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1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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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견뎌 낼 수 있는 ‘위로’
사도행전 18:1-11
사도행전은 하나님께서 복음 전파자의 길을 어떻게 인도하시는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그 여정을 함축해서 우리에게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지금까지 제가 사도행전의 본문을 가지고 이 자리에 설 때마다 ‘전도자의 삶’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말씀을 나누었는데요, 전도자 빌립의 모습을 통하여 복음을 전하는 자로서 가져야 하는 자질과 복음의 장벽을 뛰어넘는 사도 바울의 믿음을 다루면서 전도자가 가져야 할 믿음의 내용에 살펴 보았습니다.
오늘은 제목 그대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며 살아가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특별한 ‘위로’에 관하여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복음을 전하는 쉽지 않은 환경과 수많은 방해 앞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복음 전도자의 길에 있다는 사실을 우리 모든 성도님들이 깨닫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거기서 주어지는 위로를 경험하는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함께 본문을 살펴 보고자 합니다.
사도 바울은 2차 전도 여행의 종착지인 고린도 지역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도 그는 복음을 가로막고 있는 두 종류의 장벽을 만나게 됩니다.
하나는 고린도 도시가 가지고 있는 특성에서 비롯된 장벽인데요, 성도님들이 잘 알고 계시듯이 고린도는 당시 상업이 상당히 발단한 도시였습니다. 그리고 부유한 동시에 타락한 도시였습니다. 사람들은 넘치는 돈으로 유흥을 즐겼고 부족함 없이 생활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사도 바울이 전한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지신 십자가를 따라야 한다는 복음의 메시지는 전혀 매력적으로 다가올 리가 없었던 것이죠.
이 뿐만 아니라 고린도 도시 뒤편에는 아프로디테 신전이 있었고, 거기에서는 음란한 제사가 매일 드려지는 형태의 우상숭배가 만연했던 곳이었습니다.
또 하나의 장벽은 그곳에서도 여전히 복음을 거부하는 유대인들이었는데요, 지난 주 담임목사님의 말씀을 통해 시기심이 가득한 유대인들의 모습을 떠올려 볼 때, 사도 바울이 회당에서 복음을 전할 때 마다 얼마나 많은 방해가 있었고, 그들에게 갖은 핍박을 받았는지를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부와 우상숭배가 도시를 지배하고 있는 상황과 유대인들의 직접적인 방해 공작 앞에서 사도 바울은 분노했고, 복음을 거부하는 그곳을 미련 없이 떠나고 싶었습니다. 실제로 사도 바울의 전도여행의 모습들을 돌아보면, 그는 어느 곳에라도 복음을 전하고자 했지만, 동시에 복음을 거부하는 곳이라면 미련 없이 그곳을 떠나 다른 곳에서 복음을 전하는 과감한 행동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에서도 그러하고 싶었습니다. 6절을 보시면 그는 옷을 털며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다’라는 저주를 퍼붓고 미련 없이 떠나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고자했던 바울이 오늘 본문 끝을 보시면 그곳을 떠나지 않고 오히려 회당을 옮겨 그곳에서 1년 6개월이라는 시간을 지내면서 열심히 복음을 전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시간은 사도 바울의 전도 여행 중에서 에베소 다음으로 오래 머문 시간입니다.
이 부분을 묵상하면서, 하루도 견디기 힘든 그곳에서, 무엇이 그로 하여금 1년 6개월이라는 시간을 있도록 했을까? 이 부분을 생각하고 질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면서 저는 이 답이야말로 사도 바울의 때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복음을 전하기에는 이곳이 척박한 곳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에서 우리를 전도자로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비결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무엇이 그를 견디게 했을까?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사도 바울이 그 시간들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 때문이었습니다.
10절을 보시면 하나님은 사도 바울을 향해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라고 말씀하시면서 사도 바울을 위로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위로가 그를 그 곳에서 하루 하루를 견딜 수 있도록 했습니다.
저는 이 시간, 본문 속에서 사도 바울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의 구체적인 면모들을 함께 살펴 보고자 하는데요, 이러한 하나님의 손길을 발견하고, 함께 나눔으로, 우리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함께하시는 위로의 손길을 경험하게 되는 시간이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전도자의 길을 걸어가는 자의 삶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위로’하시는가?
전도자의 길을 걸어가게 하시는 하나님의 위로. 그 첫 번째는
하나님은 그 길을 걸어가는 자를 절대로 “외롭지 않게 하십니다.”
전도자의 길을 걸어갈 때 가장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힘든 부분은 바로 ‘외로움’입니다. 내가 속한 학교나 혹은 직장, 그리고 가정에서, 홀로 서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다수의 믿지 않는 현장 속에, 적은 무리에 속한 우리로서는 기가 죽을 때가 많고, 복음을 입 밖으로 내뱉고자 하는 용기를 잃을 때도 많습니다.
이런 상황에 놓인 우리에게 하나님은 “내가 너와 함께 있다”고 말씀하삽니다.
이 말씀 앞에서 어떤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말씀이 실질적으로 어떤 위로가 되는가? 의문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그저 이 위로가 말 뿐이라면 그것이야 말로 험난한 상황에 놓여진 사람에게는 ‘희망 고문’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을 자세히 살펴 보면, 하나님께서 이 약속과 더불어 함께 하심의 증거들을 분명히 보여주고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1절에서 3절까지를 다시 읽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 후에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한 사람을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 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 생업이 같으므로 함께 살며 일을 하니 그 생업은 천막을 만드는 것이라”
고린도에 도착한 사도 바울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라고 하는 부부를 만나게 됩니다.
이 본문 속에서 하나님의 함께 하시는 손길을 살펴보고 있는 우리는 바울과 이 부부의 만남을 주목해야 합니다.
2절에 이 부부에 관한 소개를 잠시 하고 있는데요, 이들은 ad 49년에 글라우디오가 유대인을 로마에서 추방하는 사건으로 인하여 거기서 쫓겨나 다니다가 고린도에 정착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3절에는 이들의 직업이 사도바울과 같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흔하지 않는 배경을 가진 이방인들이 같은 직업을 가졌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사실입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그렇게 많은 직업군 속에서, 그리고 만나는 많은 사람들 속에서 그들 부부가 ‘그리스도인’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뿐만 아니라, 18장 26절에는 요한의 세례만 알고 있었던 아볼로라는 유대인을 이들 부부가 가르쳤다는 사실을 통하여, 사도 바울이 전하는 복음의 내용에 박식한 자들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타지에서 단 한번의 만남 가운데, 이런 공통점을 많이 가진 사람을 만날 확률이 얼마나 있을까요? 그 사람을 만가기 위해 계획을 세우고 몇 달을 지켜보지 않는 이상, 이런 만남을 만들어 내기란 여간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만큼 사도 바울에게 이들 부부는 지금 이 순간을 위해 예비되어 있는 것 같은, 그야말로 준비된 일꾼이자 동역자였습니다.
저는 사도 바울에게 이들 부부와의 만남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을까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이 고린도 지역에서 감당할 사역을 위해 모든 사건 위에 계셔서 그 두 부부와의 만남을 주도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가 느껴졌습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야곱의 계보를 이어 나가기 위하여 요셉을 미리 애굽의 노예로 팔려 가게 하셨던 것처럼, 로마에서 쫓겨난 이들 부부가 고린도에서 바울의 힘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5절에 보시면,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부터 내려왔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는데요,
바울은 고린도에 오기 전 아덴에서 실라와 디모데를 마게도냐의 교회들을 방문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다시 고린도에서 합류했는데요, 고린도 후서 11:9절에 보시면 그들이 사도 바울에게 왔을 때에, 마게도냐의 여러 교회에서 사도 바울의 사역을 돕기 위해 모은 헌금을 가저 와서 그가 사역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사도 바울이 그곳에서 혼자 고군부투하지 않도록 복음을 전할 수 있는 환경과 이를 도울 수 있는 사람들을 붙여 주셨습니다. 그것을 통해 바울은 다시 복음을 전할 수 있는 힘과 위로를 얻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전도자의 길을 걷는 우리를 결코 홀로 내버려 두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위로의 ‘손길’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말로만 하시는 분이 아니라 함께 하심의 분명한 증거들을 우리 가운데 보여 주십니다. 그것이 물질이든지, 사람이든지, 어떤 통로를 통해서든지 그 위로를 우리에게 전달하고자 하십니다.
하나님의 강력한 섭리로 인하여 만나게 된 바울과 아굴라 부부의 만남과 실라와 디모데의 지원에서 바로 이것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 성도님들이 이 말씀을 통하여, 내 삶에 주어진 전도자의 길을 걸어 갈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결코 홀로 내버려 두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그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은 정말 소수이고, 어쩌면 주위를 둘러 보았을 때, 나 혼자 그 길 중앙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은 어떤 방법을 통해서든지 홀로 그 길을 걷게 하시지 않게 하십니다.
저도 얼마 살지 않는 삶을 돌아 볼 때에, 이런 하나님의 위로의 손길이 많았구나라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때 그 장소에 가지 않았으면 만나지 못했을 사람들, 그리고 그 사람들로 인하여 나에게 열려진 수많은 기회들과 은혜들이 저를 여기까지 오게 했습니다.
이 자리에, 그리고 영상 앞에 앉아 계시는 우리 성도님들에게도 분명한 하나님의 위로의 손길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시간 지금까지 우리를 이렇게 인도하신 하나님께서 내가 있는 곳에서 감당해야 할 모든 상황 가운데 함께 하심의 증거들을 마련하셨고, 그 상황 속에서 분명히 보여줄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사람의 악한 계획도 하나님의 일을 위해 선으로 사용하실 수 있는 하나님의 섭리가 우리 가운데 있어, 그 하루 하루를 견뎌내고, 그 사명을 이어 나가게 하실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위로를 믿고 바라는 귀한 성도님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전도자의 길을 걸어가게 하시는 하나님의 위로. 그 두 번째는 하나님은 전도자의 마음 속 ‘두려움을 제거해 주십니다’
우리가 전도자의 길을 걸어갈 때, 늘 동반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핍박과 그로 인해 오는 ‘두려움’입니다. 저의 어릴 적 복음을 전하는 삶을 가장 방해했던 것은 바로 ‘창피 당할 것’에 대한 두려움이었습니다.
그때는 이상하게 육체적으로 힘든 것 보다, 창피를 당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가장 컸습니다. 그래서 교회 다니는 것 자체도 굉장히 창피했고, 이것으로 인하여 놀림을 당할 것에 대한 두려움이 늘 저를 사로잡았습니다.
이처럼,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각 사람의 마음에는 저마다의 두려움이 존재합니다. 손해보는 것에 대한 두려움, 고통을 겪는 것에 대한 두려움, 나에 대한 시선이 평가절하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 이외 각자가 가지고 있는 약점과 더불어 제각각의 두려움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에게도 이런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사도 바울이 복음 전파함으로 받았던 안팍으로의 공격을 생각한다면, 사도 바울에게 두려움은 유대인들로 받았던 육체적, 정신적 고통에 대한 두려움이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사도 바울의 마음은 흔들렸습니다.
이런 그에게 하나님은 직접 음성으로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을 좀 더 이해하기 쉽게 해석하자면, ‘두려움이 너로 하여금 말하지 못하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도 바울이 무엇 때문에 두려워했는지, 그 두려움이 얼마나 컸는지, 그리고 그 자리를 얼마나 떠나고 싶어 했는지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직접 말씀하심으로 바울의 마음을 위로하셨습니다.10절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하나님은 이런 확실한 음성으로 함께 하시고자 하는 약속을 들려주시고, 그 마음 가운데 있는 두려움을 제거해 주셨습니다. 그 뿐 아니라, 사도 바울이 두려워하는 일들 가운데서 피할 길을 열어 주기 위해, 거할 곳과 함께 동역할 사람들을 만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하신 이유는 방금 우리가 읽었듯이 아직 이 고린도 지역 안에 하나님이 정하신 이들이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룰 수 있도록, 우리에게 부여된 사명을 다할 수 있도록, 그것을 막는 내적인 두려움 뿐만 아니라 외적인 요소까지 간섭하여 이끌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여기서 우리가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는데요, 그것이 무엇이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위로하시는 손길은 문제 그 자체를 만나지 않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문제 가운데서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과 그 길을 열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의 길에, 방해를 만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 사도 바울에게서 보여줬듯이 마태복음 28:20절 말씀으로, 마지막 명령을 남기시고 떠나가시는 예수님의 위로를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여러분 이 사실을 진심으로 믿으십니까?
이 약속의 위로는 우리 가운데 영원히 지속되는 약속입니다. 다윗 또한 시편 23:4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이처럼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협하는 모든 요소들을 제거해 주실 것이기에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위협을 받을 수 있겠지만, 그 위협에서 벗어날 길을 열어주시고 반드시 돕는 손길을 붙여 주실 것입니다.
매순간 그 두려움으로 인하여 포기하고 싶을 때에도, 그 순간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주시고 다시금 우리의 결단을 굳건하게 붙들어 주실 것입니다.
“예수 늘 함께 하시는네”라는 찬양에 보면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고단한 인생길 힘겨운 오늘도 예수 내 마음 아시네, 지나간 아픔도 마주할 세상도 예수 내 마음 아시네, 믿음의 눈들어 주를 보리 이 또한 지나가리라 주어진 내 삶에 시간속에 주의 뜻 알게 하소서”
이 찬양의 가사처럼, 예수님은 이미 우리가 걸어가고자 했던 길을 가셨기에 누구보다 우리의 형편과 마음을 잘 아십니다. 여기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주를 바라 볼 때에 내 안에 두려움을 예수님께서 제거해 주실 것이라는 사실을 믿는 것 뿐입니다.
이 시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위로의 음성으로 우리 마음을 돌아보시면서, 내가 속한 현장 속에서, 직면한 문제들이 무엇인지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무엇이 우리를 가장 두렵게 하는가? 그것은 나의 내면의 문제일수도 있고, 외적인 압박과 같은 문제 일 수도 있습니다.
함께 기도할 때에, 이런 구체적인 문제점들을 위한 기도가 우리 가운데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본문이 말해주고 있듯이 우리의 약점과 부족함을 채워주고, 두려움을 제거해 주시는 하나님의 위로가 분명히 있습니다.
그것을 기대하고 믿는 마음으로 함께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두려움을 제거해 주시고, 그 삶을 이어나갈 수 있는 용기와 환경을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나누고 싶은 전도자의 길을 걸어가게 하시는 하나님의 위로. 그 세 번째는
하나님은 전도자에게 열매를 보여주십니다.
농부를 땀 흘리게 하는 것은 열매에 대한 ‘기대’ 때문입니다. 학생도 공부에 가장 큰 흥미를 가지고 열심히 하게 되는 경우도, 한만큼 성적이 오르는 사실을 직접 경험할 때입니다.
이와 같이 ‘열매’는 이를 위해 수고한 사람을 위한 최고의 위로이자, 동기부여와도 같습니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 속에서 땀흘리는 자의 수고가 결코 헛되지 않게 보증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농부가 아무리 열심히 밭을 가꾸더라도, 농부의 열심과 상관없이 자연재해나 혹은 야생동물들의 방해로 한해의 수고를 거둬들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이 하는 모든 일에는 이런 위험성이 있으며, 동시에 이런 불안감을 가지며 임하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에게 보여주는 하나님의 보증은 이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확신있게 만들고 더 힘차게 만들게 하는데요, 그것은 바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 살아갈 때, 그 노력과 수고가 결코 헛되지 않게 된다는 사실로서 보여 주십니다. 우리가 눈물로 뿌린 의의 씨앗을 하나님께서 열매 맺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복음 전도자의 삶 가운데 주시는 하나님의 가장 큰 위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요즘 제가 관심을 가지고 보는 ‘슬기로운 의사생활’이라는 드라마가 있는데요, 요즘 딸을 키우면서 감성이 풍부해져서 그런지, 그것을 보면서 참 많이 울고 웃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드라마를 보면서 병원의 일상을 가장 현실적으로 그려 놨다고 평가하고 있는데요, 거기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12시간이 넘는 수술을 하고도 환자가 살아났다는 사실을 기뻐하는 보호자들을 바라보면서 웃고 있는 의사들의 표정입니다.
아마도 그것이 그들이 피곤을 이겨가며 자신의 몸을 돌보기보다, 환자를 우선적으로 돌보며 살핀 것에 대한 위로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도 위협을 무릅쓰고 고린도에 남아 복음을 전하는 사도 바울에게 열매로 화답하셨습니다.
8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또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안과 더불어 주를 믿으며 수많은 고린도 사람도 믿고 믿어 세례를 받더라”
저는 이 부분을 묵상하면서 고린도에 첫 입성했던 때를 떠올려보았습니다.
화려했지만 복음을 거부하는 자들이 다수였던 도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죄악들이 펼쳐진 심판을 받아도 할 말이 없는 도시, 이 고린도를 바라보며 과연 이곳에서 복음의 열매가 자랄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절로 들었을 것 같습니다.
이런 마음 가운데 하나님은 이 곳에 ‘내게 속한 백성이 많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에 따라 이렇게 죄가 만연한 고린도 도시 가운데 큰 교회가 생겨나게 하셨고 그리스도인들이 자라나게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정확한 이름들이 나와있지 않지만, 로마서 16장에 보면 사도 바울이 고린도에서 수고한 열매들이 언급되어 있는데요, 그리스도의 일꾼이라고 불리는 뵈뵈와 로마서를 대서한 더디오, 이 외에 구아도, 글로에, 가이오, 스데바나, 브르나도, 아가이고와 같은 귀한 첫 열매들을 맺게 되었고, 또한 이들을 통해 영적으로 척박한 고린도 지역에 복음의 씨앗을 뿌리는 일들이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확실한 보증을 기억하며 우리에게 주어진 전도자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그 열매가 때론 단기간에 우리 손에 쥐어질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1880년대에, 부산에 고학윤이라는 무명의 전도자가 있었습니다. 성도님들도 이 이름을 처음 들어 보셨을거라 생각합니다. 그 사람은 한국교회의 역사에 획을 그을만한 위대한 업적을 남기지 않았지만 그의 복음에 대한 열정은 여전히 우리에게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그는 부산의 모든 골목들을 다니면서 돌을 맞아가며 복음을 전했다고 합니다. 이것이 그의 행적을 기록한 전부입니다.
아마도 고학윤이라는 무명의 전도자는 자신이 살아있을 때, 열매보다는 핍박을 더 많이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140년이 지난 지금 부산을 밝히는 십자가들을 바라 볼 때, 하나님께서는 고학윤이라는 무명의 전도자를 비롯한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는 수많은 전도자들이 흘린 눈물과 수고를 잊지 않으시고 열매 맺게 하신 증거임을 저는 확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말씀을 듣고 기도할 때에, 쉽지 않는 전도자의 삶 가운데, 그 삶을 이어가게 하시는 하나님의 위로의 손길이 있음을 믿고 결단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를 위로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믿는 결단은, 결국 사도 바울이 그러했듯이 ‘순종’밖에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떠나기 싫어도 하나님의 뜻이 그렇지 않다면 당장 그곳을 떠났고,
떠나고 싶어도 있으라 하시면 그곳에 있었습니다.
자신의 눈으로 보기에 여기에 무슨 열매가 맺을 수 있는가라는 생각이 들었을지라도 하나님의 남은 백성이 있다고 하기에, 1년 6개월이라는 그 시간들을 인내했을 뿐만 아니라, 그 어느때 보다도 포기하지 않고 적대하는 유대인 뿐만 아니라 이방인들을 향해 복음을 전했습니다.
저는 우리 성도님들이 이 사실들을 기억하시면서 다시 한번 우리에게 주어진 복음 전파의 사명을 충실히 감당하는 성도님들이 되었으면 좋겠고, 그런 결단이 우리 가운데 일어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지금 당장 최종 목적지를 향한 먼 걸음을 결단할 수 없다면, 하루 하루를 견디고, 그 사명을 이어 나가기 위한 마음을 가져 보시기 바랍니다. 이런 마음을 하나님께서는 우습게 보지 않으시고 가장 귀하게 여겨 주실 것입니다. 또한 그 마음이 끊어지지 않도록 계속해서 돕는 이를 붙여 주시고 마음 가운데 두려움을 제거해 주실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위로의 손길이 앞으로 전도자의 삶을 걸어가고자 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의 삶 가운데 충만하게 임하길 사랑하는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 함께 이 말씀을 기억하시면서 찬양 했으면 좋겠는데요,
오늘 당장 큰 결심을 하기 보다, 오늘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혹은 시작하면서, 매일의 작은 결심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하루를 견딜 수 있게 하시는 하나님의 위로의 손길이, 우리가 목적지에 도달할 때까지, 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소명이 이룰 때까지, 더 나아가 사랑하는 주님의 얼굴을 뵐 때까지 이끄실 것입니다. 그런 고백으로 함께 내일 일은 난 몰라요. 찬양하겠습니다.
기도제목
말씀을 기억하며
1) 전도자의 삶을 살아가겠습니다.
2) 나에게 맡겨진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힘과 위로를 주시옵소서.
2. 예배 정상화를 위하여
1) 예배 정상화에 동참하는 마음과 회복을 위하여
2) 교육공동체의 예배 정상화의 모든 과정과 부어주실 은혜를 위하여
3. 성도님들의 건강을 위하여
1) 장수철집사, 장원범집사, 구회남권사, 엄문진집사
강아장집사, 김중태집사 김보덕장로, 김태숙권사
4. 나라의 안정화를 위하여
1) 코로나 19바이러스와 싸우는 모든 의료진들과 정부 관계자들에게 힘과 지혜를 주셔서 끝까지 안전히 지켜 낼 수 있도록
2) 학교와 공공기관의 정상화, 상업의 안정화를 위하여
첫 번째 기도제목으로 함께 기도할실 때에, 오늘 들은 말씀을 기억하며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우리는 복음 전도자의 하루 하루를 견뎌내게 하실 수 있는 하나님의 위로에 관하여 살펴 봤는데요, 하나님은 특별히 사명을 감당하고자 헌신하며 결단하는 자들의 삶을 결코 홀로두지 않으시며, 그 방해로 좌절하게 두지 않으시는 분이시며, 그 노력과 수고를 헛되게 하지 않는 분이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위로를 기억하며, 그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은혜를 구하며 기도합시다. 함께 찬양으로도 고백했듯이 큰 결단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오늘 하루 버틸 수 있는 은혜, 그 사람을 용서할 수 있는 마음, 그 사람을 섬길 수 있는 마음, 그 마음을 하나씩 하나씩 구하며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우리 가운데 이런 기도가 끊어지지 않는다면, 이 작은 결심들이 모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우리 삶 가운데 하나님의 뜻이 실현되는 영광이 펼쳐 질 것입니다. 이것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함께 간절히 기도하도록 하겠습니다.
두 번째로 기도하실 때에, 함께 예배 정상화를 위한 기도를 드렸으면 좋겠습니다.
오늘부터 ‘사회적 거리두기’에서 ‘생활 속 거리두기’로 전환이 되었는데요, 여전히 조심해야 할 상황이지만 동시에 예배 정상화를 위한 본격적인 준비를 해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이를 위해 기도할 때에, 먼저 예배자로서의 마음가짐을 다시 한번 돌아보는 기도를 드렸으면 좋겠습니다. 불가피하게 드려졌던 온라인 예배 속에서, 혹여나 마음이 해이해진 부분이 있다면 우리 마음 가운데 다시금 예배를 열망하는 마음과 불순한 마음이 사라질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합시다.
특별히 교육 공동체를 위해 간절히 기도해 주셨으면 좋겠는데요, 두달이 넘는 시간 동안 교역자들이 확인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예배 참석을 독려했지만 그럼에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방치 된 아이들이 있을 거라 생각이 듭니다.
학교가 개학되고 교육부서 예배가 정상화 시작될 때, 특별히 진행과정 속에서 안전사고 일어나지 않도록 모든 과정을 지키시고, 드리는 예배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그 가운데 부어주시는 은혜로 충만해질 수 있도록 함께 간절히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하나님,
코로나 19로 인하여 전 세계가 떨고 있는 상황 가운데 소명교회 성도님들을 지금까지 안전히 지켜 주심을 감사합니다.
이 모든 것들이 우리의 수고와 노력이 아닌, 하나님의 전적인 도우심과 은혜임을 고백합니다. 이 사실을 저와 우리 성도님들이 잊지 않고, 이 위협이 우리 가운데서 온전히 사라질 때까지 하나님만 바라보고 의지하는 마음 잃지 않도록 우리의 마음을 지켜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오늘은 특별히 함께 전도자의 삶을 걸어나가고자 하는 작은 결단과 예배의 정상화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우리가 드리는 기도 가운데 하루 하루를 견뎌내고 이겨낼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주시고, 하나님을 열정적으로, 진심으로 예배하는 마음을 회복시켜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소명교회 가운데 주신 하나님의 사명을 충성되게 감당하는 교회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소명교회 성도님들이 이곳에 모여 하나님을 기쁘게 예배할 날을 안전하고 속히 이끄실 것을 바라며, 살아계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이어서 이 자리에 앉아 계시는 분들과 함께 몇 가지만 더 기도하고 싶습니다.
함께 기도할 때에 지난주에 기도했듯이 육체적인 고통 가운데 놓인 성도님들을 위해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화면에 띄워져 있는 성도님들의 이름을 (1) 장수철집사, 장원범집사, 구회남권사, 엄문진집사
강아장집사, 김중태집사 김보덕장로, 김태숙권사)
함께 간절히 부르시면서 치료의 과정 중에 있는 성도님들이 속히 회복되어 질 수 있도록, 특별히 이 힘겨운 시간을 함께 지내고 있는 가족들의 마음에도 하나님께서 위로하여 주시옵소서 함께 기도하도록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기도드릴 때에 나라의 정상화를 위하여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먼저는 1) 코로나 19바이러스와 싸우는 모든 의료진들과 정부 관계자들에게 힘과 지혜를 주셔서 끝까지 안전히 지켜 낼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고
특별히 학교와 공공기관의 정상화, 상업의 안정화를 위하여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학교가 정상화 되는 과정 속에서 혹여나 감염의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그리고 이 일로 인하여 수많은 실직자가 발생하고 소상공인들의 가계가 힘들어져 있는 상황 속에서 속히 대안이 마련되고 해결 될 수 있도록, 함께 간절히 기도해주시고 개인기도 하심으로 돌아가시면 되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