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8.5.수요예배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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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순서
심호흡하고 천천히 말하며 진행하자
ㅇ다함께 묵상기도드림으로 삼일예배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ㅇ찬송가 270장 다함께 찬양드리겠습니다.
ㅇ김분남 권사님 기도드리겠습니다.
ㅇ오늘의 말씀은 출애굽기12장 21절에서 28절 말씀입니다. 구약 99페이지입니다. 교독하겠습니다.
21 ◎모세가 이스라엘 모든 장로를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가서 너희의 가족대로 어린 양을 택하여 유월절 양으로 잡고
22 우슬초 묶음을 가져다가 그릇에 담은 피에 적셔서 그 피를 문 인방과 좌우 설주에 뿌리고 아침까지 한 사람도 자기 집 문 밖에 나가지 말라
23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재앙을 내리려고 지나가실 때에 문 인방과 좌우 문설주의 피를 보시면 여호와께서 그 문을 넘으시고 멸하는 자에게 너희 집에 들어가서 너희를 치지 못하게 하실 것임이니라
24 너희는 이 일을 규례로 삼아 너희와 너희 자손이 영원히 지킬 것이니
25 너희는 여호와께서 허락하신 대로 너희에게 주시는 땅에 이를 때에 이 예식을 지킬 것이라
26 이 후에 너희의 자녀가 묻기를 이 예식이 무슨 뜻이냐 하거든
27 너희는 이르기를 이는 여호와의 유월절 제사라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에게 재앙을 내리실 때에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자손의 집을 넘으사 우리의 집을 구원하셨느니라 하라 하매 백성이 머리 숙여 경배하니라
28 이스라엘 자손이 물러가서 그대로 행하되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명령하신 대로 행하니라
ㅇ미리암찬양대 찬양드리겠습니다.
설교
서론
유월절과 무교절을 선포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첫 번째 유월절을 지키는 이스라엘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함께 살펴보며, 유월절을 통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바를 나누어보기 바랍니다.
본론
본문은 2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직접 유월절의 예식을 말하고 있는 21-23절과 유월절의 예식은 아니지만, 자녀들에게 무엇을 말해야 할지를 알리는 24-28절입니다.
먼저 21-25절은 유월절을 어떻게 지켜야할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 유월절을 통해 알리고자 하는 바는 간단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어떤 상황속에서도 우리를 구원하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동시에 하나님의 구원에 속한 자로서 하나님앞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십니까. 이것은 설명할 필요도 없이 잘 아는 것입니다. 애굽의 장자들을 치심을 통해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애굽은 이스라엘을 얽매고 있는 사슬입니다. 과거, 하나님께서 재앙을 내리기 전에는 이스라엘의 주인이었습니다. 자기 재산이므로 마음대로 대했습니다. 마음내키는대로 채찍으로 때리고, 그러다가 조그만 당근을 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주인인 애굽인의 첫째 아들, 집안의 모든 것을 이어나갈 아들이 죽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장자의 죽음은 단순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 집안의 정통한 후계자가 끊어짐을 뜻하는 것입니다. 물론 차남을 통해 이어갈 수는 있지만 결국 장자만은 못한 것이 됩니다. 단순히 후계가 아니라 집안의 모든 것을 이어서 발전시킬 하나의 상징이자 희망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의 소망을 끊어버리고 있습니다. 왜냐면 애굽이 자신들의 소망을 위해서 이스라엘의 소망을 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가까이는 장자뿐 아니라 남자 아기들이 수없이 나일강에 던져졌습니다. 그리고 크게는 이스라엘 전체를 노예로 삼아 목축을 하는 이스라엘에게 벽돌을 만들게 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것은 벽돌뿐이지만, 건축에 동원되었을 가능성도 충분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유월절을 선포하십니다. 유월절은 하나님의 구원을 말합니다. 그중에서 첫 유월절은 구원과 희망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출 12:1-14에 나온 유월절의 규례를 통해 하나님께서 애굽의 모든 것을 쳐 부수시고, 길을 만드신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모두 준비해놓으시고 그 준비된 길로 이스라엘이 걸어오기를 바라는 것을 나누었습니다.
무교절은 미래의 희망, 가나안의 소망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은 노예로 쥐여짜여 무교병같은 이스라엘입니다. 발교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모든 가능성을 거세당한체로 잡아먹힐 가축처럼 길러지고 이용당하는 이스라엘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무교절을 제정하시고 기억하게 하심을 통해, 약속의 땅 가나안을 꿈꾸게 하셨습니다. 지금은 그들이 노예에 불과합니다. 출애굽해도 무교병도 보기 힘든 광야를 지나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소망을 믿고 따른다면, 그들과 그들의 자손들은 누룩이 아닌 피로 발교되어서 약속의 땅에서 유월절과 무교절을 지내며 옛일을 추억하게 될 것이라는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였습니다.
이제, 첫 유월절을 지키는 장면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현재와 미래를 꿈꿀수 있는 마지막 조치를 취하고 계십니다. 그것은 과거와의 결별입니다.
우리는 과거없이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경험했는지는 우리의 가치관을 결정합니다. 우리의 선택은 우리가 지금까지 무엇을 선택해왔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이찬수 목사님의 설교중에 ‘뇌는 익숙한 것을 선택한다’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다이어트를 해도 5년을 유지하는 사람이 드물다고 했습니다. 원래 뚱뚱했던 상태를 뇌가 기억하고 돌아간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은 노예상태가 익숙합니다. 그들에게 과거란 사슬입니다. 이상태로 아무리 광야로 간다해도 그들은 주인없는 노예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 아니라 주인없는 노예에 불과합니다. 왜냐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노예로 부르신 것이 아니라 백성으로 불렀기 때문입니다. 아무 의지 없이 주인의 뜻에 따라야만 하는 노예가 아니라 자주적으로 움직이며 자신의 의지로 왕을 따르고 나라를 지키고 자신의 땅과 가족을 지키는 백성이 되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피를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노예에게 댓가를 요구하는 주인은 없습니다. 노예는 그저 시키는대로 따르기만 하면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애굽의 사슬을 끊기전에 어린양의 피라는 댓가를 먼저 요구하십니다. 목축을 하지만, 애굽의 명령에 따라 벽돌을 만들고 있던 이스라엘에게 어린양, 그것도 가족수에 맞춰서 어린양을 잡는다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어떤 가정은 이웃과 합쳐야 했을 것입니다. 한 마리를 잡으면 부족하고 두 마리를 잡으면 넘칩니다. 하지만 유월절은 부족함도 넘침도 없이 적당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시키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이웃과 나누며 하나님의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나서야 했습니다. 이런 과정과 문의 좌우와 아래위 전체에 피를 바르는 과정을 통해 우리가 스스로 댓가를 치뤘음을, 왕이신 하나님의 행사에 백성인 이스라엘이 참여했음을 스스로 인식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더 이상 노예가 아닌, 하나님의 백성임을 인식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임하시는 그날에는 아무도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심으로 하나님과 이스라엘을 엄격하게 구별하십니다. 우리가 왕이신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는 백성임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이후 이 명령은 후반부인 24절부터 28절까지를 통해 자신들의 대에만 끝나는 것이 아님을 명확히 합니다. 오히려 유월절의 규례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없습니다. 자녀들에게 어떻게 말할지에 더욱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여기서 나오는 자녀들이 그 당시 이스라엘의 아들과 딸, 손주들일까요? 이미 그들은 애굽의 노예생활을 겪었고, 유월절을 함께 준비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 자녀들이란, 자신들의 자손입니다. 출애굽세대는 보지 못하겠지만, 자신들의 아들이나 손주들은 볼, 애굽의 노예생활을 겪어본적 없는 자녀들입니다.
그 때, 가나안땅에서 평안히 살아갈 자녀들을 향해서 할 말을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분명 그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슬에서 벗어나, 광야의 여정도 끝내고 가나안에서 행복하게 살아갈 날이 도래할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유월절에는 이 약속이 아예 전제가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약속하지도 않습니다. 왜냐면 당연히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약속의 땅에서의 행복한 삶을 전제로 둔체로 첫 유월절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초반에 말씀드린대로 우리는 과거를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과거에 했던 선택을 통해 현재의 우리가 있습니다. 현재의 선택을 통해 미래의 우리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과거는 우리에게 아픔일 때가 많습니다. 이러면 안되는데 하면서도 우리는 과거의 선택을 나도 모르게 따라갑니다. 크게는 집안에 흐르는 죄악의 사슬을 끊지 못해 괴로워합니다. 작게는 부정적인 언어나 날카로운 말들을 계속 하면서 가족에게도 상처입히고 스스로도 상처입는 모습을 반복하며 살아갑니다.
그런 모두를 향해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그 묶음을 풀고 나오라고 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사슬을 풀기 위해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어린양의 피를 바쳤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묶음을 풀지 못했습니다. 그저 가축에 불과한 어린양의 피는 애굽의 가축이었던 그들의 신분은 풀었지만, 그들의 영혼과 마음속에 새겨진 노예의 사슬은 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광야에서 끊임없이 애굽을 생각했습니다. 애굽의 우상을 만들었습니다. 애굽의 음식을 생각했습니다. 불평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해 피흘려주셨습니다. 우리의 어린양이 되셨습니다. 스스로 가축의 우리, 말구유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그리고 그 살과 피를 우리의 입에 넣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거듭났다고 표현하셨습니다. 고후 5:17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우리는 새 것입니다. 그것은 이제 우리에게 과거는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과거의 사슬은 풀어졌다는 것입니다. 헬라어로 풀다는 말은 풀다라는 말보다 파멸시키다 없애다라는 뜻으로 더욱 많이 쓰입니다. 과거의 사슬을 아예 파괴시키신 예수님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코로나19라는 사태속에서 새로운 선택을 하며 살아왔습니다. 어떤 분은 교회에 나오지 않는 선택을 했고, 어떤 분은 영상예배라는 선택을 했고, 어떤 분은 교회로 나왔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과거란 사슬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우리가 끊고자 마음먹고 기도한다면,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한다면, 그것이 어떠한 상처라도, 어떠한 아픔이라도, 그래서 지금 현재 우리를 얽매는 어떠한 사슬이라도 하나님께서는 끊으실 것입니다.
지금 우리를 얽매고 있는 과거는 무엇입니까. 기억들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가져오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어린 양의 피를 가져왔듯이, 하나님이 지나가실 때, 그 과거의 기억을 바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뻐받으실 것입니다. 그 과거의 기억을 받고 우리에게 생명을 주실 것입니다.
그러니 과거의 사슬이 있다면, 잊을수 없는 아픔이 있다면 하나님께 내어놓으시기 바랍니다. 좋은 선택이었든 나쁜 선택이었든 우리를 옭아매어 우리가 그 안에서 계속 맴돌게 한다면, 하나님께 가져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기쁘게 받으시고 우리에게 생명을 그리스도 예수의 피를 주실 것입니다.
현재 우리의 눈이 계속 과거로 가있다면, 계속 과거를 보고 현재를 선택하려 한다면, 돌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로 돌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의 자리로 그 눈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로 돌리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미 예비하신 미래의 소망을 향해 가벼운 발걸음으로 달려나가실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길 바랍니다.
ㅇ교회소식은 주보를 참고하시기바랍니다.
ㅇ코로나19가 하루속히 사라져 교회와 나라가 회복되도록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찬송가 154장 다같이 찬양드리겠습니다.
주기도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 나이다.
- 아멘 -
ㅇ다함께 자리에서 일어나셔서 좋으신 하나님 찬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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