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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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καὶ αὐτός ἐστιν ἡ κεφαλὴ τοῦ σώματος τῆς ἐκκλησίας·*
ὅς ἐστιν ⸆ ἀρχή,*
πρωτότοκος °ἐκ τῶν νεκρῶν,*
ἵνα γένηται ἐν πᾶσιν αὐτὸς πρωτεύων,
그리고 그는 교회라는 몸의 머리다(현능직3단).
그는 시작이시다(현능직3단),
그는 죽은 자들 가운데 장자이시다,
이는 그가 모든 것 안에서 첫째가 되기 위해서다(부과 중가3단)
예수그리스도는 최고이신 분이시다.
교회의 최고이시며, 구원의 시작이시며, 죽은 자들중에서도 최고이시다.
바로 만물중에서 최고이자 첫째가 되기 위해서다.
이미 최고가 되었다는 것 자체가 비하다.
이미 만물, 피조물과 비교된다는 것자체가 수치다.
개보다 낫다는 말이 칭찬인가?
그럼에도 이 말씀을 그리스도의 최고성, 우월성을 강조한다.
얼마나 세상에서 그리스도가 낮게 취급받았던가.
거짓교리에 얼마나 빠져있었는가.
거짓 교리, 거짓 메시지, 거짓 가치관.
19 ὅτι ἐν αὐτῷ εὐδόκησεν πᾶν τὸ πλήρωμα κατοικῆσαι
왜냐면 그의 안에서 그분께서 모든 가득참으로 거하게 하기를 기뻐하셨고(부과능직3단)
- 하나님께서 예수님 안에 모든 가득참으로 거하게, 살게 하시기를 기뻐하시며 결정하셨다.
만물을 예수 그리스도로 안에 두시고, 거하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로 가득차게하셨다.
모든 가득참으로 도 되고, ‘모든 가득참을’도 된다.
가득참, 충만, 포만, 만땅은 오직 예수님 안에만 있다.
우린 충만하기를 원한다. 넘치길 원한다.
그 넘침이 되시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피조물중 으뜸이 되셨다.
바로 우리에게 넘침, 충만을 주시기 위해서다.
20 καὶ διʼ αὐτοῦ ἀποκαταλλάξαι τὰ πάντα εἰς αὐτόν,*
εἰρηνοποιήσας διὰ τοῦ αἵματος τοῦ σταυροῦ αὐτοῦ,*
⸋[διʼ αὐτοῦ]⸌ εἴτε τὰ ἐπὶ τῆς γῆς
εἴτε τὰ ἐν τοῖς οὐρανοῖς.
그리고 그를 통해 모든 것을 그분자신에게로 화목하게 하시기를(부과능부),
그의 십자가의 그 피를 통해 평화롭게 하심을(부과능분단주남),
그를 통해 땅의 것과 하늘의 것을
기뻐하셨다.
땅과 하늘이 하나되고, 화목하게 되고, 평화롭게 되게하기 위해 피조물이 되시고 죽기까지 하신 예수님.
죽은자들의 첫째가 되기 위해, 부활이 되기 위해 죽기까지 하신 예수님.
그 무엇보다 높으신 예수님.
비교하는 것 자체가 신성모독인 예수님.
그러나 우리를 위해 비교의 대상이 되어주신 예수님.
그 사랑.
거짓교사, 거짓교리에 빠져있던 골로새교회
그를 위해 세상과 자신을 비교하시는 예수님.
마치 신부에게 구애하는 신랑같지 않은가?
우리가 뭐 볼게 있다고 이렇게까지 하실까.
서론
오늘은 구역공과 21과 골로새서 1장 18절에서 20절 말씀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나누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본론
본문 18절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설명을 합니다. 그 설명의 주된 방법은 비교입니다.
예수님은 교회의 머리이십니다. 죽은 자들 가운데서 가장 먼저 나신 분이십니다. 만물의 으뜸이십니다.
여기서 머리는 첫째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죽은 자들 가운데서 ‘가장 먼저 나신 분’이라고 번역된, 여기 ‘가장 먼저 나신 분’이라는 단어는 흔히 ‘장자’로 번역되는 단어입니다. 첫째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근본이라는 말의 원 뜻은 ‘시작’이라는 뜻입니다.
만물의 으뜸에서 ‘으뜸’이라는 말도 보통은 ‘첫째’라고 번역되는 단어입니다.
정리해보면 18절에 나오는 모든 표현은 예수님께서는 모든 것의 첫째로서 만물들중에 가장 탁월한 분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탁월성, 우월함을 교회와 죽은자, 만물에 비교하여 표현한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교회의 머리라고 다들 말을 합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교회에서만 머리입니까. 아닙니다. 만물의 머리이십니다. 만물보다 더 뛰어난 분이십니다.
왜 바울은 이런 말을 하고 있을까요. 쉽게 말해 골로새교회에 이단이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이단이 들어와서 변질된 복음을 가르치고 있는데 골로새교회는 분별없이 그 이단의 말을 따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참 답답할 노릇이죠. 그래서 바울은 골로새서를 쓰며 가장 먼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얼마나 탁월한 분이신지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너희가 듣는 그럴듯한 말보다 못한 분이냐고 골로새교회의 성도들을 향해 말씀하는 것입니다.
또한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님께서는 모든 것의 근본이라고 합니다. 거기에 죽은 자들가운데 먼저이며, 만물의 으뜸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분의 근본되심, 생명되심, 으뜸되심을 공급하는 분이심을 말합니다.
그냥 첫 번째 자리, 가장 높은 자리에서 섬김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높은 산꼭대기가 가장 먼저 비를 받아들이고 시내를 만들어서 모든 땅을 살리는 강물을 만드는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만물의 으뜸에 있으며, 모든 것의 근본이시고, 죽은 자들의 첫 열매임, 바로 생명과 사랑과 은혜를 지금도 우리에게 공급하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에서의 원칙과 내 기준과 감정이 예수님보다 우선시 될 때가 참 많습니다. 골로새교인들처럼 이단들을 분별하지 못하고, 그들이 하는 달콤하고 그럴듯한 말에 푹 빠져있을 때도 많습니다. 골로새교인들에게 예수님의 말씀보다 더 달콤하고 그럴듯한 것은 이단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예수님의 말씀보다 더 달콤하게 느껴지고, 그럴듯해 보이는 것들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지금도 그 유혹속에서 살아가고, 그런 것들에 참 쉽게 넘어갑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교회의 머리로서 교회에 있는 모든 구성원들, 우리 한 사람 한사람에게 그 보혈을 공급하고 계십니다. 생명을 나눠주고 계십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그 끝없는 사랑으로 악인과 의인을 가리지 않고 빛을 주시고 먹을 것을 공급하시는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잘못판단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그리스도의 보혈보다 다른 것에 시선이 팔려있어도 끊임없이 그 생명과 은혜와 사랑을 공급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그 끝없는 사랑으로 우리를 안으시고 하나님의 품안에서 온전케 되는 그날, 영화되는 그날까지 성령으로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그러나 이미 말했지만, 우리는 그것을 잊어버리고 다른 길을 찾거나, 내 감정과 생각, 경험에 따라 갈 때도 많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래서 19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셨다고 말씀합니다.
모든 충만이 예수안에 거한다는게 무슨 뜻일까요.
여기서 말하는 충만, 가득참은 뭘로 가득찬다는 뜻일까요. 그것은 골로새서의 다른 구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2:9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안에만이 신성이 있다는 뜻입니다. 왜 이 말씀을 했나면, 골로새교인들은 이단들에 의해 현혹당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유대신비주의이든 영지주의이든지간에 그리스도가 아닌 무엇으로 자신을 채우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것으로 꽉참, 충족감, 충만함을 누리고 싶어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본문에서 보듯이 결국, 충만은 오직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정하셨습니다. 19절에 거하게 하셨다는 거하도록 결정하셨다는 뜻입니다. 이 결정하다는 두가지 뜻이 있는데, 첫째는 법을 제정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충만함이란 오직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만 누릴수 있도록 하셨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이것이 진리임을 느끼기에 이 자리에 나오신줄 믿습니다. 정말 다른 어떤 것으로 충만함을 느낄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지만, 음식을 먹고, 물을 먹고 배가 불러도 다시 배고픔을 느끼고 목마름을 느낍니다.
그리스도를 떠나도 충족감을 느낄수 있습니다. 가족의 행복을 느낄수도 있고 자신이 하는 일이 잘 이루어져감에서 오는 성취감도 느낄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잠시뿐입니다. 배가 아무리 불러도 다음날에는 배고픔을 느끼는 것처럼, 우리는 쉴새없이 공급받고 충만함을 찾아야 합니다.
결국 우리는 쉴새없이 충만함을 찾아 움직여야 합니다. 철새가 먹이를 찾아 헤매듯이 우리는 마음의 충만함이든 육체의 충만함이든 그 충만을 찾아 쉴새없이 헤매여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이 말씀을 들으면 의문이 생길수 있습니다. 정말 우리가 은혜충만 성령충만을 받으면 그것이 계속해서 유지가 됩니까. 오히려 은혜도 사라지고 성령의 도우심도 없는 것같은 외로운 순간이 계속되지 않습니까.
방금 읽은 요 4:14의 말씀 하반절은 뭐라고 하십니까.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왜 그리스도안에 충만이 있습니까. 우리가 그리스도께 가지 않는다면, 우리는 쉴새없이 다른 충만을 구하러 돌아다녀야 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께 오면, 우리속 계신 성령께서 영원히 솟아오르는 샘물이 되어주십니다. 다르게 말하면, 더 이상 다른 충만, 다른 종류의 행복감, 다른 종류의 기쁨, 다른 종류의 즐거움을 구하려고 이리저리 헤매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힘들고 지쳐서 쓰러질 때, 내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께서 주시는 그리스도 예수의 샘물을 언제든지 마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그 충만이 있도록 결정하셨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다르게 말해서 그 충만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을 기뻐하셨다는 뜻도 됩니다. 왜냐면 결정하다, 제정하다라는 이 단어는 기뻐하다라는 뜻도 되기 때문입니다. 그냥 결정하고 결단을 내려야 하니까 힘들고 어렵지만 결단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결정 자체가 기쁨이라는 뜻입니다. 휴가때 여러 여행지 중에 여기가 좋겠다고 내리는 결정이 힘들고 어렵고 갈등중에 내립니까. 여기 꼭 가보고 싶었으니 기뻐하며 내리는 결정입니다. 곧 태어날 아기옷이나 용품들을 어렵고 힘들게 결정합니까. 태어날 아이를 기대하며 아이가 입고 즐거워할 모습을 기대하며 기뻐하고 결정합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그 충만함을 함께 입고 기뻐할 것을 기대하며, 그 모습을 기뻐하면서 결정한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기뻐하셨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 기쁨의 결정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충만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만 변하지 않는 충만이 있음을 알고 기억할 때, 그리고 그런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갈 때, 우리는 진정한 충만을 얻고 누릴 수 있습니다. 이것이 세상에서 흔들리더라도 다시 하나님께로 가서 하나님의 기쁨, 하나님의 충만을 누리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그러니 이것을 기억하시고 예수 그리스도께로 가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으뜸, 교회의 머리가 되심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왜 이 충만을 이야기하기전에 그리스도의 으뜸되심, 교회의 머리되심부터 이야기하고 있을까요. 교회안에 있지 않으면,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구성하는 지체라는 것을 인식하지 않으면 결코 그리스도안으로 들어올수 없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우리 교회는 담임목사님을 청빙해야 하는 상황중에 있습니다. 우리를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께로 이끌어갈 목자가 없는 상황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보다 애통하며 기도함이 필요합니다. 다시 교회가 온전하게 됨을 경각심을 가지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안에서 얻는 충만을 말씀하시기 전에 먼저 교회의 머리이심을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개인적으로 그리스도의 충만함만을 얻으려 한다면,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충만은 교회와 함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화 함께 누리는 것입니다. 그러니 교회를 위해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온전케 되기를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교회의 당면한 문제인 담임목사님의 청빙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몸안에서, 몸된 교회안에서 모든 충만을 누리며 나눌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