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부 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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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서론
지금까지 우리는 3번의 ‘이르시되’를 보았다. 성령의 인도하심은 우리가 보았듯이 놀라웠다. 빌립이 그 인도하심에 따라 복음을 전했고, 바울이 예비되었고, 베드로는 그 예배하심에 거부했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복음은 전파되었다.
바울이 행했던 핍박은 복음이 이방으로 퍼져나가는 계기가 되었다. 핍박을 행한 바울도 이방인을 위한 사도가 되었다. 실로 하나님께서는 놀랍게 역사하셨다.
그런데, 오늘 이 모든 것에 찬물을 붓는 일이 일어난다. 그게 바로 야고보의 순교와 베드로의 투옥이다. 그리고 이때도 하나님께서는 역사하신다. 살펴보자.
본론
오늘 본문이전 11장 마지막에는 안디옥 교회의 이야기가 나온다. 안디옥 교회에 바나바가 파송되고, 예루살렘이 흉년이 들어 어려워지자 안디옥 교회에서 원조가 와서 잘 넘긴다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당시 교회가 그만큼 번창했음을 뜻한다. 예루살렘이나 유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저멀리 세계에서 3번째로 큰 도시인 안디옥에서 교회가 자리를 잡았다.
거기서 원조가 오고갈 정도였다.
그런데, 갑자기 엄청난 고난이 벌어진다. 바울 개인이 벌인 일이 아니라, 그 당시 예루살렘을 다스리던 헤롯1세, 헤롯대왕의 손자가 교회를 핍박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땅을 다스릴 권한을 받은 후, 자신의 ㅓ정치적 기반을 안정시키기 위해 여러가지 정책을 한다. 로마인과 유대인 둘다 만족시키는 방법중 하나로 교회를 박해하기 시작한 것이ㅏㄷ.
그리고 교회는 그 타겟이 되어서 박핼르 받는다. 갑작스런 체포로 야고보는 칼에 목이 베여 순교한다.
그리고 베드로는 잡혀서 감옥에 갇히게 된다.
이것은 정치적인 쇼였기 때문에 유월절이 끝나고 백성들이 가장 많을 때, 공개적으로 처형하기 위해 기다린 것이다.
교회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당시 교회는 약했다. 아무런 힘이 없었다. 안디옥 교회에서 온 원조가 아니었다면 먹고살기도 힘들 정도였다.
그래서 야고보사도가 순교할 때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예루살렘 교회에 지도자인 베드로가 죽을 때가 다가오고 있었지만 교회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우리는 이런 무력감응ㄹ 느낄때가 종종 있다. 작게는 시험공부가 그렇지 않은가? 열심히 노력해도 성적이 오르지 않는 사람도 있다. 자신의 상황과는 상관없이 그날 너무 아프던지 사고를 당하는 친구도 있다.
내게 정말 중요한 일이고, 내 가족에게 정말 중요한 일이지만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가 있다.
가까이는 코로나도 그렇지 않은가. 우리의 삶의 방식을바꾸었다. 이제 사람들은 다시는 여행을 편안하게 다니기 힘들거라고 하기도 한다.
학교에 가고 안가고 사람을 만나고 안만나고가 우리의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저 우리는 이런 상황속에서 적응할 수 밖에 없을 때가 있다.
베드로와 초대교회가 그랬다. 그들이 할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베드로는 기도하며 죽기만을 기다려야 했다. 초대교회는 혹시나 하나님께서 살려주실까 기도해야 했다.
정확히 말하면 오늘 본문에 베드로가 기도했다는 말도 없다. 어쩌면 베드로는 야고보의 순교를 보고 죽을 각오를 했는지도 모른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요 21 18
1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이 말씀이 응한 것으로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죽기만을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베드로는 자신의 죽음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오해했던 것같다.
그래서 천사가 그에게 임했을 때도 9절처럼 환상을 보는 것으로 생각을 했다. 예루살렘교회의 지도자이고, 사도중에 가장 높은 자라 할 수 있는 그가 이정도의 영적인 분별력이 없어진 것은 그가 정말로 삶을 포기하고 죽을 각오를 했다는 것을 추측하게 해준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하나님의 뜻을 오해하고 낙담해 있는 베드로를 도우신다.
4명씩 4조를 이루고 있는 군인들을 무력화시키신다.
거리 한 곳을 지날 때까지 천사를 보내어 지켜주신다. 그리고 완전히 안전한 장소가 되어서야 베드로는 깨닫는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깨닫는다.
이 본문에서 가장 웃픈점은 무엇인지 아는가.
아무도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지난 시간 베드로에게 임한 환상을 본 적이 있다.
그 때, 우리는 무엇을 나누었는가.
하나님께서는 베드로의 방식대로 환상을 보여주시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설교시간에도 말했지만, 열국을 주는 환상을 보여주며 이방에게 가라라고 했으면 베드로는 당연히 첫번째에 따랐을 것이다. 그러나 속된 음식의 환상을 보여주니 베드로는 끝까지 거부했다.
오늘 본문에서도 하나님께서는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도우신다.
그 철통같은 경계를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뚫으신다. 다음날이 되어서야 지키던 군인들이 베드로가 없어진 것을 알게 하신다.
헤롯이 다시한번 수색하게 하지만 그때도 지키신다. 분명 헤롯과 신하라면 베드로가 마가에게 갔을수 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을텐데 마가의 집은 뒤지지 못한다.
우리가 이런 상황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했을까? 정말인가? 처음에는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생각도 들지 않았을까. 왜 하나님께서는 야고보의 순교는 방관하셨을까. 처음부터 막으시면 안되었을까.
왜 하나님께서는 고난이 우리에게 찾아오는 것을 방관하실까.
그리고 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잘 인식하지 못하거나 예상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우리를 도우실까.
11절을 보자.
11 이에 베드로가 정신이 들어 이르되 내가 이제야 참으로 주께서 그의 천사를 보내어 나를 헤롯의 손과 유대 백성의 모든 기대에서 벗어나게 하신 줄 알겠노라 하여
마지막에 뭐가 나오는가 “알겠노라.”
베드로는 그제야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았다.
고난을 겪고나서야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모든 것이, 생명조차도 하나님의 손안에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헤롯과 유대모든 사람의 뜻도 꺽으시는 하나님께서는 끝까지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이루실 줄 알게 된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바란다.
그전에 우리 곁에 하나님이 함께 계심을 알고 있다고 한다. 정말 알고 있나? 솔직히 사역자인 나도 내곁에 성령님이 계심을 잘 인식하지 못하겠다.
솔직히 내 마음대로 행할 때도 많다.
솔직히 왜 일이 이렇게 되는지 의문이 들때도 많다.
분명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라 생각했는데, 결과는 전혀 반대일 때도 있었다.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어떤 사람은 실족한다. 상처를 받는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해하기를 포기하는 편이다.
동시에 하나님을 더욱 이해하고 알아가려고 한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도우심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를 도우신다. 그 도우심이 때로는 죽음으로 나타날수도 있다. 왜냐면 우리에게는 죽음이 끝이지만, 하나님께는 하나님의 품안에 들어오는 영생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예수의 재림때 다시 부활할 기대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정말 간절히 구하나? 정말 하나님께서 나를 도와주시기를 바라나?
그렇다면, 하나니믈 알기를 먼저 기도해라. 도우심의 목적도 결과도 하나님을 앎,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늘어감이기 때문이다.
고난을 통해서도 하나님을 알아가지 못한다면, 고난이 반복될수도 있다.
고난을 통해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았다면, 고난이 다시 찾아오더라도, 하나님의 새로운 도우심을 경험할 수 있다.
왜냐면 우리는 이 세상의 거주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받을 진정한 댓가는 이 땅의 영화가 아니라 천국의 복락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구하자. 하나님의 뜻을 구하자. 하나님을 알기를 구하자.
그리고 우리의 약함을 좀 고려해달라고 구하자. 우리는 하나님을 다 알수 없다고 간절히 고백하자.
그리고 우리에게 이땅에서의 축복, 건강과 물질과 행복이 필요함을 인정하고 구하자. 그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심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순서가 뒤바뀐다면, 20-23절에 벌레먹어 죽은 헤롯처럼, 결국은 하나님을 모르는 자와 비슷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그러니 하나님을 뜻을 먼저 구하고, 하나님을 알기를 먼저 구하자.
그리고 우리의 약함을 사랑해달라 구하자. 우리가 이땅에서 꿈을 이루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 필요함도 구하자.
그럴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주목하시고 우리와 함께 하실 것이다.
이 축복이 가득하기를.
“ ” 찬양
다함께 기도
“내게있는 향유옥합” 찬양드리며 헌금드리겠습니다.
주기도문(천천히)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 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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