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부 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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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서론
지난시간 우리는 하나님의 비전,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을 비전을 살펴본바가 있다. 하나님의 비전은 순종이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영원히 잘되는 것이었다. 이번시간은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하면 순종할 수 있는가 이다. 함께 살펴보자.
본론
오늘 본문은 크게 1-3절과 4-5절 6-9절 세가지 파트로 나눌수 있다.
1-3절은 하나님께서 순종이라는 말씀을 하시는 이유에 대해서 말하고있다. 이유이자 목적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순종을 요구하시는 것은 우리가 서로에게 자신의 말을 따르라는 이유와는 완전히 다르다.
싸울때나, 꾸중들을 때, 가장 공감안되고, 제일 짜증나는 말이 있다.
“다 너 좋으라고 하는 말이다”라는 말이다. 이 말이 공감이 안되는 이유는 다양할 것이다. 그러나 그 핵심은 일방적으로 자신의 말을 따르라고 하고, 나는 왜 그렇게 해야하는지를 알지도 못하고 이해하지도 못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즉, 일방적으로 복종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렇게 상대를 설득하거나 따르게 하는것, 상대로부터 호응을 이끌어내는 것이 가장 힘들다. 여러분도 알지만 정치가 그렇게 부패하기 쉬운 이유중 하나가 이것때문이다.
그런데, 1-3절을 잘 보면, 마치 “다 너 좋으라고 하는 말이다”라는 말처럼 들린다.
2절에 “네 날을 장구하게 하기 위한 것”
3절에 “네가 크게 번성하리라”
이 두개만 봐도, 하나님께서 “너 잘되라고 하는 소리다”라고 말씀하시는 것같지 않나?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어떤 공감이나, 합당한 이유없이 이렇게 우리가 하는 식으로 요구하고 계신 것인가.
절대 그렇지 않다. 이미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능력을 보이셨다.
그리고 10재앙을 통해 자신의 말을 따르지 않는 애굽과 바로가 어떻게 되는지도 체험하게하셨다.
그렇기 때문에 1-3절의 말씀은 우리가 의례 말하거나 싫어하는 표현인 “다 너 좋으라고 하는 말”과는 전혀 다르다.
쉽게 말해 며칠전에 내 친구가 수영금지인 곳에서 수영하다가 죽었다. 그후 오늘 교육하는 사람이 와서 여기서 절대 수영하면 안된다. 여기 말고 수영장이나 공인 해수욕장에서 수영해라라고 하면 안 따를 사람이 어디있겠나. 며칠전에 그 말을 따르지 않다가 친구가 죽었는데 말이다.
10재앙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불순종할 때 어떻게 되는지를 강렬하게 이스라엘에게 새기셨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순종할 때 어떻게 되는지를 알게 하고 싶어하시는 것이다.
당근과 채찍이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그리고 애굽과 이스라엘은 다르기 때문에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것은 4절과 5절을 보면 더욱 확실히 알 수 있다.
4절과 5절의 핵심은 무엇인가. “하나님을 사랑하라”이다.
그것도, 하나님만이 참 신이시고, 나머지는 가짜이니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뜻이다.
설혹 당근과 채찍을 하나님께서 휘두르신다고 해도, 그것은 우리가 옳은 길로 가게 하기 위한 장치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맹인인 것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명령하시는 것이다. 가장 먼저 하시는 명령이다. 사랑하라.
하나님께서 우리의 귀에 들려주고, 우리 마음에 넣어주고싶어하는 말씀도 이것이다. “사랑하라”
그리고 우리의 구주 예수그리스도의 말씀도 이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이 명령에 어떻게 하면 순종할 수 있을까.
그것이 6-9절이다.
6절에 대전제로 말한다. ‘마음에 새겨라’
쉽게 말해 체화되게 하라는 뜻이다. 우리가 젓가락질에 익숙해지면, 젓가락질을 할 때마다 생각하고 노력할 필요없이 자연스럽게 된다. 그것처럼, 몸과 마음에 스며들게 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방법으로 제시되는 것이
첫째, 7절이다.
가르치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언제든지 가르치라는 뜻이다.
이 가르치라는 말에 고등부는 좀 의아해할 것이다. 솔직히 가르치는 입장이 아니라 가르침을 받는, 배우는 입장에 놓이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왜 잘하면 좋은가. 인정받아서 좋다. 거기에 한가지가 더 있다. 자신이 잘하는 것을 가르칠 수 있어서 좋지 않은가.
반대로 자신은 배우려하지 않고 가르치려고만 드는 사람은 모든 사람이 싫어한다.
즉, 배움과 가르침은 둘이 짝으로 같이 가는 것이다.
가르침으로 더욱 잘 배우게 되고, 잘 배웠다면, 가르칠 수 있게 된다.
7절처럼 집에나 길을 가다가나 누워있을 때나 자다가 일어났을 때도, 말씀을 가르치려면 대체 얼마나 말씀가 가까워야 하며, 얼마나 말씀을 잘 알아야 하는가.
자다가 일어나면 논리적인 말이 잘 떠오르는가?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자다가도 말씀을 가르칠 수 있을 정도로 말씀에 빠진 생활을 하기 바라시는 것이다.
이어서 8절과 9절에 그렇다면 그렇게 가르칠 수있기 위해 어떤 방법을 써야 하는지를 알려주고 계신다.
손목에 보고 이마에 붙이고 대문에 붙이고, 기둥과 벽마다 붙이는 것이다.
즉, 생활속에서 보는 것이 말씀으로 도배되게 하라는 뜻이다.
예전에는 지금처럼 미디어가 없었다. 그러므로 8절과 9절처럼 하면 가는 곳마다 말씀으로 도배되어 있게 된다. 그런 환경속에서 자연스럽게 말씀을 보고 더욱 가까이하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가까이있기를 원하셨다.
나도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지 않는다면, 쉽게 말씀을 잊어버린다. 이 잊어버린다는 말은 말씀을 따라 생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말을 할 때나 선택을 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잊어버리고 나에게 좋고 내게 유리한 쪽으로 선택하게 된다. 그리고 그 내게 좋은 선택들이 모여서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그래서 손목에 매란 것이다. 육체노동이 대부분이든 그 시절, 무슨 선택을 하든지 손목을 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말씀을 읽어보고 선택할수밖에 없어진다.
미간, 이마에 붙이면 내 상대방이 본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이 내가사랑해야할 가족이며 이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다.
대문에서 보게된다. 이 집을 주신 분이 한님이시며, 이집에 사는 가족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인식하게 하는 것이다.
또 문을 열고 들어갈 때, 문바로 옆에 있는 문설주에 적힌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된다. 그리하여 이제 내가 들어온 곳이 그저 가정, 내 집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함께거하시는 곳임을,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듯, 내 가족과 부모나 형제들을 사랑해야 함을 알게 하시는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구체적으로 우리에게 임하셨다.구체적으로 들으라고 말씀하셨다.
그만큼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듣기를 원하시다.
순종은 정말 힘들다. 나도 말해놓고 사랑ㅇ로 하지 못했음을 후회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도 행동해놓고 사랑과 지혜로 행동하지 못했음을 후회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후회하기에 우리에게 희망이 있다.
그 후회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놓지 않으셨다는 증거이고, 성령께서 내 마음속에서 나를 찌르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가 후회하는 곳까지라도 가자. 후회가 되는 사람들은 한발짝만 앞으로가자. 10번중 1번만 하나님 더 생각하기 정도라도 해보자.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바꾸어가실 것이다.
그런 은혜받는 우리 모두가 되길.
“ ” 찬양
다함께 기도
“내게있는 향유옥합” 찬양드리며 헌금드리겠습니다.
주기도문(천천히)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 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