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심과 택하심을 아노라

데살로니가전서 강해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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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1월 1일 주일 설교 원고
본문: 살전 1: 1 -10
제목: 사랑하심과 택하심을 아노라
데살로니가 교회는 바울이 2차 전도여행을 할때에 마게도냐지역에서 빌립보 다음으로 두번째로 세운 교회입니다.
지리적 배경
지도를 한번 참조하겠습니다.
데살로니가는 에게 해를 낀 항구도시입니다. 동쪽으로는 빌립보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더 동쪽으로 가면 비잔티움이 있었 습니다. 당시 이 도시들을 연결하는 ‘비아 에그나아(Via Egnatia)’라고 하는 로마의 군사도로가 있었는데 이 데살로니 가는 바로 그 도로의 중요한 연결 역할을 하는 도시였습니다. 따라서 로마에 필요한 물자를 공급하는 중요한 무역도시임 과 동시에 군사적으로 중요한 요충지였습니다.
정치적. 경제적 배경
데살로니가는 주전 315년에 알렉산더의 장수였던 카산더에 의해 세워졌습니다. 참 역사가 허무한것이 알렉산더가 31살 의 나이로 죽자, 그의 아들과 아내를 그의 부하들이 죽이고 맙니다. 권력때문이지요. 그 사람이 카산더입니다. 그리고 알렉산더의 이복누이인 데살로니케이아와 결혼을 하는데, 이 카산더가 권력을 잡은 후 아내의 이름을 따서 만든 도시가 데살 로니가입니다. 그러다가 주전 146년에 로마가 이 도시를 점령한 후 마게도냐 지방의 수도로 정해졌습니다. 이 데살로니가는 우선 지리적인 위치 덕분에 아주 풍요로운 도시였습니다. 주전 42년에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가 부 르트스와 권력전쟁을 할때에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우누스를 지지했는데, 결국 옥타비우누스가 승리하여 황제가 됨으로 그 때의 공로를 인정받아 로마정부로부터 차치권을 수여받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정치적 경제적으로 상당한 풍요와 자유를 누렸기에 다른 어떤 도시보다 로마제국에 충성도가 강한 도시였습니다.
종교적 배경
여러 신비종교들이 성행 했었는데, 신비종교를 밀의 종교라고 말하기도 하지요. 영어 미스터리가 이 단어에서 유래한것입 니다. 데살로니가 도시에서 이렇게 비밀스럽지만 대중적이었던 신비종교가 디오니소스 컬트 (Dionysus-cult) 라는 것이 었습니다. 디오니소스 컬트는 성적 탐닉을 통해 신을 예배하고 그 신의 힘을 얻는 방식의 종교였습니다. 당연히 성적으로 문란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러한 문화적 영향을 받은 데살로니가 교회도 이러헌 성적 문란함의 문제가 있었습니다.
설립 배경
데살로니가 교회 설립과 관련하여 특이한 것은 바울이 그곳에 머물렀던 기간이 매우 짧았다는 것입니다. 이에 관한 성경이 기록이 사도행전에 있습니다. 한번 보시겠습니다. (읽어주세요)
행 17: 1 그들이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로 다녀가 데살로니가에 이르니 거기 유대인의 회당이 있는지라.
행 17: 2 바울이 자기의 관례대로 그들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세 안식일동안 강론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자면 세번 주일설교를 한것입니다.
바울이 유대회당에서 복음을 전한 이유
바울은 선교를 할때마다 유대인들의 회당에서 복음을 선포했습니다. 왜냐하면 유대회당에 가면 유대인들이 안식일 예배 시에 낭독하는 렉셔너리 (lectionary, 성구집) 를 이용해서 복음을 전할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력셔너리란 유대인들이 구약때부터 전통적으로 안식일예배때마다 일정한 패턴으로 구약성경을 낭독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유대교와는 다르 지만 우리 개신교도 성서일과라고 해서 우리도 가지고 있습니다.제가 몇년전 그것을 가지고 몇년간 설교를 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지금도 당연히 그들만의 렉셔너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모세오경 중 한장, 선지서 중 한장, 그리고 시가서 중 한장이렇게 세장을 읽는 것인데 , 무작정 읽지 않고 메사야예언으로 연결되는 장들만을 골라서 엮어 놓은 성구집입니다. 예를 들면 출 24장, 렘 31장입니다. 출24장에는 시내산 언약체결이 기록되어 있고, 렘 31장은 이스라엘의 불순종 때문에 시내산 언약이 파괴되고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통해 이스라엘을 심판하시지만 결국에는 새 언약을 통해 구원을 이루실것 이라는 내용이 실려 있습니다. 모든 장이 이런 형태로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바울은 그러한 력셔러니를 하는 회당에 들어가서 그 새언약이 예수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의해 이루어졌음을 설교했던 것입니다. 그 설교를 듣는 유 대인들 중에 이 복음에 설득되는 사람들이 더러 생기는 것입니다. 그 중에 한 사람이 야손이라는 회당장입니다. 하지만 대 부분의 유대인들은 바울이 전한 복음을 거부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유대 회당에는 이러한 디아스포라 유대인들 외에도 비유대인인 이방인들이 회당한쪽에 있었습니다. 이들을 헬라어로 ‘세보메노이' (σεβόμενοι) 라고 지칭하는데, 이 말을 우리말로 풀이하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God - fearers) 이라고 해석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가진 성경도 그대로 번역해 놓은 것입니다. 이들은 이방인이었지만 유대교에 매력을 느껴 유대회당의 안식일 예배에 참여하면서 유대인들과 함께 야웨 하나님을 예배하고 유대 율법을 배워 삶에 적용하려고 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은 대다수의 유대인들과는 달리 바울의 복음을 환영했습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가 장 큰 이유는 당시 유대교신앙구조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은 소수의 사람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매우 유대민 족주의적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우리가 비뚤어진 선민사상이라고 하지요. 그래서 이방인들에게는 그리 큰 소 망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오래된 전통이고 관습이었지요. 그런데 바울이 선포하는 복음에 의하면 유대인이나 이방인이 나 차별이 없이 모두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백성으로 받아들여 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복음이 이방인 경건자들에게는 참으로 기쁜 소식일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바울이 전한 그리 스도의 복음에 대거 긍정적으로 반응한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그들의 심정을 직접 경험해보았습니다. 제가 하나님을 직접 만났을때가 고3때였던 5월이었습니다. 그때 주 일예배후에 중고등부학생들 네명이 전도사님과 기도모임을 했는데, 그자리에서 하나님이 보이지않는 팔로 저를 꽉 안아 주시는 것을 온몸으로 느낄수 있었습니다. 부인할수 없을만큼 너무나도 분명했습니다. 어떻게 그런일이 일어났을까 생각 해보면 그전에 전도사님을 통해 주셨던 말씀 때문이었습니다. 그때 전도사님이 주신 말씀이 마태복음 16장 24절이었습니 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였습니다. 전도사님께서 이시간 누구든지 하나님을 만나고 싶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주님을 구해야 한다 말씀해주셨습니다. 당시 저는 저를 부인해야 한다 는 그 말씀이 꼭 저에게 하시는 말씀같았습니다. 너무 연약하고 보잘것없는 제자신에 대해 힘들어하고 있었기 때문입니 다. 정말 자랑할것이 없었습니다. 자랑할것없는 내가 나를 부인한다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반가운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더 좋은 것은 그렇게 하면 주님의 제자가 되고 주님의 백성이 될수 있다고 하니 저의 마음이 활 짝 열릴대로 열려버린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어떤 성공을 이루었던간에 인간은 그 성공한것때문에 하나님을 찾 지 않습니다. 인간은 성공으로 하나님을 찾는존재가 아닙니다. 아홉가지 성공에도 불구하고 한가지 절대적인 결핍으로 인해 아홉가기 성공조차도 무력하게 여겨지는 순간이 올때 비로소 인간은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을 진심으로 찾게 되는 것 입니다.
아무튼 이러한 구조로 이방인이었던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은 바울이 전한 차별없는 복음에 마음의 문이 활짝 열려버린 것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상황을 매우 전략적으로 이용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어디를 가든 유대회당을 찾았던 것이고 그 들에게 구약의 성취자로서의 예수를 증거했던 것입니다. 물론 성과도 있었지만 문제점도 있었습니다. 그 복음을 들은 유 대인들이 강력히게 반발한 것입니다. 굳이 회당에서 전하지 않았더라면 그렇게까지 부딪힐 일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을 듣고 구원받을 자를 생각하며 그런 고난을 예상하면서도 회당을 찾아 들어갔던 것입니 다. 이러한 상황에서 회당의 다수를 차지하는 유대인들은 바울의 복음에 반발했을 뿐만 아니라 바울과 복음을 받아들인 성도들을 로마 관원들에게 고소하기까지 한 것입니다. 죄목은 로마황제가 아닌 예수를 왕으로 믿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보여만 주세요)
행 17: 7 야손이 그들을 맞아 들였도다 이 사람들이 다 가이사의 명을 거역하여 말하되 다른 임금 곧 예수라 하는 이가 있 다 하더이다 하니.
행 17: 8 무리와 읍장들이 이 말을 듣고 소동하여
사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신것도 이와같은 죄명 때문이셨지요. 바로 이러한 죄명으로 당시 유대인들은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을 제소했고 야손과 여러 사람을 감옥에 넣어버린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바울은 비밀리에 베뢰아로 피신할수 밖에 없었습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에 머문 시간
사도행전 17장 1절에서 세 안식일동안 복음을 증거했다고 기록한 부분 때문에 바울이 데살로니가 지역에 3주동안 머물렀 다고 볼수 있는데 사실은 조금더 있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빌4장을 보면 바울이 데살로니가에 있었을때 두차례에 걸쳐 빌립보 교회로부터 선교후원을 받았음을 알수 있습니다.
빌 4:16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 번 두 번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
또한 데살로니가에 머물면서 바울이 일정한 곳에서 일을 하였음을 알수 있는데,
살전 2:9 형제들아 우리의 수고와 애쓴 것을 너희가 기억하리라 너희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낮으로 일하 면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였노라.
바울은 자기 손으로 일을 하여 생계를 유지하면서 선교를 하였는데, 당시 이러한 작업장을 ‘인슐라 (insula)’라고 하는데, 지금의 주상복합건물과 비슷한 건물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건물 1층 앞쪽은 물건을 진열해서 파는 공간이며 뒷부분 은 물건을 만드는 작업 공간이고, 2층이나 3층에는 주인과 노동자들이 함께 사는 건물이었습니다. 바울이 천막기술을 가 지고 있었는데, 바울은 이러한 기술을 이용해서 이 인슐라에서 일을 하면서 찾아온 손님이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한것으 로 보입니다. 그러니까 3주보다는 훨씬 긴 시간을 머물렀다고 보여집니다. 학자들은 대게 3달정도 머물렀을 것으로 추측 하고 있습니다. 사실 세달도 매우 짧지요. 그런데 갑자기 바울이 앞에서 언급한 상황때문에 급히 베뢰아로 피신을 해야 했습니다. 바울을 떠난 보낸 데살로니가 성도들도 힘든 일이었고 바울 자신에게도 힘든 일이었습니다. 마치 어린 젖먹이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떠나야 하는 엄마의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수차례 데살로니가교회를 다시 방문하려고 애를 썼습니 다. 그런데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읽어주세요)
살전 3:17 형제들아 우리가 잠시 너희를 떠난 것은 얼굴이요 마음은 아니니 너희 얼굴 보기를 열정으로 더욱 힘썼노라.
살전 3: 18 그러므로 나 바울은 한번 두번 너희에게 가고자 하였으나 사탄이 우리를 막았도다.
바울의 감사와 칭찬
이런 상황에서 바울은 디모데를 통해서 데살로니가 교회가 그러한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여전히 복음을 붙들고 믿음 으로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입니다. 얼마나 감격이 되고 안심이 되고 힘이 났겠습니까? 오늘 본문은 그러한 바울의 감격과 기쁨이 그대로 묻어나는 부분입니다. 인사치례로 하는 말이 아닙니다. 1장 전체가 데 살로니가 지역의 성도들을 향한 칭찬과 격려로 가득차 있습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한 칭찬과 격려는 크게 두가 지입니다.
하나는 모든 믿는자의 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6절과 7절입니다. (읽어주세요)
살전 1: 6.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에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는 자가 되었으니
7.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느니라.
이러한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믿음이 온 마게도냐지역의 모든 믿는자에게 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8장 1절에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이 데살로니가교회의 믿음을 알려주는 대목이 나옵니다.
고후 8:1.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예루살렘교회가 극심한 가뭄으로 어려움을 당했을때 마게도냐교회인 데살로니가 교회와 빌립보 교회가 힘껏 도움의 손길 을 펼친것을 두고 했던 말이었습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믿음을 칭찬해줄려고 하려고 해도 이미 다 소문으로 알고 있어서 말할 필요조차가 없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살전 1:8.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졌 으므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것이 없노라.
이렇게 바울에게 데살로니가 교회는 자랑이었고 면류관이었던 교회였습니다. 우리 킹스턴한인교회와 우리 성도님들의 헌신과 믿음도 이렇게 우리지역교회의 자랑이고 기쁨이 되는 줄 믿습니다.
또하나의 칭찬과 격려는 그들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택하심을 받은 자라고 확신하는 것입니다.
4절입니다. (읽어주세요)
살전 1: 4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택하셨다는 말chosen 은 영어 eletion 에서 온 말입니다.
Eastern Bible Dictionary는 이러한 택하심을 Eletion of Grace라고 표기하며 이렇게 설명합니다.
it is not conditioned on faith or repentance, but is of sovereign grace.
faith and repentance and all other graces are the exercises of a regenerated soul.
이것은 믿음이나 회개를 조건으로 하지 않은 주권적 은혜이다.
믿음과 회개 그리고 다른 모든 은혜들은 거듭난 영혼의 결과물이다.
인간의 머리와 이성으로는 아무리 노력하고 애써도 이해할수 없는 완전히 불공평하면서도 완전히 공평한 하나님의 차원 의 전적인 구원이 바로 하나님의 택하심입니다. 야곱은 구원받고 에서는 버림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태어나기 전에 결정되었다고 말씀합니다. 이것을 우리가 어떻 게 다 이해할수 있겠습니까?
행 13:48 이방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기뻐하며 주님의 말씀을 찬양하였고,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정하신 사람은 모두 믿게 되었다. -새번역성경
이와같은 말들을 악용하면 안됩니다.나는 애초부터 버림받았으니 안믿겠다던지, 나는 애초부터 택함받았으니 대충살겠다 는 것도 안됩니다. 분명한 것 한가지만 붙드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나를 부르셔서 믿는자로 세워가고 계시다는 것 입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데살로니가교인들처럼 택하심을 받은 사람으로서 그 믿음의 본을 보이며 살기 위해 믿음의 경주를 달려가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가 이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택하심의 주권적 은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힘을 내셔야 합니다. 그러니 그 구원의 은총을 즐거워하고 기뻐해야 합니다.
살전 4:13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 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고 말합니다. 바울은 이러한 은총없는 자들을 소망없는 자들이라고 불렀습니다. 세상사람들이라고 나름의 소망이 없겠습니까? 있을 겁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러한 모든 소망들이 다 무효화시키고 소망없는 자라고 선언해버린 것입니다. 아무리 재물이 많아 도 죽은사람이 되면 아무 소용이 없는것처럼 아무리 세상소망이 많아도 영혼의 소망이 없으면 결국에는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저와 여러분을 당신의 귀한 복음으로 택하시고 사랑하시는 그 하나님을 붙드시기를 축복 합니다. 이 평안과 은혜가 우리 성도님들에게 넘치시기를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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