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성한 은혜의 역사
Notes
Transcript
5 οὐκ ἐξ ἔργων τῶν ἐν δικαιοσύνῃ*
⸀ἃ ἐποιήσαμεν ἡμεῖς
ἀλλὰ κατὰ τὸ αὐτοῦ ἔλεος
ἔσωσεν ἡμᾶς διὰ λουτροῦ παλιγγενεσίας
καὶ ἀνακαινώσεως* ⸆ πνεύματος ἁγίου,*
의로움의 행동으로부터가 아니라
우리가 행했던(부과능직1복)
반대로 그의 자비하심을 따라
우리를 씻어주심으로 구원하셨다(부과능직3단)
거듭남
그리고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 우리가 행했던 의로운 행동으로 인해서가 아니라 그의 자비하심을 따라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는 씻어주심으로,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셨다.
우리의 구원은 행동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그 근거는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이다.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가 기반이 되었다.
그위에 거듭나게 하시는 씻기심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이 나타났고
그 모든 것이 하나되어 우리는 구원받았다.
구원사역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합작품이다.
그렇기에 삼위 하나님께서 하신 이 구원을 누가 빼앗을수 있겠나.
우리 한명한명을 구원하는 것은 세상을 하나씩 재창조하는 것과 같은 사역이다.
그것도 말씀이 아닌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창조하신 것이다.
아담이 흙이고, 하와가 갈비뼈라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다.
아담이 죽어 흙으로 돌아간다면, 우리는 죽어 그리스도 예수의 보혈이 된다.
그러므로 우리의 구원은 완전한다.
누가 삼위하나님의 사역을 무효로 돌릴수 있는가.
누가 그리스도 예수의 피를 짓밟을수 있겠나.
6 οὗ ἐξέχεεν ἐφʼ* ἡμᾶς πλουσίως
διὰ Ἰησοῦ Χριστοῦ τοῦ σωτῆρος ἡμῶν,*
우리 위에 풍성히 쏟아부아주신(부과능직3다) 그 성령
예수그리스도 우리의 그 구주를 통하여
: 예수그리스도 우리의 그 구주를 통하여 우리 위에 풍성히 부어주신 그 성령
앞서 5절에서 말한 성령의 새롭게 하심중에, 새롭게 하시는 성령이 어디서 왔는지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넘쳐흐르듯이 우리에게 부어주셨다. 우리가 성령충만을 구하지 않아도 성령께서는 넘치도록 우리에게 역사하시고, 지금도 새롭게 하신다.
이런 성령의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의 죽음과 부활을 통한 확정된 것이기 때문에 결코 변개하지 않는다.
7 ἵνα δικαιωθέντες
τῇ ἐκείνου χάριτι
κληρονόμοι ⸀γενηθῶμεν κατʼ*
ἐλπίδα ζωῆς αἰωνίου.
그분의 은혜로 우리가 의롭게 되어(부과수분복주남)
영생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가 되게(부과수과1복) 하기 위해서다
의롭게 됨. 상속자.
그분의 은혜, 영생의 소망
행동이 아니라 벌써 의롭게 되었다.
그리고 의롭게 되었다는 뜻은 영생의 소망이 있다는 뜻이다.
누구도 변하게 하지 못할 구원
그 구원을 이루시는 삼위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의 역사
성부터로부터 시작하여 성자를 통해 성령께서 이룩하시는 거룩한 은혜
이 은혜속에서 우리는 살아간다.
비록 세상의 풍파가 닥칠지언정
우리가 붙잡을 것은 영생의 소망이다.
풍성한 성령의 부어주심이다.
설교
서론
금요기도회는 구역공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10과, 풍성한 은혜의 역사라는 제목으로 본문을 중심으로 살펴보기를 바랍니다.
본론
본문은 우리의 구원의 근거와 은혜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구원에 있어서 가장 큰 것은 무엇일까요?
여러번 들으셨겠지만 그것은 우리의 수고가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5절에 나오듯이 우리가 행한 의로운 행위때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방금 말했지만 이것, 행위구원이 아니라는 점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이지만, 이것만큼 혼동스러운 것도 없습니다. 왜냐면 우리의 삶의 원리자체가 우리의 행동이 기반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우리는 우리는 행한 만큼 받아가기를 원합니다.
정당한 노력과 정당한 댓가. 다른 말로 일한만큼 받는 것이 올바른 사회의 기초가 아닙니까. 여러 사회문제들의 기저에는 나는 이만큼 일하고 노력했지만 얻는 것은 거의 없다는 것에 있습니다. 사회문제뿐만 아니라 개인의 꿈이나 성취, 그래서 자존감까지도 이어지는 것이 정당한 노력과 정당한 댓가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반복적으로 말합니다. 우리가 얻은 구원이라는 것은 정당한 노력의 댓가가 아니라는 것을 말합니다. 거저 받은 것이라 말합니다. 선물처럼 주어진 것. 그런데 그 선물이 너무나 고귀하고 가치로운 것이기에 진짜라고 믿어지지 않는 것이 구원입니다.
만약 누군가 우리에게 와서 양도증명서를 주면서 선물이라고 합니다. 그 양도증명서에는 남포동이나 서면, 해운대 신시가지 상가 전체가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자, 그렇다면 우리는 이 양도증명서를 선물받고 어떻게 반응하겠습니까. 감사하겠습니까. 기뻐하겠습니까. 그 전에 이렇겠죠? 이거 가짜아니야? 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선물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커서 믿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정도 선물을 선물이라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와 비교가 되지 않는 것이 구원이라는 선물입니다. 5절에는 구원이라는 선물, 선물이라는 말도 온당치 않아 은혜라고밖에 표현하지 않을수 없는 구원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5절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5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저가 개인적으로 해석해보니 이렇게 되었습니다.
5 우리가 행했던 의로운 행동으로 인해서가 아니라 그분의 자비하심을 따라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는 씻어주심으로,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셨다.
여기서 나오는 그분은 4절에 나오는 성부하나님을 뜻합니다. 자비만 나와있지만 4절에는 자비와 사랑이 둘다 나와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구원의 시작이 성부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건물로 따지면 성부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이 구원이라는 건물의 기반인 것입니다. 그 기반위에 두가지가 더 세워집니다.
그 두가지중 첫번째는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는 씻어주심입니다. 누가 거듭나도록 씻어주십니까. 우리는 누구의 피로 죄씻음을 받았습니까.
바로 우리의 구주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씻음을 받고 거듭났습니다.
즉,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 위에 예수 그리스도의 죄씻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성령의 새롭게 하심’이 나옵니다.
말그대로 우리를 거듭나게 하셔서 구원받게 하시는 것을 완성하시는 분은 성령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간단하게 요약해보면, 구원이라는 건물의 기반은 성부 하나님께서 닦고, 성자 예수님께서 기둥을 세우고, 성령 하나님께서 지붕을 올려서 완성하셨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구원이란 누구의 사역입니까. 삼위 하나님의 사역입니다. 단 한분도 빠지지 않은 삼위 하나님 전부과 주관하시고 관여하신 사역입니다. 각자 철저하게 역할을 배분하고 철저한 계획속에서 이루어진 것이 우리 한명 한명에게 주어진 구원이라는 선물, 은혜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한명이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세상을 창조했다는 것과 동일한 일입니다.
세상을 창조할 때, 성부, 성자, 성령의 치밀한 계획하심과 협력하심이 있었던 것과 똑같이, 우리는 구원받은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것은 단순히 신분이 바뀌었다, 옷을 새롭게 입었다 정도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입장에서, 우리가 이해하기 좋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삼위 하나님의 입장에서 나, 성권호를, 여기있는 한명한명을 구원하셨다는 것은 세상을 하나씩 더 창조하셨다는 뜻입니다.
여기에 100명이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100번 창조하시는 수고를 들으신 것입니다.
그것도 세상을 창조하실 때는 말씀으로만 창조하셨지만,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의 피로 창조 되었습니다.
첫 사람 아담은 흙으로 창조되었지만,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의 죽음과 부활로 창조되었습니다.
오히려 수고와 댓가로 따지만 이 세상 전부를 창조하신 것보다 나 한명을 구원한데는 더욱더 많은 수고와 댓가가 들어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원은 결코 변개하지 않습니다. 아담은 죽어 흙으로 돌아갔지만, 우리는 죽으면 그리스도 예수의 보혈로 들어갑니다. 즉, 천국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다시한번 재림하실 때를 기쁨으로 기다릴 수 있는 것입니다.
누가 삼위하나님의 사역을 무효화할 수 있습니까. 누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와 은하와 무한히 넓어보이는 우주를 없던 것으로 파괴할 수 있습니까. 그 어떤 것도 그리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구원은 확실한 것입니다. 왜냐면 이 세상보다 더한 수고와 댓가가 우리 한명한명을 구원하는데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삼위 하나님의 사역은 마치 창조를 6일간 하고 7일째 안식하신 것처럼 완결되었습니까. 마치 끝난 드라마처럼 돌려보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 역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6절에서 말씀하는 것입니다.
6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그 성령을 풍성히 부어 주사
우리에게 이미 풍성히, 넘치도록 부어주신 성령께서 지금도 넘치도록 오셔서 역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결과 우리는 상속자가 된 것입니다.
7절에는 되게 하기 위해서다라고 목적, 아직 상속자가 되지 않은 것처럼 해석하고 있지만, 이것은 목적과 결과가 동시에 가능한 번역입니다. 그래서 esv는 그 결과 ~ 되게 될 것이다라는 식으로 번역했습니다.
또한 지금 우리의 구원은 완료되었지만 진행되고 있음도 알려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완전히 도장이 인쳐져서 끝났지만, 우리의 세상살이는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의 삶이 다하고 주님의 품에 안기고,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셔서 진정한 영생을 얻는 그 날까지 성령께서는 계속해서 구원을 진행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구원입니다.
그렇다면 풍성한 은혜는 어디에 있을까요. 바로 우리의 구원이 풍성한 은혜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생으로 가는 여정에 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품에 안기기 위한 여정중에 있습니다. 그 모든 발걸음에 풍성한 은혜가 함께 새겨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겪는 고난과 환난조차 구원의 여정속에 있는 것입니다.
서두에 말씀드렸듯이 우리는 정당한 노력과 정당한 댓가를 언제나 바랍니다.
하지만 이 정당한 노력과 정당한 댓가라는 것은 정말 힘듭니다. 입으로는 이렇게 말해도 사실 우리는 정당한 노력, 정당한 댓가보다는 적당한 노력, 엄청난 댓가를 바라거나, 무위도식을 바랄 때가 더욱 많을 것입니다. 내가 말한마디만 하면 일이 형통한 것을 바랍니다.
그럴 때도 있습니다.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진행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때는 아무리 노력해도 안될 때가 있습니다. 심지어 기도하고 응답받아 하나님 뜻이라고 믿고 해도 안되고 오히려 더욱 막히고 돌아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구원의 여정속에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코로나를 통한 이 시련도 결국 우리 한명을 구원하시기 위한 여정속에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모든 것을 통해 우리 한명을 이 세상 전체보다 아름답게 재창조하시려 하나님께서는 계획하고 실행하고 계십니다.
그러니 우리의 삼위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분명 이 모든 것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더욱 아름답게 창조해가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에는 풍성한 성령의 은혜의 역사가 따를 것입니다.
우리의 행동의 보상이 없어보여도, 우리의 재능과 노력과 능력이 날이 갈수록 빛을 바래가는 것처럼 보여도, 그래서 우리가 종국에는 점점 쓸모없이 되는 것처럼 보여도, 우리 삼위 하나님께서는 일하고 계십니다.
세상을 창조하시던 노력과 댓가 이상을 쏟으시며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고 계십니다.
그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더욱 담대하시기 바랍니다. 그 모든 시련을 하나님께 맡기시기 바랍니다. 어떤 때,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해 괴로울 때도 있지만, 그때도 하나님을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구원을 즐거움을 영원히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길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