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7.26 더리버처치 주일예배 (요일4:7-13절) '사랑하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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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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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12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13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
서론
서론
ㅇ 본문과 관련있는 예화 혹은 성경이야기
ㅇ 본문과 관련있는 예화 혹은 성경이야기
ㅁ 사람은 죄/연약함을 바라볼 때마다 죽음을 묵상한다
- 죽음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랑이란 이름으로 소망을 찾는다
* 동사 에라오(ejravw)와 명사 에로스(e[rw")는 신비 종교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 기독교인들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잠언 7:18 NKRV18 오라 우리가 아침까지 흡족하게 서로 사랑하며 사랑함으로 희락하자
에라오는 '정열적으로 사랑하다, 욕구하다, 그리워 하다'를 의미한다. 에로스는 '정열적인 사랑'이란 의미를 지닌다.
에로스적인 사랑은 자신을 위해 다른 사람(것)을 원하거나 갈망하거나 사랑하는 정열적인 사랑이다. 이 사랑은 남·여의 사랑, 또는 어떤 대상에 대한 갈망, 열망, 욕구를 나타낸다. 특별히 관능적이고 선정적인 양상을 띤다.
① 모든 시대에서 헬라인들은 육감(관능)적으로 즐거워하는, 하급 신(神), 곧 광란적인 에로스를 열렬히 찬양하는 것이다. 그들이 찬양하는 에로스 신(god)은 모든 것을 강제하지만 어느 누구에 의해서도 강요당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헬라인이 에로스에서 추구하는 것은 도취(intoxicaion)와 황홀이며, 이것은 그에게는 신앙(종교 religion)이다. 그에게 있어서 반응은 하늘의 능력들이 주는 최고의 선물이다(Soph, Ant 683이하). 그것은 인간성의 성취이다.
그렇지만 그 반응은 무아경적인 흥분(광란)으로 나타난다(한편 때때로 증오와 더불어 나타나기도 한다). 오로지 반응에 목적을 두고 완전히 감각 또는 감정적으로 몹시 흥분하는 에로스는 모든 인도적 인간성의 표준과 형태를 파괴한다. 관능적 환락(sensual ecstasy)은 중용(moderation)과 균형(proportion, 조화, 바른 관계 등)을 저 멀리 내버려두고 돌보지 않는다.
헬라의 비극작가들은(Soph, Ant. 781이하) 환락(ecstasy, 황홀)에 점점 빠지게하여 이성과 의지와 판단력을 상실하게 하는 에로스(사랑의 신의 이름은 역시 에로스이다)의 불가항력적인 힘을 알고서, 그것을 광신만큼 무서운 것으로 평가했다.
그것은 하나의 신(a god)이며 신들보다 능한 것이다(Eur. Fr., 132, Nauck). 하늘과 땅의 모든 힘은 에로스의 한 최고의 힘과 비교하면 제 2급의 힘들이다. 그것의 전제적인 힘에 사로잡힌 자들에게는 어떠한 선택도, 의지도, 자유도 무시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것에 지배를 받는데서 최고의 희열(행복)을 얻는다. 우리는 여기서 에로스의 어떤 신비한 힘을 찾아볼 수 있다.
- 동성애 = 사랑에 대한 절대적 법칙에서 벗어나라
ㅁ 죽음에서 구원을 얻는 일은 회개하는 일이다
- 죄가 가져다 주는 죽음을 떠나, 예수님이 주신 생명으로 나아가는 일
본론
본론
ㅇ 주제와 관련 있는 문제제기 (원인과 결과)
ㅇ 주제와 관련 있는 문제제기 (원인과 결과)
ㅁ 회개가 나의 힘으로 가능하다고 착각한다
- 자신에게 깨달을 수 있는 능력있다고 믿는 믿음
* 영적 혁명인 회개
일본의 성서학자 우찌무라 간조는 그의 딸 미요꼬와의 탁상담화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다. ["너희들은 모두 아직 죄에 대한 회개를 하
지 않아서 글렀어. 이것은 이상한 것으로, 실로 무엇이라 말할 수 없
는 기분이 일어나 그때부터 진정한 크리스챤이 되는 것이다. 나는 그
렇게는 나쁜사람이 아니다. 라고 생각있는 동안은 아직도 먼 것으로,
자기에게는 아무런 좋은 데가 없고, 다만 은혜로서만 살아있다고 느끼
게 되지 않으면 안된단. 그렇게 되면, 진정, 겸손한 마음이 생겨 사람
의 죄를 비난하는 일이 없어진다.
죄의 회개를 한후에도 성도내고 분통도 터뜨리지만 그 결과는 전과
는 천양의 차가 있는 것으로 곧 상대를 용서할 마음이 들게된다. 결코
언제까지 원심을 갖고 있지는 않는게야. 달리 말할 수 없으므로 회개
라 하지만 이것은 실로 영적인 혁명인 것이다.
ㅁ 착각하는 사람에게 찾아가 살리는 것이 사랑이다
- 하나님이 우리에 대하여 그러셨다
7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요한에게 있어서 사랑은 현재의 우주적 위기에서 세워지고 있는 그리스도의 세계의 원리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요일 3:16; 요일 4:9 이하).
이 기본적인 사상에서 요한과 바울(롬 8:32)은 일치한다. 그러나 요한이 아버지 하나님의 아들 예수에 대한 사랑에 대해 항상 이야기하는 방식에는 다른 점이 있다(요 3:35; 요 10:17). 모든 사랑은 예수님께 집중된다. 그는 오로지 하나님의 사랑의 중재자이시다. 대조적으로 요한은 아버지에 대한 아들 예수님의 사랑에 대해서는 거의 말한 적이 없다(요 14:31). 그는 아버지께서 그에게 그의 "친구들"로 주신 자들에 대한 아들의 사랑을 더욱 강하게 강조한다. 아들을 통해 아버지의 사랑이 인간의 세상에 이른다(요 17:23 이하; 요 14:21 이하; 요일 4:19; 요 11:5; 요 13:23). 이 사랑은 그의 죽음에 의해 성취되고 공표되었다. 아들의 죽음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그의 목적을 이루신다(요 13:1; 요 15:13).
요한복음의 아가페는 매우 명백히 겸손한 사랑이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어떤 의미에서는 한 단계 한 단계 이 세상으로 내려오는 천국의 실체이다. 그렇지만 이 천국의 실체는 계시와 도덕적 행위에 의한 승리를 성취한다.
요한계시록의 시작 부분에 충성된 증인 "우리를 사랑하신 자"(토 아가폰티 헤마스)에 드리는 찬양이 나오고(계 1:5) 사랑하는 도시의 마지막 때의 상황의 변화(계 3:9; 계 20:9)와 하나님의 적들에 대한 위협과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는 책망(계 2:4)과 함께 죽기까지 자기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고(계 12:1) 피스티스(믿음)와 아가페(사랑)를 지킨 자들의 영광이 뒤따른다. 많은 사람들의 사랑이 식어지는 때가 왔다(마 24:12).
ㅇ 해결방법
ㅇ 해결방법
ㅁ 심판을 믿어야 한다
ㅁ 살리기 위해 사랑해야 한다
ㅁ 아가페로 사랑해야 한다
- 강도: 죽기까지 사랑
- 방향: 그를 위한 삶
ㅇ 나타난 결과
ㅇ 나타난 결과
결론
결론
ㅇ 핵심내용 정리
ㅇ 핵심내용 정리
ㅇ 결단할 내용
ㅇ 결단할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