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에 대해
Sermon • Submitted
0 ratings
· 82 viewsNotes
Transcript
시편
시편
시편이란 무엇인가?
시편은 고백이며 노래이며 기도입니다. 시편은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지 않고 인간의 반응이 나옵니다. 이것은 토라에 대한 반응이며 역사서와 그 가운데 처한 기자의 반응입니다. 이런 시편은 크게 특별한 제의(예배)적 기능과 개인의 삶에 유익을 줍니다. 때론 치유하고 가이드하며 격려와 책망. 그리고 교훈합니다. 시편은 다양한 인간의 관계를 설명합니다. 그래서 이러한 반응을 알기 위해서는 장르를 알아야 합니다. 장르는 크게 탄식과 그 대척점에 찬양시로 구성이 되어있으며 학자에 따라 중간에 감사와 신뢰시를 첨가합니다. 또한 찬양시에는 순수한 찬가와 찬송시가 있습니다. 이런 시편을 올바로 해석하기 위해서는 1) 평행법을 찾고 2) 에뜨나흐타, 올레 베오레드 특히 시편에서는 올레 베오레드를 먼저 찾아서 나눌 수 있습니다. 각 절의 구분은 학자들이 다르게 잡는 만큼 동사, 인칭의 변화에 유의하여 절을 나누는 것이 중요합니다.
시편은 인간의 삶이 일직선이 아닌 예측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하나님을 묵상하는 책이며 이것을 이해하고 삶 속에서 고백하는 것입니다. 구약의 제사는 제물 드림(언약에 따라)을 통해 받으시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긍휼하심과 선하심을 바라고 나아갑니다. 이때 깨닫고 하나님을 신뢰하며 치유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시편은 바로 하나님을 대면하게 되면 존재가 바뀌게 됩니다. 왜냐하면 고백이며 노래이며 기도인 시편을 통해 기도를 듣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친밀하게 대화하시기를 시편을 통해 보여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인식하고 다양한 이미지를 통해 이해합니다. 그리고 피난처로서의 하나님이심을 알게 됩니다. 이는 부서지고 망가신 예측 불가능한 삶에서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게되고 평온한 샬롬의 삶을 누리게 됩니다. 시편은 이러한 모습을 토라를 따라 사는 삶이라고 말합니다. 그 길에서 벗어난 인간의 내면에서는 죄악이 일어납니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은 멸망이 아니라 하나님의 용서가 있음을 알고 용서를 통해 시작함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복된 삶이란 항상 깨어 있는 삶이며 왕이신 하나님을 아는 삶입니다.
시편의 신학에 대해 서술하시오.
1. 창조주 하나님(보존신학) 창조주 하나님 - 왜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이미지가 중요한가? 이는 인간이 부셔질 수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인간은 자살을 한다. 자기와 같은 이를 제거하려는 것이다. 하나님은 지금도 창조하신다. 바로 부서진 인생을 재창조 하실 수 있다. 지금도 여전히 파괴된(인간) 것을 창조하신다. 특히 시편 19편 104편이나 33편을 통해서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보존하시고 이러한 신학을 시편을 통해 발견할 수 있다.
2. 시편에서 하나님은 역사의 주관자이시다. 이를 언약신학으로 이해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출19:5.6절을 통해 출애굽을 통해 자유를 주시고 광야를 통과해 가나안을 주셨습니다. 죄로 인하여 빠져 죽을 때 하나님께서는 용광로와 같은 인큐베이터 기능을 합니다. 이유를 정확히 알수 없는 430년의 애굽의 생활과 죄의 원인으로 바벨론 포로의 70년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은 시편에서 ‘언약신학’을 발견하게 된다. 언약적 다양한 언약적 관점을 찾을 수 있다. 창조를 통해 보존하시는 신학을 발견할 수 있다. 어려운 현실에서 우리는 평온함을 경험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이제 끝이 왔구나’ 하며 다음을 생각할 수 있고 그것이 아니라 할 지라도 다시 살아갈 수 있다. 종말 같은 시기에도 흔들리지 않고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바로 본다. 아브라함의 언약, 시내산 언약을 이야기 한다. 또한 다윗의 언약을 말한다. 창조주는 피조물과의 관계만 이야기한다면 친밀한 관계성 속에서 하나님을 계시하시기를 기뻐하신다. 3권의 경우 세상이 의롭지 않다는 사실을 이야기 한다면 4권에서 바로 이 모든 것에 대한 주권을 가지신 왕권 사상이 중요하게 나타나는 특성을 갖고 있다. 끊임없는 사랑으로 우리를 돌봐주신다. 구약의 두 축이 토라와 제왕시다. 토라를 통해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것, 인간이 행복하게 사는 방편으로 휘둘리지 않도록(세상의 변화), 토라에 따라 걸으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 미래의 구원자에 대해서 나온다.
3. 창조 - 출애굽 - 시온산(토라 선포) 또 다른 신학이 시온신학이다. 창조와 시온(시내산과 연결되는데) 시온 미가서와 이사야에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창조의 개념이 시온에서(에덴의 이미지) 종말에 하나님의 말씀이 흘러 나온다(미가서) 이러한 시온의 노래들이 많이 나온다. 아브라함의 헌신, 모리아산 헌신이 다윗의 언약속으로 흘러들어간다. 구약 계시의 중요한데 오경전체가 다윗 언약으로 들어온다. 그리고 개별적인 왕이 된 이들에게 왕에게 왕이 된 시간에 토라를 기록하라는 것이다. 이런 토라 기록에는 신명이 나올 때 마다 의식을 갖는 자세를 가져야 하고 자신이 쓴 토라를 묵상하는 왕도이다. 시온은 거룩한 도시 곧 예루살람의 또다른 이름으로 여호와께서 시온에 나타나시기 때문에 중요하다. 따라서 시온은 모든 세상 가운데 놀랍고 영광스러운 곳이다.
4. 성전신학 - 시온 안에서 온전한 교제와 죄의 문제를 해결한다.
5. 정리하면 // 창조. 성례, 주권, 하나님의 속성 다면적인 것을 표현했는데 특히 ‘의’, ‘공의’가 중요한다. 시편이 갖는 인간론은 연약한 존재이며 인간은 오묘하게 만드셨는데 내면 속에 토라를 따라 살게 했지만 그렇지 않다면 내면 속에 죄가 나온다.죄가 무엇인가를 51편에서 설명한다. 죄에 대한 무엇인지를 시편은 선언한다. 간과하지 않고 죄에 대해 반드시 심판받는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시편이 중요한데 ‘회복’이다. -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 이전까지는 이해하지 못했는데 ‘하나님 그분의 대속의 길’이다. 바로 모든 회복은 회개가 아닌 용서(하나님의 절대적 신학)이다. 중요한 시편 신학이 ‘하나님의 신적인 용서’이다. 용서가 시작되어서 우리 안에 새로움이 시작된다. 용서가 없다면 불가능하고 시편은 인간이 새로워 질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고 이는 철저하게 하나님으로 부터 시작한다. 용서를 실현하기 위해 하나님은 자기 자신을 나타내신다. 그래서 시편은 신약에도 많이 인용된다. .2.22.69.110. 118의 경우가 그렇다. 예를 들어 눅24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에게 모든 성경에 ‘자기를 설명’하는 증거로 사용된다. 예수님은 메시지 속에서 구약 속에서 자기를 말하는 것을 사용하신다.
6. 예배의 신학이 있다. - 어떻게 예배할 것인가를 시편을 통해 배우게 된다. / 입례에 대한 시편이 많다. 성전 제사를 영혼없이 피상적으로 드리는 상황에서 시편의 의미는 중요하다. 성전에 들어갈 때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를 이야기 한다.
* 평행법
개별적 행동에 포커스가 있다.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반복되는 패턴이 있다.
압축된 문장을 통해 내면을 압축시켜서 전달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이미지의 반복을 통해 압축된 문장으로 의미를 전달하는 문학적 기법)
1) 유사적 평행법= 병행을 이루는 행들에 대해 유사한 사상과 표현을 제공하는 평행법이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시19:1)
• 도치된 유사 평행법= 유사한 평행 구조가 문법적 구조의 도치로 제시되는데 이를
그들이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지 아니하고
그의 율법 안에서 걷기를 거부했다 (시편78편 10절 원문 번역)
2) 반의적 평행법 - 두 행의 단순한 병행이나 여러 행에 걸쳐 날카로운 대조를 나타낸다.
공의는 나라를 영화롭게 하고 / 죄는 백성을 욕되게 하느니라 (잠14:34)
3) 점진적 평행법 - 이어지는 행이 첫째 행을 보완하고, 또는 보완하거나 완성시킨다.
하나님이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 [왜냐하면] 내 영혼이 주께로 피하되 (시편57:1)
• 계단식 평행법 - 이어지는 행들이 첫째 행에 있는 사상의 완성으로 이어지는 유사한 어 구로 시작한다.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라
온 땅이여 여호와께 노래할지어다
여호와께 노래하여 그의 이름을 송축하며
그의 구원을 날마다 전파할지어다 (시96:1-2)
• 테라스 패턴 평행법 - 둘째 행이 시작될 때 첫째 행의 끝부분에 있는 단어 또는 어구를 반복함으로써 진전이 가속화된다.
그 때 숲의 모든 나무들이 [즐거이 노래하리니]
[그것들이]즐거이 노래하리니 그가 임하시되
[그가]임하실 것임이라 땅을 심판하러 (시96:12-13)
• 경첩 테라스 평행법- 마지막 행이 앞의 병행되는 두 개의 행을 연결하는 하나의 경첩으 로서 이중적으로 기능한다.
큰 물은 박수할지어다
산악이 함께 즐겁게 노래할지어다
[그것들은 여호와 앞에서 노래할지어다]
그가 땅을 심판하러 임하실 것임이로다 (시98:8-9절)
• 사다리 평행법- 숫자의 순서를 활용함으로써 나타나는데, 둘째 행은 첫째 행에 있는 숫 자보다 더 크거나 이에 상응하는 숫자를 포함한다.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삼상18:7)
• 상징적인 평행법- 직유의 방식으로 달성되는 평행법이다.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 같이
감사시의 진행 방법
도입부
하나님의 이름을 부름으로 시작하거나, 기쁨을 표현하고 싶은 부름으로 시작할 수 있고 (선언)
본문은
자신이 경험한 과거의 고난 / 이건은 일단락이 되었고, 동시에 구원의 호소가 있는데(요런 부부분이 탄식과 같은 느낌 - 탄식이 끝났는지 파악하라), 사건을 기록하거나, 자기가 이렇게 한다는 서원의 내용이 들어 가기도한다.
결론은
회중을 향해 강한 촉구, 격려가 나타난다. 열망을 불러 일으키는, 동기 부여 메시지로 마무리하거나 자기 자신을 향해 ‘찬양하라’고 메시지를 한다.
기도가 깊어지면 1인칭 기도 - 자기가 자기를 훈련하는 기도를 하게 된다.
탄식시의 경우
탄식은 우리가 귀중히 여길 소스다./// 탄식을 통해 하나님의 소중함. 나의 연약함, 하나님께 간구 곧 ‘자기 의’를 벗어난다.. 탄식이 있기 때문에 찬양으로 가게 된다는 ‘신비’ / 탄식에 중요한 것은 들을 수 있는 자가 한다. 없다면 넋두리. 또는 대적이 들을 수 있다. / 자기 자신에 대한 탄식이며 하나님께 대해서는 호소며 고소하는 것은 대적이다. / 탄식은 쏟아서 평상대로 만드는 것이다. 탄식에서는 ‘하나님을 신뢰합니다’라는 것을 찾아야 한다. / 그래서 자기 죄 때문에 고통스러울 때 죄가 계속 나를 괴롭히는 자책과 죄에 대한 고백이 들어가고 이어서 찬양과 감사가 뒤에 붙는다.
의인은 토라를 따라 살려고 애쓰는 사람. ‘애쓰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모든 백성이 따라 살도록 의도하셨다.
시편에서 의란?
다윗의 경우 의로 판단해 주세요라고 했다. 기독교인들은 스스로를 죄인으로 보는데, 우리가 죄를 고백하고 위른 ㄴ의롭다고 인정받고 있지 않다는 것인데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이 의롭다 하면 자기 의를 생각한다. 바리새인의 의가 바로 그렇다. 회복된 우리는 제한적이지만 하나님 나라를 느끼고 산다. 구약은 훈련을 통해서 자신의 감정을 컨트롤 한다. 삶에는 이해되지 않는 것이 많기 때문에 의로운 척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우리에게 탄식시가 필요하고 여기에 ‘의’에 문제가 걸리는 것이다.
의는 하나님게 속한 ‘의’가 중요하다. 이것을 하나님의 신실하심으로 표현한다. 그의 언약에 신실하심에서 의가 나타난다. 시편 18에서 ‘여호와께서 만민에게 심판을 행하시오니 여호와여 나의 의와 나의 성실함을 따라 나를 심판하소서’라고 할 때
나의 의는
• 하나님의 의라는 것은 의로운 것들을 행하시는 그 어떤 것이고 이것을 계속 묵상해야 한다. 예수님 시대 의를 계명을 다 지킨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예수님은 가식적인 의라고 가장 악한 것이라고 했다. 자기 의를 드러내는 것이다. 시편 안에는 ‘하나님의 의’를 언급한다. 이것은 ‘주입된 의’이다. 구약에서 악인을 말할 때 자기 의, 자기 능력을 의지해서 결국 하나님을 필요로 하지 않는 자, 토라를 무시하는 자라고 한다. 그래서 토라를 따라 걷지 않는 자가 악인이다.
• 그렇다면 토라를 따라는 사람이 아니라 토라를 따라 ‘애쓰는’ 사람이 의인이라고 한다. 그래서 토라를 주셨다. 왕에게는 그가 왕에 오를 때 토라를 직접 써야 하고 신명이 나올 때마도 의식을 통해 자신을 가다듬고 그 토라를 읽으며 왕의 길을 가야 한다. 따라서 토라는 하나님과 관계에 어떤 것이 생성된다. 시편 1편은 ‘걷는다’는 표현을 써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