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의 군대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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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서론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이 출애굽하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본문을 살피는 키워드는 오늘 설교제목으로 봤듯이 ‘여호와의 군대’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군대라는 관점에서 오늘 본문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실제 오늘 본문 38절은 꼭 전리품을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은 정말로 오늘 본문에서 표현하듯 군대, 그것도 여호와 하나님의 군대라는 말을 듣기에 적합할까요? 본문을 살펴보며 은혜를 나눌수 있기를 바랍니다.
본론
본문 37절은 애굽에서 나오는 이스라엘의 규모부터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 규모는 보행할 수 있는 젊은이만 60만이었습니다. 엄청난 규모라 할 수 있습니다. 군대의 규모라는 측면에서 보면, 이 군대는 엄청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른 것은 어떨까요.
38절을 보면 군대의 질을 알수 있습니다. 그중 특별히 수많은 잡족이 그들과 함께 하고 있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것은 60만이라는 이스라엘 사람 외에 애굽에서 함께 노예생활을 하던 수많은 사람들이 이스라엘과 함께 애굽을 탈출했다는 것을 뜻합니다. 물론 다른 관점에서 보면 이스라엘 군대가 애굽에서 승리하고 포로와 전리품을 가지고 오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다음 39절에서 ‘애굽에서 쫓겨났기 때문에 양식을 준비하지 못했다’라는 말씀은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군대로서 하나님과 함께 싸워서 승리를 쟁취한 것이 아님을 알게 합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지금 이스라엘은 군대로서 애굽을 정복한 것이 아니라, 애굽에서 여호와의 군대로 부르심을 받고 나왔다라고 보는 것이 더욱 타당합니다.
이것은 37절에서 나온 “떠나다”라는 단어를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이 “떠나다”라는 단어는 유목민의 생활상에서 나온 단어입니다. 유목민들이 자신들이 살던 천막을 다 해체하는 장면을 묘사하는 단어가 “떠나다”라는 단어입니다. 그리고 이 “떠나다”라는 단어는 창세기에서 족장들이 여정을 할 때 항상 등장하는 단어입니다.
그렇다는 것은 이스라엘이 군대로 부름을 받아 하나님과 함께 애굽을 정복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애굽의 아래에서 신음하던 이스라엘을 구원하고 하나님의 군대로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이제 자신들의 조상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그랬듯이 하나님의 뜻과 인도하심에 따라 사는 삶, 떠나는 삶, 세상이 아닌 하나님께 속한 삶을 시작한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노예로 신음하던 그들을 하나님께서 직접 지휘하는 직속부대로 부르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자랑할만한 것은 숫자밖에 없었습니다.
60만이라는 숫자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군대에서는 그 무엇보다 체계가 중요합니다. 그러나 38절을 보면 수많은 잡족들이 이스라엘을 따라 나섭니다. 뒤섞여 있습니다. 체계가 없는 것입니다. 당연히 문제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민 11:4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4 ◎그들 중에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이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이르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
보시면 알겠지만, 이 다른 민족들은 여호와의 군대라는 체계를 흐리게 만들고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는데 혼선만 빚게 만들었을 뿐입니다.
거기에 양떼 소떼 기타 가축등 군대에는 필요없는 짐덩어리들만 주렁주렁 달고 있습니다. 광야에서 대체 어떻게 이 양떼와 소떼를 먹일까요? 남자만 60만이면 남자 1명당 가축 1마리라고 치면 60만마리인데, 대체 이 가축들은 무엇을 먹여야 할까요. 그렇다고 이스라엘이 먹을 것이라도 많이 챙겼나요? 다른 말로 군대에서 정말 중요한 보급은 어떤 형편인가요?
39절에 보면 나옵니다. “아무 양식도 준비하지 못하였음이었더라” 먹을 밥도 없어서 무교병을 급하게 구워야 할 정도였습니다.
다시한번 봅시다. 군대인데 체계도 없습니다. 수많은 인종들이 뒤섞여서 혼란스럽기만 합니다. 보급도 없습니다. 먹을 것도 제대로 준비가 안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군대라 부르려면 뭐라도 있어야 할까요? 자신이 하나님의 병사, 하나님의 군대라는 인식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를 위해 훈련이라도 잘 받았어야 군대라고 부를만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그런지 40절은 애굽에서 430년을 거주했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41절에서는 ‘430년이 끝나는 바로 그 날에’ 라고 강조도 하고 있습니다. 훈련소를 수료하고 이제 훈련병 반군인 반민간인이 아니라 진짜 군인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41절은 이렇게 말씀하는 것이죠.
41 사백삼십 년이 끝나는 그 날에 여호와의 군대가 다 애굽 땅에서 나왔은즉
다르게 표현하면 “430년간의 훈련을 끝낸 바로 그날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군대가 되어 모든 군대가 애굽 땅에서 출정했다.” 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로 430년이 훈련기간이었습니까. 훈련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군인으로서 그 역할을 다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훈련입니다. 그래서 제식부터 시작해 전투에 필요한 모든 것을 익히고 숙달하는 것이 훈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급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보급을 담당해야 하는 것은 군대를 주관하는 자, 바로 하나님이시지 군대의 병사인 이스라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체계도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할 준비가 되어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것을 초월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호와의 군대에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내 주인, 내게 명령을 내리시는 분, 그래서 내가 목숨걸고 충성해야 하는 분이 누구인지 아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430년이 정말로 훈련기간이라 할 수 있습니까? 처음 요셉이 살아있을 때는 하나님의 날개그늘이 아니라 요셉의 그늘아래서 편안하고 안락한 생활을 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니라 요셉에게 의지하는 것을 배운 그 기간이 정말로 하나님의 훈련기간이라 할 수 있을까요?
그 이후 고난당했던 기간을 훈련이라 할 수 있을까요? 오히려 요셉의 그늘아래서 애굽의 편안함에 빠져 나태해져버린 그들이 자초한 일 아니었을까요?
벽돌을 굽고 나르는 과정이 정말 여호와의 군대에게 필요한 훈련의 과정이었을까요? 아무리 살펴봐도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아무것도 한 것이 없습니다. 심지어 처음에 모세가 하나님의 구원을 선포해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구원으로 인해 잠시 상황이 나빠지자 모세를 더욱 원망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하나님의 군대, 여호와의 군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마치, 이들과 함께 애굽을 정복한 것처럼 38절에서는 전리품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실제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것도 제대로 건사하지 못하고 혼란스러워하고 있을 뿐인데 말입니다. 양과 소, 패물은 많지만 광야에서 가장 중요한 식량도 물도 챙기지 못했는데 말입니다.
당나라군대만도 못한 것같은 그들의 모습, 아무런 무장도 싸울 준비도 하지 못한 모습, 실제로 그렇게 광야를 지났던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의 430년은 훈련이 아니라 그저 암울한 시기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하나님의 군대라 부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코로나 속에서 기존의 모든 예배가 폐해지고 비대면으로 예배하고 있는 우리를 향해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정말로 지금 예배드리고 있는 모든 성도님들, 정말로 하나님께서 받을만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까. 정말로 우리가 자유롭게 예배드렸던 모든 순간들이 우리에게 훈련이 되어서 집에서 혼자서, 화면을 보면서 드려도 영과 진리로 예배드릴수 있는 상황입니까.
그럴수 있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많은 분들이 그런 예배,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만 높이고 하나님께 은혜받는 예배를 드리지 못해 더욱 갈급하고 있을 줄 압니다.
이때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군대라는 거룩하고도 명예로운 칭호를 감당할 자격이 없었습니다. 그렇듯, 우리역시 하나님의 자녀, 그리스도 예수의 핏값으로 모인 성도, 그리스도의 몸의 일부라는 거룩하고도 존귀한 자리를 감당할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라 지금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 대한 굴종과 벽돌 굽는 기술을 익혔던 430년을 훈련과정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는 아무런 필요가 없고, 하나님의 군대에 있어 오히려 거추장스럽기만 한 대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그렇듯, 우리가 세상에서 배운 모든 기술들 가치관들 모든 사고방식을 하나님의 자녀로 살기 위한 하나님의 예비하심입니다. 왜냐면 그 모든 것들이 모두 쓸모없지만, 예수 그리스도 피로 거듭나면, 하나님안에서 귀하게 쓰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 코로나 때, 우리모두가 하나님안에서 거듭나는 과정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기를 보려면 10개월을 기다려야 하듯이, 우리에게 있던 세상의 것들이 하나님의 것으로 변화되는 코로나의 기간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로 부름받은, 이 세상을 복음으로 정복할 하나님의 군대로 부름을 받은 우리가 훈련되는 기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 과정이 힘들 것입니다. 이것을 왜 해야 하는지도 모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과정을 지켜주고 계십니다. 출애굽기 12:42절을 새번역은 이렇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42 그 날 밤에 주님께서 그들을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내시려고 밤을 새우면서 지켜 주셨으므로, 그 밤은 ‘주님의 밤’ 이 되었고, 이스라엘 자손이 대대로 밤새워 지켜야 하는 밤이 되었다
우리 구주께서 밤이 새도록 우리를 지켜주시고 있습니다. 우리는 잠이 들어도 우리의 하늘 아버지께서는 뜬눈으로 밤을 새워가며 우리를 지금도 지켜주고 계십니다.
그러니 이 코로나라는 훈련과정을 우리 역시도 밤새워 지킵니다. 우리가 당연히 드렸던 그 시절, 받지 못하고 지키지 못했던 우리의 마음들, 생각들, 헌신들, 그 모든 삶들을 생각하며, 밤새워서, 마음바쳐 하나님앞에서 훈련받는 코로나의 시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하나님의 자녀라 하고 여호와의 군대라 말씀하실 때, 우리가 그 이름앞에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기뻐하고 자랑스러워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시간 한가지 기도제목을 놓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코로나를 지나는 이 시간이 하나님의 군대에 합당한 훈련의 기간이 되게 해 주소서. 그래서 다시 하나님의 이름앞에 자유롭게 모였을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빛을 세상에 마음껏 펼쳐낼수 있는 우리 모두 되게 하소서라고 다함께 합심으로 기도하겠습니다.
기도후 자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