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설교 (3)

갈라디아서   •  Sermon  •  Submitted
0 ratings
· 74 views

갈라디아 교인들의 인식

Notes
Transcript

인사

설교의 도입의 유형은 크게 3가지 유형이 있는 것 같습니다.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유형은 시나 소설을 인용하거나 어떤 예화를 사용하여 주변을 환기시키고, 오늘 설교의 내용의 핵심이 무엇인지 미리보여주는 유형입니다. 이 유형은 각 교회의 담임목사님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도입입니다. 두번째 유형은 자신을 불러준 교회와 성도님들께.. 그리고 하나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는 인사와 유머로 시작하는 유형입니다. 이는 담임목사님들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 유형으로...특별집회에 초청받은 강사목사님들이 많이 사용하는 도입입니다. 담임목사님들이 이러한 유형을 사용하지 않는 이유는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이미 너무 잘 알고 있는 교인들에게 설교를 할때 하는 인사가 아닌, 처음보는 교인들이 느낄 수 있는 낯섦을 친숙함으로 바꾸고자 하는 인사이기 때문입니다. 세번째 유형은 자신이 왜 이자리에 와있는지에 대한 설명을 자세히 하는 유형입니다. 주로 선교주간에 초청받은 선교사님들이나 평신도사역자가 간증형 설교를 시작하기 전 자신이 강단에 선 이유를 설명함으로 자신이 지금 하는 이야기가 자신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닌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받은 은혜임을 교인들에게 알리는 유형입니다. 사실 이 또한 담임목사님들은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도입일것입니다.
저는 오늘 설교의 도입을 이런 인사로 시작하려고 합니다.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전도사가 된 저 이응길은 함께 있는 모든 평강교회 교우들에게 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합니다.
어떤 느낌이 드시나요? 오늘 갈라디아교회에 보내는 편지의 도입에 제 이름을 넣은 것입니다. 무언가 아주 심각한 이야기를 할 것 같은 인사같지 않나요? 바울의 편지의 첫 도입은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울과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과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과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과 우리 구주 하나님과 우리의 소망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명령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약속대로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이러한 인사정도가 끝입니다.
하지만 오늘 갈라디아서의 인사는 평소와는 많이 다른 무언가 심각한 이야기를 할 것만 같은 분위기를 풍깁니다. 평소보다 다소 많이 구체적인 인사후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의 행동을 이상히 여긴다고 말합니다. 갈라디아 교인들이 자신과 자신을 부르신 이를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것이 이상하다며 책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복음을 따르고 있는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하며 바울은 자신의 메시지가 자신으로 부터 나온 것이 아닌 하나님으로 부터 나온 것임을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보다 명확히 할 필요가 있음을 느끼고 의도적으로 편지의 도입을 그렇게 한 것입니다.

바울의 사도성 변호의 이유

우리는 바울 자신이 사도성을 변호해야 할 만큼 갈라디아 교회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오늘 본문을 통해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갈라디아서 전체를 읽어보면 갈라디아 교회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 문제는 할례문제를 중심으로 한 율법으로 인한 문제라고 보여지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바울이 갈라디아 사람들에게 그들을 미혹하고 있는 이들의 열심은 "이간질하기 위함이다" 라고 말한 것으로 보아, 갈라디아교인들을 미혹하는 이들이 바울의 사도성을 의심할 수 있을만한 이야기와 함께 바울이 전한 복음의 권위를 떨어뜨리고, 자신들이 전하는 다른 복음을 따르게 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즉 성령의 사람들을 율법에 매인 사람들로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바울이 자신의 사도성을 거의 한장을 할애해서 설명해야만 할 정도인가를 생각해봅니다. 아마도 바울이 갈라디아교회를 떠난 후 새롭게 갈라디아교회에 들어온 이들의 말에 갈라디아교인들이 바울의 사도성을 의심하는 정도가 심해지지 않았을까 추측해 보게 됩니다. 바울은 다들 아시는 것처럼 예수님의 직계 제자가 아닙니다. 심지어 예수 믿는 이들을 박해하고, 그들을 잡으러 다니던 사람이지요... 그러니 바울의 사도성이 의심받는 상황이라면 바울이 전한 복음이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어떤 의미로 남아있게 되었을까요? 바울은 분명 바른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바른 복음은 바울이 스스로 공부해서 나온 이야기가 아니라 예수님께로 부터 나온 참된 복음이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의 사도성이 의심받게 되었기에 바울이 전한 복음도 의심받게 되었으며, 그로인해 예수그리스도의 은혜가 아닌 다시 율법... 율법이 중요하게 여김받게 되어서, 예수그리스도의 죽음도 바울의 수고도 모두 헛된 것이 되어버리는 갈라디아교회의 상황에 바울이 자신의 사도성을 변호하며 동시에 갈라디아 교인들을 책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바울이 전한 복음을 바울의 메시지정도가 아닌 하나님의 메시지로 여겼다면 갈라디아 교회에 어떤 미혹이 있어도 그들은 흔들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인식의 중요성

개인적으로 본문을 묵상하면서 사람의 인식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무언가에 대해서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그 무언가를 대하는 태도나 그 무언가에 대한 결과가 전혀 다르게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일단 쉬운 예로 제가 평소에 아이들과 함께 나누는 이야기들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많은 아이들이 저와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빠짐 없이 하게 되는 이야기는 공부이야기입니다. 전직 수학강사라는 과거는 사역을 하면서도 공부에 대한 상담을 할 수 있게 만들어 줍니다. 그래서 아이들과 공부이야기를 하다보면 하나같이 수학은 어렵다. 실제 생활에서 아무 쓸데가 없는데 왜 배우는지 모르겠다...이런 말들을 합니다. 사실 아이들에게 공감하는 듯한 말을 해주긴 하지만, 저는 그 말에 동의할 수는 없습니다. 수학은 쉽습니다. 그리고 수학은 실생활에서 아주 유용하게 쓰일 뿐만 아니라, 세상을 합리적으로 살아가는 능력을 기르는데 가장 중요한 과목이기 때문입니다. 수학에 대한 저의 인식과 학생들의 인식이 굉장히 다릅니다. 학생들에게 수학에 대한 저의 인식을 이야기 했을때 그것을 믿는 학생과 믿지 못하고 "아 저 꼰대 또 시작이네... "이런 생각을 하는 학생은 일단 목표점수에 도달할 수 있는 가능성부터 달라집니다. 그리고 공부의욕도 달라집니다. 어떤 인식을 가지고 공부하는 것이 성적이 더 잘 나올까요?.. 공부는 쉬운것, 지금 내게 필요한 것, 내가 앞으로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지금의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다... 이런 인식을 갖고 있는 것이 흔들리지 않고 공부하는데 있어서는 훨씬 더 좋을 것입니다.
신앙적인 예로, 우리가 기쁨과 행복을 느끼는... 아니 표현을 좀 바꿔서 우리에게 기쁨과 행복이라는 감정을 주는 주체에 대해서 우리가 어떤 인식을 가지고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내륙지방에 살고 있던 저는 지금 거제라는 해안도시에 살면서 바다를 매일 볼 수 있다는 것이 참 좋습니다. 바다를 보면 어떤 기분이 드시나요? 우와 바다다... 바다에 오면 바다가 주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아...잔잔한 파도를 보고, 탁 트인 지평선을 바라보면 답답한 무언가가 뻥 뚤리는 것 같아...바다는 우리에게 평온함을 주는 것 같아...이런 비슷한류의 표현들을 하진 않나요? 밤하늘의 별들을 보고 있으면요...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면서 마음이 안정되고 먼가 깊은 생각에 잠기게 되고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등의 경험을 하곤 합니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을 합니다. 밤하늘의 별들이 내게 기쁨을 준다...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으면요...아이들이 우리에게 주는 행복은 말할 것도 없겠지요...
방금 나열한 것들이 우리가 흔히 잘못 인식하고 있는 것들입니다. 우리가 잘못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느끼는 기쁨과 평온함과 행복들이 지속되지 못하고 날마다 상황과 환경에 휘둘리는 인생을 살게 합니다. 3-4개월 전쯤 코로나가 퍼지기 직전으로 기억합니다. 해금강에 드라이브를 갔다가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아내와 각각 아이들을 하나씩 앞에 매고 전망대가 있는 우제봉?인가요?아무튼 그 산을 올라갔다 내려오는 길이었습니다. 아내가 대뜸 이런말을 했습니다. 워낙 좋은 경치를 보았기 때문에 나오는 감탄이었는데...이렇습니다. 아 자연이 주는 기쁨.... 장난기가 발동해서...아내에게 자연이 기쁨을 준다고요? 자연은 우리에게 기쁨을 줄 수 있는 주체가 아니예요... 그럼 뭐라고 해요? 따라해보세요...하나님께서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을 통해 우리에게 주는 기쁨... 처음에는 장난을 치기 위해 한 말이었지만, 이 인식이 하나님이 만드신 창조물을 바라볼때마다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으로 우리의 마음을 이끌어 감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연이 우리에게 기쁨을 주는 것인가요? 아니면 하나님께서 자연을 통해 우리에게 기쁨을 주시는 것인가요? 사람이 우리에게 기쁨을 주는 것인가요? 아니면 하나님께서 관계하는 사람들을 통해 우리에게 기쁨을 주시는 것인가요? 크게 차이가 없는 것 같지만 이 두가지는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 냅니다. 수학을 예로 든 것처럼 부정적인 인식과 긍정적인 인식의 차이는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 냅니다. 하지만 조금 전 이야기한 것들은 부정과 긍정의 차이가 아니라 모두 긍정인식입니다. 그럼에도 이 인식들 역시 창조물을 기뻐하느냐, 창조주 하나님을 기뻐하느냐의 차이를 만들어 냅니다. 창조물을 기뻐하는 인식은 특정 창조물의 존재 유무에 따라.... 감정이 흔들리게 되는 상황으로 우리를 이끌어 가지만, 창조주 하나님을 기뻐하는 인식은 창조물의 존재유무와 관계 없이 영원하시며, 늘 나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으로 인해 흔들림 없는 기쁨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삶을 살아가는 태도역시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한 가정에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부모가 자신들의 노력으로 아이를 갖게 된 것이라고 인식하고 아이를 양육하는 것과 하나님께서 부부에게 하나님의 자녀를 맡긴 것이라고 인식하고 아이를 양육하는 것은 아이를 양육하는 방식과 양육의 목표를 설정하는 데 있어서 차이를 만들어 내게 될 것입니다. 질문하겠습니다. 자녀는 부모의 것인가요? 자녀 스스로의 것인가요? 하나님의 것인가요? 자녀를 부모의 것으로 인식한다면 부모의 욕심을 이루어주는 수단으로 자녀가 자라나게 될 것이고, 자녀 스스로의 것이라고 인식한다면 자녀의 선택을 존중한다는 명분아래 하나님을 거스르는 인생을 사는 것을 방종할 수도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자녀가 하나님의 소유임을 인식하는 부모는 하나님께서 자녀를 맡기신 이유를 묵상하게 될 것이며, 자녀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가르치게 될 것이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녀로 키우기 위해 애를 쓸 것입니다.
인식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바울이 전한 메시지에 대한 인식이 제대로 되어 있지 못했기에 갈라디아 교인들은 흔들렸습니다. 아니 흔들린 정도가 아니라 무너졌습니다. 그것도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성경을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

갈라디아 교회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도 이러한 문제가 존재합니다.
갈라디아 교인들은 바울의 메시지를 하나님의 메시지가 아닌 그저 바울의 메시지로 인식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율법주의자들의 미혹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버리게 되었습니다. 바울이 전한 복음을 갈라디아 교회에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식했다면 무너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바울이 전한 복음을 바울을 통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으로 인식했다면 갈라디아 교인들을 향한 어떠한 미혹에도 당당하게 맞서 싸우며 예수그리스도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했을 것입니다.
갈라디아 교회를 거울삼아 현대의 교회를 성도들을 돌아보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성경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나요? 우리가 성경을 대할때 성경 각 권의 저자의 메시지....즉 성경을 모세의 메시지, 여호수아의 메시지, 사무엘의 메시지, 선지자들의 메시지, 마태마가누가요한의 메시지, 바울의 메시지, 베드로 야고보 유다의 메시지로 여기고 있지는 않은지요... 여기에 모인 분들이 그렇게 여기고 있지 않다고 해도, 한국교회의 상황이 그렇지 않은지요...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쓴 것으로 오류가 없으며 우리를 교훈하고, 책망하고 바르게 할 뿐 아니라 의롭게 교육하여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히 세우는데 유익하다는 것을 믿으시는지요? 너무 안타까운 것은 그렇게 여기지 않는 분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감동으로 쓰여졌지만 각 사람의 생각이 들어있기때문에 오륙 있는 부분도 있다고 여기는 것이 학자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현실입니다. 그런 학자들로 인해 교육받는 성도들은 성경을 어떻게 여기게 될까요? 전혀 다른 말을 하지는 않는 것 같기에...그래서 다른 복음이라고 여겨지지 않기에... 문제라고 느끼지도 못하며 영혼이 썩어가는데 썩어가는 줄도 모르고 있는 교회와 성도들이 우리주변에 점점 늘어나고 있다면요? 금방이라도 갈라디아 교회처럼 무너질 것만 같은것이 오늘날 한국교회, 아니 지구촌 모든 교회들의 상황이 아니라고 누가 말할 수 있나요..
유명한 설교자의 설교는 꾸준히 들어도 성경은 읽지 않는 것이 오늘날 교회의 모습이기에 한 대형교회 목사님께서는 설교중에 이렇게 절규하셨습니다. "오류많은 제 설교 다시 듣지 마시고 성경을 읽으십시오!!"라고...
복음을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
우리 복음은 어떻게 인식하고 있나요? 우리에게 복주는 수단으로 인식하고 있지는 않나요?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신 예수님을 떠올리기보다...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을 떠올리기보다.... 복음듣고 예수 믿고 이 땅에서 잘먹고 잘사는 것을 먼저 떠올리지는 않나요?
복음에 대한 인식도... 우리의 신앙을 좌지우지 하게 됩니다. 저는 평강교회가 갈라디아교회처럼 무너져 내리고 있는 이 땅의 교회들에게 마중물과 같은 역할을 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이 어두운 시대에도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바로 서 있는 교회,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신다는 인식이 바로 서 있는 교회, 우리에게 주어지는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 부터 나온 선물이라는 인식이 바로 서 있는 교회...참된 복음으로 생명을 살리는 교회...수식할 수 있는 좋은 말들은 다 갖다 붙일 수 있는 교회... 그런 교회가 되길....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복음을 세상에 흘려보낼 수 있는 마중물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