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교절 규례 설교

출애굽기 강해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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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서론
오늘은 하나님께서 막 출애굽한 이스라엘을 향해 주시는 무교절의 말씀입니다. 말씀을 살펴보며, 무교절을 지키지 않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원하시는지 알 수 있는 시간되시길 소원합니다.
본론
무교절로 들어가기 전에 우리는 1절과 2절의 하나님의 명령과 모세의 말이 차이가 남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1절과 2절에서 하신 명령은 사람이든 짐승이든 첫째를 하나님께 바치라는 명령입니다. 이 거룩하게 구별하라는 명령은 아주 엄숙한 명령입니다. 왜냐면 단순히 첫째가 하나님의 소유라는 것을 기억하고 하나님께 바쳐진 삶을 살게 하라는 뜻도 있지만, 말그대로 하나님께 바쳐라는 뜻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사람은 아니지만 가축의 경우 첫새끼는 무조건 하나님께 희생제물로 드려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첫째의 소유권을 매우 강하게 주장하십니다. 2절에 나오는 ‘이는 내 것이니라’는 말씀도 매우 강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딴말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강조했는데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모세는 무엇을 이야기합니까. 첫째에 대한 규례입니까? 무교절의 규례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첫째에 대한 규례는 11절부터 이야기합니다. 왜 모세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지 않으신 무교절의 규례를 먼저 이야기하고 있을까요.
첫째, 우리가 하나님의 종임을 기억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3절에서 애굽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습니까. ‘종 되었던 집’입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바꾸면 ‘종살이 하던 집’이라는 말도 됩니다. 이스라엘은 애굽의 종에서 벗어났습니다. 애굽에서 탈출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이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종이 아니구나.’
애굽에서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제껏 한 종살이에 대한 댓가, 요즘말로 체불된 임금을 몰아서 받았습니다. 출애굽하기 전에 애굽인의 집에 있는 보석함과 금은그릇들을 통째로 가지고 나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5절후반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는 이 달에 이 예식을 지켜’
그런데 여기서 나오는 ‘예식’이라는 말은 ‘종’과 같은 단어입니다. 똑같이 ‘종살이’로 번역될 수 있는 단어입니다. 그리고 ‘지켜’도 똑같이 ‘일을 하다. 행하다, 고된 일을 하다, 종살이하다’라는 뜻이 일반적인 뜻입니다.
그러면 모세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겁니까. ‘나는 자유인이다!’라고 외치는 이스라엘에게 뭐라고 하는거죠? ‘아냐. 넌 종이야’라고 하는 겁니다. 애굽의 종은 아닌데 하나님의 종이야. 라고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래서 무교절을 이야기 합니다. 종이니, 종됨을 기억하라. 종의 음식을 먹으라. 밋밋하고 박한 음식, 여행자가 비상식량격으로 먹는 음식인 무교병을 먹으라고 합니다. 누룩은 집밖에도 보이게 하지 말라고 엄하게 말합니다.
그리고 6절에 절기를 지키라고 합니다. 다른 말로 축제를 개최하라는 말입니다. 어떤 축제입니까. 축제인데 맛있는 먹거리는커녕 벌써 6일째 먹어서 질릴대로 질린 무교병을 먹는 축제입니다. 맛있는 음식, 좋아하는 음식도 6일동안 삼시세끼를 먹으면 질릴 것입니다. 그런데 또 무교병의 축제를 벌여야 합니다.
종다운 축제를 즐기라는 것입니다. 자유인으로 살지마라. 내가 내 인생의 주인으로 살지마라. 너희는 하나님의 종이니 종다운 음식을 먹고 축제도 종다운 축제를 개최하라는 말씀입니다.
왜 모세가 이렇게 그들의 종됨, 종의 신분을 강조하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단순합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이라는 엄청난 구원을 거저 얻었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이스라엘의 노력은 하나도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모세와 아론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애굽과 맞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네! 주님’ 하고 나서지 않았습니다. 그저 뒤에서 가만히 있었습니다. 그동안 모세는 하나님의 종으로써 목숨을 다해 순종했습니다. 그러다가 구원이라는 열매만 따먹었습니다. 거기에 더해 종살이의 댓가, 체불된 임금까지 톡톡히 챙겼습니다.
손하나 까딱하지 않고 얻는 자유, 얻은 댓가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세는 이스라엘의 종됨을 강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냐면 이스라엘이 스스로 하나님의 종임을 시인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종된 도리, 순종을 실천하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출애굽이 끝이 아닙니다. 가나안을 향해 가야 합니다. 그런데, 자신이 하나님의 종임을 잊어버린다면, 이스라엘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는 우리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무엇으로 구원받았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구원받았습니다. 구원을 위해 우리가 뭔가 한 것이 있습니까.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하나님이 다 차려주신 잔치상에 가서 구원이라는 음식을 떠먹는 것만 했습니다. 아니 떠먹지도 않으려는 것을 하나님께서 믿음이라는 선물을 주셔서 직접 떠먹여 주셨습니다.
천국의 소망뿐만 아니라 이 땅을 살 때 필요한 것들도 공급해주고 계십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올 때, 보화를 챙겨 나온 것처럼 말입니다. 정작 광야에서 필요한 식량은 제대로 챙기지 않고 말이죠.
우리도 이런 이스라엘과 똑같습니다.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는 부족합니다. 영적으로 무장됨이 부족합니다. 그리스도를 굳게 잡는 믿음도 부족합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 백성처럼 세상의 보화, 금과 은과 보석들은 더욱 많이 챙기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먼저 우리가 하나님의 종임을 알기를 원하십니다. 물론 우리는 자녀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종됨을 기억하고 종의 모습으로 나아갈 때, 더욱 큰 은혜가 있습니다.
왜냐면 우리의 삶이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는 삶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더욱 존귀히 되는 것입니다. 우리 삶을 통해 하나님이 높아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삶의 이유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가 높아지면, 우리가 잘먹고 잘살면 하나님이 높아지십니까.
우리가 정말 하나님 영광받으소서라고 말한다고 하나님께서 영광받으십니까. 하나님 높아지세요 라고 외친다고 세상을 향해 하나님이 가장 높으십니다라고 외친다고 하나님이 높아집니까.
방법은 하나입니다. 우리가 낮아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낮아지는 만큼 하나님께서 높아집니다. 우리가 겸손해지는 만큼 하나님께서 존귀히 여김을 받으십니다. 눅17:10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모세는 이스라엘이 첫째를 하나님께 바치기에 앞서서 한가지를 알기를 원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종임일 알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첫째뿐 아니라 그들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소유임을 알기를 원했습니다.
그렇기에 무교절은 무교병으로 드려지는 초라한 축제입니다. 멋도 없고 맛도 없는 축제입니다. 초라한 종들의 축제입니다.
그러나 그 축제를 받으시는 분은 종들이 초라해지면 질수록 더욱 큰 영광과 권능으로 임하실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종임을 기억합시다. 하나님의 종임을 기억합시다. 그래서 하나님앞에 종다운 모습으로 나아갑시다. 세상은 우리의 겸손함을 보고 비웃을지 모릅니다. 돈도 있고 시간도 있는데 왜 그렇게 교회에 목매여 사냐고 조롱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낮아진 마음속에 하나님께서 더욱 크게 임하실 것입니다. 그리하여 삶속에서 내가 아닌 하나님이 나타나기를 축원합니다.
둘째, 무교절은 ‘나를 향한, 그리고 내 자녀를 향한’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오늘 본문 5절부터 쓰이지 않는 단어가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너희’라는 단어입니다. 대신 하나님께서는 ‘너’ ‘나’라는 말을 계속 쓰고 계십니다. ‘나’와 ‘내 자녀’입니다. ‘우리’가 아닙니다. ‘우리 자녀’도 아닙니다. 그래서 8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애굽에서 나올 때”, “여호와께서 나를 위해 행하신 일”
가나안에 가면, 출애굽이란 구원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이미 출애굽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출애굽과 같은, 똑같은 기적이 나에게 다시 일어날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지금 이스라엘은 ‘내가’ 출애굽을 경험했습니다. 제 할아버지는 일제 강점기와 6.25를 경험하셨습니다. 일본군이 이마에 총을 대고 예수 믿을래라고 말했을 때 믿겠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로 6.25때 피난가다 잡혀서 총살형을 받고 줄을 서서 총살당할 차례를 기다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일본군이 할아버지를 죽이려 할 때, 갑자기 긴급소집령이 떨어졌습니다. 할아버지는 그 바쁜 때를 틈타 탈출했습니다. 6.25때 갑자기 인민장교가 총살당할 차례를 기다리는 할아버지를 불러냈습니다. 그 장교는 놀랍게도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몰래 할아버지를 탈출시켜 주셨습니다.
지금 여기계신, 저희 할아버지 할마니와 같은 성도님들도 인생을 살며 고비때마다 도우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체험하셨을 것입니다. 그 기적같은 역사와 간증을 가지고 계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무교절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너는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이렇게 행하셨다”라고 말할 것이다. 또한 너의 자녀도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이렇게 행하셨다”라고 말할 것이다.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 살면서 주셨던 그 기적들을 내 후손이 똑같이 누릴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그래서 ‘할아버지가 그랬어. 조상이 그랬어’ 가 아니라, ‘내가 그 일을 체험했어.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그 일을 그렇게 풀어가셨어. 하나님은 살아계셔’라는 신앙고백이 영원토록 이어지겠다는 하나님의 거룩한 약속입니다.
그러니 오늘 먹은 음식, 햇빛, 공기, 바람, 날씨, 일들이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준비하신 것들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배때 주시는 말씀이 ‘나를 향한 말씀’임을 기억합시다. 예배가 ‘내가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가 되시기 바랍니다.
결론
아간의 범죄는 아이성의 패배, 이스라엘의 패배를 불러왔습니다. 만약 아간이 에발산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받았다면 어땠을까요. 그가 구별된 그 물건을 취했을까요?
그러니 하루하루 주시는 말씀이 내게 주시는 말씀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태양에서 빛이 나게 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나를 위해 구름을 보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내가 하나님의 종임을 잊지 않으시기 바랍니다. 내가 하나님의 종임을 알고 행할 때, 하나님께서는 나뿐아니라 내 자녀와 후손들의 하나님으로 함께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됨을 잊지않고 언제나 ‘내게’주시는 은혜를 사모함으로 하나님의 영원한 은혜 속에 거하는 우리 한사람 한사람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시간 우리 합심해서 기도하겠습니다.
기도할 때, 내가 하나님의 종임을 항상 기억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내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기적이 우리 집안에 흘러 넘치게 하소서 라고 기도하시겠습니다.
다함께 주여 한번 부르짖은 후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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