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소금으로 살라
5:13–16 In what follows, Jesus shifts from pronouncements of blessing to instructions about the law. He compares His followers to salt and light, elements commonly used as metaphors in antiquity. His point is that disciples who fail to live a lifestyle that reflects the values of the kingdom of heaven are akin to something tasteless or devoid of light—undesirable and of no value.
5:13 salt of the earth Salt fulfilled a variety of functions throughout biblical history. Israel’s proximity to the Dead Sea and numerous salt pits throughout the land made salt a readily accessible commodity (see Zeph 2:9).
5:14 light of the world Recalls Israel’s role as a light to the nations (Isa 42:6; 49:6). In John, Jesus describes Himself as the light of the world (John 8:12; 9:5).
5:16 Father Jesus commonly refers to God by this designation, which indicates their relationship of father and son. The concept of Yahweh as a father was common throughout Israel’s history (e.g., 2 Sam 7:14; 1 Chr 22:9–10; Psa 2:7). Here, Jesus extends this metaphor to members of the kingdom (see Matt 5:45).
5:17 to fulfill The Greek word used here, plēroō, refers in this instance to carrying something out. Matthew is saying that Jesus performed or upheld that which was required by the law and met the expectations of the predictions about Him in the writings of the prophets. In Him, the Law and the Prophets reached their fullest expression (e.g., 1:22; 2:15, 17, 23).
산에 오르신 이유
너희 가 소금이다.
소금(salt) 짠맛을 내는 조미료의 하나로, ‘변치 않음’을 상징한다. 음식의 간을 맞추어 맛을 내거나 부패를 방지하여 음식을 보존하는 데 사용되었다(욥 6:6; 사 30:24; 마 5:13). 소금은 제사를 드릴 때나(레 2:13; 겔 43:24) 의료용 소독제로도 쓰였다(겔 16:4). 또 계약을 맺을 때도 소금이 사용되었는데, 이는 소금의 변치 않는 성질 때문이었다(민 18:19; 대하 13:5). 엘리사는 수확이 좋지 않은 땅의 토양을 회복시키기 위해 물의 근원지에 소금을 뿌렸으며(왕하 2:21), 점령한 성읍을 완전히 파괴한다는 의미로 소금을 뿌리기도 했다(삿 9:45). 그래서 성경에서 소금은 폐허, 멸망, 무익함, 죽음 등을 상징하기도 한다(겔 47:11; 습 2:9). 신약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세상의 부패를 막아야 할 중요한 직분이 있음을 비유하여 ‘세상의 소금’(마 5:13; 막 9:50; 눅 14:34)이 되라고 하셨다. 한편 소금은 고대 사회의 생필품 중에서도 매우 귀한 취급을 받았는데, 나라의 일을 하고 녹봉을 소금으로 받기도 했다. 따라서 ‘소금을 먹는다’(스 4:14)는 말은 왕이 제공하는 녹봉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빛과 소금 비유는 일반적으로 ‘세상의 부패를 방지하는 소금으로서의 교회’와 ‘세상을 밝히는 교회’를 가르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런 식의 해석은 곧바로 ‘세상 속에서의 교회의 역할’이라는 주제로 달려가게 되고, 이 본문이 ‘부패’와 주로 관련되어 있다 보니, 대다수의 경우 결론은 교회가 세상 속에서 주로 윤리적, 도덕적 역할에서 세상을 정화시키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으로 매듭지어집니다. 앞에서 살펴본 아브라함의 본문과 함께 빛과 소금 비유는 교회가 세상을 정화시키는 존재가 되어야 하는 점에 강조점을 두어 가르쳐집니다.
교회와 성도가 윤리적, 도덕적으로 고결해야 한다는 생각은 어떤 면에서는 당연한 것입니다. 할 수 있는 한 교회는 그리고 성도는 세상 사람들이 볼 때 가장 윤리적이고 고상해야 합니다. 성도는 세상 어떤 사람들보다 더 도덕적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성경이 정말 우리에게 단지 ‘윤리적’인 문제를 가르치고 있습니까? 빛과 소금 비유의 진의(眞意)는 교회나 성도가 ‘대(對)사회적인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기 위해 주어진 것일까요?
이 말이 무슨 의미입니까? 이 말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라고 말씀하셨을 때, 우리가 세상 속에서 독특하고 유일한 맛 즉, ‘소금밖에 낼 수 없는 맛’을 내는 존재들이라고 말씀하고 있지, 그 소금을 가지고 간을 해서 생선 등이 썩지 않게 하는 용도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즉 성경의 관심은 소금의 본질 (짜다는 것)이지, 소금의 용도(생선 등의 부패를 방지하는 것)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들을 때, 우리가 여기에 의미를 집어넣어서 ‘비록 주님은 소금이 맛을 낸다는 것에 대해 말씀하셨지만, 소금은 부패 방지에도 사용되니까 나는 부패 방지로 이해할 거야’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빛에 대해서도 똑같은 방식으로 접근해 봅시다. 이 역시 통상적인 해석은 ‘빛이 세상을 밝게 한다’입니다. 그러나 주의해서 보십시오. 14~15절은 빛이 어떤 대상물을 비추어 주는 존재임에 포커스가 있습니까, 아니면 빛은 스스로가 빛이 나기 때문에 타인들에게 보여지는 존재라는 점에 포커스가 있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실수하는 이유는, 작위적으로 자신의 견해를 성경에 집어넣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빛에 대해 설명할 때도 빛은 ‘세상을 비추는 것이다’라고 설명하지 않습니다. 14절은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라고 함으로써, 빛이라는 존재는 캄캄한 세상 속에 있을 때 드러나게 되어 있다는 점이 강조됩니다(산 위에 동네가 있다면 산 아래에서 볼 때 거기에 집이 있다는 것은 빛 때문에 알려지게 될 것입니다). 15절 역시 그렇습니다.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통 밑에 두지 않고 등경 위에 둔다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이 역시 빛이라는 존재는 모든 대상물들에게 보여진다는 의미입니다.
이 두 가지 사실을 종합해 보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의도는 명백합니다. 예수님은 세상을 염두에 두고 이 말씀을 하신 것이 아닙니다. ‘너희는 세상이 변질되지 않도록, 세상이 어두워지지 않도록 빨리 막도록 해라!’ 예수님의 주된 의도는 이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너희는 소금처럼 세상 속에서 독특한 맛을 내는 존재다. 너희는 빛처럼 세상에 보여지는 존재다.’ 이것이 바로 주님의 강조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본문을 제대로 읽는다면 그 적용점이 달라지게 됩니다. 부패 방지로 이 성경을 읽으면 교회가 행해야 할 일은 ‘대사회적 봉사’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의 본의를 제대로 읽으면 교회가 해야 할 일은 세상 아무 곳에도 맡겨지지 않은 독특한 맛, 빛으로서의 복음 사역이 될 것입니다.
물론 이 말은 교회가 대사회적 임무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교회가 지역 사회에서 역할을 하는 것은 선한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빛과 소금 비유가 그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잘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