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설교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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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1
시편1
시라는 그 자체는 아름답고 서정적입니다. 성경에 시 역시 여기에 신학적인 의미까지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를 구성하는 문법을 이해하지 못하면 그 의미를 해석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구요. 그러면 단순히 문자가 주는 의미로만 해석하게 되는 것이죠.
이것도 괜찮겠지만 그 본래의 의미를 아는 것은 단순히 시를 깨닫는 정도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여기 서시가 있습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 한 점 부끄럼 없기를, /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
나는 괴로워했다. /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너무나 유명한 시이지만 이 시를 들으면 일단 감정적으로 느낌이 좋다. 라든지 한 구절 자신의 마음에 들거나 지금의 상황에 맞거나 하는 특정한 싯귀에 꽂힌다고 해야할까요? 그렇게 시를 들어서 좋은 느낌, 듣는 순간 드는 느낌을 가지고 시를 보는 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끼는 시에 대한 일종의 자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면 나머지는 다 공부입니다. 마치 학생들이 학교에서 국어시간에 제일 어려운게 시에 대한 것입니다. 여기에 복잡한 구조가 나오고 그 본래의 의미가 무엇이고 설명하면 시험문제에 나오니까 외우고 막 그럽니다.
시는 함축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딱 그 의미를 아는 사람이 들으면 짧은 글 속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수많은 이야기를 마치 한 번에 이해하듯 어떤 세계를 문을 열고 들어가듯 ‘확’하고 다가 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화려한 문체 속에 본래의 의미가 전달되지 못하면 그 화려한 문체에 이끌려 우리의 감정적으로 좋다. 멋지다는 상태로 끝나게 되는 것이죠.
공부처럼 해 본다면 전체적으로 보면 9행으로 쓰여졌죠. 한 문장으로 보면 4행까지 ‘괴로워했다’ 라고 했으니 과거의 의미가 있는 거구요 5-8행을 보면. ‘걸어가야겠다’ 라고 했으니 미래의 그림이라면 9행은 ‘오늘 밤’이라고 했으니 현재의 모습이 되겠네요.
잘 알다시피 윤동주는 일제 강점기에서 자신의 모습을 시에 담았습니다. 밤이라는 암담한 현실에서, 바람은 심리적으로 자신의 깊은 동요와 갈등의 어려움을 표현한다면. 그와 반대되는 하늘은 시인의 삶의 소망, 밤, 바람과 대립되는 올바른 삶에 대한 자신의 소망을 담았습니다. 또한 별은 소망과 이상을 그리고 밤 짓은 곳에서 빛남으로 인해 결백한 시인의 모습이 담겨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과거와 미래 그리고 그 가운데 위치한 현재의 시간 구성을 통해서 예전에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바랬던 자신의 삶이 ‘잎새가 이는 바람’은 폭풍처럼 거대한 것이 아니라도 아주 작은 움직임에도 자신이 얼마나 갈등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는 육체적인 고통보다 오히려 정신적으로 찾아오는 갈등이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담고 있습니다. 특히 윤동주의 시에는 ‘별’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해요. 그리서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희망, 자신이 원하는 이상적인 삶, 순수한 소망이나 양심을 의미한다고 하지요. 그러니 ‘죽어가는 것’은 일제 강점하에 억업받넌 우리 민족을 상징하며 그런 이들을 사랑하는 깊은 마음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의 모습은 ‘다짐’합니다. ‘걸어가야겠다’ 아주 강도 높은 시인의 의지를, 그렇게 살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이 담겨있는 것입니다.
마지막에 ‘별이 바람에’라고 말할 때 다시 바람은 많은 사람이 처음 자신의 마음에 요동치는 것보다 이제는 현실에서 일어나는 시련과 고난을 상징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정도까지 들으면 아이구 전도사님 그럼 시편의 시는 150편이나 되고 그런 내용을 다 이렇게 공부하듯 알아야 한다면 못하겠는데요. 라고 말씀하실 겁니다.
사실은 그렇게하면 좋겠다. 어쩌면 하루에 한 편에 대해 묵상한다면 6개월 묵상하면 되잖아요. ^^ 그런데 이제 좀 다른 이야기를 해볼꺼예요.
그럼 시편이라는 성경의 시를 살펴보기 전에
우리가 읽고 설교에서 듣고 하는 성경이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성경이 성경을 소개할 때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여기에서 성경이 하는 4가지가 나옵니다. 교훈과, 책망 그리고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는데 유익하다는 거지요. 뭐에 대한 것일까요. 바로 우리의 구원에 대한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는 교훈과 책망을 저와 여러분이 잘 듣는 편입니다. 그런데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는 대는 좀 소홀한 것 같아요. 바르게 한다는 것은 예수를 믿는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가 무엇이 올바른가에 대한 생각이예요. 우리가 살펴볼 시편의 1편에서 바로 나오죠. 악인의 길과 의인의 길이 대비가 되면서 나오잖아요. 그리고 의로 교육한다는 것은 바르게 함과 비슷한데요. 바르게 함이 나에게 대한 것이라고 하면 의로 교육한다는 것은 너, 곧 우리에 대한 것예요. 어떤 분들을 보면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잘 하신다는 분들이 있어요. 모든 예배에 잘 참석하시고 누구보다 열심히 있는 분들이 있는데 다른 분들과의 관계에서 보면 그렇지 못한 경우가 있지요. 이렇게 성경이 무엇인가를 여러분들이 생각해본다면 시편을 통해서 성경이 하는 4 가지의 중요한 것을 배우고 행할 수 있다는 의미를 갖는 거지요.
예수님은 직접 누가복음 24
:27절에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 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신약에서 많은 부분이 시편의 글을 인용하고 있다는 사실이예요. 그러니 시편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겠죠.
그렇다면 시편은 어떤 방법을 통해서 그렇게 하는가 하는 거예요. 4복음서는 예수님께서 제자에게 말씀을 하시는 방법이지요. 그렇듯 시편은 어떡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가 하는 거예요.
시편에 큰 특징중 하나가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럼 하나님이 말씀하지 않으시는데 우리는 어떡해 알 수 있냐하면 바로 사람들 조금 격한 표현을 써보면 ‘인간의 반응’이 기록되었다는 거예요. 우리도 오랜 시간 신앙생ㅎ활을 하면서 누군가를 보고 따라하잖아요. 마치 아이들이 어른들을 보고 따라하는 것처럼 말이죠. 또한 여러분도 누군가에게 가르칠 때 ‘나 처럼 해봐’하죠. 그런면에서 보면 시편은 ‘이론서’가 아니라 ‘실습서’ 같은거예요. 시편에 나오는 시편을 쓴 사람들이 이를 시편 기자라고 말을 하는데 시편 기자들이 ㅅ실습을 어떡해 해는가를 아주 다양하게 기록을 하고 있다는 거죠.
어떤 사람은 아주 기쁜 상태에서 어떤 사람은 극심한 고통 속에서, 어떤 사람은 답답한 마음의 상태에서 이런 시를 썼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마치 윤동주 시인은 일제 강점기 하에서 자신의 마음의 상태를 시로 표현한 것 처럼 시편의 기자들 역시 그런 상태에서 시를 썻다는 거죠. 그럼 저와 여러분이 오늘 하루를 시작하면서 막 이런 상태가 있잖아요. 어제 갑자기 큰 일을 당한 사람도 있고 오늘 뭔 일을 해야하는데 어떡해 해야할까 고민하면서 시작하는 사람도 있고 어제 누굴 만났는데 그분이 코로나 19 동선에 있어서 아침에 열을 재보면서 마음이 꽁닥거리릴 때도 있고 오늘 만나야 할 어떤 고객이 아주 날까로워서 피하고 싶은 사람일 수도 있고 아니면 기분좋게 누구를 만나는 준비의 시간일 수도 있고 바로 이런 많은 상황이 시편의 기자들이 당한 상황에서 시를 썼다는 거지요.
그런데 성경의 시편은 단순히 그런 상황에서 자신이 겪는 것만을 쓴 것이 아니라. 바로 성경이라는 사실은 우리를 4가지의 경우로 인도한다는 사실이 중요해요. 윤동주의 서시는 우리가 알고 그런 마음으로 지금도 살고 싶다는 정도는 가능할 거예요. 하지만 교훈, 책망,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지는 못한다는 사실이지요. 왜냐하면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시편을 가까이 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그건 벌써 말하면 안되고 다음 시간에 말씀을 드려볼 거예요
여러분이 그래서 시편을 잘 읽고 설교를 잘 듣고 묵상을 하신다면 바로 그와같이 인생에서 만나는 수많은 일들 가운데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고 이겨내고 어떠한 상황으로 회복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상황일까요? 여러분과 제가 가장 원하는 상황은 어떤 상황이죠. 매일 아침마다 새롭게 받는 마음의 상태, 우리의 상태는 매일 외식을 하는 것처럼 들뜬 상태인가요? 아니면 일어나면서 어제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끌어안고 다시 문제에 휩쌓이는 상태인가요? 몇 주전 목사님께서 설교를 하시면서 어떤 한 분의 예를 들었는데 그분이 문제가 해결된 것이 아니라 자신이 그 문제를 감당할 능력을 얻게 되었다고 말씀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면 이런 경우처럼 과연 우리는 어떤 상태가 되면 좋을까요? 어쩌면 우리가 원하는 것은 극도의 불안도 아니요 그렇다고 극도의 흥분 상태도 아닌 가장 정적이면서도 평안의 상태를 원하실 것입니다.
시편은 이것을 ‘복 있는 상태’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바로 시편 1편이 시작하면서 말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럼 먼저는 ‘인간들의 반응’이다라고 했는데요. 그리고 많은 반응들이 있다고 했습니다. 무엇에 대한 반응일까요? 이 부분이 여러분들이 앞으로 시편을 읽으시면서 고민해야 할 중요한 부분이라는 거죠.
마치 먼길을 가기 위해 차를 타면 몇 가지를 체크합니다. ‘타이어의 바람이 적정했던가? 브레이크 오일은 잘 채워져 있는지, 기름은 충분히 있는지, 어제 내가 피곤해서 운전을 할 상황인지’ 바롤 안전 점검이죠. 그러면서 기도합니다. 이처럼 시편을 읽을 때 무엇을 점검해야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 점검 여부에 따라는 것이 ‘반응’ 입니다. 그러니 시편의 다양한 기자들이 뭔 때문에 이런 반응을 하는가? 하는 사실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 특히 구약의 기준에서 본다면 ‘토라’라고 하는 것입니다. 시편을 썼던 이들이 있던 당시에 토라는 ‘모세오경’을 가르칩니다. 그리고 선지자들의 글을 가르치는데 토라는 ‘모세오경’을 의미하는 것이죠. ‘창. 출. 레. 민. 신명기’를 의미하는 것예요. 그런 토라에 의해 살아온 삶이 기록된 것이 선지자들의 글이나 왕들의 기록이 되는 것입니다. 1장에서 바로 그 부분부터 시작하잖아요. 의인의 삶이 대표적으로 어떠하다 했나요. ‘
복있는 사람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라고 선언하잖아요.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The Holy Bible: New Korean Revised Version. (n.d.). (electronic ed., 시 1:1–2). South Kor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