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5.22 더리버처치 새벽예배 (스4:1-6) '하고 싶은 일, 해야 하는 일'
찬양
본문
서론
ㅇ 본문과 관련있는 예화 혹은 성경이야기
538 스룹바벨의 1차 포로귀환(49,897명) (스1–6장).
458 에스라의 2차 포로귀환(1,754명) (스 7–10장).
444 느헤미야 귀환(느 1–2장).
성전은 오랜 성경 역사 동안 하나님의 지상 임재 처소요 거룩한 통치의 핵심으로 간주되었다. 시내 산 언약 체결 후 하나님의 지시에 의해 만들어졌던 성막(이동식 임시 성소)의 역사는 다윗 때까지 약 500년 간 지속되다가 솔로몬 왕 때에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로운 간섭에 따라 견고한 예배 처소가 건축되게 된다. 이것을 가리켜 ‘솔로몬 성전’ 혹은 ‘제1성전’(제2성전은 ‘스룹바벨 성전’을, 제3성전은 ‘헤롯 성전’을 각각 의미함)이라 부른다.
솔로몬 성전은 솔로몬 재위 5년째에 시작되어 7년 간의 공사 기간을 거쳐 재위 11년에 준공되었다(왕상 6:37–38).
스룹바벨 성전(– 聖殿, Zerubbabel’s temple)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유다 백성들이 본토로 귀환하여 세운 성전. 스룹바벨의 지도하에 세워졌다 하여 ‘스룹바벨 성전’, 솔로몬 성전에 이은 두 번째 성전이라 하여 ‘제2성전’으로 불렸다(스 2:2; 3:2,8; 5:2; 느 7:7). 【☛ ‘성전’을 보라】
헤롯 성전(–聖殿, Herod’s Temple) 헤롯 대왕이 중건한 예루살렘 성전. 솔로몬 성전과 스룹바벨 성전에 이어 세 번째 세워진 성전이다. 스룹바벨 성전이 B.C. 63–62년에 로마에 의해 완전히 유린된 후 헤롯 대왕이 B.C. 20년부터 재건하여 헤롯 사후 A.D. 64년에 완공되었다. 이 성전은 웅대하고 화려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예수님의 예언대로(막 13:1–2) 완공된 지 6년 뒤인 A.D. 70년에 디도(Titus)가 이끄는 로마 군대에 의해 예루살렘이 함락될 때 함께 불타버렸다.
본론
ㅇ 주제와 관련 있는 문제제기 (원인과 결과)
산헤립(Sannacherib) ‘산헤립’(סַנְחֵרִיב, 산헤리브)은 ‘신(神)은 형제들을 증가시켜 주신다’는 뜻을 지닌 앗수르 왕(B.C. 705–681년)의 이름이다. 그는 사르곤 2세(Sargon II)의 아들이며, 에살핫돈(Esarhaddon)의 아버지였다. 니느웨를 건설하여 수도로 삼았으며, 즉위 직후 제국 전역에 발생했던 반란을 평정했다. 특히, 그는 바벨론의 므로닥발라단을 멸망시켰고(B.C. 702년), 반(反) 앗수르 정책을 표방하는 팔레스타인 주변의 여러 나라들을 정복하였다.
산헤립 앗수르의 왕으로 니느웨를 건설했고, 히스기야 왕 때 유다를 공격하였다. 그림은 니느웨 유적지에서 발견된 산헤립 형상.
그리고 마침내 남유다 왕 히스기야 14년에 유다를 침공하여 모든 견고한 성읍들을 취했다. 이에 히스기야는 화해의 공물을 바치기 위해 성전 내의 모든 보화를 내주어야 했다(왕하 18:13–16). 얼마 후 산헤립은 랍사게를 보내 다시 선전포고를 하였는데, 이 소식을 들은 히스기야는 절망하여 성전에서 기도하였고,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유다가 멸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언을 듣고 용기를 얻는다. 그리고 그날 밤 하나님의 초월한 간섭에 의해 앗수르 군대 185,000명이 몰살당했고(왕하 19:36) 산헤립은 자기 나라로 급히 퇴각했다(대하 32:21; 사 37:36–37). 설상가상으로, 귀국한 산헤립은 왕위 계승자로 에살핫돈을 지명한 데 대해 앙심을 품고 있던 두 아들 아드람멜렉과 사레셀에 의해 살해되고 만다. 그 후, 에살핫돈이 반란을 평정하고 앗수르의 새 왕으로 즉위하였다(왕하 19:37).
에살핫돈(Esarhaddon) 인 אֵסַר חַדּוֹן(에사르 핫돈, ‘아스훌⟨앗수르⟩은 형제를 주셨다⟨죽은 혹은 없는 아들 대신에⟩’) ●유다 왕 므낫세와 동시대 인물. 앗수르 왕 산헤립의 셋째 아들이며 계승자(왕하19:36–37; 대하32:21; 사37:37–38). 출정(出征) 중에 부친이 암살되었다는 급보를 듣고 니느웨로 귀국해 형제들을 물리치고 왕위에 올랐다(B.C.681–669년). ●그는 바벨론 남부와 엘람의 반란을 진압했고, 선왕이 파괴한 바벨론 시가지와 신전을 재건했다. 또 북쪽 코카서스 산맥 너머에서 침입해 오는 키메르 족과 스쿠디아인을 물리쳤다. 당시 중근동의 패권을 놓고 다투던 경쟁국 애굽과 그 휘하 세력(두로, 시돈, 수리아 등)을 진압하고(시돈이 함락되자 지중해 연안 열두 왕들이 앗수르에 항복함) 애굽의 테베 등지에 총독을 임명했다. 얼마 후 애굽이 재차 반기를 들자 이를 제압하기 위해 출정하던 중 B.C.669년 하란에서 병사(病死)한다. ●에살핫돈은 사마리아 땅에 바벨론, 구다, 아와, 하맛, 스발와임 등지의 이방인을 이주, 정착시킴으로써 혈통과 신앙에 있어 혼합주의 정책을 폈다(왕하17:24; 스4:2). 또 대하33:11–13에는 앗수르 왕 앞에 소환된 므낫세가 등장하는데, 이 사건은 에살핫돈의 계승자인 앗술바니팔 왕 때의 일로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