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6.26.금요기도회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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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순서
통성기도 마무리 반드시 헌금기도
구역연합예배x
(헌금)
본문읽기 : 오늘의 말씀은 눅 9:18-27절 말씀입니다. 신약107페이지입니다. 교독하시겠습니다.
18 ◎예수께서 따로 기도하실 때에 제자들이 주와 함께 있더니 물어 이르시되 무리가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19 대답하여 이르되 세례 요한이라 하고 더러는 엘리야라, 더러는 옛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이 살아났다 하나이다
20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니
21 경고하사 이 말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명하시고
22 이르시되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하리라 하시고
23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24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25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26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자기와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으로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27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를 볼 자들도 있느니라
특송 : 5교구 특송있겠습니다. x
설교
서론
오늘은 구역공과 16과인 따름과 순종을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본론
본문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함께 있을 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질문을 하시면서 시작합니다. 그 질문은 “사람들은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까지 한번도 사람들이 자신을 누구라고 부르는지 관심을 보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길가, 정확히 말하면 기도하러 따로나온 외진 길가에서 거기까지 예수님을 쫓아온 제자들을 향해서 묻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예수님께서 사람들의 평판을 의식해서 물어보는 것도 아니고, 또한 사람들이 예수님을 뭐라고 생각하는지 몰라서 묻는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이 질문은 사람들이 아닌, 기도의 장소, 외딴 길까지 자신을 쫓아온 제자들, 다르게 말하면, 정말 예수님에게 자신의 생을 맡긴 제자들을 향해서 묻는 말인 것입니다.
너희는 나를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기에 이렇게 나를 따라 오고 있는 것이냐라는 질문입니다.
물론 제자들은 사람들이 말하는 예수님을 언급하기 시작합니다. 세례 요한, 엘리야, 이미 죽은 옛날의 선지자 한명이 다시 살아난 자, 라는 것입니다.
이 대답들은 당시 사람들도 예수님의 기적과 능력이 그냥 선지자수준이 아니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예수님께서는 예수님께서 하고자 했던 질문,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라는 질문을 하십니다.
이 질문을 잘 보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가 아닙니다. 누구라고 “말하느냐”입니다. 즉, 다른 사람에게 예수님을 소개할 때, 제자들은 예수님을 어떤 분이라고 소개하는지를 물어보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특성이 아니라, 예수님의 신분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답변으로 베드로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그리스도라고 대답합니다. 쉽게 말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보내신 구원자이십니다. 라는 답변입니다.
앞선 질문, 사람들이 예수님을 뭐라고 부르는지를 말할 때는 여러 제자들이 말을 했는데,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질문하실 때는 베드로만이 자신있게 말합니다. 그렇다면 다른 제자들은 이런 믿음이나 확신이 없어서 대답하지 않은 것일까요? 그것은 아닙니다. 이에 대해 다른 말이 없는 것을 보면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제자들이 그 사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보내신 구원자라는 사실에 동의하고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베드로가 먼저 말했기 때문에 그 이상의 말을 하지 않은 것뿐입니다.
오늘 본문이 마16:13-28절에도 나오는데, 이 본문에는 베드로가 한 고백 하나님의 그리스도라는 고백을 더 길게, 더 정확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는 고백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런 고백을 한 베드로를 향해서 천국열쇠까지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오늘 보는 누가복음이나 마가복음에는 이런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간단하게 적고, 예수님의 칭찬도 적고 있지 않습니다.
이런 차이가 나는 것은 각 책의 기록목적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은 유대인을 대상으로 한 성경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시 예루살렘에 거하며 교회의 지도자 역할을 하고 있었던 사도 베드로가 어떻게 했는지 더욱 자세히 적은 것입니다. 즉, 여러 분란이 생기더라도 예수님께서 이렇게 칭찬하고 천국열쇠를 맡긴다고 까지 한 베드로를 잘 따라주어라라는 메시지가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누가복음이나 마가복음은 그 목적이 다르기 때문에 베드로에 대한 상세한 기록을 생략했습니다. 반대로 마가복음에서는 베드로의 신앙고백보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고난을 막으려고 한 사실을 적고 그것 때문에 예수님께 꾸중들은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왜냐면 마가복음은 일반적으로 베드로가 순교한 후에 기록되었다고 알려져있고, 그 때는 매우 극심한 핍박과 고난이 찾아오고 있던 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베드로의 신앙고백보다, 예수님의 고난을 부정하고 그럴수 없다고 하는 베드로를 예수님께서 꾸짖는 장면을 보다 상세하게 기록한 것입니다. 고난의 상황에서 소나기는 피하자라는 식이 아니라, 하나님을 더욱 부르짖고 찾으며, 하나님의 뜻대로 세상에 흔적을 남길 불꽃이 되어가는 것이 우리의 사명임을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보는 누가복음은 데오빌로라는 개인에게 적은 편지로서 특별히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즉 사람인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적고 있는 책이기도 합니다. 소외받은 자의 복음서라는 별칭이 있는 누가복음은 소외받고 괴롬당하고 아무에게도 보살핌받지 못하는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관심과 사랑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중심은 바로 23절과 24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의 어떤 구절을 중심이라 말하기는 참 힘들지만, 굳이 따지자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23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24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예수님께서 먼저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자기의 것을 포기하고 내려놓을 필요가 전혀 없는 예수님께서 먼저 이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소외된 자들을 향해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고 고난받고, 마음속에 기쁨과 행복보다 온갖종류의 상처와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치유되지 못하고 지금도 피흘리는 마음을 안고 그래도 살려고 발버둥치는 자들을 향해서 그런 우리 모두를 향해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래, 그 십자가가 힘들지? 매일 매일 깨어나면 또 다시 지어야 하는 십자가가 너무나 힘들지? 하지만 내가 먼저 그 십자가를 지고 갔어. 그러니 나를 따라와. 이제 너의 힘으로 그 십자가를 끌려고 하고, 부수려고 하지 말고 그저 조용히 내 십자가를 바라보고 따라와. 그러면, 사랑하는 아들, 딸아 그러면 그 십자가가 목을 옥죄고 가슴을 묶고 사지를 결박하는 죽음의 형틀이 아니라, 구원으로 이끌고 사랑으로 초대하는 초대장이 될거야 바로 생명의 증거가 될거야 라고 예수님께서는 모든 환난을 당한 자를 향해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동시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안빈낙도하며 자기삶에 만족하며 이것저것 누리며 살면서 자신의 십자가를 남에게 떠맡기려 하거나, 그렇지는 않아도 예수님을 생각하지 않고 내 생각 내 기준에 따라 사는 자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5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26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자기와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으로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너의 십자가를 지라. 네 스스로 끌어올려 네 어깨에 매어라. 네가 지금 너무나 편안하고 웰빙라이프를 누리고 있다고 생각된다면 더욱 십자가를 지라. 그렇지 않으면 너는 자신을 잃고 빼앗기게 될 것이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말을 부끄러워하고 외면하고 자신의 생각과 가치대로 살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거룩한 백보좌앞에서 그 사람은 결코 구원받을 수 없을 것이다. 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의 곁에 있었던 제자들은 27절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나라를 보았습니다. 인자의 왕권을 보았습니다. 비록 예수님의 고난도 보았고 수치스런 십자가의 죽음도 보았지만, 예수님의 부활을 경험했으며, 승천의 자리에 함께 있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그리고 이제 모든 사람에게 임하는 오순절의 성령강림도 체험했습니다.
그들이 삶을 통해 이 모든 것을 체험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십자가를 지고 있습니까. 그 십자가를 지고 가기가 너무나 괴롭습니까. 잘 때도 십자가에 깔려서 잠도 잘 들지 못하고 있습니까. 그런 모든 자에게 예수님께서는 위로자로서 함께 하고 계십니다. 이미 십자가를 지고 가셨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깔려 고통스러워하는 한명 한명과 함께 고통스러워하고 있습니다. 잠이루지 못하는 그 밤, 한순간 한순간을 함께 하십니다. 아파하는 순간을 함께하시며, 위로하십니다. 어떨 때, 오늘 하루가 다시 시작됨이 원망스러울 정도로 지치고 힘들지만, 그때에도 예수님께서는 함께하시며, 나와 함께 가자고 응원하고 위로하고 그 십자가를 함께 지고 가십니다.
우리는 정말로 베드로 같은 자들입니다. 어떤 때는 담대하게 예수님을 고백하며 온갖 칭찬을 한 몸에 받지만, 채 몇분도 못되어 자신의 뜻대로 예수님의 고난을 막으려 하다가 사탄이라는 꾸중을 들을 정도로 좌우를 분간하지 못하는 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런 우리를 어떤 때는 책망하시고 어떤 때는 위로하시고 어떤 때는 기뻐하시며, 슬퍼하시며 이끌고 계십니다.
이시간 우리가 그런 예수님을 바라보는 시간을 갖기를 원합니다. 우리에게 많은 근심과 괴로움이 있을 것입니다. 수많은 기도제목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근심과 괴로움 바람과 소원들로 둘러쌓여, 우리는 지금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을 보고 있지 못한 것은 아닙니까.
우리의 십자가에 깔려 우리를 도우시고 함께 십자가를 들고 계시는 예수님의 손길을 느끼지 못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시간 예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구주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모든 소외된 자의 친구되신 우리의 구주를 바라봅시다. 우리의 구주께서는 나자신조차 외면하고 버렸던 나의 모습을 그대로 안으시고 사랑으로 인도하십니다.
그 사랑을 느끼며, 그 안에서 회복을 경험하고 치유되며 새힘을 얻어 담대히 우리의 십자가를 질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길 소망합니다.
마무리기도
기도제목(간단하게)
말씀을 기억하며
새롭게 오실 담임목사님을 위해
코로나19를 위해
김진리 박종휘 선교사님의 가정과 사역을 위해서 주여 일창하신후 기도하겠습니다.
환우들을 위해
마지막으로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주여 일창하신후 기도하겠습니다.
마무리기도
주기도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 나이다.
- 아멘 -
광고
마지막으로 개인제목을 가지고 주여삼창후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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