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절 규례 설교

출애굽기 강해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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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서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출애굽하게 하신 바로 그 밤에 임재하시고 말씀하십니다. 정신없이 바쁜 상황이었습니다. 당장 짐을 챙기고 모두 빠뜨리지 않고 애굽을 떠나는 것이 급하니까요. 낙오자가 생기지 않게 하는 것 하나도 엄청난 노동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다 이스라엘은 이런 대규모 이동이나 행사를 한번도 해본적이 없었을테니, 출애굽은 더욱 혼잡하게 진행되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복잡하고 바쁜 와중에 하나님께서는 임재하셔서 유월절의 규례를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다른 말로 하면, 그 모든 복잡함과 바쁜 일의 원인, 출애굽만큼 중요한 것이 오늘 말씀하시는 유월절의 규례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이 유월절의 규례를 통해 무엇을 말씀하시기 원하셨을까요? 함께 하나님의 뜻을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본론
본문에서 강조된 것은 유월절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입니다. 1절에 하나님께서 말씀을 시작하시며 한 것이 이방인은 유월절의 양과 음식을 먹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유월절의 양을 매우 엄격하게 다룰 것을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아닌 모든 사람은 유월절의 양을 먹지 못합니다. 설혹 이스라엘 자손이 스스로 값주고 산, 이스라엘에게 소속된 종이라고 하더라도 먹지 못합니다. 종은 주인의 소유물인데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금지하는것입니다. 종이 먹으려면 할례를 받은 후에 먹어야 합니다. 잠시 이스라엘과 함께 소위 말하는 임시 체류자와 고용인 역시도 먹지 못합니다. 유월절에 참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46절에 보면 유월절의 양을 먹는 집도 지정할 것을 말씀합니다. 이 집에서 먹기로 했다면, 딱 지정한 집 안에서만 먹어야 합니다. 밖으로 들고 나갈수 없습니다. 뼈도 꺾지 말라는 것은 고기를 나누어서 들고 나갈 방법을 원천 차단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47절에
47 이스라엘 회중이 다 이것을 지킬지니라
라고 말씀하시면서 이스라엘의 모든 회중이 이것을 철저히 지킬 것을 다시한번 강조하십니다.
왜 이토록 강조할까요? 그것은 이 당시 이스라엘에게 유월절이란 자신들의 해방과 구원을 기뻐하는 축제의 날이기 때문입니다. 축제를 열게 되면 자연스럽게 음식을 나누게 됩니다. 음식을 나누며 기쁨을 나누는 것이죠. 오늘 본문의 이스라엘들이 이방민족과 섞여서 출애굽한 것처럼, 이스라엘은 사는 내내 가나안 민족과 섞여서 살아가게 됩니다. 우리로 따지면 남부민동에는 우리나라 사람, 남포동에는 외국사람이 사는 식입니다. 그때는 국경의 구별같은 것이 없었으니까요. 그렇지만, 유월절의 어린 양은 그 자체로 하나님의 구원의 상징입니다. 우리가 보았듯이 첫 유월절과 장자의 죽음 재앙때, 이스라엘은 아직 하나님의 백성이 정식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 제사를 지내지 못하고, 어린 양을 대신 죽이고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르는 것만이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격없는 그들을 구원하셨습니다. 오직 하나, 하나님의 명령대로 어린 양하나를 잡고 그 피를 문에 발랐다는 사실 때문에 그들을 구원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가족의 생명을 대신해서 죽은 유월절 어린 양의 살과 피를 구별없이 나누어 주기를 원치 않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유월절의 어린 양을 그냥 고기와는 다르게 구별하기를 바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구별된 어린양의 고기를 먹으며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생각하기를 바라셨습니다. 내 생명이 내 삶이 내가 누리고 있는 것이 모두 이 어린 양의 희생으로부터 왔음을 생각하게 하는 것입니다. 또한 아무것도 아닌 가축의 생명을 받으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느끼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이때, 하나님은 어린양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보이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알게 하셨습니다. 내 삶의 근본이 되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알기를 원하셨습니다. 유월절을 통해 알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드리는 예배를 통해 우리의 근본이 하나님이심을 알기를 원하십니다. 지금 우리는 이스라엘이 그랬듯이 제대로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시간을 구별하기를 원하십니다. 예배때 몸가짐과 마음가짐을 구별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 우리를 드릴 준비를 함으로써 우리 스스로가 구별되기를 바라시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배는 사람의 기쁨, 사람의 편안과 사람의 즐거움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정말 유월절을 축제로 즐기려면, 하나님의 명령과 반대로 해야 했습니다. 고기를 다 나눠주며, 오늘이 유월절이다라고 하나님을 잘 모르는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구원을 전하며, 하나님이 얼마나 크신 분인가를 전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우리가 생각하기에도 하나님이 얼마나 높으신 분인지 잘 전해질 것입니다. 그리고 모두 함께 즐겁게 이 유월절이라는 축제에 참여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모두가 하나님앞에서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축제가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구별을 원하십니다. 우리가 세상에 나가 함께 어울리길 바라십니다. 그 어울리는 자리에서 빛이 되는 것을 바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리만큼은 매우 엄격하게 구별되기를 바라십니다. 왜냐면 하나님께서 10재앙을 통해 애굽의 모든 신들과 하나님을 철저하게 구별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이런 구별됨이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좋은게 좋은거야로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찬송가의 “너 가는 길을 누가 비웃거든 확실한 증거를 보여주어라”라는 가사처럼 언제나 우리는 확실한 증거를 준비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자녀라는 구별된 표징을 가져야 하는 자들입니다. 이 코로나 시대에 우리는 얼마나 구별되고 있습니까. 스스로 살펴보며, 하나님처럼 구별된 거룩한 자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유월절의 규례는 구별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유월절의 규례를 통해 이스라엘과 함께 출애굽한 이방민족에게 구원의 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48절 마지막에 보면 “그는 본토인과 같이 될 것이나 할례 받지 못한 자는 먹지 못할 것이니라” 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다르게 바꾸면 할례받지 못하면 본토인이라도 먹지 못한다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에서 나고 자란 자도 먹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유월절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은 무엇입니까. 할례입니다. 할례를 받은 모든 자는 모두 하나님의 구원, 유월절에 참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49절에서 다시 한번 강조됩니다.
49 본토인에게나 너희 중에 거류하는 이방인에게 이 법이 동일하니라 하셨으므로
다시한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이때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본토인이 있습니까. 이스라엘 땅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있습니까.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지도 못했는데 무슨 본토인입니까. 그리고 47절에 보시기 바랍니다.
47 이스라엘 회중이 다 이것을 지킬지니라
이스라엘 자손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회중, 무리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다르게 말하면, 하나님 앞에서 유월절을 지키기 원한다면, 그래서 할례를 받았다면, 모두다 이스라엘 자손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출애굽직후, 그 정신없고 혼잡스러운 와중에 백성들을 불러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뿐 아니라 다른 모든 이방인까지 하나님의 구원의 길로 들어오게 하신 것입니다.
그전의 유월절, 장자의 재앙이 있기 전의 유월절은 모든 압제, 모든 사슬을 부수는 구원이었습니다. 자유의 구원이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다시한번 유월절의 규례를 말씀하시며, 생명의 구원으로서의 유월절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혈통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법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되는 구원인 것입니다. 어떤 누구라도 하나님앞에 오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모습이든, 능력이 있든지 없든지, 생김새가 어떻든지, 그 모든 조건은 아무 상관 없습니다. 그저 할례, 그 하나만 받는다면 모두 구원을 받게 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인 것입니다.
이 할례라는 조건은 이방인이나 이스라엘이나 동일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중에서도 할례를 받지 않은 자가 있다면 다 할례를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로 추측컨대, 모든 이스라엘이 할례를 받은 것같지는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할례란 이 때에는 그리 어려운 조건은 아니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단 하나, 할례만을 요구하십니다. 하나님과 자기자신만 볼수 있는 표징을 요구하십니다. 아마 할례의 여부는 하나님과 본인, 가족정도밖에 몰랐을 것입니다. 할례를 받는 부위의 특징이 그렇습니다.
밖으로 전혀 내보이지 않는 특징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보이지 않는 할례를 통해 하나님의 구원에 참여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 모두를 하나님의 군대로 부르십니다.
본문 51절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그 무리대로’ 애굽땅에서 인도하여 내셨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무리’는 군대를 뜻하는 단어입니다. 앞서 여호와의 군대라고 표현한 12장 41절과 똑같은 단어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자격을 따지지 않으십니다. 유월절이라는 거룩한 축제, 하나님의 군대가 되는 그 엄청난 영광에 여전히 요구조건을 묻지 않으십니다. 그저 할례라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말씀하셨던 그것만 요구하십니다. 그리고 그 할례는 모든 사람앞에서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과 본인, 그리고 가족외에는 알수 없는 은밀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우리와 은밀한 만남, 단둘만의 시간을 가지시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하나님과 만나는데 제약조건은 하나도 없습니다. 세상에서는 높은 사람, 권세있는 사람을 만나기위해서는 여러 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모든 조건이 필요없다 하십니다. 그저 둘만의 약속이 필요할 뿐입니다.
우리 한명 한명은 하나님과 둘만의 시간, 그 약속되고 축복된 시간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요. 하나님은 이 시간을 통해 우리를 변화시키고 하나님의 축복과 위엄을 널리 떨치는 군대로 우리를 세우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구별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과의 시간을 더욱 귀중히 여기고 하나님을 위해 한발자국 더 앞으로 다가오기를 바라시고 계십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바로 구별이 필요합니다. 유월절의 참여를 엄격하게 구별했던 것처럼 우리에게는 바로 그 구별이 필요합니다. 세상과 구별되는 시간, 세상과 구별되는 모습, 세상과 구별되는 삶이 우리에게는 절실합니다. 코로나는 사람들 개개인을 구별시키고 있습니다. 한명 한명을 분리시키고 있습니다. 이 바이러스조차 이런 능력을 가지는데, 우리 하나님께서 원하신다면 우리를 분리시키고 억지로라도 구별시킬 능력이 없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스스로 행하기를 바라십니다. 만약 누가 유월절에 할례없이 참여한다 합시다. 누가 알겠습니까. 본인과 가족만 쉬쉬하면 끝날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실천을 한사람 한사람에게 맡기고 있습니다. 어떤 강권적인 수단을 쓰시지 않으십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오기 바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만남의 시간을 위해 나아오길 바라십니다. 꼭 밀폐된 공간이 아니라도 괜찮습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 그를 위해 스스로가 겸비할 수 있는 공간이라면 충분합니다.
그러니 널리 용서하시는 하나님께, 우리의 변함에도 변치않으시는 하나님께 나아오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어떤 상태이든지 하나님께서는 기쁘게 받으실 것입니다. 그래서 자유의 복음, 생명의 복음이란 명칭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자유가 되고 생명이 되는 순간순간을 누리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이시간 우리 합심해서 기도하겠습니다.
기도할 때,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답게 구별될수 있기를 기도하여 주시고, 그를 위해 하나님과 만날 시간, 하나님께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구별하여 드릴수 있기를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다함께 주여 일창하신 후, 합심해서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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