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부 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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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지난 시간 우리는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보았다. 사도행전은 성령행전이라고 불릴정도로 그런 하나님의 상식밖의 역사가 나타난다. 이번에도 그런 하나님의 역사를 살펴보자.
본론
사람에겐 누구나 고정관념이 있다.
프레임, 생각의 틀 -> 우리의 패턴을 만듬.
당시 이스라엘의 가장 큰 고정관념 -> 구원은 유대인에게만.
지난주, 내시사건과 빌립의 전도를 통해 이방지방에도 전도를 함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은 복음이 이방인들에게 전해져야 함을 인식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런 인식은 복음전파를 막는 가장 큰 장벽이었다.
우리가 보았듯이 모든 것을 공유하며 이스라엘에게도 귀감이 되는 공동체였던 초대교회였지만, 예루살렘에 있었기 때문에 배타적인 성격은 누구보다 강했다.
유대인이 아니면 교회로 들어올 수 가 없었다.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였던 베드로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아침일찍 출발해서 육시가 되었다. 지금으로 따지면 아침 9시다.
우리처럼 아점을 먹으려고 한 것같지는 않고, 출발전에 간단히 아침을 먹었을 것이ㅏㄷ.
그리고 기도를 꽤 오래 한 것으로 보인다. 아마 1-2시간 정도는 기도를 한 것같다.
그런데, 이제, 배가 고파서 사람들잉 준비해준 것을 먹으려고 기도를 끝내려고 하는데 하나님께서 음식에 대한 환상을 보여주신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지금 베드로에게는 음식이 필요하다. 그리고 베ㅔ드로를 수행하던 사람들은 베드로가 먹을 음식을 준비하고 있는 상황이다.
딱 그때, 하나님께서 소리를 통해 3번을 먹으라 하신다.
그리고 그 음식들은 유대인들은 먹어서는 안되는 음식이다.
대충알고는 있겠지만, 유대인들은 먹는 것에 엄격하다. 먹어서는 안되는 음식이 많다.
그런데 하늘에서 하나님께서 직접 베드로를 위해 음식을 내려주신 것이다.
무슨 음식이 귀하냐. 밑에서 베드로를 섬기는 사람들이 준비한 음식이 귀하냐.
아니면 하나님께서 직접 내려주시는 음식이 귀하냐.
당연히 하나님께서 주시는 음식이 귀하지 않은가?
하지만 베드로는 그것을 거부한다.
왜냐면 레 11장에 보면 정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이 있고, 이스라엘은 정한 짐승만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먹으면 안되는 정도가 아니라, 그 시체도 만지면 안된다. 아예 가까이 가지도 말라는 뜻이다.
자, 하나님께서 주신 음식이다. 13절에 직접 잡아먹으라고 하셨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 음식을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것이라고 14절에 표현한다.
다르게 바꾸면 “불결하고 더러운 음식”이라는 뜻이다.
누가 더 불결하고 더러우냐?
음식을 내려주시는 하나님이 불결하고 더러운가
아니면 세상에서 사는, 그리스도를 3번이나 부인한 베드로가 불결하고 더러운가.
그러나 베드로는 자신의 모순을 인정하지 못한다.
레11장에서 처음부터 무엇이 부정한지 정한지, 쉽게 말해 뭐거 더러운지 깨끗한지를 정한 것은 하나님이시다.
모든 기준은 하나님께 있다.
그러나 베드로는 자신의 기준에 따라 하나님의 기준을 거부하다.
예루살렘 교회의 수장이고, 예수님의 수제자인 베드로가 그렇게 한다.
이 소리는 3번이나 있었다고 한다.
그러면 무슨뜻인가?
베드로가 3번이나 똑같이 불결하고 더러운 음식은 못먹겠다고 한 것이다.
그리고 그 그릇은 결국 다시 하늘로 올라갔다.
베드로는 그 그릇안에 있는 음식을 하나도 먹지 않았다. 환상중에라도 먹지 않았다.
우리는 지금 이런 베드로와 똑같이 행동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나마 베드로는 이 일을 겪은 후에 자시의 잘못을 깨닫고 백부장 고넬료에게 세례를 베푼다.
그러니 11장 2절에서 할례받은 신자들이 난리가 났다. 베드로를 대놓고 비난한다
결국 이 사람 저사람 할 것없이 모두가 하나님의 뜻과 달랐다는 말이다.
어느부분에서 그렇게 경건하던 예루살렘 교회의 사람들이다.
우리가 부러워할 정도로 아름다운 모습을 보인 초대교회의 사람들이다.
교회의 첫 열매들이다.
그러나 이 사람들이 이렇게 어리석고 답답한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우리 역시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혹시 이런 모습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축복의 그릇을 주셨고, 기회를 3번이나 주셨는데도, 아. 이건 내 방식 아냐.
내 생각에는 이것이 틀렸어.
내가 원하는 건 이게 아니냐.
이렇게 거부하면서 결국 그 축복의 그릇을 거부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예전에 웃긴 이야기로 농담삼아 돌던 이야기가 있었다.
어떤 목사님이 물에 빠졌다고 한다.
어느 한 마을에 폭우가 쏟아져 온 마을이 물에 잠겼습니다. 한 목사가 교회 예배실에서 한창 기도를 하고 있었는데, 곧 홍수가 무릎까지 차오를 것만 같았습니다. 그때 구조 대원 한 사람이 구명보트를 몰고 와서 목사에게 “빨리 올라 타세요! 홍수에 빠져 죽을 수 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목사는 “예수님께서 저를 구하러 오신다고 응답하셨으니 먼저 다른 사람을 구하러 가세요.”라고 말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물에 목사의 가슴이 잠겼습니다. 목사는 간신히 강단 위에 서 있었습니다. 그때 또 한 사람이 구명보트를 몰고 와서 목사에게 “어서 올라 타세요. 진짜 홍수에 빠져 죽을 수 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목사는 “저는 교회당을 지킬 것입니다. 주 예수님이 저를 구하러 올 것이니 먼저 다른 사람을 구하러 가세요.”라고 말했습니다.
또 좀 지나니 홍수에 전 교회당이 잠겨버렸습니다. 목사는 할 수 없이 교회당 꼭대기의 십자가를 꽉 잡았습니다. 그때 헬리콥터 한 대가 천천히 날아오더니 비행사가 줄사다리를 내려보내면서 “어서 올라 오세요. 이것이 마지막 기회입니다. 우리는 당신이 물에 빠져 죽는 것을 원치 않아요.”라고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목사는 여전히 굳은 의지로 “주 예수님은 꼭 저를 구하러 오실 것입니다. 그러니 먼저 다른 사람을 구하러 가세요!”라고 말했습니다.
나중에 홍수가 목사의 목까지 차올랐습니다. 목사는 곧 물에 빠져 죽을 것만 같아 부르짖었습니다. “주님, 빨리 와서 저를 구해 주세요!” 그때 그는 마치 “내가 연달아 3번이나 사람을 파견하여 너를 구하려고 했는데 모두 너에게 거절당했다. 우매하고 완고한 사람아, 또 어떻게 너를 구해야 하는가?!”라는 주님의 음성을 들은 것만 같았습니다.
목사는 그제서야 문득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뼈저리게 뉘우치면서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웃기는가?
황당하지?
근데, 어떨때 이게 우리 모습이다.
이 대학 가게 해달라고 몇년을 기도했다.
안이루어주면 삐지기만 하면 다행이다.
우리는 기도응답도 우리가 원하는 답이어야 만족한다.
이루어지는 방식조차 우리가 원하고 최소한 납득할만한방식이어야 한다.
오늘 본문도 그렇다.
다 제껴놓고,
예루살렘 교회 모든 사람들에게 이 환상 다 보여줬으면 얼마나 좋았겠냐.
베드로가 이런 비난 받을 필요 있었겠냐.
그러나 하나님께서느 그리 하지 않으신다.
굳이 돌아가신다.
우리 생각을 존중하신다.
베드로가 안먹겠다고 하니 입을 벌리고 억지로 먹이시지 않으신다.
그저 축복의 그릇을 거두어가실뿐이다.
우리 생각을 존중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자.
동시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악을 존중하시지 않게 하자.
우리의 편견과 교만을 존중하지 않으시게 하자.
하나님은 오래참으신다.
그러나 영원히 참으시지는 않으신다.
그러니 언제나 말씀앞에 나아오고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돌아볼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다시한번 축복의 그릇이 우리앞에 왔을 때.
누구야! 잡아먹으라! 고 했을 때,
네! 주님! 하고 대답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길 소원한다.
“ ” 찬양
다함께 기도
“내게있는 향유옥합” 찬양드리며 헌금드리겠습니다.
주기도문(천천히)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 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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