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척당하시는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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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서론
1) 우리는
1) 우리는
2) 전문맥
2) 전문맥
1. 첫째, 예수님은 죄인들에게 은혜를 베풀기 위해 오셨다. (16-22)
1. 첫째, 예수님은 죄인들에게 은혜를 베풀기 위해 오셨다. (16-22)
1) 나사렛에서 이사야서를 읽으셨다. (16-17)
1) 나사렛에서 이사야서를 읽으셨다. (16-17)
(1)예수께서 나사렛에서 하시던대로 설
(1)예수께서 나사렛에서 하시던대로 설
16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17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된 데를 찾으시니 곧
(2) 이사야
(2) 이사야
이사야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큰 소망과 위로를 주었던 말씀입니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은 예수님 때까지도 다른 나라의 압제속에 있었습니다.
이 말씀은 많은 포로로 잡혀갔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소망으로 가졌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받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의 끊임없는 범죄로 인해서 하나님의 진노를 샀습니다. 바벨론에서 포로로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을 통해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언젠간, 하나님께서 자유케하실 것이다! 언젠간 자유롭게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의 찬양을 회복시키실 것이다!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전환: 그렇다면 그 내용은 무엇일까요?
2) 읽으신 내용은 자유를 선포하는 말씀이다. (18-19)
2) 읽으신 내용은 자유를 선포하는 말씀이다. (18-19)
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1) 자유를 선포한다.
(1) 자유를 선포한다.
그 내용은 18절 19절에 나타납니다. 중요한 일이 벌어졌는데, 18절에서 말합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성령이 임했다는 것은 정말 큰 일인데, 무엇 때문일까요?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는게 구체적으로 어떤 일일까요? 쉽게 말하면 자유를 주시는 일입니다.
첫째,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주십니다. 둘째,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합니다. 셋째, 19절, 주의 은혜의 해! 다시말해 해방의 날, 희년을 전파하게 하려 하심입니다.
(2) 삼위일체 하나님의 뜻이 같다.
(2) 삼위일체 하나님의 뜻이 같다.
이 본문에서는 ‘성부'하나님, ‘성령'하나님, ‘성자’자 하나님께서 협력하여 일하신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혼자 하시는 일이 아니고, 성령님께서 아버지하나님과 상관없이 일하신 것이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 곧 주님께서 보내신 ‘성령'이, 예수 그리스도께 임했다는 말씀이고, 예수님은 성령께서 시키시는대로 일하신다는 말입니다.
간혹가다가, 어떤 사람들은 구약의 하나님은 진노의 하나님이고, 신약의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오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삼위일체하나님의 뜻은 동일합니다.
(3) 우리에게 은혜가 되는 말씀이다.
(3) 우리에게 은혜가 되는 말씀이다.
지금은 어떻습니까? 코로나로 인해서 예배가 자유롭지 않습니다. 여러가지 이유에서 예배에 나오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3) 은혜의 말씀까지만 읽고 멈추셨다. (20-21)
3) 은혜의 말씀까지만 읽고 멈추셨다. (20-21)
20 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시니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
(1) 갑자기 덮으셨다. (20a)
(1) 갑자기 덮으셨다. (20a)
20절에 “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시니"라고 나옵니다. 이사야서 본문을 펼치지 않은 사람들은 책을 덮은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한없이 은혜로운 말씀을 읽으시고 덮으셨고나라고 단순하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회당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던 사람들에게는 상당히 당황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원래 이어지는 이사야의 말씀에는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실은 유대인들이 이 말을 듣고 싶었을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하루빨리 원수들에게 보복하기를 원했습니다. 먼저는 자기들을 압제하는 로마인들, 그리고 더러운 이방인들에게 신원하기를 원했습니다. 유대인들이 기대했던 그 부분에서 멈추시고, 책을 덮으셨습니다.
(2) 주목하여 보더라. (20b)
(2) 주목하여 보더라. (20b)
사람들은 예수님의 행동에 놀라서, 주목하여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상하게도 예수님은 ‘은혜'의 날이라는 것만 읽고, 책을 덮으셨습니다. 그러면 당연히 사람들의 반응이 어떻겠습니까?
21 이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
(3) 은혜의 예수님 (21)
(3) 은혜의 예수님 (21)
예수님은 유대인들의 기대와는 다른 분이셨습니다. 유대인들만 구원하는 선지자가 아니라, 죄인들을 구하러 오신 예수님입니다. 병들고 나약한 자를 돌보시는 예수님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정확하게 못 박으셨습니다. 아직 덜 읽은게 아니라, 이 글이 오늘 너희귀에 응하였다고 말씀하심으로써 두 가지 의미를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는, 예수님의 사역은 나사렛 사람들의 기대와는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다른 하나는, 지금 오신 분은 하나님께서 자유를 선포하도록 보내신 분임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너무 은혜로운 나머지 오히려 환영받지 못하는 말씀이었습니다.
2. 둘째, 예수님의 복음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내용이 아니다. (22-27)
2. 둘째, 예수님의 복음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내용이 아니다. (22-27)
1)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놀랐다. (22)
1)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놀랐다. (22)
(1) 사람들이 놀라다.
(1) 사람들이 놀라다.
얼마나 놀랐는지 22절을 보겠습니다.
22 그들이 다 그를 증언하고 그 입으로 나오는 바 은혜로운 말을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여러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2) 사람들의 의아해하다.
(2) 사람들의 의아해하다.
놀랍기도 하지만, 이 사람들은 예수님의 유년시절을 보았던 고향사람들이기도 했습니다. 여러가지 이유로 예수님을 선지자로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물론 아직까지는 사람들이 확실하게 예수님을 거부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은혜로운 말씀이기 때문에 어느정도 의문이 드는 부분은 넘어갈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2) 예수님은 사람들이 결국 자신을 알아보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셨다. (23)
2) 예수님은 사람들이 결국 자신을 알아보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셨다. (23)
그런데, 예수님은 이미 사람들의 마음을 알고 계셨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운명에 대해서도 인지하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듣기에 뜬금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예언적인 말씀을 하십니다. 23절을 보겠습니다.
23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반드시 의사야 너 자신을 고치라 하는 속담을 인용하여 내게 말하기를 우리가 들은 바 가버나움에서 행한 일을 네 고향 여기서도 행하라 하리라
무슨 의미입니까? 어디한번 증명해 보라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고쳐서 의사인지 증명해라!” “가버나움에서 정말 큰 일을 행했다면, 여기서도 한번 보여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을 어디선가 들어본적이 있습니다. 똑같은 말은 아닐지라도 예수님께서 끊임없이 요구당했던 말입니다. 광야 시험에서도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돌을 떡으로 만들라”는 요구,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높은곳에서 뛰어내려보라는 요구를 마귀에게 들었습니다. 정말 중요한 순간에도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십자가에서 너 자신을 구원해 보아라" 하지만 증명한다 한들 사람들은 믿지 않습니다. 기적을 보여준다 한들, 그 기적만 붙잡는게 사람들의 심리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환영받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이전부터 알고 계셨습니다. 24절을 읽겠습니다.
24 또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는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 뿐만 아니라, 이전에 하나님께서 보내셨던 선지자들이 고향에서 환영받지 못했음을 말씀하십니다.
이전 말씀에서는 이방인들의 심판을 덜 이야기하나보다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어지는 말씀에서 더 노골적으로 불편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확실하게 예수님이 생각하시는 사역에 대해서 쐐기를 박습니다.
아마, 지금도 많은 교회들이 예수님의 복음과는 다른 길을 가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3) 예수님은 구약성경의 인물들을 예로 들면서 오히려 이방인들만 선지자를 환영했음을 말씀하셨다. (25-26)
3) 예수님은 구약성경의 인물들을 예로 들면서 오히려 이방인들만 선지자를 환영했음을 말씀하셨다. (25-26)
예수님은 특별히 구약의 중요한 인물 두 사람을 곧, 엘리야와 엘리사를 예로 듭니다.
(1) 엘리야는 이방 과부에게만 보냄을 받았다.
(1) 엘리야는 이방 과부에게만 보냄을 받았다.
먼저 엘리야에 대하여 25절과 26절에서 말씀하십니다.
25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 시대에 하늘이 삼 년 육 개월간 닫히어 온 땅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으되 26 엘리야가 그 중 한 사람에게도 보내심을 받지 않고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뿐이었으며
25을 보면, 엘리야 시대에 큰 흉년이 있었습니다. 엘리야도 배가 고프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께서 엘리야의 끼니를 위해 과부에게 보내셨음을 알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도 상당히 많은 과부가 있었습니다. 충분히 이스라엘에 있는 사람들도 엘리야의 끼니 정도는 채워줄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엘리야를 연약한 과부에게 보내시되, 이방의 과부에게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의 선지자가 이방의 과부에 의해서 대접을 받았다는 사실은 유대인들에게는 씁쓸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2) 엘리사 때에 깨끗케함을 받은 사람은 이방인이다. (27)
(2) 엘리사 때에 깨끗케함을 받은 사람은 이방인이다. (27)
예수님은 이어서 더 씁쓸한 이야기를 하십니다. 27절을 보면 엘리사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27 또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나병환자가 있었으되 그 중의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뿐이었느니라
많은 나병환자중에 이방 나아만이 고침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을 생각할 때 충분히 엘리사는 이스라엘의 많은 나병환자를 고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방사람 나아만 장군만 고침을 받게 되었습니다.
왜 이스라엘 사람을 안고치고, 이방인들을 고쳤을까요? 이유는 몰라도, 의아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 할례받지 않은 이방백성을 고치는 것은 이상한 일입니다.
이 이야기는 당시에 유대인들이 다 아는 이야기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이런 일들은 예외적인 일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다시는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 했을 것입니다.
선지자가 오면, 유대인에게 올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자기들에게 오면 선지자를 잘 맞이 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를 통해 유대인들을 구원하고, 이방인들을 심판하도록 하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이 본문을 읽으면서, 다른 사람들이 죄인이지만 받아주자라는 생각보다는, 내 자신을 용납하신 은혜에 더욱 집중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저는 유대인들처럼 교만하고 당당할 수 있는 입장이 되지 않습니다. 저 자신을 돌아보면, 저는 큰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먹지 않으면, 언제든지 하나님과 멀어질 준비가되어있는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이 본문은 저에게는 은혜의 본문입니다. 그들의 기준으로는 받아들여질 수 없을만한 사람이지만, 받아들여졌습니다.
마침내 선지자가 이땅에 왔습니다. 모세보다 더 큰 선지자,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셨고, 이사야 말씀을 통해, 오늘 이 말씀이 응하였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 분은 자기들이 원하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선지자가 이방인들에게나 보냄을 받았다는 이상한 소리를 합니다. 그러면 이 사람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겠습니까?
3. 회당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다. (28-30)
3. 회당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다. (28-30)
1) 하나님의 말씀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인다.
1) 하나님의 말씀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인다.
사람들은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28절을 보면,
28 회당에 있는 자들이 이것을 듣고 다 크게 화가 나서
회당에 있는 자들이 크게 화가 났습니다.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오히려 자신들의 치부만 드러내는 눈앞에 있는, 그리고 어린시절부터 봐왔던 나사렛의 예수가 선지자라고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다 크게 화가 났습니다. 네, 화가 날 수는 있습니다. 화가 나지만 그것을 조절하여서 참거나, 듣기 싫은 말도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됩니다.
2) 죽이려고 했다. 예수님은 처음부터 죽음과 가까이 계셨다.
2) 죽이려고 했다. 예수님은 처음부터 죽음과 가까이 계셨다.
그들은 어떻게 합니까? 29절에서 말합니다.
29 일어나 동네 밖으로 쫓아내어 그 동네가 건설된 산 낭떠러지까지 끌고 가서 밀쳐 떨어뜨리고자 하되
(1)예수님은 고향에서 거절당하셨다.
(1)예수님은 고향에서 거절당하셨다.
이는 온 인류가 예수님을 받아 들이지 않았음을 잘 드러냅니다.
고향에 있는 나사렛 사람들은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죽이려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알듯이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왕이지만, 이스라엘에게 배척을 당했습니다. 이것은 그 사람들 뿐만 아니라, 만 왕의 왕이신 예수님께서 온 인류에게 배척을 당했음을 나타냅니다.
처음부터 예수님은 거절 당할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의사여 자기자신을 고치라이야기 할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고 할줄을 알고 계셨습니다. 자기를 받아 들여야 할 고향 사람 뿐만 아니라, 자기를 받아들여야 할 자기 백성 이스라엘로부터 철저하게 버림받으실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온 인류가 예수님을 거절할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결국 모두에게 버림받아서 누구보다도 비참하게, 조롱받으며 죽으실 줄을 알고 계셨습니다.
저는 안그럴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저역시 예수님을 거절 할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제 속마음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드러내기를 죄의 유혹에서 견디기 어려운 존재입니다. 제가 듣기 원하는 말만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자기 증명의 욕구, 나의 의로움, 고집이 예수님을 죽게 만들었습니다. 이것을 생각할 때, 나 역시 그 당시에 예수님을 거절 했을 몹쓸 죄인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2)예수님은 십자가를 향하여 태어나셨다.
(2)예수님은 십자가를 향하여 태어나셨다.
사실 누가복음 전체를 보면 예수님은 십자가를 향하여 걸어 가십니다. 누가복음 뿐만 아니라 모든 복음서를 살펴보아도 예수님은 처음부터 죽기위해 이 땅에 오셨음을 드러냅니다. 갈릴리에서부터 항상 죽음 곁에 계셨고, 예루살렘에 가셔서 마침내 십자가에서 죽게되십니다.
3) 지나가셨다. 요한복음의 표현을 인용하면, 때가되지 않았다.
3) 지나가셨다. 요한복음의 표현을 인용하면, 때가되지 않았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때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30절을 보면
30 예수께서 그들 가운데로 지나서 가시니라
(1) 때가 아니다.
(1) 때가 아니다.
예수님은 아직 죽을 때가 아니었습니다. 사도들을 세우고, 그들에게 그 나라를 가르치고, 보여주어야 하셨습니다.
(2) 예수님께서 자발적으로 죽음의 때를 선택하셨다.
(2) 예수님께서 자발적으로 죽음의 때를 선택하셨다.
또한 예수님은 예수님께서 죽음의 때를 선택하셨습니다. 억지로 떠밀려서 죽은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도 자발적으로 죽음의 길로 가셨습니다. 처음에 말씀하셨듯이, 죄와 사망에 메여있는 자들을 자유케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결론
결론
첫째,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야합니다.
첫째,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야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뜻을 가감없이 받아들여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뜻을 가감없이 받아들여야 합니다.
셋째, 예수님의 죽음을 이해해야합니다.
셋째, 예수님의 죽음을 이해해야합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배척당하시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이 설교를 듣는 모든 사람들이, 나는 아니겠지 할 것입니다. 나는 예수님을 잘 받아들이겠지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점검해야 합니다. 내가 원하는 말씀만 들으려고 하는지, 내가 듣고 싶은 말씀만 들으려고 하는지, 내멋대로 신앙 생활을 하는 것은 아닌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배척당하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은혜를 베풀러오셨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두가지를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첫째, 나같은 죄인에게도 은혜를 베푸셨다.
둘째, 저 사람도 구원의 기회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