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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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칠언
목 차
목 차
1. 가상칠언
(1)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눅23;34) (고난, 중보)
(2)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23:39-43) (고난, 구원)
(3)보라 네 어머니라(요19:23-27) (고난, 효성)
(4)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마27:45-49) (고난, 심판)
(5)내가 목마르다(요19:28-29) (고난, 인성)
(6)다 이루었다(요19:28-30) (고난, 승리)
(7)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눅23:44-49) (고난, 소망)
2. 골수에 사무친 사명감(1) (렘20:7-9) (사명, 심판)
3. 골수에 사무친 사명감(2) (렘20:7-9) (사명, 심판)
4. 교사의 중한 책임(마18:5-10) (교육, 사명)
5. 길이여 진리요 생명이니(요14:6) (세례, 진리)
6. 나를 따라 오려거든(왕하2:1-14) (고난, 사명)
7. 나이 많아 늙었고(창24:1) (믿음, 헌신)
8. 내가 이를 때까지(딤전4:13-16) (사명, 소망)
9. 너는 복이 되라(창12:1-3 ) (축복, 순종)
10. 다윗의 기도(시51:1-9 ) (회개, 기도)
11. 두리번거리며 살지 말자(출2:11-12 ) (지혜, 신뢰)
12. 레위인의 직무(민1:47-54)(사명, 성별)
13.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행19:21-22 ) (전도, 소망)
14. 모세의 기도( 출32:30-35) (중보, 회개)
15. 바나바와 사울(행11:19-26 ) (동역, 섬김)
16. 바벨탑의 교훈(창11:1-9 ) (교만, 불순종)
17. 바울의 소원(행23:11 ) (전도, 사명)
18. 바울이 걸어온 길(딤후4:6-8 ) (전도, 사명)
19. 배우라 그리고 가르치라(마11:25-30, 28:19-20 ) (교육, 교사)
20. 아브라함 기도(창18:22-23 ) (기도, 중보)
21. 여호수아의 기도(수7:2-16 ) (기도, 승리)
22.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막10:32-24 ) (고난, 기도)
23. 오랜 제자 나손(행21:15-16 ) (헌신, 사명)
24. 올라가서 개척하라(호17:14-18 ) (신앙, 사명)
25. 요셉처럼 되었으면(창37:1-4 ) (신앙, 신뢰)
26. 의인의 삶(시92:12-15 ) (의인, 악인)
27. 이스라엘이 망한 이유(왕상14:16 ) (교만, 우상)
28. 인생과 고난(시119:65-72 ) (인생, 고난)
29. 일심으로 행하자(대하31:20-21) (믿음, 섬김)
30.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행6:1-6 (전도, 사명)
31. 좌우를 살펴 사람이 없음을 보고(출2:11-15 ) (믿음, 교육)
32. 지금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인가(에4:4-14 ) (기도, 결단)
33. 피차 사랑하라(벧전1:22-25 ) (사랑, 연합)
34. 하나님의 성전(대하7:1-3 ) (교회, 축복)
35. 하나님의 전 하늘의 문(창28:16-19 ) (교회, 축복)
36. 한나의 기도(삼상1:1-18 ) (기도, 축복)
37. 허리가 꼬부라진 여인(눅13:10-17 ) (기도, 축복)
38. 히스기야 왕(대하31:20-21, 왕하18:5-8) (기도, 축복)
39. 히스기야의 기도(왕하20:1-11 ) (기도, 축복)
架上七言
架上七言
가상칠언 (1)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가상칠언 (1)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눅23;34)
예수님의 공생애 3년은 교육, 전도, 봉사였다(마4:23, 9:35).
예수님의 말씀은 다 귀하지만, 그 중 가장 귀한 것 세 가지가 있다.
① 산상보훈(마5장-7장) ② 고별사(요14장 16장) ③가상칠언이다.
이 가상칠언은 유언으로 된 기도이다.
주님의 기도중에는 중요한 것 세가지가 있습니다.
① 성전에서 한 기도가 있다(요12:27-28).
②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기도이다(마26:39-41).
③ 십자가상에서의 기도가 있다(눅23:34).
아더핑크는 “주님의 공생애는 기도로 막이 올랐다(막1:35).
그런데 여기서 기도로 막이 내리는 것을 본다”고 말한적이 있다(눅23:34).
이 가상칠언의 첫 번째 말씀은 용서의 십자가인 것을 보여준다.
이 기도의 배경을 알아보자.
① 골고다 언덕위 십자가에서 하신 기도이다.
② 원수들은 창을 들고 조롱하고, 욕하고, 멸시하고 있다.
③ 예수님은 더위와 피곤과 굶주림에 지쳐있다.
(1) 예수님은 “아버지여”라고 부른다(기도의 대상).
(1) 예수님은 “아버지여”라고 부른다(기도의 대상).
예수님의 기도의 대상은 성부 하나님이셨다(요17:1).
바울도 아버지 하나님이 그 대상이었다(엡3:14,15).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성경에 기록된 처음하신 말씀이 아버지셨고(눅 2:49),
마지막 하신 말씀도 아버지셨다(눅23:34).
그래서 어떤 이는 “예수님의 종교는 아버지의 종교다”라고 했고, “예수님의 위대한 업적 중의 하나는 우리에게 하나님을 아버지라 가르친 것이다”
① 그 아버지는 예수님과 동등하시며 일체시다.
② 그는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신 아버지시다.
③ 예수님의 기도를 들으신 아버지시다.
(2)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기도의 내용)
(2)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기도의 내용)
“저희”는 누구인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이다.
종교지도자, 군인, 관리, 이방인, 유대인, 장로, 제사장, 서기관들이다.
그 중에는 예수님께 십자가 지실 때 도망친 자들도 포함된다.
예수님은 넓으신 사랑으로 원수까지 사랑하신 것을 보게 된다.
그는 원수를 사랑하라 가르쳤다(마5:44).
그는 원수 위해 기도하라 가르쳤다.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그들을 구원시켜 달라는 기도가 아니라, 회개할 기회를 달라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 기도를 하신 것은
① 죄인을 심판하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고 구원하기 위함이다.
② 예수님만이 죄사할 권세가 있는 분이다(사죄권, 심판권, 통치권)
③ 예수님만이 무죄하신 분으로 우리의 죄 담당하실 분이다.
(3) 이 기도 교훈은 무엇인가?
(3) 이 기도 교훈은 무엇인가?
① 죄인을 사랑하시는 예수님이심을 알 수 있다.
② 예수님을 불신한 죄가 큰 것을 알 수 있다.
그들로 하여금 죄 값 받지 않기 위해 고통 중에서도 기도한다.
“저들이 저들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하나이다”
㉠ 그리스도를 죽인 죄를 모르고 ㉡ 하나님의 큰 사랑을 모르고 ㉢ 그리스도를 배반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 자기 자신을 모른다.
③ 첫 마디의 기도에 사랑이 쏟아진다.
사랑으로 가득 찬 부대를 찌르니 사랑이 쏟아진다.
인간을 찌르면 무엇이 쏟아질까? 우리에게서는 무엇이 나올까?
④ 그의 가르침은 훌륭한 모범이 되었다.
가상칠언 (2)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가상칠언 (2)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눅23:39-43)
이 말씀은 임종직전의 회개한 강도에게 약속하신 말씀이다.
우리는 이 말씀에서 기독교는 내세와 소망의 종교임을 보게 된다.
(1) 구원받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다.
(1) 구원받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다.
죽어가는 임종 순간에도 예수 믿고 구원받을 수 있다.
“오늘“은 현재를 말한다. 그런즉 오늘이 가장 중요하다.
고로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어서는 안 된다.
“보라 지금은 은혜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임종 때의 구원은 가능한가? 그것은 가능하다.
그렇다면, 불신 중 죽어가는 또한, 살아가는 어떤 사람도 절망할 필요는 없다. 뿐만 아니라, 살아있는 어떤 사람도 그런 순간을 지나치게 믿어서는 안 된다.
(2) 예수님은 회개한 강도에게서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했다.
(2) 예수님은 회개한 강도에게서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했다.
① 예수님은 낙원을 준비해 놓았기 때문이다.
② 예수님은 낙원을 약속해 주셨기 때문이다.
③ 예수님은 낙원의 주인이기 때문이다.
④ 예수님은 낙원에서 성도와 함께 영원히 계실 것이다.
(3) 예수님은 회개한 강도에게 “낙원에 있으리라” 했다.
(3) 예수님은 회개한 강도에게 “낙원에 있으리라” 했다.
이 낙원은 곧 천국을 말한다. 천국은 즐거운 곳이다.
그 곳은 하나님이 계신 곳이다. 그곳은 죄가 없는 곳이다.
(4) 인생은 아무도 스스로 자기를 구원할 수 없다.
(4) 인생은 아무도 스스로 자기를 구원할 수 없다.
구원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게 된다.
우리는 강도의 개종에서 다음을 배운다.
① 그는 안수도, 세례도, 교회도, 헌금도 직분도 받은 적이 없다.
② 여기 골고다 산에 세 종류의 사람이 있는 것을 본다.
죄를 위하여 죽어가는 사람(예수),
죄를 벗어나 죽어가는 사람(회개한 강도)
그러나 한 사람은 죄 중에서 죽어가고 있다(회개하지 않은 강도)
(5) 구원은 장소나 신분과는 아무관계가 없다.
(5) 구원은 장소나 신분과는 아무관계가 없다.
누구든지 믿으면 구원받는다. 누구든지 믿으면 신자는 믿는 자이다.
㉠ 아침에는 강도로 십자가에 죽었으나 저녁에는 면류관 쓰고 있다.
㉡ 아침에는 가이사의 대적 자였으나, 저녁에는 하나님의 친구가 되었다.
㉢ 아침에는 버림 받았으나 저녁에 천사들과 교제하고 있다.
㉣ 아침에는 죄인으로 죽었으나 저녁에 천국시민으로 살아났다.
(6) 이 둘째 번 말씀이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6) 이 둘째 번 말씀이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① 강도가 성도되는 데는 잠간사인 것을 배운다.
예수님께는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다.
② 이 세상에 아무도 스스로 구원받을 자는 없다.
③ 구원은 선한 행실과는 무관함을 본다.
그는 강도요, 저주 받은 자였다. 그러나 구원 받았다.
④ 영혼은 잠자는 일이 없다. “낙원에 있으리라”
이는 연옥이 없다는 분명한 증거이다.
⑤ 구원은 아무나 받는 게 아니다.
특별한 사람에게만 구원이 있다.
하나님이 선택한자, 하나님의 예정자에게만 있다.
“오늘 네가”이지, “너희들이” 아니다.
⑥ 사후에는 예수 그리스도와의 교통하는 기쁨이 있다.
“낙원에 있으리라”
⑦ 인생은 그 종국을 잘 마쳐야 한다.
⑧ 우리는 여기서 사람이 죽으면 어디로 가는가를 배운다.
“낙원에 있으리라” 낙원으로 가는 것이다.
⑨ 구원은 예수 밖에 없음을 본다.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⑩ 구원은 장차 받는 것이 아니다. “네가 오늘”이다.
가상칠언 (3) “보라 네 어머니라”
가상칠언 (3) “보라 네 어머니라”
(요19:23-27)
이 말씀은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세 번째 하신 말씀이다.
예수님은 그가 못한 효도를 요한에게 부탁한다.
사람들은 이 말씀을 보고, 기독교는 효도의 종교라 한다.
(1) 예수님의 십자가 밑에는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
(1) 예수님의 십자가 밑에는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
① 그 곳에 군병들이 있었다(23).
그들은 예수님께 대한 무관심한 자들이었다.
예수님의 고난에는 관심이 없었고, 그의 옷을 제비 뽑고 있었다(24).
우리 중에 그런 자는 없는가?
② 거기 네 사람의 부인과 요한이 있었다(25).
제자들은 다 도망치고 없었다. 다 변심한 것이다.
요한의 일행은 예수님의 사랑에 담대해진 자들이다.
우리도 예수님의 십자가 밑에까지는 왔다.
우리는 그들 중 누구인가?
진리에 무관심한 자들인가?
아니면 생명의 주님 따라 거기까지 왔는가?
(2) 예수님은 그의 모친에게 말했다.
(2) 예수님은 그의 모친에게 말했다.
“여자여 보소서”(16).
이 말은 결코 한국적인 어법으로 해석할 것이 아니다.
여자는 숙녀와 같은 의미의 말이다.
또 마리아는 예수님을 성령으로 잉태했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같은 모자관계는 아니다.
(3) “아들이니이다”(27).
(3) “아들이니이다”(27).
이는 요한을 두고 한 말이다. 제자에게 모친 부탁한 것이다.
요한은 예수님의 사랑을 제일 많이 받은 자이다.
또 요한은 예수님을 제일 사랑한 자였다.
그는 또 책임감이 강한 제자였다.
(4) 예수님은 요한에게 “보라 네 어머니라”고 했다(27).
(4) 예수님은 요한에게 “보라 네 어머니라”고 했다(27).
이 말은 요한에게 모친 봉양을 부탁한 말이다.
요한은 예수님의 부탁 받고 12년간이나 봉양했다 한다.
그는 마리아에게 지극한 효자였다.
제 5계명에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했다.
여기 부모의 개념은?
① 영의 아버지인 하나님이다(히12:9).
② 믿음의 부모인 사역자들이다.
③ 믿음을 자라게 한 교회이다.
④ 육신의 부모이다.
⑤ 자식같이 돌보아준 사람(왕하5:13).
⑥ 연로한 어른들
⑦ 스승들
⑧ 국가의 지도자들
⑨ 상관, 윗사람은, 부모와 같다.
예수님의 효도는 어떤 효도였나?
① 한결같은 효도였다(어릴 때도, 성역시 에도, 십자가 지실 때도).
② 십자가의 고통 중에서도 효도였다.
(5) 우리가 여기서 배울 교훈이 있다.
(5) 우리가 여기서 배울 교훈이 있다.
① 예수님은 여기서 부모에 대한 효도의 모범을 보여주셨다.
② 한때 주님 곁을 떠났던 요한이 다시 주님 곁에 와 있는 것을 본다.
③ 우리는 여기서 영적인 일 때문에 육신의 책임이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
④ 마리아는 구주의 십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본다.
그도 우리와 같은 죄인이기 때문이다.
가상칠언 (4)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가상칠언 (4)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마27:45-49)
이 기도는 성경에 기록된 다른 기도보다 신비하고 고매하다.
하나님이 하나님에 의해 버림받다니? 누가 이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
가장 현명한 자라도 이것을 이해하려할 때 자신의 부족을 느낄 것이다.
그가 비록 중생자라 할지라도, 인간의 마음으로 그 신비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여기에는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의문들이 너무 많다.
~여기에는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의문들이 너무 많다.
① 왜 아버지는 그의 아들에게 등을 돌렸는가?
② 왜 그 아들조차도 그 이유를 알지 못했는가?
③ 왜 사죄에는 무죄한 피를 흘려야만 했는가?
첫 번째와 세 번째 질문은 다음 성구에 해답이 있다.
“피 흘림이 없이는 죄사함이 없느니라”(히 9:22).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가 나음을 얻었나니”(벧전 2:24).
“그리스도께서도 한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니라”(벧전 3:18).
두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빌 2:5-8절이 그 답을 주고 있다.
예수님은 스스로 그의 신적 속성을 사용하지 않았다.
① 주님은 잠시 동안 그의 편재성을 사용하지 않았다(요 11:15).
② 주님은 일시적으로 그의 전지성을 사용하지 않았다(눅8:45).
③ 주님은 잠시 동안 그의 전능성을 사용하지 않았다(요5:19).
~이제 네 번째 말씀을 생각해 보자.
~이제 네 번째 말씀을 생각해 보자.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의 시간표를 보면 예수님은 우리 시간으로 9시에 십자가에 달려 6시간 후인 3시에 운명한 것으로 알려진다.
9시에서 12시 사이에 세 번째 말씀까지 하신다.
①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②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③ 보라 네 어머니라.
(1) 정오에는 온 땅에 어두움이 임했다.
(1) 정오에는 온 땅에 어두움이 임했다.
① 비참한 죄의 고통을 참아 볼 수 없어서 하나님이 얼굴을 감추신 것일까?
② 혹은 하나님의 진노의 상징일까?
③ 아마 죄 때문에 당하는 인자의 고통의 상징일 것이다.
(2) 예수님은 어둠 속에서 소리쳤다.
(2) 예수님은 어둠 속에서 소리쳤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① 하나님은 예수님을 버리셨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버림을 당했다.
하나님은 죄 때문에 사랑하는 독자까지 버리셨다.
예수님께서 이 절규를 하신 이유는 우리의 죄 때문에 하나님과의 교통이 완전히 끊겼기 때문이다.
② 이 절규는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짊어지시고 하나님 앞에 심판을 받은 순간이었다. 이 절규는 십자가의 최고봉이요, 구속의 촛점이다!
③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불러 왔지만 이 때만은 하나님이라고 부르신다.
사랑의 하나님으로부터(아버지로부터)버리심을 받는 때의 절규이다.
그는 하나님께도 사람에게도 버림받으셨다.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당한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사53:4).
④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고통으로 말미암아 구원되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소망의 근거가 되었다.
“예수님은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롬4:25).
(3) 네 번째 절규의 뜻을 헤아리게 된다.
(3) 네 번째 절규의 뜻을 헤아리게 된다.
① 우리는 죄의 두려움과 죄 값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배운다.
② 우리는 구주 예수님의 하나님께 대한 요동치 않는 확고한 신앙을 본다.
③ 우리는 우리를 향하신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한 최상의 증거를 본다.
가상칠언 (5) “내가 목마르다”
가상칠언 (5) “내가 목마르다”
(요19:28-29)
갈보리의 비극의 극치는 네 번째 말씀이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이 비극의 말씀은 네 가지 측면에서 살펴야 한다.
① 인간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음으로 타락한 본성을 드러낸다.
② 사단은 십자가에서 여자의 후손의 발뒤꿈치를 상했다.
이는 하나님께 대한 물러설 줄 모르는 사악한 증오가 나타난 것이다.
③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죽었다.
④ 하나님은 십자가에서 예수에게 진노를 쏟으심으로 하나님의 신성과
공의를 드러냈다.
~“내가 목마르다”
~“내가 목마르다”
이 말씀은 가상칠언 중 다섯 번째 말씀이다.
이 말씀은 기독교는 고난의 종교임을 말해준다.
이 고난은 육적 고통과 영적 갈증으로 나타난다.
물 좋고 물 많은 우리나라에서는 갈증을 잘 모른다.
그러나 목마름의 고통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잘 모른다고 한다.
예수님께서 목마르신 이유는 무엇인가?
(1) 그는 목마르실 수밖에 없었다.
(1) 그는 목마르실 수밖에 없었다.
그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 땀 흘려 기도하셨다.
그가 십자가지신 것은 정오인데 이때는 목마를 시간이다.
(2) 목마름의 십자가형을 받는 자의 특수현상이라 한다.
(2) 목마름의 십자가형을 받는 자의 특수현상이라 한다.
그는 십자가에서 많은 피를 흘렸다.
또 열이 나고, 목 타게 된다. 피 흘린 자는 갈증에 시달린다.
그의 갈증은 영적, 육적 갈증이요 기갈이다.
(3) 목마름은 우리의 범죄한 결과 때문이다.
(3) 목마름은 우리의 범죄한 결과 때문이다.
사람이 범죄할때는 이상하게도 목이 탄다.
죄의 보응의 때는 무섭게 목마르다.
고로 이 목마름은 영과 육이 당하는 고통의 부르짖음이다.
(4) 예수님께서 목마르신 결과는 무엇인가?
(4) 예수님께서 목마르신 결과는 무엇인가?
우리에게는 영생의 생명수가 공급된 것이다.
십자가상에서 목마르신 예수님은 우리의 생수가 되신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요7:37).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4:13-14).
예수님은 우리의 생수가 되신다.
① 보혈의 생수이다.
“그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 족속과 에루살렘 거민을 위하여 열리리라”(슥13:1).
② 성령님의 생수이다.
더러는 것을 씻는 생수이다(고전6:11).
③ 말씀의 생수이다(엡5:26-27).
예수님께서 목마르심으로 우리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되었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계 22:17).
(5) 우리는 “내가 목마르다”는 말씀에서 배울 교훈이 있다.
(5) 우리는 “내가 목마르다”는 말씀에서 배울 교훈이 있다.
①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에 대한 증거이다.
② 여기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당하신 고통의 심도를 느낀다.
③ 여기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고통 중에 있는 성도를 얼마나 동정하실 수 있는가를 본다.
④ 우리는 여기서 우리에게 절실히 요구되는 것이 무엇인가 알게 된다.
가상칠언 (6) “다 이루었다”
가상칠언 (6) “다 이루었다”
(요19:28-30)
이는 십자가에서 여섯 번째의 말씀이다.
이 말은 단 한 마디이다. 그러나 승리의 말씀이다.
“다 이루었다” 이는 “영원히 완성되었다” 는 뜻이다.
훌륭하고 아름다운 동물이나 흠도 티도 없는 것이 새로 태어났을 때 한 말이다.
예술가들이 그림을 완성하고 나서 하는 말이 있다.
성경에 “다 이루었다”는 말이 세 군데 사용되었다.
① 그것은 하나님이 그의 창조사역 완수 후에 사용했다(창2:1).
② 그것은 주님이 구속사업 완수 후에 언급했다(요19:30, 4:34, 5:36).
③ 그것은 주님의 구속경륜과 그의 사역 완수 후에 한 말이다(계10:7,16:170.
“나는 권력으로 구주 대륙을 휩쓸었어도 실패자이나, 나사렛 예수는 사랑으로 세계를 정복하는 승리자가 되었다”(나폴레옹)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고 소리쳤다.
(1) 이는 하나님의 대 경륜의 성취이다.
(1) 이는 하나님의 대 경륜의 성취이다.
하나님은 범죄자를 구원하기로 경륜하신 것이다.
사람 보기에는 십자가가 실패인 것 같고,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은 실패자 같으나, 십자가는 승리이고, 예수님은 승리자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경륜의 완성 자이시다.
(2) 예수님의 죽으심은 하나님께 받은 사명을 완수하신 것이다.
(2) 예수님의 죽으심은 하나님께 받은 사명을 완수하신 것이다.
그런데 그 일에는 고난이 따른다.
그 길은 가시밭 길 이다.
그 길에는 생명을 바쳐야 한다.
(3) 예수님의 죽으심은 구속사업의 성취이다.
(3) 예수님의 죽으심은 구속사업의 성취이다.
그는 세상 죄를 짊어진 하나님의 어린양이었다(요1:36).
“피 흘림이 없이는 사유함이 없느니라”(히9:220.
(4) 하나님의 뜻이 성취이다.
(4) 하나님의 뜻이 성취이다.
하나님의 뜻은 십자가로 성취된 것이다.
하나님의 뜻은 십자가에서 성취된 것이다.
하나님의 뜻이란 무엇인가?
① 죄인 구원이 하나님의 뜻이다.
② 십자가 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③ 십자가에서 죽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5) “다 이루었다”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인가?
(5) “다 이루었다”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인가?
① 하나님은 결코 실패하지 않는 분임이라는 사실이다.
② 하나님은 성도의 구원을 책임지고 이루시는 분이다.
③ 하나님의 교회인 기독교는 생명과 능력과 승리의 종교라는 사실이다.
로마가 권세잡고 있을 때, 교회는 지하에 숨어 있었다.
그러나 지금 로마는 온데간데없고 기독교는 남아 있다! 기독교는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기독교는 승리의 종교이다!
“너희가 세상에서는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6) 여섯 번째 말씀에서 배울 교훈이 있다.
(6) 여섯 번째 말씀에서 배울 교훈이 있다.
① 메시야이신 예수가 죽기 전에 이룰 모든 예언이 성취었다는 말이다.
② 이 말씀은 예수님이 당한 무시무시한 고통이 끝났다는 말이다.
③ 이 말씀은 성육신 하신 예수님의 목적이 성취되었음을 의미한다.
④ 이 말씀은 예수님의 구속사업이 완수되었음을 말한다.
⑤ 뿐만 아니라 죄의 종말과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진 것을 볼 수 있다.
⑥ 이 말씀은 사탄의 권세가 여지없이 깨트려진 것을 선언한 말씀이다.
“다 이루었다” 아멘.
가상칠언 (7)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가상칠언 (7)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눅23:44-49)
이는 가상칠언 중 마지막 말씀이다.
이 말은 기독교는 불멸의 종교이며 영생의 종교임을 말해준다.
세상을 떠나면서, 그 영혼을 부탁하고 떠나는 자는 복되다.
예수님은 세상에서 처음 하신 말씀이 아버지이고(눅2:49)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도 아버지이다(눅23:46).
이 마지막 말씀은, 예수님이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말해줄 뿐 아니라
그가 어떻게 죽었는가 말해준다.
(1) 그는 아버지를 부르며 죽는다.
(1) 그는 아버지를 부르며 죽는다.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2) 예수님은 그의 영혼을 하나님께 부탁했다.
(2) 예수님은 그의 영혼을 하나님께 부탁했다.
예수님은 그의 마지막 때 육신을 부탁하지 않고 영혼 부탁했다.
이는 영혼이 육신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예수님께도 우리와 같은 영혼이 있었다는 것 보여준다.
영혼불멸은 부동의 진리임을 가르쳐준다.
성도의 영혼은 죽을 때 가는 곳이 있다.
(3) 예수님은 그의 영혼을 하나님께 부탁했다.
(3) 예수님은 그의 영혼을 하나님께 부탁했다.
부탁한다는 것은 ① 하나님께 맡기는 것을 의미한다.
②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것이다.
③ 하나님께로 간다는 것이다.
“아버지여 내 영혼이 아버지께로 가는데 잘 부탁합니다”
(4) 이 마지막 말씀은 기독교의 본질을 말해준다.
(4) 이 마지막 말씀은 기독교의 본질을 말해준다.
즉 기독교는 이 세상에서 끝나는 종교가 아니라
내세의 종교, 소망의 종교인 것을 말해준다.
세상의 모든 종교는 다 죽음 이편의 종교이다.
그러나 기독교는 죽음 저편 종교이다. 죽음을 초월한 종교이다.
① 죽음 후에도 영혼이 가서 사는 곳이 있다.
낙원, 곧 천국이 있다(요14;1-2).
“의인은 그 죽음에도 소망이 있느니라”(잠14:32).
② 죽음은 쉬는 것이다.
“이 세상은 일하는 곳이고, 천국은 쉬는 곳이다”(바하)
안식에는 세 가지가 있다.
㉠ 매일-밤 ㉡ 매주-안식일 ㉢ 영원-천국
③ 죽음은 떠나는 것이다.
④ 죽음은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다.
⑤ 죽음은 하나님이 데려가는 것이다(창5:24).
⑥ 죽음은 위로 받는 곳이다(눅16:25).
기독교는 죽음 앞에서도 여유가 있는 종교이다.
기독교는 생사를 초월한 종교이다.
죽음이란 영혼과 육신의 분리이다.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5) 이 마지막 말씀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교훈을 배운다.
(5) 이 마지막 말씀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교훈을 배운다.
① 이 말씀은 예수께서 아버지 하나님과의 교제가 다시 회복되었음을 본다.
②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 대한 그리스도의 완전한 복종을 배운다.
③ 우리는 여기서 영원히 안전한 피난처를 본다
④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과의 교제가 얼마나 복된 것인가를 본다.
⑤ 우리는 여기서 인생의 참된 안식처를 보게 된다.
2. 골수에 사무친 사명감(1)
2. 골수에 사무친 사명감(1)
(렘20:7-9)
예레미야는 제사장의 아들로서 남 왕국 유다를 위해 봉사하도록 부름 받은 선지자였다 “내가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느니라”(렘1:5).
그의 사역은 세 가지에 있어서 두드러졌다.
① 그는 유다에 남아 있는 다수에게 경고했다.
② 그는 바벨론 포로로 잡혀간 소수를 위해 위로했다(29장)
③ 그는 아홉 이방민족에게 심판을 선포했다
(애굽,블레셋,모압,암몬,에돔,다메섹,게달과 하손, 엘람, 바벨론)
하나님께서 인간을 경고하시는 방법은 다양하다.
노아 때에는 물로 심판했다. 소돔과 고모라 성에는 유황과 불비로 경고했다.
바로에게는 10재앙으로, 요나에게는 풍랑으로 경고했다.
이 같은 기적적인 방법 외에 또 다른 방법이 있는데 그것은 선지자로 경고하신다.
예레미야가 하나님께 받은 예언을 전할 당시 강국이었던 앗수르는 점점 쇠퇴하고 있었고, 바벨론이라는 새 강국이 등장하고 있었다. 이 와중에서 애굽도 꿈틀거리고 있었다.
이스라엘은 강국들의 틈바구니에서 어떤 형편에 있었는가?
① 종교적으로 심히 부패해 있었다.
그들은 바알과 몰렉 신을 섬기고 있었다. 우상을 섬기고 있었다.
성전예배도 형식에 불과했다. 마음은 딴 데 있었다.
종교지도자들은 부패했다. 서기관, 선지자, 제사장들은 사리사욕에 눈이 어두웠다.
부정직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전하지 못했다.
② 사회적으로 부패했다. 종교가 부패하면 사회도 무질서하기 마련이다.
우상숭배는 부패한 사회를 만든다. 거짓 선지자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③ 정치적으로 불안한 상태에 있었다.
앗수르, 애굽, 바벨론이라는 3대 강국사이에서 눈치 보며 불안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는 외롭게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전했다.
① 백성들의 우상숭배의 죄를 지적하면서 심판을 경고했다.
② 하나님보다 강대국을 의지하며 그들과 동맹 맺는 것이 부당함을 지적했다.
③ 그는 이스라엘의 태만, 무관심, 무사려, 방심을 지적했다(6:14).
하나님과 이스라엘과의 언약 관계가 파괴되어 심판이 목전에 임박함을 선언했다.
예루살렘에 성전이 있다고 방심 말라. 희생제물을 드린다고 안심하지 말라.
성지에 살고 있다고 안심하지 말라. 할례를 받았다고 안심하지 말라.
이 같은 태만의 죄에서 회개하고 돌아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라고 선포했다.
만약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하나님께 심판하실 것인데 당할 자 없으리라고 했다. 하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 폐하시고 유대인을 그 땅에서 쫓아내실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러나 백성들은 예레미야선지를 죽이려 했다.
그는 그의 가족들에게 박해 당했다(렘12:6). 그는 고향 사람들에게도 위협 받았다(11:21).
그도 인간인지라 생명의 위협을 당했을 때 생을 저주하고 죽기를 구했다(20:14-18)
그러나 하나님은 그때마다 힘을 주셨다. 그는 만일 그가 하나님의 말씀 선포를 중지한다면 도무지 견딜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하면 나의 중심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9).
예레미야의 마음이 골수에 사무치는 이유는 무엇인가?
예레미야의 마음이 골수에 사무치는 이유는 무엇인가?
① 그가 받은 직분을 그만두도록 위협을 받았기 때문이다(20:7-9, 14-18).
② 굽힘이 없이 유다의 죄악을 열거하였기 때문이다.
③ 그가 받은 사명을 감당치 못하게 했기 때문이다.
예레미야는 선지자로 세움 받은 일을 못하니 가슴이 타는 듯했다.
이 가슴이 불붙는 것 같았다. 골수에 사무쳤다. 뼈 속을 두들긴다.
답답하여 미칠 것 같다는 말이다.
직원, 그리고 가족 여러분, 우리는 품꾼이 아니다. 품꾼은 해지기를 기다린다.
그러나 우리는 밤이 없고 낮이 따로 없다. 부르면 밤중에라도 나가야 한다. 힘든 일이다. 어떤 때는 오해도 받을 것이다. 어떤 때는 한없이 섭섭하기도 한때가 없지 않을 것이다. 예레미야는 한평생 아내도 없이, 성공도 없이, 눈물 흘린 대가도 없었다.
우리는 그의 정성 못 미쳐도 마음만은 뜨겁게 살자. 사무친 사명감으로 살자.
1. 하루 10시간 이상은 일해야 한다(사실은 24시간 계속근무이다.).
2. 아침 밥 굶고 나오지 마라(만일, 굶으려면 종일 굶어라)
3. 항상 교회 일에 관심을 가지고 보다 더 좋은 일 위해 연구하라
4. 다른 사람의 실수나 허물을 들추지 말라.
5. 직무수행상 얻은 비밀을 누설하지 말라.
6. 오직 예수 때문에 일하라
7. 예레미야의 심정을 가지고 일하라.
3. 골수에 사무친 사명감(2)
3. 골수에 사무친 사명감(2)
(렘20:1-9)
예레미야는 제사장의 아들로서 남왕국 유다를 위해 봉사하도록 부름 받은 선지자였다. “내가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느니라”(렘1:25).
그의 사역은 세 가지에 있어서 두드러졌다.
① 그는 유다에 남아있는 다수에게 관하여 경고했다.
② 그는 바벨론 포로로 잡혀간 소수를 위해 위로했다(29: ).
③ 그는 아홉 이방민족에게 심판을 선포했다(애굽, 불레셋, 모압, 암몬, 에돔, 다메섹, 게달과 하손, 엘람, 바벨론).
하나님께서 인간을 경고하시는 방법은 다양하다.
노아 때에는 물로 심판했다. 소돔과 고모라성에는 유황과 불비로 경고했다.
바로에게는 10재앙으로, 요나에게는 풍랑으로 경고했다.
이 같은 기적적인 方法에 또 다른 방법이 있는데 선지자로 경고하신다.
예레미야가 하나님께 받은 예언을 전할 당시 강국이었던 앗수르는 점점 쇠퇴하고 있었고, 바벨론이라는 새 강국이 등장하고 있었다.
이 왕 중에서 애굽도 꿈틀거리고 있었다.
이스라엘은 강국들의 틈바구니에서, 어떤 형편에 있었는가?
이스라엘은 강국들의 틈바구니에서, 어떤 형편에 있었는가?
① 종교적으로 심히 부패해 있었다.
1. 그들은 바알과 몰렉신을 섬기고 있었다.
2. 성전예배도 형식에 불과했다. 마음은 단데 있었다.
3. 종교지도자들도 부패했다. 서기관, 선지자, 제사장들은 사리사욕에 눈이 어두웠다. 부정직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전하지 못했다.
② 사회적으로 부패했다. 종교가 부패하면 사회도 무질서하기 마련이다.
우상숭배는 부패한 사회를 만든다. 거짓선자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③ 정치적으로 불안한 상태에 있었다.
앗수르, 애굽, 바벨론이라는 삼대강국 사이에서 눈치보며 불안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는 외롭게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전했다.
① 백성들의 우상숭배의 죄를 경고 지적했다.
② 하나님보다 강대국을 의지하며, 그들과 동맹 맺는 것이 부당함을 지적했다.
③ 그는 이스라엘의 태만, 무관심, 무사려, 방심을 지적했다(6:14).
예루살렘에 성전이 있다고 방심 말라. 희생제물 드린다고 안심하지 말라.
성지에 살고 있다고 방심하지 말라. 할례를 받았다고 안심하지 말라.
이 같은 태만의 죄에서 회개하고 돌아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라고 선포했다.
만약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인데 당할 자 없으리라고 했다.
하나님께서 에루살렘 성전 폐하시고 유대인을 그 당에서 쫓아내실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러나 백성들은 귀에 달고 그의 말을 들으려하지 안했다.
오히려 백성들은 예레미야선지를 죽이려 했다.
그는 그의 가족들에게 박해 당했다(렘12:6) 그는 고향사람들에게도 당했다(11:21).
그도 인간인지라 생명의 위협을 당했을 때 생을 저주하고 죽기를 구했다(20:14-18).
그러나 하나님은 그때마다 힘을 주셨다.
그가 만일 하나님의 말씀 선포를 중지한다면, 도무지 견딜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하면, 나의 중심이 불 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9).
예레미야의 마음이 골수에 사무치는 이유는 무엇인가?
예레미야의 마음이 골수에 사무치는 이유는 무엇인가?
① 그가 받은 직분을 그만 두도록 위협을 받았기 때문이다(20:7-9, 14-18).
② 굽힘이 없이 유다의 죄악을 못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③ 그가 받은 사명을 감당치 못하게 했기 때문이다.
예레미야는 선지자로 세움 받은 일을 못하니 가슴이 타는 듯 했다.
가슴이 불붙는 것 같았다. 골수에 사무친다. 답답하여 미칠 것 같다는 말이다.
직원, 그리고 家族여러분, 우리는 품군이 아니다. 품군은 해지기를 기다린다. 그러나 우리는 밤이 없고 낮이 따로 없다.
어떤 때는 오해도 받을 것이다. 어떤 때는 한없이 섭섭하리라.
예레미야는 한평생 아내도 없이 방패도 없이 눈물 흘린 代價도 없었다.
우리는 그의 정성 못 미쳐도 마음만은 뜨겁게 살자.
1. 하루 10시간이상은 일해야 한다(사실은 24시간 계속 근무하다).
2. 신자들과 돈 거래는 일절하지 말자(은행 금리 이상은 생각지도 말라).
3. 아침 밥 굶고 나오지 마라(만일 굶으려면 종일 굶어라)
4. 항상 교회 일에 관심을 가지고 보다 더 좋은 일 위해 연구하라.
4. 교사의 중한 책임
4. 교사의 중한 책임
(마18:5-10)
마태복음 18장의 첫 부분은 어린 이이들에게 관한 교훈을 집성하고 있다.
여기 어린 아이라고 할 때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된다. 첫째는 물론 어린아이이다.
둘째는, 초신자라는 의미도 있다. 본래교사가 그의 제자들을 가리켜 아이들, 아들들이라고 불렀다. 고로 어린아이란 역시 초신자 이제 믿는 사람이란 뜻이다.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①이 말은 “나를 위하여”란 의미이다. 어린아이를 돌보는 것은 바로 예수그리스도를 위하여 어떤 일을 하는 것이다. 어린이 양육, 어린이들 교육시키는 것은 바로 어린아이를 위한 일이지만 또한 예수님 자신을 위한 일이다.
② 이 말은 “예수님의 축복”이란 의미이다.
즉, 어린아이에게 예수님의 축복으로 전하고 영접하는 것이다.
“어린아이를 영접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① 어린아이의 심정을 가진 소박한 사람들을 영접한다는 의미도 있고
② 어린아이를 영접하여 그 아이를 좋은 사람으로 기르고 가르치는 것을 의미한다.
③ 어린이를 사랑하는 것을 말한다. 그들에게서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배우는 것을 의미한다.
~ 오늘 우리 본문의 강조점은 무엇인가?
~ 오늘 우리 본문의 강조점은 무엇인가?
우리 교사들에게 엄청난 중한 책임이 지워져 있음을 가르친다.
~① 다른 사람으로 실족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강조하고 있다.
~① 다른 사람으로 실족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강조하고 있다.
실족케 하는 일 - 함정을 파는 일
사람은 유혹을 받아서 넘어진다. 넘어지게 유혹하는 자가 있다.
사람일수도 있고 마귀가 넘어트리는 경우도 있다.
범죄하도록 어떤 충동을 받는다.
유대인들은 가장 용서할 수 없는 죄가 타인으로 범죄케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죄는 연쇄적으로 다음사람이 또 범죄케 되기 때문이다.
이 죄의 행렬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퍼져 나가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타인의 순진성을 파괴하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없다.
어떤 노인이 숨을 헐떡이며 임종을 맞는 순간 괴로워하더라는 것이다.
그는 그가 괴로워하는 이유에 대하여, 소년 때에 어느 길거리에 서있는 도로 표시판(방향)을 거꾸로 바꾸어 놓은 것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가 그렇게 해 놓음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길을 잘못 들었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괴로웠다는 것이었다. 그는 분명 실족케 하는 일을 했다.
다른 사람을 실족케 하는 일은 대단히 무서운 일이다.
~② 다른 이를 실족케하는 사람에게 내리는 벌이 얼마나 무서운 가를 강조하고 있다.
~② 다른 이를 실족케하는 사람에게 내리는 벌이 얼마나 무서운 가를 강조하고 있다.
실족케 하는 자가 받는 벌은 보통 형벌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본문은 실족케 하는 자는 연자 맷돌을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지는 것이 낫다는 것이다. 연자 맷돌은 보통 맷돌이 아니다. 큰 맷돌이다.
맷돌이 커서 당나귀가 돌리는 것을 말한다.
연자 맷돌이 크다 함은 죄에 대한 두려움을 말해준다.
더군다나 바다에 빠져야 했다. 그 바다는 또 깊은 바다이다.
유대인들은 바다를 두려워했다. 그들에게는 천국에는 바다가 없는 곳이다(계21:1).
타인을 실족케 하는 것은 깊고 두려운 바다에 맷돌을 걸고 빠져 죽는 것만 못했다.
물에 빠트리는 것은 로마의 형벌이었다. 그러나 유대인의 형벌을 아니었다.
왜냐 하니까 유대인들에게 있어서는 절망적 파멸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소자하나 어린아이 하나를 실족케 하면 이 같은 무서운 형벌을 면치 못했다.
그 이유는 어린이는 너무나 순진하고 아름다운 아이들이기 때문이다.
“이 소자 중에 하나라도 잃어지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마18:14).
어린이도 구원받아야 할 죄인이고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
요한의 제자 폴리갑은 9살에 주님을 영접했고, 주석가 매튜헨리는 10살에 주님을 영접했다.
통계에 의하면 교인의 65%와 ,선교사의 85%가 어린이때 복음 들었다.
어린이들은 오늘 우리의 손안에 있다. 그러나 내일이면 늦을지 모른다.
어린이를 주님께 인도하지 않으면 장래의 교회는 비게 될 것이다.
~③ 본문은 어린이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③ 본문은 어린이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저희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어린이들을 후생가외라고 한다. 그들의 장래는 아무도 모른다.
그들에게는 무한 가능성이 있다.
그들이 어떻게 가르침 받고 훈련받느냐가 문제이다.
어린이는 어리지만 그는 쉼 없이 장성하고 있다는 염연한 사실을 주시해야 할 것이다.
~④ 마지막으로 이 같은 어린이를 맡아 가르치는 교사의 책임이다.
~④ 마지막으로 이 같은 어린이를 맡아 가르치는 교사의 책임이다.
“호박순은 돌려놓기 탓이라”(속담).
“실족케 하는 일이 있음을 인하여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케 하는 일이 없을 수 없으나 실족케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마8:7).
5.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5.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요14:6)
국토방위의 신성한 의무를 수행하기에 앞서, 훈련소에서 세례를 받음으로 영적으로 무장하게 된 장병 여러분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기독교에는 두 가지 예식이 있는데 곧 세례와 성찬입니다.
세례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죄 씻음 받고 하나님의 자녀 곧 천국백성이 되었다는 의식이요, 성찬은 구원받은 성도들이 떡과 잔으로 예수님께서 나를 위하여 죽으셨음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세례의 뜻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예수 믿는 신자라는 공적 표현입니다.
둘째, 모든 죄를 사함 받고 구원 받았다는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넷째, 이제는 천국 백성이 되었다는 뜻이 있습니다.
따라서 세례는 예수님 믿는 자에게만 베풉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예수님은 누구십니까?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마16:16).
예수님은 하나님의 독생자요 우리 인생의 구주십니다.
이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죄 사함을 받을 길이 없고 구원을 받을 길이 없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행16:31)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롬10:13)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요6ㅖ47).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야 할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야 할 이유는 무엇입니까?
~첫째, 예수님은 하늘가는 길이기 때문에 우리가 믿고 따라가야 합니다.
~첫째, 예수님은 하늘가는 길이기 때문에 우리가 믿고 따라가야 합니다.
“나는 길이요”
이 세상에는 많은 길이 있습니다.
인도, 차도, 사도, 부도, 철도가 따로 있습니다.
우리 인생도 마땅히 가야할 인생길이 따로 있습니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잠22:6)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라”(잠16:25)
“의로운 길에 생명이 있나니 그 길에는 사망이 없느니라”(잠12:28)
성공의 길이 있고, 실패의 길이 있습니다.
축복 받는 길이 있고, 저주 받는 길이 있습니다.
행복의 길이 있고, 불행의 길이 있습니다.
천국 가는 길이 있고, 지옥 가는 길이 있습니다.
어느 길로 가느냐에 따라 인생도 바뀝니다.
~둘째, 예수님은 참 진리이기 때문에 우리가 믿고 그 위에 굳건히 서야 합니다.
~둘째, 예수님은 참 진리이기 때문에 우리가 믿고 그 위에 굳건히 서야 합니다.
“나는 진리요”
모래 위에 지은 집은 쉬 무너집니다.
진리의 터 위에 서 있는 인생은 비, 창수,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갈릴레오가 지동설을 주장 했을 때 천주교는 그를 죽이려 했습니다.
그는 파문 선고를 받고 나오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
참 진리의 가치를 모르면 과소평가 합니다.
해방직후 영도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거기 전복과 해삼 소리를 잡는 해녀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도 물속 깊이 들어갔는데 별로 재미를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무엇인가 길쭉한 철물이 보였습니다. 무겁기는 했으나 가지고 나왔습니다. 별 쓸모없는 것 같아서 마루 밑에 던져두었습니다.
마침 아이들이 엿쟁이에 가서 엿으로 바꾸어 먹었습니다. 엿쟁이는 조금은 이상하여 금은방에 가서 감정을 받았습니다. 감정사는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경찰은 자초지종을 조사한 후, 전후사정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금괴는 해녀 것입니까? 엿쟁이 것입니까? 예수님은 참 진리신데 이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그를 믿지 않습니다.
~셋째, 예수님은 참 생명이기 때문에 우리가 그 생명을 받아야 합니다.
~셋째, 예수님은 참 생명이기 때문에 우리가 그 생명을 받아야 합니다.
“나는 생명이니”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요11:25).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은 우리의 생명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마16:26).
믿는 성도는 영생을 얻었기 때문에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리”(빌4:3).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못에 던지우더라”(계20:15).
예수 믿어 구원받은 성도는 영생을 얻습니다. 이것은 기적입니다.
굼벵이가 매미가 되는 것도 기적입니다.
구더기가 파리가 되는 것도 기적입니다.
번데기가 호랑나비가 되는 것도 기적입니다.
죄인이 구원 받는 것도 기적입니다.
죄인이 영생 얻는 것도 구원입니다.
우리가 믿음의 열쇠만 가지고가면 천국 문은 활짝 열린 줄 믿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노니”(계:3:8).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3:20).
천국 문을 여는 열쇠는 믿음입니다.
미국 하바드대학을 다니는 친구 중에 클리브란드와 뿌리그린이라는 두 친구가 있었다. 그들은 어느 날 술을 먹고 극장으로 가는 참이었다. 그들이 가는 어느 교회당 앞에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제목의 부흥집회 안내판이 있었다. 클리브란드는 그 말에 충격 받고 그날 밤 교회에 가서 큰 은혜 받았다.
둘은 거기서 헤어졌다. 30년의 세월이 흐른 뒤 뿌리그린은 사형선고를 받고 감옥에서 복역 중이었다. 그의 손에는 클리브란드가 대통령이 되어 취임식을 하는 대문짝같이 큰 신문이 쥐어져 있었다. 처음 둘은 서로 같은 길을 갔으나, 후에는 서로 다른 길을 걸었다. 그 결과는 이렇게 엄청나게 달랐다.
클리브란드는 대통령 취임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방탕한 청년이 오늘 이 자리에 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때문입니다”
1950. 6. 25일, 비극의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무방비 상태의 대한민국은 서울을 버리고 수원, 대전으로 후퇴를 거듭하고 있었습니다. UN은 미 24사단을 급히 대전 전투에 투입했으나, 방어선은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사단장 딘 소장은 후퇴명령을 내린 후, 마지막으로 대전을 빠져 나오려 했습니다.
그러나 골목길 하나를 잘못 들어 적진 깊숙이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그는 산으로 도망하여 30일 동안 온갖 고생을 다하면서 대구로 가려 했습니다. 그러나 전북무주군에서 또 길을 잘못 택했습니다. 동쪽으로 갔다면 대구로 갈수 있었는데 서쪽으로 가는 길을 잘못 택하여 1950. 8. 24일 포로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의 군인 생명은 길 하나 잘못 들어 비극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길 하나가 그의 운명을 바꾸어 놓고 말았습니다. 미 24사단은 지금도 본토에 들어가지 못하고 하와이섬에 그 본부가 있습니다.
6. 나를 따라오려거든
6. 나를 따라오려거든
(왕하2:1-14)
구약성경을 읽은 어떤 성도가 눈을 감고 생각해보니 두 사람의 이름이 떠오르더랍니다. 한 분은 위대한 선지자 모세이고 다른 한분은 칠흙같이 어두운 죄악 세상에서 고군분투한 엘리야라고 합니다. 오늘 우리 본문은 이 엘리아의 영광스런 승천장면입니다. 그리고 그 후계자 엘리사의 등장입니다.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생각하게 됩니다.
첫째는, 끝까지 충성한 하나님의 종 엘리아에 대한 상급입니다.
그것은 죽음을 맛보지 않고 승천한 에녹에게 부여한 영광스런 것입니다.
둘째는, 패역한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망덕한 이스라엘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기 위하여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를 보낸 것처럼, 엘리야의 후계자 엘리사를 보내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확고부동함을 보여줍니다.
엘리야는 그의 승천에 앞서 후계자 엘리사를 연단하기 위한 교육과정을 마련합니다. 길갈과 벧엘과 여리고와 요단으로 이어지는 험난하고도 고단한 훈련코스입니다. 엘리야는 엘리사로 하여금 이 훈련을 포기하도록 종용합니다. “너는 여기 머물라”(2,4,6).
사실,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세 번씩이나 훈련과정을 포기하도록 간청한 것은,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정신자세를 시험하기 위한 것이라 할수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고 세 번씩이나 같은 질문을 계속한 것이나 같은 의미라 할 수 있습니다(요21:15,16,17).
운전면허 시험장에 가면 몇 가지 코스가 있습니다.
필기시험, T코스, S코스, 주행 등이 그것입니다. 엘리사도 갑절의 영감을 받아 선지자로 인정받아 사역하기까지에는 엘리야와 동행하면서 거쳐야했던 네 가지 과정이 있었습니다.
엘리야가 여기서 밝힌 지명들은 오늘 우리에게 큰 가르침이 됩니다.
~1. “엘리야가 엘리사로 더불어 길갈에서 나가더니”(1).
~1. “엘리야가 엘리사로 더불어 길갈에서 나가더니”(1).
옛날 가나안으로 향하던 이스라엘 백성 앞에는, 요단강이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능력으로 요단강이 갈라지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두 다 무사이 강을 건넜습니다. 여호수아는 요단강 밑바닥에서 열두 돌을 취하여 여리고 동편에 있는 길갈에 기념비를 세우라고 하였습니다.
기념비를 세운 목적은 두 가지인데 두 번이나 거듭 거듭 밝히고 있습니다(수4:6-7, 21-24).
첫째는, 하나님의 능력을 만방에 알리기 위함이요.
둘째는, 영원토록 하나님을 경외케 하기 위함입니다.
엘리야는 엘리사를 여기서부터 데리고 다녔습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의 종은,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엘리야는 길갈에서 이 역사적인 사건을 다 설명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체험한자만이 능력 있게 일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주신 힘으로만 가능합니다. 험한 세상 이길 힘은 오직 하나님의 능력뿐입니다.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슥4:6).
~2.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벧엘로 보내시느니라”(2).
~2.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벧엘로 보내시느니라”(2).
엘리야는 엘리사를 데리고 벧엘로 갔습니다. 벧엘은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에 도착하여, 제일 먼저 제단을 쌓은 곳입니다. 또 야곱이 형 에서의 노함을 피해, 정처 없이 방황하다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던 곳입니다. 야곱은 거기서 귀로만 듣던 하나님을 뵈올 수 있었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창28:15).
야곱은 여기서 하나님을 뵈옵고 그 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으며, 거기서 그는 서원했습니다. 해가지는 허허 벌판 외로운 광야 루스가 벧엘이 되는 체험을 하는 자만이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증인이 될 수 있습니다.
~3.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여리고로 보내시느니라”(4).
~3.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여리고로 보내시느니라”(4).
여리고는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을 이끌고 가나안땅에 들어가려 했을때, 제일 먼저 만난 적진입니다. 이 성을 무너뜨리지 않고는 가나안 땅에 들어 수가 없습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여리고 성을 무너뜨릴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종들에게는 무엇보다도 하나님께 대한 철저한 순종, 절대적인 순종이 있어야 함을 배웁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는 다 여리고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 여리고의 정복이 무엇보다도 제일 중요합니다. 이 여리고는 밖으로부터 오는 것도 있고 우리 마음 속에도 있습니다. 목회의 성패는 이 죄악의 정복여하에 달려 있습니다.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요일5:4). 여리고 정복은 곧 죄악의 정복입니다.
능히 이길수 있습니다.
~4.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요단으로 보내시느니라”(6).
~4.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요단으로 보내시느니라”(6).
요단강은 광야와 가나안 땅의 경계입니다. 엘리야는 요단강에 도착하여 겉옷으로 물을 쳤더니 물이 갈라져 두 사람은 육지처럼 건넜습니다.
그러나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간 광야에서 방황하며 이 강을 건너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불신앙과 불순종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이제 이 요단강에서 그들의 불신앙과 불순종을 씻고 새 사람이 되어 가나안 땅에 들어가야 했습니다.
영적으로 이 요단강은 세례를 의미하기도 하고, 또한 죽음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옛 사람은 세상에 대하여 죽고, 하늘 소망을 가진 새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육이 죽어야 영이 삽니다. 육신의 헐기로는 이 사역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요단강에 육의 사람을 매장하지 않으면 신령한 일꾼이 될 수 없습니다.
내가 죽어야 교회가 삽니다. 내가 죽어야 예수님이 삽니다. 육의 사람이 죽어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집니다.
오늘 말씀을 맺도록 하겠습니다.
신대원 성적과 졸업장이 성공적인 목회자의 보증이 되지 못합니다. 아직도 우리 앞에는 길갈과 벧엘과 여리고와 요단 코스가 남아 있습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십니다. 그 분을 만나야 합니다. 그 분을 만나면 자신의 죄인인줄 알게 되고 죄악을 정복할 힘이 생깁니다. 육이 죽고 영의 사람이 되어야 교회 일꾼이 될 수 있습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는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16:24).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는 자는 자기 부인과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7. 나이 많아 늙었고
7. 나이 많아 늙었고
(창24:1)
오늘 우리 본문은 아브라함이 늙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오늘 우리 본문은 아브라함이 늙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 표현은 그가 오래 살았다는 것을 완곡하게 표현한 말이다.
서서히 한 세대는 물러가고 또 한 세대가 구속사 전면에 등장하고 있다.
아내 사라는 127세에 죽었다(창23:1).
이삭은 40세에 결혼했다(창25:20).
이때 아브라함은 140세 전후였을 것이다.
사라가 죽었을 때 아브라함은 “슬퍼하며 애통”했다(창23:2).
“죽음이 무엇인가?”
“사람은 모두 장수하기 원한다. 그러나 누구도 늙기는 싫어한다”
“남자는 마음으로 늙고 여자는 얼굴로 늙는다”(영국).
“한 손에 막대 짚고, 또 한 손에 갈퀴 쥐고
늙는 길 갈 퀴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려터니
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우탁)
사람이 늙은 후에 또 언제 젊어 볼고
빠진 이 다시 나며 센머리 검을 손가
세상에 불로초 없으니 그를 설위하노라“(이정보)
Stanford는 노년의 특징을 이렇게 말한다.
① 성취감이나 좌절감 속에서 산다(교만, 절망)
② 아직도 젊다는 착각 속에 산다
③ 소속감 없이는 못 사는 시대이다.
④ 청년을 숭배시대하는 시대이다.
⑤ 고독이 제일 큰 문제인 때다
⑥ 지나치게 보수적이 된다. 따라서 고집이세다.
그러나 노년은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한다.
(카토) 80세에 헬라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소포클레스) 그의 대표작 비극 “오이디프스”를 80이 넘는 나이에 썼다.
(시모니데스) 그의 나이 80세 때 대상을 받았다.
(안나) 91의 고형이었으나 희망을 잃지 않았다(사별7년, 과부84년)
그녀는 기어코 예수님을 품에 안게 되었다(눅2:36).
찰스 맥코이 목사(뉴욕, 롱아일랜드 감리교회)
인도 선교사 한 분이 와서 설교하고 교인들에게 선교사 지망을 호소했다.
그러나 한 사람도 희망자가 없자 “71세의 나라도 가능합니까?”라고 묻었을 때 선교사는 대답했다 “늙은 나무에 더 좋은 열매가 맺힐 수 있습니다”
이때 결심하여 15년간 중국에 가서 아편 중독자들에게 선교하다 86세 떠났다.
“저녁노을이 아름답다”
“단풍은 그 최후가 가장 아름답다”
노년 성도라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 말하는가?
노년 성도라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 말하는가?
1. 오랜 신앙인아라는 말이다.
“함악한 세월을 보냈나이다”(창47:9).
2. 오랫동안 교회를 지켜온 자란 뜻이다.
3. 지금까지 깨끗하게 한 평생을 살았다는 뜻이다.
깨끗하게 늙지 못한 자도 있고 깨끗하게 최후 마치지 못한 자 많다.
“주여 죄 많은 노인으로 당신 앞에 서지 않게 하소서”
4. 노년 성도란 성숙한 노인이라는 뜻이다.
5. 오랫동안 하나님의 은혜와 보호를 받았다는 의미이다.
6. 노인 성도는 귀중한 경험의 보고이다.
7. 누구보다도 천국에 대한 확실한 소망을 갖게 된다.
8. 머물다가 가게 되는 뒷자리 많은 것을 남겼다는 의미이다.
사도바울은 디모데에게 “너는 겨울 전에 오라”고 했다(딤후4:21).
사도바울은 디모데에게 “너는 겨울 전에 오라”고 했다(딤후4:21).
1. 겨울이 되면 오도 가도 못하기 때문이다.
2. 그는 너무나 허전했기 때문이다.
데마는 데살로니가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모두가 떠났기 때문이다(딤4:10,11).
3. 믿음의 아들 디모데가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특히 겉옷과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 오라고 한 것을 보면 마지막 때가 온 줄 알고 신변정리 뜻이 아닌가 생각된다.
인생의 겨울은 언젠가 오기 마련이다.
후회 없이 미련 없이 아버지 품에 안기는 것 준비가 필요하다.
(아브라함 링컨) “잡초는 뽑고 꽃을 심다 간 사람이다”
8. 내가 이를 때까지
8. 내가 이를 때까지
(딤전4:13-16)
사도바울은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로마행을 소원했다.
사도바울은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로마행을 소원했다.
“그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행23:11).
그는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하다가 붙잡혀 2년 동안 영어의 몸이 되었다. 석방된 후 디모데를 데리고 에베소까지 왔다. 그러나 계속 동행하지 못하고 디모데를 그 곳에 두고 마게도냐를 방문한다. 디모데를 그 곳에 머물게 한 것은 거짓 교사들의 미혹 때문이었다. 그래서 신실한 디모데를 에베소교회에 머물게 한 것이다.
“내가 마게도냐로 갈 때에 너를 권하여 에베소에 머물라 한 것은 어떤 사람들을 명하여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며”(딤전1:3).
그러나 바울은 에베소로 서둘러 갈수가 없어서 목회 서신을 쓴 것이다.
“내가 속히 네게 가기를 바라나 이것을 네게 쓰는 것은”(딤전3:14)
그러고 나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부탁한다(13)
그러고 나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부탁한다(13)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착념하라”
“읽는 것” - 공개적으로 성경을 읽는 것을 말한다.
“권하는 것” - 교리와 도덕 따라 충고하고 권유하는 것
“가르치는 것” - 그릇된 사상에 미혹됨이 없이 신앙에 굳게 서도록 교육하는 것을 말한다.
1. 가르치는 일에 착념하라(13)
2. 이 일에 전심전력하라(15)
3. 이 일을 계속하라(16) -그 결과는 듣는 자 구원하는 것이다.
“이것을 행하므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16).
기독교 강요에는 “사람이 마땅히 배워야 할 지식이 많으나 중요한 것은 두 가지이다.
첫째는, 하나님께 관한 지식이요 둘째는, 인간에 대한 지식이다.
지식의 종류는 세 가지이다.
① 하나님께 관한 지식이다(신학)
② 인간에 대한 지식이다(인문과학)
③ 자연에 관한 지식이다(자연과학)
사람들은 자연과학, 인문과학, 신학 순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자연과학을 바로 쓰는 자가 사람이니 인문과학이 더 중요하고, 바른 사람을 만드는 것이 신학이니 신학이 인문과학보다 더 중요하다. 이것이 신학이요 이 신학을 믿는 것이 신앙이다.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착념하라”(13).
9. 너는 복이 되라
9. 너는 복이 되라
(창12:1-3)
하나님은 우주와 인류역사의 경륜자십니다.
하나님은 우주와 인류역사의 경륜자십니다.
이 하나님은 인류역사의 전환점에 이를 때마다 말씀하셨습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었을 때 ‘빛이 있으라’ 고 말씀하심으로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창1:3). 인류에게 에덴의 축복을 허락하셨으나 그들이 범죄했을 때 메시야이신 ‘여자의 후손’을 약속하셨습니다(창3:15). 하나님은 땅 위에 자기 백성을 필요로 하였을 때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다(창12:1). 하나님은 메시야이신 예수님의 공생애를 알리면서 “하늘로서 소리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말씀하시므로 교회시대를 여셨습니다(마3:17).
우주만물의 창조와, 범죄한 인간에 대한 메시야의 언약과, 아브라함의 부르심과, 메시야이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은 교회시대는, 인류구속사에 있어서 중요한 전환점입니다. 그 중에서도 아브라함의 부르심은, 인류역사에 있어서 새로운 방향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큰 사건은 시내산에서가 아니라, 한 사람 아브라함을 부르심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진실로 아브라함은 우리 모두가 알아야 할 중요한 인물입니다.
진실로 아브라함은 우리 모두가 알아야 할 중요한 인물입니다.
신약성경의 첫 구절 첫 마디에 나오는 말씀이 아브라함입니다(마1:1)..
아브라함은 예수님께서 가장 많이 언급하신 구약의 첫 번째 인물입니다.
아브라함은 인류구속의 시발점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는 믿음의 조상이라는 점입니다(롬4:11-16).
아브라함은 하나님과의 실제적인 교제의 시작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통하여 그 자손들에게 축복하셨습니다(창26:4, 신9:5).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벗이라 불리운 자입니다(약2:23, 대하20:7, 사41:8).
외경은 말하기를 아브라함은 “세상의 기둥”이라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처럼 중요한 인물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사 엄청난 축복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 본문을 요약하면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내가 네게 복을 주어”(2)
둘째는,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의무입니다.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2).
셋째는, 하나님의 예언입니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3).
과연 아브라함은 복을 받았습니다. 그 이름이 창대해졌습니다. 그 후손은 온 민족을 이루었습니다. 아브라함을 통하여 메시야이신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마1:1).
하나님은 이 엄청난 축복을 받은 아브라함에게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혜예 뻬레카” 이는 “너는 복이 되라” 명령입니다. 이 말이 물질적인 축복을 배제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특히 영적인 축복을 말합니다. 궁극적으로 아브라함의 가문에서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여 만민에게 복이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복이 되었을 때 하나님은 예언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복이 되었을 때 하나님은 예언하셨습니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3).
성도여러분, 우리가 오늘 주목하는 것은 그 두 번째입니다. “너는 복이 되라”
왜냐하면 우리도 복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아브라함의 후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우리도 복이 되어야 마땅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복이 될 수 있습니까?
먼저 일반적인 조건 몇 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1. 겸손해야 합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잠16:18).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약4:10).
2. 말을 삼가고 조심해야 합니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하며 성내기도 더디하라”(약1:19).
“말은 한 입으로 나가지만 천 사람의 귀로 들어간다”
“과장된 말은 인프레 같고 약속을 지키지 못한 말은 부도수표 같고 거짓말은 위조지폐와 같다”
“나무 잎이 무성한 나무는 열매가 없다”
“가루는 칠수록 고와지지만 말은 할수록 거칠어진다”
3.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4. 항상 기뻐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살전5:16-18).
왜 감사하지 못합니까? ① 너무나 욕심이 많기 때문입니다.
② 자기가 죄인인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③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5. 끝까지 잘 참아야 합니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약1:12).
이제 아브라함이 복이 된 이유를 성경에서 살펴봅시다.
1.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창12:1).
2.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했습니다.
3.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 곳을 떠났습니다.
“너는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창12:1).
“아브라함이 갈대아 사람의 땅을 떠나”(창7:4).
4.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지시하는 땅으로 갔습니다.
“내가 지시할 땅으로 가라”(창12:1).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행7:13).
“가라”는 말의 영적 의미는 “가서 취하라 붙잡으라”는 뜻이다.
그 땅에 가나안인이 버티고 있었다(행12:6).
그 땅에 기근과 흉년이 있었다(창12:10).
그 땅에서 애굽으로 내려가고 말았다(창12:10-20).
5. 아브라함은 그의 이름을 바꾸어야 했습니다.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로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함이니라”(창17:5).
6. 아브라함은 어렵고 힘든 시험을 이김으로 복이 되었습니다.
시험이란 “시험적으로 곤란을 부여하여 신앙의 여부를 알아보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두 가지 큰 시험에 승리했습니다.
하나는, 물질의 시험입니다. 이는 롯과의 관계에 있었던 사건입니다(창13).
다른 하나는, 독자 이삭을 바치는 시험입니다(창22).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바쳤을 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가라사대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사자가 가라사대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창22:11,12).
희생은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바치는 것은 결코 손해만은 아닙니다.
모리아산은 불신앙의 눈으로 볼 때에는 올라갈 수 없는 높은 산입니다.
그러나 신앙의 눈으로 볼 때는 넉넉히 오를 수 있는 산입니다.
그는 눈물을 머금고 그 산을 올라갔으나 찬송하면서 내려올 수 있었습니다.
그는 한숨 쉬며 그 산을 올라갔으나 감사하면서 하산했습니다.
사랑은 주는 것입니다. 사랑은 희생입니다.
신앙은 말이 아닙니다. 신앙은 지식이 아닙니다.
신앙은 입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은 행동이요 실천입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10:13).
10. 다윗의 기도
10. 다윗의 기도
(시51:1-9)
성경 역사를 연대적으로 나누면 창조시대, 족장시대, 출애굽시대, 정복시대, 사사시대, 통일 왕국시대, 분열왕국시대, 포로시대, 귀환시대, 복음시대, 초대교회시대, 서신시대로 나누인다.
통일왕국시대는 세 왕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는데 그 기간은 120년이다.
이때에 이스라엘의 아름다운 노래와 지혜서가 기록되었다.
이때에 이스라엘은 한 왕을 선택하고 한 왕은 거부한다.
이때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두 번 예루살렘으로 옮겨진다.
한번은 축제 기간 중에, 다른 한번은 압살롬의 모반 중에 였다.
이때에 성전건축을 준비하여 성전이 건축되었다.
세 왕 중 이스라엘의 가장 훌륭한 다윗 왕에 대해 생각하자!
(1) 사울이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있을 때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이새의 집을 방문하여 8째에게 기름 부어 왕 삼으라고 명했다.
(1) 사울이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있을 때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이새의 집을 방문하여 8째에게 기름 부어 왕 삼으라고 명했다.
(제사장직과 월군함, 하나님의 명령 불순종, 다윗을 죽이려함,
제사장 85명 학살, 엔돌의 무당 방문).
“너는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삼상16:7).
그는 양치는 목동이었다.
그는 사울에게 추격당하고 미움 받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이스라엘의 주권자를 삼으셨다!
① 예루살렘 성을 점령 - 수도 삼았다.
②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모셔왔다.
③ 하나님의 성전 건축을 준비했다.
다윗은 하나님을 사랑했다.
그리고 축복도 많이 받았다.
그러나 축복받을 때, 성공 후, 승리 후가 더 중요하다.
(2) 그러나 그는 큰 죄를 범한다.
(2) 그러나 그는 큰 죄를 범한다.
밧세바와 간음하고, 그의 남편 우리아를 죽게 한다.
그는 그 일이 있은 후 나단선지의 책망을 받고 회개한다.
하나님은 그의 죄를 용서하지만 죄 값은 치른다.
① 그의 아들이 죽는다(삼하12:18).
② 그의 아들 암논이 이복누이 다말을 강간한다.
③ 압살롬이 이복형제 압논을 살해한다.
④ 압살롬이 아버지의 왕권을 모반한다.
쫓겨 다닐 때는 긍휼과 은혜 입었으나, 주권자로 범죄 했을 때 심판 받았다.
(3) 그의 슬픈 기도는 여기서부서 시작된다.
(3) 그의 슬픈 기도는 여기서부서 시작된다.
① 죄를 자복하는 기도이다(4, 5, 14, 3)
그는 마음에 찔려 회개힌다.
㉠밧세바와 범죄 후(삼하12:13)
㉡이스라엘 계수한 후(삼하24:10, 시7: )
② 그는 용서를 빌었다(1-2, 5, 7, 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요일1:9).
③ 새 마음 새 영 주시기를 기도했다((10, 11, 12).
④ 새 일하기를 원했다(13).
“죄인들이 주께 돌아오리다”
웨슬리는 전도하고 돌아오는 자들에게 두 가지를 물었다.
“회심한자들이 있었나?” “화를 낸 자들이 있었나?”
“아니오”를 대답하는 자들에게 목사 되는 것 다시 생각해보라고 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선포하면 “예”나 :아니오“가 반드시 있을 것이다!
11. 두리번거리며 살지 말자
11. 두리번거리며 살지 말자
(출2:11-12)
“눈치가 빠르면 절에 가도 젓갈을 얻어 먹는다” 는 속담이 있습니다. 눈치가 있으면 어디를 가나 군색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세상에는 눈치로 살아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눈치처럼 필요한 것도 많지 않을 것입니다. “눈치가 없다” 는 말은 우직하다는 말도 됩니다.
눈치란 남의 마음을 알아차릴 수 있는 기미 혹은 낌새를 말합니다. 흔히 센스(Scence)라는 말로 이해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말이 항상 좋은 뜻으로만 쓰이는 것은 아닙니다.
“센스가 없다” 는 말이 우직하고, 바보스럽다는 의미가 있는 말이면서 거기에는 ‘순진하다’ ‘세상 물정을 잘 모른다’ 는 뉘앙스가 있는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눈치가 빠르다’ 는 말이 ‘지혜롭다’ ‘명석하다’ 는 말로 이해되면서도 또한 ‘약삭빠르다’ ‘꾀가 많다’는 말로도 받아드려 집니다.
사람들은 눈치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실수가 적고 윗사람에게 잘 보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눈치로만 살수는 없습니다.
눈치는 사람을 얼마 동안은 지혜로운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그것이 오래 가지는 못합니다. 눈치로 사는 사람은 약삭빠른 인간이 되고 맙니다. 약삭빠른 사람은 사람들도 싫어하고 하나님께서도 싫어합니다. 더 더욱 하나님의 사람들은 사람들의 눈치를 의식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출애굽기 2장에서 이런 말씀을 읽을 수 있습니다.
“모세가 장성한 후에 한번은 자기 형제에게 나가서 그 고역함을 보더니 어떤 애굽사람이 어떤 히브리 사람 곧 자기 형제를 치는 것을 본지라 좌우로 살펴 사람이 없음 을보고 그 애굽 사람을 쳐 죽여 모래에 감추니라”(11,12).
모세는 “좌우로 살펴 사람이 없음을 보고 애굽사람을 쳐 죽였다” 고 하였습니다.
만일 그가 좌우를 살폈을 때, 가까이에 누군가 다른 사람이 있었다면 그는 애굽인을 쳐 죽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는 사람을 굉장히 의식한 것입니다. 그는 그 순간 사람을 의식하였지 하나님을 의식하지는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보다 더 불행한 일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모세는 마땅히 사람을 의식하기 전에 하나님을 의식했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좌우를 살피면서 사람을 의식했습니다. 우리는 모세가 범한 우를 그대로 범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중을 헤아리기 전에 사람의 얼굴빛을 살피는데 약삭빠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기 전에 사람을 더 많이 생각합니다.
그러다가는 할 일도 못하고 할 말도 못하고 주저앉고 맙니다. 우리는 두리번거리면서 사람을 살피기 전에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런데도 두리번거리면서 전후좌우를 살피는 약삭빠른 인간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말하는 것이 진리일 때 우리는 두리번거릴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가고 있는 길이 정의일 때 사람을 의식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좌우를 살필 필요는 더더욱 없습니다.
하나님만을 의식하면서 사는 삶, 그것은 진정 후회 없는 삶일 것입니다. 세상을 바라보기 전에 먼저 골고다를 바라봅시다. 먼저 십자가를 쳐다보면서 하나님을 생각합시다.
세상 사람의 눈치를 살피기 전에 하나님의 보좌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먼저 우리 구주 예수님의 뜻을 헤아려야 합니다.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 원합니다” 아멘.
12. 레위인의 직무
12. 레위인의 직무
(민 1:47-54)
레위인을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 중에 특별한 백성들이었다.
그들이 특별한 백성으로 구별된 것은 이유가 없지 않다.
우리가 아는 대로 레위는 레아가 낳은 야곱의 셋째 아들이다.
그는 레위지파의 조상이 되었는데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성소의 관리 맡았다.
아론과 그 아들들은 제사장으로 성별되었으며, 그 직무는 세습적이었다.
레위인은 대제사장, 제사장 레위인으로 나누어졌다. 모든 제사장은 레위인이었다.
그러나 모든 레위인이 제사장은 아니다.
레위인은 성소의 관리를 맡았다.
성막의 관리는 영광스런 직이었기 때문에 장자가 봉사하게 되었다. 장자는 하나님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레위 지파가 장자 대신 성전 봉사자로 선정되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이 금송아지를 부어 만들어 하나님께 범죄했을 때 레위인들 만이 돌아와 하나님께 충성했기 때문이다(출32:26).
여러분, 특별한 봉사에는 특별한 영광과 축복이 따른다.
그래서 특별한 백성이 된 것이다. 그들의 특색을 살펴보자!
~1. 그들은 특별한 백성으로 분리되었다(구분되었다).
~1. 그들은 특별한 백성으로 분리되었다(구분되었다).
① 그들은 다른 사람과 같이 계수되지 아니했다(47).
하나님은 평범하게 믿는 자와 온전히 주께 맡기는 자를 구분하신다.
② 그들은 하나님께 택함을 받았다(민3:12).
하나님은 레위인을 택하여, 이스라엘 중 모든 첫태에서 난 자를 대신케 하셨 다. 12제자는 예수님의 택함 받았다. 맛디아는 유다를 대신하여 사도가 되었다. 야곱은 에서 대신이 되었고, 실라는 마가 대신 쓰임 받았다.
③ 그들은 아론에게 주어졌다(3:9).
④ 그들은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다(3:12).
“레위인은 내 것이다” 이것이 특별한 점이다.
모든 것은 주인이 누구냐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진다.
~2. 그들이 해야 할 일(업무)는 무엇인가?
~2. 그들이 해야 할 일(업무)는 무엇인가?
① 그들은 관리하는 자였다.
“그들을 증거막과 그 모든 기구와 그 모든 부속품을 관리하게 하라”(50).
하나님의 택함 받은 일꾼들은 하나님께 예배와 봉사에 있어서 특별한 관심과 열의가 있어야 한다.
② “그들은 그 장막과 그 모든 기구를 운반하며 거기서 봉사하며 장막 사면에 진을 칠지며”(50).
그들이 운반해야 했던 것은 “하나님의 짐”이었다. 그 짐은 무겁고 힘든 것이다.
예수그리스도를 따른다고 하여 모두가 그리스도의 짐 지는 것은 아니다.
자기만 가는 자도 있다. 오히려 짐 지우는 자도 있다.
그러나 짐을 져야 한다!
③ 그들은 섬기는 자들이었다.
“거기서 봉사하며 장막 사면에 진을 칠지며”(50).
그들은 장막의 일군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꾼이었다.
혹 마지 못해하는 자도 있었으리라!
그들은 이스라엘의 축복과 저주의 매개체였다.
④ 그들은 장막을 걷기도 하고 세우기도 해야 했다(51).
아무 때나 걷지 못한다. 구름기둥 불기둥의 움직임에 따라야 했다.
또 거둘 줄만 알고 세울 줄 몰라서는 안 되었다.
⑤ 그들은 진노의 방지도 해야 했다(53상)
“레위인은 증거막 사면에 진을 쳐서 이스라엘 자손의 회중에게 진노가 임하 지 않게”
⑥ 그들은 이스라엘에 대한 책임이 있었다(53).
그들은 하나님의 보물을 지키는 파수꾼이었다. 깨어 있어야 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제사 기구를 그들의 손에 맡겼다.
예배 인도를 맡긴 것이다. 우리의 책임은 정말 크다
13.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13.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행19:21-22)
바울의 3차 전도여행은 에베소가 그 종점이었다.
바울의 3차 전도여행은 에베소가 그 종점이었다.
그는 그 곳에서 2년 3개월을 선교하면서 교회들을 굳건히 했다.
바울의 에베소 전도는 성공적이었고, 이제 그 곳을 떠나야 할 때가 되었다.
사도바울은 오래 전부터 꿈에 그리던 선교지를 가슴에 품고 있었다.
(롬1:10) “어떠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
(롬1:15)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롬1:13)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했으나 “길이 막혔도다”
(롬15:22) “내가 너희에게 가려 하던 것이 여러 번 막혔더니”
바울의 가슴 속에는 포기할 수 없는 꿈이 있었다. 그것은 로마행이었다.
그 꿈을 본문은 이렇게 표현한다.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21)
당시 로마는 세계의 수도였다. 따라서 로마행은 많은 사람의 꿈이었다.
정치가는 권력을 잡기위해, 군인들은 천하를 호령하기위해, 상인들은 돈을 벌기위해,
노예들은 자유를 얻기 위해, 많은 사람들은 입신양명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바울은 선교의 비전 때문이었다.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
위대한 선교사 바울은 복음전파의 종점을 로마로 잡고 있었다.
드디어 이 위대한 선교사 바울의 꿈을 예수님은 허락하셨다.
“그날 밤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한 것같이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행23:11)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는 꿈꾸는 자가 되어야 한다.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는 꿈꾸는 자가 되어야 한다.
성경은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한다”고 하였다(잠29:18).
요엘선지는 “늙은이는 꿈을 꾸며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라” 하였다(욜2:28).
바울은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라”(롬12:12)
“소망으로 사는 사람은 노래가 없어도 춤을 춘다”
그러나 그 꿈이 이루어지기까지는 수난의 연속이다.
사도바울이 로마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정말 눈물겹다.
사도행전은 이 꿈을 이루기 위한 사도바울의 고난의 과정을 말해준다.
그가 로마에 이르기까지의 발자국을 더듬어 보자.
14. 모세의 기도
14. 모세의 기도
(출32:30-35)
모세는 이스라엘의 인도자요, 율법을 받아서 전한자이다.
모세는 이스라엘의 인도자요, 율법을 받아서 전한자이다.
부모는 아람과 요게벳이고, 120년간 살았다.
최초의 선지자요 최대의 선지자이다.
모세오경의 저술자이다.
그는 이스라엘의 인도자로 부름받았을 때 거절했다.
① 나는 능력이 없다(출3:11).
② 나는 전할 말이 없다(출3:13).
③ 나는 권위가 없다(출4:1).
④ 나는 웅변가가 아니다(출4:10).
⑤ 나는 가고 싶은 의향이 없다(출4:13).
하나님은 두 가지 이적을 보이셨다.
① 지팡이가 일시적으로 뱀이 되었다(출4:2-7).
② 모세의 오른손이 문둥병에 걸렸다.
이스라엘은 출애굽 후 호렙산에 이르러 모세는 하나님께로부터 계명을 받는 중이었다. 백성들은 모세가 더디므로 금 송아지상을 만들어 섬겼다(출32:1).
모세는 대노했다. 불살과 물에 뿌렸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계명을 “속히 떠났다”(32:8).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계명을 “속히 떠났다”(32:8).
이스라엘은 곧잘 하나님을 원망하고 모세를 대항했다.
그들은 돌맹이로 죽이려 했다(출17:4).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멸하려했다. 모세는 이런 백성을 위해,위하여 기도했다.
그의 기도의 내용은 무엇인가?
① 그들도 하나님의 백성임으로 구속을 위하여(11).
② 하나님의 영광과 관계되므로 성호를 위하여(12).
③ 하나님의 약속 이행을 위하여(13).
본문의 기도를 보면 다음과 같은 특색이 있다.
① 죄를 탁식하고 있다(31).
“슬프도소이다”
“너희가 이를 듣지 아니하면 나의 심령이 너희 교만을 인하여 은근히 곡할것이며 여호와의 양무리가 살로 잡힘을 인하여 그들의 목전에서 슬피 탄식하리라”(렘 13:17).
② 자기 생명과 맞바꾸는 결사적 기도이다(32).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버려 주옵소서”
그들의 영혼에 대한 책임감이 크다.
15. 바나바와 사울
15. 바나바와 사울
(행11:19-26)
본문은 안디옥 교회가 어떻게 설립되었는가 그 배경을 설명해 준다.
본문은 안디옥 교회가 어떻게 설립되었는가 그 배경을 설명해 준다.
①안디옥 교회는 무명성도들에 의해 설립된 교회이다(11:20).
②안디옥 교회는 이방에 설립된 최초의 교회이다.
③안디옥 교회는 은혜가 풍성한 교회이다(11:23).
④안디옥 교회는 환난당한 교회를 돕는 교회이다(11:29.30).
⑤안디옥 교회는 유능한 일꾼들이 모인 교회이다(13:1).
⑥안디옥 교회는 선교사를 파송한 최초의 교회이다(13:23).
이 같은 안디옥 교회의 설립은 초대교회에 있어서 중요한 사건이다.
왜냐하면 안디옥 교회는 이방에 세워진 최초의 교회인 때문이다.
안디옥 교회의 주요 멤버는 바나바와 사울이다.
안디옥 교회의 주요 멤버는 바나바와 사울이다.
1. 바나바는 훌륭한 인격의 소유자이다.
(행4:36, 4:37, 13:1, 11:23, 1:24).
2. 바나바는 세계선교의 터전을 구축한 자이다.
(행11:22-24).
3. 바나바는 인재등용에 비범한 안목을 가진 자이다(행11:25,26).
4. 바나바는 사울과 함께 일하도록 부름 받았다(26).
사울은 교회 역사상 최초의 부교역자라 할 수 있다.
그는 다메섹에서 회개한 후, 복음을 전하다가 광주리를 타고 도망쳐 나왔다(9:25).
그는 아라비아로 갔다. 거기서 다메섹으로 왔다가 예루살렘으로 상경했다.
예루살렘에서 그는 불신을 당했다(9:26). 그러나 바나바는 사울이 담이 되었다(9:27).
그는 유대인들의 박해를 피해 고향 다소에 가 있었다(9:30).
세월은 흘러 9년이나 되었으나 바나바는 그를 찾아 데리고 와서 동역한 것이다.
바나바는 사울이라는 거친 옥돌을 갈고 닦아 보석으로 만든 것이다.
사도바울은 어떤 사람인가?
유대인이 낳은 인물 중에 사도 바울 만큼 위대한 자는 없다.
그는 유명한 대학도시 갈리기아 다소 출생이다.
기독교 역사에 있어서 그를 능가할 자는 아무도 없다.
그가 남긴 발자국은 너무나 크고 뚜렷하다.
그는 가문이 남다르다. 그는 사울 왕의 후예인 베냐민 지파 출신이다.
그는 최고의 학문을 터득했다. 가말리엘 문화생이다.
그는 히브리인종의 히브리인이요 바리새인이었다.
그는 무서운 배교자였으나 회개가 남달랐다.
그는 생전에 예수님을 못 만났으나 열세 번째 사도 된 자이다.
그는 충성, 그의 사랑, 그의 희생, 그의 열정은 따를 자가 없다.
그는 여기저기 수없는 개척교회를 세웠으나 위임식 한번 못했고,
따뜻한 가정도 처자도 없이 살았으나 집 한 칸 남기지 못했다.
그러나 그가 남긴 성경은 교회의 기초요, 우리의 보배로운 신앙생활의 규범이다.
분쟁 많은 고린도교회를 위하여 사랑의 찬가를 들려주었고, 젊은 목사 디모데에게는 목회서신을 주어 목회에 성공하게 하였고, 그는 또 친구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를 용서하고 화해하여 영접하라고 부탁했다.
그는 복음 때문에 로마옥중에 갇혔다가 박해자 네로에게 참수형을 당했으나 잘린 목에서 “예수! 예수!”를 부르며 순교했다고 전한다. 네로는 직접 그의 순교현장을 지켜보았다 한다. 전설은 그의 목이 떨어진 곳에서 세 줄기의 샘이 솟았다고 하는데, 그 곳에 지금 “세 우물 사원”이 서있고, 그의 시체를 장사한 곳에 순교기념교회가 서 있다.
위대한 전도자 사도바울의 사명은 남달랐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20:24).
그는 이 사명을 위하여 최선을 다했다고 증거한다.
그는 초인적인 충성과 희생의 간증을 듣노라면 머리가 숙여진다(고후6:4-7).
바울 같은 일꾼이 되어야 한다.
바울 같은 일꾼이 되어야 한다.
1. 사명감으로 가슴이 뜨거워야 한다(행20:24)(고후6:4-7, 8-10).
2. 모든 일에 순종해야 한다.
3. 진리에 어긋나지 않는 한 담임목사 편에서 일해야 한다.
4. 전문분야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5. 새로운 아이디어를 항상 개발하여 제공해야 한다.
6. 인기 전술을 쓰지 말라.
7. 하나님의 뜻이라는 확신이 서면 물러서지 말고 설득하라.
8. 성실하라. 예수의 심정으로 일하라.
9. 자리를 지키기가 힘들때면 조용히 물러서라.
10. 사람은 떠나도 발자국은 남는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16. 바벨탑의 교훈
16. 바벨탑의 교훈
(창11:1-9)
죄악이 관영한 세상을 하나님은 홍수로 심판했다.
제2조상 노아를 통하여 인간은 세상 점점 번성해 갔다.
홍수 심판 100여년 후 인간들은 시날 평지에 바벨탑을 쌓았다.
바벨탑 기사를 쓴 목적은 무엇일까?
① 세계 각국의 서로 다른 방언의 원인을 밝히려고
② 인간의 교만과 그 결과를 설명하려고
③ 인간의 야심과 불신앙에 대한 가차 없는 심판을 보여주신다.
④ 하나님을 제외한 인간의 어떤 시사도 성공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인간의 원시문명인 바벨탑처럼 모든 문명도 몰락하고 말 것이다.
“현대문명도 몰락과정에 직면해 있다”(스펭글러)
바벨탑이 비극으로 끝맺게 된 원인은 무엇인가?
1. 인간의 교만이 하나님께 도전했기 때문이다.
1. 인간의 교만이 하나님께 도전했기 때문이다.
“자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저 하늘까지 닿게 하여”(4)
“내가 하늘에 올라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사14:13).
사탄의 교만과 자만심이 발동한 것이다.
2. 하나님 보다 더 유명해지기를 원했다.
2. 하나님 보다 더 유명해지기를 원했다.
“우리의 이름을 드러내고”(4)
무신론적 인본주의와 허망한 인간의 명예욕이 그 동기이다.
3. 하나님을 거부하고 인간 스스로 살아보려고 시도했기 때문이다.
3. 하나님을 거부하고 인간 스스로 살아보려고 시도했기 때문이다.
“저들의 지면에서 흩어짐을 면하자”
그 결과는 심판과 멸망밖에 없다.
교만한 마음을 버리고 겸손히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한다.
불신앙을 버리고 믿음으로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한다.
허영심과 인간의 허무한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한다.
17. 바울의 소원
17. 바울의 소원
(행23:11)
바울의 마지막 소원은 로마행이었다(롬1:10, 13, 15)
바울의 마지막 소원은 로마행이었다(롬1:10, 13, 15)
그는 여러 번 시도했으나 길이 막혔었다(롬1:22).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길 허락하셨다(행23:11).
하나님은 환상 중에 그에게 말씀하셨다.
그는 환상의 사람이다.
그는 다메섹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9:4).
환상 중에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16:9).
고린도 성중에 택한 백성이 많다는 위로의 말을 들었다.(8:9).
비몽사몽간에 예루살렘을 떠나라고 했다. (22:17)
“나의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서야 하겠고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하리라”(27:23,24).
하나님은 환상의 사람 바울에게 그이 환상 중에 소원을 허락했다(행23:11).
그러나 로마로 가는 길은 평탄한 대로가 아니었다.
그러나 로마로 가는 길은 평탄한 대로가 아니었다.
1. 부름 받자마자 장애물이 나타났다(23:12-13).
2. 그는 죄수로 묶여 가야 했다.
24장에는 총독 벨릭스에게 고소당했고
25장에는 총독 베스도에게 심문 당했으며
26장에는 아그립바왕에게 심문 받았고
27장에는 총독 베스도에게 구류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보호의 방편이었다(롬8:28).
3. 그는 백부장에게 멸시 천대 받았다(27:11).
4. 그는 멜리데셈에서 독사에게 물렸다(28:3).
그러나 그는 기어코 이 모든 장애를 물리치고 로마에 갔다.
그리고 그는 거기서 순교 당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4:6,7)
18. 바울이 걸어온 길
18. 바울이 걸어온 길
(딤후 4:6-8)
하나님은 갈대아 우르에서 아브라함을 불러내셨다.
이 일은 인류역사에 있어서 중대한 전환점이 된다.
왜냐하면 이때로부터 불가사의한 한 민족이 태동되었기 때문이다.
유대인, 히브리민족, 또한 이스라엘로 불리는 이 민족은 신비한 민족이다.
어떤 왕이 “하나님은 계시는가”라고 물었다.(예, 하나님은 계십니다).
“하나님이 계신 증거가 무엇인가?”(저 유대인입니다).
유대인이란 애곱과 레아의 소생 유다로부터 유래된 말이다. 유다는 야곱과 레아사이 소생 6명중 넷째 아들이다. 야곱의 열두 아들은 이스라엘의 12지파가 되었고, 여기서 유다지파, 유다왕국이 유래되었다.
유대인이 이 세상에 끼친 공헌은 세 가지이다.
① 그들은 하나님을 증거하는 민족이다.
② 그들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전해주었다.
③ 그들은 이 세상에 메시야의 통로가 되었다.
(할레이) “히브리 민족이 없으면 메시야가 없고, 메시야가 없으면 세계도 없다”
그런데도 그들은 예수님을 영접치 않았다. 그 결과 무서운 고난을 당했다.
역사상 이스라엘이 당한 고난은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애굽에서 430년의 노예생활 이다(이는 언약의 땅을 버린 죄값이다)
“이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주신 그 땅을 버리고 애굽에 가서 주저앉고 말았다.
둘째, 남북왕국의 멸망이다(이는 우상 숭배에 대한 죄값이다)
“너는 나 외에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우상을 만들지 말고,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셋째, 1900년 동안 모진박해를 받았다(이는 메시야를 거절한 죄값이다)
“그가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유대인은 예수를 거절하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마27:11-16).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 너 같은 자가 유대인의 왕이란 말이냐 조롱했다.
그들은 유월절 특사때 바라바를 석방하고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하라고 했다.
(빌라도)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24).
(백성들) “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25).
아랍인들은 이 말을 대면서 이스라엘의 유엔 승인을 반대했다.
과연, 그들의 말대로 역사상 무서운 죄값을 지금까지도 치르고 있다.
주후 70년 9월 8일 예루살렘성이 함락될 때 유대인 100만이 살해되었다.
프랑스 필립 5세는 수많은 유대인들을 감옥에 가두고 방화했다.
러시아에서는 유대인 유모의 젖으로 개를 길렀다.
1939-1945 제2차 대전 중 안주할 곳이 없었고, 나치에게 600만이 학살당했다.
이스라엘은 예루살렘과 텔아비브 고속도로에 600만 가로수를 심었다.
야드바셈 박물관(홀로코스트)에는 사람의 기름으로 만든 비누를 전시하고 있다.
또 지하에는 학살당한 150만 어린이를 추모하기 위한 별관이 있는데, 거기에는 그 어린이들의 이름을 밤낮없이 계속 부르고 있다. 역사가 계속되는 동안 밤낮없이 그 이름들은 불리워질 것이다.
그들은 1900년 동안 예수 죽인 죄값을 이렇게 엄청나게 치러야 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은 망하지 않고, 1948. 5. 14일 독립을 선포했다.
이날 이스라엘의 영웅 벤구리온은 이렇게 외쳤다.
“이스라엘 땅에서 유대 백성은 다시 태어났다”
이것은 두가지 기적이 일어난 것을 의미한다.
첫째, 흩어진 유대인의 독립이다
(미국은 당일에 승인했다. 러시아는 4일후인 5·18에 승인했고, UN은 1949. 5. 11일에 회원국으로 승인했다).
둘째, 사어가 되어버린 히브리어가 산글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또 네 번의 전쟁을 치르면서도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① 독립전쟁(48. 5. 15 - 49. 2. 24 : 9개월 9일)
② 시나이전쟁(56. 10. 29 - 56. 11. 5 : 8일)
③ 6일 전쟁(67. 6. 5 - 67. 6. 10 : 6일)
④ 속죄일 전쟁(67. 10. 6 - 67. 10. 25 : 20일)
이스라엘은 이 모든 전쟁에서도 기적적으로 승리했다. 영토를 3배씩이나 확장시켰다. 그들은 중과부족이었으면서도 연전연승했다. 이는 기적중의 기적이다.
이스라엘이 승리한 비결은 무엇인가?
① 애국심 때문이다.
그들은 전쟁 중 후퇴가 없다. 후퇴할 땅이 없기 때문이다.
모세, 다니엘, 에스더의 애국심을 보라
② 일치단결하여 싸운 싸움 때문이다.
③ 선민의식 곧 신앙 때문이다
“너는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신7:6).
인구비례로 본다면 이스라엘은 소수에 불과하다. 우리의 4/1 정도이다.
그들은 숱한 박해와 고난 가운데서도 망하지 않고 끈질기게 생존해 오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세계무대의 주인공이나 다름없다.
세계역사는 유대인이 좌우하고 있다.
“유대 민족의 움직임은 곧 시계의 바늘과 같다”
그들은 소수이면서도 온 세계의 주목의 대상이 되고 있다.
첫째, 하나님을 증거하는 민족으로 세움받았기 때문이다.
둘째, 그들의 신앙과 교육 때문이다.
셋째, 선민의식과 소망 때문이다.
유대인은 실로 놀랍다.
그들은 지구상 세계전체 인구의 500/1에 불과하다.
그들은 소수인데도 힘이 있다. 국제적으로 유대인의 파워는 엄청나다.
미국은 중동문제에 있어서 언제나 이스라엘편이다.
그 이유는 미국 내에 있는 유대인들의 파워 때문이다.
그들은 미국인구의 3%인 600만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아이비리고 대학교수의 30%가 유대인이다.
미국 백만장자의 20%가 유대인이다.
상원의원 중 10%가 유대인이다.
100대 기업 소유주의 40%가 유대인이다.
역대 노벨 수상자의 30%가 유대인이다(430명중 93명이나 된다).
세계 헤지 펀드의 50%가 유대인의 손에서 나온다.
유대인은 실로 유명인사의 보고이다.
아인슈타인, 프로이스, 칼 마르크스, 하이네, 쇼팡, 베르그송, 스피노자, 채플린, 테일러, 콜럼부수, 록펠러, 허스트, 풀리쳐, 키신저, 슐츠, 와인버거, 대통령 중에도, 루즈벨트, 아이젠하워, 트루만, 부쉬등이 유대인이다.
유대인이 낳은 인물 중에 사도 바울 만큼 위대한 자는 없다.
갈리기아 다소에서 출생한 그는 기독교 역사에 있어서 그를 능가할 자가 없다.
그가 남긴 발자국은 너무나 크고 뚜렷하다.
그의 본명은 사울이다.
그는 가문이 남다르다. 그는 사울왕의 후예인 베냐민지파 출신이다.
그는 최고의 학문을 터득했다. 가말리엘 문하생이다(알렉산드리아, 아덴, 다소).
그는 히브리인종의 히브리인이요 바리새인이었다.
그는 한때 무서운 배교자였으나 회개가 남달랐다.
그는 생시에 예수님을 못 만났으나 열 세 번째 사도 된 자이다.
그의 충성, 그의 사랑, 그의 희생, 그의 열정은 따를 자가 없다.
그는 여기저기 수 없는 개척교회 세웠으나, 위임식 한 번 못했고,
따뜻한 가정도 처자도 없이 살았으나, 집 한칸 남기지 못했다.
그러나 그가 남긴 성경은 교회의 기초요 우리의 보배이다.
분쟁 많은 고린도 교회를 위하여 사랑의 찬가를 들려주었고,
젊은 목사 디모데에게는 목회서신을 주어 목회에 성공하게 하였고,
그는 또 친구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를 영접하라고 부탁했다.
그는 복음 때문에 로마 옥중에 갇혔다가 박해자 네로에게 참수형을 당했으나 “예수 예수”를 부르며 후회 없는 생을 마쳤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웠도다”(6).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7).
그는 자신이 걸어 온 길을 회고하고 있다. “인생은 곧 길이다”
그가 걸어온 길은 어떤 길인가? 그 길은 곧 우리가 가야할 길이다.
~1. 그는 다메섹의 길을 걸었다.
~1. 그는 다메섹의 길을 걸었다.
박해의 길, 죄악의 길, 사탄의 길이다. 그리스도 예수 십자가의 원수의 길이다.
그러나 회개했다. 그리스도 예수를 그 자리에서 만났다. 그는 거기서 되돌아섰다.
사울은 죄의 길에서 독아섰다. 어거스틴도 그 길에서 돌아섰다.
~2. 얼마 후 그는 아라비아로 갔다(갈 1:16-17).
~2. 얼마 후 그는 아라비아로 갔다(갈 1:16-17).
지난날을 회고하고, 정리하고, 하나님과 교제하기 위해서이다.
광야에서 먹지도 못했다.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밖에 나의 사모할 자 없나이다” 거기서 그는 기도했다. 거기서 그는 준비했다. 거기서 전망했다. 설계했다. 아라비아 3년은 그의 삶의 설계였다.
~3. 그는 이방의 길로 갔다(갈1:16-17).
~3. 그는 이방의 길로 갔다(갈1:16-17).
전도의 길이요, 사명자의 길이요, 제자의 길이다.
그는 소아시아를 누비며 생명을 걸었다.
~4. 그는 예루살렘의 길도마다 아니했다(행21:12, 13, 21:33).
~4. 그는 예루살렘의 길도마다 아니했다(행21:12, 13, 21:33).
박해의 길이다. 십자가의 길이다. 고난의 길이다.
“산에 여우 굴이 있고 나는 새도 깃들일 곳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보라 나는 이제 심령의 매임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만날른지 알지 못하노라”(행20:22).
“이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서기관들과 제사장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마16:21).
~5. 그가 마지막으로 간 곳은 세계의 수도 로마였다.
~5. 그가 마지막으로 간 곳은 세계의 수도 로마였다.
“그날 밤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 (행23:11).
① 장애물이 나타났다. 그 장애물을 결사대 40명이었다(행23:12,13).
② 그 길은 죄수로 묶이어 가는 길이었다(행24:27, 27:1).
③ 그 길은 멸시 천대받는 길이었다(행27:11).
④ 그 길은 독사가 무는 길이었다(행28:3)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4:7.8). 우리가 우리의 여생을 정리할 때 이 말을 할 수 있어야 한다.
19. 배우라 그리고 가르치라
19. 배우라 그리고 가르치라
(마11:25-30, 28:19-20)
오늘 본문은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고 합니다(29).
마태복음에는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말합니다(마28:20). 오늘 우리 주제는 이 두 말씀에서 받았습니다.
“배우라 그리고 가르치라”
이 말씀이 모든 부모님들과 교사들에게 힘이 되고 은혜되기를 바랍니다.
(1) 먼저 배우라고 하였습니다.
(1) 먼저 배우라고 하였습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우리는 배우는 사람을 흔히 학생이라 합니다. 예수님께서 “내게 배우라”고 하신 말씀은 너희는 먼저 학생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학생이라고 말할 때 초, 중, 고, 대학생까지를 말합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인간의 일생이 학생에 다름없습니다. 이를테면 이 세상은 학교요 인간은 그 학교의 학생입니다.
이 학교에는 태어나면서 입학하여 죽을 때 졸업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인생은 죽을 때까지 배우고 또 배워야 합니다. 교육이란 학교에서 공부하는 학교교육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계속하여 공부하고 배워야합니다.
그래서 지금에 와서 평생 교육에 대하여 관심이 높습니다.
배우는 길은 학교교육이 전부는 아닙니다. 학교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 중에도 성공한 사람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아브라함 링컨 같은 사람은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했습니다. 겨우 몇 달의 공부가 정규교육의 전부입니다. 그러나 그는 성공했습니다. 발명왕 에디슨은 “구제불능의 바보”라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원자탄의 원리를 발명한 아인슈타인의 중학교 시절 수학성적은 낙제점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세상에서 유명해진 것은 꾸준하게 공부하고 연구하고 노력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배우는 목적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나 자신이 배워 알기 위함입니다.
모르면 아무것도 못합니다. 면장도 알아야 합니다. “댓 구명으로 하늘을 본다”는 格言이 있습니다. 좁은 댓구멍으로 하늘을 보고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보지 못한 다른 부분도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둘째는, 아는 지식으로 다른 사람을 가르치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배웠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을 가르쳐야 합니다.
학생으로만 끝나서는 안 됩니다. 교사도 될 줄 알아야 합니다.
(2) 배웠으면 가르쳐야 합니다.
(2) 배웠으면 가르쳐야 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레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28:19,20).
이 말씀은 에수님께서 구속사업을 다 마치시고, 십자가에 죽으신 후 사흘 만에 부활하셨다가 40일후 승천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주신 말씀입니다.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예수를 먼저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제네바에서 처음으로 장로교회를 세운 죤 칼빈은 26세의 나이에 불휴의 명작 기독교 강요라는 책을 저술하였습니다. 이 책 첫 장, 첫 면, 첫 문장에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옵니다. “사람이 마땅히 배워야 할 자식이 많이 있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두 가지이다.
첫째는 하나님에 지식이요, 둘째는 인간에 대한 지식이라”
왜 예수를 먼저 배워야 합니까? 그것은 먼저 하나님을 알고 다음에 사람을 바로 알기 위해서입니다. 그리스도는 참 하나님이요, 참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면 자기 자신을 모릅니다.
지식의 종류는 많습니다. 그러나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께 대한 지식이요.
둘째는 인간에 대한 지식이요.
셋째는 자연에 대한 지식입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공부하는 것을 신학이라 하고, 사람에 대하여 공부하는 것을 인문과학이라 하고, 자연에 대한 학문을 자연과학이라 합니다. 이 세 가지는 다 필요합니다. 다 배워야 합니다. 그런데 흔히 세상 사람들은 자연과학을 제일 소중하게 생각하고, 그 다음에는 인문과학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맨 마지막에 신학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 정반대입니다. 자연과학을 바로 쓰는 것은 사람이니 인문과학이 더 중요하고 바른 사람을 만드는 것은 하나님이니 신학이 제일 중요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을 모르면 인문과학도 자연과학도 바로 쓸 수가 없습니다.
기독교의 삼대사명은 전도와 교육과 봉사입니다. 기독교의 전도는 교육을 전제로 합니다. 고로 기독교는 교육을 중요시 합니다. 칼빈은 제네바에서 성경교리를 요약하여 교리문답을 만들어 온 교인들에게 가르쳤습니다. 칼빈은 성경만 가르친 것이 아니고 곳곳에 학교를 세워 국민 교육에 힘썼습니다.
그는 또 대학을 설립하여 세계에서 모여든 학생들을 잘 교육하였기 때문에 제네바 대학은 신교부흥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좋은 교사입니까?
첫째, 구원받은 자여야 합니다.
둘째, 교사는 학생들에게 모범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한 번 더 예수님의 말씀을 명심합시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열심히 배웁시다. 그리고 충성스럽게 가르칩시다.
주님께서 이 일을 잘 감당하는 교사님과 부모님들에게 위로와 축복이 넘치기를 기원합니다. 아멘.
20. 아브라함의 기도
20. 아브라함의 기도
(창18:22-33)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는 갈대아 우르에서 떠났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는 갈대아 우르에서 떠났다.
우르 - 하란 - 세겜 - 벧엘 - 헤브론으로 옮겨 다녔다.
그러나 그는 가든 데마다 제단을 쌓았다.
어느 더운 날 정오 그는 장막 앞에 서 있었다.
손님 세분을 영접했다. 떡 만들고 짐승 잡고 잘 대접했다.
그는 부지중에 천사를 영접했다.
① 네 아내가 아들을 낳으리라(10).
② 소돔성 멸망의 정보를 주었다(17, 20-21).
아브라함의 기도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거기 롯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기도는 다음과 같은 특색이 있다.
그의 기도는 다음과 같은 특색이 있다.
(1) 공의에 기초한 기도이다(23, 15).
(2) 겸손한 기도이다(27, 31, 32).
(3) 끈길진 기도이다(6번이다)
(50인 → 45인 → 40인 → 30인 → 20인 → 10인).
(4) 아브라함이 이런 기도를 하는 것은 소돔성에 사는 그의 조카 롯 때문이다.
그의 영혼 때문이다. 그의 멸망 때문이다.
그의 영혼 때문이다. 그의 멸망 때문이다.
① 그는 죄악중에 있다(죄).
② 그 성은 곧 멸망한다고 했다(멸망)
③ 어쨌건 그는 혈육이다. 그를 책임질자는 자기밖에 없다(책임)
④ 나는 이같은 중보의 기도를 드린적이 있는가?
21. 여호수아의 기도
21. 여호수아의 기도
(수7:2-16)
여호수아는 모세의 후계자이다.
그는 에브라임 지파의 대표자로 모세와 함께 광야에서 40년간 동고동락했다. 그는 아말렉과 전쟁할 때 큰 공을 세웠다.
그는 용감한 사람으로 12정탐군 중 갈렙과 함께 믿음으로 보고했고 가나안을 정복한 자이다.
그의 가나안 정복에 두 가지 난관이 있었다.
① 요단강을 건너는 것 - 법궤 앞세우고 도강했다.
② 여리고성을 점령하는 것 - 6일간은 한 번씩 돌고 7일에는
일곱 번 돌면서 소리칠 때 성은 무너졌다.
아이성 정복은 힘든 일이 아니다.
그런데 실패했다. 전사자 36명, 온 이스라엘이 도망쳤다(5).
여호수의 기도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1) 그의 기도하는 모습부터 살펴보자(6).
(1) 그의 기도하는 모습부터 살펴보자(6).
① 그는 옷을 찢었다 - 신을 모독할 때 랍비는 옷 찍었다.
② 여호와의 궤 앞에 엎드렸다(6).
③ 티끌을 무릅쓰고 저물도록 기도했다(진지한 기도이다).
④ 땅에 엎드렸다.
(2) 여호수아는 어떻게 기도했는가?
(2) 여호수아는 어떻게 기도했는가?
그는 하나님께 물었다. 기도는 구하는 것보다 묻는 것이 앞서야 한다.
① “왜 이스라엘을 아모리 족속에게 붙였는가?”(7).
하나님은 죄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내가 그들에게 명한 나의 언약을 어기었나니 곧 그들이 바친 물건을 취하고 도적하고 사기하여 자기 기구 가운데 두었느니라 ”(11).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이 대적을 능히 당치 못하고”(12).
“바친자 멸하지 아니하면 함께 하지 않겠다”(12).
우리는 겸손히 원인을 물어야 한다.
② 그는 또 자신의 할 일을 물었다(8).
“내가 무슨 말을 하오리까?” 그는 수습책을 물었다.
“백성을 성결케 하라”
“ 바친 물건을 제하기 전에는 대적을 당치 못하리라”(13).
어려운 일 당할 때 당황하지 않고 물으면 가르쳐 주신다.
“지파” → 족속 → 가족 → 각 남자→ 가진 자 뽑힌 자(14).
③ 그는 또 “주의 크신 영광을 위하여 어떻게 하시려나이까” 라고 물었다(9).
아간이 제비 뽑혀 아골 골짜기에서 불살랐다!
우리의 죄악을 뽑기 전에는 기도의 응답이 없다!
기도의 장애물은 죄다.
물질의 아간, 명예의 아간, 험담의 아간이 뽑혀야 한다.
“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시66:18).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라”(약4:3).
“오직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사59:;2).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너희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사1:15).
22.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
22.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
(막 10:32-34)
“인생은 곧 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방에서 문을 통하지 아니하고는 나갈 수가 없듯이, 사람이란 길을 밟지 아니하고는 갈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인생에는 여러 가지 길이 있습니다. 밝은 길이 있고 어두운 길이 있습니다. 진리의 길이 있고 죄악의 길이 있습니다. 향상의 길이 있고 타락의 길이 있습니다. 성공의 길이 있고 실패의 길이 있으며, 행복의 길이 있고 불행의 길이 있으며, 삶의 길이 있고 죽음의 길이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삶이란, 부단한 길의 선택이라 할수 있습니다.
성공의 길을 택한 사람은 성공하고, 실패의 길을 택한 사람은 실패합니다. 생명의 길을 택한 사람은 영생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영원한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이것이 인생입니다. 그리고 인간은 누구나 자기의 길을 걸어가기 마련입니다. 산다는 것은 자기의 길을 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남이 나의 죽음을 대신할 수 없는 것처럼 남이 나의 길을 대신 걸어줄 수 없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자기의 길을 가다가 죽습니다.
오늘 우리 본문 말씀을 보면 예수께서도 자기의 길을 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 길 가는 것을 말렸습니다(마 16:22).
그런데도 예수님은 그 길을 가셨습니다. 성경은 그 길을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이라 했습니다(32, 눅 18:31).
주님이 선택하신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은 어떤 길인지 살펴봅시다.
(1)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길입니다.
(1)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길입니다.
예수님은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들으신 후에 그를 축복해 주었습니다.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고 했습니다(마 16:17). 또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고 했습니다(마 16:19).
큰 믿음에는 큰 축복이 따릅니다. 큰 믿음으로 큰 축복 받으시기 원합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들으신 후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했습니다(마 16:21).
이 말을 들은 베드로는 깜짝 놀라, 예수님을 붙들고 간하기를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시기를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도다”라고 책망했습니다(마 16:23).
여러분, 예수님이 가시는 앞길에는 두 가지 길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길이요. 다른 하나도 사람의 뜻 곧 사탄의 뜻을 따르는 길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사탄은 그 길을 가지 않기를 원했습니다.
우리의 앞길에도 항상 이 두 길이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이요 다른 하나는 세상이 손짓하며 부르는 죄의 길입니다. 하나님의 원하시는 뜻을 따라 살면 영생과 축복이 있지만, 사탄이 유혹하는 죄의 길을 따르면 파멸과 죽음이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대한 예수님의 자세는 이러합니다.
“내 아버지여 만을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
영국의 청교도 신학자 백스터목사는 언제나 이렇게 말했다합니다.
“무엇이든지 뜻대로 어디든지 뜻대로 어느 때든지 뜻대로” 얼마나 아름다운 표현입니까?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성도들이 되시기 원합니다.
(2)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은 고난의 길입니다.
(2)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은 고난의 길입니다.
오늘 우리 본문 (33-34절)이 그것을 말합니다.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기우매 저희가 죽이기로 결안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주겠고 그들은 능욕하며 침을 뱉으며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이사야 선지는 예수님이 세상에 오시기 700년 전에 벌써 주님의 고난을 상세하게 예언해 놓고 있습니다(사53장).
구세주 예수께서 세상에서 당하신 고난들은 너무나 큽니다. 그는 거절당했습니다. 그는 조롱받았습니다. 그는 끊임없이 위협을 당했습니다. 그는 머리 둘 곳도 없었습니다. 그는 모든 사람들에게 버림을 당했습니다. 그는 일곱 번이나 부당하게 재판을 받았습니다. 그는 거짓증언으로 고발되었습니다.
그는 큰 고난을 당했습니다. 매 맞고, 눈이 가리워졌고, 침 뱉음을 당하고, 채찍질 당하고 두들겨 맞았고 가시면류관을 쓰셨습니다. 그 고난의 절정은 바로 십자가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께서 이 고난의 길을 가신 것은 결국 우리의 죄 때문입니다. 그런즉, 구주 예수님의 은혜를 감사합시다.
뿐만 아니라, 우리도 주와 함께 고난의 길을 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맙시다.
베드로는 말하기를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함이라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위에 계심이라”했습니다(벧전 4:13-14).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3)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은, 비록 고난과 죽음의 길이기는 했으나, 결국은 부활과 영광의 길이었습니다.
(3)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은, 비록 고난과 죽음의 길이기는 했으나, 결국은 부활과 영광의 길이었습니다.
본문에 보면 “그는 삼일 만에 살아나리라”고 분명히 말했습니다(34).
예수님은 그가 비록 십자가에 죽으실 것이지만, 사흘 만에 다시 부활하실 것을 미리 알고 계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은 죽어도 다시 사실분입니다. 그 이유는 그는 생명자체시기 때문입니다(요 14:6).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최대의 고난을 당하셨으나, 그는 부활로서 최상의 승리와 영광을 누리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인처럼 십자가상에서 처형당하셨으나, 사흘 되던 날 아침 무덤 문을 열고 부활하사 승리자가 되신 것입니다.
고난의 십자가는 영광의 십자가가 되었고, 죽음의 십자가는 생명의 십자가가 되었고 저주의 십자가는 자랑스런 십자가가 된 것입니다.
십자가 없이는 면류관도 없다는 말씀은 진리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참여하는 것을 싫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에게 기쁨의 단을 추수하는 축복을 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예루살렘 길을 걷자고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성도여러분, 예수님은 예루살렘 길을 가셨습니다.
그 길은 어떤 길입니까?
그 길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길입니다.
그 길은 고난의 길입니다.
그 길은 십자가의 길 곧 죽음의 길입니다.
그러나 그 길은 다시 사는 부활과 영광의 길입니다.
우리도 이 길 가다가 주님의 영광에 동참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아멘.
23. 오랜제자 나손
23. 오랜제자 나손
(행 21:15-16)
바울은 예루살렘 상경 중 가이사랴에서 나손을 만났다.
“나손”은 부지런한 구도자란 뜻이다. 그는 당시70대의 노인으로 알려졌으나, 여전히 제자였다. 그는 “오랜 제자”였다. 그것은 “첫 제자”란 뜻으로 이해되므로 아마 마가요한의 다락방의 120명중의 하나로 생각된다(행 1:15).
바울은 그를 가이사랴에서 처음 만난듯하다.
여기 “오랜 제자”란 말이 정감이 간다.
그에 관한 기록은 한절 밖에 였으나 받은 교훈은 끝이 없다.
1. 오랜 제자란 말은 오랜 신앙인이란 말이다.
1. 오랜 제자란 말은 오랜 신앙인이란 말이다.
그렇다면 얼마나 많은 험산준령을 넘어야 했을까?
하루의 生活에도 굴곡이 많다. 항차 오랜 제자에게 있어서랴
2. 오랜 제자인 그는 집과 공간을 제공했다.
2. 오랜 제자인 그는 집과 공간을 제공했다.
3. 오랜 제자란 오랫동안 교회를 지켜온 자란 뜻이다.
3. 오랜 제자란 오랫동안 교회를 지켜온 자란 뜻이다.
인심은 쉬 변한다. 신앙도 세상 따라 변하고 풍조 따라 변한다.
정말 그가 120문도 중의 하나인 “오랜 제자”였다면 교회가 본래의 신앙을 지키도록 애썼음에 틀림없다.
4. 그가 오랜 제자였다는 것은 깨끗하게 한 평생을 살았다는 말이다.
4. 그가 오랜 제자였다는 것은 깨끗하게 한 평생을 살았다는 말이다.
이 세상에 깨끗하게 늙지 못한 자 많고 깨끗하게 최후를 마치지 못한 자 수없이 많다.
5. 오랜 제자란 후세대들에게 모범된 자란 뜻이다.
5. 오랜 제자란 후세대들에게 모범된 자란 뜻이다.
그는 제2세대들에게 모범이 된 제1세대였다.
장유유서의 질서는 나이 따라서가 아니라 모범이어야 한다.
6. 오랜 제자란 말은 성숙한 노인이라는 의미이다.
6. 오랜 제자란 말은 성숙한 노인이라는 의미이다.
어떤 이는 오랜 제자가 아니라 오랜 죄인인자도 많다.
어떤 이는 오랜 제자가 아니라 오랜 장애물인 경우도 있다.
그러나 오랜 제자는 존경받는 노인이다.
7. 오랜 제자란 오래 동안 하나님의 은혜와 보호를 받았다는 말이다.
7. 오랜 제자란 오래 동안 하나님의 은혜와 보호를 받았다는 말이다.
임마누엘의 하나님이 험한 항해를 평안히 지켜주셨다.
8. 이 오랜 제자는 귀중한 경험의 보고이다.
8. 이 오랜 제자는 귀중한 경험의 보고이다.
그 지식, 그 경험, 그 경륜 다 후세들에게 전해주시기 바란다.
9. 이 오랜 제자에게서 성숙한 신앙인의 표상을 본다.
9. 이 오랜 제자에게서 성숙한 신앙인의 표상을 본다.
10. 이 오랜 제자에게서 天國에 대한 확실한 소망을 갖게 된다.
10. 이 오랜 제자에게서 天國에 대한 확실한 소망을 갖게 된다.
그는 비록 무덤 가까이에 다가서 있으나, 천국의 한복판에 서 있는 것이다.
남은 생애가 복스럽기를 기원한다.
24. 올라가서 개척하라
24. 올라가서 개척하라
(여호수아 17:14~18)
팔레스틴에 가면 사해가 있다. 깊이 65㎞, 폭이16㎞이다. 바다라기보다는 호수라는 편이 더 옳을 것이다. 이 호수는 소돔과 고모라 성이 불타버린 폐허에 요단 강물이 모여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한다.
북쪽 끝은 매우 깊어서 수심이 300m되고 어떤 곳은 5m이며, 대개는 3m정도라고 한다. 이 호수를 사해라고 부르는 것은 거기에 생물이 살지 않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바닷물이 너무나 짜기 때문에 소금바다라고도 한다. 이 바다에 생물이 살지 못하는 이유가 여러 가지 있겠지만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이 바다에 흘러 들어오는 입구는 있지만 흘러나가는 출구는 없기 때문이다.
지금의 남쪽1/3정도는 옛날에는 평지였고 수위가 아브라함 시대보다 많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이 호수가 죽은 바다가 된 것은 받음은 있으나 줌이 없음으로 그 호수의 상태는 죽은 채로 남아있다. 이 진리는 사실이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인생의 생명이나 자연의 생명현상은 흐름에 있다. 동맥과 정맥을 통하여 끊임없이 흐르고 있는 피의 순환작용이 생명이다. 섭취와 배설의 흐름, 수요와 공급의 흐름, 수입과 수출의 흐름, 화폐의 유통, 입금과 대출, 입학과 졸업, 생산과 판매, 출생과 사망 등등. 흐름을 통하여, 흐름의 과정을 통하여 생명은 현존하는 것인 것 같다.
세포의 세대교번이나 교체도 이 생명의 현상인 것이다.
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옮겨가는 것은 운동이라고 하고, 운동하는 생명현상을 생명운동이라 한다. 경험의 세계에서 미경험의 세계로, 과거에서 미래로 옮겨가는 과정에는 인식과 현재라는 경계선이 있다. 경계를 넘지 않으면 한 상태에 그대로 머물게 되고, 다른 상태는 경험할 수 없게 되고, 그리하여 경험한 상태는 침체하여지고, 미경험 세계는 망각되어진다.
경험의 세계에서 인식의 경계를 넘어 미경험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을 우리는 개척이라는 말로 정의한다. 인식의 경계를 넘는 데는 아픔이 있다. 자연의 상태로 있는 것을, 문화의 상태로 바꾸는 것이 개척이다.
“땅을 다스리라”는 하나님의 창조적 명령의 실현을 기다리는 자연 상태를 “땅을 다스리는” 피땀의 과정을 통하여, 생육하고 번성하기에 알맞은 문화적 환경으로 정리하고, 질서화 하는 것이 개척이다.
개척은 새 창조의 어머니이다. 개척사가 없이 개척된 문화는 없다. 인류의 문화는 피땀으로 점철된 개척사를 통하여 발전하여 왔다. Puritan의 개척정신으로 말미암아 오늘의 저 미국문화의 꽃이 핀 것이다. 역사적으로 존재하는 여러 가지 문화 형태중에서도 가장 뚜렷하고 일관된 줄거리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 이스라엘의 역사이다.
이 이스라엘의 역사는 개척사이다. 그의 사관은 이미 창세기1:28, 2:15~16, 3:15~19, 9:1~7절에 나타나 있는데 한마디로 말해서 “땅을 정복하라”는 것이다. 이 말속에는 한계가 없는 끝없이 정복해가는 무한한 도전을 암시하고 있다. 끝이 없고, 한계가 없고, 경계선이 없는 도전을 내포하고 있다.
이 이스라엘의 역사는 개척사이다. 그의 사관은 이미 창세기1:28, 2:15~16, 3:15~19, 9:1~7절에 나타나 있는데 한마디로 말해서 “땅을 정복하라”는 것이다. 이 말속에는 한계가 없는 끝없이 정복해가는 무한한 도전을 암시하고 있다. 끝이 없고, 한계가 없고, 경계선이 없는 도전을 내포하고 있다.
이 개척 정신은 그대로 이스라엘의 역사의 맥박이요, 삶의 지표였다. 그 실예를 일일이 다 말할 수 없으나, 몇 가지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① 아브라함은 고대 문명의 발상지였던, 유브라데강 유역의 비옥하고 문화적인 갈대아 우르를 떠나 황무지 같은 가나안 땅으로 나아갔고, 그 땅을 개척했다.
아브라함은 비옥한 땅보다 황폐한 땅을 갈고 닦은 개척자였다.
② 이스라엘은 풍요로운 애굽에서 영주하려하지 않고 광야를 정복하고, 가나안 땅을 정복하여, 그 땅을 개척하기 위하여 들어갔다. 모세는 개척자였다. 여호수아도 개척자였다. 족장들도 개척자였다.
③ 이사야 35장에 보면 황무지가 변하여 옥토가 되는 이상을 노래하고 있다.
실제로 오늘날 이스라엘은 이 이상을 실현하고 있다.
“무화과 잎이 푸르거든 여름이 가까운 줄 알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셨다.
황무지가 변하여 옥토가 되었고 사막에 스프링쿨러가 돌아 기름진 땅이 되어가고 있다. 히브리(Hebrew)말로“강을 건너다. 침범해 오다. 경계를 넘다”라는 뜻을 가진 개척자의 의미가 있는 말에서 왔다는 학설도 있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오늘 우리 본문도 이스라엘 개척사의 한 측면을 보여주고 있다.
이미 가나안 땅을 정복하였으나, 정복한 땅이 정착하기에 알맞지 않았고 또 협착하였으며, 삼림으로 덮인 지역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이 정복한 땅은 그대로 옥토가 아니라, 개척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황무지였다.
요셉의 자손들은
요셉의 자손들은
그들이 배당 받은 땅에 대하여 즉 에브라임 산지에 대하여 불만을 품고 여호수아에게 찾아와서 세 가지 난관이 있음을 말하고 항의하였다.
① 에브라임 산지가 큰 민족으로는 협착하였다.
② 산지는 울창한 숲으로 덮여 거주지가 될 수 없었다.
③ 주택지가 될 만한 좋은 곳에는 철병거가 있는 강한 족속이 있어서 차지할 수 없었다.
요셉 자손들의 호소는 절망적이었다.
이 절망적인 호소에 대하여 여호수아는 무어라 대답했는가?
① 삼림에 올라가서 스스로 개척하라.
② 너는 큰 민족이요, 큰 권능이 있다.
③ 가나안 사람이 비록 철 병거를 가졌고, 강할지라도 네가 능히 그들을 쫓아내리라!
여호수아와 에브라임 족속의 이 대화를 통하여 몇 가지 사실이 부각되고 있다.
① 그들에게는 쉽지 않은 난관이 있었다.(난관은 누구에게나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난관 없는 일이나 난관 없는 곳은 없다. 어딜 가나 어려 움은 있다. 엘리멜렉과 나오미는 흉년을 만나 모압으로 이사 갔다. 그러나 모압 에도 어려움은 있었다.
② 그 난관이야 어떠했든지 자신의 생존권을 위하여 악조건을 개척해야 한다. 개 척은 필연적인 것이다. 값있는 삶은 악조건의 정복이다.
③ 그 개척은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자기 스스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어진 환경 의 개척자는 자기 자신이다. 자기 십자가는 자기가 져야한다.
④ 그 개척은 불가능한 것이 아니고 능히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이상 네 가지 점은 아주 뚜렷하게 부각되어져 있다.
그리고 그것은 이스라엘의 서부 개척사의 한 측면을 나타내고 있다.
여기에 개척이라는 말이 두 번 나온다.
본문 17:15절에 “너희는 삼림에 올라가서 스스로 개척하라”고 하였다.
17:18절에 “비록 삼림이라도 네가 개척하라”고 하였다.
여기 개척하라는 말은 창세기 1장의 창조란 말과 같은 어원의 말이다.
이 Bara란 말은 동사의 형식에 따라 몇 가지 뜻으로 나누어진다.
① 깎아 만들다, 부수어 만들다.
② 창조하다, 윤내다. 청소하다.
③ 낳다, 태어나다.
④ 먹다, 양육하다, 성장하다.
즉 파괴, 정리, 창조, 출생, 성장의 의미가 결합되어 있다.
낡은 것을 파괴하여 장애물을 깨끗이 청소한 후, 새 환경을 조성시켜 성장케 하는 것이 개척의 과정이다.
개척은 정복하는 것만이 아니다. 개척은 차지하는 것만이 아니다. 개척은 단순한 행위가 아니라 목적달성을 위한 전체의 과정을 다 포함하고 있다.
(1) 그러므로 개척은 파괴에서부터 시작한다. 새 세계를 위하여 옛 세계가 깨어져야한다.
(2) 개척은 청소작업을 요구한다. 깨어진 옛 세계의 환경정화가 필요하다.
(3) 개척은 창조이다. 아무것도 없는데서 있게 하는 것이 개척이다.
(4) 개척은 새 것을 낳는 작업이다. 창조의 과정을 통하여 새 형식의 존재 그것이 곧 개척이다.
(5) 개척은 성장이다. 개척의 결과는 성장과 발전이다.
성도 여러분! 우리 교회와 우리는 부단한 개척정신을 가지고 살아야한다.
성도 여러분! 우리 교회와 우리는 부단한 개척정신을 가지고 살아야한다.
이곳은 우리교단의 황무지이다. 개척되어야할 땅이다. 이 개척의 의지는 우리 교회의 발전과 신앙생활에 새로운 활력을 제공할 것이다.
이스라엘 역사를 통하여 나타난 개척사는 파괴, 청소, 창조, 생산, 성장을 퉁하여 이루어졌다. 그들은 그들 앞에 놓여있는 난관을 깨트리고 그 오물을 말끔히 씻어버리고, 새로운 창조 역사로 새 문화를 생산 성장시켰다.
개척에는 확신이 필요하다. 그것은 타의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의에 의한 것이다. 그러므로 더욱 확신이 필요하다. 이 확신은 나의 내부에 있는 것이지만, 그 근원은 하늘에 있다. 그리고 개척의 궁극성은 하나님의 영광에 있는 것이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개척하자! 우리는 교회를 개척하자! 우리 앞에는 난관이 많이 있다. 이 난관은 우리로 하여금 좌절하게 한다. 난관에 머무는 자는 난관으로 인하여 사해바다의 물처럼 죽은 바다가 되고 만다. 거기에는 생명이 없다. 그러므로 창조와 생산과 성장이 없다!
그러므로 사해바다의 경계를 터치고 난관 저편의 새 세계를 바라보자! 희망과 가능의 세계를 개척하기 위하여 과감한 발자국을 떼어놓자! 오직 한 번뿐인 우리의 생애를 개척을 위하여 투자하자! 개척자의 길은 외롭고, 고단하고, 비난이 따르지만 언젠가 먼 훗날... 그 열매를 따면서 웃는 자들이 될 것이다!
요셉 지파 사람들은 많은 토지를 요구했으나, 가나안 인이 철 병거 가진 것을 보고 두려워했다. 그들은 새로운 땅을 요구했으나, 그것을 개척하기를 두려워했다. 그들은 많은 소유를 요구했으나, 원수의 힘을 두려워했다.
우리도 종종 그러한 두려움으로 비겁해진다!
패배의식 속에 자포자기합니다. 어디론가 숨어버리려 한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그들의 두려움과 좌절을 책망했다!
그 이유로 궁극적인 승리는 말과 병거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과 인도하심에 있기 때문이다.
군사력만으로 국가의 안전의 전부는 아니다. 경제성장이 수복의 전부도 아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는 인생의 개척자가 되자!
삼중고의 인생 불모지에서 20C의 기적을 캐낸 헬렌 켈러가 되자!
믿음의 지팡이고, 반석에서 생수가 터지게 한 모세가 되자!
쓰레기 인생이면 거기서 장미꽃을 피게 하자!
곰팡이 인생이라면 거기서 페니실린을 뽑아내자!
이것이 개척정신인 것이다!
25. 요셉처럼 되었으면
25. 요셉처럼 되었으면
(창37:1-4)
창세기는 창조, 타락, 홍수, 바벨탑과 4대 족장에 관한 기록이다.
4대 족장이란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이다. 창세기는 아브라함은(13장), 이삭(4장), 야곱(9장), 요셉(14장)을 기록하고 있다.
이 요셉은 예수 그리스도의 전형적인 모형이다.
요셉은 목자였다(창37:2, 요10:11-14).
요셉은 아버지의 사랑을 받았다(창37:3, 마3:17).
요셉은 아버지에 의해 형들에게 보내졌다(창37:13,14, 눅20:13).
형들에게 미움 받았다(창37:4,5,8 요1:11, 7:15).
형들이 죽이려 모의했다(창37:20, 요11:53).
괴로운 시험을 받았다(창37:7, 마4:1).
애굽으로 내려갔다(창37:26, 마2:14-15).
옷을 벗겼다(창37:23, 요19:23-24).
은 30에 팔렸다(창37:23, 마26:15).
입을 열지 않았다(창39:20, 사53:7).
결박당했다(창39:20, 사27:2)
고소당했다(창39:16-18, 마26:59,60).
하나님이 함께 하셨다(창39:2,21,23 요16:32).
간수로부터 존경 받았다(창39:21, 눅23:47).
두 죄인과 함께 있었다(창40:2,3, 눅23:32).
사역시작 할 때 30세가 되었다(창41:46, 눅3:23).
고난 뒤에 높아지셨다(창41:41, 빌2:9-11).
형들이 그를 잊고 있었다(창42:7,8 롬10:1-3,11)
회개하는 자 용서했다(창45:1-15 숙12:10-12).
요셉은 멸시받고 슬픔을 당했다. 그러나 예수님처럼 높임 받았다.
요셉도 예수님처럼 잘 참고 승리했다.
우리도 예수님을 본받아 믿음으로 승리하기 원한다.
(1) 형들은 요셉을 미워했으나 아버지는 그를 사랑했다(3,4).
(1) 형들은 요셉을 미워했으나 아버지는 그를 사랑했다(3,4).
그리스도와 마찬가지로, 요셉도 자기 형제에 왔으나 그들이 자기 형제를 영접하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비록 그의 형제들이 그를 멸시하였어도 그는 아버지로부터 아버지의 사랑스런 아들로서 인정을 받았다.
아버지는 요셉을 크게 기뻐하였다.
그는 아버지의 사랑하는 자였다(37:3).
이 사실은 우리 그리스도인이 심지어는 자기 가족이나 친척에 의해 핍박을 받는다 할지라도 그들에게 얼마나 위로가 되겠는가?
에서는 야곱을 미워했으나 그는 하나님께 사랑 받는 자였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다고 하는 이 사실은 모든 어려움을 이기게 한다.
(2) 형들은 꿈 때문에 요셉을 시기했으나 요셉은 꿈 때문에 성공했다.
(2) 형들은 꿈 때문에 요셉을 시기했으나 요셉은 꿈 때문에 성공했다.
요셉의 꾼 꿈은 형제들을 자극했다.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겠느냐? 하고 그 꿈과 그 말을 인하여 그를 더욱 미워하더니 요셉이 다시 꿈을 구고 그 형들에게 고하여 가로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 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37:8,9).
그의 형들이 미워하건 말건, 그의 꿈은 절 받는 꿈이었다!
곡식단이 일어나서 절을 하였고, 해와 달과 열한별이 그에게 절했다.
형들은 “그럴 리가 없다”고 부인하였으나, 요셉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었다.
스데반은 미움 당하여 사람들에게 돌로 고쳐 죽임 당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에게 환상 중에 하늘을 열어주신 것이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진리를 충성스럽게 증거 한다면 아마 우리도 박해받고 미움 받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 눈에 천국의 영광도 함께 보여 주실 것이다.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마19:29).
(3) 형들은 요셉을 죽이려고 구덩이에 던졌으나 거기에는 물이 없었다.
(3) 형들은 요셉을 죽이려고 구덩이에 던졌으나 거기에는 물이 없었다.
요셉의 형들은 어린 요셉을 해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을 허치 않았다(창37:24). 하나님에게는 히브리 세 청년이 필요했다. 고로, 칠 배나 뜨거운 불속에서도 건재할 수 있었다. 하나님의 허락이 없이는 참새 한 마리일지라도 땅에 떨어트릴 수 없다.
빌립보에서 바울과 실라는 감옥에 투옥되었으나 그들의 마음에서 즐거움을 약화시키거나 하나님과의 교세에서 단절시키지 못했다. 오히려 빌립보 교회 설립의 한 회원을 확보하는 기회가 되었다. “그들이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죄수들이 듣더라”(행16:25).
원수들은 예수님을 죽음의 십자가에 매달았으나 오히려 그것은 그에게 영원한 승리의 터전이 되었다. 하만은 모르드개를 죽이기 위하여 50규빗의 장래를 세웠으나 자기 위한 사형대였다.
“누가 우리를 예수님의 사랑에서 끊으리요”(롬8:35). 두려워말라! 사람들이 내게 어찌하랴!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
(4) 형들은 요셉을 노예로 팔았으나 그는 형통한 자가 되었다(28, 39:2).
(4) 형들은 요셉을 노예로 팔았으나 그는 형통한 자가 되었다(28, 39:2).
그는 이름도 빛도 없이, 노예로 팔리웠다. 사랑하는 아들이었으나 노예가 되었다. 채색옷 입은 아들이었으나 팔리웠다. 그러나 그는 마침내 형통한자가 되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데 여념이 없는 자는 언제나 형통하기 마련이다.
비록 은 20에 팔렸으나 하나님의 수중에서 형통한 자가 되었다.
세상 사람이야 종으로 생각하든지 말든지 그에게 꿈이 있었다.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람들을 얼마나 싼 값으로 평가하든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하나님만 의식한자에게 하나님은 형통한자가 되게 하신다!
가난했기 때문에, 무식했기 때문에 성공한자가 많고, 무식했기 때문에 성공한 자도 있다.
(5) 술 관원장은 요셉을 잊었으나 하나님은 그를 잊지 않으셨다(40:23).
(5) 술 관원장은 요셉을 잊었으나 하나님은 그를 잊지 않으셨다(40:23).
술 맡은 관원장은 요셉의 해몽대로 출옥하였으나 요셉의 부탁을 잊어 버렸다(창40:14,15). 사람을 믿는 것은 후회할 때가 많다.
사람을 의뢰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사람은 기대할 자 못된다.
사람은 의지할 자 못된다. 의지할수록 실망만 커진다.
요셉은 아무 도움 없이 캄캄한 감방에서 더 지내야 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인 것을 41장에 보면 알게 된다. 하나님에게 우연은 없다. 2년 후 바로가 악몽을 꾸고, 괴롭힘 당하고 있을 때 이 술 맡은 관원장이 옛날 자기의 꿈을 해몽해준 요셉을 생각하여, 왕께 보고했다. 요셉은 왕명으로 출옥하게 되었고, 그는 바로의 꿈을 해몽하여 일약 총리대신이 되었다(41:14,41).
만일, 술 맡은 관원장이 출옥하자마다 요셉을 구해냈다면 총리되는 기회는 없었으리라!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잊었으나 하나님은 그를 잊지 않고 더 복된 때를 기다리고 계셨던 것이다.
우리의 훈공이 기억된바 없다할지라도 낙심할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길이 가장 지혜롭고, 하나님의 때가 가장 선하고 하나님의 은혜는 언제나 은혜로우시기 때문이다.
비록, 우리를 도울만한 자가 우리를 잊어버리고, 모른 체해도 낙심할 것 없다.
하나님은 그의 충성된 자가 어디 있든지 다 알고 계신다.
그에게 사람의 추천서는 없고 안타까운 날들은 계속된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주를 사랑하는 자를 축복하시기 위하여 제반 환경을 조성하시고 계신다.
우리가 사람들에게 생각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에게마저 잊혀져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주의 백성들을 구덩이에 던져 넣어 장래를 예비하시기도 한다.
하나님은 자기 사람을 안일한 곳에 방치하여 녹슬게 하지 않으신다.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3:6).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욥23:10).
26. 의인의 삶
26. 의인의 삶
(시92:12-15)
오늘 우리 본문 말씀은 의인의 번영과 악인의 멸망에 대하여 교훈하고 있습니다. 악인은 궁극적으로 멸망하나 의인은 영원히 흥왕하고 번성하리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오늘 장로님과 권사님께는 위로가 되고 그 가족들에게는 한없는 축복의 말씀이 되었으면 합니다.
사람들은 인간들에게 있어서 결혼을 가장 큰 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대사중의 대사가 혼사요, 길사중의 길사가 결혼이며 경사중의 경사가 결혼이며 축복중의 축복이 결혼입니다.
“아내를 얻는 자는 복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받는 자니라”(잠18:22).
사람들은 옛 부터 “人生七十古來稀”라 했습니다.
그런데도 내외분이 함께 회혼을 맞게 되다니 진정 축복입니다.
회혼(回婚)이란 혼인한지 예순돌을 맞게 된 것을 말합니다.
결혼기념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명칭이 있습니다.
1주년을 紙婚式이라하고, 10주년을 錫婚式이라 합니다.
20주년을 陶婚式이라하고, 30주년을 眞珠婚式이라 합니다.
40주년을 綠玉婚式이라 하고, 50주년을 金婚式이라 합니다.
60주년을 金剛石婚式 (다이아몬드 혼식)이라 합니다.
그 이상은 없습니다. 결혼 75주년이 있기는 하나 명칭은 60주년과 같습니다.
내외분이 이렇게 귀한 회혼식을, 건강한 모습으로 수 많은 자손들 앞에서 기념하게 되니 정말 감격스럽습니다.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 의로운 길에서 얻으리라”(잠16:31).
오늘 저는 본문말씀으로 의로운 삶에 대하여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1) 의인의 삶은 항상 승리합니다(12).
(1) 의인의 삶은 항상 승리합니다(12).
“의인은 종려나무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같이 발육하리로다”
시편기자는 의인의 승리를 말하기 위해 종려나무와 백향목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이 나무들은 늘 푸른 상록수들입니다. 이 나무들은 무성한 생산력이 있습니다.
이 나무들은 왕성한 힘과 영원한 이미지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 나무들은 여름의 열기뿐 아니라 겨울의 냉기 속에서도, 년중 내내 그 푸르름을 유지합니다. 특히 백향목은 연수로 그 나이를 세지 않습니다.
백향목은 세기(century) 로 나이를 셉니다“ 그 만큼 장수의 나무입니다.
(2) 의인의 삶은 여호와의 집을 떠나지 않습니다(13).
(2) 의인의 삶은 여호와의 집을 떠나지 않습니다(13).
“여호와의 집에 심겼음이여, 우리 하나님의 궁정에서 흥왕하리로다”
(3) 의인의 삶은 늙어도 결실합니다(14)
(3) 의인의 삶은 늙어도 결실합니다(14)
“늙어도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며”
이 말씀은 경건한 성도는 늙기까지 원기 왕성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 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고후4:16,18).
(4) 의인의 삶은 불의가 없습니다(15).
(4) 의인의 삶은 불의가 없습니다(15).
“여호와는 나의 바위시라 그에게는 불의가 없도다”
예수 믿고 죄사함 받은 성도에게는 불의가 없습니다.
“내가 항상 주와 함께 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리니“(시73:23,24).
① 죄짓고 방황한 과거였으나 하나님은 오른손을 붙드셨습니다.
② 힘없는 노년이 되었으나 현재 주의 교훈으로 항상 인도하십니다.
③ 예측할수 없는 인생이나 장차 영광으로 영접해 주실 것입니다.
그런즉 장로님, 권사님 믿음으로 승리한 삶을 감사합시다. 여호와의 집을 떠나지 않고 지금껏 살아온 삶을 감사합시다. 늙어도 빛이 청청하고 결실함을 감사합시다. 죄사함 받고 불의가 없음을 감사합시다. 천국 소망을 품고 남은여생을 살다가 주님의 품에 안기는 축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27. 이스라엘이 망한 이유
27. 이스라엘이 망한 이유
(왕상 14:16)
오늘 우리가 사는 시대는 종말을 향하여 달음질치고 있다.
인류 역사는 저물어 황혼을 맞고 있다. 바울은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다”고 말했다.
베드로는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다”고 했다. 시바이쳐는 “현대 문명은 황혼기에 이르렀다”고 했다. 역사가 아놀드 토인비는 “현대는 문명의 위기이다”라고 경고했다.
모든 사람들도 이구동성으로 현대를 위기라고 진단한다. 양의 동서와 단의 남북 그 어디에도 안전한 곳도 없고 평안한 곳이 없다. 지구촌 곳곳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군사, 종교 전반에 걸쳐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지 않는 곳은 한군데도 없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남북의 분단은 벌써 반세기가 넘었다. 세계 191개국 중 유일의 분단국으로 남아 있다. 동서의 골도 깊어만 간다. 빈부격차는 기하급수적이다. 부익부 빈익빈의 간격만 뚜렷해 졌다. 실업자 수는 해년마다 늘어만 가고 있고, 지역주의, 집단 이기주의는 구석구석까지 번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정말 큰일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부끄럽게도 도덕적 수준은 저급하다. 쓰레기 발생량에 있어서 1등국이다. 그중 음식 쓰레기로 버려지는 것이 8조원이 넘는다. 에너지 소비량도 1동국이요, 해외에 나가면 돈 많이 쓰기로 제일이다.
교통사고 사망률도 따를 나라가 없고, 양주수입도, 담배소비량도 단연 1등국이다.
우리나라는 정말 아무 소망이 없어 보인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아골 골짜기에 소망의 문을 열어주셨다. 1884년 4월 5일 아펜셀라와 언더우드 선교사에 의해 이 땅에 복음이 전해진 이후 우리 한국교회는 많은 축복을 받았다. 교회는 부흥에 부흥을 거듭하여 50,000교회 12,000,000성도를 거느리게 되었다.
세계에서 제일 큰 교회도 한국에 있고,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순복음 교회 등도 세계에서 제일 큰 교회는 우리 한국에 있다.
이렇게 양적 성장은 가져왔으나 교회 안에는 문제점도 적지 않다.
첫째, 교파와 교회 분열은 가슴 아픈 상처가 되었다.
둘째, 물량주의와 기복신앙으로 순수 신앙이 변질되었다.
셋째, 이단과 사이비 집단이 우후죽순처럼 일어났고 세속신학에 물들어 가고 있다.
넷째, 영적 타락현상이 교회 안에 만연되었다.
다섯째, 시대마다 교회의 적들이 나타나 교회를 에워쌌다.
한때는 불건전한 신비주의가, 다른 한때는 세속주의가 교회를 위협했다.
한때는 일본의 박해와 신사참배가 교회의 부흥을 가로막았고,
한때는 문선명의 통일교가 거치는 장애물 되었고, 박태선의 천부교도 그 중의 하나였다.
교회의 영적 전투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선한싸움은 주님 오실 때까지 계속 될 것이다.
지금 우리 한국교회가 당면한 문제는 단군우상과의 영적 싸움이다.
대개의 경우 나라마다 민족전래의 신화가 있다. 우리나라에도 단군신화가 있다.
이 단군신화는 역사성이 취약하고 학술적인 증거가 없다. 따라서 저급한 신화나 설화로 만족해야 한다. 그런데도 이것을 정사로 고집한다던지, 단군을 우리나라의 시조로 주장한다는 것은 유치하고 가소로운 일일뿐이다.
~단군상을 건립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의도는 무엇인가?
~단군상을 건립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의도는 무엇인가?
① 그들은 국조숭경을 이유로 든다. 나무는 뿌리가 있고 사람은 조상을 가지고 있는 법인데 단군 성전을 건립하는 일에 무슨 이론이 그렇게 많느냐는 식이다.
② 또 둘째 이유는 애국심을 앙양해야 하겠다는 것이다.
요새 젊은이들의 애국심이 점점 희박해져 가고 있으므로 애국심 앙양을 위해서 단군상을 건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③ 그리고 민족 단합의 구심점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도 말한다.
모두 다 좋은 이야기라고 생각된다. 국조도 승경해야 하고, 애국심도 앙양시켜야하고, 민족단합, 그것은 더 말할 것도 없이 필요하다.
누가 그것을 반대하겠는가? 그러한 일을 위해서 꼭 단군상을 세워야 하며 꼭 제사를 지내야만 되겠느냐는 데에 문제가 있다. 민족적인 구심점은 오랜 세월에 걸쳐서 빚어지는 역사의 산물이지, 어떤 특정인이 무엇을 구심적으로 하라고 명령했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이룩되는 것이 아니다.
이 나라 역사책의 그 어디를 뒤져보아도 단군이 이 민족의 시조라고 단정하여 말하는 곳은 한군데도 없다. 따라서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1. 단군신화를 역사적 사실로 받아드리려는 어떤 시도도 절대로 반대한다.
~1. 단군신화를 역사적 사실로 받아드리려는 어떤 시도도 절대로 반대한다.
신화는 어디까지나 신화이다. 신화를 역사로 조작하는 것은 무서운 죄이다.
~2. 따라서 그 단군상을 제작하여 세우는 것은 더 더욱 용납할수 없다.
~2. 따라서 그 단군상을 제작하여 세우는 것은 더 더욱 용납할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역사를 왜곡하고 조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근거 없는 조형물을 만들어 국민을 기만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상숭배를 조장하는 미신행위요 망국행위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우상숭배는 결국 하나님의 진노를 사기 때문이다.
신화적 개국의 시조를 국민적 참배의 대상으로 삼으려는 것은 일본이 그들의 시조를 신사에 앉혀놓고 섬기게 한 신사참배의 죄와 다를 것이 없다.
~3. 단군의 신격화의 위험이 클뿐 아니라, 세계화 시대에 역행하는 국수주의의 편견에 빠질 위험이 크기 때문에 절대로 반대한다.
~3. 단군의 신격화의 위험이 클뿐 아니라, 세계화 시대에 역행하는 국수주의의 편견에 빠질 위험이 크기 때문에 절대로 반대한다.
단군은 우리 민족의 시조도 아니며, 더더욱 우리 민족의 정신적 지주도 아니다.
다만 하나의 신화 속에 있는 미신적 대상일 뿐이다. 이런 미신적 행위를 조장하는 것은 국가 장래를 위해 심히 불행한 일이다.
~4. 단군은 몇몇 단군과 관계된 단군교의 교주로 되어 있을 뿐이다.
~4. 단군은 몇몇 단군과 관계된 단군교의 교주로 되어 있을 뿐이다.
이 같은 특정종교의 교주상을 공공장소에 세운다는 것은 정교분리를 제정한 헌법정신에 위배된다. 단군상 건립취지문에 “천부경”이 언급됨으로 단군상 건립이 특정단체와 어떤 관련이 드러나게 되었다. 또한 “이곳을 참배하는 사람들이”라는 언급으로 보아 단군상 앞에 참배를 유도하기 위한 목적이 있음이 분명하다.
따라서 우리는 이를 결사반대한다.
~5. 단군의 조형물인 단군상이 공공장소에 설치되는 것은 불법이다.
~5. 단군의 조형물인 단군상이 공공장소에 설치되는 것은 불법이다.
특히 공원이나 각급학교에 설치되어서는 절대로 안 된다.
이것은 국교를 인정치 않는 대한민국 헌법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6. 단군상 설치로 말미암아 국론이 분열될 우려가 있다.
~6. 단군상 설치로 말미암아 국론이 분열될 우려가 있다.
지금 우리는 유사 이래로 미증유의 난국에 처해있다.
남북분단의 비극의 아픔과, 동서갈등의 불행 앞에 서 있다.
경제여건은 날로 악화되고 있고, 가까운 일본은 차츰 우리의적이 되어가고 있다.
그들은 역사 교과서를 완전히 왜곡하였다. 남쿠릴열도에서의 정당한 조업을 반대하고 있다. 고이즈미 총리는 전범들의 위패가 있는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강행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그들은 우리와의 우호관계는 안중에도 없다.
일본이 우리의 정당한 요구를 거절하는 것은 우리의 존재를 무시하는 것이며, 이는 곧 제2의 침량행위와 다를 바가 없다.
~7. 단군상을 세우는 것은 무엇보다도 우상숭배의 무서운 죄가 되기 때문이다.
~7. 단군상을 세우는 것은 무엇보다도 우상숭배의 무서운 죄가 되기 때문이다.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출20:5,6)
우상숭배는 하나님이 제일 미워하는 죄이다.
우상숭배는 나라가 망하는 지름길이다. 이스라엘이 망한 이유도 우상숭배 때문이다.
“여호와께서 여호보암의 죄로 인하여 이스라엘을 버리시리니 이는 저도 범죄하고 이스라엘로 범죄케 하였음이니라 하니라”(왕상14:16).
하나님은 여로보암의 죄 때문에 이스라엘을 버리신다고 했다.
그렇다면 도대체 여로보암의 죄는 무엇인가? 그것은 그가 벧엘과 단에 두 금송아지를 만들어 세워놓고, 르호보암을 떠나 자기에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가 다시는 예루살렘에 올라갈 것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 신이라”고 말하면서 하나님 대신 우상을 섬기게 한 죄를 말한다(왕상 12:25-33).
여기 여로보암의 죄는 네 가지이다.
① 그는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를 세웠다(왕상 12:29-30).
② 레위지파 아닌 자들을 제사장으로 임명했다(왕상 12:31).
③ 제사절기를 마음대로 바꾸었다(왕상 12:32,33).
④ 백성들의 종교심을 묶어 놓기 위해 우상정책을 썼다(왕상 12:25-33).
이 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이고 무서운 죄는 금송아지 우상을 섬기게 한 것이다.
① 이는 십계명을 어긴 행위요 하나님을 욕되게 한 처사이다.
② 이는 하나님이 선택하신 성소(예루살렘)을 무시한 죄악이다.
③ 이 일 때문에 이스라엘에 우상 숭배가 만연하게 되었다.
이 금송아지 우상은 매우 가증스러운 것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것이다.
그래서 이때부터 여로보암은 금송아지 우상의 대명사가 되었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로 범죄케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더라”(왕하 15:9, 18, 24, 28).
이 말씀이 성경 중에 21번이 나온다. 이런 표현은 성경 어디에도 없다.
그렇다면 이것은 얼마나 엄숙한 사실인가? 북왕국 이스라엘의 초대왕 여로보암의 생애 중 하나의 죄가, 그가 죽은 후 수백 년 동안 다른 사람을 죄로 물들게 하고 오염시켰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삼천리금수강산 아름다운 이 땅에 세워진 단군상이 앞으로 이 민족에게 얼마나 많은 죄의 영향을 끼칠 것인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망하게 할 것인가?
고로 단군상은 장차 이 민족 위에 쏟아질 진노의 원인이요 심판의 근거가 된다.
우리는 지금 남의 일처럼 잠자코 있을때가 아니다. 일어나서 싸워야 한다.
두라평지에 세워진 금신상 앞에 모두가 절했으나, 거기 절하지 아니한 다니엘이 있고,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있었다. 갈멜산상에 바알과 아세라 선지가 850명이 절하고 있었으나,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굳게 지킨 선지자 엘리야가 있었다.
우리가 일본놈들의 식민지 속국이 되었을 때, 모두가 놈들의 신사 앞에 무릎을 끊었으나, 우리의 신앙 선배들은 그것을 결사반대하고 감옥을 찾아갔다.
우리는 그들의 후예들이다. 앞서간 신앙 선배들의 뒤를 따라가야 한다.
세상을 변해도 모세가 시내 산에서 받은 우상 금령의 계명은 지금도 유효하다.
골고다의 사람들이여, 골고다 길에서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말자.
십자가의 군병들이여, 예수의 이름으로 사탄의 세력들을 쳐 부셔야 한다.
그리하여 승리의 깃발을 주님의 보좌 앞에 바쳐 드려야 한다.
우리 광주에서는 온 교회가 하나되어 기어코 철거시키고야 말았다.
지난해 광주공원, 비엔날레관, 조선대학교, 대성초등학교 등 네 곳에 세워졌다.
광주 교단 협의회는 즉시 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① 시장을 면담한 후 줄기차게 관계기관에 압력을 가했다.
② 각 노회장들이 시장실을 점거했다.
③ 시청 앞에서 비오는 날 수많은 교인들이 모여 데모했다.
④ 공청회를 열고 토론했다.
⑤ 개혁측 총회가 모인 때 1,000명의 총대들과 성도들이 시가행진을 했다.
⑥ 결국 자진 철거하게 만들고야 말았다.
28. 인생과 고난
28. 인생과 고난
(시편119:65-72)
천지지간 만물지중 유인최귀라
그러나 인간세상은 엉망진창이다. 눈물도, 고난도, 슬픈 일도 많다.
“여인에게서 난 사람은 사는 날이 적고 괴로움이 가득하며”(욥14:1).
“인생은 고난을 위하여 났나니”(욥5:7).
우리 인생은 백년을 못 다 살고 가면서도 만년의 근심을 품고 살고 있다.
하루에도 밤과 낮이 있고 십리 길에도 오르막길이 있고 내리막길이 있다.
~1. 한 인생의 고백이 있다.
~1. 한 인생의 고백이 있다.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67).
이 말은 정로를 벗어났다는 말이다. 길을 이탈했다는 말이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롬3:23).
“의인은 세상에 아주 없느니라”(전7:20).
“주의 목전에는 의로운 인생이 하나도 없나이다”(시143:2).
제프리 다머, 20세기 최대의 살인마로 불리운다.
놈의 손에 희생된 생명이 무려 17명이나 된다.
그는 10대 초반의 유색인종을 죽인후 사체를 상대로 성교한다.
사체를 절단하여 냉장고에 보관했다가 수시로 불고기 해 먹었다.
금세기 미국에서 있었던 엽기적인 사건이다.
“인간은 천사도 아니고 짐승도 아니다”(브라우닝)
“인생은 절반은 짐승이요 절반은 마귀처럼 생긴 존재이다”(휫필드)
짐승은 원래 자기의 모습 그 이상도 그 이하도 될 수 없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사람이면서도 인간 이하의 악마가 되고 만다.
~2. 그릇행한 결과는 무엇인가?
~2. 그릇행한 결과는 무엇인가?
“고난당하기 전에는 그릇 행하였더니”
그릇 행한 결과로 찾아온 것은 고난이라고 말한다.
여기의 이 고난은 죄 값이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6:7).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로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갈6:8).
제프리 다머는 15회 연속 종신형을 엄도 받았다. 그는 좁은 독방에서 고독과 고통스런 수형 생활을 해야 했다. 그는 자기 자신이 왜 일찍 예수를 믿지 않고 있다가 이 모양이 되었는지 후회했다. 또 자기 목숨을 바쳐 피해자들을 위로하고 싶다면서 회개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3. 인생은 고난을 통하여 참 사람이 된다.
~3. 인생은 고난을 통하여 참 사람이 된다.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67).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71).
미국 작가 중 스텐리스타인 그가 쓴 책 중에 “이제는 외롭지 않다”가 있다.
그는 한때 너무나 불행하고 외로운 사말이었다.
그는 나환자였다. 나환자 수용소에서 두 눈을 잃고 실명했다.
손 마디마디가 다 덜어져 나간 불구자였다. 좌절, 절망뿐이었다.
그는 죽은 인생이요, 썩은 인생이었다.
얼굴, 눈, 손, 발, 모두가 비정상적인 것뿐이었다.
단 한 가지 정상적인 것은 마음과 정신뿐이었다. 이 정신 가지고 돕고 봉사할 것을 생각하다가 작가가 되리라 결심했다. 그는 글을 쓸 수 없어 녹음했다. 그것을 서서 출판하니 유명작가가 된 것이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사람에게는 능치 못한 일이 없느니라”
“눈 때문에 쓰러진 대나무는 저절로 일어난다.
그러나 나무를 쓰러트린 눈은 녹아서 흔적도 없다”
인간은 하나의 그릇에 불과하다. 물그릇, 밥그릇, 국그릇. 등등이 있다.
“그 그릇에 사탄을 담으면 악마가 되고 예수를 담으면 성도가 된다”
29. 일심으로 행하자
29. 일심으로 행하자
(대하31:20-21)
히스기야는 남왕국 유다의 13대왕이다.
그는 부친 아하스의 뒤를 이어 25세의 젊은 나이로 왕위에 올라 29년간 유다 왕국을 다스린 왕이다. 후세인들은 그를 유능한 왕이요 경건한 왕으로 기억하고 있다.
“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을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왕하18:5).
~1. 히스기야 왕은 유다 12대 아하스왕의 아들이다.
~1. 히스기야 왕은 유다 12대 아하스왕의 아들이다.
아하스는 유다 열왕 들 중 두 번째로 악한 왕이다(첫 번째는 므낫세이다).
그는 아들을 우상에게 제물로 바쳤고, 몰록신을 섬겼다. 우상을 만들었다.
그는 금송아지를 예배하고 바알신을 섬겼다. 성전 봉사를 폐하고 전문을 닫았다.
그래서 역대기는 “아하스를 이스라엘 왕이라”했다(대하28:19).
이렇게 악한 왕 아하스왕에게서 히스기야가 태어났다.
히스기야는 다윗처럼 정직히 행했다.
그는 유다열 왕 중 두 번째로 선한 왕이다(첫 번째는 요시아 왕이다)
이렇게 선한 왕에게서 므낫세가 태어났다.
므낫세는 유다 역사상 가장 악한 왕이다.
그는 선한 왕 히스기야의 양육 받았고 요시아왕은 악한 왕 아몬의 양육 받았다.
그런데도 히스기야의 양육 받은 므낫세는 제일 악한 왕이 되었고, 악한 왕 아몬 밑에서는 유다 열왕 중 제일 선한 왕 요시아가 배출되었다.
자식은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이다.
~2. 히스기야왕의 업적은 대단하다.
~2. 히스기야왕의 업적은 대단하다.
그는 선과 정의와 진실함으로 행했다(20). 그는 다윗처럼 정직했다(왕하18:3).
그는 산당을 훼파하고 놋뱀을 파괴했다(왕하18:4). 그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켰다(왕하18:6). 그는 성실한 종교개혁자였다. 또 앗수르의 침략을 대비하여 예루살렘을 요새화 했다. 히스기야는 전후좌우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하고 민족을 구했다.
~3. 히스기야 왕은 모든 일에 하나님을 구했다(21).
~3. 히스기야 왕은 모든 일에 하나님을 구했다(21).
그가 하나님을 구한 것은 하나님의 뜻을 찾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만을 의지한다는 의미이다.
모든 일에 먼저 하나님을 찾았다. 먼저 하나님을 위했다.
“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왕하18:5).
그는 부왕 아하스가 불신앙으로 앗수르에게 조공 바친 것을 못 마땅히 여겨 앗수르를 배척하고 섬기지 않았다. 이 위대한 결단은 하나님 의지하였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앗수르 왕이 노하였고, 그의 오만불손 때문에 히스기야는 하나님 더 의지하였다.
사탄은 약한 자에게 더 강하다!
~4. 히스기야 왕은 모든 일에 일심으로 행했다.
~4. 히스기야 왕은 모든 일에 일심으로 행했다.
“일심으로 행하여 형통하였더라”(21).
이는 “한결 같다” “최선을 다한다”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한다”는 의미이다.
영어성경에는 all heart로 번역되었다. 일심으로 행함은 전심전력을 다한다는 뜻이다. 히스기야는 초지일관했다. 그는 두리번거리지 안했다.
그는 시종일관했다. 하나님을 향한 그의 마음은 일편단심이었다.
그는 하나님의 전에 수종드는 일에 일심이었다.
또,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일에도 일심이었다.
~5.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이 믿음을 보시고 형통케 하셨다.
~5.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이 믿음을 보시고 형통케 하셨다.
앗수르에게 조공을 바치 않음으로 산헤립이 침략해 왔다.
그는 선지자에게 기도 부탁하고 나서 자신도 성전에 올라가기도 했다.
그는 산헤립의 협박 편지를 하나님 앞에 펴놓고 기도했다.
하나님은 그 밤에 185,000명을 진멸하고, 승리하게 했다.
한때 히스기야는 죽을 병들었다. 선한 왕에게도 병이 들었다.
인생에게는 굴곡이 많다. 건강할 때도 있고, 병들 때도 있다.
그는 슬퍼서 통곡하면서 기도했다. 하나님은 그에게 15년 가수의 축복을 주셨다.
“일심으로 행하여 형통하였더라”
30.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30.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행6:1-6)
초대교회는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큰 부흥이 일어났다.
“제자의 수가 더 많아졌는데” 교회가 발전하고 은혜가 충만했다.
원망이 생기고 분규가 일어났다. 사탄은 부흥을 싫어한다.
이 사건을 통해 교회가 조직화되었으나 유무상통하는 제도가 폐지되었다.
교회분열의 징후가 보이자 열두 사도는 신속하게 수습에 나섰다.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공궤를 일삼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니”(행6:2)
현명한 대책을 세운 결과 교회는 더 큰 부흥이 왔다.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행6:7).
교회는 원망을 어떻게 잠재웠는가?
~1. 일을 서로 분담하게 함으로 해결했다.
~1. 일을 서로 분담하게 함으로 해결했다.
하나님은 모두가 일하기를 원한다.
서로 돕고 협력하기를 바라신다.
~2. 훌륭한 일꾼을 선택케함으로 해결했다.
~2. 훌륭한 일꾼을 선택케함으로 해결했다.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 하니”(6:3,4)
집사와 사역자, 주님의 일꾼의 자격을 말해준다.
① 성령이 충만한 자여야 한다(롬8:9).
② 지혜가 충만해야 한다(마10:16).
③ 사람들에게 칭찬을 들어야 한다.
어떤 이는 한국교회의 문제점을 세 가지로 지적한다.
① 중생의 체험이 없는 세례
② 충성심 없는 제직의 임명
③ 소명감이 없는 신학생의 배출
~3. 모두가 기쁨으로 사도들의 제안에 순종했다.
~3. 모두가 기쁨으로 사도들의 제안에 순종했다.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도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한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행6:5). 주님의 일에는 모두가 기쁨으로 참여해야 한다.
“혹 권위 하는 자면 권위 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사랑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롬12:8-13).
초대교회가 부흥되어가는 수치는 다음과 같다.
①12제자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두를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눅6:13), ②70문도 “이후에 주께서 달리 칠십 인을 세우사 친히 가시려는 가동 각처로 둘씩 앞서 보내시며”(눅10:1), ③120문도 “모인 무리의 수가 한 일백이십 명이나 되더라 그때에 베드로가 그 형제 가우네 일어서서 가로되”(행1:15), ④500명 “장사 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 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가지 태반이나 살아 있고 어떤 이는 잠들었으며”(고전15:4-6), ⑤3000명의 회개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행2:41) ⑥5000명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더라”(행4:4) ⑦남녀의 큰 무리 “믿고 주께로 나오는 자가 더 많으니 남녀의 큰 무리더라”(행5:14)
교회는 위기를 잘 넘기고 열심히 섬기면 부흥한다.
31. 좌우를 살펴 사람이 없음을 보고
31. 좌우를 살펴 사람이 없음을 보고
(출2:11-15)
1. “모세가 장성한 후” 모세는 전에 버림받은 자였다(2:3).
1. “모세가 장성한 후” 모세는 전에 버림받은 자였다(2:3).
2. “한 번은 자기 형제에게 나가서”
2. “한 번은 자기 형제에게 나가서”
그는 애국애족의 사람이다.
눈에 보이는 학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의분이 났다.
3. 모든 죄는 탄로 나기 마련이다(13,14).
3. 모든 죄는 탄로 나기 마련이다(13,14).
4. “좌우를 살펴 사람이 없음을 보고”(12).
4. “좌우를 살펴 사람이 없음을 보고”(12).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하여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①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일해야 함을 배운다.
모세는 형제를 돌아볼 생각이 났다(행7:23-25).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를 보내신 것은 아니다.
그는 하나님의 정하신 때보다 조급하게 서둘려 행한 것이다.
거기에 실패가 있었고 마련이고 좌우를 살피게 된다.
② 좌우를 살피는 것은 하나님보다 사람을 의식할 때 따르는 행동이다.
사람들에게 공포를 느낄 때 두리번거리게 된다.
사람들에게 소외 당할까봐 두리번거린다.
사람들에게 칭찬받고 싶어서 좌우를 살핀다.
그러나 하나님의 위임장을 갖는 자는 좌우를 살피지 않는다.
③ 예수그리스도는 그의 생애 중 한 번도 좌우를 살핀 적이 없다.
호산나 만세를 부르는 때도, 십자가에 못 박자고 아우성쳐도 그는 두리번 거린 적이 없었다. 그 이유는 그의 눈은 인간에게가 아니고 언제나 하나님께 고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하나님을 쳐다보는 것으로 족했다. 그도 인간의 칭찬, 인간의 분노, 비난이 있어도 입을 열지 않았다.
또 인간을 두려워한 적이 없으시다.
기회주의자는 좌우를 살핀다. 인본주의도 주위를 살핀다.
기회주의자는 좌우를 살핀다. 인본주의도 주위를 살핀다.
우리가 사람을 의식하다 보면 올바른 일을 못한다.
사람을 의식하지 말자. 하나님을 의식하자.
실패했을지라도 그것이 더 나은 일이다.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댛20:12).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12:2).
32. 지금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인가?
32. 지금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인가?
(에4:4-14)
성경에는 여인의 이름을 제목으로 붙인 두 권의 책이 있다.
에스더와 룻기이다. 에스더와 룻은 하나님께서 미래를 위하여 예비하신 인물들이다. 하나님은 그의 목적을 위하여 필요한 사람을 숨겨 두셨다가 때가 이르매 그들을 앞세워 그의 뜻을 이루신다. 롯은 이방 여인이었으나 후일 메시야의 조상이 되었고, 에스더는 그 백성을 구원함으로서 그 메시아가 세상에 올수 있는 길을 예비한 것이다.
에스더는 하나님의 은혜 입은 마음씨 곱고 아리따운 여인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포로 출신의 불우한 여인이기도 했다. 그러함에도 그녀가 바사왕의 왕후가 된 것은 하나님의 신비한 섭리였다.
에스더서에는 하나님이란 이름이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 이면에서 섭리하고 있다는 것을 어느 성경에서 보다도 더 분명하게 볼 수 있다. 섭리가 무엇이냐 그것은 역사의 장갑을 낀 하나님의 손길이다. 하나님의 주권을 구성하는 세 가지 위대한 요소가 있는데 그것은 창조와 보존과 섭리이다.
우리는 에스더서에서 이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을 무수히 본다. 이 섭리가 없었다면 에스더는 어떻게 되었을까? 에스더는 바사왕의 왕후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유대인은 하만의 간계에서 구원받지 못했을 것이다. 이 유대인이 없었다면 메시도 올수가 없다. 그것은 정말로 비극이다.
오늘 우리 본문은 유대인을 진멸하라는 아하수에로 왕의 칙령으로부터 시작한다. (3:13) 이 조서가 수산성에 반포되었을 때 성안은 어지러웠다. 모르드개는 옷을 찢고 재를 무릅쓰고 대성통곡했다. 많은 유대인들은 금식하며 굵은 베옷을 입고 재에 누운 자가 무수했다. 진실로 유대인의 위기였다.
그때가 유대인의 위기였다면 오늘은 우리의 위기이다. 우리는 당시의 위기에서 배울 수 있었으면 한다.
1. 왕후 에스더의 모습을 보자
1. 왕후 에스더의 모습을 보자
“왕후가 심히 근심하여”(4).
2. 에스더는 위기의 내용을 알고자하였다.
2. 에스더는 위기의 내용을 알고자하였다.
“내시 하닥을 불러 명하여 모르드개에게 가서 이것이 무슨 일이며 무슨 연고인가 알아보라”(5).
3. 모르대개는 이렇게 전했다.
3. 모르대개는 이렇게 전했다.
유대인을 멸하라는 왕의 조서초본을 전해주었다.
그리고 왕 앞에 가서 민족을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라고 부탁했다(8).
에스더는 왕의 부름 받지 못한지가 30일이었다. 애정이 식었을까?
바사의 법은 왕후라도 부름 받지 않고 왕 앞에 나갔다가는 죽어야 한다.
이 세상에 쉬운 일은 하나도 없다. 에스더는 짊어진 짐들을 외면할 수 없었다.
오늘 우리에게도 무거운 짐이 지워져 있다. 외면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까?
4. 에스더는 양자택일의 갈림길에 서 있었다.
4. 에스더는 양자택일의 갈림길에 서 있었다.
자신의 안일을 위해 모르는 척 할 것인가?
아니면, 민족의 위기 앞에 한 몸을 던질 것인가?
머뭇거리는 에스더에게 모르드개의 눈물겨운 충고는 이렇다.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면하리라 생각지 말라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데로 말미암아 놓 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비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위 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13.14).
첫째, 혼자만 살겠다고 도피하지 말라.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혼자 면하리라 생각하지 말라”(13).
둘째, 네가 침묵해도 유대인은 구원받을 것이다.
그러나 책임을 회피한 너와 네 아비 집은 망할 것이다.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비 집을 멸망하리라”(14).
셋째, 너는 이 때를 위해 예비 된 인물이라는 사명감을 갖어라.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나?”(14).
이 말씀은 에스더서의 핵심 요절이다.
모르드개는 유대인의 구원은 이길 밖에 없다는 것을 믿었다.
그리고 이 일을 해낼 사람은 에스더 뿐이라 생각했다.
만일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의 위기를 해결하는데 우리가 필요하다면 여러분은 외면하겠는가? 나는 아니라고 말하면서 물러서겠는가?
설교자의 황태자 스펄죤 목사님은 이 부분에서 두 가지 교훈을 말한다.
1. 사람은 공동체의 소속을 떠나서 혼자 살수 없다.
개인주의, 개교회주의는 하나님의 적이다.
2. 성도가 은혜 입은 것은 자기 자신만을 위함이 아니고 필요한때 쓰임받기 위함이다.
“네가 왕후의 위를 얻는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
우리는 소속 공동체에 대한 책임이 있다.
나치 독일 치하에서 투옥 당했던 마르린 니물러 목사는 이런 말을 했다.
“그들의 먼저 잡으려 온 자는 공산주의자였다. 나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기에 아무 말도 안했다. 그 다음을 유대인을 잡으러 왔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기에 아무 말도 안했다. 그 다음에는 큰 노동조합에 가입한 조합원들을 잡으려 왔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기에 아무 말도 안했다.
그 다음에는 카톨릭 교도들을 잡으러 왔다. 나는 개신교인이기에 아무 말도 하지 안했다. 그러나 마침내 나를 잡으러 왔을 때에는 나를 위해 말해줄 사람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 후 독일은 망했다. 이기주의자 무관심주의자들은 언젠가 대가를 치를 날이 반드시 온다.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인지 누가 아느냐”
33. 피차 사랑하라
33. 피차 사랑하라
(벧전 1:22-25)
연합회나 연합사업은 장단점이 있다.
단점은 개인주의 또는 경쟁의식 때문에 시기 질투 비 협조하기 쉽니다. 또 이질적인 요소 때문에 콩가루 집안이 되기 쉽다.
또 주인 의식이 없고 무책임하기 다. 그러나 또한 장점도 많고 장려해야 할 일이기도 하다.
1.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능력을 극대화 할 수 있다(22).
1.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능력을 극대화 할 수 있다(22).
“백지장도 맞들면 가볍다”
전도서 기자는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낫다고 하였다(전4:9-12).
① 저희가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수 있고
② 하나가 넘어지면 동무가 붙들어 일으킬 수 있고
③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다.
④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할 수 있다.
⑤ 삼겹줄은 쉬 끊어지지 않는다.
2.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면 일이 쉬워진다(22).
2.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면 일이 쉬워진다(22).
3. 우리의 궁극적인 목적을 상기하면 조직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3. 우리의 궁극적인 목적을 상기하면 조직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25).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34. 하나님의 성전
34. 하나님의 성전
(대하7:1-3)
솔로몬 왕은 정성들여 성전을 건축하여 오늘 우리 본문에 봉헌기도를 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고 제물을 사르셨다. 여호와의 영광이 온 전에 가득하였다.
이스라엘 온 백성은 땅에 엎드려 경배하고 여호와께 감사하며 외쳤다.
“선하시도다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3).
~성경에는 세 개의 성전이 나온다.
~성경에는 세 개의 성전이 나온다.
① 제1의 성전은 솔로몬 성전이다.
제1 성전은 훌륭하고 화려했으나, 이스라엘은 합당한 예배를 드리지 못했다.
그들의 제사는 형식적이었다. 신성해야 할 제사장들은 사리사욕을 탐했다.
그들은 성소에 이교신당까지 허락했다.
하나님은 그들을 돌이키려고 선지자들을 보내 권하고 책망했으나 회개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노하여 BC586년에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로 하여금 예루살렘을 함락하게 하고 성전을 불살랐을 뿐 아니라 백성들을 바벨론으로 포로를 잡아갔다.
② 제2의 성전은 스룹바벨 성전이다.
제2성전은 스룹바벨이 바벨론에서 포로 귀환 후 세운 성전이다.
첫 번 성전만은 못했으나 그래도 굉장한 건물이었다.
이스라엘은 처음은 열심히 예배했으나 BC200년경에는 타락하여 예배를 폐지했다.
하나님은 BC166년 수리아왕 안디오쿠스 에피파 네스로 하여금 유대를 치게 하셨다.
수리아 군대는 예루살렘을 침략한 후 성전에 우상을 세우고 우상예배를 강요했다.
그 후 유대인 마카비우스가 수리아군을 물리치고 성전을 청결하고 수전절을 지켰다.
③ 제3의 성전은 헤롯 성전이다.
제3성전은 BC20년경 로마의 충복 헤롯이 유대인의 환심을 사기 위하여 46년간의 공사 끝에 건축했다. 이것이 예수님 당시의 성전이다. 예수님께서 깨끗케 하신 성전이다.
이러한 성전은 어떤 곳인가?
첫째, 주의 영원한 처소이다(왕상8:10-13, 9:3).
둘째, 언약궤의 처소이다(왕상8:21).
셋째,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집이다(사56:7).
넷째,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장소이다(대하7:12).
다섯째, 예수님의 피로 값 주고 사신 곳이다(골1:24, 행20:28).
다윗은 이 같은 성전을 건축하기를 소원했다(삼하7:1-3).
“나는 백향목 궁에 거하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 있도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에게 성전건축을 허락하지 않았다(대상22:8).
① 군인으로 전쟁을 많이 했다.
② 따라서 피를 많이 흘렸다.
하나님은 평화의 사람 솔로몬에게 이 일을 맡기셨다(삼하7:13).
그러므로 성전을 건축한다는 것은 우리 생애에 큰 영광이요 자랑이다.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시128:5).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시134:3).
여기 시온은 “성전” 곧 “교회”를 의미한다.
하나님은 “시온에서”(out of zion)복을 주신다고 한다.
하나님은 성도들에게 복을 주시되 교회를 통하여 축복하신다는 뜻이다.
~우리가 교회를 통하여 축복받는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우리가 교회를 통하여 축복받는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① 우리는 교회를 통하여 복음을 듣고 믿게 되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느니라”(롬10:17).
② 교회에 충성하는 성도로서 은혜 입지 못한 자 없다.
③ 부흥하고 은혜 넘치는 교회 성도들은 거의 축복받는다.
개인의 축복도 교회에서 오고, 국가의 축복도 교회에서 온다.
한때 부산 동래에 제일 높고 제일 큰 예배당이 우뚝 서 있었다. 동래중앙교회이다. 이 교회는 1967년에 준공했는데 건축비가 당시 1,200만원이 소요되었다. 그런데 이 교회는 전경백 장로님 혼자서 건축비 전액을 부담했다 한다.
그러나 그가 본래부터 돈 많은 부자는 아니다. 그가 부산에서 피난 생활하던 때는 거지 중에도 상거지였다. 영도에서 살았는데 거적을 둘러쓰고 자야했고, 벌벌 떨면서 추운겨울을 지내야 했다. 이집 저집 구걸을 해야만 살 수 있었다. 이 피난 시절 그는 엉엉 울면서 회개했다 한다.
그는 이북에서도 신앙생활은 하였으나 너무나 인색하여 충성도 안했고 연보도 많이 한 적이 없었다. 재산은 있었으나 바칠 줄 몰랐다. 금덩이처럼 아끼고 아낀 전답한평 못 가지고 나와서 알거지가 되어 살다보니 그것이 하나님의 채찍인 것만 같이 느껴졌다. 그는 회개하기를 “하나님께서 저에게 축복해 주신다면 혼자서라도 하나님의 성전을 지어 받치고 충성하겠습니다”라고 서원했다.
하나님은 그를 불쌍히 여기사 축복하셨고, 그는 서원대로 이룬 것이다. 그는 이기붕씨 별장을 구입하여 거기서 살았다. 하나님은 불충한 이기붕의 별장을 빼앗아 충성하는 전장로에게 되돌려 주신 것이다. “심은 대로 거두리라”
35. 하나님의 전, 하늘의 문
35. 하나님의 전, 하늘의 문
(창28:16-19)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갈대아 우르를 떠났다.
그는 100세에 아들 이삭을 낳았고, 이삭은 쌍둥이 형제 에서와 야곱을 낳았다.
야곱은 형 에서로부터 장자권과 축복권마저 빼앗았다.
억울한 에서는 “내가 내 아우 야곱을 죽이리라”고 했다(27:41).
리브가는 형 에서의 노가 풀릴 때까지 “몇 날 동안” 외삼촌 라반의 집에 피하라 했다(27:44). “어찌 하루에 두 아들을 잃으냐”(27:45).
야곱은 집에서 쫓겨나 밧단 아름 외삼촌 집으로 도망쳤다.
그가 한 곳에 이르렀을 때에 해가 졌다.
그는 외롭게도 광야에서 돌을 베개하고 잠이 들었다.
그는 그 밤에 사닥다리 환상을 보았다“(창 28:12-15).
1. 야곱이 꿈에 본 사닥다리 이상은 하늘로 통하고 있었다(12).
2. 야곱은 이 이상을 통하여 하나님의 약속과 큰 위로를 받았다(13).
3. 야곱은 이 사닥다리 이상을 본 후 큰 변화를 체험했다(16).
“야곱의 잠이 깨어 가로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1. 그는 무소부재하신 하나님께 대하여 알게 되었다(16).
2. 바로 그가 잠잔 그 황무지가 하나님의 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17).
3. 바로 그 곳이 하늘로 통하는 문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17).
야곱은 아침 일찍 일어나 베개 했던 돌로 기둥을 세우고 기름을 붓고 그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다. 벧엘은 하나님의 집이라는 뜻이다.
~나는 이 역사적인 사실을 오늘에 적용하고자 한다.
~나는 이 역사적인 사실을 오늘에 적용하고자 한다.
1. 우리도 야곱처럼 하나님의 전이 이 곳에 서게 될 줄 아무도 몰랐다.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16).
2. 우리도 야곱처럼 고백해야 한다.
“이에 두려워하여 가로되 두렵도다 이 곳이여”
3. 야곱에게 있어서 그 곳은 하나님의 전이었다.
“이는 하나님의 전이요”(17).
야곱은 하나님과 교제한 장소에 대해 하나님의 전이라 했다.
신약 시대에는 그리스도의 말씀이 전파되는 곳이 하나님의 전이다.
4. 야곱은 그 곳을 하늘 문이라 했다.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17).
하늘에 이르는 통로로서의 문이라는 말이다.
과연 이 곳은 천국에 이르는 문이 될 것이다.
5. 야곱은 아침 일찍 일어나 돌 기둥을 세우고 그 곳을 벧엘이라 하였다(18).
벧엘이란 “하나님의 집”이란 뜻이다.
그 곳의 본 이름은 루스였다. 루스는 “편도나무”란 뜻을 가진 지명이다. 그 곳은 정녕 루스성읍의 외곽들판으로 추측된다.
허허벌판이었던 루스가 벧엘이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신비하고 오묘한 하나님의 섭리와 뜻을 우리는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은 광야 루스에 하나님의 전을 세우셨다.
이제 우리도 야곱처럼 고백해야 한다.
“이곳은 하나님의 전이요 이는 하늘 문이로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야곱처럼 성전 돌기둥을 세우기 위하여 모였다.
이 곳은 이제 오래지 않아 벧엘이 될 것이다.
이 귀한 일에 참여한 자에게 복이 있을 것이다.
이 하나님의 뜻에 아멘하고 헌신하는 자에게 복이 있을 것이다.
이 영광스런 일에 동참하는 자가 복을 받을 것이다.
36. 한나의 기도
36. 한나의 기도
(삼상1:1-18)
삼상하는 마지막 두 사사 엘리와 사무엘의 기사로부터 시작하여 왕국시대의 두왕 (사울, 다윗)을 기록하고 있다.
주요 기사는 왕국건설의 유래와 다윗의 왕국 확장을 기록한다.
엘가나의 계보로부터 시작한다.
그에게는 한나와 브닌나라는 두 아내가 있었다.
한나는 무자하고 브닌나는 자식이 있었다(2).
(1) 한나는 남편의 사랑을 받았으나 무자했다.
(1) 한나는 남편의 사랑을 받았으나 무자했다.
제물을 갑절이나 주었고(4,5)
남편은 그녀를 열 자녀보다 더 사랑 하였다(8).
그러나 자녀 없는 슬픔을 누가 알랴?
그러나 그는 멸시받고 슬퍼해야 했다.
하지만, “울고 먹지 아니”했으나, 원망하지는 안했다.
(2) 슬픈 여인의 기도의 내용은 이러했다.
(2) 슬픈 여인의 기도의 내용은 이러했다.
① 그녀는 마음이 괴로워 슬퍼 통곡하며 기도했다(10).
② 그녀의 기도는 서원의 기도이다(11).
③ “고통을 돌아보시고”
④ “나를 생각하시고”라고 기도했다.
삼손이 그렇게 기도했다(삿16:28).
십자가의 죄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눅23:42).
한나가 그 중의 하나다.
⑤ 아들을 주시면 나실인으로 키우겠다고 서원했다.
성경에 나실인은 삼인이다(사무엘, 삼손, 세례요한).
⑥ 그녀는 오래 기도했다(12).
⑦ 그녀의 기도는 간절했다(15).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여호와 앞에 나의 심정을 통한 것 뿐이오니”
(3) 그녀는 술취했다는 오해와 책망까지 받았다(14).
(3) 그녀는 술취했다는 오해와 책망까지 받았다(14).
그러나 하나님은 그녀의 마음을 아시리라
(4) 엘리는 하나님의 응답이 있으리라 했다(17).
(4) 엘리는 하나님의 응답이 있으리라 했다(17).
(5) 하나님은 한나를 생각하시고 아들을 주셨고 한나는 서원대로 하나님께 바쳤다!
(5) 하나님은 한나를 생각하시고 아들을 주셨고 한나는 서원대로 하나님께 바쳤다!
한나는 그의 하나님을 찬양했다(2:1-11).
37. 허리가 꼬부라진 여인
37. 허리가 꼬부라진 여인
(누가복음 13:10-17)
오늘 성도 여러분들과 함께 예배드리게 된 것을 감사합니다.
광주은광교회 성도 여러분과 특별히 오늘 처음으로 우리 교회를 찾아주신 새 가족 여러분들께도 감사합니다. 함께 예배드리는 성도 여러분께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넘치기를 기원합니다.
우리는 어느새 한 해의 마지막 달에 접어들었습니다. 한 장밖에 남지 않은 때묻은 달력을 보면서 흘러가 버린 시간의 아쉬움과 허전함을 느낍니다. 아무도 저무는 해를 멈추게 할 수 없고 아무도 흐르는 세월을 붙잡아 두지도 못합니다.
그래서 게오르규의 소설에는 “25시”가 있고, 프라스코는 “제8요일”이라는 소설을 썼는지 모릅니다. 또 어떤 이는 “13월”이 있었으면 하고 바랩니다. 다 못 다한 일에 대한 아쉬움 때문입니다.
한번 떠나가면 영영 되돌아 올 수 없는 것이 네 가지라 합니다.
첫째는 입 밖에 나온 말이요, 둘째는 시위를 벗어난 화살이요
셋째는 지나온 생이요, 넷째는 놓쳐버린 기회라 합니다.
이들 중 어느 것 하나라도 원상회복이 불가능한 것들입니다.
정말로 오늘 우리의 예배는 의미 있는 시간입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초기에 주로 갈릴리 전도에 치중하셨습니다. 그 후기에는 예루살렘 전도였고, 그 중간에 베뢰아에서 전도하셨습니다(막9:51-19:27).
오늘 우리 본문은 베뢰아 전도 중에 허리가 꾸부러진 여인을 고치신 말씀입니다.
저가 오늘말씀 드리기 원하는 주제가 바로 “허리가 꾸부러진 여인”입니다.
이 말씀이 오늘 우리 모두에게 은혜가 되고 축복이 되기 원합니다.
(1) 허리가 꼬부라진 그녀는 정말 불행한 여인입니다.
(1) 허리가 꼬부라진 그녀는 정말 불행한 여인입니다.
“십팔 년 동안을 귀신 들려 앓으며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는 한 여자가 있었더라”(11).
그녀는 허리가 꾸부러져 조금도 펴지 못했다고 합니다. 물론 마음대로 일어서거나 머리를 들고 쳐다보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흔히 말하는 “꼽추” “곱사둥이” 인 것 같습니다. 의학 용어로 “척추교착염”인 듯합니다. 이때 그녀의 나이가 얼마인지는 모르나 결혼도 못한 처지였음이 분명합니다.
그녀는 오랜 병에 시달리다보니 가난했음은 몰론, 그 몰골도 흉측스러워 많은 사람들이 비웃고 조롱했을 법합니다. 이렇게 병에 시달린 것이 18년이라고 하니 그 비참함은 상상외로 컸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귀신들려 18년을 앓았다고 합니다.
그녀는 18년 동안이나 사탄에게 매여서 앓고 시달렸습니다.
이 귀신은 악하기 때문에 성경은 악신이라고 합니다(삼상16:14,15,23).
또 귀신은 더럽기 때문에 “더러운 귀신”이라는 말이 성경에 많이 나옵니다(마10:1,12:43,눅4:33,8:29, 행8:7).
그러므로 이 귀신은 악하고 더럽고 못된 일만 많이 하는 악신입니다.
서로 불화하게 하고 배반하게 합니다(삿9:23). 시기하게 하고 서로 다투게 합니다(약3:13-15). 거짓말하게 합니다(왕상22:21-23), 벙어리 되게 합니다(9:32). 눈을 멀게 하여 보지 못하게 합니다(마12:22). 귀머거리 되게 합니다(막9:25). 간질병으로 발작하게 합니다(마17:15,18). 괴롭게 합니다(행5:16). 사람을 미치게 합니다(요10:20).
저가 섬기던 교회 집사님 한 분이 이런 간증을 했습니다.
큰아들이 귀신들려 정신 이상자가 되었습니다. 미친 것입니다.
당시 그녀는 불신자였기 때문에 세상방법은 다 동원했으나 병은 낫지 안했습니다. 누군가가 “예수 나 믿어 보라”고 하기에 먼 길을 걸어 예배당엘 데리고 다녔습니다. 그러나 미친 아들은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예배당 유리창을 다 부수고 사고만 쳤습니다. 마침 그때 진주에서 김익두 목사님이 오셔서 집회한다는 소식을 듣고 아들을 데리고 그 집회에 참석했습니다.
그러나 아들은거기서도 미쳐 날뛰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디론가 도망쳐 버렸습니다.
그 와중에서도 그 부인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는 믿기 위해서 예배당에 간 것 아니고 아들 낫기 위해서 간 것입니다. 그런데 은혜를 받고 보니 아들보다는 자기가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집회 중에 큰 은혜를 받고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집회는 마쳤으나 아들은 찾을 수도 없었기에, 그는 혼자 집에 돌아와서 열심히 믿었습니다.
어느 날, 미쳐서 날뛰며 도망쳤던 그 아들이 맑은 정신을 가진 성한 사람이 되어 돌아온 것입니다. 하나님은 주님 믿고 의지하면서 주님 사랑하는 그 여인을 긍휼히 여기사 기도를 응답한 것입니다. 하나님께는 능치 못한 일이 없습니다.
같은 교회에 젊은 청년이 있었는데 교회는 그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도 미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가정도 불신가정이었는데 부모가 미친 아들을 위해 무당 푸닥거리를 계속하다가 가난한 가정은 살기도 힘들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교회로 데리고 나온 것입니다. 식구들은 잠잘 때에는 그를 쇠사슬로 손을 묶어 놓습니다. 그러나 그는 등잔불에 쇠줄을 끊는다며 불에 댔는데 손이 무섭게 화상을 입기도 했습니다.
온 교회는 열심히 기도했고, 하나님은 그를 치료해 주었습니다.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약5:15)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약5:16)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이 하나님께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불행한 사람도 예수님 앞에 나오면 행복해 질 수 있음을 믿습니다.
(2) 그녀는 허리가 꼬부라진 여인이었습니다.
(2) 그녀는 허리가 꼬부라진 여인이었습니다.
“십팔 년 동안을 귀신들려 앓으며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는 한 여자가 있더라”(11).
여기 “꼬부라져”라는 말은 한번만 아니고 이중으로 굽었다는 뜻입니다.
요컨대 심히 꾸부러졌다는 말입니다. 사탄은 앓게 하고 굽게 합니다.
히브리어에서 사단이란 방해자 대적자란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바른 길을 가로막고 방해하며, 성도들의 원수가 되고 대적 자가 됩니다.
신약성경에서는 사단을 악마, 악령으로 표현합니다.
이 같은 사단에게는 세 가지 분명한 이름이 주어집니다.
그것은 곧 “시험하는 자” “마귀” “참소하는 자”가 그것입니다.
사단은 교회가 부흥하는 것을 못보고, 성도가 잘 되는 것을 못 봅니다.
바른 것을 굽게 하고, 선한 것을 악하게 하고 고운 것을 추하게 만듭니다. 친구사이를 이간시키고, 교회가 부흥되는 것을 훼방놓습니다.
사단은 바른 손을 꼬부라지게 하여 못된 일을 하게 합니다.
사단은 발을 꼬부라지게 하여 바른 길을 못 가게 합니다.
사단은 눈을 비뚤어지게 하여 착시현상을 일으키게 합니다.
사단은 사람들의 마음을 꼬부라지게 하여 판단력을 잃게 합니다.
사단은 사람들의 입을 비뚤어지게 하여 헐뜯고 비난하고 참소하게 합니다.
사단은 사람의 생각을 삐딱하게 하여 신앙생활을 못하게 합니다.
태초에 하나님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우리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고 하셨습니다(창1:28).
여기 하나님의 형상이란 “의” “진리” “거룩”함을 의미합니다(엡4:24).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최초의 인간은, 의롭고 거룩하고 아름다웠습니다.
그래서 에덴동산은 축복의 동산이요 무죄의 동산이요 행복의 동산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하나님 앞에 추방당한 낙천사인 사단이 선한 인간을 악하게 만들고 의로운 인간을 불의하게 하고, 무죄한 인간을 죄인 되게 했습니다.
생각을 꼬부라지게 하고 마음을 비뚤어지게 했습니다.
이때로부터 불행이 왔습니다. 이때로부터 죄가 왔고 비극이 찾아왔습니다.
이때로부터 병이 왔고, 이때로부터 폭력이 왔고, 급기야는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이는 최초의 살인 사건이 벌어지게 된 것입니다.
김대두가 무고한 사람 17명을 살해하고 인간쓰레기가 된 것도 그 시초는 바로 여기서 부터입니다. 사단이 그 마음을 꼬부라지게 했기 때문입니다.
중학교 2학년여학생이 같은 또래 남학생들에게 윤간 당하는 것을 보고 그들에게 덤벼들었던 어머니마저 윤간한 사건이 이 땅에서 있었습니다. 이것이 어찌 사람들이 한 일이겠습니까?
제프리 다머는 20세기 최대의 살인마였습니다. 그의 손에 희생된 자가 무려 17명입니다. 그는 십대초반의 유색인종을 죽인 후 시체를 상대로 성교를 하고, 사체를 절단하여 냉장고에 보관했다가 불고기를 해 먹었습니다.
이는 금세기 미국에서 있었던 엽기적인 사건입니다.
정말 짐승만도 못한 것이 인간입니다. 사실 짐승은 원래 자기 모습 그 이상도 그 이하도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짐승만도 못할 때가 참으로 많습니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은 때로는 악마 이하의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휫 필드는 우리 인생을 “절반은 짐승이요 절반은 마귀처럼 생긴 존재”라 했는데,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우리 인간은 결국 하나의 그릇에 불과합니다.
“그 그릇에 사단을 담으면 악마가 되고 예수님을 담으면 성자가 된다”
흉악범 고재봉이는 조실부모한 후 고아처럼 살았습니다.
군에 가서 대대장장 박중령의 라디오 하나를 훔친 것 때문에 7개월간 형무소 생활을 하다가 나온 후 관대하게 보아주지 않은 박중령을 보복하기 위하여 그의 관사를 찾아 갔습니다. 그런데 박중령은 전속 가고 그때 이중령이 살고 있었는데 그것을 모르고 이중령 일가족 6명을 도끼로 살해했습니다.
그는 붙잡혀 사형선고를 받고 구치소에 수감 중 얼마나 무서웠던지 염라대왕으로 통했습니다.
그렇게 무섭고 악한 그가 예수 믿고 난 뒤부터 양처럼 온순해 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때문에 구치소 안은 온통 찬송 소리로 덮이게 되었고, 당시 구치소에 2,000명이 수용되었는데 1,800명이 그의 전도 받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는 항상 “인애 하신 구세주여 내 말 들으사 죄인 오라 하실 때에 날 부르소서” 337장을 부르다가는 울고 울다가는 또 기도했습니다.
어느 날 부평 군부대 뒷산에서 사형집행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는가?” 그는 요한복음 3:16절을 암송했습니다.
“또 할말이 있는가?” “검찬관님, 저가 웃을 때 방아쇠를 당겨 주세요”.
그가 찬송 337장을 부르며 울고 있을 때 차마 총을 쏠 수 없었습니다.
찬송을 다 부른 후 “하늘가는 밝은 길이 내 앞에 있으니” 찬송 545장을 다 부른 후 웃고 있을 때 30발의 총성과 함께 그는 천국으로 갔습니다.
그는 죽기 전 그가 쓰던 성경을 사형수 신형식에게 주면서 “내가 읽고 구원받은 성경 네가 가지고 구원받아라” 그에게 물려주고 갔습니다.
그가 마지막 남긴 말이 있습니다.
“내가 예수를 일찍이 알았었더라면 사람은 죽이지는 않았을 텐데”
성도여러분, 세상에는 악한 사람이 따로 없습니다.
살인마 김대두도 예수 믿고 성도가 되어 구원받았고, 흉악범 고재봉이도 염라대왕이 변하여 온순한 양이 되어 천국 갔습니다. 세기의 악마 제프리다머도 15회 연속 종신형을 언도 받은 다음, 자기 자신이 왜 예수를 일찍 안 믿고 있다가 이 모양 되었는지 후회스럽다고 했습니다.
사단은 우리로 하여금 죄 짓게 하여 지옥으로 끌고 갑니다. 그러나 여러분, 예수 믿고 새 사람 되어 예수님 따라 천국으로 갑시다.
(3) 감사하게도 허리 꼬부라진 여인은 예수님의 치료로 깨끗이 나았습니다.
(3) 감사하게도 허리 꼬부라진 여인은 예수님의 치료로 깨끗이 나았습니다.
“예수께서 보시고 불러 이르시되 여자여 네가 네 병에서 놓였다 하시고”(12),
대부분의 경우 병자가 예수님을 부르는 것이 상례입니다.
나환자 열 명은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했습니다(눅17:13).
백부장은 “말씀만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라고 했습니다(눅7:7).
만신창이가 된 나환자는 “주여 원하시면 나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라고 애원했습니다(눅5:12).
그런데 오늘 본문의 경우는 예수님께서 먼저 “여자여 네가 네 병에서 놓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12). 그녀는 병고침 받기 위하여 그곳에 온 것도 아닌데, 예수님께서는 자진하여 병을 고쳐 주셨습니다. 그녀는 생각지 않은 곳에서 축복을 받았습니다.
여기 “놓였다”고 한 것은 18년간의 질곡에서 완전히 자유로와진 것을 말합니다. 완전히 해방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이 얼마나 놀랍고 큰 축복입니까?
허리 꾸부러진 여인이 이런 축복을 받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로, 그녀는 그 불편한 중에도 안식일을 지켰습니다.
둘째로, 그녀는 그날 회당에서 드린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셋째로, 그녀는 그 회당에서 예배시간에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지성이면 감천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면 주님은 그보다 더 큰 은혜로 축복해 주십니다. 우리의 마음보다 주님의 손이 훨씬 더 큽니다.
허리 꾸부러진 여인은 불편한 몸을 이끌고 회당에 나와서 예배드렸습니다.
주님은 그 여인의 마음을 보시고 그녀에게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여자여 네가 네 병에서 놓였다”
인천 주안장로교회에 구관희 집사님이 있습니다. 그는 병원에서 위암 선고를 받고 보니 앞이 캄캄했습니다. 너무나 억울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습니다. 온 세상이 그를 외면한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냥 한일 없이 죽는다 생각하니 주님 앞에 부끄러웠습니다.
무엇으로 내 인생의 마지막을 장식할까 고민하다가 성경쓰기를 생각했고, 시한부인생을 성경 필사에 전념하게 되었습니다. 성경을 못 다 쓰고 죽으면 어쩌나해서 서두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성경을 날마다 옮겨 쓰던 중 하나님의 역사로 위암을 치료받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건강한 몸으로 필사본을 완성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긍휼히 여기신 것입니다. 지금 국제 성서박물관에는 세계적으로 가치 있는 성경 만 여권이 전시돼 있는데 그 중에 구관희 집사의 성경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고시절부터 “40대가 되면 대통령의 부인이 될 것”을 꿈꾸며 살아온 부인이 있었습니다. 보통 남자들의 프로포즈는 거들떠보지도 않다가 지금의 남편을 만나서 아들 딸 낳고 살다보니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대통령은커녕 대통령 비서도 못 될 것 같아 “헛 꿈을 꾸었구나” 한탄하면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때 마침 남편이 LA 은행지점장으로 발령이 나서 LA에 오게 되었고, 친구의 권면 따라 교회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예수 믿고 학습 받고 세례 받은 후 어느 날 성경 공부 시간에 이런 말씀을 배웠습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예수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는 것이니 내가 곧 영부인이 되었구나” 그때 그녀는 이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예수그리스도의 신부 됨에 대한 행복을 얻었습니다. 그때부터 세상이 바꾸어졌습니다. 세상만사가 다 감격이었습니다. 일하는 것이 기쁘고 사는 것이 행복해졌습니다. 모든 것이 다 달라져 보였습니다. 그녀는 이런 간증을 했습니다. “저는 대통령 부인은 못되었으나 예수님의 신부가 되어 천국보좌에 앉아 있습니다”
38. 히스기야 왕
38. 히스기야 왕
(대하 31:20,21 왕하18:5-8)
본문은 북왕국 이스라엘의 패망 후 유다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북왕국 이스라엘의 멸망원인은 무엇인가?
북 왕국은 여로보암으로부터 시작된 우상숭배 때문에 기울기 시작하여 19대 호세아 왕 때 건국 210년 만에 앗수르에게 망했다.
(1) 외교정책이 잘못되었다.
(1) 외교정책이 잘못되었다.
당시 강국 앗수르가 동에 있고 애굽이 남에 있었다.
불편부당해야 했고, 오로지 하나님만 의지해야 했다.
호세아는 처음 앗수르에 조공을 바쳤다(왕하7:3)
그 뒤 앗수르를 멀리하고 애굽왕과 가까이하면서 조공을 안 바쳤다(17:4).
이것이 원인이 되어 결국 망한 것이다.
요컨대 하나님 의지하지 않고 세상 나라를 의지한 것이다.
(2) 우상숭배에 그 원인이 있다.
(2) 우상숭배에 그 원인이 있다.
이스라엘 모든 왕들은 다 우상을 숭배했다.
그들의 죄는 다음과 같다
①우상숭배 ②율법을 버림 ③선지자 불순종
하나님의 요구는 오직 하나님만 경외하라는 것이다(왕하17:36,39).
북 왕국의 19명 왕중 한명도 선한왕이 없었다.
자연사 8명, 살해당한 자7명, 자결1명(시므리) 전사자1명(아합)
하나님의 심판1명(여로보암) 추락사1명(아하시야)
이들중에 한 사람도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지 안했다.
악한자, 배교자, 우상숭배자는 망한다.
(3) 히스기야왕은 유다 13대왕으로 아하스왕의 아들이다.
(3) 히스기야왕은 유다 13대왕으로 아하스왕의 아들이다.
아하스왕은 유다 12대왕으로 가장 악한 왕이다(므낫세).
그는 부정직했다(왕하16:2).
그는 가증한 이방인의 몰록신을 섬겼다(아들을 우상에게 바침).
그는 금송아지를 예배하고 바알신을 섬겼다.
그래서 역대기는 “이스라엘 왕 ” 아하스“라 했다(대하28:19).
아하스왕 때 아람왕 르신과 이스라엘왕 베가가 침입했다.
이것은 우상숭배에 대한 죄 값이다.
이 죄 때문에 아람왕의 내습에 “이기지 못하니라”(왕하16:5).
그는 회개하고 하나님의 도움 구해야 했다.
그런데도 앗수르 왕에게 도움을 구한 것은 불신앙이다(왕하17:7,8,9).
그는 곤고한 때 더욱 범죄했다(대하28;22).
이방신은 그를 구하지 못했다.
살길은 하나님밖에 없다!
(4) 히스기야왕은 두 번째로 선한 왕이다(첫 번째는 요아스)
(4) 히스기야왕은 두 번째로 선한 왕이다(첫 번째는 요아스)
이러한 악한 왕 밑에서 선한 왕이 태어나다니 신기한 일이다.
① 좋은 자녀는 하나님의 은혜이다.
② 자녀는 맘대로 못한다.
(5) 히스기야왕의 없적은 대단하다.
(5) 히스기야왕의 없적은 대단하다.
그는 25세에 왕이 되어 29년 동안 나라를 잘 통치했다.
① 두 번째 선한 왕이다.
가장 부유했던 왕이다. 정직했다(왕하18:3).
② 우상을 파괴하고 놋뱀을 부수었다(왕하18:4).
③ 솔로몬 이후 가장 성대한 유월절을 지켰다.
④ 부왕 아하스가 불신앙으로 앗수르에 조공바친 것은 금하고 앗수르를 배척하고 섬기지 않았다(왕하18:7).
⑤ 앗수르 왕 산헤립의 185,000명을 기도로 물리쳤다(왕하19:35).
⑥ 죽을병이 들었을 때 기도하여 치료 받았다(왕하20:5).
인생에게는 굴곡이 많다
(6) 히스기야 왕의 신앙은 어떠했는가?
(6) 히스기야 왕의 신앙은 어떠했는가?
① 선과 정의와 진실함으로 행했다(대하31:20).
그는 정직했다.
② 모든 일에 하나님을 구했다(21).
하나님의 뜻을 찾았다.
자기 맘대로 행치 않고 하나님께 기도했다.
③ 그는 하나님을 의지했다
신앙은 하나님께 맡기고 사는 것이다.(왕하18:5).
④ 하나님께 연합하여 계명을 지켰다(왕하18:6).
⑤ 모든 일에 일심이었다(대하31:21). (all heant)
초지일관이었다. 시종여일이었다.
히스기야는 29년간이나 한결 같았다.
앗수르의 침략 때에도 전에 올라가 기도했다.
죽을병이 들었을 때도 벽을 향해 기도했다.
그는 심지가 견고했다(사26:3).
Fulton은 기선의 진수식날 배가 가라 안고 말았다.
눈은 대나무를 쓰러트린다.
그러나 눈은 온데간데없고 대나무는 다시 일어난다.
⑥그는 죽을병에서 치료받았다(왕하20:1-11).
선한 사람도 병들고 정직한 사람도 실패한다.
인간은 하나님의 지하지 않고는 살 수 없다.
히스기야의 기도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그는 낯을 벽으로 향하고 기도했다.
그는 자기의 진실과 근심을 기억해 달라고 기도했다(3)
이렇게 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는 심히 통곡했다. “심히 통곡하더라”(3).
하나님은 이사야에게 히스기야의 기도 응답을 전하라 했다.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4-7).
① 너의 병은 낫는다(5).
② 3일 만에 여호와의 전에 올라갈 것이다(5).
③ 너와 이성을 앗수르의 손에서 구원할 것이다(6).
④ 15년을 더 살게 할 것이다(6).
이사야가 무화가 반죽을 종처에 붙이니 병이 나았다(7).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응답한 것이다.
우리가 기도할 때 “기억해 달라”고 할만 한 것이 있는가?(3).
“통곡”하면서 기도한 경험이 있는가?
유다 왕중 가장 악한 아하스왕에게서, 가장 선한 왕인 히스기야가 났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또 히스기야 같은 왕에게서 므낫세 같은 악한 왕이 났다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므낫세는 부친이 헐어버린 신당을 짓고, 바알과 아세라를 섬긴 정말로 무서운 악한 왕이다.
우리는 자녀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가?
39. 히스기야의 기도
39. 히스기야의 기도
(왕하20:1-11)
히스기야는 유다 왕 아하스의 아들이다.
아하스는 유다 열왕 중 가장 악한 왕이다.
“자기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여”우상을 섬겼다(왕하16:3).
그래서 역대서는 “이스라엘 왕 아하스”라 할 정도다(대하28:19).
이 죄 때문에 아람 왕의 내습에 “이지지 못하니라”(왕하16:5).
이 같은 악한 왕에게서 히스기야가 난다는 것은 이상하다.
그는 29년간 선정을 베풀었다.
① 다윗 본받아 하나님만 공경했다.
② 모세의 율법준행, 계명과 율법을 지켰다.
③ 부친 아하스가 세운 산당과 우상 파괴했다.
④ 백성들이 우상시한 모세의 놋 뱀을 없애다.
⑤ 솔로몬을 제외한 남북왕 중 제1이었다
⑥ 앗수르왕 산헤립의 185,000을 기도로 물리쳤다.
그러나 이 같은 히스기야였지만 죽을병이 걸렸다.
그의 기도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1) 그는 낯을 벽으로 향하고 기도했다(2).
(1) 그는 낯을 벽으로 향하고 기도했다(2).
(2) 그는 자기의 진실과 근심을 기억해 달라고 기도했다(3)
(2) 그는 자기의 진실과 근심을 기억해 달라고 기도했다(3)
이렇게 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3) 그는 심히 통곡했다.
(3) 그는 심히 통곡했다.
“심히 통곡하더라”(3).
하나님은 이사야에게 히스기야의 기도 응답을 전하라 했다.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4-7).
① 너의 병은 낫는다(5).
② 3일 만에 여호와의 전에 올라갈 것이다(5).
③ 너와 이성을 앗수르의 손에서 구원할 것이다(6).
④ 15년을 더 살게 할 것이다(6).
이사야가 무화가 반죽을 종처에 붙이니 병이 나았다(7).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응답한 것이다.
우리가 기도할 때 “기억해 달라”고 할 만한 것이 있는가?(3).
“통곡”하면서 기도한 경험이 있는가?
유다 왕 중 가장 악한 아하스왕에게서, 가장 선한 왕인 히스기야가 났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또 히스기야 같은 선한 왕에게서 므낫세 같은 악한 왕이 났다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므낫세는 부친이 헐어버린 신당을 짓고, 바알과 아세라를 섬긴 정말로 무서운 악한 왕이다.
우리는 자녀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