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서와 야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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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25:19- 34 에서와 야곱
들어가면서
형제간의 다툼을 “형제의 난, 왕자의 난”이라고 합니다.
왕자의 난은 재벌집안에서 주로 사용하는데, 현대, 삼성, 롯데 집안에서 있었고, 올해는 한진 칼로 유명한 한진에서 한진칼 운영권을 누가 가지느냐로 주식 보유 전투가 있었습니다.
원래 왕자의 난은
차기 왕위를 놓고 다투는 쟁탈전입니다. 가장 유명한 것이 조선이 세워진 후 차기 왕위를 놓고 일어난 1, 2차의 왕자의 난입니다.
왕이되고난 이성계는 차기 왕으로 막내 아들을 왕세자로 지목합니다. 큰 아들도 있고, 둘째 아들도 있는데, 왜 막내였을까 하고 여려가지 설이 있지만,
첫째부터 여섯째까지는 첫째 부인에게서 나은 아들이고, 첫번째 부인은 조선 개국 전에 동북삼성, 죽 지금의 만주 동북쪽에 살다 죽습니다. 이성계의 6, 7번째 아들은 개성에서 둘째 부인에게서 낳은 아들들입니다.
이성계가 왕이 되었을때는 둘째 부인이 왕후가 되어 있었고, 왕후는 고려시대부터 권문세력이었습니다. 이성계가 동북삼성에서 살던 촌놈이 아니라 개성의 귀족들과 어깨를 같이 하는 데는 둘째 부인 집안의 힘이 상당히 컷고 그래서 이성계가 왕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조선을 세울때 혁혁한 공을 세웠던 첫째 부인의 아들들입니다. 이들은 20대 중반에서 30년 후반으로 언제라도 왕위를 물려 받을 수 있는 경험과 국정능력이 있었는데도, 둘째 부인의 막내 아들, 조선 개국 당신 10살 밖에 되지 않은 아이를 왕세자로 세우고 제왕의 교육을 시키게 됩니다.
그런데, 왕자의 난이 일어난 것은 왕비였던 이성계의 둘째 부인이 40살의 나이에 죽어 버린 것입니다. 형들을 제끼고 왕이 될만한 총명한 머리나, 탁월함이 없는 상태에서 왕세자가 되었고, 그의 지지 세력인 어머니도 안 계시고, 안 그래도 불만이 많던 형제들, 특히 태종이 되는 이방원이 앞장서서 왕자의 난을 일으켜, 배다른 동생 둘을 죽이고, 재상 중심으로, 즉 신하 중심의 정치 질서를 구상했던 정도전까지 베어버립니다.
그리고 둘째 형이 왕위를 물려 받는데, 이가 정종입니다. 정종은 아들이 없었고, 그래서 왕위를 형제에게 물려주어야 하는데, 셋째는 정치에 관심이 없었고, 넷째가 다섯째인 이방원을 죽이겠다고 난을 일으킵니다.
그런데, 원래 적수가 못됩니다. 넷째가 난을 일으킨다고 하자, 이성계가 이방원을 무척 싫어하지만, 형제의 난을 볼수가 없었서 이렇게 말합니다.
“ 이방원과 아비가 다르나? 어미가 다르나?”
이방원인은 어미가 다른 두 동생을 죽였지만, 친형제는 죽이지 않았다. 그런데, 넷째 너는 친 동생을 죽이려고 그러느냐 라고 야단을 친 것입니다.
형제들끼리 욕망이 강하면 다투고 싸우는 것이 인간사인 것 같습니다.
부모와 자녀 부부에 대해서 지난 3주간 살펴보았습니다.
이번주는 형제, 자매, 남매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형제하면, 가인과 아벨도 있지만,
가정을 중심으로 보고 있어서, 이삭과 리브가를 살펴보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에서와 야곱을 중심으로 형제 관계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에서와 야곱의 특이점
에서와 야곱 형제를 살펴보기 전에 에서와 야곱이 신앙 관점에서 어떤 의미인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
에서와 야곱은 하나님의 선택, 주권적 선택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주권이란 단어는 주인의 권리, 주인의 권력을 말합니다. 민주주의가 발전하기 전에는 왕권이란 단어가 사용되었는데, 이 왕권은 왕의 주권을 줄인 말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이란 말은 하나님께서 모든 피조물의 주인이시며, 온 세계를 만드신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의 다스림을 말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선택이라는 단어가 붙습니다.
하나님께서 주권을 가지고 무언가를 결정하시는데, 누구를 선택하실 지, 누구를 선택하지 않을 지를 결정하는 주권이 있습니다. 이 하나님의 주권을 선택이라고 합니다. 무엇이라고요? “선택”입니다.
하나님의 선택은 하나님의 “자유로운 결정”입니다.
하나님께서 누구를 구원하실 지에 대해서 결정하실때, 하나님은 무엇이가에 매여서 결정하시지 않고, 순전히 하나님의 자유로 결정하십니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자유로운 결정인데, 이 결정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이 자유로운 결정을 섭리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자유롭게 무언가를 결정하시는 데, 우리를 다스리시는데에도, 우리 중에 누군가를 선택하시는데에도 자유로운 결정을 하시는데, 그것을 섭리라고 합니다.
어려운 말을 너무 많이 했는데,
이제 본문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삭이 결혼을 했는데, 아이가 없었습니다. 그렇기 20년 가까이 기도하는 가운데, 리브가가 쌍둥이를 임신했습니다.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오랜 기간 아이를 기다렸는데, 드디어 아이를 가진 것입니다.
그런데, 뱃속에서 너무 싸우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뱃속에서 싸우면, 임신부가 얼마나 힘든지 모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물어보는데, 대답이 왔습니다.
23절 입니다.
(창세기 25:23 ) 23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
하나님께서는 리브가의 뱃속에 두 아이가 있는데, 두 민족이 될 거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기리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자유로운 결정입니다.
아브라함 때부터 이삭까지
하나님께서 자유로운 결정을 하시는데, 아브라함의 후손 중에서 누구를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으로 할 것인지, 믿음의 조상으로 할 것인지 자유롭게 결정하십니다.
아브라함에게 후손을 모래 같이 많이 줄것이라고 약속하셨는데, 이삭 혼자입니다. 물론 하갈이란 첩에게서 이스마엘을 낳았지만, 이스마엘은 하갈과 함께 쫓겨났습니다.
사라가 죽은 후에, 아브라함은 그두라라는 여인과 재혼하여, 자녀들을 6명 더 낳았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아브라함의 품을 떠나 동쪽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남겨진 자녀는 이삭 혼자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의 사이에서 낳은 자녀는 이삭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삭의 후손만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하시기 한 것입니다.
그 이삭의 후손 중에서도 야곱만을 믿음의 후손으로 하시기로 결정을 하신 것입니다. 이삭의 후손 중에서 야곱만을 믿음의 후손으로 하시기로 결정을 하십니다.
그러면, 다른 자녀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들은 자기의 행실대로 하나님의 곁을 떠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도 한 민족이 되도록 돌보셨습니다. 이스마엘도 그렇고, 에서도 그렇고, 모두 한 민족을 이루는 조상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자녀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는 복음을 들었고, 하나님을 믿고 살기로 작정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시 않으셨다면, 그 믿음을 가지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을 믿기로 작정을 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려고 노력합니다.
바로 그것이 우리의 믿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셨다는 증거가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믿고 살기고 작정하는 성도 여러분,
바로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알고 이해하자.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어떻게 알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어떻게 행동하는가”를 보면 알수 있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 받는 다고 하는데, 그 믿음을 알 수 있는 것이 행동입니다.
그 행동의 기원이 무엇인지 하나님은 아시지만,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그렇게 추정할 뿐이죠.
에서와 야곱의 행동을 보면서, 그들이 믿음을 가졌는지 아닌지를 알 수 있습니다.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팔다.
그 내용이 27~ 34입니다.
27절에 보면, 에서는 익숙한 사냥꾼이므로 들사람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에서가 커가면서, 어떤 사람이 되었냐면, 그 사람은 익숙한 사냥꾼이고, 들 사람이 되었습니다.
에서를 표현하기 위해서 사용되는 두 단어, 들사람과 사냥꾼이라는 단어가 이삭의 배다른 형제인 이스마엘에게 사용되어 있습니다. 창 16:12에서는 들 나귀, 창 21:20에서는 활쏘는 사람.이라고 표현되어 있는데, 에서에게 고스란히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스마엘이 믿음의 자녀가 아니듯이, 에서도 믿음의 자녀가 아니었다는 뜻입니다. 에서는 장막에 거하면서, 유목민의 모습으로 살지 않고, 사냥꾼, 궁수, 군인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방인의 모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는 하나님이 주신 질서를 무시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것이 29~ 34에 나오는 죽에 장자의 명분을 판 것입니다.
쌍둥이 형제, 누가 먼저 나고 나중에 나중에 나고가 중요할까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 것 마저도 하나님께서 그렇게 낳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에서는 그것이 별로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자기의 본성과 본능이 더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장자의 실리만 챙기면 된다는 생각을 하고, 명분을 팔기로 한 것입니다.
그런데, 명분을 팔면 실리도 넘어가는 거죠. 실리를 얻기 위해서는 명분을 먼저 얻어야 합니다.
2차 왕자의 난에서 넷째 왕자가, 난을 일으키지 않고, 너 너무 나가네. 라고 말만하고 있어도, 5째인 이방원이 어떻게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1차 왕자의 난을 일으킬때, 형이 있는데, 어떻게 동생이 왕위를 얻느냐라는 명분으로 난을 일으켰기 때문입니다.
명분이 있어야, 실리를 챙길수 있습니다.
장자는 실리를 챙길수 있는 명분, 그 자체로 명분이 됩니다.
그런데, 명분을 팔고, 실리를 챙긴다는 생각은 욕심이죠.
자기의 기분대로, 자기 마음에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에서는 그런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것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에 반해서 야곱은 욕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야곱이 욕심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은 태어날때 부터 드러납니다.
야곱이 태어날때, 그는 형의 발꿈치를 잡고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이름이 야곱이잖아요.
어떻게 보면, 야곱은 자기 힘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힘을 이용해서 자기의 이익을 챙기는 사람입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야곱도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를 따르는 사람은 아닙니다.
그도 자기의 욕심을 챙기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형인 에서에게 장자의 명분을 팔라고 요구하는 것이죠.
야곱은 명분만 삿고, 실리는 포기했습니다.
복을 주는 것은 아버지에게 있고, 평소 아버지는 형인 에서를 사랑했기 때문에 실리를 챙기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또한 그것을 어떻게 해 보려다 도리어 저주를 당할것 같은 두려움도 있었습니다.
이 두 형제의 모습은 하나님의 자녀다운 모습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선택하십니다.
이런 모습에도 불구하고, 선택할 만한 모습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선택하십니다.
하나님의 자유로운 결정이고, 하나님의 작정이고,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우리는 믿음의 자녀들이니,
야곱와 에서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믿음으로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은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를 따라 사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질서에서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는 것이 믿음대로 사는 것입니다.
또 한가지는 사람을 알아가는 것입니다.
누구인지 알기를 힘쓰자.
사람을 알아가는 것이 왜 중요하나면,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모두 착하기만 하고, 좋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좋던 것도, 상황이 바뀌면 안좋은 것이 되기도 하고,
장점으로 말하던 것도, 때로는 단점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합니다.
앞에서 우리는 에서와 야곱이 어떤 사람인지 살펴보았습니다.
이삭이 리브가와 야곱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았다면 그는 에서에게 축복을 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삭은 리브가와 야곱이 어떤 사람인지, 에서가 어떤 사람인지 몰랐습니다.
그저 자기의 마음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외면하고, 에서에게 축복을 하려고 했다가,
리브가와 약속의 속임수에 속아서, 형제의 갈등은 깊어지게 되고,
리브가는 야곱을 밧단아람에 보낸 후, 다시 얼굴도 못보고, 눈을 감아야 했습니다.
믿음으로 살려고 하면,
누구인지 알기를 힘쓰시기 바랍니다.
그 사람이 믿음을 가졌는지
그 사람의 추구하는 가치관은 무엇인지
그 사람의 인생관은 무엇인지
그 인생관을 어떻게 이루려고 하는지
고난을 당하면, 어떻게 하는지
경제관은 무엇인지
정치적 시각은 무엇인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우리의 모든 것을 하나님 나라 관점으로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이 사람이 누구인지 알기를 힘써야 합니다.
말하는 것 뿐만 아니라, 행동하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이 믿음의 사람인지,
아닌지 알아갈수 있습니다.
에서와 야곱을 중심으로 살펴보고 있는데,
이들이 믿음으로 산다고 말하기 힘들지만,
믿음으로 살았던 2명의 사람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요나단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요나단은 사울 왕의 큰 아들로서, 사울의 뒤를 이어서 왕이 될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그의 눈에 띄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돌맹이 하나로, 배테랑 장수, 골리앗을 무너뜨린 다윗이었습니다.
요나단은 다윗을 자기 생명같이 사랑하고 다윗과 더불어 언약을 맺었습니다(삼상 18:3).
그 후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할때에, 다윗은 요나단을 찾아가,
왜 사울이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내가 곧 죽게 생겼다 라고 하자,
요나단은 사울이 정말 다윗을 죽이려고 하는지, 확인해 줍니다.
그리고 다윗이 도망을 하여, 망명생활을 할수 있도록 길을 열어줍니다.
다윗과 이별을 하면서 요나단이 한 말입니다.
(사무엘상 20:42 ) 42 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우리 두 사람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영원히 나와 너 사이에 계시고 내 자손과 네 자손 사이에 계시리라 하였느니라 하니 다윗은 일어나 떠나고 요나단은 성읍으로 들어가니라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동료를 팔아버리는 일이 흔한데,
요나단은 자기의 왕위를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계획하신 일을 따라서 자기의 왕위를 포기합니다.
요나단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사람들 생각으로는
다윗 잡아서 아버지에게 끌고 가면, 차기 왕은 자기가 되는 것인데,
왕위보다, 자기 이익 보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기로 합니다.
다윗은 이런 요나단에게 어떻게 대합니까?
다윗은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보살펴 줍니다.
다윗의 입장에서는 사울 집안의 후손이기에, 원수의 후손이지만,
다윗은 요나단을 생각하여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에게 친절을 베풉니다.
피한방울 섞이지 않은 요나단과 다윗은
형제지간인 에서와 야곱보다 서로를 더 아끼고 사랑합니다.
그들은 마음의 중심에 하나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이 되시고,
이런 사람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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