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의 비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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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유의 주제

//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활동을 시작하실 때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라고 선언하셨다. 그리고 이후 가르치시는 내용은 모두 하나님 나라에 대한 것이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가르침의 많은 부분을 비유로 전달하셨기 때문에, 예수님의 비유의 주제는 “하나님의 나라”라고 특정해도 무리가 없다.
//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가르침의 내용을 세분화하면 1) 하나님의 나라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신가? 2) 하나님 나라는 어떻게 들어갈 수 있는가? 3) 하나님 나라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가는가?
// 누구나 저마다의 천국을 꿈꾸지만 그저 꿈꾸는 것과 실제로 천국에 대해서 알고 누리는 것은 전혀 다르다.

몇 번까지 용서해야 할까?

// 설교 도입부로 용서에 대한 질문 던지기
마 18:21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이르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교회는 죄를 지은 사람을 용서하고, 그 사람의 잘못을 고쳐 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해 함께 힘써야 한다고 가르치셨다. “죄를 용서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듣고 베드로가 죄를 지은 사람에게 몇 번까지 용서를 베풀어야 하는지, 일곱 번이면 충분한지 예수님께 여쭌다.
// In rabbinic discussion the consensus was that a brother might be forgiven a repeated sin three times; on the fourth, there is no forgiveness. Peter, thinking himself big-hearted, volunteers “seven times” in answer to his own question—a larger figure often used, among other things, as a “round number” (cf. Lev 26:21; Deut 28:25; Ps 79:12; Prov 24:16; Luke 17:4).
*Carson, D. A. (1984). Matthew. In F. E. Gaebelein (Ed.), The Expositor’s Bible Commentary: Matthew, Mark, Luke (Vol. 8, p. 405). Grand Rapids, MI: Zondervan Publishing House.
마 18:2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
// 예수님은 베드로의 질문에 일곱 번을 일흔 번(원어 상으로는 일흔 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하라고 대답하신다. 7*70이던 77이던 내가 용서할 수 있는 최대치를 상정하는 것은 예수님의 뜻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생각해낸 관대함의 숫자 7을 훨씬 초월하는 숫자, 모든 한계와 계산을 벗어난 용서의 태도를 말씀하고 계시다. 이는 이어지는 비유를 통해 더욱 잘 드러난다.

천국에 대한 비유

마 18:23 “그러므로 천국은 그 종들과 결산하려 하던 어떤 임금과 같으니”
// 이 비유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살아가는 삶이 어떻게 시작되고, 그 나라에서 살아가는 자들의 삶이 어때야 하는지 잘 나타낸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 하나님 나라에서 살아가는 삶은 죄를 용서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 시작되며, 그 나라에서 살아가는 자들은 그 은혜를 쫓아 서로 용서해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마 18:24 “결산할 때에 만 달란트 빚진 자 하나를 데려오매”
// Some recent estimates suggest a dollar value of twelve million; but with inflation and fluctuating precious metal prices, this could be over a billion dollars in today’s currency. (For “talent,” see on 25:15.)
* Carson, D. A. (1984). Matthew. In F. E. Gaebelein (Ed.), The Expositor’s Bible Commentary: Matthew, Mark, Luke (Vol. 8, p. 406). Grand Rapids, MI: Zondervan Publishing House.
// 용서가 한계가 없어야 하는 이유는 생생한 비유로 설명된다. 어마어마한 양의 원래 빚(‘달란트’는 화페의 최고 단위이고, ‘만’은 가장 높은 헬라어 숫자다)은 32절의 ‘네 빚을 전부’라는 표현 속에 녹아 있다. 1달란트는 일반 노동자들이 6천 일, 16.5년 정도를 일해야 벌 수 있는 금액이다. 너무 큰 단위이기 때문에 일상의 대화에서는 잘 사용되지 않았다.
*R. T. 프랜스. (2013). 마태복음. (박상민 and 진규선, Eds. & Trans.) (초판, Vol. 1, p. 448). 서울시 서초구 방배로 68: 기독교문서선교회.
마 18:25 “갚을 것이 없는지라 주인이 명하여 그 몸과 아내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갚게 하라 하니”
// Such indebtedness could not possibly be covered by selling the family into slavery (v. 25): top price for a slave fetched about one talent, and one-tenth that amount or less was more common.
*Carson, D. A. (1984). Matthew. In F. E. Gaebelein (Ed.), The Expositor’s Bible Commentary: Matthew, Mark, Luke (Vol. 8, p. 406). Grand Rapids, MI: Zondervan Publishing House.
마 18:26-27 “그 종이 엎드려 절하며 이르되 내게 참으소서 다 갚으리이다 하거늘 그 종의 주인이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며 그 빚을 탕감하여 주었더니”
// 왕은 자신에게 막대한 빚을 진 자를 너그러운 마음으로 용서하고 그 빚을 다 탕감하여 주었다. 지금 왕이 보여주는 행동은 종의 요청을 훨씬 능가하고 있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성품을 그려내고 있다.
마 18:28-30 “그 종이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 한 사람을 만나 붙들어 목을 잡고 이르되 빚을 갚으라 하매 그 동료가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나에게 참아 주소서 갚으리이다 하되 허락하지 아니하고 이에 가서 그가 빚을 갚도록 옥에 가두거늘”
// The servant’s attitude is appalling. The amount owed him is not insignificant: though worth but a few dollars in terms of metal currency, a hundred denarii (v. 28) represented a hundred days’ wages for a foot soldier or common laborer.
*Carson, D. A. (1984). Matthew. In F. E. Gaebelein (Ed.), The Expositor’s Bible Commentary: Matthew, Mark, Luke (Vol. 8, p. 406). Grand Rapids, MI: Zondervan Publishing House.
// 왕의 호의를 입어 빚을 탕감받은 종이 자신에게 빚진 동료에게 빚을 갚을 것을 독촉한다. 그가 탕감받은 빚의 액수와 그가 독촉하는 빚의 액수를 비교해보았을 때 그가 보이는 태도는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그는 방금 왕의 호의를 입은 사람답지 않게 자신에게 빚진 자가 그 빚을 다 갚도록 감옥에 가두었다.
마 18:31-34 “그 동료들이 그것을 보고 몹시 딱하게 여겨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다 알리니 이에 주인이 그를 불러다가 말하되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하고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그를 옥졸들에게 넘기니라
// 34절의 ‘옥졸들’은 이치에 맞지 않는 완곡어법이다. 왜냐하면 헬라어는 고문하는 사람들(torturers)을 가리키는데, 그들의 일은 채무자와 그의 가족에게 압력을 행사해서 돈을 내도록 하는 사람들이다.
*R. T. 프랜스. (2013). 마태복음. (박상민 and 진규선, Eds. & Trans.) (초판, Vol. 1, p. 449). 서울시 서초구 방배로 68: 기독교문서선교회.
// the king calls him wicked (v. 32) and, foregoing selling him, turns him over to the “torturers” (basanistais, not merely “jailers,” NIV); the word reminds us of earlier warnings in this chapter (18:6, 8–9). The servant is to be tortured till he pays back all he owes (v. 34), which he can never do.
*Carson, D. A. (1984). Matthew. In F. E. Gaebelein (Ed.), The Expositor’s Bible Commentary: Matthew, Mark, Luke (Vol. 8, p. 407). Grand Rapids, MI: Zondervan Publishing House.

용서받은 것처럼 용서하라

마 18:35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 지금까지 예수님은 빚진 자의 이야기를 통해 죄를 용서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다. 옛날 고대인들에게 죄와 빚은 같은 의미로 사용될 수 있었다. 누군가에게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아서 지은 죄를 “빚을 진 것”이라고 흔히 말하였다. 즉 왕에게 만 달란트를 빚진 종은 하나님께 어마어마한 죄를 지은 자를 말하고, 하나님은 그런 어마어마한 죄를 지은 자를 은혜로 용서해주신다는 것을 말한다. 한 사람의 삶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이런 은혜를 경험함을 통해 시작된다. 약속하신 것처럼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하나님께 은혜를 입어 모든 죄를 용서받는다. 하나님께서는 마땅히 그런 은혜를 입은 자들에게 하나님처럼 사랑하고 용서하는 태도를 기대하신다. 만약 우리가 이웃을 사랑하고 용서하지 못한다면 그 죗값을 다 치르도록 지옥에 던져지게 될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지은 죄에 대한 책임은 너무나도 크기 때문에 우리는 영원히 그 지옥의 불길 속에서 죗값을 치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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