 아닙니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면서
절망하거나 통곡하거나
유서를 써 놓는 사람은 없습니다.
새 날이 밝을 것을 기대하며 평안히 잠을 청합니다.
내일이 있을 것을 알기 때문에
진정한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죽음은 마치 잠을 자는 것과 같습니다.
죽음이 결코 인생의 마지막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치기 위해서
주님께서 나사로를 엑스트라로 사용하셔서
죽게 하셨다가 살아 나게 하셨습니다.
성 프란시스는 죽음을
"주께서 허락하신 안식의 선물"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우리 주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는 분이십니다.
생명의 주님이십니다.
부활의 주님이십니다.
죽어가는 사랑하는 나사로에게 늦게 오신 것은
마리아와 마르다의 애를 태우고
속을 썩이려고 늦게 오신 것이 아닙니다.
죽어 썩어 냄새가 나는 사람도
살리시는 주님이신 것을 보여 주시기 위하여
주님은 뜸을 들이신 것입니다.
죽은지 백년이 되고 천년이 되어
썩어 분해되어 형체도 없이 사라졌다고 할지라도
내가 너희들 다시 살릴 것을 믿으라고
그 시범을 보이시기 위하여 뜸을 들이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인류 구원과 부활소망을 본보이기 위해
인류 역사상 단 한 사람만이 쓰임받게 되는
영광스런 죽음과 부활을 설명하는
부활의 시범 조교로 스카웃하여 쓰시기 위해 늦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사로를 시범 조교로 사용하셔서
부활이 무엇인가?
예수님을 믿으면 어떻게 되는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부활을 실제로 시범을 보이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25-26).
이 부활의 진리는 말로 설명할 수 없기에
2000년 후에 살게 될
나를 믿게 하시려고 나사로를 쓰셨습니다.
주님 재림하실 때까지 살게 될 완악한 우리로 믿게 하시려고
나사로와 마리아와 마르다를 쓰셨습니다.
나사로와 마리아와 마르다가
잠시 절망과 역경을 당한 것이
주님의 영광이 드러나고
주님의 복음이 드러나고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믿게 되었다면
이것 또한 나사로의 영광인 줄로 믿습니다.
십자가가 없으면 영광도 없습니다.
노 크로스 노 크라운입니다.
내가 진심으로 주님을 사랑하고
내 모든 귀중한 것을 드리며 섬기고 충성을 했는데도
고난이 올 때 이해가 안되어도
주님의 사랑을 믿고 나가십시오.
믿는대로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입니다.
믿고 순종하는 대로 찬란한 내일이
주님께로부터 당신에게 이르게 될 줄로 믿습니다.
영광스럽게 쓰임받기를 축원합니다.
자랑스럽게 쓰임받기를 축원합니다.
3. 하나님의 주권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시기 위하여
죽게도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병들어 누워 있는 나사로를
제 때에 찾아가지 않으셨기 때문에
나사로의 가족들은 애간장을 태우고
나중에는 주님을 원망하기까지 했습니다.
주님은 나사로에게 가는 대신,
심부름 온 사람에게 이런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4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병에 걸릴 수도 있고
세상을 떠날 수도 있습니다.
모든 질병이 악령이나 귀신들이 일으키는 것으로
종종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모두 그런 것은 아닙니다.
모든 질병을 자기의 실수와 연관시켜서
자학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사로가 병들어 죽게 된 사건은
부활의 교훈을 가르치기 위한
엑스트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된 것입니다.
그래서 주께서 일부러 늑장을 부리셨습니다.
만약 나사로가 죽은 바로 다음날
나사로를 살리셨다면,
많은 사람들은 나사로가 완전히 죽지 않았는데
죽은 줄로 착각한 것이라고
헛소문을 퍼뜨릴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죽은지 나흘이 지나면
그 죽음은 의심할 나위가 없습니다.
송장이 썩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사망이 안전하게 증명된 후에
예수님은 오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다시 산다.(25)"
4. 부활 교육입니다.
이 나사로를 통하여 온 인류에게 주님은
부활의 주님이시라는 사실이 증명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내가 다소 어려움을 당하므로
믿음이 없는 주변 사람에게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게 하는
도구가 된다면 이것 또한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병에 걸리고
세상을 떠나는 것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도구가 된다면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여러 순교자들의 죽음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도구가 되기에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석가가 어느 곳을 지나가는데
한 불자가 아들이 참사를 당하여
애곡하다가 석가를 보고 애원하였다.
"당신은 대선생이시니
죽은 내 아들을 좀 살려 주시오."
애걸하는 모습을 안타까워 하며
석가는 그 불자에게 말했다.
"네가 만일 3대 동안 葬禮를
한번도 치르지 않은 집에 가서
쌀을 한되를 구해다가 밥을 한 그릇 지어오면
내가 그것으로 네 죽은 아들을 살려주리라."
부인은 아들을 살릴 수 있다는 말에
3대 無喪家를 찾아다녔다.
그러나 부인은 하루 종일 토록 발이
부르트도록 다니다가 그냥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세상에 삼대(三代)에 걸쳐
장례를 치르지 않았던 집은
어느 곳에도 없기 때문이었다.
석가는 부인에게 말했다.
"너 보아라, 죽음은 집집에 임하고
사람마다 당하는 일이니
너 홀로 애통할 것이 무엇이야?"
5. 주님은 나의 모든 것을 아십니다.
넷째로,
주님과 나 사이는 끊을 수 없는 영원한 관계입니다.
다윗은 시편 23:4절에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하심이라"고 했습니다.
나사로가 죽은 지 나흘이 지났을 때
예수님께서 베다니에 오셨습니다.
죽었다고 버리시지 않았습니다.
다시 오셔서 살리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사람은
하나님과 영원한 관계를 맺은 것입니다. 이 관계는 무엇으로도 끊을 수 없습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5,38,39).
그러므로 어떤 처지, 어떤 고난에 빠지더라도 그리스도가 함께하심을 믿고 낙심치 마십시오. 당신의 고통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기를 소원하십시오.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을 떠나는 슬픔을 당하더라도 말입니다. 나사로의 죽음에 침묵하신 주님의 놀라운 계획을 마음에 새기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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